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7. 28 주일예배>
일시 2019. 7. 28
찬양 나의 한숨을 바꾸셨네 ┃ 예수 열방의 소망 ┃ 전능하신 하나님 ┃ 나는 주의 친구 ┃ 이루실 주의 말씀대로(큐페 찬양) ┃ 온 땅의 주인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
본문 열왕기상 21:17-29
설교 김양재 목사님
세상의 권력이 끊임없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면서 찬탈하는 역사를 수없이 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싶은 850개의 신을 가지고 비교되면서 상아궁까지 짓고 거기에 비견되는 채소밭을 가지지 못해서 나봇을 율법의 이름으로 죽입니다. 세상은 이겼다고 축배를 들겠지만 이것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는 (중요합니다☆) 이세벨이 아니고 아합입니다.
악을 행해도 그래도 여호와께서 아합을 보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제가 묵상하면서 봤습니다. 세상은 여호와 앞에서를 모릅니다. 그래서 들으라고 끝까지 소망을 가지시고 우리의 아합에게 심판의 경고를 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는
첫째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17-19)
20절에 여호와 보시기에라는 표현을 썼는데, 선악의 절대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20절, 25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 앞에서 행한 악은 무엇인가요? 1차적으로 죽여야 하는 벤하닷을 그릇된 긍휼로 살려주었습니다. 세상은요, 그릇된 긍휼도 못 알아듭니다. 또 나봇의 포도원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닌데, 사겠다고 여호와께서 금하신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기 때문에 심판 받아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악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선악과 먹고 죄가 들어와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가 원제입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가 가장 큰 죄입니다. 나가서 우리 집은 맞고 너희 집은 틀렸고. 전라도는 맞고 경상도는 틀렸죠. 개인적으로 보면 다들 허벌나게 억수로 좋으신데, 정말 경상도, 전라도는 종교 같습니다. 이런 얘기도 하면 안 된대요. 우리 교회는 맞고 너희 교회는 틀렸어, 우리나라는 맞고, 어려서부터 정말 지금까지 일본놈은 영원히 틀렸어. 이러지 않습니까? 여전히 우리는 나는 맞고 너는 틀렸기에 이혼을 하고 회사가 분열되고 나라가 분열되고 망합니다. 이것이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이 세대의 특징은 악하고 음란하다는 것입니다.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잘 살게 되다보면 음란으로 다 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니 인생은 왕이고 왕비고 신하이고 간에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 하는 일입니다.
자! 그럼 여호와 앞에서라고 했으니 여호와를 알아야 되잖아요? 그분은 스스로 계신 자입니다. I am who i am 율법 자체이십니다. 노력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찾아오셔야 합니다. 그 분이 찾아오셔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율법적 관습을 이용해서 권력으로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율법이 의로운 사람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을 봅니다. 권세자가 자기 유익 얻으려 하면 법은 악행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우리가 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고 유권무죄, 무권유죄인 것입니다. 그런 율법 말고 성경이 나를 읽고 지나가야 합니다.
17절입니다.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왕은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게 한 장본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도원을 갖기 위해 나봇 같은 의로운 자를 죽게 하고 자기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런데도 심판의 예언을 듣고도 심판이 임하는 것 같지 않으니깐 (죄인들은 망각의 은사가 있어) 그것을 잊고자 탐욕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호와 보시기에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모든 일을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장로·귀족들도 권력에 기생 하기 위해 입 다물고 있었지만은 나봇을 죽게 하였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도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나봇이 남아있었습니다. 믿음은 자격과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합은 갈멜산에서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지만 지식적으로 알았지만 회개가 안 되니 삶을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탈취하고 기뻐하는데 우리는 왜 나봇은 어이없이 죽고 아합과 이세벨은 어찌하여 축배를 들고 있는지 또 이해가 안 됩니다. 큐티를 해도 일상생활에 들어가면 또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설명 많이 했습니다. 지난 번 예레미야 애가 1장 5절에 악인의 형통이 이스라엘 죄 때문이라고 했는데, 열왕기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읽혔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글입니다. 열왕기서는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선지자가 있었지만 결국 이스라엘 죄 때문에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고 다 자기들의 옳은 소견대로 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바벨론을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봇처럼 앞날이 보장된 아합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적용 때문에 아합의 제안을 거부하는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을 남은 자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나봇 때문에 이스라엘을 바로잡을 엘리야를 또 보내십니다. 나봇의 적용으로 아합을 심판하실 때가 된 것입니다. 항상 악을 행할 때는 여호와께 물었다는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호와께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나봇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어 죽일 정도로 악한 아합과 이세벨에게 나아가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지적해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깐 여호와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잖아요.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이 백성을 위해 여호와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기 때문에 말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서부터 보면,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뜻과 생각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래요,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깨달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사명이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에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악을 심판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곳에 말씀을 가지고 갔을 때 나는 할 수 없었지만 말씀이 살아서 다들 자기 속에 악을 찔러 쪼개니깐 이 찔림을 받고 이혼을 안 하는 등의 역사를 경험케하셨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은 나는 간 데 없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내속에 계시기 때문에 주어진 여호와 말씀에 순종하여 제가 가서 한 일은 이 세상의 멸망을 선포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입니다.
저희 남편이 갔을 때 우리 남편의 육은 죽어서 망했지만 구원받고 영이 살아서 특별히 말씀이 임했기 때문에 제가 멸망 회복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늘 애기하지만은 피아노 연주할 때 이겨야 되고 학교에 남아야 되니깐 늘 몇 명 안되는 심사위원님들 앞에서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지금은 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여호와가 말씀하시니깐 이게 두렵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 비결은 하나님께서 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것을 비교해보아 압니다. 인간적이라면 매주 주일 이 강단에 서는 이런 벌을 어떻게 받고 살겠습니까? 한 번씩 설교 하라고 해도 죽겠다고 하는데. 이것은 여호와 말씀이 임하여는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란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8절. 명령을 하십니다.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아합이 지금 북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하는데 자기의 직분을 떠나서 머물러야 할 사마리아 성을 떠나서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갔다고 했잖아요. 그런 아합을 만나러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를 행하고도 회개치 않는 절대 권력을 향하는 아합왕을 대적하여 만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에게 충성하고 남편에게도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하는 유교적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왕에게 충성과 복종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 말이 안 되는 악을 행해도 복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아합 부부에게는 대적의 영으로 나아가야 됐습니다. 여기 만나라의 원어는 대적하다, 적대적으로 마주치다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지금 말씀으로 경고하며 대적의 영으로 만나야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윗선은 누구입니까?
# 한 목자님의 보고입니다. 목원이 강한 반발을 할 때마다 같이 가고 싶다고 함께 하자고 말하며 하나하나 제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며 단어 하나하나 알려주고 이해시켜주고 있으며 큐티 말씀을 깨알 적기 처방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요즘 시간이 많이 걸려도 처방대로 매일 큐티 설교를 깨알 적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처방이 바로 말씀이 임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여러분이 다 저를 흉내 내다가 큐티를 깨알 같이 했잖아요? 다른 생각 안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큐티를 하시고. 여러분이 다 저를 흉내 내다가 이혼 안 하잖아요? 그런 흉내는 내도 좋은 것 같습니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말씀을 필사만 해도 좋은데 생각하고 큐티한 것을 깨알 같이 적어보세요.
자 19절입니다.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이세벨이 음모를 꾸미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죄를 계속 아합에게 물으십니다. 그것은 하와가 꼬여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어도 남자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이세벨이 무엇을 안다고 그에게 묻겠습니까?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어떻게 엣바알의 딸인 그녀에게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이방나라 기브온에게 속았어도 여호수아가 믿는 자이기에 속은 자가 더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항상 책임을 지는 자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잘못하면 모든 책임이 저에게 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책임을 져야지 생각하면 가위가 눌려 살 수가 없는데 그러나 우리 공동체가 이해타산이 없기 때문에 또한 여호와 말씀이 저를 인도하시기에 이렇게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도 이해타산이 없는 이런 공동체가 지상에 있겠습니까? 가족도 이해타산으로 만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깐 가족도 교회도 이 중심잡는 한 사람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 나봇을 죽인 악행을 내가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죽이고에 해당하는 원어의 원형은 산산조각으로 부수고 죽이다. 돌에 맞아 죽은 나봇의 시체를 연상케 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재산까지 빼앗았느냐?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는 영원히 목 마르기 때문에 상아궁에 거해도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수 있는 채소밭이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 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이 영원히 목말라 있어서입니다. 부자들도 그렇지만 부자들이 아니더라도 갖고 싶은 것을 꼭 가져야 하는 자기 중심성 인격장애는 어려서부터 고쳐줘야 합니다. 갖고 싶은 것을 반드시 사주는 이세벨의 눈 먼 사랑은 자기 중심성으로 발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애성이라고도 합니다. 자기 중심성에 파묻혀 살다가 우상의 본거지 여인이 와서 아합의 탐욕을 이루어주니깐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키워낸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많은 것입니다. 음악, 미술...어쩌구, 파블로가 저쩌구. 재산을 넘어서 사실 이스라엘의 기업을 빼앗는 것 자체는 약속의 땅에서 끊어지게 하는 중대한 범죄였기 때문에 심판의 경고를 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아합이 그래서 의인인 나봇을 돌로 쳐 죽여 그의 피를 개들이 그를 핥게 했기 때문에 아합 너도 그대로 당해봐~ 개들이 네 피를 핥을 거야. 그대로 당해봐. 우리가 당하는 것은 삶의 결론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여러분 삶의 결론 인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죽이고 빼앗고 싶은 정도로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부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차지해서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목자님의 나눔입니다. 주식과 선물, 옵션, 경마를 하면서 재산을 탕진하고 술먹고 집에 들어와 소리 지르고 가재도구를 부수고 육탄전을 하며 돈의 노예가 되어서 너무 돈을 빼앗고 싶은 남편을 알콜중독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내 연민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내 죄가 보이기시작하니깐 인간도 아니라고 남편만 정죄하고 살던 내가 남편을 찾아가 내가 돈을 너무 좋아해서 당신이 돈 좋아 도박할 수 밖에 없었다고. 도박하게 만든 것이 바로 나로 인함이라고. 사과를 했고. 교회만 다닌다고 하면 당장 퇴원을 시켜주겠다고. 모두가 반대를 했지만, 퇴원한 주일서부터 모든 공예배를 드리게 되는 출애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에 들어와 죄를 오픈하고 도박과 술을 조금씩 끊게 되고, 편안해지고 공동체에 와서 말씀을 듣게 되니깐 예전 주식했을 때는 말씀이 없어서 욕심으로 했지만 지금은 마음이 안정되고 말씀의 공동체에 들어왔으니깐 안정된 투자를 하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벤하닷에 넘어가 고린도 전서에 그들의 다수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았음으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처럼 공동체에 와서도 수차례 멸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남편이나 나나 똑같아서 말씀으로 심판의 경고를 받지 않으면 여전히 악을 행하는 저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서 주식을 투자하고 도박을 투자하면 이익이 남지 않을까 ?옛날에는 말씀이 없어서 망했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
두 번째는 선지자를 대적자로 생각해서 심판 받습니다. (20-24)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기에 악을 행했다고 나옵니다. 아합보고 하는 얘기입니다. 엘리야보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17장 18절에서 아합이 엘리야보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그랬습니다. 아합은 말씀이 안 들리니 엘리야 행동이 당장 눈앞에서 비를 주관하고 풍요를 내리는 신이라고 믿었던 바알을 진노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인이 돈을 주고 시어머니가 돈을 주면 거기를 분노하게 되면 돈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왜, 교회를 나가서 나를 괴롭히냐고. 내가 교회 나가서 시어머니 돈 안 나오고 장인에게서 돈이 안 나오니 대적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 나가는 우리 보고 대적자라 하고 괴롭히는 자라고 합니다. 특별히 조상신을 섬기는 우리나라는 눈앞에 큰 우상입니다. 조상의 말을 잘 들어야 무언가 잘 될 것 같은 것입니다.
# 목자 나눔입니다. 20년 동안 효자 남편과 시어머니께 당하니 원통함으로 마지막 장례식에 분을 쏟아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효자이던 남편은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시니깐, 20년을 그렇게 모셨는데 다 돌아가시자 손위시누이 3분께 그 효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잘 보살펴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안 나오면서. 이러면 정말 돌아버립니다. 이들 부부가 다 교수입니다. 너무나 교양으로 남편을 대하다가 20년 만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육탄전으로 불같은 남편과 싸우다가 드디어 남편은 직장 근처에 원룸을 얻어서 집과 원룸을 반반 살고 있대요.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간증하다만, 지금은 저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분이 목자 잘하다가 남편을 객관적으로 보셨다고 생각하는 게 사이가 좋은 것만이 구원의 시각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분이 이렇게 된데에는 딸 둘 세모녀가 카타콤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 맹렬히 괴롭게 하는 자여, 대적자여 하니깐 어렸을 때부터 큐티하다가 남편이 들어오면 얼른 가방에 두고 애들도 장난감가지고 노는 거에요. 아빠 온다 하면. 전부다 신앙생활을. 아이들이 그러니깐 믿음이 정말 잘 들어가는 거 있죠. 그리고 우리들 교회 좋은 거 너무나도 잘 알아서 이 아이들이 여기서 중고등부를 거쳐서 최고의 대학과 의과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니 남편에게 육탄전을 버릴 수 있는 거죠. 실력 행사를 하셨습니다. 남편이 핍박을 해줘서 아이들이 자립신앙을 가지게 되어서 저는 대학 갈 때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교회 와서 숨을 쉬니깐 교회 오는 것을 너무나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아합이 본문과 같이 엘리야에게 대적이라고 부르면서 나를 찾았느냐! 합니다. 나봇을 죽이고 나서 이게 죄라는 것을 알아요. 그러니깐 너무나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나에게 오지 않을까? 이러면서 아합이 능동적으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나봇의 포도원을 취했는데도 불안한 마음이 있는데 엘리야가 와서 이러니깐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하면서 뭐 낀 놈이 성낸다고. 엘리야에게 이러는 것입니다. 이 목자도 편해졌어요. 남편도 이제 반밖에 안 오니깐 교회도 맘대로 애들도 다 S대 가고 그러니깐 이분이 불같은 시험 때는 죽을 것 같이 믿음생활 하다가 편해지니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믿음을 지켜내기가 힘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잘 되도 택자는 공허한 것이 있고 불신결혼인 저는 이제 저에게 믿음의 완주가 이 땅에서 가장 절실한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정말 들어갈 때 나갈 때가 다른 것입니다. 예배를 목숨 걸고 사수하시더니 애들이 대학 들어가고 나니 믿음 지키는 것이 기도제목이 되었대요. 절실한 기도제목이 되었대요. 그래도 오늘 아합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해서 회개하는 것을 볼 때, 악을 행했어도 여호와 앞에 붙어 있으면 보시니깐 염려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붙어만 있으면 여호와께서 보시잖아요.
21절서부터 입니다.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21절에 너를 쓸어버리되는 너희 후손이라 번역이 되었습니다. 악인에게 속한 자는 자녀뿐만 아니라 모두 멸망의 대상이 되어서 하나님의 엄중함은 다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맹렬한 불길처럼 다 쓸어버리겠다. 아합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고 범죄케 했기 때문에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임종 후에 무덤에 뭍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체가 잔혹한 들개의 먹이가 되고 공중의 새 먹이가 되며 성벽 밖은 온갖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로 고대 근동에 이용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는 이세벨이 쓰레기와 같이 더럽게 여겨져서 버림을 당하게 되어서 개들에게 먹힐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은 극도로 분노를 표출하고 계시고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왕과 왕비로서 잘 살던 사람 아닙니까?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누구의 대적자입니까? 아합의 대적자 엘리야입니까? 엘리야를 괴롭게 하는 아합입니까?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
세 번째는 아내에게 충동되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25-26)
여자의 머리 남자, 남자의 머리 그리스도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여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데요.
(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 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이와같은 참혹한 심판이 아합에게 선포된 이유를 밝히면서 아합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려서 나봇의 기업을 팔라고 한 행위 자체가 악인 것입니다. 나봇의 집에 여호와의 기업을 끊어놨잖아요? 약속을 끊어 놨어요.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못 나가게 한 사단의 죄수 역할을 아합이 한 것입니다. 그 자신을 팔았다는 것은 나봇의 기업을 팔게 했다는 것인데 이세벨의 종이 된 이유가 아내 이세벨이 계속 꼬드기고 충동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직역을 하면, 아합은 자신을 스스로 팔았고 이세벨은 그를 유혹하였다. 이게 모두 능동형입니다. 옛날 개역한글에는 아합이 충동되었음이라 하였는데 수동태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아합보고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아합을 보고 계속 경고하십니다. 이런 게 있습니다. 왜 선생님은 나만 보고 야단 쳐. 엄마는 나만 보면 야단 쳐. 목사님은 나만 보면 이상하게 그러더라. 하면서. 나만 보고 야단 치는 게 좋은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이 아합만 보고 계십니다. 굉장한 사랑입니다.
결국은 유혹에 충동되는 이유가 욕심이 있기 때문에 충동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아무리 유혹해도 안 넘어갑니다. 속어 넘어가는 사람이 한결같이 욕심이 많아서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말이 안되는데 속아 넘어갔다고 합니다. 착해 보이는 사람이 잘 속습니다. 착해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욕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착한 사람이 잘 참습니다. 그리고 성질 더러운 사람이 끝 판 냅니다. 집어 던지고. 이런 사람은 이혼 안합니다. 착한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잘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없으면 이 세상에 아합입니다. 이단도 욕심이 많아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단에 왜 가있어요? 남자 소개시켜 준다. 여자 소개 시켜준다고 넘어갑니다. 그곳에 가면 예쁜 여자가 있다고 한 대요. 왜 거기서 못 나오냐고 물으니 예쁜 여자들이 그렇게 있다고. 남자여자 소개시켜준다 하고 돈도 일확천금해준다 하니. 그런 걸 생각하면서 착한 게 악한 것이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도 안 속는데. 상식이 없습니다. 큐티를 잘하면 얼마나 품위가 있어지는지 모릅니다. 속여 먹기 쉬운 사람이 그게 욕이에요. 칭찬이 아니고. 바보 아니에요?
아합은 부드럽고 굉장히 유약합니다. 두려움도 많고. 꼭 하는 짓이 밥도 안 먹고 땡깡이나 부리는 꼭 어린 아이 같지 않아요? 그런데 그 안에 욕심이 이 만한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니깐 믿음으로 포장해야 하니 죽을 지경인데 그 욕심을 이루어주는 부인이 온 것입니다. 악역은 부인 이세벨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세벨은 불신자니깐. 그러니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잖아요? 이것이 이세벨의 완전 범죄로 끝날 줄 알았는데 누가 안 속았죠? 하나님이 안 속으셨습니다. 왜 안 속았죠? 하나님이 보시기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합을 계속 보고 계시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도 죄 지어봐요. 하나님이 보신다잖아요. 누구를 속이겠어요. 하나님이 보신대요. 이게 게임 끝입니다. 내가 어딜 간들 하나님을 속일 수 있겠어요. 세상이 이런 얘기 못 알아듣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아합은 이세벨을 만났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기 좋아서 만나면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만나면 안 될 사람을 만나서 이런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만나서 안 될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사업을 하고. 이게 바로 충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아합과 이세벨 그들의 만남은 가정을 망하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만남이었습니다. 둘은 서로 좋아했을지 모르겠는데, 어떤 만남은 기업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는 만남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놓고 만나는 공동체임에도 교회 안에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불행하게 하고 가치관이 다르니깐 서로 고소를 하고 비방을 하면서 분열을 일삼습니다. 모두가 자기 유익에 충동되었고. 채소밭 하나 못 가져서 밤잠 한 번을 못자는 그런 목사가 있고 목자가 있고 권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입니다. 이 한 사람의 가치관 때문에 교회가. 그런 사람이 윗자리에 있을수록 교회가 왔다갔다 나라가 왔다갔다 집안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지만, 상대를 불행하게 하는 만남은 되면 안 되잖아요. 내가 누구를 만나서 상대를 불행하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를 만난 사람들이 가족들이 나 때문에 불행하다면 나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면 그건 아니지 않아요?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그래 나는 당신 만나서 불행해. 당신 만나서 고통스러워 한다면 그게 누구 말이 맞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이 있어도 안되고 내 자신도 남을 불행하게 하면 안 되겠죠. 그런 약한 것을 충동질 하면 안 되겠는데. 아합과 엘리야와의 만남에서 진짜 괴로운 사람은 엘리야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런 말 안하는데 아합은 엘리야를 볼 때마다 저 괴롭게 하는 자여,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냐 합니다. 이것을 보면 나는 괜찮은데 상대방이 나때문에 괴로워서 죽습니다. 대적자라고 죽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립니까? 그래서 성도의 믿음은 인내에 있는 것입니다. 인내해야 하는데 세상은 그것을 참지 못합니다. 선함을 판단하는 것은 여호와 앞에서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말을 모릅니다. 불행하냐, 행복하냐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만 두니깐 그 잣대를 행복이냐, 불행이냐를 찾으면 끊이 없는데 아합이 그 가치관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인데도. 엘리야를 볼 때마다 대적자여, 나를 괴롭게 하는 자라며 네 죄를 알렸다!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죠? 교회만 나가도 네 죄를 알렸다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대표하는 아모리 사람들을 여호와께서 쫓아 내셨다고 표현함으로 사실 가나안 족속들을 다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업으로 하게 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아모리 족속들이 쫓겨 나간 것처럼 이제 너도 아합! 불신결혼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의해 쫓겨난 신세밖에 될 수 없다. 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네 것이 어딨냐~ 아합이 잘나서 전쟁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술에 취해가지고 이겼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네가 잘나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이제 너는 개들의 밥이 될거야.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나는 상대방 때문에 고통 당하나요? 행복한 가요? 또 상대방은 나 때문에 불행할까요? 행복할까요?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둘 다 믿음이 없어서 둘 다는 행복합니다. 그러니깐 둘이 행복하다고 해서 좋은 결혼은 또 아닙니다. 왜냐하면 엘리야와 아합과의 만남은 영원히 원수이니깐. 이것을 잘 생각하면서 적용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이 다르니깐, 그것이 아니고 엘리야는 그래도 아합을 한 번도 대적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이 언어의 할례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똑같은 건 아닙니다. 이해 되십니까?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이지만 그러나 여호와께서 아합을 이렇게 보시니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합이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겠어요?
네 번째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27-29)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여호와 앞에서가 나올 때부터 알아보았는데 아합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쳐다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27절입니다.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7장에 걸쳐서 아합 얘기가 나옵니다. 열왕기에서 제일 많이 할당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아합과 똑같습니다. 아합과 성정이 너무 같은 것입니다. 엘리야하고 성정도 같지만 아합과 성정이 너무 똑같습니다. 드디어 찢고 동이고 금식하며 누우며 다니더라. 입이 없어서 회개를 못하네요. 어떻게 하면 더 근심하며 회개할까. 5개의 동사가 눈앞에 이루어지듯이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몸을 동이는 것은 구약의 대표적인 회개의 모습입니다. 금식을 하는 것은 죄 때문에 강력한 자기 부인의 표현입니다. 풀이 죽어다닌다는 것은 옛날 개역한글에는 천천히 행보했다고 했습니다. 그 열심이 하늘을 찌르다가 풀이 죽어서 앉으나 서나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모두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 주 묵상을 하면서 세상에 이세벨이 그렇게 죄를 졌는데 이세벨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고 믿는 아합의 그 속의 욕심을 보시고 아합을 계속 보시는 겁니다. 그 아합에게 기대할 것이 이제 회개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예수 안에서 관심을 가지고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나를 대적자라 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 자라는데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잘 못을 하다가 이 한 절 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28절에,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엘리야야 엘리야야 아합이 회개했어~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않고 아들 시대로 유보하려고. 하나님은 이러십니다. 그러니깐 죄인이 돌아오자마자 반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눈물겨울 정도가 아니고 제가 이번에 아합을 묵상하고서 하나님 정말 불쌍하시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말을 안 들으면 이만큼 하고 요만큼 회개를 하니 (박수치시며) 회개했네, 회개했니. 맨 발 벗고 돌아온 탕자를 맞아주시듯이 죄는 철저히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모습을 여기에서 여실히 보여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나봇을 죽이고 벤하닷을 죽이건 살려주건 전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통해 선악의 기준은 오직 여호와 앞에서 인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부르심 받은 이들이 성도이고 교회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 사명인 것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악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가 나가서 이런 것들을 막아야 하고 성평등 조리안을 막아야 됩니다.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아합은 교회 안 다녀요? 교회를 다녀도 못알아 듣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가 주홍빛 같이 죄가 많아도 오늘 제발 말씀이 들려서 옷을 찢고 몸을 동이며 금식하며 누우며 다니더라의 회개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이번주 공동체 고백은 아까 모든 가족 일어나셨는데 이 초원님이 아버님은 평생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아합처럼 마지막에 극적으로 영접하고 천국 가셨습니다. 이 초원님이 늘 아버지 구원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보니깐 선물을 주셨습니다. 7월 초에 카톡방에 기도제목을 올리셨습니다.
어머니, 여동생, 가족 모두 예수 믿어 구원 받고 천국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께서 골육종 4기로 항암치료 중인데 심신이 약해지셔서 이제 우시네요. 오늘 카톡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이 여자의 자궁에 점이 되기까지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셔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죄인된 우리를 지옥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에요. 그래서 온갖 고통 당하시고 멸시 당하시고 수치와 조롱을 당하시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들이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고 천국에 가시길 원합니다. 아이들 생모, 친모가 금융 사기를 쳐서 10년 간 가출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빚을 갚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고 어린 아들, 딸을 일 하는 곳에서 키울 수밖에 없어 일 하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저를 교회로 부르시고 예수를 믿게 되니 천국가는 소망이 생겼고 제게 닥친 고난이 감사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교회를 갈 일이 없었을뿐더러 그냥 대학교수로 행복한 가정생활 하다가 지옥에 갈 것이 뻔 하였기 때문이죠. 아버지 하나님이 너무나 아버지를 사랑하심이 느껴져요. 암이라는 병을 주시지 않았다면 아버지께서 교회를 다니시고 예수 믿고 천국 가시기 매우 어려울 것 같다는 하나님의 생각이 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슬프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투병가운데 많은 고통과 연약함을 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세요. 저도 기도할께요. 그리고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생각나시면 회개기도 하시구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기도제목에 어머니 무교, 아들 며느리 손자 기독교. 딸·사위조카가 카톨릭이라고 올렸어요. 이 아버지께서 1958년도에 연세대 필수 교양인 채플을 드리면서 그때 하나님을 알게 되셨는데 가난해서 차비가 없어 동대문에서 신촌까지 걸어 다니셨대요. 그런데 대기업 임원까지 역임하시고 은퇴하셨는데. 그렇게 대학교 떠나고 60년 간 떠나게시다가 초원님이 아무리 전도해도 안 되는 거에요. 너무 강하신 거에요. 아합처럼 심판의 선고인 골육종 암 발병 이후에 아들이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고 결국 이제 손드시고 주님을 영접하시고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시기 얼마 전입니다.기도문 띄어주세요.
[기도문]
지금까지 하지못해 왔던 하나님과의 교감을 병에 걸려 안식을 주시는 이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육필로 기도문을 쓰신 겁니다. 기가 막힌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영접이라 생각해요. 전 아합이 두려운 것이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로 끝날 뻔 했는데 마지막에 회개한 것처럼 이 아버님도 마지막에 영접하고 천국에 가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내 집사님은 친모도 아닌 계모인 집사님이 아버님이 영접하셨다고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이게 구원이라 한 마음되어 눈물로 감사를 전하고. 아들 딸도 옛날에 속 썩혔는데 나와서 교회도 잘 다니고, 잘 다니겠다고 고백하고. 어머니도 이제 교회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누이 동생도 카나다에서 노력해보겠다고 했지만 다닐 줄 믿습니다. 이 집 대박 맞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호와 앞에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 모두 돌아올 줄 믿습니다.
말씀 맺어요.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는 이렇게 말씀으로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선지자를 대적자로 생각하니깐 심판을 받습니다. 아내에게 충동되어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이지만 오늘 아합을 봐주신 하나님 사랑 때문에 내가 악을 행하고 있어도 여호와께서 계속 봐주시기를 기도하여서 우리는 너무나도 두려워하고 모르는 것도 많지만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제겐 참 두려운 게 많습니다
잘 모르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부끄러운 일은 헤아릴 수도 없고
지치고 힘든 때에도 그 때도
의연한 척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좋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다행입니다
오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서 난 참 좋습니다
기도제목
여호와 앞에서 악을 우리가 행하기 때문에 말씀으로 경고하기 위해서 내가 말씀으로 준비되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나에게 이처럼 말씀을 전해주는 자를 대적하지 말고 괴롭게 한다고 하지말고 감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내가 고통과 불행을 주지 않는 자가 되지 않고 감사로 기억되게 해달라고. 지금은 고통과 불행을 준다할지라도 언젠가 이 땅에 마지막날 감사로 기억되는 사람이 될줄 믿습니다. 내 옆에 식구가 회개하도록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도록. 굉장히 길고 긴 싸움이지만 인내하면서 기다리도록. 여호와 보시기에 이렇게 악을 행해도 여호와가 보아 주신다고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아합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도 그런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절대 선악의 기준이 하나님이라서 감사합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나는 항상 선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롭지 못해서 나의 하나님의 그 기가막힌 복음을 전하면서 대적자와 괴롭게 하는 자라는 소리를 의로운 핍박이 아니라고 지혜 없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미련하여서 들을 때가 많습니다. 아합을 묵상하면서 주님 부드럽고 유약해보여도 어린 아이같아 보이는 아합 속에 그 큰 욕심을 사단이 놓치지 않고 이세벨이 와서 충동했을 때 넘어간 아합을 보면서 아버지 하나님 바로 그것이 저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수없이 많은 의로운 나봇을 죽이면서도 그것이 모두 이세벨이 한 짓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내가 항상 옳고. 그렇게 아합이 성경에 길게 언급이 돼있나를 생각하며.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주님.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두려운 것도 많고 그렇게 내가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고 그렇게 당연히 그렇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으니 또 근심하고 답답해 하고 있으니 두려움이 몰려오고. 나의 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옵시고.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정말 그러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두려움의 실체가 항상 부족한 저의 죄 가운데서 나오는 것인데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연약하고 부끄러운 것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래도 여호와 앞에서 하나님 항상 나를 보고 계신다고 하니 여호와 앞에서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들어가 회개하고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그런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내가 날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하나님, 세상이 모르는 이런 기쁨을 가지고 나갈 수 있도록. 내가 죄 가운데 있어도 내가 죄를 보니깐 시원케 되며. 그래서 이것을 전할 수 있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어서 우리 모두가 여호와 앞에서 악한 자이지만 여호와께서 보시는 인생을 살고 우리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볼 수 있게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도와주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참으로 이 세상 가치관에 젖어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모르는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시고 차별 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붙들어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7. 28 목장예배>
여호와 앞에서 한수진 목장
일시 19. 7. 28. 4-6시
장소 카페 두레브
참석 한수진, 우지현, 이은영
나눔 오늘은 우리 목장 행사로 곧 다가올 지현이의 생일 맞이하여 생일 파티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도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을 가지고 깊은 교제를 하였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자 아합과 같은자신의 모습을 나눠주었습니다. 마지막 아합의 회개처럼 한 주도 우리 모두 일상생활 가운데 큐티하고 회개하는 한 주 되었으면 좋겠다고 릴레이 큐티 나눔작정하고 기도하고목장을 마쳤습니다.
# 지현이가 생일 당일 날(7/29) 깨알큐티 나눔 해주었습니다.
너무 귀한 나눔 고마워 ㅠㅠ 큐티 나눔하고 목장의 위로와 말씀의 긍휼함을 입은 지현이가 마지막으로 나눠준 글.
다들 고맙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가 힘든걸 드러내지 않고 의연한척 하는게 어른스러운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은영이 말처럼 힘들면 누구도 만나기 싫어서 피하고 굴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게 오히려 더 아이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일이라고 만나자는 친구들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왜 나는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위로해주려는 사람들을 미리 쳐내려고 할까 참 이상하구나 ㅠㅠ 하는 생각이 들었어용.. 누군가 아픈데를 건드리면 진짜 터질거 같고 그러면 진짜 아프고 힘든게 사실이 되는거 같아서 자꾸 저 혼자만 갖고 있으려고 했던거 같아요
이런것도 조금씩 고치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ㅎ
조금씩 나누며 가겠습니당!
우지현 기도제목
1. 엄마 MRI 결과를 위해.
2. 취업에 있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나의 욕심인지 잘 모르겠다.
고민되는 순간 혼자굴 속에 숨지않고 말씀에서 주의 뜻을 구할 수 있도록.
3. 생활예배 회복
이은영 기도제목
1. 아웃리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도록.오는 주 바자회 있는데 은혜롭게 진행되도록.

2, 우선순위 잘 정해서 한 주도 은혜롭게 살수 있도록(큐티, 운전면허, 강의)
3. 관계에 있어서 욕심인지아니면 뭔지..잘분별 잘 할 수 있도록.이 문제를두고큐티해보기.
한수진 기도제목
1. 회사에서 감정조절 잘 할 수 있도록.
2. 비교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내 죄 보고 회개하는 한 주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