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1. 참 선지자 열왕기상 22:13-28
✽ 서론.
이번 주는 광복절이 있다.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난지 74년. 가장 큰 고통은 언어와 글자를 잃었다는 것. 광복은 빛을 되찾다는 뜻. 민족이 다시 빛을 찾았다는 뜻이다.
48년에는 자율 민주주의가 세워졌지만 또 전쟁이 일어났고 여전히 분단의 아픔을 겪는 우리나라. 양가 부모가 다 이북분이라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설움을 안다.
나라를 잃어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을 안다. 그러므로 송구영신 예배때 우리는 애국가를 부른다. 우리는 언제나 믿음으로 성경이 우리를 읽고 가야한다.
지난 주 사탄에 휘말려 아합이 안해도 될 전쟁을 하는 것을 본다. 안 믿는 400명의 선지자와 아합 그 주위는 모두 전쟁하라한다. 누가 이 전쟁을 막겠나?
참 선지자는
- 여호와의 말씀만 전한다.
13/ 아합이 보낸 사신은 아합왕의 뜻대로 모든 사람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라하니 모두가 길하게 해달라고 압력을 넣눈다. 자기 생각으로 길한 말이라고 해석도 한다. 정치 경제 군사적동맹등 이점만이 있우니 이것이 아합 보기에 길하다.
그러나 세상은 불확실하다. 계시록에서 짐승, 음녀의 권세가 나오지 않는가. 정권을 돕는 거짓선지자 세력이 끊임없이 있어왔다는 것을 기억하자.
많은 사람들은 너무 길한 것을 사모한다. 바알이 이제 소유라는 뜻이 있기에 끊임없이 돈 신을 섬긴다. 돈 자체는 무서운 힘이 있다. 거칠 것이 없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하나님 믿기 힘들다. 얼마나 좋으면 바알신을 이렇게 끼고 있는가? 이것은 믿는 아합얘기다. 형제끼리 사이좋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 했지만, 우리들은 일억뒤에 십억이 있으니, 목표지향적으로 움직인다. 무엇때문에 누구때문에를 부르짖으며 목표를 못 이룰때 평생을 허비한다. 길한 것만 얘기하면 이렇게 된다.
14/ 한 절에 여호와가 두 번 나온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말하리라 한다
험한 말만 전해보였으나, 사실은 아합의 생명을 구하는 길한 일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만을 전하겠다한다. 그것은 지금 당장 보기엔 흉할 수도 길할 수도 있다. 여호와께서 주는 말씀이 정말로 최고다. 말씀에 자기 생각을 종속시켜야 하나 우리는 언제나 순서가 달라지고, 그러므로 복과 진리와 멀어진다. 말씀에 도장찍어주길 바란다. 자기 생각에 왕에게 길한 예언을 해달라했지만, 도리어 흉한예언이 되어 아합을 죽게하는 예언이 아닌가?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날마다 물어보는 큐티를 외치나 여전히 가장 어려운게 큐티다. 그래서 인생이 해석과 해결이 안된다. 아무리 일원론이어도 큐티를 모르면, 선악과 먹고죄가 들어온 우리 시점에는 뒤 돌면 잔혹사가 되풀이 된다. 가정과 나라 회사를 해석하는 게 우리교회와 성도의 기회다.
이를 스물 여덟개나 임플란트 할 정도로 젊을때 미움에 쩔어 살던 아내. 그 용서못할 남편이 내 구원을 위해 수고했다는 한마디로 마음이 열렸다. 산이 부서지고 물이 부서지는 일이 있어야 - 그때그때 일원론으로 오니 - 30년 전 말하는 것과 지금이 똑같다.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동일하다.
사이비 선지자도 숫자적으로 많았으나, 영적으로도 많았다. 이름없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제 여호사밧까지 왔으나 아합은 어찌 회개를 안할까? 잠시 겸비했으나,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또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묵상된다. 아합이 못 들으니 하나님은 또 말씀을 들려준다.
15/ 길르앗 라못으로 갈까? 하며 약화된 발언을 본다. 미가야를 보니 왠지 위축이 된 아합. 굉장히 방향성만을 정한 부분이다
보기만해도 미가야는 위축되게하나보다. 여호와께서 붙이시리다 하며 좋아하는 말을 했으나, 그것은 아합에게 비아냥같았다.
16/ 듣기 좋은 말 해줘도 거부하는 것은, 미가야가 진실을 말하지 않다는 것을 분별하여 아합이 안다는 것. 그가 어용선지자들을 따른 것이 단순히 미련한 게 아니라 자발적 악한 선택임을 보여준다. 그래. 니가 아무리 진실이라해도 내 전쟁능력은 하나님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극도의 교만 안에 있다.
아합은 아람과의 일차 이차 전쟁에서 이긴 후 본인 능력이 착각에서 사실이 되어버렸다. 심판을 연기받고 살아가다가도, 악행으로 돌아가니 악함의 대명사 맞다.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또 죽음의 길을 마지막까지 피할 수 있도록 끝까지 듣게하시려는 사랑을 절마다 볼 수 있다.
적용/ 여호와의 말씀이라면 길/흉이 상관 없습니까? 아직도 길한 말만 좋습니까? 돈으로 할 수 있는게 많아 끼고있는 바알은 몇개입니까? 골프 여자 권력 등등
2. 참 선지자는 끝까지 사랑이 흉한 예언을 해야합니다.
17-18/ 미가야가 그렇게 말씀할 것 같으니 초를 치는 아합. 양들이 목자없는 양같이 흩어졌는데 이스라엘이 평안을 누린다는 게 무엇인가? 아합이 전사한다는 뜻이고, 그길로 이스라엘이 평안하다는 뜻이 된다.
전쟁을위하여 400명의 박수부대를 동원하고 이 여호사밧을 교묘히 꼬드겨, 전쟁에 참여시키니 백성들은 어떻게 분별하겠나. 이 상황에 목숨을 걸고 아합이 죽는다고 하는 미가야. 아합은 이런 상황에도 아합은 끝까지 나간다. 나라는 지켜주시되 이제 아합을 폐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온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아합에겐 기쁨이 없다. 영적인 가뭄에 시집까지 보냈는데. 영육간에 모든 것을 다 얻었음에도 근심 격분 외교밖에 할 줄 모르는 아합. 하나님의 선지자 죽이고 나봇은 죽이고, 벤하닷은 살리는 아합.
북한도 결코 평온할 수 없는 지도자를 살려두는 이유도 반드시 있다. 주인이 없어 평온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나를 보고 힘들게 하던 남편이 갔으니 평안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남편 있을때도 이미 주님위해 살아왔기에 남편 있으나 없으나 말씀으로 가다보니 달라진게 크게 없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말씀의 인도를 너무도 받지 않는 주인이 죽었으니 이제 내가 힘든것을 보면 이유가 있어 - 과부로서보다 말씀 없는 게 훨씬 힘들었기에 - 남편과의 분리가 일어났다.
가장 흉한 예언을 해주므로 가장 길한 예언이 되게 했다. 그 급박한 순간에 반드시 당신 살거라는 예언이나 했다면 남편의 구원은 없을 것. 그런데, 거기서 구원을 들이밀었더니(흉한 예언) 옆에서 뺨은 안쳤어도 살 소망을 끊어버렸다고 경솔하다 욕먹었다. 그러나 남편이 영접하고 영원히 살았기에, 그 예언이 회개로 이어지고 구원 받았다. 마지막이라도 이렇게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본문에 보니, 하나님도 안되는 아합이 있다.
그러므로, 내 옆에 너무 많이있어 슬프다. 그러나 미가야는 아합에게 선물이다. 선물을 계속 주어지게 해도, 아합은 일시적으로는 인정했으나 유지되지 않았다.
적용/ 오늘밤 이땅을 떠나면 천국 갈 자신이 있느냐? 라는 이 흉한 예언을 아합같은 사람에게 할 수 있을까? 흉한 예언으로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모든 성도가 그 가족을 영접하게 할려고 선지자들이 바쁜 우리 교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우리들. 아합에 종노릇하다가 죄에 매여 종노릇하여 사망을 삯으로 받겠나? 흉한 예언을 은혜로 받아들이겠는가?
3.참 선지자는 거짓말 하는 영을 분별합니다.
19-22/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합을 죽게하려고 꾀를 꾀는 것 처럼보이나, 거짓말없으신 하나님이다. 이미 거짓에 넘어갈 아합을 아시고 결과론적으로 얘기하시는 하나님. 무 자르듯 선 악대로 쳐 내는거 누가 못하겠나, 하나님은 거짓의 아비를 지적한다. 선의의 거짓말까지 그렇다. 사단이 있다.
우리는 욥기에서 천상에 사탄이 있는 것을 봤다. 허락을 득하는 사탄. 악한 한 영. 사탄이 아합을 꾀겠다 하니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나간다. 이 악한 영도 하나님의 허락을 득해야 한다. 모두가 사단에게 속해 있다. 믿음있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거짓의 영으로 끊임없이 사단에 속한 우리는 미혹당하며 살아간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 거짓. 인간은 거짓으로 시작하여 끝난다. 그런데 예수님도 열여섯 장으로 다 기록되었는데, 아합은 여섯장이나 기록되는 아합. 이는 무슨 뜻일까? 인생들이.악하다면서도 우리가 아합을 너무도 부러워 해서 그렇다. 우리가 아합같은 자들을 빨리 쳐내면 좋겠는데, 아합같은 사람들 밑에우리가 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죽일까 기다려주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유의지를 가졌기에, 약점을 계속 공격한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회개하고 기다리면된다
아합이 아무라 잘났어도 육신에 머무는 자는 곧 육신에만 있다. 스스로 육의 선지자인도를 받기 원했다는 것. 결국은 자기가 원했다는 것 = 속은 자 = 속인 자.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도 채찍질도 하시지만. 더 무서운 것이/ 불쌍한 자가 내버려둠을 당해 3년간 전쟁이 없는 자가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 아합도 그랬다가 이제 하나님께 잊혀져서 죽게된다.
적용/ 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 생각하나? 합당히 분별함을 인정하십니까?
매번 탓을 그만하자.
참된 선지자는
4. 말씀이 이뤄질때까지 참 선지자는 고생의 떡을 각오해야한다.
24/ 미가야에 분노하며 뺨을 때리는 아합. 이 모욕을 참으며 계속 전하는 미가야. 하나님 께서는 그런 미가야를 지극히 높리신다.
시드기야의 모욕언사를 이렇게 받아친다.
25절, 머지않아 드러나겠다만 하나님 말씀을 밝히 드러내는 마가야와 시드기야는 완전 다른데, 그러므로 골방에 숨겼던 시드기야에게 이제 곧 골방에 있기 급급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고위 관료. 자기 아들은 아닌데도 왕자급. 여기서 끌고 가려고한다. 끌고가서 고생의 열매를 먹기전까지 씨우라고했다.
미가야의 흉한 예언의 능력을 약화시키기위해 감옥에 가두라! 핸다. 참 선지자는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며 고립될 필요가 있기.
편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누군가는 이 역할을 보여줘야 하기에 똑같은 인간일지라도, 몸에 익을 만큼 절제해야 한다. 억지로가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절제와 참음이 저절로 될때까지, 바발적으로 드는 이 마음.
적용/ 당신이 듣는 말씀이 말씀때문입니까 육신 때문입니까?
그래서 언젠가는 드러날 그때를 위해 30년 전부터 빼곡히 큐티해온 목사님.
욕심이 충천하여 거룩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25/ 미가야는 자신의 생명을 기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아합에 불순종하고 아합과의 전쟁터에 나갈턴데 이제 예언이 틀렷음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래서 시드기야에게 뺨맞고 옥살이도 했다.
그런데 아합보니까 북이스라엘이 죽어라 따라다니는데, 미가야는 어떻게 버텼을까? 선지자들에 명맥을 이어와서 오늘날 우리들 교회도 있다.
결국 하나님 뜻에 역행한 아합은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백성들은 예언대로 평안히 귀환했다.
[기도제목]
2019. 08. 11.
김효진
- 소장의 그릇된 욕심때문에 히스테리가 내리갈굼으로 흐르는데, 관계가 완화될 수 있기를.
- 더위가 물러가서 근무 환경이 나아지기를
- 9월에 하남돼지 (이모네) 일을 할텐데, 체력을 위해서
안식
- 독립에 위한 준비/계획 잘 할 수 있도록.
-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에게 무리 없는 언어 생활로 섬길 수 있도록.
- 가족 구원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