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
날짜 : 2019.07.28
본문 : 열왕기상 21:17 ~ 29
오늘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는 이세벨이 아닌 아합이라고 하십니다.
악을 행해도 여호와께서 아합을 보시고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이번에 묵상하면서 보았습니다. 세상은 여호와 앞에서를 모릅니다. 그래도 제발 들으라고 끝까지 소망을 가지시고 우리의 아합에게 말씀으로 심판의 경고를 하십니다.
그래서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는
1. 여호와의 말씀으로 심판을 경고해야 합니다.
20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라는 표현을 썼는데, 선악의 절대 기준이 사람이 아니고 여호와께 있다는 것입니다. 20절~25절에 여호와 보시기에 여호와 앞에서 행한 악은 무엇인가요? 일차적으로 죽여야 하는 벤하닷을 그릇된 긍휼로 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닌데 사겠다고 여호와께서 금하신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기 때문에 심판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악의 개념은 무엇인가요? 선악과를 먹고 원죄가 들어와서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즉 나는 틀리지 않았다가 가장 큰 죄입니다. 이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의 특징은 악하고 음란한 것입니다. 악하게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잘 살게 되다 보면 음란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이 세상의 원리입니다. 그러니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는 것이 그냥 하는 일입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 율법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노력해서 알아지는 것이 아닌 그분이 찾아오셔야 합니다. 말씀이 찾아오셔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율법적 관습을 이용해서 권력으로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니 율법이 합법적으로 의로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도구가 됨을 봅니다. 권세자가 자기 유익을 얻으려 한다면 법은 오히려 악행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봅니다. 그런 율법 말고 성경이 나를 읽고 지나가야 합니다.
17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왕은 이세벨의 영향으로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게 한 장본인 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을 뿐만 아니라 포도원을 갖기 위해 나봇 같은 의로운 자를 죽게하고 자기 욕심을 채웠습니다. 그런데도 심판의 예언을 듣고도 심판이 임하지 않는 것 같으니 그것을 잊고자 탐욕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호와 보시기에 하나님은 아합과 이세벨의 모든 일을 보고 계셨습니다. 아합은 갈멜산에서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았지만 지식적으로 알았지만 회개가 안되니 삶을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우리는 나봇은 억울하게 죽고 아합과 이세벨은 어찌하여 축배를 들고 있는지 또 이해가 안됩니다.
큐티를 해도 일상생활에 들어가면 이해가 안됩니다. 지난 번 예레미야 애가 1장 5절에 악인의 형통이 이스라엘 죄 때문이라고 했는데 열왕기서는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선지자가 있었지만 결국 이스라엘 죄 때문에 포로생활을 하게 된 것이라는 깨달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를 보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자기 소견의 옳은대로 행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없이 바벨론을 형통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봇처럼 앞날이 보장된 왕의 제안을 거절하는 이 말도 안되는 적용 때문에 아합의 악에도 불구하고 그 적용하는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을 남은 자 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나봇 때문에 이스라엘을 바로 잡을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나봇의 적용으로 아합을 심판하실 때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호와께 묻지도 않는데 나봇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죽일 정도로 악한 아합과 이세벨 앞에 나아가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으로 죄를 지적하는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이것은 목숨을 내놓고 해야 되는 일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가 임했으니 이것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이 백성을 위해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기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서부터 보면,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뜻과 생각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깨달아 지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사명이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에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의 말씀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악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곳에 말씀으로 갔을 때 나는 할 수 없어도 말씀이 살아서 그 역사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나는 늘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 내 속에 계시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여 제가 이 세상에 멸망을 선포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입니다.
18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아합이 지금 북이스라엘 통치를 해야하는데 자신의 직분을 떠나 머물러야 할 사마리아 성을 떠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갔습니다. 그 아합을 만나러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를 행하고도 회개치 않는 절대 권력을 향하는 아합왕을 대적하여 만나라는 말입니다. 충성과 복종 자체가 우상이 되어 말이 안되는 악을 행해도 복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아합 부부에게도 대적의 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적용) 지금 말씀으로 경고하며 대적의 영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윗선은 누구입니까?
19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이세벨이 음모를 꾸미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죄를 아합에게만 묻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항상 책임을 지는 자라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아무도 이해타산이 없는 이런 공동체가 지구상에 없습니다. 가족도 교회도 이 중심 잡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오늘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나봇을 죽인 악행을 다 아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잘라 심지어 재산까지 빼앗았냐고 물으십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영원히 목마르기 때문에 상아궁에 거해도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수 있는 채소밭이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목말라 있어서 입니다. 부자들도 그렇지만 부자들이 아니더라도 갖고 싶은 것을 꼭 가져야 하는 자기 중심성 인격장애는 어려서부터 고쳐줘야 합니다. 갖고 싶은 것을 반드시 사주는 이세벨의 눈 먼 사랑은 자기 중심성으로 발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재산을 넘어서 사실 이스라엘의 기업을 빼앗는 것 자체는 약속의 땅에서 끊어지게 하는 중대한 범죄였기 때문에 심판의 경고를 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아합이 그래서 의인인 나봇을 돌로 쳐 죽여 그의 피를 개들이 그를 핥게 했기 때문에 아합 너도 그대로 당해봐 개들이 네 피를 핥을 거야. 그대로 당해봐. 우리가 당하는 것은 삶의 결론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여러분 삶의 결론 인 것입니다
적용) 죽이고 빼앗고 싶을 정도로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부자만 있는게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차지해서 그대로 당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선지자를 대적자로 생각해서 심판 받습니다.
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기에 악을 행했다고 나옵니다. 아합보고 하는 말입니다. 엘리야보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먹을지라
24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이렇게 21절에 너를 쓸어 버리되 는 너의 후손이란 의미로도 번역이 됩니다. 아합에게 속한 자는 모두멸망의 대상에 되어 하나님의 엄중함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맹렬한 불길처럼 모두 다
쓸어버리겠다고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고 계시고,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적용) 여러분은 누구의 대적자 입니까?
아합의 대적자 엘리야 입니까? 엘리야를 괴롭게 하는 아합입니까?
3. 아내에게 충동되어 심판 하신다고 합니다.
25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
26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
아합이 하나님의 율법을 거슬러서 나봇에게 그의 기업을 팔라고 한 행위 그 자체가 악인 것입니다. 여호와의 기업을 끊어놓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못 나가게 한 사단의 죄수 역할을 아합이 한 것입니다. 자신을 팔았다는 것은 나봇의 기업을 팔라고 한 것인데 이렇게 죄의 종이 된 이유가 아내 이세벨이 계속 꼬드기고 충동되게 했기 때문입니다. 직역을 하면, 아합은 자신을 스스로 팔았고 이세벨은 그를 유혹하였다. 이게 모두 능동형입니다. 수동태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아합보고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아합을 보고 경고를 하십니다. 여기 하나님은 아합만 보고 계십니다. 결국은 이렇게 유혹의 충동되는 이유가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 잘 참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아합입니다. 이단도 욕심이 많아서 속아 넘어 갑니다. 착한게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안 속는데 상식이 없습니다. 아합은 부드럽고 유약합니다. 두려움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욕심이 많습니다. 이것이 왕이니 믿음으로 포장을 해야하는데 그 욕심을 이루어주는 부인이 온 것입니다. 악역은 불신자인 이세벨이 한 것으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을 계속 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만나서는 안될 사람이 만나서 이런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아합과 이세벨 그들의 만남은 집안을 망하고 나라를 망하게 한 만남입니다. 어떤 만남은 기업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는 만남이 있습니다. 다 충동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 유익에 충동 되었습니다. 상대를 불행하게 하는 만남은 되면 안됩니다.
적용) 나는 상대방때문에 고통당하나요? 행복한가요?
상대방은 나 때문에 불행할까요? 행복할까요?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둘 다 믿음이 없어서 행복합니다. 그러니깐 둘 다 행복하다고 해서 좋은 결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합과 엘리야의 만남은 영원히 원수이니깐요. 이것을 잘 생각하면서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이 다르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아합을 한번도 대적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은 언어의 할례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똑같은 건 아닙니다.
4.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7장에 걸쳐서 아합 얘기가 나옵니다. 열왕기에서 제일 많이 할당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아합과 똑같습니다. 아합과 성정이 너무 같은 것입니다. 열심이 하늘을 찌르다 풀이 죽어 앉으나 서나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모두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냈음을 보여줍니다. 이세벨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고 믿는 아합의 그 속의 욕심을 보시고, 아합을 계속 보십니다. 그 아합에게 기대할 것이 있다. 드디어 회개가 나옵니다. 누군가를 예수 안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못을 하다가 이 한 절 회개 합니다.
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죄인이 돌아오자마자 즉시 반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눈물 겨울 정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너무 불쌍하시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죄는 철저히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이것을 여기서 보여주십니다. 나봇을 죽이고 벤하닷을 죽이건 살려주건 전혀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통해 선악의 기준은 오직 여호와 앞에서 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해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성도들이고 교회이고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악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가 나가서 이런 것들을 막아야 하고 성평등 조례안을 막아야 됩니다.
적용) 내가 주홍빛 같이 죄가 많아도 오늘 제발 말씀이 들려서 옷을 찢고 몸을 동이며 금식하며 누우며 다니더라의 회개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황다솜 목장 보고서
금주 기도제목
A
1. 교제에 있어 잘 분별할 수 있도록
2. 진로에 대해 잘 분별하고 결정하도록 인도받을 수 있기를
3. 매일 말씀 깊게 묵상하고 들릴 수 있기를
B
1. 수요 예배 가는 것과 매일 큐티하는 적용 잘 지킬 수 있도록
2. 엄마에게 상담 권유하는 것을 지혜롭게 잘 말할 수 있도록
3. 남자친구에게 교회 및 목장 등록할 수 있는 환경과 마음 생길 수 있도록
C
1. 말씀이 잘 들릴 수 있도록
2. 나와 가족의 건강 잘 챙길 수 있기를
3. 큐티를 잘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