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41-53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악한 왕>
열왕기서를 맺으며 남유다의 4대왕 여호사밧을 주로 다룬다. 열왕기는 반성문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죄 많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은 6장을 다뤘는데 오늘 여호사밧은 10절만 다룬다. 하지만 역대기는 하나님 나라의 족보를 다뤘기 때문에 여호사밧의 내용이 17장부터 4장이나 나온다. 그리고 반성문인 열왕기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 8대왕 아하시야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있다. 두 왕을 통해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악한 왕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보겠다.
1. 여호와 앞에서 선한 왕 여호사밧
1) 믿음의 부모가 중요하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신다 라는 뜻처럼 여호사밧은 공적과 과오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히스기야 요시야 왕과 더불어 3대 현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왜 현군인가? 역대하에도 이 병행본문이 나오는데 평강을 누린 것은 여호사밧의 정치 군사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라는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되고 여호사밧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잊지 않았는가? 남유다 왕이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 마치 공식처럼 어머니 이름이 등장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상관없이 폭력과 살인을 통해서 왕이 계승이 이어지고 있는 북이스라엘 왕은 공식처럼 어머니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믿음은 가족이 특히 부모가, 또 어머니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다. 여호사밧이 똑같이 왕의 자녀로 환경이 똑같은데 왜 여호사밧은 믿음이 좋을까? 오늘 말씀은 외가 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수바의 아버지 이름 실히는 왜 나왔을 까? 아버지 실히는 창 던지는 자 라는 뜻이다. 여호사밧의 외할아버지는 당시 무인 가문 출신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데 그의 딸 아수바는 버려진, 파멸 이런 뜻이다. 이름가지고 생각하면 아버지의 나라사랑 때문에 딸이 버려진 것 같은 마음으로 파멸당한 것 같은 일이 있지 않았을 까?
혹시 아수바가 살 소망이 끊어져서 자신에 대해 절망했기에 하나님만 의지한 것이 아닌가? 믿음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세벨 같은 스카이 캐슬 엄마가 집안을 멸망으로 이끈다. 그런데 아수바처럼 버려진 것 같지만 여호와 앞에 오게 되어 성경에 이름이 나오는 여호사밧의 어머니가 되었다. 외할아버지 까지 성경에 언급된 것을 봐서 구속사적으로 믿음으로 해석을 잘한 명가를 이룬 가문이 되었다.
적용: 여호와 앞에 서기 위해 나는 어떤 부모인가? 스카이캐슬의 이세벨? 버려지고 파멸당한 것 같은 절망을 경험한 아수바 인가?
2)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것과 = 정직을 행하는 것 이다. 여기서 정직히 는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는 정관사가 붙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구체적인 규례를 따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인생길을 똑바로 가는 것이다. 따라서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 곁에 항상 머물러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인생은 정직이라는 것을 알 수 가 없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기 위해서라면 천국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공동체에 속해야 한다. 여호와 앞에서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속한 예배 공동체 앞에서 또 예수 믿는 식구들 앞에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한다. 분쟁이 없는 공동체라고 또 집이라고 좋은 공동체가 아니다. 같은 예수 공동체 안에 사는 것 자체가 정직히 행할 수 있는 비결이다. 혼자서 정직하다는 것은 위험하다. 의로움이 되서 남을 찌른다. 결국 정직하다는 것은 내가 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정직을 깨닫는다.
이런 정직함으로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여 돌이키지 않았다고 한다. 아사의 조부 르호보암과 부친 아비얌은 산당을 세우고 남색하는 자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아합 못지않은 악을 행하였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왕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고 하나님을 얼마큼 의지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아사는 모두 우상을 헐어버리고 우상숭배자인 모친을 폐했다.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개혁의 길로 갔다. 역대하17:6에도 여호사밧이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하고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백성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결국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나라에 두려움을 주셔서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셨다.
적용: 우리는 공동체에서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는가? 공동체를 무시하며 혼자 정직한가?
3) 폐하지 못하는 산당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사밧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도 함께 기록했다. 솔로몬 시대에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성전 짓기 전에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지은 후에는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리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천번제를 드려본 후에 너무 이스라엘 나라가 부귀영화를 누린 걸 보게 되었다. 결국 산당을 포기 못한다. 그러다보니 고질적이고 종교적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아사를 비롯해서 요담까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들도 산당을 폐하지 못했다. 우리가 아무리 믿어도 우리는 다윗보다 솔로몬이 더 좋다. 솔로몬 은행 등등 솔로몬 이름만 써도 돈이 들어올 것 같다. 유다보다는 요셉을 좋아한다. 결국 눈에 보이는 산당을 제거하는 것은 본질적인 종교개혁이 아니다.
말씀에서는 아버지 아사의 길로 개혁하는 것을 돌이키지 않았다고 한다. 산당을 폐하지 않았다에서 돌이키지 않았다와 폐하지 않았다가 같은 동사이다. 내가 여호와께로부터 떠나지 않고 아버지가 한 개혁을 돌이키지 않으려 애를 써도 그 돌이키지 않은 것만큼 산당예배를 폐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말씀으로 나를 개혁하고자 하지만 내가 폐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날마다 회사를 가도 선할게 하나도 없다. 교회에서 은혜를 받는데 회사에서 아무소리도 못한다. 결국 내가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우리 택자이기에 내가 적용을 못해도 교회에 온다. 그리고 어느 날 적용할 날이 온다.
적용: 내가 나를 개혁하려고 하지만 나를 폐하지 못하는 그만큼의 산당은 무엇인가?관행이라고 포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4)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화평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으로 인해 잠시 전쟁이 끝나고 평화적 관계가 수립되었으니 정치를 너무 잘한 것이다. 여호사밧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백만대군을 길러내고 이 때 부귀영화과 극에 다다르니 여호사밧도 예외가 없다. 결국 아합 가문과 군사적, 경제적 이유로 결혼동맹을 맺는다. 이 정략결혼은 불필요한 아람과의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가장 치명적인 실수다. 이 결혼으로 인해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비롯한 모든 불법이 흘러왔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모든 불법을 가져올 수 있고, 한사람의 지도자로 인해 예수를 믿게 할 수 있다.
아합의 딸 아달랴 한사람이 유다로 시집가서 불법이 들어오게 된다. 더 나아가서 아달랴는 유다의 아들과 손자까지 남자는 다 죽이고 자신이 여왕이 되었다. 엄청난 살육으로 남유다의 다윗왕조가 모두 끊어져 예수님이 못 올 뻔한 가장 큰 위기를 초래한 그 짓을 여호사밧이 했다. 결국 여호사밧은 아합 보다도 훨씬 더한 만고의 죄인이다.
여호사밧의 치적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족보에 올라갔다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에 열왕기에(반성문)는 언급 안한다. 여호사밧은 신앙부흥 운동 및 말씀 운동을 일으켰고, 백만 대군 만들기, 전국 재판제도 조직하고 정비하는 등 아주 성군이다. 그런데 여기 특히 그가 부린 권세라는 얘기가 나온다 (45절). 이 권세로 전쟁을 했다. 구약에서 총 63회 나오는 이 단어는 하나님의 권세를 얘기할 때도 사용된 단어이다. 여호사밧이 그만큼 강력한 권세를 행사했다는 것이다. 이 절대 권력은 오히려 왕으로 하여금 여호와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백성들을 탄압하는 부정적인 측면을 다분히 지니고 있다. 결국 미가야 선지자 경고를 무시하고 아합과 동맹해서 아람과 전쟁을 하다가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회개하고 나서 또 절대 권력으로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함으로 모압과 암몬을 징벌했다. 그래서 똑같은 전쟁 같지만 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가장 선하게 쓰면 최고가 된다. 어떤 전쟁도 하나님께서 권력을 무엇을 주실 때에는 전쟁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다.
적용: 일시적인 평화를 위해 치명적으로 실수한 것은 무엇인가? 혼인? 동업인가? 안 가야할 모임인가?
5) 마지막 징계로 유턴하는 사람이다.
보통은 45절에서 최종적 평가가 끝났지 않았는가? (여호사밧의 모든 사적은 역대지략에 기록되어있다 (22:45) 그런데 여기는 추신이 있다. 46절부터 선한 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22:46). 이것이 또 영광이 달할 때 못하는 게 남색 하는 자들을 건드리는 것이다. 인생이 끝나는 것 같은데 이것을 개혁했다는 것이다. 남색 하는 자는 카데쉬라는 거룩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우상숭배자들 입장에서는 거룩한 제사를 주관하기 때문이었다. 우상숭배자들에게 음란한 행위가 거룩한 종교의식이었다. 개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여호사밧은 쫓아냈다.
에돔은 야곱의 형 에서의 별명이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약속의 자손과 상관없는 그 곳에서 여호사밧은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함께 배를 만들었다. 아합이 죽었는데 계속 교제를 하고 있다. 엘리에셀이 북쪽에 악을 행하는 아하시야와 교제하기 때문에 배를 파선시키겠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경고 했는데 사람은 파선하기 전에 돌이키지 않는다. 망하기 전에는 깨닫지를 못한다. 한번 맺은 관계를 끊기 어렵다. 아하시야가 아합의 아들이고 아합의 딸은 여호사밧의 며느리기 때문에 (손자들도 피가 다 섞였다) 그가 개혁을 하면서 어떻게 교제를 끊을 수 있는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을 너무 사랑하셔서 두 나라가 열심히 만든 배를 파산하셨다. 이 때 깨닫고 아하시야가 다시 배를 만들자 했을 때 여호사밧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악한 아하시야와 관계를 끊는다. 바로 이점이 선한 왕으로 남게 된 최고의 비결이다.
우리는 돌이키기 정말 어렵다. 이 돌이키는 것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보다 어렵다. 특히 택자가 아니면 돌이키기 어렵다. 여호사밧은 택자이고 선한 왕으로 결론을 맺었다. 여호사밧은 나라를 말아먹는 큰 실수를 했어도 돌이키고 회개했기에 선한 왕으로 남게 된다.
적용: 이제는 허락하지 않아야 할 교제와 사건은 무엇인가? 그로인해 하나님이 애써 막아 주신일은 무엇인가?
2. 여호와 앞에서 악한 왕 아하시야
아하시야와 관련해서 3절로 끝난다. 아하시야의 죄는 바알을 숭배하고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했다는 것이다. 아하시야는 조상의 말도 잘 듣고, 어머니, 아버지 말을 잘 듣는 조상신을 너무 잘 섬기는 착한 어린이다. 평탄하기가 짝이 없다. 아하시야가 자발적으로 바알에게 엎드려 절함으로 바알(돈, 소유함 뜻인데)을 주인이나 왕처럼 떠받들며 살았다. 아무 죄책감도 않고 자발적으로 돈신을 섬긴다. 여호와의 진노를 사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이런 아하시야도 공동체가 있다. 예수 공동체가 아닌 바알 공동체이다. 조상은 여로보함, 어머니는 이세벨, 누이는 아달랴, 아버지는 아합. 최고의 로얄 패밀리 이지만 정직을 가르쳐 주는 공동체는 아니다. 천국이 가시적으로 보여 지는 공동체는 예수 공동체인데 교회를 나간다고 모두 예수 공동체는 아니다. 너무나 바알 공동체도 많다
결국 아달랴의 모든 3~4대의 이름들이 마태복음의 계보에서 빠졌다. 로얄 패밀리일수록 돈 신 만물 신 등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 보다 위에 놓고 섬기기에 고질적으로 우상숭배에서 끊어지기 어렵다.
53절에 '그의 아버지의 온갖 행위 같이 하였더라' 아합은 억울하지 않았겠는가? 모두 이세벨이 충동질 한 것인데. 책임은 아버지에게 묻는다. 여자의 머리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는 속인자보다 속은 자가 더 나쁘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 때에도 책임을 아담에게 물으신다. 남자는 얼마나 책임을 지는 가장으로써 믿음의 책임을 지는 그 역할을 해야 되는지 모른다. 성도는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가느냐에 따라 삶의 마지막 날 여호와 앞에서 평가가 달라진다. 그런데 어떻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을 계승할 수 있었는가? 북이스라엘은 모반 살인으로 인해 왕조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 오므리 왕조가 아하시야 까지 내려간다. 아합이 한번 겸비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하나님은 조금 이라도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아합이 잘나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를 위해서 약속하신 바를 이루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아하시야가 왕이 되게 하셨으나 2년 만에 죽는다.
적용: 우리는 창조적인 예수님의 사람인데 바알신을 섬기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도제목>
이소정
- 진로의 인도하심
- 치과치료 잘 받을 수 있도록
이소라
- 신앙에 대한 사모함이 있기를
신정화
- 가족구원
-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바꿀 수 있도록
박재인
-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 수 있도록
- 크고 작은 사건에 쉽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먼저 기억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