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1
열왕기상 22:13-28 참선지자
이번 주는 광복절(빛 광 돌아올 복, 빛을 되찾다)이 있는 주일입니다. 일제폭압에서 벗어난 지 74주년이 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유일 분단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광복절 설교를 특별히 안 해도 되는 것은 우리들교회는 매주일, 가정주일 나라주일을 지키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의 책으로 개인구원이 사회구원으로 가게 되고 성경이 나를 읽고 가게 합니다. 열왕기서도 아합과 이세벨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왕들과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항상 오늘 주시는 말씀에 나와 나라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다는 것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분량만큼 성경이 보이겠죠?
북이스라엘백성들은 무늬는 하나님을 모두 믿는데, 400명의 선지자는 아합의 드러나지 않는 야망과 악을 보지 못해 전쟁을 하라고 합니다. 빼앗긴 땅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명분 있어 보이지만 속지 않는 하나님은 아합의 악을 막으십니다. 그런데 누가 대단하고 무서운 아합을 위해서 전쟁을 막겠습니까? 참선지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만 전합니다. (13-16절)
(13절) 아합이 보낸 사신은 아합왕의 뜻대로 모든 선지자들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라고 하니 무조건 다른 선지자들처럼 길하게 해달라고 압력을 넣습니다. 사신은 자신의 생각으로 길한 말로만 해석합니다. 이 사신은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는 것이 정치, 경제, 군사동맹 이익 등으로 다 얻을 수 있기에 지지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우리는 내일 일은 모릅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불확실합니다. 계시록을 보면 이 세상 정권은 근본이 공중의 권세가 사단이 준 것이기에 그 정권을 돕는 거짓선지자 세력이 끊임없이 있다고 합니다. 사단도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길한 것을 사모합니다. 850개의 바알(=소유)신을 섬기는 것은 종류만 다를 뿐 결국 끝없이 돈 신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돈 자체에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결국 돈이 있으면 하나님 믿기가 낙타가 바늘 귀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얼마 전 항공사 회장님이 돌아가시면서 형제끼리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고 유언했습니다. 그들에게 천문학 숫자의 천억위에 1조가 있고 그 위에 10조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1억 위에 10억이 있죠? 끝없이 목표지향적인 것만 듣고 싶다가 죽고 전쟁나고 실각하고 병들고 사건이 오면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를 부르짖으며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해 평생을 허비합니다. 길한 것만 듣기 원하면 끝이 없습니다.
(14절) 한 절에 두 번이나 여호와가 등장합니다. 미가야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얘기한다고 합니다. 아합왕에게 흉한 일만 전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흉한 일이 아합의 생명을 구하는 길한 일입니다. 사람은 잠시 뒤를 내다보지 못합니다. 여기서 미가야는 흉한 일 길한 일이 아닌 오직 여호와 말씀만을 전합니다. 하나님말씀은 지금 보기에 흉할 수도 길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가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최고이기 때문에 말씀에 자기생각을 존속시키는 것이 아닌 말씀이 자기생각에 존속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생각과 말씀의 순서가 틀리면 복과 저주의 길이 달라집니다. 이혼하고 불신결혼을 말릴 때 자기생각에 꽂히면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가 도장 찍어주기 바라기에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생각으로 왕에게 길한 예언을 해달라고 했지만 그 길한 예언은 도리어 흉한 예언이 되어 아합을 죽게 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지만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일 같습니다. 날마다 말씀묵상을 외치지만 여전히 가장 어려운 것이 말씀묵상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해석이 안 되고 해결이 안 됩니다. 구속사의 말씀을 제대로 묵상하지 않으면 일원론을 모르기에 모든 것을 구원의 관점으로 보려고 해도 우리의 본성 선악과(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풀이 되어 개인, 가정, 교회, 사회, 나라로 끊임없이 이어져갑니다. 구원의 관점으로 내 인생을 해석하는 것이 우리들교회 묵상입니다. 지식적으로 말씀 묵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주 수요예배 인도하신 초원지기님 술, 여자 문제가 있기에 영화 교회오빠에 목자로 출연한 장면을 보고 과거 여자들이 찾아올까봐 염려함, 치아 28개 임플란트 할 정도로 젊은 나이에 때마다 부러지고 망가짐, 고졸학력 때문에 온 식구들을 미워함, 온갖 망나니 생활로 용서 못할 남편에게 아내가 나의 구원 때문에 수고했다는 한마디로 남편이 교회로 오게 됨, 이렇게 모든 것을 구원의 시각으로 해석해야 함) 모든 것이 성경 따로 결혼 따로 정치 따로 경제 따로 교육 따로 문화 따로가 아닌 일원론입니다. 그때마다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해석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아합에게는 850명과 400명 사이비선지자에서 영적선지자까지 만났습니다. 솔로몬에게도 없었던 대 선지자 엘리야, 무명선지자, 미가야, 여호사밧 왕까지 목숨을 걸고 진언했어도 회개하지 못하는 아합입니다. 일시적인 회개만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미가야 말을 들려주며 또다시 기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게 됩니다.
(15절) 6절 시드기야와 400명 선지자들에게 말할 때는 내가라고 물었는데, 15절 미가야에게 물을 때는 우리가라고 바꿔 말합니다. 미가야 앞에서 굉장히 위축되어 객관적으로 방향성만을 정한 것처럼 묻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라는 말이 비아냥거림으로 들립니다.
(16절) 아합이 진실한 얘기를 거듭 구한다는 것은 미가야가 진실을 말하지 않다는 것을 분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합이 어영선지자의 예언을 따른 것이 미련함 때문이 아닌 자기애적인 범죄성향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악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전쟁능력이 하나님보다 더 높다고 말하는 극도의 교만함을 보여줍니다. 도스토옙스키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면 사람들은 못할 일이 없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자기만족을 위해서 못할 짓이 없다고 합니다. 완전 아합입니다. 백성들은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다 추종합니다. 두 전쟁에서 이긴 아합은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한 것이 굳어져 사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 능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습이 인생입니다. 아합은 또다시 무고한 자 미가야에게 악행을 저지르려는 악의대명사가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한 의도라 해도 죽음의 길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또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절마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Q.여호와의 말씀이라면 길한 일, 흉한 일, 상관없습니까? 아직도 길한 일만 좋습니까?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끼고 있는 바알신이 몇 개입니까?(바알신 850개: 자식, 학벌, 집, 별장, 취미생활, 쇼핑, 여자, 남자, 골프, 주식, 경마 등) 우리는 다 돈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2. 끝까지 사랑의 흉한예언을 해야 합니다. (17-18절)
양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졌는데도 백성들은 평안히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아합의 죽음(전사)을 뜻하며 그 죽음으로 인해 백성들은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400명의 선지자와 시드기야의 철 뿔 예언을 무색하게 하는 이 예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합이 전쟁을 위하여 400명의 선지자와 박수부대를 대동하고 당대의 영성 있는 여호사밧을 교묘하게 꼬드겨서 모두가 박수치는 이 전쟁을 백성들이 어찌 분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럴 때 미가야가 아합 앞에서 아합이 죽는다고 예언할 수 있겠습니까? 이방인과의 전쟁에서 주님은 아합이 예뻐서가 아닌 하나님나라의 위상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에 계속 승리를 안겨주셨는데 아합은 자신의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나라는 하나님이 지키시지만 아합은 죽일 수밖에 없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을 보면 아합은 기쁨이 없습니다. 전쟁마다 이기고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고 딸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여호사밧 아들에게 시집보냈지만 평강이 없는 아합입니다. 늘 누군가와 논쟁하고 근심하고 답답해하며 화내고 격분하기만 하는 아합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고 벤하닷은 살려주고 나봇을 죽이는 가치관을 가진 지도자 아합 밑에서 어찌 백성이 편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인이 없어서 편안하게 된 경우가 있습니까? (*남편이 있을 때도 주님의 신랑으로 살았기에 남편과의 전쟁이 있으나 없으나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음, 인간적 평안함으로 생각하면 안 됨,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주인이 있으니 그것이 괴로움,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말씀의 인도를 받지 않는 주인장이 죽었으니 군사들이 고통스런 전쟁을 끝내고 평안히 돌아감, 내가 힘든 것은 과부로서 이 세상의 남편보다 말씀으로 인도함 받지 않는 남편이 훨씬 힘듦, 왕과 백성은 운명공동체였지만 분리되게 하셨듯이 나와 남편도 운명공동체였지만 이렇게 사용하시려고 분리되게 하심, 남편이 숨지기 직전 복음을 전하고자 가장 사랑의 흉한 예언을 하여 그 사람에게 가장 길한 것이 되게 함, 긴박한 순간 길한 말만 하면서 시간낭비 했다면 남편구원 받지 못했을 것, 긴박한 순간 가망 없다는 흉한예언을 하는 내게 옆에서 경솔하다고 하지만 남편의 죽음이 비극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가 마지막으로 전한 흉한 예언을 듣고 주인 되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영원히 살았기 때문에 그와 나는 진정한 영적공동체가 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아합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이 애를 써도 지금까지 유대인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미가야는 아합에게 선물이었으나 선물을 보지 못합니다. 엘리야, 미가야, 여호사밧 등 하나님의 사람이 선물로 주어지고, 그 한사람이 850:1로 이겼는데 아합은 일시적인 인정뿐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육이 된 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Q.오늘밤 이 땅을 떠난다면 천국 갈 자신이 있습니까? 라는 흉한 예언을 아합같은 사람에게 할 수 있습니까? 아합의 죄에 메여 종노릇 하다가 사망을 삯으로 받겠습니까? 은혜로 노임받아 평안을 맛보겠습니까? 성경은 다 일원론입니다.
3. 거짓말하는 영을 분별합니다. (19-23절)
하나님께서 아합을 죽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략을 꾸미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문자적으로 듣지 말고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도 인간을 시험하지도 않습니다. 거짓에 넘어갈 아합의 상태를 다 아시고 결과론적 입장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기다리며 아합이 틀렸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말씀처럼 우리 인간은 모두 거짓 아비 마귀에서 났기에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거짓말의 배후에는 사단이 있습니다. 선의에 거짓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욥기에서 천상에 사단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을 꾀러나가듯이 똑같이 아합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꾀러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악한 영도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 있습니다. 세상은 모두가 사단에게 속해있기에 거짓의 영으로 끊임없이 미혹하고 당하고 있습니다. 거짓의 영이 악인을 멸망시키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인간은 거짓으로 시작해서 거짓으로 끝나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이 16장에 걸쳐서 기록되어있는데 아합의 삶이 6장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아합의 삶을 다 기록해놓았을까요? 인생들이 아합을 악하다고 하면서도 너무도 부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이 인생대로 살고 싶은 것이 우리 사단에 속한 인생의 속성입니다. 아합같은 자를 빨리 심판하면 좋지만 주님 오실 때까지 모든 인류는 예수님이 죽어주신 자녀이기에 하나님은 아무나 치실 수가 없습니다. 권선징악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될 때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사단이 인류를 붙잡고 있는 것을 알지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죽이지 못합니다. 사단은 이 약점을 알고 하나님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주님은 이 훈련기간에 회개하고 돌아오시길 기다리는데 사단은 하나님이 없고 네가 하나님이라고 얘기하며 아합의 머릿속에 거짓말을 심습니다. 결국 아무리 하나님이 하려해도 자기의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구원받지 않고 죽는 것은 낮고 천한 육신이 이 세상이 다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하는 자 꼬이는 자를 어김없이 합당한 자로 구성하셨습니다. 자유의지로 거짓선지자들에게 스스로 인도함 받기를 원한 것으로 속았다! 속였다! 라는 얘기 하지 마세요!! 둘 다 똑같아서 만나는 것입니다. 내 삶의 결론입니다. 매일같이 남 탓만 하느라 성경을 보고도 말씀이 안 들리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말 하는 영에게 끌려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연단도 하시고 채찍도 하시며 돌아오라고 하지만 아합의 경우를 보니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 잊혀 진 자입니다. 부끄러운 욕심에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린 자가 바로 전쟁 없이 3년 있다가 죽는 것입니다. 도무지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나와 내 옆 식구들이 하나님께 잊혀 진 자라면 가슴 아픈 일 아닌가요? 욕 할 것이 아니라 잊힌 자임을 알고 가슴아파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으로 처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이 모든 것을 해석해야 합니다.
Q.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까? 여러분은 거짓말을 당하는 자입니까? 꼬이는 자입니까? 당하고 꼬이는 것을 합당한 자로 구성하셨다는 것이 인정이 됩니까? 속은 자 속인 자 똑같기에 만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짓의 영에 끌려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묻지 않습니다.
4.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고생의 떡과 물을 각오해야합니다. (24-28절)
(24절) 주님은 일개 군병들에게 뺨을 맞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인류를 위한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수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25절) 머지않아 드러나겠지만 개인적인 모욕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드러나는 일에만 전념하는 참선지자 미가야 모습이 시드기야와 대조적입니다. 골방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숨는 피난처를 의미하며 골방에 숨는 날은 아합이 전쟁에 나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거짓예언자 시드기야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골방에 숨기 급급한 날이 올 것 이라는 날을 말합니다.
(26절)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을 고위관료가 미가야를 끌고 갑니다. 무엇인가 굉장히 걸리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27절) 여호와 말씀을 전하는 참선지자의 마지막 결론인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가 흉한예언을 하기에 옥에 가둡니다. 끝까지 흉한 예언을 하는 미가야를 향한 격분함과 불길한 예언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에 복음 제시할 때 거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참선지자는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에 예수 믿으면서 점점 몸에 익는 것은 잘 갖춰서 기다려야합니다. 절제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고 배려하려면 참아야합니다. 억지로가 아닌 주님 때문에 절제와 배려와 참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자발적으로 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서로의 감옥에 갇혀있는데 그럴 때마다 절제, 배려, 참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는 감옥에 갇혀있어야 합니다.
Q.여러분이 갇혀있는 옥은 말씀 때문입니까? 욕심 때문입니까? 내가 문밖을 못나가도 참선지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사명이 있으면 말씀 때문이고, 내가 어떻게 여기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냐고 한다면 욕심 때문이며 평강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 때문에 옥에 갇히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증거 하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28절) 미가야는 위태한 생명에도 불구하고 아합왕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아람과의 전쟁에 나가는 것에 내가 증거 한 말씀들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합니다. 미가야는 말씀대로 선포하다보니 흉한 일만 예언하게 됩니다. 흉한 일만 예언하기에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고 아합 때문에 감옥에 가고 경건한 여호사밧에게도 도움 받지 못합니다. 아합을 보니 북이스라엘 백성전체가 따르고 참선지자를 미워하는데 미가야는 어떻게 사역할 수 있을까요? 이런 한 사람 때문에 기독교가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에 역행한 아합은 평안히 돌아오겠다는 자신의 소망과는 상관없이 죽어서 돌아왔고 이스라엘백성은 예언대로 평안이 귀환했습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아합같은 아빠와 살고 있는 아이 간증: 수련회비를 아빠에게 요청하자 거절당하고 우리들교회 다니는 엄마에게 받으라는 아빠, 아빠에게 수련회비를 받으라는 엄마, 결국 아빠에게 수련회비를 받았지만 아빠의 구원을 위해 자신(아이들)의 전 재산인 용돈으로 수련회비를 마련하고 아빠에게 돌려드림, 교회를 반대하며 괴롭히는 남편을 때린 아내와 경찰에 신고한 남편, 결국 접근금지로 엄마와 헤어진 아이들, 가족고난 속에서 이혼 최종판결 상태-가정구원을 기도하는 엄마와 부모구원과 거룩을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
보잘것없는 성도로서의 삶을 목숨 걸고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 참선지자입니다. 성도는 어떤 것도 사소한일이 없습니다. 예배도 목숨을 걸고 목장을 가도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목숨을 건 하루하루 생활을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종말을 어떻게 잘 준비하는지는 오늘 어떻게 살았느냐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구원의 관심 유무로 분별됩니다. 그것 외에는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준비된 사람은 이 세상에 감당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참선지자로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아빠가 자매들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고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십니까? 구원이야기를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듯 아빠도 구원의 이야기를 기분 나빠하여 이혼까지 불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생아이들이 참선지자가 되어 역할감당하고 있는 것 입니다.
[기도제목]
은우
직장에서 조정 중인 것들로 여러가지 마음과 섭섭한 부분들이 올라오는데 지혜롭게 잘 분별하고 계약서 잘 작성 할 수 있도록
국내출장 중에 힘 빼고 주님께 물으며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도록
해외출장이 예정되어 있는데 말씀이 날 읽고 갈 수 있도록,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전시준비 쿵푸팬더 기법으로 잘 끝날 수 있도록
돕는 배필을 알아보도록
민주
가족건강
동생의 앞으로 일들 기도로 묻고 분별하며 사명감당 하도록
생애 첫 아웃리치 가서 잘 배우고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예선
하나님 보다 앞서 나가지 않고 지금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가족구원
은실
일 가운데 하나님께 묻고 가도록
계획하는 것들 잘 예비 될 수 있도록
가족구원
현경
하나님 안에서 참 자존감 찾을 수 있도록
가족들과의 사건·상황들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하고 건강하게 분리 할 수 있도록
가족구원
취업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