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8. 4. 열왕기상 22:1-12 전쟁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서론.
남편만 돌아온다면. 이번 사항만 해결해준다면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하면서 겸비하지만, 또 일만 멀어지면 주님도 멀어지고 그런다. 그것은 하나님이 멀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버리도 가는 것.
여전히 이기고 과시해야하니 전쟁이 3년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자. 또 다른 세상 전쟁을 꾸밉니다. 전쟁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아합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라 쥐약이다. 아합의 겸비함이 오래가지 못하는 비결이다.
- 또 다른 세상 전쟁을 꾸밉니다.
가뭄도 없고 벤하닷이 쳐들어오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까지 겸비함으로 간다. 그 겸비함때문에 자녀의 대로 미룬다. 그 자녀는 무슨 잘못인가 하겠지만 그 자녀가 겸비하면 또 유보하는 것. 자녀들을 건들이지 말아주세요 저한테 그 벌을 주세요 하는 사람이 겸비하는 자의 진정한 태도일텐데 그렇지 않은 아합.
내 아버지집을 치소서 하니 다윗에게 내리던 재앙이 그친다. 아합이 수준이 낮으니까 다윗때와 달라도 호호 불어가며 자녀대에 가지 않게 내가 재앙을 받겠습니다 해도 하나님은 봐줄텐데, 내가 재앙을 받겠다도 안되는 아합.
적용/ 내 죄를 내 대에 묻는게 좋습니까 자녀 대에 묻는 게 좋습니까? 어느 쪽 기도를 하겠습니까?
시간 지나니 아합도 돌아갔다. 사부님처럼 회개하자마자 하늘로 올라가는게 얼마나 복인지 모르겠다. 승리에 자기가 속아서 스스로 책략가같았던 아합. 나봇따위도 잊은듯하다. 아합의 악행은 이세벨 율법에 가리어진것 같았지만, 아합의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숨길 수 없다. 이기면 내 공로고 내가 불리하면 남탓. 이게 우리 사람의 성정이다.
드디어 사망으로 이뤄지는 본문의 시작이다 .
적용/ 여러분은 전쟁의 때입니까? 잠깐 전쟁이 없는 때 입니까?
2/ 셋째 여호사밧 왕에게 내려가매, 여지껏 안내려가던 남유다 여호사밧얘기가 나온다. 본래 한 국가로서 우호하는 게 범죄는 아니지만, 일생에 전쟁이 있었던 양 국. 한 쪽은 여호와를 섬기고 한 쪽은 바알을 섬기니 싸우는 건 당연하다. 우리가 아합의 딸은 이세벨의 딸이고 그들과 결혼동맹을 맺은 건 결국 남유다에게도 재앙이온다. 사실은 제 삼국이 보기엔 양국 선한 게 없다.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과의 약조를 깨달라고 하듯이 아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유다. 이스라엘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남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지 못한다. 너무나도 악한 아합이지만 정치 경제 군사력이 막강한 아합이다. 객관적으로 벤하닷과의 전투에서 두 번이나 물리친 것이 팩트가 되다보니 지금 보면 이순신과 다를 것 없어 보인다. 그래서 아합에게 7장이나 할애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즉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 사람이 왕노릇 하는 인권시대 = 아합의 시대.
아합에 대해서 역대하에도 한 장이나 할애한다. 끊임없이 성도들의 믿음을 끌어내리는 아합과 이세벨이다. 그래서 믿음이 끌어내려지는 남국. 두 차 례 엄청난 전쟁을 이긴 아합은 나봇 땅 뺏고해도 국부다. 그것이 평판이다. 게다가 그 즈음에 역사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아람이 연합하여 앗수르가 대등하게 싸우고 물러갔다. 즉 아합은 세 번의 전력차가 확실한 전쟁을 이긴 국부가 맞다.
여호사밧이 북으로 내려왔다. 북으로 내려갔다고 표현한 이유? 영적으로 다운 되는 길이었다는 뜻이고, 100만 대군의 강국이 된 여호사밧을 영육 간으로끌어내린것. 여호사밧은 유다에 있었어야 했다. 그렇게 악한 아합을 도우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돕는게 맞느냐고 따지는 선지자.
우리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훗날의 평가가 남는다.
적용/ 어디로 역량에 불구하고 좋은 곳으로 가고 있습니까? 실제로 어디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신하들 보고 길르앗 라못을 능히 탈환할 능력이 있지만 잠잠하냐고 교만하게 탈환하라 그런다. 아람의 왕 벤하닷의 교만과 똑같은 지금 아합의 상태 - 스스로 과대평가. 스스로 전쟁으로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되찾고자 하는 아합.
벤하닷의 목숨 대신에 벤하닷 땅을 받기로 했다. 그 1세때 빼앗겼기에, 명분도 실리도 있는 계획을 이제 실행하려고 하는 아합. 여기서 벤하닷은 약조를 하고도 돌려주지 않았을까? 아합은 아무리봐도 무시가되고 실력없어 보이는데 걔가 한 7000명으로 이겼지? 라고 의문이 계속 되는 벤하닷. 여호와 때문이라고 생각이 됨..아람은 도리어 하나님을 무서워하는데 아합은 자기가 잘나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구도. 얼마나 웃긴가. 모두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이런 상황. 이렇게 팩트로 세상이 바뀌니 아합의 마음에는 3년을 회개하지 않고 흘려보내니, 이제 삼년간 아합을 편하게 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전략을 쓴 사단. 아무리 깨어 있을려해도 아합은 벤하닷 전쟁 2번 가뭄 3년, 엘리야 있을땐 믿는 흉내라도 냈지만, 이제는 깨어있을래도 깨어있을 수 없는 세상이되었다. 이 즈음엔 전쟁이 없는게 축복이아니라 저주다. 전쟁이 없어도 깨어있는 게 믿음인데, 우리의 성정은 전쟁이 없는 게 축복이라 생각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므낫세 르우벤 동편 지파에게 주어졌던 땅, 그 중에서 요단 동편 세 도피성 중 레위인의 성읍. 그곳이 이스라엘이 빼앗긴 땅중에 전략적 요충지다. 게다가 산악지역이며 농업에도 적합한 땅. 또 무역의 중심지. 모든 이유에서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빼앗아야 할 알짜땅이다.
한국 또한 세계 강국의 요충지다. 다들 눈독을 들이는 이 곳. 진보보수를 떠나서, 위기의 한국이므로, 한 말씀 하고 싶은 목사님. 한국은 끊임없는 침략에도 지켜지는 것은 동방의 예루살렘 맞았다. 우리는 기독교 들어온 다음부터 잘 살게 된 것은 팩트다. 우린 최 빈국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무당신앙이 들어오고있다. 이런 우리를 놓고 회개하기 위해서 북한과 일본의 무역전쟁, 미국은 자국이랑 상관없다고 무관심. 중국은 사드 철회하라고 푸쉬한다.
아무리 반일감정이 역사라해도 명분없으면 이것도 잘 못된 것. 예전부터 그런 고정관념은 무섭다. 무엇을해도 일본은 나쁜놈은 이라는 것이 아니다. 팩트를 보자면, 일본은 유무상 현금으로 3억불, 5억불을 투입했다. 그 돈으로 경제5개년에 투입되었고 몇 십년 만에 우리 나라는 돈을 벌었다. 이번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서 개인들이 줄줄이 청구하게 된 시국.
똑같은 사건이 미국에서도 있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전후 일본을 상대로 미국 손해배상을 주장했는데, 일본은 평화와 교환되었고 평화속에서 세계가 진짜 가치니 청구를 기각한다고. 했던 전례. 우리가 이 전례를 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에서 모두 같은 의견을 가졌던 전 대통령들. 아무리 억울해도 한 번 결정된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대로 인정하고 가야한다. 30년만에 잘 살게 된 것을 인정해야한다. 미얀마와 대조되는 우리나라. 불매운동보다는 외교적으로 처리를 했으면 한다. 팩트를 인정하는 게 실력 중에 실력이다.
4/ 아합은 여호사밧을 꾀어서, 이 전쟁에 참여케 했다. 여호사밧이 스스로 전투에 참여하고자 결단 했다. 당신의 말과 같다고 여호사밧이 긍정적으로 참여했고, 두 나라가 연대의식이 강해보이지만 여전히 남 북은 결국은 원수로 돌아가게 되는 게 본질이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 이것이 수 없이 보는 케이스인데, 아람과도 형제여 했다가도, 모든 국가가 약속을 안 지키는게 팩트다.
한 신문의 칼럼에서, 한미방위조약에 대해서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닥달하며, 오늘 한국은 공산집단의 위협때문에 이 조약이 필요하고, 이제 내일은 일본의 위협에 또 대항하게 어느 곳도 고립되있지 않도록 조약을 해야만 한다고. 70년 전에 이 대통령이 이렇게 맺어논 것. 한국에 요즘 전쟁이 없다보니, 이렇게 전쟁을 불러일으킨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감사하게도 일본보다는 믿는 자가 많으니 믿는 우리가 더 품위있어야 하겠지만 우리는 일본보다 겉으로 품위없고 하니까 우리가 일본에 피해자여도 믿는 사람이 많으니 선두를 지켜도 지켜야할 판이다.
적용/ 줄곧 포기하기 싫은 길르앗 나봇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서로의 열등감으로 끝까지 도로 백! 하게 된다. 남유다 북이스라엘. 한일. 전라도 경상도. etc....
우리가 빨리
- 물을 만한 선지자 미가야를 미워한다.
5/우리 모두가 아합같아 자기 소견대로 움직인다. 혼자만 하고있기 어렵기에, 큐티 운동이 일어나야 겠다. 혼자하기보다 날마다 큐티했냐고 물어야겠다. 일본을 물리치는 진정한 무기다.
그때그때 물음에 걸려서라도 큐티하는 게 우리의 힘이다.
신도시만 생기면 무조건 개발하며 무조건 허가가 날 땅이라고 판단하고 물었더니 목자부터 목원까지 들고 일어나서 반대해줬다. 하나님 마음 있다면 하라. 토지 보상이 공적인 것 같지만 도박같아 반대같다. 등등 대단한 수준들로 처방하였고 부목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일로 집안이 살아나는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아합또한 잘나서 벤하닷을 이긴게 아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들리는 아합.
6/ 물을 만한 선지자 있냐? 했더니 400명 모았다. 근데 그 선지자는 말씀도 큐티도 없이 즉시 올라가소서 했다. 그런데 아합은 선지자 800명이 죽었는데 또 언제 모았나 신기하다. 조폭같으니 이렇게 금방 모은다. 자격도 없는 어용선지자들이다.
맛과 멋 좋아하니 이세벨도 죽을때 화장하고 죽더만.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을 하니, 명목상 여호와를 섬기나 입으로만 섬기는 것 같다. 아합은 그런데 얻고자 하면 반드시 가져야 하고 그 사백명은 예스맨이니 최고의 조합이다. 다수가 좋은 게 아니다. 분별이 참 어렵다. 나찌가 독일 교회를 핍박했어도 교회는 한 마디도 못하고 오직 순교했다. 아합의 대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사람이다. 유일하다. 한 사람 대적위해 어용선지자 400명을 또 만든다.
7/ 6절의 선지자는 그냥 모두 +소문자고, 7절의 여호와 선지자는 대문자다.
7절은 오직. 여호와의 선지자다.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는데, 아합과 사돈을 맺는 경우는 무엇일까? 행위로 판단하면 안된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해보여도 다윗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것 같아도 여호와 씨를 찾아봐야한다.
8/ 미가야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흉한 일만 얘기만 하니까, 왕은 그딴 얘기 질책하지말라고 했다. 미가야가 여호와께 묻는 것을 아합이 알고있다. 다 아는데, 자기 중심적인 아합은 오직 나한테 중요한가 아닌가 만 중요하다.
그가 나한테 흉한 일만 예언하니 미워하는데, 누군가에 대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증오한다는 뜻의 동사다. 아합이 참을 수 없이 증오하는 사람이 미가아/엘리야.
내가 진짜 선지자라면 내가 참을 수 없이 죽이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아합은 이런 사람을 미워하여 넘어가지 못하지만 여호사밧은 질책정도하고 만다.
전쟁을 앞두고 듣기싫은 흉한 예언을 들어야 하는 것을 보며 사실 여호사밧은 그런 예언을 듣게 하는 게 아합에게는 죽음으로부터 돌이킬 기회인데, 또 이렇게 보고 계신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 그러나 아합은 돌이키지 않는다. 아합은 이미 평판이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적용/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가깝게 지냅니까? 물을만한 선지자를 머리로 좋아합니까, 가슴으로 좋아합니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합니까?
- 그래서 길한 말만 듣고 싶습니다.
400명이 딱 앉아있으니 사적인 의견이 아니라 공식적 자리가되었다. 공개적으로 미가야가 예언활동을 하는, 풍토가 조성되었다는 것. 어용선지자들을 대상으로.
에브라임 지파는 요셉 지파이고, 시드기야는 요셉지파를 축복한다. 열방과 싸워 이길것이다 하니 아합은 흥분하며 맞구나 했고, 400명이 한 입 모아 아합을 지지했다. 이즈음 중요한 것은 11절에서, 모두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예언했다고 전제한다. 수 많은 교회와 수 많은 선지자들도 자기를 위하여 하기에 열매가 없다.
적용/ 남에게 듣기 좋은 소리, 내게는 길한 말만 듣고자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나눔/ 지난 주 말씀 전까지 나는 아합에게 괴롭힘 당하는 엘리야라 생각했다. 계속 생각해봐도 여호와가 나를 지켜보신다고 느껴지고 생각해볼수록 아합이라고 인정하기는 너무 간단하다고.
그러면서도 여기서만 회개하고, 막상 운동장 진흙에서는 주차하기 싫어한다고 속지말라고 예언하는 권찰. 이렇게 나누는 집사님. 아무리 재밌는 일이라도 사명으로 가야지요~ 하는
외도 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했지만 매번 아내에게 구박받으며 오픈하라고, 푸쉬받고 흉한 일을 얘기하라고 계속 흉한 말을 듣고 살면 떡이 생긴다..
남편도 열등감이 없으니 들을 수 있을 것. 열등감이 없다면 모든 것이 잘 드러난다. 이 세상 무서운 게 열등감이다.
훌륭하신 목자와 권찰이라 생각한다.
길한 예언을 해주는 사람만 좋아하는 우리.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멈추는 우리가 되자.
[목장 방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