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4일 열왕기상 22:1-12
전쟁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우리가 입시전쟁 바람전쟁 끝나고 입시에 붙고 배우자는 집으로 돌아왔다면 전쟁이 끝났을까요? 전쟁에 한가운데에서는 하나님만 부르며 겸비함으로 이번사항만 해결해준다면 주님 하라는데로 하겠습니다 하며 겸비한 자세로 갑니다. 그러나 원하던것이 이루어지면 겸비함은 사라지고 내가 주님을 버리고 멀리 가버리고 교만해집니다. 또다른 과시를 위해 일을 꾸미게 됩니다. 22장은 아합의 마지막장인데 결론이 참담하게 납니다. 여전히 이겨야하고 과시해야하기에 아합처럼 3년동안 전쟁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겠습니다.
1.또다른 세상전쟁을 꾸밉니다.
1절 아람과 이스라엘이 3년동안 전쟁없이 지냈다는 이 평안은 아합에게는 쥐약입니다. 아합의 겸비함이 오래가지 못하게 하는 쥐약같은 시간입니다. 그동안은 가뭄도 오고 벤하닷도 쳐들어오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서 드디어 겸비함 까지 드디어 갔고 겸비함을 보시고 자신의 때가 아니라 자녀의 때로 재앙을 유보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자녀는 무슨죄인가 하겠지만 자녀도 회개하면 또 유보하실 수있다는것을 보여주신 겁니다.그러나 부모인 아합은 자녀에게 재앙을 주신다면 재앙은 나에게 주세요 자녀는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하며 옷을찢고 겸비해야 되는게 맞는건데 다윗은 재앙이 오니 본인이 나와 내 아비집을 치소서했고 아합이 수준이 낮으니 호호 불어가며 갑니다. 다윗때는 아비와 자녀 치소서 기도하는게 맞고 아합때는 재앙이 내 자녀대에 가지 않게 내가 다 재앙을 받겠습니다가 맞는거 같습니다. 아합은 수준이 낮아서 내가 재앙을 받겠다도 안됩니다.
*적용 : 내죄를 나에게 묻는게 좋습니까? 자녀시대에 묻는게 좋습니까? 다윗의 나와 내 집에 치소서 와 아합의 내 자녀에게 물으소서 하는게 좋습니까?
아합에게 3년이라는 시간의 편안함을 주니까 예전으로 다시 백. 돌아갔습니다.남편처럼 회개하고 바로 천국에 가는게 얼마나 큰 복인지 아합을 보면서 느낍니다. 제가 죄가 훨씬더 많아서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아합이 어떻게 이겼는지 알지만 시간이 지나니 아합은 승리에 자기가 속아서 자신이 대단한 책략가인줄 착각하며 위기를 잃어버리며 살아갑니다. 아합의 악행은 이세벨이 율법을 빙자한 간교한 술책으로 백성들사이게 숨어있었죠 죄가 아무리 가리워져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어서 아합이 엘리야를 보기만 하면 대적자요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요 라고 합니다. 아합처럼 우리도 이기면 내 실력이고 지면은 남탓 하나님 탓을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합니다. 드디어 아합에 대한 여러차례 죽음에 대한 예언이 드디어 사망으로 이루어지는 본문의 시작입니다.
*적용: 여러분은 지금 전쟁의 시대입니까, 전쟁이 잠깐 없는 시대입니까? 어떤때가 더 유익 했습니까?
2절 여지껏 안나오던 남유다의 여호사밧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물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에 우호관계를 유지하는것이 범죄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평생 전쟁이 있었다는거 기억하시죠? 동맹을 맺어본적이 없습니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한쪽은 바알을 섬기고 한쪽은 하나님을 섬기니 전쟁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우리가 믿지않는 친척과 너무 관계를 잘 맺으며 지내는것도 좋은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두 나라가 다 악합니다. 둘다 문제만 생기면 아람에게 붙습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악한 아합이지만 객관적으로 보기엔 정치 경제적으로 막강합니다. 벤하닷은 32개국을 연합한 아람인데 그 벤하닷과의 전투에서 두번이나 물리친게 팩트가 되다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순신장군과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겁니다. 이길수가 없는 칠천명가지고 10만명을 물리쳤기에 아합을 가지고 7장이나 지면을 할애한거 보면 알수있습니다. 이시대가 아합의 시대 모스트모더니즘의 시대고 사람이 왕노릇 하는 시대가 맞습니다. 아합이 7장이나 등장하며 꽃을 피웁니다. 끊임없이 예수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끌어내리고 초토화시키는 아합과 이세벨입니다.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왕에게 내려갔습니다. 아무리 바알을 서기고 엘리야를 죽이고자해도 나봇을 죽였어도 두차례 전쟁을 이겼기 때문에 아합은 이스라엘에서 국부가 된겁니다. 아합의 위상이 여호사밧보다 당연히 높았을겁니다. 게다가 고대근동에 역사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과 아람과 연합하여 앗수르와 전쟁했는데 이긴것은 아니더라도 소득없이 물러간 기록이 있다고합니다. 그것만해도 이긴것으로 본다는겁니다. 그러면 아합은 3번의 전쟁을 강국하고 이겼으니 국부가 맞게 된것입니다. 그랫 여호사밧이 아들을 주면서 혼인 동맹을 맺고 아람과 전쟁을 하면 이기겠지 하며 북으로 올라갔다가 아니라 내려갔다고 나옵니다. 영적으로 다운되는 길인였던 것입니다.아합과 이세벨은 백만대군의 군사력을 가진 여호사밧을 영육간으로 끌어내린겁니다. 이렇게 악의 영향력은 대단한것입니다. 이나라는 하나님나라의 예표였기 때문에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있었어야 합니다. 악한 아합을 도우면 안되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정치를 잘해보이는 아합이지만 성경에서 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아무리 이땅에서 잘 먹고 잘살아도 훗날의 평가가 중요하다는것을 알아야합니다.
*적용: 누구의 영향으로 지금 대단해보이지만 좋아보이는 곳으로 가면서 어디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3절 신하들보고 길르아 라못은 능히 탈환할 능력이 있는데 왜 잠잠하냐고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군대힘을 자신하면서 교만해서 탈환해야한다고 합니다. 아합과 벤하닷이 다를게 없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 하면서 아람과 연합을 했었지만 예전에 빼앗긴 길르앗 라못을 빼앗으려 합니다. 물론 길르앗라못은 아람이 빼앗은 땅이고 돌려주겠다고 약조하고 벤하닷이 목숨만 살려달라고 하며 약조하고 목숨대신 그 땅을 받기로 했었습니다. 벤하닷이 약속을 안지키니까 이제는 찾아와야 겠다고 하는겁니다. 명분도 있는 계획인것입니다. 벤하닷은 왜 약조를 하고 안돌려주었을까요? 아무리봐도 아합이 실력이 없고 무시가 되는데 칠천명이 어떻게 십만명을 이길수 있지? 라고 생각해보니 결국 여호와라는 신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가 무섭습니다. 아람은 도리어 여호와를 무서워하는데 아합은 자신이 잘해서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하나님나라때문에 어쩔수 없이 아합을 지켜주셨는데 그런데 다른사람은 아는데 아합만 모르는겁니다. 여호와를 버리면 그날로 지는 싸움인걸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져본적이 없으니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벤하닷은 길르앗 라못을 돌려주기가 아까워서 주지 않고 있습니다. 아합은 3년동안 회개하지않고 결국 둘이 똑같습니다. 사단은 아합을 3년동안 편하게 해서 아합이 하나님을 떠나게하는 전략을 쓴겁니다. 3년을 편하게 하니 멀리 멀리 사단쪽으로 가게 된겁니다. 아합은 전쟁2번 가뭄3년 할때는 믿는 흉내를 냈는데 이런인간이 되는것밖에 없으면 깨어있으려고해도 깨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한테는 전쟁이 없는게 아주 쥐약입니다. 전쟁이 없어도 깨어있을 수 있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인데 대부분 그러기가 없습니다. 교만이 올라오고 아람을 물리치겠다고 과대망상에 사로잡히게 하신것입니다. 전쟁이 없는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안됩니다. 결국 이것때문에 아합은 죽게 되었습니다. 길르앗 라못은 세도피성중 하나였고 동편지파의 므낫세 갓지파에게 주어졌던 땅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요단동편에 세 도피성중 하나인 레위인의 성읍이었습니다. 이곳이 요단동편이 전략적 요충지였고 산악지역인 이스라엘에 농업에도 적합한 비옥한 땅이었고 무역의 중심지였기에 이스라엘입장에서는 아람으로부터 반드시 빼앗아 와야 하는겁니다. 우리도 광개토대왕때 중국까지 넓혀졌지만 지금 찾으러 갈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꺼다 하며 찾으러 가는겁니다. 한국도 다들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진보 보수를 다 떠나서 한국이 위기이기때문에 한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 나라가 있어야 교회가 있고 예배를 드릴수있습니다. 한국은 끊임없는 침략을 당했지만 지켜주신게 동방의 예루살렘이 맞습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잘살았습니까? 기독교가 들어온때 부터 인것을 부정할수없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번영신학으로 인해 무당끼가 보인다는것을 듣고 있습니다. 아무리 반일 감정이 국민 감정이라고해도 명분이 없으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우리는 과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는것을 잘 압니다. 그런데 우리도 일본놈은 영원히 나쁜놈입니다. 오늘만 얘기 하는게 아니고 예전부터 얘기했던 것인데 이런 고정관념은 정말 무서운것입니다. 무엇을해도 일본놈은 나쁜놈 이런 고정관념은 무서운겁니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을때 유무상으로 현금으로 3억불 차관으로 2억불해서 모든 청구소송을 종료했습니다. 그런데 5억불이 지금은 작아도 그당시에는 일본도 전쟁에 진 후라 일본의 절반을 준것이고 그 돈을 받아서 박정희 대통령때 경제대국 5개년으로 잘살게 된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문제가 작년에 대법원에서 개인청구권을 인정해서 일본의 미쯔비시 준공의 강제징요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기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겁니다. 그럼 일본입장에서는 앞으로 개인들이 이 문제로 청구소송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에서도 이런 비슷한 판례가 있었는데, 1941년 태평양전쟁에서 포로였던 제임스킹이 일본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일본과의 평화협정이 원고들의 소송을 막고있고 원고가 받아야할 보상은 평화와 교환됐다. 하지만 후손들이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아가는 무한한 포상은 그 빚을 갚을 만한 것이다. 원고들의 희생에 무한한 감사를 하지만 원고들의 소송은 기각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시각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합니다.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익과 연결이 되기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잘살게 된걸 인정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불매 운동보다는 외교적으로 처리했으면 좋겠고 개인청구하라고 소송하는것을 사과하고 빨리 사과해서 시간을 벌어 원자재를 생산하도록해서 조용히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평등이 없습니다. 감정에 호소 할때가 아닙니다. 자존감이 높아야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과를 할 수 있는것입니다. 인정을 못해서 대사를 그르치니다. 팩트를 인정하는것이 실력중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4절 아합은 여호사밧을 너무너무 꼬여서 전쟁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스스로 전쟁에 참여하고자 결단했습니다. 내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말도 당신의 말과 같습니다 노래를 하면서 긍정적으로 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두 왕사이에 연대의식은 매우강했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남쪽 북쪽은 영원히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둘이 완전히 망할때까지 어떤 약속을 해도 다시 적이 되는겁니다. 그러니 아람과도 형제여 하면서 내것은 당신것이라고 외쳤지만 북이스라엘도 아람도 모두가 자기가한 약속을 안지키는겁니다.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신문에 칼럼에 6.25당시 한미 방위조약 체결을 한것을 이겼는데. 1953년 주한 미군대사를 지금의 청와대로 불러서 아무리 역설을 해도 미국이 들은체 만체 해서 오늘 한국은 공산국때문에 필요하지만 내일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이 조약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잠제적 침략자도 조약 당사자가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이 조약을 해야 한다. 근데 진짜 이런일이 일어났잖아요. 70년전에 조약을 맺어 놓은겁니다. 요즘 한국에 전쟁이 없다보니 또다른 세상 전쟁을 불러드린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모두 요셉처럼 일본의 피해자이지만 자신도 가해자일수 있다는것을 알고 요셉이 화해 요청했던것처럼 일본이 아무리 잘살아도 기대할것이 없습닌다. 믿는 기독교인 우리가 압도적으로 많기에 품위가 있어야 하는데 일본이 더 품위가 있어보이고 잘사는게 일본입니다.
다 폐허에서 시작했는데 선두를 일본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우리의 실상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적용: 여러분이 편안하니 탈환하고 싶은 길르앗라못 전쟁은 무슨전쟁입니까?
경상도 전라도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것은 서로의 열등감 때문입니다. 어렸을때부터 일본놈은 나쁜놈인것에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데 빨리 외교적으로 해결해서 시간벌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물을만한 선지 미가야를 미워합니다. 내가 하고싶은것을 막기 때문입니다.
5절 여호사밧이 이처럼 모든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것은 아합에게는 계속 기회를 주는겁니다. 여호와께서 계속 보고 있는겁니다. 여호사밧이 전쟁에 동참은 하겠는데 여호사밧이 여호와께 묻는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또하나의 선지자가 입니다. 인간이 다 아합같아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들어야 하는데 혼자서 큐티 하기 어렵기에 옆에서 함께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큐티 하는 운동이 일어나는게 왜 일어나야하냐면 혼자서 하기 힘드니 날마다 물어봐주면서 큐티했어? 오늘 사건이 일어났는데 넌 어떻게 들었어? 이게 일본을 물리치는 비결입니다. 그말 한마디때문에 걸려서 다시 생각하게되고 큐티하게 되는 겁니다. 서로 도와가면서 물어보고 행동하게 끔 해야합니다.
이렇게 사소한거 아무것도 아닌거 묻는것지만 그것때문에 온집안이 살아나고 회사가 살아나는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아합이 잘나서 벤하닷하고 이긴게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는데 아합은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6절 물을만한 선지자 400명이 기도도 없이 말씀도 찾지 않고 즉시 올라가소서 잘될겁니다 이렇게 얘길 해주는겁니다. 아합은 850명 다 죽였는데 어디서 400명을 뚝딱 만들어냈을까요. 이 사람은 굉장히 조폭두목같잖아요. 맛있는거 멋있는거 으시대는거 좋아하니까 400명 데리고 등장하는겁니다. 그러니 자격도 없는 선지자를 400명 자기말에 예스하는 어영 선지자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항상 최고를 좋아하고 맛과 멋을 좋아하니 이세벨은 죽을때도 화장을 하고 죽습니다. 바알선지자들이 다 죽었고 시드기야는 여호와의 영이라는 표현하는걸 봐서 명목상으로는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지만 그들이 여호와를 입으로만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합이 한번 말하면 무조건 섬기는걸 다 보았기 때문에 한사람도 노를 못하고 다 예스를 합니다. 무조건 다수가 옳은게 아닙니다. 나치가 독일교회를 히틀러에 의해서 핍박을 했어도 교회에서 한마디도 못하다가 본네퍼 한사람만 하다가 순교했습니다. 한사람 대적하기위해 400명의 어영선지자를 고용하는겁니다. 지는대도 또만들고 지는대도 또 만든느겁니다. 아합에 대적은 딴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인겁니다. 미가야를 위해 400명을 준비했습니다. 7절 에는 대문자 로드 6절에 로드는 소문자로 되어있습니다. 주는 불교의 주도 있고 이슬람의 주도 있지만 여기는 오직 여호와의 선지자 로드로 되어있는겁니다. 여호사밧은 산당을 제거하고 말씀을 가르치면서 개혁을 주도 하다보니 영적분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400명이 다 아닌것처럼 보여집니다. 행위로 판단하면 안됩니다. 부족해도 예수씨가 있는것을 봐야합니다. 8절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으니 미가야가 여호와께 묻는다는걸 아합이 다 알고 있습니다. 다 아는데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나한테 좋은가 아닌가만 보는겁니다. 미워한다는 뜻은 누군가에대해서 참을 수 없이 증오한다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아합은 참을 수 없을정도로 증오 하는 사람이 미가야 그리고 엘리야 가 있습니다. 그냥도 아니고 죽이고 싶은겁니다. 내가 진짜 선지자라면 나를 참을 수 없이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꼭 있어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진짜인겁니다. 예수를 믿는데 왠만큼 잘 믿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이 죽일만큼 미워할 사람은 없어요. 한쪽에서는 좋아하고 한쪽에서는 죽일만큼 미워할수 있는겁니다.
아합은 자기에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용서못합니다. 여호사밧은 은근슬쩍 질책하면서 미가야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9절 전쟁을 앞두고 듣기 싫은 흉한 말을 들어야 함이 사실은 여호사밧이 미가야를 데리고 와서 흉한말을 듣게하는것이 죽음의 길로 돌이킬수있는 기회인겁니다. 여호와께서 계속 아합을 보고 있는겁니다. 여호사밧을 통해 기회를주시고 또 주시는데 끊임없는 사랑으로 아합을 지켜보고 계시는데 아합은 보이지 않는겁니다. 전쟁에 승리를 하고 전쟁이 없다보니 하늘끝까지 올라가게 된겁니다.
*적용 여러분은 어떤사람과 같이 지냅니까? 물을만한 선지자를 머리로 좋아합니까? 가슴으로 좋아합니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증오합니까?
3.길한 말만 듣기를 원합니다.
10절 아합하고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딱앉아 있고 400명 선지자가 앉아있는 자리기에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공식적인 자리입니다. 400명의 선지자 집단이 공개적인 예언활동하는 예수 무당이 전하는 얘기를 듣는게 아합에게는 풍토가 되었다는겁니다. 11절,12절 시드기야가 철뿔을 만들어서 아랍왕을 쳐죽이면 된다고 실물교육까지 하면서 실감나게 예언을 했습니다. 완벽한 브리핑을 했는데 이 예언은 신명기 33장 16절 17절에 모세가 요셉지파를 축복한 내용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가 세상열방지파와 싸워 이길것이라는 예언이었는데 에브라임은 요셉지파의 후손인겁니다. 북이스라엘의 대표하는 예언을 시드기야가 말씀을 가지고 와서 철뿔을 가지고 와서 승리할것이다라고 하니 흥분된 아합은 맞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올라가기만하면 승리합니다라고 모두가 외치는겁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11절에 보면 시드기야가 자기를 위하여 예언한것입니다. 우리가 사역을해도 자기를 위해 모이고 자기를 위해 사역하고 성경가지고 수많은 계획안을 만들지만 보기에도 멋있는 철뿔이지만 열매가 없는것입니다.
*적용: 남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고 내가 하는일에는 길한 말만 듣고자 하는것은 무엇입니까??
나눔 - 지난주 말씀을 듣기전까지 나는 아합에게 괴롭힘 당하는 엘리야인줄알았는데 공동체와서 계속 악을행해도 여호와께서 나를 지켜보시는 눈길이 느껴지고 아합이라고 인정하는건 참 간단하다고 합니다. 비가와서 진흙탕 운동장보다 아스팔트에 주차하려고 권찰을 재촉했는데 권찰은 멀리서 오는 사람들에게 양보할 생각은 안하고 집도 가까우면서 좋은땅만 차지하려고하는데 니가 목자냐? 라고 하는겁니다. 이렇게 흉한말만 해주는겁니다. 계속 이렇게 흉한말을 해주는겁니다. 다른목장에서는 외도사실을 고백하고 회개했지만 새식구 올때마다 그 죄를 오픈하라고 아내가 구박하는것이 내 삶의 몫인것 같다고 합니다. 길한 말이 아닌것을 듣고 살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남편이 열등감이 없으니 다 듣는것입니다. 열등감이 있으면 니가 뭔데~~ 라고 하는겁니다.
열등감이 없으면 모든것이 다 들어지게 집니다. 이세상에 무서운게 열등감입니다. 내가 아합입니다 하면 잘 들으며 가는 목자님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3년간 없으면 또다른 세상전쟁을 꾸밉니다. 내가 너무 가고싶고 갖고 싶은것이라 물을만한 선지자를 싫어합니다. 나에게 길한 예언만 해주는 사람만 좋아하는겁니다. 가지 말라고 할까봐 증오합니다.
기도제목
아영
1.읽었을때 비포 에프터가 달라질수 있는 책을 쓸수 있길.
2.너무 극단적으로 가지않게 중심 지킬수 있길
3.매일 큐티할수 있길
정희
1.일어나야할 시간에 일어나 무의식속에 불안과 두려움을 기도와 말씀으로 물리칠수 있길
2.다시 말씀묵상하고 적용하고 몸에 습관으로 자리잡을수 있길
3.결혼준비할때 사소한거 하나라도 물으며 준비할수 있길
4.나와 남자친구의 믿음이 바로서고 가족들 구원의 통로로 쓰임받길
수지
1.직장 마무리 잘할수 있길
2.새로운 길을 가는데 두려움없이 기도로 물으며 갈 수 있길
3.아웃리치 끝까지 잘 붙어 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