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6.30 주일예배>
일시 2019. 6. 30.
찬양 사랑스런 주님 음성 ┃ 주님의 사랑 ┃ 왕 되신 주께 감사하네 ┃ 주께서 다스리네 ┃ 위대하신 주
7000배의 응답
말씀 열왕기상 19:9 ~ 21
설교 김양재 목사님
목욕탕 큐티 세미나를 다녀가신 한 사모님이 패널로 오셔서 간증을 했습니다. 너무 열심이 유별나 밤새도록 컴퓨터에 붙어 앉아서 띵크 숙제를 열심히 해서 냈는데 평신도 강사님이 빨간펜으로 코멘트 하시기를 설교를 써내셨네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봐야 하는데 큰일입니다.라고 멘트를 달아주셨다고 합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셨겠습니까? 열심만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오늘 제목이 설레는 7천 배 응답인데, 눈이 번쩍 떠지죠? 엘리야는 혼자만 남았다고 줄 창 부르짖었는데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 명이 남겨져 있다는 것인데 저는 이것이 칠천 배 응답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지지난주가 16주년이었는데 지나고 보니깐 칠 천백 응답을 받은 것 같습니다. 숫자로도 칠 천명을 진작 넘었지만 칠 천배는 완전수 조합인 7에 10을 곱했기 때문에 완전한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혹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절벽 앞에 서있습니까? 오늘 칠 천배 응답을 받는 비결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첫 째로 자기 자리를 찾아야 7000배의 응답을 받습니다.(9-10)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어루만져주시고 마시게도 하시고 음식물에 의지하여 호렙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호렙산에 어느 특정한 그 곳 굴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굴은 출애굽기 33장 22절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 영광이 지나갈 때 서있던 반석 틈에 있는 이런 굴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얘기는 뭔가 하면 엘리야는 아직도 자신의 본연의 자리를 모르고 옛날 모세의 굴을 부적처럼 생각하면서 그 굴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엘리야가 자기가 그 모세의 굴에 있으니깐 기도 굴에 있다고 생각하고 경건해 보이지만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따끔하게 정곡을 찌르는 말씀으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지난 주 간증도 했지만 누가 저한테 강제로 결혼하라고 했습니까? 누가 시집가서 결혼하라고 했습니까? 모든 것은 제가 한 것입니다.
10절입니다.
(10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 특심하오니.는 내가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매우 질투하였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비누아스가 싯딤에서 음행과 우상숭배로 4천 명이 죽은 후에 일을 자행하는 이스라엘 남자 시므리와 고스빌을 죽임으로서 염병이 그쳤습니다. 이때 비누아스가 나의 질투로 질투하여 하나님의 노를 돌이켰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엘리야도 나도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으로 대단히 질투하였다는 표현을 하면서 자신도 영적 음행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질투로 바알 선지자들을 다 죽였는데 나는 왜 비누아스처럼 축복받지 못하는 거에요? 이러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도망자 신세에 대한 원망이 섞여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줄기차게 죽이려 합니다. 잘난 아합과 이세벨 부부가 왜 아무것도 없는 엘리야를 죽이려 하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은혜를 모릅니다. 자기가 하나님 자리에 갈 수 있다는 행위 밖에 모르기 때문에. 아합은 상아궁 지었습니다. 이세벨은 킹메이커입니다. 그 열심은 따라갈 자가 없습니다. 엘리야를 보면, 무시가 됩니다. 그런데 그가 기적을 행합니다. 일시적으로는 주목을 하지만 변화되지 못합니다. 기분이 더 나쁩니다. 그런 가운데 유다왕과 혼인을 맺고 엘리야와 생각과는 다르게 그들은 더 잘삽니다. 사실 엘리야가 모르는 것이 사실 영적으로 보면 이세벨도 자기 자리를 못 찾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리 찾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람은 죄인의 자리를 찾아야합니다. 사람은 죄인의 자리를 찾는 것이 본분입니다. 왕도 죄인의 자리에서 권위의 자리가 아닌 백성을 사랑하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이혼과 자살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의 자리를 찾으려면 첫 째 죄인의 자리를 찾아야 되는데 이것이 열심히 찾아지는 자리가 아닌 것입니다. 최고 세기의 커플인 송송커플이 이년도 안 된 20개월 만에 이혼 발표를 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완벽하며 자기 관리를 잘하는, 몸매 관리부터 성실한 배우며 얼마나 열심입니까? 연기파 여배우 탈렌트 전미선은 그렇게 자기 관리 잘하고 연기 잘하는데 자살을 하셨습니다. 제가 이혼과 자살을 막고자 하지만 그들이 최고인 만큼 죄인의 자리를 찾지 못하면 열심히 세운 만큼 상실감이 커서 가장 기본의 자리를 놓치는 것입니다. 전미선씨에게 영재인 아들이 있다고 하는데 엄마의 자리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배우들이지만은 가정을 지키는 만큼 연기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OECD 자문관인 수잔오크너 박사는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신질환자를 생산해내는 학교라고 했습니다. 한국 뿐 만 아니라 미국내 한인 자살율도 타인 종에 4배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성과 연결되는 것 맞습니다. 지고는 못삽니다.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천자인 나라 맞습니다. 그나마 그동안 기독교가 들어와 자기 죄를 보라고 할 때는 죄인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것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 행위와 인권이 하나님 자리에 가 있으니 이혼과 자살이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죄인의 자리는 은혜가 아니면 해결될 것이 없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느끼는 자리입니다. 저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어떻게 죄인의 자리를 자처하겠습니까?
# 죄가 없으니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를 박차고 5년 만에 이혼하려고 가출했는데 그 추운 겨울에 쪼그만한 기도원 강당에 모여 찬송을 하는데 추운 겨울에 맞아서 팔 부러진 사람, 끼니 걱정하는 사람, 암이 걸려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숙소도 없는 그곳을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무엇을 회개했냐구요? 저는 그렇게 착한 것이 악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라고 했는데 정말 제가 직면하게 되는 일이 그 사람들하고 하루 이틀 있는데 어떤 생각이 드냐면 불쌍하다, 안 됐다가 아니라 저 병 나에게 옮기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감이 하나도 안 되고 지금까지 저는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은 사랑을 할 수도 지을 수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에 100% 맞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하루, 이틀 지났으면 악을 못 보고 왔을텐데. 제가 5년 결혼생활 동안에 위장병, 편두통에. 기도원 간다고 친정에 전화번호를 남겼는데 남편이 안 데리러 오고 전화도 없었습니다. 돈이 없어 기도원에 갔는데 돈 한 푼 없이 기도원에서 너무나 다 아프고 이상한 사람들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었는데 정말 땅 끝까지 내려간 저의 패잔병, 순종한다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이 쫒겨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열흘 있었습니다. 아무도 안 데려와서 있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어떻게 되야 할지 몰랐습니다. 땅 끝까지 내려가서 제가 송송커플의 이혼이 너무나 이해되는 것이 제가 돈이 있었으면 100% 이혼했을 것입니다. 너무나 이해가 됩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열흘 있으면서 날마다 어쩔 수 없이 저의 죄와 직면하게 되면서 제가 생각 못했던 악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만. 차별하는 사람. 그동안 이런 상황이 안 되어봐서 혼자서 착한 얼굴을 했었지, 더러운 게 그득그득하구나. 거기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만세전부터 택자라 남편의 동의는 없었지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 분방한 것으로 봐주셨습니다. 평소에 시댁과 남편의 완고함은 당연히 저를 내쫓는 것인데 어떻게 저를 받아 주었는지 이게 하나님의 로뎀나무 아래 어루만지심이었는데 그 다음부터 말씀이 임하여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고 큐티를 하게 되면서 제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이때 찾은 제자리는 며느리와 아내와 엄마의 자리였습니다. 시댁에서도 결혼생활에서도 결국 제자리 찾는 것이 가장 응답받는 길인데 그것은 죄인의 자리인 제자리를 잘 찾아야 하니깐 죄인을 자처하고 다시 시작을 하니 무서운 시어머니께서 주의 딸도 아니고 종님이라고 해주셨고 남편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말씀을 안 전할 수 있습니까? 담임목사의 자리는 5달란트 받은 자리입니다. 5달란트 받은 자는 4달란트만 이익을 내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것입니다. 5달란트를 이익 내려면 가장 고난의 자리이고 이것은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알고 가는 것이 결국 많은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여 7천 배의 응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어찌하여 여기있느냐고 물으시는 남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여러분의 자기 자리는 죄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의 자리입니까? 의인을 자처하는 십자가에서 내려온 자리입니까? 이혼과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두 번째는 기적이 아니라 세미한 말씀을 들을 때 7000배의 응답이 임합니다. (11-12)
엘리야가 나만 남았다고 송소하니깐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
뭐가 강조 됐죠? 여화와. 부르다가 죽을 여호와가 한 절에 6번이나 나옵니다. 엘리야가 동굴 밖을 나왔을 때,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지진이 땅을 뒤흔들었습니다. 하늘은 불이 붙고 땅은 산산조각 날 것 같은 힘의 진동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불이 내려와 불태우고 바알 선지자들 850명을 죽이고 큰 비가 오는 것이 특심의 엘리야 열정적인 성격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이런 기적으로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850명을 죽이고 난 후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기적을 크게 경함하니깐, 순간 여호와의 처방이 안들렸습니다. 3년 6개월 간에 기근이 있던 땅에 비를 내렸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변할 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시적으로 변해서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는데 협조했지만 기적은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아무리 큰 사단이 물러가도 여전히 깨어있지 않으면 사단의 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엘리야를 위해서 이세벨이 협박해주는 수고를 해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구속사적인 해석입니다.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냐? 생각하지말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세팅입니다. 성도의 삶에 최고의 응답은 여호와 자체가 상급이 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여호와가 한 절에 6번이 나오면서 여호와의 양육이 집중적으로 시작되니 여호와의 처방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얼마나 불안전합니까? 너는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라. 안전해 보이는 자기 생각 굴에 나와서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데까지 나오라는 겁니다. 그러면 날마다 사건에서 하나님은 누구신지를 알아야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여호와가 모세 앞을 지나가면서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여워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당신을 계시한 곳이 신의 산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보면 오늘은 자비롭고 오늘은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이런 성품들을 찾아내야합니다. 성숙한 자라면 나에게 오는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방방 뛰고 크고 강한 뇌성벽력 가운데서 보통 집중하지 않고 조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들립니까? 본문을 잘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여호와 앞에 서라. 최초의 명령이십니다. 여호와 산에 서라고 해서 섰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질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바람 가운데도 없고 불 가운데도 없고 지진 가운데도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무서워하는 바람, 불, 지진 가운데 하나님이 미워서 불과 바람, 지진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 산에 서라고 했으면 이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앞에 순서가 중요합니다. 여호와가 등장하면 이미 게임이 끝난 것입니다. 여호와가 한 절에 6번이나 등장하면 게임이 끝난 겁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실제로 바람과 지진과 불의 재앙은 세미한 소리를 위한 예배 과정인 것입니다. 불과 지진과 바람은.
제가 기독교 장로 집안에 감리교 오순절 기도원도 가보았지만 그때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은혜의 기적도 경험했지만은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 내게 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니 저는 주님을 만났는데 여전히 힘들고 믿음의 기복이 심했습니다.
# 이번 주 한 부목자 나눔입니다. 군생활 전역 한지 1년 반이 되었는데 전역한 동료들은 다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분은 인간관계 때문에 6개월만에 그만 두고 그때부터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는 왜 동기들보다 뒤쳐질까?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제대 후 직장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운동에만 몰두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졸업하고 딸은 2학년인데 동료들은 월급을 많이 받고 다니는데 나는 연금만 받는데 자존심 상하고 열등감이 생기고. 친구들과의 모임에만 가면 초라해진다고 합니다. 초원님이 그전에는 주택관리사 공부를 하시고 지금은 경비 지도사 공부를 하시고 계속 자격증 따시느라 이번 주 분주하게 사시는데 정함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실례지만 연금이 얼마나 나오는데요? 350만원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숙사 사감까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금 가지고 사시면 안 되나요? 돈이 더 필요하면 지금처럼 알바를 하세요. 세상 염려가 많고 비교가 많은 것은 잘 못 살아 왔다기 보다는 말씀이 없어서 그래요. 지금부터 큐티 하시고 수요예배, 새벽설교 다 들으면서 내가 정한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야 가야하는지 묵상을 하세요. 우선순위 정하시고 말씀 가운데 감사할 것을 찾아보세요. 아이들 문제는 이제 아이들에게 넘기고 말씀으로 두 분이서 잘 살수 있도록 기도하고 큐티하세요. 세상 모임 끊고 교회에서 봉사하시고 세상을 끊으면 염려되고 비교되는 것 많이 없어집니다.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초원님 멋있쬬?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면, 무슨 말을 해줘도 기복적으로 묻기 때문에 매번 묻는 것 같아도 결정적으로 자기 욕심대로 하는 것입니다.
띵크 숙제를 하면서 남의 죄 설교는 하지 말고 내 죄 보는 큐티를 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설교문을 써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행위로 죄를 넘어가려는 것이 있습니다. 설교문 써오지 마세요라는 멘트가 계속 나오는데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내 죄 보는 큐티가 방법론 같지만 이것이 본질이기 때문에 아무리 흉내내도 끝나고도 본질이 안되는 사람은 여전히 내 죄 보기 큐티가 안되서 인생이 힘든 것입니다. 바람과 불과 지진이 지나야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미리 세미한 음성 큐티를 하면 칠 천 배의 응답을 받을텐데 이 칠 천배의 응답은 정말 세미한 음성이 들릴 때 임하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기적이 좋습니까? 세미한 음성의 말씀이 좋습니까? 그런 정답은 누가 못해요? 세미한 음성이 좋을지 믿습니다.
세 번째는 삶의 목표가 영혼 구원이되어야 7000배의 응답이 임합니다. (13-14)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9절 10절과 똑같습니다.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반복했습니다. 성경에 토씨 하나가 중요한데 왜 같은 얘기를 반복했을까요? 우리의 양육은 끝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양육으로 믿음과 영성이 달라진 후에 다시 묻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끝없는 노력과 큰 능력과 승리로 말미암아 바알선지자들이 모두 죽었는데 끝내 생명의 위협을 당한 자는 엘리야였습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죄악이 더 기승을 부렸고 백성들은 죄를 부끄러워 할 줄 몰랐습니다. 옛날에는 동성애하면 숨겼습니다. 이제는 수면 위로 나와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결과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죄의 문제가 얼마나 뿌리 깊고 생명력이 강한지 알아야합니다. 죄란 어떤 한 번의 전투와 승리로 뿌리 뽑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의 문제는 열심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두 번이나 묻고 두 번이나 답함으로 강조를 하셨습니다. 여전히 어찌하여 여기있느냐고 한 두 번 질문은 우리가 성도로서의 성숙의 과정을 생각 할 때 음식물로 어루만져주신 로뎀나무의 때가 있고 거기서 호렙까지 왔는데도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서 남들은 대단하게 보는 모세의 영광을 기적처럼 생각하며 호렙의 굴에도 쳐박혀 있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남들 보기에 근사해보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불안전합니다. 하나님의 택자인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 다음 할 일을 말씀을 봐야 압니다. 말씀이 날마다 필요합니다. 하루하루 살아요가 맞습니다. 이 질문은 그때도 꼭 필요한 질문이었습니다. 반복해서 지나간다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왜 그 굴에 있었습니까? 누가 그를 불렀죠? 왜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이제 거기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에요? 바알 선지자를 죽였다면 그들로부터 돌아선 백성들을 양육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왜 그 굴속에 있습니까? 모세를 빙자하면서. 우리는 남의 할 일은 너무 잘 보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머리를 싸매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 저 또한 로뎀 나무 아래에서 기적을 맛보고 기적같이 호렙까지 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집에 못나가고 힘들었기에 경건 서적을 보면서 온 교회를 다니는데 핍박을 받고 다녔습니다. 겉으로는 예전에 하나님 영광이 지나간 기적 같은 모세의 호렙의 굴에 있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장로님 권사님 좋은 교회 다니니깐. 이러니깐 네가 어찌하여 여기있느냐는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네가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what are you doing here?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의 기적은 도저히 갈 수 없는 환경에서 서울대 간 것입니다. 그것은 크고 강한 바람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명을 위해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가 걸레질에 순종하는 것은 중요한데 걸레질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되지 않냐? 목적이 분명해야 되지 않냐? 저는 로뎀나무가기 전까지 제 열심히 비굴하고 이혼 안당하려고 걸레질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혼 안 당하려고 걸레질을 5년 하니깐 이건 아니지 않나? 구원이 목적이 되어서 순종하는 것이지 이혼 자체 안 당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 걸레질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혼을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로뎀나무 시집에서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 주님이 질문 하시고 어루만졌다면 이제는 소명을 위해서 삶의 향방을 물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생 피아노를 쳤는데 그럼 네가 대학교수 하려고 쳤냐? 무엇 때문에 하는가? 명예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가? 하면서. 맞아요. 5년 전 만해도 나 유학가야 하는데 여기 있어야 될 사람이 아닌데 날마다 그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제가 한 번 주님이 만나주고 나시니깐 이런 질문, 너 그거 피아노 대학교수 하려고 했던 거잖아. 명예 돈 벌려고 한 거잖아. 이런 질문이 왔습니다. 에스겔이 동여 맴을 당한 것처럼 제가 높여지고 아무것도 못하니깐 제가 점점 없어지고 주님이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저는 유학도 안갔다 왔고 시집와서 걸레질만 5년 했는데 도무지 길도 없었습니다.
도무지 길이 없으니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제가 피아노 공부한 것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써주세요. 정말 무엇을 해야할지. 두 번째 질문이 들렸습니다. 제가 3일을 금식을 했습니다. 3일이 끝나는 날 정말 기적같이 총신대에서 피아노 가르치러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총신대는 만세전부터 예비하신 곳이었습니다. 먼 곳엔 가라고 해도 못 가는데 우리집에서 10여분 거리에다가 나중에 큐티 강의할 때 총신대 교수라고 하면 다 신학교 교수인 줄 알고 무사 통과. 내 힘을 쓰려고 2000년도 까지 20년 강사를 하면서 큐티 선교회하면서 그만 두었습니다. 큐티 강의를 하도록 도와준 정말 고마운 학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말 전적인 주님의 셋팅인데 저는 이게 하나님께 기도해서 한 것이니깐 어떻게 강의를 나가게 했는가. 처음에는 나가지 말라고 하니깐 네네네 했는데 기도하고 나선 시댁에 가서 제가 학교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하니깐 아범이 허락했네.? 물으셔서 네했습니다. 그날 남편에게 총신대학에 나가게 되었다고 하니 부모님께 말씀드렸냐고 말씀드렸다고 하니 양쪽 무사 통과. 하나님이 시간별로 하신 일이었습니다. 제가 욕심대로 완고하니깐 이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 남편이 나가는 걸 너무너무 싫어합니다. 그랬는데 집에서 레슨하는 것이 허용됐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셋팅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린다고 했지만 제가 생각해도 기적 같았습니다. 제가 유학도 안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고 서울예고 강사도 나가게 되면서 돈도 벌게 되었습니다. 그 돈 벌어도 신발하나 못 살겠더라구요. 헌금을 했습니다. 우리 남편이 내 돈 번 거는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것은 은사대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학생들을 만나 전도를 해서 여기에 총신대, 예고에서 내 제자들도 몇 있습니다. 고난이 와서 왔습니다.
그렇게 학생들을 만나 전도를 하면서 소명의 삶을 집중적으로 생각해보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피아노를 치고 가르쳤지만 서울대는 세미한 음성과 말씀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을 경험하라고 저를 서울대를 보내셨던 것 같습니다. 지방 상고출신 여집사님이 지금 띵크양육을 담당하고 계시는데 지금 그 집사님도 여러 불과 지진의 재앙을 경험했지만 세미한 음성을 잘 듣기 때문에 남자 담임목사님 반을 양육하고 계십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집사님이 대학에 안 간 것이 지방에서 상고를 간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얼매나 나타내는지 모릅니다. 누구보다 확신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큐티하고 열매가 있어도 같은 책으로 큐티하는 그곳에는 평신도하고 강사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능력있는 평신도를 등용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평신도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평신도들의 리드를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지 못한 건강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삶의 목표가 구원이라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로뎀 나무 아래 있습니까? 호렙의 굴에 쳐박혀 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잘 듣고 큐티의 결론은 영혼 구원이라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네 번째는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7000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5-18)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당시 엘리야는 절망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주는 말을 기대했지만 그런 말 하나님은 안하셨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죽을 것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한 마음의 엘리야에게 처방은 구체적인 일거리를 주십니다. 상처 받은 심령에 가장 좋은 것은 합당한 일거리를 주는 것입니다. 모두 지금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아합가문을 멸절하기 위한 도구로 이방에 하사엘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왕으로 예후를 세우고 선지자 엘리사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전쟁을 해도 전세계가 연합하여서 아합을 멸절시키는데 아합을 멸절시키는데 자신이 알던 모르던 하나님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우리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미국이 돕든지 러시아가 돕든지 중국이 돕든지 우리는 모릅니다. 기도를 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컨셉입니다. 당시 상황을 비춰볼 때 어떻게 북이스라엘 선지자인 엘리야에게 적국인 아람의 왕 될 자에게 기름을 부으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적입니다. 예수 믿는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집에만 있어도 구원의 목적이 확실하니깐 구체적인 일거리가 날마다 생겼습니다. 이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하사엘같은 불신자도 있고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 사람이 변하고 안 변하고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러한 불신자도 너무나 많이 만났고 예후처럼 개혁은 했지만 나중에 삐딱선에 빠진 예후 같은 사람들도 만나서 깨우게 하시고 실제적으로 엘리사 선지자 세우는 것은 목사 안수를 하는데 정말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람 세우는 일도 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아합 왕가를 멸절시키는 일을 알고 하든 지 모르고 했던 간에 하나님의 뜻을 오차 없이 이루게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아합왕가를 이스라엘의 아합왕가 바알 신을 섬긴 모든 사람들을 모두 멸절시키는 남은 자가 될줄 믿습니다. 여러분이 7000명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18절에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아무도 없다는 엘리야의 하소연에 7000명이 남아있다고 7000배의 응답을 내가 네게 해줄 것인데 엘리야 너가 호렙의 굴에 쳐박혀 있으니 은혜로 남은 칠 천 명이 네 눈에 안 보이는 거야. 이러시는 겁니다. 인간은 정말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말고 의외의 사람이 남겨진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성경공부는 은혜로 산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큐티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양육 잘 받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게 되니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입니다. 저도 평신도 생활이 오래 지났기에 목회 연륜이 너무 짧아서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 것 같은데 처음에는 사역자들을 뽑지 안했습니다. 정말 다 짧습니다. 바알과 싸워주는 7000명이 있다고 하니 아멘으로 받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컨셉이겠죠? 낙태, 이혼, 동성애 등 당연히 죄이니깐 날마다 공포하고 왔는데 정말 외롭게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부천시 의회에서 28명의 의원중 23명이 찬성해서 통과한 안건이 부천시 기독교 연합의 반대로 25일 본회의 하루전에 철회되었다는 것입니다. 조례한 주요내용이 개인이나 집단의 국적 민족, 종족, 언어, 지역,성별, 나이, 장애, 문화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 시는 차별없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것이 차별금지법입니다.
인간이 100% 죄인입니다. 노력해서 하나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는 평등이 사상적인 것이지 평등이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동성애는 평등에서 출발하면 안됩니다. 성경에서 명백히 죄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는 구원 받을 수 있지만 동성애 행위는 명백히 죄입니다. 경기도 31개 시의회에 올라간 안건에 부천시에서 실력행사로 안건이 철회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7천 명이 남아 있어 7천 배의 응답을 받았다고 믿습니다. 7천 배의 응답은 내가 소원했을 때 기도했을 때 받는 것이지 기도 안하고 통과되기 바라고 차별금지법을 모르는 사람은 칠 천배는커녕 이세벨처럼 분해서 부들부들 떨겠죠? 기도하는 사람만 칠천배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정말 급합니다. 기독교 차별과 곧 이어집니다. 종교 자유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도덕과 윤리로 보면 안되고 기독교 차별로 생각해야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소명의 자리는 구체적으로 어디입니까? 차별금지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는 어떨까요? 소명의 자리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적용해봅시다.
다섯 번째는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7000배의 응답을 받습니다. (19-21)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19-21절 까지 보면 엘리사는 상당히 부자입니다. 쟁기 앞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가 성실히 준비되어 있다가 엘리사가 겉옷을 던집니다. 엘리야는 생애가 잘 알려져 있는 것이 없지만 엘리사는 부모도 있고 부자이고 농장도 있고 엘리야의 사역을 이런 엘리사가 마감을 합니다. 엘리야는 루터처럼 직설적이고 왕의 적으로 역사했습니다. 엘리사는 멜라니토처럼 유순하고 왕의 친구로 사역하면서도 십자가 신앙을 가졌으니 엘리야에게는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신 겁니다. 엘리사가 부모와 작별을 예고했습니다. 너 가라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했습니다. 엘리사 부모가 좋은 부모, 좋은 가정인 것이 좋은 가정은 자기 복, 자기 자식 밖에 모르는 것이 아니고 소명을 잘 받아들이게 하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의 출신입니다. 쟁기와 멍에에 불을 놓아서 고기를 삶은 것은 기구가 다시 필요없다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일이 없다는 증명으로 불태웠고 그날이후로 그들은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여호와의 사역에 하나로 연합을 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게 맡겨진 사명을 따르지 못하고 자꾸 돌아보는 옛습과 관계는 무엇입니까? 내가 아내, 남편, 상사, 어머니 때문에 내가 목장, 수요예배 다 못간다고. 일상의 삶을 잘 살고 있습니까? 여전한 방식은 정말 비범한 것입니다.
# 16주년을 맞이하여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시점에서 아까 사모님은 외대 교회 사모님이신데 이번에 패널로 오셔서 간증을 하셨는데 그 일부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의 자아중심적인 성취 지향적인 동기로 비롯된 사역은 사모의 체면과 욕심 바리새인과 같은 열심, 위선적인 모습, 인간적으로 무엇인지 할 수 있다는 착각과 같은 오만함, 까짜면서도 가짜이기를 거부하는 죄인. 겉모습은 사모라는 이름을 단 죄인이었습니다. 거짓된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했고 교만한 모습을 보면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큐티 숙제 발표 후에 강사님은 사모님께서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었네요. 사모님이 깨어지시면 그 교회에 부흥이 올 것이에요. 저는 아멘으로 답했습니다. 평소에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만큼만 헌신하면 그 자체로 부흥일텐데 생각하면서 판단과 정죄를 일삼았습니다. 하루에 다니엘 기도에 참석하고 제자훈련 하고 상담하고 남편 대신 교회 잡무보고 사이버 신학 공부도하며 종처럼 생활했습니다. 개척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았기에 재정상태가 극심하게 어려운 상태였고 거의 묵상에 재정이야기를 쓰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큐티 띵크 양육을 잘 받으면 재정의 문제를 풀어주실 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양육초기에 유방암 초기를 진단 받고 안 팎으로 지진이 일어났지만 이것은 새롭게 세워지는 제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즐겁게 간증하셨습니다. 이 평신도 강사님이 사모님이 깨지면 부흥이 올거라고는 말이 종종 생각났습니다. 세미한 음성으로 치료 과정 속에 네 죄를 보고 엎드리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좀 더 성도를 사랑하고 깊이 이해하고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이 큐티 목회는 절대 테크닉이 아닙니다. 한사람의 고백으로 여러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고 돌이키게 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외대 교회는 캠퍼스 사역으로 10년 동안 학생 2500명을 만났다면 양육 훈련 후에 각 대학교에 이 목사님 강의가 다 개설되어 1년에 2500명을 만나는 7천배 응답을 받았습니다. 저희 부부 목회 여정 중에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가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고 띵크 양육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띵크 목회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칠천배의 응답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야 합니다.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들을 때 칠 천배의 응답이 임합니다. 삶의 목표가 영혼구원이어야 칠 천배 응답이 임합니다. 소명의 자리에 있어야 칠 천배 응답을 받습니다. 일상의 삶을 잘 살아야 칠 천배 응답을 받습니다. 오늘 내일 일은 몰라요, 하루하루 일상의 삶을 잘살길 바랍니다.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
험한 이 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좁은 이 길 진리의 길 주님 가신 그 옛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갑니다
성령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줍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 말게 합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아버지여 주신 소명 이루소서
만왕의 왕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만 백성을 구속하니 참 구주가 되시네
순교자의 본을 받아 나의 믿음 지키고
순교자의 신앙 따라 이 복음을 전하세
불과 같은 성령이여 내 맘에 항상 계셔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주여 지켜 주옵소서
기도제목
어떤 학벌과 어떤 좋은 성품을 가져도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지 않으면 아내, 남편, 자녀, 학생, 선생님, 회사에 사장의 자리에 제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죄인의 자리에 앉아야 각자의 자리를 잘 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좋사오니, 사명을 생각하여 떠나지 아니하는 호렙을 굴을 떠나게 해달라고 죄인의 자리를 잘 찾고 사명의 길을 떠나게 해달라고 쳐박혀 있는 남들이 보기 좋은 호렙의 굴을 떠나게 해달라고. 기적보다 세미한 음성이 들리게 해달라고. 자꾸 사명을 따르지 못하고 돌아보게 되는 습관과 관계를 물리치게 해달라고. 일상의 삶을 잘 사는 것이 가장 비범한 것이라고. 내가 하루를 시간표를 써놓고 제대로 살게 해달라고. 말씀이 없으면 잘 못 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공예배를 다 사수하게 해달라고. 차별금지법 통과되지 않도록. 반대하는데 우리의 소명을 그 자리에 가게 해달라고 주님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그렇게 외칩니다. 나도 좀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나도 딸처럼 살고 싶고 아들로서 대접받고 싶고 아빠로서 엄마로서 대접받고 싶고. 선생님으로서 각자 사람과 같이 살게 해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부르십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 예수님이 하나님의 창조주로 사람답게 살고 싶지 않아서 십자가에 달리셨겠습니까? 주님 우리는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지 않으면 누구도 제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내 권리를 주장하느라 로뎀 나무에 누워있고 주님이 만나주셨는데 아직도 호렙의 굴에 깨어서 이세벨을 무서워하고 있는 모습이 저희들의 모습입니다. 주님 무서운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적을 좋아하고 해결되기만 바라는데 바람과 불과 지진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는데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라고 하셨는데 나를 택하신 분은 주님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으니 바람과 불과 지진이 아버지 하나님 그 속에서 세미한 음성을 들으라고 이세벨이 수고하고.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모든 부모가 수고하지 않으면 내 죄를 보지 못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이것만 부르짖으니. 내가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인간으로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십자가에 내려오려고 하니깐 죄인을 자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만 일어나고 집집마다 트러블이 일어나고 칠 천배 응답은커녕 미워서 부들부들 떠는 우리는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이 왜 자살율이 4배나 되는지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죄를 모르는 민족성 때문인 것을 알게 해주시옵고. 행위와 인권이 왕노릇하지 않게 도와주시옵고. 죄보기 큐티가 되어서 모두가 내 탓이라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구체적인 일거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참으로 우리에게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어떤 일이 와도 내 죄를 보는 사람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까지 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나는 혼자라고 하지만 엘리야에게 칠천 명이 남아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 죄를 보는 사람은 칠 천배 응답을 받게 될줄 믿습니다. 여러분들 이 칠천배의 응답을 여러분들의 것으로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그 응답은 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겨주셨다고 합니다. 칠천배의 응답 소유자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고 실행하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자살과 이혼이 막아질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