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9. 8 주일예배>
일시 2019. 9. 8 3부예배
찬양 #주 보혈 날 정결케 하고 #불을 내려주소서 #새 힘 얻으리 # 보소서 주님 #하늘의 나는 새도
성령의 선물
제가 암이 권세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는데 3년 만에 지난 주 설교는 정확하게 그리스도에 대해서만 설교하는 본문이었어요.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보이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높아지셔서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했어요. 정말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비 맞죠? 성령충만을 받고 성령의 설교를 하니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고 하네요. 저도 다시 살고 높아져서 여러분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모두에게 주고 싶습니다. 선물은 꽁짜잖아요. 받기만 하면 되는데 오늘 이 성령의 선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여러분 다 받길 바랍니다.
첫째로, 찔림 받아야 합니다. (36-37)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
무슨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렸나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사건은 성경에 요일서에도 있듯이 반드시 약속되어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것은 신비주의 사건이 아니고 예수님은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삶으로 본이 되시며 잘 사셨고 우리를 위하여 잘 죽으시는 모델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심으로 부활하심으로 다시 사셨고 이 예수를 높이셨다고 베드로가 성령의 설교를 잘 들리게 전했는데요. 그런데 바트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일은 바로 너희들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의 결론을 내린 거에요.
그들은 십자가에 주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오직 문자적으로 빌라도가 판결해서 병사들이 죽였다 밖에 모릅니다. 당연히 그러는 것이 100% 죄인인 인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사장도 아니고 총독도 아니고 로마병사도 아니고 바로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는 너희 이스라엘, 네가 죽였다고 하는 거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다가 내가 예수를 못 박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이것이 구속사에요. 구속사가 들려야 찔림을 받게 되는 거에요. 너무 신비하지 않아요? 내 힘으로 안 되는 거죠.
마음에 찔려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청중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깊이 있게 반응했다는 것이에요. 무식하고 겁도 많은 베드로였지만 성령의 붙잡힘 바 되니깐 놀라운 말씀 전도자가 되었어요. 이거는 베드로의 능력이 아니고 성령의 선물인 거죠. 그런데 이 베드로의 설교가 백성들의 마음을 찔렀어요. 우리가 지난 주에 들었지만 성령의 설교는 철저히 예수님 설교였습니다. 성령의 말씀으로 찔림 받는 것은 가장 큰 성령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히브리서 4장 12절을 보면,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속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가 다 드러나서 찔리는 것이에요. 내 속에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을 가지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교양 있게 변장을 해도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다 드러나서 견딜 수 없는 게 찔림 받는 것이에요. 벌거벗음 같이 드러낸다고 하셨는데 여러분 세상에서도 어두운 데서는 익숙한 시각장애인이 더 잘 걸어다니잖아요.
영적으로도 말씀이 들리기 전에는 인간은 100%로 죄인이라서 어두운 세상에서 잘 살아갈수록 잘 날수록 이 세상에 익숙해서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위 모든 것을 갖추고 수단이 좋다는 그들은 자기의 수치와 더러운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넘어져서 한 줄기의 말씀의 빛이 나를 찔러 쪼개니깐 벌거벗은 것 같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을 이제 자발적으로 느낀 것이에요. 그것은 분면 아프고 힘들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우리 죄 때문에 기꺼이 애통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때마다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이것이 권능과 기사이고 표적인 것입니다. 내 현재 이유를 깨닫는 권능, 그것이 기사가 되어서 놀라가지고 이제 표적인 말씀의 간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말씀 듣고 찔림 받는 것 말고는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유명한 연출자 로버트 요한슨은 자기에게 가장 큰 칭찬은 바로 관객의 눈물이라고 해요. 그것은 작품에 찔렸겠죠? 그렇게 감동의 반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없는 음악회, 전시회를 갔지만 제가 눈물을 흘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체육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들 교회 예배 때마다 제가 너무 부족하니깐 제가 누구보다 먼저 찔림을 받으니깐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애통하게 하시니깐 그게 정말 신비한 일인 것 같애. 저는 감성과 이성 중에 이성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강단에만 서면 눈물을 흘릴 때가 너무 많은 거에요. 그러면 저보고 여자라서 과부라서 슬프다고 하시는 분이 있죠. 이번주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예수님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나요?가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적용해보세요] 성령의 말씀의 찔림을 받습니까? 사람의 지나가는 말에 찔림을 받고 괴로워 합니까?
성령의 선물은 찔림을 받으니깐.
두 번째, 어찌할꼬 하며 묻습니다. (37)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에 7교회 중에 사단의 권자가 있는 이 버가모 교회에 날 선 검으로 수술을 한다고 하신 거에요. 그러니깐 날선 검으로 수술한다는 것은 그곳에 피고름이 있잖아요. 그것이 바로 사단의.. 거기가 교횐데 사단의 권자가 뙇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거에요. 우리의 죄악을 잘라내고자 할 때 그런 말씀을 들으면 나의 이 더러운 사단의 피고름을 봐야 어찌할꼬가 저절로 나오겠죠.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성령의 선물이 오면 어찌할꼬가 되는 거에요.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는 네 속에 더러움을 보지 못하고 아무리 헌신, 봉사해도 영광은 네가 다 받고 수치와 조롱은 예수님께 다 돌리지 않니? 그리고는 날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라고 입으로만 부르짓고 있지 않니?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이러한 음성은 우리 목장에서도 듣고 설교에서도 듣고 각종 간증을 통해서도 들어요. 그러니깐 자기 속 피고름을 보고 부끄러워서 어찌할꼬가 되는 거에요.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잘 못이 보이지 않아요. 수치도 몰라요.
#11살 나이에 예기치 않은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미슬로겐조는 그 이후로부터 전신마비는 물론 언어능력도 다 상실했어요. 그런 그의 시에 나사렛 예수여, 나사렛 예수여. 내가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나이다. 이런 고백을 했어요. 성령님이 임하시면 아무 볼일 없어보이는 겐조가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고백하는 신비가 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해보면은 불신자와 신자에는 신자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신자 사이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 내 죄가 보이는 만큼 영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직분으로 생각하면 담임목사이니 제일 잘못이 많은 사람인 것이 맞죠. 그런데 이제 그러지 못하니깐. 어찌할꼬가 되는 거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는 왜 맨날 잘못이야. 이런다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온나라가 왜 그게 내 잘못이야. 전부다 나는 잘 못없어. 이거죠. 찔림 받으면 한 때 갈릴리 사람이라고 무시하면서 어부하고는 상대도 안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형제여~ 어찌할꼬? 물어보는 거에요.
요한 일서 1장에 주님을 보고 듣고 만지는 사람은 공동체에 사귐이 있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깐 그 무시하던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교회를 귀히 여기게 되는 거죠. 교회를 우숩게 여기고 말만 하면 비판하면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래요. 사람들은 돈 떨어지고 명예 떨어지고 건강 잃으면 성령의 설교가 들리고 어찌할꼬 합니다. 그동안 경건을 가장하고 체면을 가장하고 교회를 다녔는데 부도 나서 망하고 아이 속 썩이고 아프고 남편 아내 다 바람 핀 거 들통 나고 더 이상 숨을 곳도 갈 곳도 없고 더 이상 교양도 없게 되니 형제들에게 물어보는 거에요. 어떻게 어떻게 나 좀 살려줘요. 그런 사람들 많죠? 우리들 다 그렇죠.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직면해서 단지 돈이 없다는 것보다 그 돈이 없어서 내 속에 추하고 더러운 실체를 보게 된 거에요. 그래서 육이 무너진 만큼 영이 세워집니다. 찔림 받고 어찌할꼬 하는 것은 성령의 선물이에요.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하며 어찌할꼬 한 것입니다. 천사가 핀 숯을 입에 대면서 네 죄가 사해졌다고 하면서 소명을 주십니다. 그러니깐 나는 소명 받을 자격이 없어요, 주여 어찌하오리까. 해야지. 그런데 우리는 찔림도 없고 어찌할꼬도 없기 때문에 공동체도 형식적으로 나와 앉아 있고 그러니 당연히 애통도 없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기복적인 마음이 있으니깐 믿음이 없어도 또 나와서 앉아 있어요. 나와 앉아 있는 것도 그래도 장차 일을 생각할 때 택자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깐 이제 찔림도 애통도 이런 어찌할꼬도 없으니깐 도리어 성령 받은 사람을 술 취했다고 조롱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사건에서 내가 주를 십자가에 못 받았다. 성령의 선물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까? 제가 더욱 성령의 설교를 하면서 죽어지는 삶의 열매가 있다면, 여러분 모두가 성령 받을 거 같애요.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은 그래도 제가 부족해도 여러분들이 성령받기를 원하니깐 내가 천국 간 뒤에도 반드시 생각나서 성령 받길 바래요. 저의 소원이고 유언이에요. 지금 못받으신 분들은 나중에라도 저를 생각하셔서 성령받으시길 바래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돈이 없어서 어찌할꼬. 합니까? 이 성령의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합니까?
성령의 선물은 어떻게 받나요?
세 번째는 회개입니다. (38)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베드로는 어찌할꼬 하는 너희에게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하여 각각(개인구원이니깐) 세례받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보면, 순서가 세례받아야 죄사함 받는거야? 순서로 말하면 죄사함 받았기 때문에 세례 받으라는 게 맞지 않아요? 죄사함을 받으니깐 세례를 받은 거 아니에요? 또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했으니깐 그러면 죄사함을 받아야만 성령의 선물을 준다는 것인가요? 이런 궁금증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딱딱해도 교리를 좀 들으세요. 여기에서 그리하면이 아니고 원어에서도 보면 그리고가 맞아요. 물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외적인 고백으로 성령의 역사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순서적으로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 모든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올 수도 있어요. 회개와 세례와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이 따로 따로 올 수도 있고 동시다발적으로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왜냐하면 개인의 경험과 믿음의 분량이 각자 다 달라서 그래요. 초신자가 물 세례를 받았는데 그것도 회개의 성령의 역사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처음 예수 믿었을 때에는 애기가 태어나서 몰라요. 건강도 주시고 돈도 주시고 자녀도 주시니깐 그것이 구원인 줄 알아요.
그런데 들었지만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 있고(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입으로 시인해 구원에 이르니깐 구원 받았어요.) 그런데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구원이 있다고 했잖아요. 우리의 성숙과 성화를 향한. 이제는 내가 예수 믿고 세례 받았으니 사명감당해야 되는데 중요한 건 아직 내게 이루어지지 못한 구원이 있는 거에요. 그럼 해야 할 일이 세상이 감당 못하는 구원을 보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잖아요. 그러면은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좋아하니깐 세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야 되잖아요. 세상을 뛰어넘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에 몸 담고 있으니깐 끝없는 회개를 해야 되는 거에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세상 밖으로 출애굽시키기기 위해서는 내가 세상을 뛰어넘는 회개를 해야 하는데 내가 세상을 좋아하고 있는데 세상을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내겠어요.
그러니깐 베드로는 이 성령의 설교를 유대인인 이스라엘 형제에게 했어요.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얼마전에 죽였잖아요. 그런데 그 유대인 중에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이 분들이 인정하니깐 세례를 받았잖아요.) 그 당시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쫓겨나는 것이었어요. 출교당하는 것이에요.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그때 그들이 그렇게 조롱하고 쫓아낼 때 그 조롱을 뛰어넘는 알지 못했던 기쁨인 성령의 선물을 이때 징표로 주신 것이에요. 죽음을 불사하고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왜? 이제 복음이 전세계에 뻗어 나가야하기 때문에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 성령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찔림을 받아서 어찌할꼬하는 회개의 상태에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베드로 성령의 설교는 너희가 회개하면 이 세상 복을 받는다.라는 설교가 아니었던 것이죠. 이 세상 탈출해야 하는데. 베드로의 설교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설교죠.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나를 알라는 설교에요.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그렇게 원하였던 임금인 메시아를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시지 않으니깐 그들이 십자가에못 박히게 한 고발의 설교를 한 거잖아요. 이제 너희 가운데 회개가 임했다면 더욱더 진중한 회개를 하라고. 찔림 받아 어찌할꼬?에서 더욱더 진중한 회개를 하라고 처방을 내린 거에요. 그래야 네가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는 거에요. 이 악한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본능이 죽는 날 까지 계속 될거에요. 그 세상에서 날마다 세상을 뛰어 넘어가야 한다는 거에요. 이제 이 세상에 내 방식, 내 생각 다 내려놓고 죽으라는 것이 세례라는 거에요. 여기 38절에 회개와 세례는 이런 거에요. 이 세례는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내가못 받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는 것이 여기 38절의 회개에요.
이 성령의 선물로 주어지는 이 회개는 바로 이런 것이 본질적인 회개입니다.
# 어떤 목자님이 우리들 교회 와서 술도 끊었다가 마시고 모든 것이 반복이 되고 있는데 그럼 내가 무엇이 변했을까? 생각을 해보니깐. 자기가 삶의 안식을 누리더라는 것이에요. 교회 다니기 전에는 경제적인 풍요,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을 보고 편치 않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 그런 것이 전혀 부럽지 않다는 거에요. 이 분 잘난 분이거든요. 비교가 될 거아니에요. 나도 잘 살아야 되는데 더. 그러니깐 지금은 처음 왔을 때랑 비교해보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을 보는 시각에서 그들의 형편을 보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없어졌다는 거에요. 자기는 세금 내는 것, 이런 것 교회 다니기 전부터 잘 냈다는 거에요. 중요한 게 가치관이잖아요. 세금을 냈나, 안 냈나 이런 걸 따지는 게 아니고. 진짜 리더십을 가지려면은 가치관의 문제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교회 다니기 전에는 내가 평생 벌어도 안 될 거 같은 부자를 보면 부러운 마음도 있고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그게 요새 불편하지 않으니깐 평강을 누린다는 거에요. 나는 늘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게 되는데 요즘은 이런 것도 중요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 된 것이 이런 것을 졸업하지 않았나.
굉장한 나눔이에요. 제가 이 나눔을 보면서 무슨 졸업을 했겠어요. 정말 졸업을 해가는 이 가치관의 변화가 성령의 선물인 거죠. 세상을 너무 부러워하다가 회개한 성령의 선물은 세상을 떠나는 거에요. 세상을 출애굽하는 거에요. 그런데 세상에서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내가 아직도 세상에 몸 담고 있으니깐 정말 날마다 내 죄를 볼 수밖에 없는 거에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그 구원 때문에. 내가 잘 나서 누군가를 인도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부족한 것을 자꾸 보면서 그래도 같이 같이 출애굽해서 구원의 세계로 가자고. 이 분이 깨달았지만 아직도 안 되니깐 술을 끊었다 마셨다 안 된다잖아요. 아니 세상을 다 끊은 사람이 술 하나를 왜 못 끊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부러운 것 없는데 술은 왜 먹어요? 이게 앞 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앞 뒤가 맞는 얘기에요.
우리가 대단한 청문회를 하면서 모두가 하는 게 세금을 냈다 안 냈다. 진짜 중요한 거는 그게 아니라는 거죠. 왜 그럴까요? 진정한 성령의 선물은 죽는 경험이에요. 믿는 사람들이 능력이 없는 것은 자기가 죽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도 안 되는 것들이 많죠. 왜냐하면 내가 몸이 기억하는 세상의 것들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하루아침에 끊어 내겠어요. 그래서 못 끊어 내는 내 자신이 너무 안타깝고. 그래도 나 세례 받았다고. 그래도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구원을 전해야겠는데. 내 식구들이 안 변해, 내 남편이 안 변해, 내 자식들이 안 변해. 안 변하는 계속적인 아픔이 있을 때 성령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주님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는 내 속에 피고름 같은 죄를 보게 하시는 거에요. 성령의 선물을 받은 자는 어김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죄를 보게 하십니다.
제 인생을 생각해보면 이런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죽을 것 같은데 안 죽고 남편이 때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내 죄를 보는 것. 어떤 경우라도 결국 내 죄를 보게 하시더라구요. 바로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에요. 누가 이러고 저러고 해도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거에요. 문자적으로 암이 걸려 아픈 경험을 해도 그 아픔보다는 그 아픔으로 통해서 자기를 직면하는 내적인 죄를 보면서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공중권세 잡은 자들과 싸움을 처절히 하면서 진정한 죽는 경험을 할 때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성령의 선물인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이 방언이나 신유나 성령의 신비한 은사나 연관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은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깨끗해서 새로운 삶, 거룩된 삶을 살기 위함이라는 거에요. 여기 성령의 선물은요, 은사가 아닌 성령 자체에요. 성령의 선물이 복수로 되어있으면 은사인데 단수에요. 성령의 선물은 결국 거룩이라는 거지요.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라고 했잖아요. 어디나 똑같아요.
사도행전 3장 19절에,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사도행전 26장 18절에서도,
(18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러니깐 성령은 새롭게 하는 것, 거룩. 우리가 날마다 거룩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이 성령의 선물을 2차적으로 강력하게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 세례를 받고 밍밍하다면,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거에요. 오늘 20명 넘게 성령의 세례를 받으셨는데 물 세례 받으면서 우는 분 딱 한 분 봤어요. 이분은 처음부터 성령세례를 받았을까? 우리 이럴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두 성령의 역사로 세례 받은 것도 맞다는 것이죠. 이미와 아직. 이해 되시죠? 예를 들면 주님을 만나서 기쁘지만, 세례 받고 기뻤어요. 목장가서 기뻤어요. 기뻤는데 암, 육신의 고통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때 성령충만해서 기쁘기 보다는 내가 왜 세례는 받아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고 내가 당신 때문에 암 걸리고, 너 때문에 암걸렸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깐 내가 주님을 믿었는데
로마서 7장 15절에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내가 믿었어도 악을 행하는 구나. 주님을 부인하는 구나. 원망하는 구나. 이 세상서 탈출한 줄 알았는데 고향 땅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거기가 저기가 거긴가. 가도 가도 저기가 거긴가. 가면 아닌 거에요. 끝없는 고난 가운데서 아직도 화가 나고 슬프고. 해결이 되었나 싶어도 밉고 아니고. 되었나 하면 아니고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거에요.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나와 상관이 없어서 그래요. 그래서 아직도 이 세상이 영원한 줄 아는 나와의 싸움이 계속되는 거에요.
그러니 대사도 바울도 로마서 7장 24절에서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것이 본 어게인 후에 고백이에요.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이 저절로 나옵니다. 때마다 고백을 하고 살아날 때마다 나는 죄로 인해 죽을 몸인데 주께서 다시 나를 살리셨다는 고백을 하니깐 그래서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할 때 맞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소명을 위해 바울 사도를 연단시켜가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연단시켜가는 줄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8장 34절에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셨는데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보기엔 윤리도덕의 죄는 다 드러나니깐 죄를 인정하죠. 그러나 자기 속에 들키지 않은 음란, 시기, 질투, 미움 등의 본질적인 죄의 문제는 인정하지 않아요. 인정하지 않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드러내십니까? 여러 시간의 긴 고통과 환경을 통해서 그 고통만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깐 고통 만큼 죄가 보이고 죄가 보이는 만큼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진정한 회개를 하기까지 3차의 흉년을 허락하셨어요. 결국은 본향을 사모하며 예수님을 낳는 사명으로 연결되었죠. 가난해도 찬송의 떡집으로 본향으로 돌아가는 그 길을 택했어요. 결국은 이 설교로 3000명이 돌아오는 데 초대교회도 힘들었잖아요. 기본적으로 핍박을 받고 사자밥이 되어가는 이 고통 속에서도 해석이 안 되고 있는데 예루살렘 교회에서 그 해석을 안 주고 있었는데. 이 때 성령이 임해서 성령의 설교가 꿰뚫고 들어온 거에요. 그때 기본적으로 고난이 많은 시절이었어요. 고난은 축복입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성령의 선물은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주어집니다. 처음부터 이 강력함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지만, 이 물세례 받고 나서 후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붙들 수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오늘 딱 세례를 받았으니깐 이해되기가 쉬우시죠? 내가 연약해도 물세례 받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요. 그런데 이제 전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해야 되고 하나님께서 그 성령의 내조하심을 처음 보여주신 어머어머한 사건에서 사명감당케 하기 위해 강력한 성령의 선물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지금 이제 교회를 나오면서 목자가 되셨는데도 성령의 선물이 왔는가 안 왔는가 물어보면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성령 다시 받으셔야 돼요. 다시 한 번 성령의 강한 역사로 성령의 선물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지난 번에 성령의 설교가 그렇게 어렵다는 목자님이 많아요. 남자들. 1,2,3부 은혜 받고 남자 목자반에 가면 그렇게 어렵다고 이해가 안 된다고. 그게 이제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이 저를 겸손케 하시는데 15년 전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상감마마가 되었어요. 지금 앉아 있는 게 기적이에요. 붙어만 있으면 수지 맞습니다.
저 또한 항암의 고통을 겪으면서 항암보다 아픈 것이 내 자신이었다는 것은 이게 모두가 교회와 연관되어 있는 사명 때문인 거에요.
고린도전서 11장 바울의 고통을 보겠어요.
(25 세 번 태장을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이 고난 당한 것, 이루다 말할 수 없는데.
28절에
(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바울 사도나 해당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제가 아프면서 어떤 고난보다 생각하는 게 교회 생각이더라구요. 교회 일에 대해서 제가 24시간 생각하니깐 그 이상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정말 평신도와는 다른 게 있어요. 너무 큰 사명이 태산처럼 눈 앞에 있는데 자격 없는 제가 끌고 가야 하니 모든 것이 회개가 되더라구요. 그냥 교회만 괜찮으면 저는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드니깐 대형의 교회가 아니라 무명의 교회에 대한 마음에 불이 붙으니깐 제가 부족한 게 날마다 보이고 사랑없음이 늘 보였어요. 정말 아무쪼록 아무 대가 없이 천국 가는 게 소원이에요. 항암도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가 되었던 거 같아요.
그러므로 최선을 다하여 투병을 했어요. 육신의 죽어지는 경험은 제게 필요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육체가 다시 거듭났어요. 살아났어요. 살아난 거 같죠? 찔림 받고 어찌할꼬? 회개하면서 이 세상의 소망을 조금은 내려놓는 항암 기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 세상을 잘 못 내려놓아요. 오늘 항암이 오면 쪼끔 내려놓고 내려놓고. 이 세상을 탈출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교회를 하는데 모두가 이 세상에 속했는데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니깐 날마다 회개를 해야 되잖아요. 회개한 만큼 한 사람이 또 돌아오고 하더라구요.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것으로 보면 형편없죠. 하나님 그렇게 하시진 않더라구요. 제가 이렇게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선물이 아닐까 해요. 성도 여러분이 제가 아픈 만큼 성령의 선물을 다 받아서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임하길 기도합니다. 숫자적인 부흥이 아니라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회개는 입으로 하는 회개인가요? 성령이 시키시는 회개인가요?
네 번째는 3000명 속에 들어가는 공동체의 축복을 허락해주십니다.(39-41)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런 성령의 모든 약속은 때와 장소를 초월해서 차별없이 항상 유효하다는 것이에요. 회개로의 부르심, 구원으로의 초청, 회개의 은혜, 구원의 범위는 우주적이며 먼 데 사람인 나까지 국적과 인정간의 차별이 없이 이루어진다는 거에요. 이러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만듭니다.
40절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패역한 세대는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에서만 나타나는 데 그 때도 엄청 패역했나봐요. 지금도 패역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심판 아래 놓인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여러 말로 확증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시행착오 많이 겪었기 때문에 여러 말로 확증할 수 있는 거에요. 이 패역한 세대하고 하나님 나라를 비교하면서 베드로가 간증을 했을 거에요. 자기는 유다와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자기는 유다보다 더 나쁜 예수님을 저주해서 세 번이나 부인했다. 그런데 나는 유다처럼 후회해서 자살하지 않고 나는 회개해서 지금 새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여러 말의 간증이에요. 내가 예수님의 수제자 아니었는가. 따라 다녀도 내 죄를 못 보니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내 눈으로 보았지만 나는 다시 물고기 잡으로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이 오셔서 나를 디베라 바닷가에서 나를 회복시켜 주시고 약속을 하시고 성령을 기다리라. 그래서 내가 주님을 저주하며 부인하니 치욕적인 죄를 다락방 교회에서 오픈을 하고 유다 대신 맛디아를 채워놓으니깐 말씀대로 성령이 임했다면서 여러 말로 권했을 거에요.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도 패역한 이 세대도 같이 좋아한 패역한 850명의 바알 공동체가 있겠죠? 끼리끼리 모이는. 스펙이 좋고 경제도 다. 그런 바알공동체가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이스라엘 공동체를 좋아하겠어요. 그런데 새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패역한 옛 세상을 탈출해야 되는 거에요. 불신결혼으로 불신자와 평생 멍에를 같이 메려고 하면 영원히 세상에서 탈출이 안 될 수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안타깝게 말리는 거지요. 우리들 교회가 이미 베드로처럼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는 성도들이 많기 때문에 감사한 거죠. 여러분들이 회개하여 성령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41절이에요.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 당시 그리스도의 기적과 죽으심을 목격한 자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들이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성령의 설교가 예수님으로 관한 말씀으로 바뀌었을 때 그들은 변했습니다. 오늘 41절에 그들을 보고 성령을 받은 자들이라 하지 않고 말씀을 받은 자들이라고 한 것에 주목하세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 받은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어요. 성령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죠. 성령 사역이 얼마나 말씀을 통하여 되는지 몰라요. 베드로 성령 설교부터 증명하잖아요.
고린도전서 2장 4절에.
(4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말씀과 성령과 능력은 한 단어로 보면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이 들리고 능력이 임합니다. 그 능력으로 전도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을 다 말씀을 받았습니다라고 얘기 합니다. 그들은 다 말씀으로 아픈 곳을 다 찔렸을 거에요. 바로 네가 예수님을 죽였다고. 아픈 말을 한 거에요. 우리는 예수님을 죽였다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아내와 내 남편이 그냥 죽겠다고 하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바로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하는 것. 내가 당신을 죽였다. 내가 내 아이들을 죽였다. 내가 내 부모를 죽였다. 상사를 죽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가 예수를 못 박았다고 하는 거에요. 알았습니까? 그런데 남들은 다 아파서 죽겠는데 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와 상관이 없어. 네가 잘 못해서 아픈거지. 예수믿는 사람들은 무조건 잘 못했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무조건 자기가 잘 못한 것이기에 누가 뭐라고하면 그게 다 내 죄라는 거에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요. 못 박았나이다. 예수를 너희가 못 박았다. 이 사람들이 다 찔러가지고 맞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도 맞다고 하시길 바라요. 어렵다고만 하시지 마시고. 이말로 수술 받고 살아나셨을 거에요.
그래서 베드로의 권면대로 예수그리스도로 세례를 받았어요. 글쎄 찔림 받고 회개한 사람들이 3천 명이라는 것이고 120명으로 시작된 초대 교회가 3천 명의 새신자 양육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 아니 어떻게 3천 명이 받겠어요. 인간의 논리로는. 4장 4절에는 또 5천 명이 세례를 받았대요. 그다음에는 너무나 숫자가 많아서 기록을 안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요, 숫자가 의미가 없는 것이 그때로부터 전세계로 복음이 퍼져나가고 퍼져나가고 나가던 것이 2천년 동안 여기까지 우리들 교회 먼 곳까지 폭발적인 부흥을 한 것이죠.? 숫자가 상관이 없는거에요. 그만큼 복음은 영원히 전해져야 할 어마어마한 것이죠. 세례 3천 명 받았다고 했는데 남자만 기록되니깐 아이, 여자까지 만 명도 넘었을 거에요.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연못부터 전부다 세례를 받았을거 같은데. 성령의 설교가 이렇게 파워풀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파워풀하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주셨으니깐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어요. 우리도 내가 죽어지면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지 않으면 내가 죽어지지 않으면 안 일어납니다. 그때까지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겁니다. 이들은 세례 받으러 온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러 온 사람도 아니고 미워서 아파서 못 살겠다고 기적을 보여 달라고 온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도 성령을 달라고 은사를 사모하며 온 사람들도 아니에요. 성령의 설교를 듣고 찔림 받고 어찌할꼬? 하며 마음을 찢는 3천명이 더했다구요. 회개하며 통회해 자복한 사람들이 3천명 모였다면 이런 공동체는 진정 성령의 선물 공동체가 아닐까요? 그당시 10만명이 예루살렘 인구였다면 오순절 절기를 다 지키러 왔을 텐데 그 중에 3천명이 모였다면 3%가 회심한 일이지만, 이 사람들은 소위 다 믿는 사람들 아니에요? 10만 명 중에 3천 명만 반응한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요. 우리들 교회도 똑같은 말씀을 듣지만 아직 3천 명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이 회개하는 3천 명을 보세요. 3천 명이 많은 것 같아도 아무리 숨어있어도 회개한 영혼을 다 주목해서 보십니다. 여기 안 와도 회개 안하는 영을 보세요.
제가 항암을 하던 중에 이렇게 교회를 생각하니깐 저는 설교를 하러 오고 싶었는데 하도 참으라고 그래서 참느라 죽을 뻔 했네요. 교회는 안 나가도 항암 중에 4월에는 부활절 예배를 인도했고 목회자컴퍼런스를 인도했어요. 5월에는 4일간 목회자 세미나를 20시간 넘게 인도했어요. 6월에는 창립 전도 대회를 섬겼는데 그때 6월 3일에 특이한 섬김이 있었죠. 매주일 베풀던 세례가 제가 교회를 안 나오고 있었는데도 너무 밀리는 거에요. 성도들도 너무 많이 와서 제가 없는 데도 10%가 부흥이 되는 반면 세례자도 자꾸 밀려서 주일에 한꺼번에 하기가 불가능하게 되는 거에요. 예루살렘 교회 3천 명은 아니지만은 할 수 없이 그날 토요일에 합동으로 세례를 베풀기로 했죠. 여러분이 성령의 선물을 받고 너무나 확증해서 권하니깐 세례받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3천 명은 아니지만은 6개월이 넘는 그때에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어요. 요즘 같이 패역한 세대에서 이건 너무 감사한 일 아닐까요?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통회하고 자복하는 3천 명 속에 들어 갈 것 같습니까? 아닙니까? 누구에게 여러 말로 확증하며 구원 받으라고 권하겠습니까?
# 또 목자님 나눔이에요. 어제 주보에 보니 사도행전 말씀이라 2016년 설교했던 말씀 다 찾아서 들었어요. 오순절 성령강림과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들으며 오늘 말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도 암이 걸려서 낫는 것보다 해석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말씀을 제대로 들어본 적 없이 우리들 교회에 왔어요. 창세기 끝날 때 우리들 교회에 왔는데 요셉얘기를 들으며 형제들과 화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들 교회 와서 생각지도 못한 신용회복도 띵크 양육을 하면서 바로 적용한 어느덧 8년의 세월이 다하여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따라오다보니 우리 가족 모두가 내가 절대로 3개월이상 교회를 못 다닐 거라 했는데 이제까지 다닌다는 것을 보니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은 이처럼 물세례가 성령 세례로 바뀌어서 성령의 선물을 받으신 것 같으세요. 사도행전 설교를 다 찾아서 들으셨다니 이게 선물 받은 거구요. 신용회복 적용을 해서 8년간 갚아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이거 성령의 선물 맞구요. 3개월 다닐 거 지금 8년 넘게 다니고 영육의 회복을 다 이루어주신 3천 명 공동체 속에 들어오신 것 맞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에요. 끝없이 회개하며 자신의 부족을 보고가는 성령의 선물을 받으시면 이렇게 목자를 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면서 여러말로 확증하고 권하시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러면 되는데 설교 한 번을 안 듣고 와서 어렵다고 하시고. 내가 한다고 하면 들어야지. 어렵다는 사람은 바로가서 회개하시길 바래요.
말씀 맺어요. 성령의 선물은 찔림 받고 어찌할꼬?입니다. 회개하여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 받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 통회, 자복하는 3천 명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추석을 맞아 고향에 가시는 분들을 위하여 고향 땅이 하늘의 본향이잖아요. 이 땅에서 아무리 이루고자 해도 푸른 하늘 저 끝닿은 거기가 거긴가 하며 천국에 가도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릴지 어떤 뻐꾹새가 울지 모르겠는데, 나 이제 돌아갑니다. 아버지 눈물 흘리는 그곳, 본향으로. 오늘은 동심으로 돌아가서 고향 땅 부르고 아버지 품으로 같이 불러보겠습니다.
말씀후 찬양
1. 고향 땅이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 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2. 아버지 품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기다리시는 본향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안아주시는 본향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눈물 흘리신 그 품으로
나 이제 돌아가리라 아버지 변치 않으신 그 품으로
나의 어리석은 지난 날을 이제 가슴 치며 회개하오니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나의 방황했던 지난 날을 이제 눈물로써 회개하오니
나의 상한 마음 만져 주시고 그 사랑으로 감싸 주소서
기도제목
오늘 이 성령의 설교를 듣고 찔림 받게 해달라고 어찌할꼬 하며 형제를 무시하지 않고 목장에서도 잘 묻게 해달라고. 물 세례 안 받으신 분들 물 세례 받고. 더 나아가서 성령 세례 다 받게 회개하며 죄 사함 받는 성령의 선물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통회, 자복하는 3천 명 공동체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베드로의 성령의 설교를 듣고 참으로 찔림 받고 어찌할꼬? 하며 이렇게 탄식하며 통회 자복하며 회개하여 죄사함 받았다고 성령의 선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오늘 베드로의 성령의 설교를 듣고 어찌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겠는지. 오늘 예수님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이 잘 사고 잘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네가 죽였다고. 바로 네가 죽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반응을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는 목자입니다. 저는 부목자입니다. 나는 아버지입니다. 나는 엄마입니다. 나는 자녀입니다. 나 때문에 다들 힘들다고 해요. 주님 내가 그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내가 아내를, 남편을, 목원들을 못 박았습니다. 주님 나와는 상관없는 줄 알고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저들이 아파서 그런 것인데. 제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주님. 날마다 말씀을 듣고 혼자 봉사하고 혼자 헌신을 하는 유대인 이스라엘에게 너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나 때문에 비명을 지르는 숱한 환경 때문에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잖아요.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상관없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용서해주시고. 맞아요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어요. 내가 목자를 못 박고 목원을 못 박고 초원을 못 박고 아내를 못 박고 남편을 못 박고 자식을 못 박았어요. 자신의 피고름을 보면서 죄고름을 보면서 맞다고 맞다고하는 저희들을 볼 때 바로 이것이 성령의 선물이 되어서 회개해서 아버지 하나님 3천 명이 달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선물 받지 못하고 3천 명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 모든 식구들.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이제 죽어짐의 경험을 하고 이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고백하는 저희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제 명절에 가서 식구들을 만날 때 이런 마음으로 만나서 지금은 때가 아니라 반응이 없다고 할지라도 내가 죽은 뒤라도 반응이 올 것을 믿고. 맞습니다. 말하는 것이 다 맞습니다. 고백하는 저희들이 될 수 있도록. 이번 명절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9. 9. 8 목장예배>
하나님의 선물
일시 19. 9. 8 4-6시
장소 3층 테라스
참석 한수진 이지민 조예진 이은영
나눔 오늘은 다가올 예진이 생일 맞이 생일 파티? 잔치를 열었습니다. 사정이 있어 예배는 다른 곳에서 드렸지만 언니들 보러 목장에 나와주었습니다. 오늘의 선물 예진이.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가지고 나눔을 했습니다.
Q 무엇에 찔림을 받고 있나?
- 결혼예비학교를 통해 왜 결혼을 하고 싶은 지에 대해서 깊은 찔림을 받았고, 남자친구의 양육에 간절함이 생겼다. 결혼 예비학교에 인도하심이 우연이 아닌 것을 깨달았다.
- 최근 교제에 있어서 상실감이 있었는데 나의 상대방과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타지를 보게 되었다.
- 요즘 나의 언어에 찔림이 있다. 말을 예쁘게 할 수 있도록.
Q 어찌할까요? 환경이 힘들어서 묻는지? 말씀에 찔려서 묻는지?
- 예전에는 환경, 지금은 말씀에 찔려서 많이 묻는 것 같다.

##나눔이 한창일 때, 오늘의 주인공 우리 예진이가 우리에게 와주었습니다. 먼 길오느라 너무 수고했오~
언니가 제일 신난거 같다ㅎㅎ 예진아 생일 축하해, 우리 막내. 예진이
오늘 세례 간증과 설교로 2017년 6월 3일 날 합동 세례 받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세례를 받았었다. 그때는 대학원에서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어 교회 주변에서 살았을 때이다. 엄마께서 생일이기도해서 학교 근처까지 와주셨고 함께 점심을 먹었다. 먹고 난 후 조심스레 이따가 교회에서 세례식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고 했다. 엄마는 단호히 싫다고 하시며 뒤돌아 집으로 돌아가셨다. 쓸쓸했지만 혼자 세례식에 갔다. 부모님과 함께 세례식에 온 세례 간증자가 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목자언니와 부목자 언니가 토요일인데 와주어 축하해줬다. 아직도 가끔 생각나면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다. 나의 수치스런 사건들을 처음 오픈하고 17년 초에 세례교육을 받았던 것인데 8주 교육이 끝나고 기약 없이 기다리다가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뒤 세례식이 내 생일에 이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짜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생일 선물 같았다. 그날 강단에 올라가기 전에는 눈물이 많이 났는데 정작 강단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냥 좋고 기뻤던 것 같다.
그런데 물세례를 받고 한 달 뒤 7월 9일 버가모 교회에 주신 말씀 내가 그들과 싸우리라(요한계시록2:12-17) .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성령의 선물을 받았던 것 같다. 신승윤 목사님과 목장에 수치스러운 사건은 오픈했지만 나의 피고름 같은 죄를 보지 못했기에 그날 주신 말씀은 나의 피고름 같은 죄들을 보게 하시고 좌우에 날 선 검으로 수술해주시는 것 같은 은혜를 받았다. 그 후로 목장, 목사님 외에 지체들에게 말씀을 듣고 조금씩 조금씩 나눔을 하게 된 것 같다. 오픈과 치유로 내 안의 원수를 잘 직면하게 되어 지금은 이렇게 교회에 잘 붙어가게 되었고 작년 8월에는 9년 만에 본가인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1년도 안 된 채 부모님과한 방에살면서 많은 갈등과 또 혼자 믿음 생활하니 외로움으로 다시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으로 나도 힘들고 부모님도 힘듦의 최고치를달릴 때 하나님 강력한 아버지 암사건이 찾아 왔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로 나는 그 가운데 나의 욕심과 사랑 없음을 보게 되었고 나가고 싶은 마음은 버리고 죄인의 자리에서 소명을 품으니 가족의 보금자리를 인도해주시고 아버지 건강을 기적같이 회복시켜주셔서 평안을 얻었다. 지금은 또다시 소망 없던 구직활동을 재개하고 있는데 어떠한 사건이 와도 실망과 좌절이 있더라도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인도하심을 잘 기다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들 기도제목
지민 새로운 일 찾아보고 있는데 부지런히 일 알아볼 수 있도록(복지관/하모니카)
예진 일대일 양육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오빠 전도할 수 있도록, 엄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수진 한 주 동안 가족들과의 시간 잘 보낼 수 있도록
은영 일자리를 구했는데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