20190922
사도행전 2:42-47 성령의 공동체
1. 오로지 경건 생활에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42절)
성령의 설교를 말씀으로 받으면 이사야의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모여 성령의 공동체가 됩니다. 이 성령의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이 되는 것이며 초대교회의 탄생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처럼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재창조된 성령의 공동체는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는 그들이 말씀의 공동체에 접 붙여진 이후에 어떻게 공동체에서 양육을 받았는지 4가지로 설명합니다.
amp#9312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다.
원문을 보면 힘쓰다(헬라어: 스스로 무엇에 헌신하다. 지속적으로 집착적인 동작을 타나내는 미완료 시제)가 맨 앞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기도만이 아닌 가르침, 교제, 성찬, 기도 모두를 뜻합니다.
성경을 알지만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주신 예수님을 구속사로 꾀는 것은 성령의 선물입니다. 가슴을 치는 죽을 것 같은 아픔이 올 때 원동력 있는 말씀으로 살고 싶어집니다. 구속사 말씀을 받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에게 마음에 찔려(헬라어: 말발굽으로 가슴을 내리치는 고통) 가르침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겨나게 됩니다. 보통은 사도들도 나도 똑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배울 필요가 있나 라고 생각하겠지만 공부로 가르침 받은 그들이 한 일은 십자가에 못 박은 일입니다. 성령의 설교로 가르침 받는 것은 출발이 다릅니다. 성령을 받지 못해도 어릴 적부터 교회 안에서 몸에 익혀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기억하는 말씀으로 가르침 받는 구조에 있는 것은 지나고 보면 최고의 구조입니다. 우리들교회는 담임목사만 주인공이 아니라 평신도들도 가르쳐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평신도들이 유명해져서 곳곳에 전하는 성령공동체가 맞는 것 같습니다. 목장과 일대일THINK양육을 통해 한결같이 모두 배우고 가르치며 말씀을 사모하는 공동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가 순수성을 유지한 비결은 가르침의 내용이 성령의 역사로 똑같기 때문입니다. 여러 명의 열 두 사도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사역인 복음 하나만 가르친 것에 반해 그들은 똑같은 율법을 가지고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정죄하며 잡아 죽이는 데에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성경공부를 오랫동안 열심히 해도 자신의 죄와 의와 심판의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늘 자기는 옳고 남은 틀리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사도들의 가르침은 예수그리스도와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 높아지심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그렇게 계속 회개하며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근거가 되고 성령이 주시겠다는 약속을 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문제와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배우고 가르치면 다른 인생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분은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시간, 공간, 사람, 사건, 역사, 생사를 배웁니다. 그런데 진정한 배움이란 그런 문제에서 예수님의 시각으로 듣는 작업과 깨닫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오고가는 우리 인생사 속에서 잘 듣고 깨달으면 적용은 결과를 기뻐하면서 세상의 시각에서 유턴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와도 예수님의 시각으로 보고 듣는 것이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생명의 문은 좁은 길이고 사망의 문은 넓은 길이기에 힘들어도 십자가의 가르침이 계속 이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결국은 사건에서 승리하게 되어있습니다.
Q.여러분은 가르침을 잘 받고 있습니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amp#9313 성도의 교제입니다.
전체에서 강조되는 교회의 중요한 요소이며,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의 교제는 정신적인 교제 뿐 만 아니라 물질적인 교제이기도 합니다.
*교제(헬라어: 코이노니아, 고린도후서 6:14 사귀다, 로마서 15:26 헌금)
사람은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은 본능이 있어서 장이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십자가의 가르침이 확실하지 않으면 나중에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는 것은 말씀을 삶에 적용해서 나누는 것으로 균형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말씀에 가르침 받지 않으면 균형 잡기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들교회 현수막: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
amp#9314 떡을 뗍니다.
떡을 떼다라는 성경적 용어인 성찬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 몸이고 보혈을 말합니다. 우리들교회는 특수한 상황으로 일 년에 한번 성찬식을 하지만 초대교회는 모일 때마다 애찬을 겸한 성찬식을 했습니다. 공동체 형제들 가운데 가난하여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주일 목장에서 나누는 식탁교제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애찬 성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amp#9315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원문을 보면 기도들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개인기도와 공동기도를 포함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감정이나 직감이 아닌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들교회 오시는 강사님들이 기도제목만 보고도 놀라며 은혜를 받으십니다. 기도제목을 가르침에 따라서 교제하고 떡을 떼는 공동체에 나누는 것이 너무도 쉬워지게 됩니다. 오픈 또한 쉬워지기에 말씀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하나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니 우리들교회가 평안한 것은 이 순서대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이듭니다
Q.사도의 가르침, 성도의 교제, 떡을 떼며, 기도 중에서 여러분들은 무엇이 안 되고 무엇이 잘 됩니까?
2.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가 됩니다. (43-45절)
(43절) 두려워하는 사람은 44절에 나오는 믿는 사람과 대조되는 믿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부흥, 기사, 표적들을 보면서 영적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참된 성령의 공동체는 영적 두려움이 전파되기에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신령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게 됩니다. 온갖 종류의 문제가 일어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어 기사와 표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문제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라는 말처럼 문제가 있어야 기사와 표적이 일어납니다. 영적 진리인 말씀에 표적이 나타나기에 진짜 기사는 내 현재의 이유를 알고 감사할 수 있음에 놀라워 기사가 되어 말씀을 붙들고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요. 장차 일어날 영광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적용하는 사람이 최고입니다.
(44-45절) 가장 큰 표적을 다루고 있는 본문으로 기사와 표적이 나오고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유무상통 하는 것을 보면서 가르침, 교제, 기도 후에 나오는 적용이라고 보여 집니다. 어떻게 다함께 있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가치관이 같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였기에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과 소망만이 가능하게 하며 말발굽이 나를 치는 아픔 가운데 있었기에 나누어 써도 아깝지가 않습니다. 목장을 하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말발굽의 고통이 있기에 끊어지지 않고 목장 공동체를 하는 것이 기사와 표적인 것입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는 세상입니다. 아합과 이세벨도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상을 섬기며 끝에는 돈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살리고 자존심을 세우는 일에 돈은 가공할 위력을 발휘합니다. 이 구절의 유무상통으로 이단이 나오고 공산주의가 나옵니다. 공산주의 경우 초대교회와는 달리 개인의 자발성이 없이 무조건 공유하고 국유화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향한 자발적인 사랑과 공동체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이단도 공산주의도 실패했고 실패할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사면초가에 몰렸을 때 주여를 외치며 구함 받은 것처럼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지상 공동체는 완전하지 않아서 뜨거웠던 초대교회에도 잠시 뒤에 보면 계시록 일곱 교회 중 서머나교회와 빌라델피아교회만 칭찬 받고 나머지 다섯 교회의 마지막 라우디야교회는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처럼 우리가 잠시 뒤에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조금만 편해지면 전부 다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주 안에서 개인의 종말론을 믿는 사람들은 유무상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종말론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Q.여러분의 성도 체휼은 어느 정도 입니까? 몇 퍼센트 될까요?
3. 모이기를 힘쓰는 공동체입니다. (46절)
식탁에서 돌 지난 손녀딸이 아멘을 합니다. 몸으로 가르치세요! 기사와 표적의 공동체가 되면 모이기를 힘씁니다. 42절 떡을 떼다가 다시 반복됩니다. 이것은 말씀을 가르침 받아도 모여서 떡을 떼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성전에 모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지만 집에서 먹으며 기쁨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이렇게 큰 모임 작은 모임이 저절로 모여져서 초대교회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기뻐할 것 없는 가운데 예배가 기쁘기에 애찬을 나누는 것이 즐겁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다녔던 이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기쁘지 않기에 예수님을 죽이지 않았을까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모든 예배가 항상 설렘이 있고 매주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 양육, 찬양에 설렘이 있다면 성령의 공동체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공동체를 경험하면 나의 주는 예수그리스도이며 창조주 하나님을 최고의 왕으로 보았기에 비교하지 않으며 이 땅에 기대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선물이고 이 세상을 탈출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세상을 탈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완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대신 한번 탈출 했기에 부족해도 뒤로 돌아가진 않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선물을 받기 전에는 날마다 실수하고 또 물고기 잡으러 가며 세 번 부인 하였다고 복음서에 나와 있는데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선물을 받으니 회개하며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번 탈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너무 부족하기에 완전하지 못해 베드로도 바울에게 야단맞습니다. 완전해서가 아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족해도 돌아가지 않는 비결은 한결같이 예배가 설레고 사모함이 넘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목장이 설레서 참 된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내 몸에 기억되어 있는 많은 죄들로 끝까지 회개해야 하지만 예배가 설렘이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회개가 되어도 설렘이 없다면 아직 회개를 모르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를 하지 않았기에 설렘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계속 설레면서 올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뇌는 5%라고 하는데 탈출하면 95%를 쓸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말씀과 예배를 몸에 기억하도록 해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망하기 전에는 세상모임이 끊기 힘들 듯이 초대교회 핍박은 참으로 선물입니다. 핍박이 있었기에 이런 성령공동체가 가능한 것입니다.
Q.여러분은 설렘으로 예배를 오십니까? 습관적으로 예배를 오십니까?
4. 날마다 구원을 더해가는 공동체입니다. (47절)
모이기를 힘쓰면서 언제나 하나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기쁠 때, 슬플 때, 궂은일, 화나는 일에도 가르침을 잘 받아 성령의 교제를 하게 되기에 적용도 잘하여 온 백성에게 칭송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미함으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이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말씀의 공동체에서 접 붙여진 사람과 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말씀의 가르침만 받고 교제, 성찬, 기도가 없다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지 않으며 유무상통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르침 받다가는 설교가 아무리 좋아도 신앙의 길에서 퇴보됩니다. 생각하는 마음과 습관, 언어의 인격들이 계속해서 탈출하고 난 후에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가르침을 잘 받고 영육간의 교제를 잘 하고 유무상통하면 저절로 등경 위에 불이 되어 비춰주는 삶이되기에 안 믿는 사람들이 따라와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이렇습니다. 칭송 받을 수밖에 없는 적용은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선물로 하기에 다른 사람들이 감동받습니다. 여기서 예수님만 믿고 가르침 받아 교제하여 칭찬 받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이 주제가 아닙니다. 잠시 후에 베드로는 핍박받고 순교합니다. 다 죽고 혼자 살아난 모세가 축복입니까? 스데반도 순교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전하는 자와 듣는 자 그리고 죽는 자에게까지 골고루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더하게 하시는 것도 성령의 선물이고 순교와 핍박도 성령의 선물입니다. 사자 밥이 되어가면서 313년 동안 초대교회 영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 때문에 모델을 주시는 것입니다. 항상 예수 믿으면서 칭찬만을 받는 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예를 들어 박집사를 보며 교회가고 싶다고 얘기하며 잘 지내지만 박집사가 적용 잘하여 간증대에 세워지면 흥! 지가 뭐라고!라며 조롱하고 이간질 합니다. 똑같은 박집사인데 칭찬과 조롱을 합니다. 인간은 지옥 불에서 올라온 교만이 있기에 이럴 수 있습니다. 칭찬과 조롱을 골고루 받는 것이 진짜입니다. 하나만 받으면 성품으로 하는 것으로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생명 걸고 믿는 사람을 너무너무 싫어합니다. 등경위에 빛이 되어서 온 백성에서 칭송받으니 구원 받게 하시는 것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가르침이 중요한 것처럼 가르침 받았을 때 여러분들이 아무런 적용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삶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 좁은 길을 우리가 가야하고 교회는 생명 걸고 이 길을 가는 것을 선포해야합니다. 초대교회는 베드로의 성령설교 이후에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르침 받아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초대교회처럼 건물도 없이 주일에 모이고 주중에는 집에서 모이다보니 이제는 주일성전에서도 집에서도 환란 당하고 원통한 자들이 모여 늘 눈물의 예배를 들이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저절로 성령의 공동체가 된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가르침은 학력이 없어서 못 듣는 것이 아니기에 계속 하다 보니 다른 것 안 해도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해주신다고 하나님께서 도장을 확실하게 찍어주셨습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교회도 벌써 커져서 목장이 싫어지는 사람도 생기고 예배가 설렘이 되지도 않고 놀아야 하고 쉬어야하는 이런 분들이 생기다보니 목장에 밥하는 것도 아까운 수준으로 가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럴 수록에 강력한 십자가 가르침이 선포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도 지금 이 얘기를 듣는 여러분들이 찔림을 받아 얼마나 싫어요! 힘들어요! 합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남들은 죽어도 못할 적용을 하기에 목장에서도 등경에 빛나고, 집에서도 등경에 빛나고, 직장에 가서도 등경에 빛나서 그 빛을 따라서 날마다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굉장히 힘들게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래야 성령의 공동체는 위력이 있고, 설렘이 있고, 좁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 길을 지나고 보면 구원 받은 사람들을 더하는 여러분들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Q.여러분의 목장이 정체 되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나와 공동체의 성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제목]
은우
보내주신 시간과 장소에서 사명감 잃지 않고 경계 잘 지키도록
해외전시 몇 주 앞으로 다가와 분주한 마음과 부담이 있는데 힘을 빼고 말씀으로 준비하도록
회사 안에서 분열되는 사건들이 생기고 있는데 주님 날개 안에 은총 안에 보호 받도록
교제/결혼하면 실력/능력/믿음 없는 배우자로 핍박 받을 것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드는데 말씀으로 위로받고 해석 받아 부활 하도록
민주
앞으로 계획하는 것들 소명 받고 인도 받고 잘 준비할 수 있도록
가족건강
동생의 앞으로 일들 기도로 묻고 분별하며 사명감당 하도록
임신 중인 언니 출산 때까지 건강하게 지켜주세요
예선
큐티하면서 내 모습보고 갈 수 있도록
나의 제자리를 지키며 갈 수 있도록
은실
나의 죄 보고 갈 수 있도록
큐티생활 잘 할 수 있도록
건강회복
은혜
큐티 깊이 있게 하는 할 수 있도록
나와 공동체를 위한 기도생활 할 수 있도록
체력관리 할 수 있도록
한별
얼마 남지 않은 결혼 함께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말씀 안에서 담대함 가질 수 있도록
현경
공동체 관계 속에서 내 감정 살피며 말씀으로 붙어갈 수 있도록
엄마 양육교사 잘 감당하며 붙어 갈 수 있도록
오빠와 새언니를 향한 정죄와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먼저 서서 내 죄를 보며 회개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