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8
사도행전 2:36-41 성령의 선물
1. 찔림 받아야 합니다. (36-37절)
무슨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렸나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사건은 미리 약속되어있던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삶의 본이 되십니다. 잘 사셨고 우리를 위하여 잘 죽으시는 모델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심으로 부활하는 예수를 높이셨다고 베드로가 성령의 설교를 전합니다. 그런데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이 예수를 바로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결론 내립니다. 문자 그대로 인간의 생각(빌라도의 판결, 제사장, 총독, 로마병사)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는 너희가 죽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다가 내가 예수를 못 박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구속사입니다. 구속사가 들려야 찔림을 받습니다.
*마음에 찔려(헬라어 표현: 청중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깊이 있게 반응했다)
무식하고 겁 많은 베드로가 성령의 붙잡힌바 되는 성령의 선물을 받아 놀라운 전도자로 백성들의 마음에 찔림을 주는 설교를 합니다. 성령의 말씀으로 찔림 받는 것이 가장 큰 성령의 선물입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속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죄가 다 드러나기에 찔립니다. 내 속의 미움, 시기, 질투, 음란을 가지고 아무 일 없이 교양으로 변장해도 마음과 생각과 뜻을 관찰하시기에 결국 다 드러나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 찔림 받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말씀이 들리기 전에는 인간은 100% 죄인이기에 어두운 세상에서 잘 살고 익숙해질수록 넘어지지 않아서 자신의 수치와 더러운 것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이라도 넘어져 한 줄기 말씀의 빛이 나를 찔러 쪼개면 벌거벗은 것 같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을 자발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분명 아프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우리의 죄 때문에 기꺼이 애통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때마다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이것이 권능과 기사이고 표적인 것입니다. 내 현재 이유를 깨닫는 권능 그것이 기사가 되어 놀라서 표적인 말씀의 간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찔림 받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연출자 로버트요한슨은 자기에게 가장 큰 칭찬은 관객의 눈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작품에 찔렸겠죠? 감동에 반응 한 것입니다. 저는 음악회, 전시회를 수없이 갔지만 눈물 흘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배 때마다 너무 부족하니 누구보다 먼저 찔림 받기에 눈물을 흘립니다. 한결같이 애통하게 하시니 이것이 정말 신비인 것 같습니다. 강당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은 예수님 앞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 지나요가 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Q.성령의 말씀에 찔림을 받습니까? 사람의 지나가는 말에 찔림을 받고 괴로워합니까?
2. 어찌할꼬 하며 묻습니다. (37절)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 사단의 권자가 있는 버가모교회를 날선 검으로 수술 하시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잘라내고자 할 때 나의 더러운 사단의 피고름을 봐야 어찌할꼬가 저절로 나오겠죠.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선물이 오셔야 어찌할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해보세요! '너는 네 속의 더러움은 보지 못하고, 헌신과 봉사의 영광을 네가 다 받고, 수치와 조롱은 예수님께 다 돌리지 않니? 그리고 날마다 날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라고 입으로만 부르짖고 있지 않니?' 이런 주님의 음성을 목장, 설교, 간증을 통해서 들으면 '저거 나한테 하는 소리인데'라며 자기 속의 피고름을 보고 부끄러워 어찌할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지 않으면 잘못이 보이지 않습니다. 수치도 모릅니다. 열한 살 나이에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미즈노겐조 시인은 전신마비는 물론 언어능력도 다 상실했지만 나사렛 예수여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나이다라고 시를 썼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 내가 예수를 죽였다라고 고백하는 신비가 임합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면 불신자와 신자 사이에는 신자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고 신자 사이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이 내 죄가 보이는 것만큼 영이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직분으로 생각하면 저는 담임목사이기에 제일 잘못이 많은 사람이어야 맞는데 그러지 못하기에 제가 어찌할꼬가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그게 왜 내 잘못이야? 한다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한 때 갈릴리 사람이라서 무시하고 어부들이라 상대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오늘 형제여 어찌할꼬라고 묻습니다. 요한일서 1:1, 무시하던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교회를 귀히 여기게 됩니다.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비판하는 것은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돈, 명예, 건강이 없어져야 성령의 설교가 들리고 어찌할꼬 합니다. 그동안 경건을 가지고 교양, 체면을 가장하여 교회를 다녔는데, 부도로 망하고 아이 속 썩이고 아프고 남편 아내 바람들통 나고 숨을 곳도 갈 곳도 없고 숨길 교양도 없게 되니 형제들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직면해서 단지 돈이 없다는 것보다 그 돈이 없어서 내 속의 추하고 부끄러운 실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육이 무너진 것만큼 영이 세워집니다. 찔림 받고 어찌할꼬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어찌할꼬 하니 천사가 핀 숯을 입에 대면서 네 죄가 사해졌다라며 소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찔림도 없고 어찌할꼬도 없기 때문에 공동체에 형식적으로 나와 앉아있을 뿐 애통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기복적이기에 믿음 없이도 나와 앉을 수 있습니다. 나와 앉아 있는 것도 장차를 생각하면 택자라 생각합니다. 찔림도 애통도 어찌할꼬도 없으니 도리어 성령 받은 사람을 술 취했다고 조롱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건에서 내가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성령의 선물을 받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Q.여러분은 돈이 없어서 어찌할꼬 합니까? 이 성령의 찔림을 받고 어찌할꼬 합니까?
3. 회개입니다. (38절)
베드로는 어찌할꼬 하는 너희에게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하여 각각 세례 받고 죄 사함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고 합니다. 순서로 말하면 죄 사함을 받았기에 세례 받는 것이 맞지 않나요? 또 죄 사함을 받아야만 성령의 선물을 준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본문말씀 그리하면이 원어에는 그리고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가 맞습니다. 물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외적인 고백으로 성령의 역사가 분명 있습니다. 회개와 세례와 죄 사함의 성령의 선물이 동시에 올수도 있고 따로 올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의 경험과 믿음의 분량이 각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 있고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구원이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 믿고 세례 받았으니 사명감당 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내게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구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이 감당 못하는 구원을 보이기 위해 나를 부르셨습니다. 세상에 몸담고 있는 내가 해야 할 일은 끝없이 회개하며 세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야합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을 좋아하는데 세상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불러내겠습니까? 그러니까 베드로는 성령의 설교를 유대인 이스라엘 형제에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유대인들 중에 예수 믿고 구원받아서 그 당시 죽음을 불사하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 세계로 복음이 퍼져나가야 되기 때문에 사명감당하라고 성령의 선물을 증표로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찔림 받아서 어찌할꼬 하는 회개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의 성령의 설교는 너희가 회개하면 이 세상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설교입니다. 무엇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는지 알라는 설교입니다. 유대인들이 원하던 메시아를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시지 않는다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에 대한 고발의 설교를 한 것입니다. 바로 이제 너희 가운데 회개가 임했다면 더욱 더 진정한 회개를 하라고 처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본능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에 날마다 세상을 뛰어넘어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 방식, 내 생각 다 내려놓고 죽으라는 것이 세례입니다. 상관없어 보이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네가 못 박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는 것이 성령의 선물로 주어진 본질적인 회개입니다. 어떤 목자님이 우리들교회 와서 술도 끊었다 마셨다 하면서 모든 것이 반복되고 있는데 내가 무엇이 변했나 생각해보니 삶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 다니기 전에는 타인의 경제적 풍요에 불편한 마음과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중요하지도 부럽지 않다고 합니다. 외모컴플레스에 대한 불편함도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나눔이 굉장한 것은 성령의 선물로 가치관이 변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부족한 것을 보면서 같이 출애굽해서 구원의 세계로 가자고 이분이 깨달았지만 술은 끊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분의 진정한 성령의 선물은 죽는 경험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능력 없는 것은 자기가 죽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세례 받고 나서도 안 되는 이유는 몸이 기억하는 세상의 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못 끊어내는 내 자신이 너무 안타깝고 아무도 변하지 않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계속적인 아픔이 있을 때 성령은 자기를 부인하는 피고름의 죄를 보게 하십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은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죄를 봅니다. 저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어떤 경우에도 내 죄를 보게 하셨습니다. 바로 내가 주님을 못 박은 것입니다. 문자적으로 암에 걸려도 그 아픔보다 그 아픔으로 자기를 직면하는 내적인 죄를 보면서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공중권세자의 철저한 싸움으로 진정 죽는 경험을 할 때 죄 사함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 효과적인 도움이며 성령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이유는 깨끗해져서 새로운 삶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은사가 아닌 성령자체입니다. 성령의 선물이 복수로 되어있으면 은사인데 여기는 단수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결국 거룩입니다. 사도행전 3:19, 사도행전 26:18,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스무 명이 넘게 물세례를 받으셨는데 한 분 우셨습니다. 이미와 아직이 있는데 모두 성령의 역사로 세례 받았습니다. 로마서 7:15, 내가 주님을 믿었어도 악을 행하고 주님을 부인하고 원망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로마서 7:24, 나는 죄로 인해 죽을 몸인데 주께서 죽으심으로 살리셨다는 다시 태어난 후의 고백으로 하나님이 소명을 위해 우리도 연단시켜가는 줄 아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8:34,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윤리도덕의 죄는 드러나기에 인정할 수 있지만 자기 속의 들키지 않는 음란, 시기, 질투, 미움의 본질적인 죄의 문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긴 시간의 고통과 환경을 통해서 내가 어찌 할 수가 없는 고통만큼 죄를 보이게 하시고 보이는 죄 만큼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진정한 회개를 하기까지 3차 흉년을 허락하십니다. 그렇게 본향을 사모하며 예수님을 낳는 사명으로 연결됩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성령의 선물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 주어집니다. 처음부터 이런 강력함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는데 물세례 받고 난 후에 성령께서 강력하게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향해서 복음 전해야하고 하나님께서 그런 성령의 내조하심을 처음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사건에서 사명 감당하는 강력한 성령의 선물을 부어주시는 줄 믿습니다. 육신의 죽어지는 경험은 저에게 필요했습니다. 찔림 받고 어찌할꼬 회개 하면서 이세상의 소망을 조금은 내려놓게 되는 항암기간이었어요. 이 세상의 것을 한꺼번에 못 내려놓아요. 조금씩 내려놓고 이 세상을 탈출시켜야하는데 모두 이 세상에 속해있기에 뛰어넘지 못하니 날마다 회개 했습니다. 이렇게 회개를 하게 되는 것이 성령의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Q.여러분의 회개는 입으로 하는 회개인가요? 성령이 시키시는 회개인가요?
4. 3000명 속에 들어가는 공동체의 축복. (39-41절)
(39절) 모든 약속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차별 없이 항상 유효합니다. 회개로의 부르심, 구원으로의 초청, 회개의 은혜, 구원의 범위는 우주적이며 국적 인종간의 차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르심 받은 공동체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만듭니다.
(40절) 패역한 세대는 심판 아래 놓인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여러 나라 말로 확증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패역한 세대와 하나님나라를 비교하면서 간증했을 것입니다. 자기는 유다보다 더 나쁘고 예수님을 저주해서 세 번 부인했지만, 유다처럼 후회해서 자살하지 않고 회개해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 말로 간증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부활도 내 눈으로 보았지만 물고기 잡으러 다시 바다로 나갔다가 약속하신 말씀대로 주님이 오셔서 회복시켜주시고 나의 치욕적인 죄를 고백하여 유다 대신 마티아를 채워 말씀대로 성령이 임하였다고 여러 말로 권했을 것 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패역한 세대도 같이 좋아하는 패역한 850명 바알공동체가 있겠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이스라엘 공동체를 좋아하겠어요? 새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패역한 옛 세상을 탈출해야합니다. 불신결혼으로 불신자와 평생 멍에를 함께 매면 영원히 세상에서 탈출할 수 없기에 안타깝게 말리는 것입니다.
(41절) 그 당시 그리스도의 기적과 죽으심을 목격한 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설교가 예수님에 관한 말씀으로 선포되었을 때 그들은 변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성령사역은 말씀으로 연결됩니다. 베드로 성령설교부터 증명하잖아요. 고린도전서 2:4, 말씀과 성령과 능력은 한 단어로 보면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말씀이 들리고 능력이 임합니다. 그 능력으로 전도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다 말씀을 받았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네가 예수님을 죽였다라고 가장 아픈 곳을 찔렸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내가 못 박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당신을 죽였다 내가 우리 아이, 부모, 상사를 죽였다는 고백으로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무조건 잘못했고 믿음이 좋은 사람은 무조건 잘못했기에 누가 뭐라고 하면 항상 내 죄 때문인 것 입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베드로의 권면대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 받고 찔림 받아 회개하는 사람들이 3천명입니다. 120명으로 시작된 초대교회가 3천명의 새 신자 양육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인간의 논리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4장 4절에는 5천명, 그 다음은 숫자가 너무 커서 기록되지 않습니다.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 2천년 동안 먼 곳 우리들교회까지 부흥한 것입니다. 숫자는 상관이 없어요. 복음은 영원히 전해져야 할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주셨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지 않으면 내가 죽어져도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성령의 설교를 듣고 찔림 받고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며 마음을 찢는 3천명이 더했습니다. 회개하며 통회에 자복한 사람이 3천명 모였다면 이런 공동체는 진정 성령의 공동체 아닐까요? 하나님은 회개하는 3천명의 영혼을 보십니다.
Q.여러분은 통회하고 자복하는 3천명 속에 들어갈 것 같습니까? 아닙니까? 누구에게 여러 말로 확증하며 구원받으라고 권하겠습니까?
[기도제목]
은우
전시가 한 달 앞인데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활용 못한 것 회개하며 오늘 당장 시행 하도록
손해 보는 거 적용하며 출장 취소하도록
회사일들 계약 잘 처리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말 행동 성령의 인도받아 절제하고 사랑으로 덮고 인내하여 사랑의 열매 얻도록
가족들이 말씀으로 성령인도 받도록
나라와 가족 회사 목장 위해 매일저녁 중보 하도록
민주
가족건강
계획하는 것들 소명 받고 인도 받고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말씀에 약속 사명 붙잡고 갈 수 있도록
예선
구원의 말이 마음과 입에 심겨져서 관계 안에서 살리는 말 하도록
말과 행동들 분별하여 말씀이 흩어지지 않고 마음에 심겨 삶으로 전도로 나타나도록
은실
나의 죄 보고 갈 수 있도록
큐티생활
은혜
마음 잘 살피며 놀라지 않고 말씀에 구덩이가 잘 채워져 부활 하도록
오고 가는 길 지켜 주시고 보호 받도록
큐티 구체적으로 적용하며 나의 모습 보도록
회개 할 것 잘 찾고 회복하고 기쁨 누리도록
한별
얼마 남지 않은 결혼 함께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말씀 안에서 담대함 가질 수 있도록
현경
성령 선물 받아 큐티를 생활 하도록
명절의 주인이 주님이신 것 깨닫고 있어야 할 자리 잘 지키며 할 수 없을 때 피할 수 있도록
예비학교 잘 참석하고 육신의 왕과 남편 아니라 그 보다 높이 계신 내 삶의 주인이신 주님 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