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지자 열상22:13-28
참석: 오지혜, 김윤미, 위한나, 정정환 목사님과 이애숙목장(경희,혜진,유리,주현,교희)
장소: 판채 7층 탄설홀 옆 회의실
말씀요약 & 나눔질문, 적용
광복절이 있는 주이다. 나라를 잃은 가장 큰 고통은 언어, 글자를 잃은 것이었다. 광복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미래의 빛이 밝혀진 날이었다. 그 후 3년 뒤 북한의 침략으로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이다. 부모님이 이북 분들이라, 나라 없는 설움을 안다. 우리들교회는 매주일 가정, 나라 주일을 지키고 있다. 개인의 구원이 사회의 구원이다. 성경이 나를 읽고 가야 한다. 열왕기상도 아합의 개인이면, 나라의 이야기이다. 믿음의 분량만큼 성경이 보인다. 안 해도 될 전쟁을 일으키는 아합을 보았다. 드러나지 않는 야망이 있고, 주변 선지자들도 전쟁을 하라고 한다. 명분도 있어 보인다. 속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 막으신다. 참선지자에 대해서 알아 보겠다.
1. 여호와의 말씀만 전합니다.
아합이 보낸 사신이 미가야에게 이르되, 다른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길하게 하소서. 지지하라고 한다. 이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내일 일을 모른다. 계시록에, 공중권세 잡은 사단이 끊임없이 있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이다. 사람들은 길한 것을 너무 사모한다. 끝없이 돈 신을 사랑한다. 자체에 힘이 있다. 돈은 거칠 것이 없어서, 있으면 하나님을 믿기 힘들다. 얼마나 좋으면 믿는 아합이 바알을 계속 끼고 있다. 천억 위엔 1조 위엔 10조가 있다. 목표지향적인 것만 듣고 싶어 하다가, 사건이 오면 누구 때문이라고 원망하다가 가는 것이다.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가 살아계심을 맹세하여 내게 말씀하시는 것 그것을 말하리라 하였다. 훌륭한, 길한 일도 아닌 여호와의 말씀만 전하겠다 한다. 내가 듣고 전해야 할 여호와 말씀은 무엇인가? 자기 생각을 말씀에 종속시켜야 하는데, 말씀이 자기 생각에 따라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기 생각에 꽂히면 말씀이 도장 찍어주길 바란다. 순서가 아주 중요하다. 왕에게 길한 예언을 해달라고 했지만, 조금 뒤를 보면 흉한 예언이 되어 왕을 죽이는 일이 된다.
여전히 가장 어려운 것이 말씀 묵상이다. 구속사의 말씀을 묵상하지 않으면, 구원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선악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정 회사 나라를 해석하는 것이 적어도 우리들교회의 묵상이다.
* 수요일, 집사님. 아내가 내 구원을 위해 수고 했다는 말 한마디에, 교회에 왔다. 모든 것이 성경 따로가 아닌 것이다. 일원론이라 그때그때 물으면 말씀해주신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아합에게는 850, 400명 등도 많았지만, 엘리야, 이름 없는 선지자, 미가야가 있었고, 이들이 목숨 걸고 증언 했어도 어떻게 아합은 회개를 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미가야를 보내 또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되었다.
15절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싸우랴 말랴. 미가야가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하였다. 부르기도 정답게 미가야를 부른다. 400선지자들에게 물을 때는 강하게, 미가야를 보니 위축이 되어서, '내가' 아니라 '우리가'했고, '~에 갈거야' 에서 '~으로 갈거야' 방향만 정했다. 미가야가 올라가라 한 말이, 비아냥으로 들렸다. 아합이 듣기 좋은 말을 듣고도, 하나님의 진실한 말을 거듭 청한 것은 미가야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을 아합이 알고 있다. 아합이 어용선지자 예언을 따른 것이 미련함이 아니라 자기애적 범죄의 성향에서 자발적으로 들은 악함이다. 니가 아무리 진심이라 말해도, 나의 전쟁 능력은 하나님보다 높으니 염려 말고 말해 하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하나님 존재가 없는 것을 확신한다면 사람들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일이 없다. 로마 황제가 그렇고 지금 아합이 그렇다. 백성들은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추종하고 있다.
아합은 아람과 1,2차 전쟁에서 자기 능력인줄 착각하다가 그것이 사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되었다는 생각 안한다. 나봇을 죽이고도, 심판받고 그것을 잊고 살면서도 미가야에게 또 나쁜 짓을 할려고 한 것은 정말 악의 대명사 맞다. 아무리 악한 길이라도 죽음의 길을 피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끝까지, 이스라엘의 왕에게 또 듣게 하시는 사랑이다.
적용: 여호와 말씀이라면 길한 일 흉한일 상관없습니까? 길한 일만 좋습니까? 돈으로 할 수 있는게 많아서 끼고 있는 바알 신은 무엇입니까? 주식 경마 골프 여자 850개입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은 바알 신을 못 버린 사람이다.
2. 끝까지 사랑의 흉한 예언을 해야 합니다.
17-18절,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께서 이들이 주인이 없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평안히 돌아온다 하였다. 이 뜻은 전쟁에서 지는데 도리어 백성들이 평안히 돌아온다는 것이다. 아합이 죽는다는 얘기이다. 그 죽음으로 도리어 백성들은 평안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철뿔 예언을 무색하게 하는 이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합이 전쟁을 위해 400명의 박수부대를 이끌고, 당대 영성있는 여호사밧을 교묘히 꼬들여 전쟁에 참여해서 모두가 박수치는 전쟁 같은데 어떻게 백성들이 분별합니까. 이럴 때, 미가야가 목숨이 두개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데, 아합 앞에서 당신이 죽는다고 예언 할 수 있는가.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아합이 이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셔야 되기 때문에 이기게 해주셨는데, 이제는 나라는 지켜주시되, 아합을 폐할 수밖에 없는 때가 왔다. 무슨 의미인가. 전쟁을 이기고 다 가졌고, 딸은 백만군대와 영성의 여호사밧 아들에게 시집보냈고, 그런데 아합은 평강, 기쁨이 없다. 누군가와 늘 논쟁하고 화내고 격분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러니까, 주인이 죽으니 백성이 평안히 돌아온다고 했는데, 아합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고, 벤아닷을 살려주고, 나봇을 죽이고, 이런 지도자 밑에서 어떻게 평안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북한을 두시는 이유가 있겠죠. 주인이 없어서 평안하게 된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회사에 사장이 없으면 그렇나?
*나를 보고 힘들게 하는 남편이 갔으니, 편안하고 시집도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말씀 묵상하다 오니 근본적으로 별로 달라진 게 아니었다. 인간적인 평안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은 주인이 죽으니, 그것이 괴로움이다. 말씀 인도를 받지 않는 주인이 죽으니, 군장들이 전쟁을 끝내고 평안히 돌아갔다는 것이다. 왕과 백성은 운명 공동체였지만, 분리되게 하신 것처럼, 나도 남편과 분리하게 하셨다. 그러나 남편에게 복음을 제시하므로 흉한 일이 길한 일이 되게 하셨다. 반드시 나을 거예요 살거예요 했다면 구원받지 못하고 갔을 것이다. 당신 가망이 없다 회개 하지 않으면 나와 아이들이 살 수 없다. 살 소망을 끊는다고 경솔하다고 했다. 흉한 예언을 듣고 회개 할 수 있었다. 마지막이라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하나님도 안 되는, 아합이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아합이 내 앞에 너무 많으니까 인생이 슬프다. 미가야는 아합에게 선물인데, 못 받아줬다. 하나님께 유기된 자가 아니라면 어찌 이런가.
적용: 오늘 밤 죽으면, 천국 갈 자신이 있는가? 라는 말을 아합과 같은 사람에게 할 수 있습니까? 아합에 종 노릇하다가 죄에 매여서 종노릇하는 것이다. 사망을 삯으로 받겠습니까? 은혜로 놓임받아 평안함을 맛보겠습니까? 성경은 일원론이다. 내 삶, 나라, 교인따로가 아니다 내가 복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전하지만 사람들이 보면 흉한 예언이다.
3. 거짓말 하는 영을 분별합니다.
19절부터,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께서 누가 아합을 죽게 할고 하니, 한 영이 내가 그를 꾀겠다. 거짓말 하는 영이 돼서 선지자 입에 있겠다. 여호와께서, 너는 꾀겠고 너는 이루리라 하셨다. 하나님이 아합을 죽게 할 의도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거짓에 넘어갈 아합의 마음을 아시고 결과론적으로 말씀 하시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끝까지 기다리신다. 무 자르듯이 선악이 조절이 된다면 우리가 가슴 아파할이 무엇인가. 사단과 졸개에 대해서 요한복음8:44에 살인자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모두 거짓 아비 마귀에게서 나왔다. 선한 게 없다. 모든 거짓말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 선의의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욥기에서 천상에 사탄이 있는 것을 보았다.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꾀러 나갔다. 똑같은 천상의 어전에 의해서, 악한 사단이 아합을 꾀겠다고 하나님께 허락받고 나갔다. 거짓의 영이 악인을 멸망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다.
미가야가 한명인 것처럼 믿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끊임없이 미혹하고, 당하고 산다. 예수님의 삶도 16장에 기록되었는데, 아합이 6장이나 기록이 되었다. 인생들이 악하다고 하면서도 아합을 너무도 부러워하기 때문이다. 말로만 악하다고 하면서 모두 아합 편에 섰다. 빨리 아합을 치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이 오시기 전까지 우리 모든 인류가, 예수님이 죽어주신 자녀이다. 치실 수가 없다. 권선징악으로 보면 일본과 한국이 서로 없어져야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려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사단이 우리를 다 잡고 있는 것을 아시지만, 자유의지를 주셔서 사단은 이 약점을 알고 하나님이 어딨냐고 우리를 치는 것이고, 하나님은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자기의지로 사단에게 아합은 넘어가는 것이다.
낮고 천한 육신이 다 인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하는 자 꼬이는 자를 어김없이 합당하게 구성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스스로 인도받기를 원한 것이다. 속이는 자 속는 자 똑같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럴 수가 없다고? 계시다. 내 삶의 결론이다. 아합이 속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누구 핑계를 댈 것이 없다는 것이다. 거짓의 영에 끌려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징계일 수 있다. 연단도 하고 채찍도 하여 돌아오게 하시는데, 연단보다 무서운 게 전쟁 없는 3년이다. 가장 불쌍한 자는 하나님께 잊혀진 자이다. 정욕대로 상실한대로 부끄럼 없이 살게 내버려둔 자가, 전쟁이 없는 자이다. 이 땅이 편한 것이 좋은 게 아니다. 가치관이 안 변하는 나와 내 가족이 잊힌 자라면 얼마나 가장 불쌍하고 가슴 아파야 한다. 왜 저 사람은 망하지도 않고 잘될까. 욕먹으면서 보냄을 받는 것이다.
적용: 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까? 여러분은 거짓말을 당하는 자입니까 꼬이는 자입니까. 당하고 꼬이는 것을 합당한 자로 구성해 주셨다는 게 인정이 됩니까? 한마디로 속았으면, 속인자 속은자 다 똑같아서 만났다. 똑같아서 동업에서 실패했다. 거짓의 영에 이끌려서 진짜 중요한 것은 안 물어본다.
4. 말씀이 이루어 질때까지 참선지자는 큰 고생의 떡과 물을 각오해야 합니다.
24절, 시드기야는 자신의 영과 다른 말을 하는 미가야에게 분노하며 뺨을 내려쳤다. 예수님도 일개 군병들의 모욕을 인류를 위한 구속사역을 위해 참으셨고, 하나님을 이를 높이셨다.
25절, 미가야가 이르되, 니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머지않아 들어나겠지만, 하나님 말씀을 밝히 드러내는 일에만 전념한 참 선지자 미가야, 시드기야와 대조된다. 골방은 생명을 위해 찾는 피난처라는 의미이다. 아합이 전쟁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거짓 예언을 한 시드기야가 골방에 들어가 살기 위하여 급급한 모습을 말한다. 시드기야가 죽을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26절, 아합은 결론을 내린다. 이스라엘의 왕이, 미가야를 끌고 가서, 고위관료를 시켜 끌고가라고 한다. 굉장히 걸리는 게 있다. 이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게 하라 하였다. 참 선지자의 결국은 고생의 떡과 물이다.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가 흉한 예언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시드기야 앞에서 간접 사실을 예언한 미가야를 가두기로 결정했다. 지금이라도 돌아오라고 보내신 하나님의 대언자 미가야를 가두라고 했다. 왜 인가. 흉한 일 예언에 격분했고, 예언을 약화시킬 생각으로 가두면 될 것 같아서 한 것이다.
결국 참선지자는 고생의 떡과 물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고생의 떡과 물을 먹는 것이다. 누군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 몸에 익혀서 잘 갖춰서 기다리는 것이다. 절제는 배려이고, 참아야 한다. 주님 때문에 절제와 배려와 참음이, 사랑하면 자발적이 된다. 내 편함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돌아오길 바라니, 안돌아오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이 갇혀있는 옥은 말씀 때문입니까, 욕심때문입니까. 똑같이 문밖을 못 나가도, 사명,말씀 때문인데, 내가 왜 여기있나 라고 하면 욕심 때문이다. 말씀때문이면 하나님이 일 하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증거할 사명이 있다. 똑같은 환경이 똑같이 해석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때문이라면 기쁘게 고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거룩없는 행복은 욕심이다. 돈 때문인데 돈을 안줘서 끓는다.
미가야가 이르되, 백성들아 들으라 하는 것이다. 미가야는 떳떳히 말했다. 흉한 일을 예언하니 뺨을 맞고 감옥가고 도움을 못 받았다. 참 선지자를 죽어라고 미워하는데 어떻게 사역을 했나. 내가 힘들다고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사역을 해낸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다. 나의 설교도 들어주시고, 책도 보아 주시니 난 정말 수준 낮은 선지자가 아닌가 싶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역행한 아합은 평안히 돌아오겠다는 소망과 상관없이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평안히 귀환을 했다.
*참 선지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큐티 페스티벌이 있었다. 아합과 같은 아빠와 살 고 있는 자매이다. 수련회비를 엄마 아빠가 서로에게 타라고 했다. 아빠가 4만원을 주셨지만,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물어보고 가져오라고. 엄마가 끝까지 주지 않아서, 아빠의 구원을 위해, 아빠에게 돈을 돌려주었다. 두 자매가 자기 용돈으로 수련회비를 냈다고 한다. 아합보다 훨씬 낫지 않나. 아빠는 이슬람성전에 데려가서, 종교의 공통점을 가르치신다. 엄마는 교회는 나갔는데, 아빠가 교회를 못나게 하고, 경찰을 부르고 엄마가 접근금지 되었다. 이혼소송 최종판결이 남았다. 두 자매가 역기능가정의 감옥에서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고 있다. 적용이 너무 미가야 같지 않습니까.
보잘 것 없는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선지자이다. 어떤 것도 사소한 것이 없다. 목숨 걸고 예배드리고, 목장 가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을 사는 것이 신앙이다. 종말을 준비하는 것은 오늘을 어떻게 사는 지로 나타난다. 구원에 관심이 있는가, 없는가로 분별이 된다. 어려서부터 준비되어진 사람은 이 세상이 감당 못할 것이다. 참 선지자로 이미 하나님이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실 것이다. 자매의 구원을 위해 아빠가 수고하고, 일본과 북한이 수고한다. 수고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가, 구원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너무 미워한다.
기도제목
오지혜
1. 말씀의 일원론을 기억하며, 나,가족,학교,사회 구원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세요.
2. 내 생각을 말씀에 잘 종속시키게 해주세요.
3. 지혜를 주세요.
위한나
1. 쉼을 위해 매일 3시간 떼어놓기
2. 내가 일을 잘하려 힘쓰는 것 보다 학생들을 만나고 식사하며 기도하는데 어렵지만 더 중요한 가치를 두기(오늘만 피하면 됨 x)
3. 전체도 중요하고 단 한명의 학생도 중요한데, 선택의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있습니다. 가르쳐주세요.
이지현
8.4-8.13 탄자니아 아웃리치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