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5. 19 주일 예배>
일시 2019. 5. 19.
찬양 #예수 늘 함께 하시네 #해가 뜨는 데 부터 # 모두 찬양해 sing sing sing # 사람을 살리는 노래 # 믿음으로 나아가네
소 명
말씀 이사야 6:1-8
설교 김양재 목사님
교회 오빠는 자신의 대장암 4기 진단과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아내의 혈액암 4기 진단까지 연이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마주하게 된 이관희 집사와 아내 오은주 집사의 투병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2018년 9월 16일 새벽에 이관희 집사님이 주님 품에 갔고, 그 직전에 시에틀 형제 교회에서 제가 이관희 집사에게 전화로 마지막 기도를 하는 가운데 의식이 없는 가운데도 아멘을 분명히 3번 했다고 그 자리에 있던 신승윤 부목사님이 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가 타코마 교회 집회 때, 집사님의 소천 소식을 들으며 교회 오빠 간증을 틀었습니다. 다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이관희 집사님은 마지막에도 사명을 감당하고 떠나셨습니다.
이사야는 39장까지 구약이고 40장서부터가 신약을 예표합니다. 지금 안 망했는데 150년 후에 망할 얘기를 하라는 기가 막힌 사명과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40장부터는 망하지도 회복하지도 않았는데 또 회복한다고 말하래요. 이것이 장차 받을 환란을 말해야 하는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어려울 때 어려운 사명을 가진 이사야가 소명을 받는 장면이 6장인데,calling vocation 은 부르심 소명을 번역한 말이고, 직업, 천직의 의미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먼저 구원을 받은 우리가 거듭난 소명을 받는 것은 이 세상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명을 받을까요? 지금 이제 악한 아하스 왕에게 예언하기 전에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더 자신의 죄 성을 보고 자원해서 이사야가 자신을 보내달라고 한 후에 소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소명, 부르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소명을 주시는 시대 상황과 방법과 조건과 응답과 목적이 다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 알고 있는 이사야 본문을 다시 다뤄보겠습니다.
첫 째로, 소명은 위기의 때가 기회입니다. (1)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이 죽었습니다. 죽던 해에 이사야가 본즉이라고 합니다. 웃시야 왕이 죽어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큐티를 할 때 늘 왜?라는 질문을 넣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웃시야 왕이 어떤 사람인가. 이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면, 앞뒤 전후 문맥 역사를 생각해보는 것이 적용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웃시야 왕은 15살 때 왕이 되어서 52년 간 유다를 통치하여 유다의 유래 없는 번영을 주도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신앙적으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육적으로 부강해지면, 영적 교만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사역을 탐하면서 자신이 예배를 주관하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별궁에 갇혀 죽은 왕입니다. 인생에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도 늘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아하스, 히스기야를 섬긴 선지자입니다. 그는 히스기야처럼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왕과도 듣지 않는 아하스 왕과도 자신을 톱으로 잘라서 순교시킨 므낫세 왕과도. 평생 사역을 하다가 순교했습니다.우리는 좋은 왕 밑에서 사역을 하면 좋겠지만,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말년에는 교만해서 갇혀 있었지만, 웃시야 때 나라가 부강하고 번영하면 다 좋아야겠지만 영적으로는 암흑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5장까지 예루살렘의 죄에 대해서 줄창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열왕기상을 생각하더라도 줄 창 죄들을 짓고 있습니다. 아무도 안 듣습니다. 이 웃시야 왕보다 더 악한 아하스왕 시대로 돌입하니깐 이 난국의 시대에 이사야가 적극적인 소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웃시야가 죽던 해인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어려서부터 유복했고 의사로서 성공도 했고 그런데 예배를 방해하다가 마지막에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갇혀 죽던 웃시야처럼 주일 성수를 하지 않고병원에 갇혀 인생의 즐거움이 오직 술인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너무 성실하고 효자고 저에게는 열부고 아이들에게는 자부였는데 그가 낙태 수술을 하며 죄의식에 사로잡혀 예배를 방해하며 스스로 별궁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미약하게나마 사명을 이미 받았는데 그러나 제가 웃시야 왕 같은 남편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오늘은 웃시야 입장에서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갇혀있나요? 돈과 권세가 있어서 홀로 살 수 있다고 예배를 방해하며 무엇을 하세요? 술을 드세요? 여자를 만나세요? 게임을 하세요?
그런데 이사야가 무엇을 보았죠?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심을 보았습니다. 웃시야 왕의 보좌가 너무 높습니다. 그보다 북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망하게 한 앗수르의 보좌는 더 높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신 주님을 본 것입니다. 이사야는 1장에서 이미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로서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계시를 알면서 계속 죄악을 통렬하게 지적을 했지만은 여기서 웃시야가 죽고 하나님의 높이 들린 보좌를 보니깐 하나님 옷자락에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연기가 충만한 것을 6장에 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웃시야 왕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또 어디서 보았습니까? 국가적이나 개인적이나 위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엎드려있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성전이 너무 중요합니다. 말씀과 씨름하고 오래 인내하며 기도하고 회개하는 이런 성전에서 높이 들린 보좌를 보았습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구조는 소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5장까지 보면 유다가 얼마나 죄악에 찌들었는지 보여주며 그때까지 이사야도 훈련시키시고 때가 되니 웃시야를 데려 가십니다. 문둥병 걸린 웃시야를 빨리 데려가시지 왜 길게 살려두시는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때가 절대 있습니다.그래서 안락사가 성경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 어떤 목자님이 아픈 조강지처 아내와 사별할 때 빨리 죽기를 바랐고 죽어서 슬프지도 않았는데 아픈 아내가 없으면 모든 게 잘 될 거 같았는데 재혼도 하고 이랬지만 하는 것마다 교회도 안 되고 사업도 안 되고 재혼도 쭉 망해왔기 때문에 돌이켜보니 아내가 죽은 것이 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웃시야 왕이 죽는 사건이 되었다고 해석하셨습니다.
제일 사랑하고 좋아서 웃시야가 아니고 우리에게 역할을 주시고 질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되고 지나고 보니 아픈 아내였지만 조강지처가 진실한 동역자였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보기에는 위기이나 여기에서 소명을 받으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가 있습니다.
# 1절을 저에게 적용해보면, 제가 아무리 구원을 외쳐도 남편은 죽을 때까지 겉으로 저를 근사하게 포장해줄 사람이기 때문에 웃시야가 아무리 교만해도 제가 아무리 그 앞에서 비굴하게 살아도 내가 죽어야지 남편이 죽는 것은 제 각본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아무렴 제가 과부가 되어서 주의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런 기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를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차원이 다른 아픔입니다. 아이들도 남편이 힘들게 할 때는 같이 한편이 되는 게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없으면 말로다 표현 할 수 없는 반쪽의 아픔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과부가 되어서 키우는 것보다는 아무리 힘들고 못난 남편이고 아버지고 그래도 그 아버지가 힘들게 해도 그것이 온 가족이 깨어있게 하는 비결이 됩니다. 육영수 여사는 아들에게 호랑이 장모감을 만나는 게 네 결혼 조건이라고 했대요. 인간이 노예 근성이 있어서 과부엄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무서운 아버지 한마디만 하면 천 마디 잔소리하고 비교할 수 없는 권세가 있기에 학대를 통해 깨어있게 되므로 그래서 훌륭한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며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며 거룩인 것입니다.
지난 주 김목사가 남편, 아들 버리고 간 엄마, 집 떠난 누나보다 힘든 아버지가 버리지 않고 같이 살아주었기에 육적으로는 비주얼을 영적으로는 우리들교회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는 최고의 아버지로 상 받아 마땅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떠난 엄마가 교양있고 아름다워도 떠난 엄마가 아들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술중독에 분노 조절이 안되어도 그 아버지가 아들을 고아원에 버리지 않고 같이 살아주어서 애증이라도 애착이 형성 되었기에 그 아들이 아버지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김목사가 꼬이지 않았습니다. 웃시야가 살아 있어서 김목사를 깨어있게 한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지 약재료까지 팔아먹고 있습니다. 고난의 세월이 참 많은 날이 자난 것 같아도 얼마나 잠시입니까? 그래서 최고의 아버지입니다. 김목사가 인생이 힘드니깐 살아남으려고 방어기재로 유머가 발달했습니다. 우리들 교회 목사가 된 것은 인생 최고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돈 많고 잘해주는 아버지라면, 돈이 없어도 양다리도 아니고 세 다리까지 걸치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그 아버지는 최고입니다.
제가 편하라고 힘든 남편 데려간 것이 아니고 때가 되니깐 소명 받기 위해 데려가셨습니다. 남편이 죽던 해에 저도 높이 들린 보좌를 보았습니다. 왜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였는가 하면, 제 남편 데려간 날 대선지자 에스겔도 아내를 데려갔기에 영광 중에 영광이었습니다.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대 선지자 에스겔도 아내를 데려갔기 때문에 나와 똑같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주님의 영광이 제 성전에 가득한 것을 느꼈습니다. 제게는 그 말씀이 영광이었습니다. 때마침 에스겔 말씀으로 큐티를 했는데 문자적으로도 그날의 일과 후에 되어질 일들을 보여주시니 날마다 큐티를 통해 더 높이 들린 주님을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게 하셨습니다.여러분도 큐티를 하다보면, 높이 들린 보좌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입니다.
웃시야가 죽고 사명 받았듯이 아내가 죽고 에스겔이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때까지 웃시야가 살아있어야 됐습니다. 문둥병이 걸리건 별궁에 갇혀있건 웃시야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안락사는 전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내 얘기로 들리니 최고의 고난이었지만 영광중에 영광의 부르심을 소명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도 이때도 저는 말씀으로 높이 들린 보좌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큐티를 목회를 했기 때문에 그 동안 큐티한 것을 목사님들께 사진 찍어 보여드린다고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여기에는 83년 것도 있습니다. 83년이면 36년 전 것입니다. 보이시나요? 88년도. 90년도. 92년도. 2002년도. 극동방송 설교는 이 노트로 하는 것입니다.
### 날마다 빼곡히 말씀 묵상하신 목사님의 큐티노트
높이 들린 보좌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직분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좋아서 이렇게 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소명을 받았는데 쭉 하다가 보니 남편이 갔을 때 에스겔로 너무 정확하게 어마어마한 소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도 이미 말씀을 받았는데 미약하게 하고 있다가 갈 사람이 가게 되니.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이 무서워 하면서도 의지하고 기대는 웃시야는 누구입니까? 제사장을 무시하는 웃시야는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인데 우리는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그를 여전히 추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겉으로는 그가 믿음 없어 하면서도 속으로는 돈이 좋아서 구원은 뒷전인 남편, 아내, 부모, 형제, 자매는 누구입니까? 돈이 있어서 가서 말을 못하는 겁니다. 웃시야 시절에 이사야가 말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부강하고 교만하고. 저도 소명 받았는데 남편에게 말을 못했습니다. 빌어먹고 살아야 돼서. 그럴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었다고 빨리 가면 안 됩니다. 때가 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때인 것입니다.
# 어느 목원 분은 지금 너무 은혜 받고 교회에 나오는데 (별거 중) 아내가 너무 집착을 하니깐 이혼은 안하지만 접근금지를 당해서 아내를 안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싸워서 일부러 (접근금지를) 당하고 싶대요. 아내를 교회를 나오게 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하기가 싫다는 겁니다. 말씀보다 고난보다 높이 들린 보좌를 아직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큐티로 일대일로 이 말씀을 만났을 때, 이 말씀가지고 한절씩 나누고 기도하고 상담하고. 큐티를 혼자 하면서 기도하고 눈물을 흘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기도합니다. 누가 전화를 하면 말씀으로 상담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기본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 소명을 받으려면, 드러나기보다 가리우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2)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스랍들은 하나님 곁에 머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로서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여섯 날개 중에 둘로는 얼굴을 가리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로는 자기 발을 가리었다는 것은 발은 문자 그대로 발도 되지만, 사울이 자기 발을 가리러 굴로 들어갔다가 다윗에게 죽을 뻔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발과 같은 의미로 인간의 구조로 말하면, 성기가 있는 그 부분을 가리키는 뜻도 됩니다. 얼굴로 발로 나의 수고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리우며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색을 가리우길 바랍니다. 우리도 모였다하면 자기 자랑, 헌신 자랑, 수고 자랑을. 알아주길 너무도 원합니다. 주님의 소명을 받으려면 이 모든 것을 가리우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의 자랑들이 부끄러움인줄 알고 이를 가리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네 날개를 모두 가리워도 두 날개로 얼마든지 날 수가 있습니다.
저도 과부가 되어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살았겠느냐하며 아이들에게 생색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횟수로 30년 넘게 조용히 여섯 날개가 다 있어도 과부이기에 얼굴을 할 수 없이 가리우고 발을 가리우며 내 주제를 알고 조용히 날개 짓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겸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과부로 환경이 겸손할 수밖에 없으니 큐티를 하면서 저절로 가리울 수밖에 없게 하셨습니다.
# 17세기 영성의 대가 잔느 부인은 절세미인이었습니다. 16살에 시집을 갔어도 혼자 큐티를 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눈길을 끄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허영을 뽑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주님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서 울었대요. 어떻게 하면 자기가 뽐내지 않을까, 시어머니가 너무 괴롭히고 하녀들이 괴롭히고 남편이 괴롭히고 점점 하나님과 연합되어 가니깐, 괴롭힘이 촉진제가 되어서 화장을 해서 뭐하나 머리는 가꿔서 뭐하나. 그래서 화장도 안하고 가꾸지 않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부러는 아니지만 후에 천연두에 걸렸는데 시어머니가 치료를 못 받게 해서 얼굴이 얼그러졌습니다. 그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 끝없는 고난 가운데서 17세기 대단한 영성 대가가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예수님보다 더 고난이 심한 분이 아닌가 생각될 지경입니다.
적용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드러내기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가리우기 중에 여러분 무엇이 편하세요? 가리어도 그 가리운 것이 드러나기 원하진 않으세요? 여러분의 교제 속에 은근슬쩍 자기 자랑, 자기 헌신은 몇%나 됩니까? 만나면 옷과 외모의 얘기를 얼마나 합니까? 사람들을 만나면 쾌감을 느낍니까? 열등감을 느낍니까? 다 똑같습니다.
소명 받으려면
세 번째, 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3)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거룩하다를 세 번 반복한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3은 하나님의 수이고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사명 받으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가야 하는데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오직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이다, 거룩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날마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라고 하는 말이 이 말입니다. 거룩하려면 죄 얘기를 해야 되는데 왜 죄 얘기를 해야하냐고 하는데 우리가 깨끗해야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설명을 잠깐하면, 성부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 뜻이 (Hidden will of god) 성자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경륜이 마리아 배 속에 점하나로 너무도 겸손하게 오셨습니다. 가장 낮아진 바닥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나타내고자 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도와주신다는 겁니다. Effective power로. 삼위일체의 시작도 끝도 목적도 거룩인 것입니다. 거룩하면 온 땅에 영광이 충만합니다. 거룩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는 재미가 없을 거 같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갈 자, 누가 있겠습니까? 거룩하면 멋있습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충만하길 기도합니다.특히 만군의 여호와라는 성어는 하나님이 전쟁에 능숙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어떤 전쟁에서도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저도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걸레질로 낮아져서 알아 가는데 성령님이 도와주셔서 결혼을 지킬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내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셨기에 죽지도 이혼하지도 않게 하셔서 지금 이렇게 대단한 하나님의 경륜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알아요?모릅니다. 걸레질 할 때 죽고 싶습니다. 남편에게 매 맞으면 죽고 싶습니다. 너무 치사하잖아요. 이런 하나님의 경륜을 성령하나님이 조금씩 조금씩 effective power로 조금씩 도와주셨다는 겁니다.
이래서 죽지도 이혼하지도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진정한 거룩입니다. 내가 거룩 거룩 거룩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 사역을 알고 내가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여인의 뱃 속에 점으로 들어간 예수님처럼 죽어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써야 참 거룩입니다.
언젠가 한빛 은행에 부회장이었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이야기라고 칼럼을 썼는데 예부터 어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과 예의바른 사람을 집에 초대하지 말거라. 구지 일부러 피곤함을 만들 필요는 없단다.라고 썼습니다. 예수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너무 경건하고 거룩한 언어만 쓰면 옆에 사람이 피곤할 수 있습니다. 거룩하다고 그 사람을 거룩하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용서는 최고의 복수입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을 때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 말은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쓴 표어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수를 하기 위해 용서를 하는가라는 반문들을 하시는데 그래서 거슬린다고 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거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100% 죄인입니다. 모두가 복수를 꿈꾸며 전쟁을 합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백의의 민족이라 착해보이지만 아주 전투적이라고 기독교 총장 포럼에서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기고 이겨야 하기 때문에 부부 간에도 이겨야 하니 이혼율, 회사에서도 이겨야하니 자살률이 1-2위를 다투는 것 아시죠? 외도한 남편 아내, 속인 동업자 등등 때문에 복수는 나의 힘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수를 멈추고 사건 속에서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을 성자 하나님인 예수님의 십자가에 낮아짐으로 낮아지면 성령하나님이 효과적으로 도와주셔서 드디어 용서를 하게 하시니 우리들 교회 청장년들이 이혼도 안하고 자살도 안하게 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십자가 없이 용서하는 것은 얼마 가지 못합니다. 거룩하다고 거룩만 외치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하고 음란한 이 세상에서 애통절통하며 십자가를 길러 놓아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용서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복수라는 감정을 겪지 않으면 십자가에 달려본 일이 없어서 십자가가 이해가 안 되고 용서가 사랑으로 금세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밀양에서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전도연이 용서한다고 했지만 십자가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다음에 용서한 살인한 그자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그 사람은 하늘의 언어만 써서 땅의 언어를 쓰지 못하니 전도연을 설득시키지 못했습니다. 둘 다 하늘과 땅의 언어를 쓸 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한 용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려면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풀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입장으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복수라는 단어가 impact가 있어서 좋다고 하시고 용서했다는 간증들을 듣습니다. 한 회장님이 횡령을 한 사장을 고소하려다가 현수막을 보고 저거야! 하면서 고소를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거룩하지 못한 단어라고 신자들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모르는 불신자들이 경부고속도로에서 이 현수막을 보고 복수를 접고 곳곳에 교회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오빠 첫 번째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 제작진 모두가 아무도 크리스찬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인 유무를 떠나 교회를 나가라고 하지 않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담은 영화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의 언어는 주로 하늘의 언어입니까? 땅의 언어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이 이해가 되십니까? 몇 % 되십니까?
소명 받으려면
네 번째는 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 봐야 합니다. (4)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목장에서 나누는 오픈과 적용이 스랍들의 찬송소리와 같고 예배 때마다 느껴지는 우리들 교회의 생기가 문지방이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해서 우리들 교회 문턱이 낮아서 들어오기가 쉬운 교회인 것도 맞지만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 오니 요동하며 부부간의 싸움도 요란 할 때가 있습니다. 알콜 중독자인 김성우 목사 아버지가 우리 목장에 와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하여튼 성령 충만의 연기가 가득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만나면 와글와글합니다. 밤새 안녕이기 때문에. 어떻게 됐어. 집에 왔어? 안 들어왔어?, 애들은 들어왔고? 우리는 일주일 전에 나눈 것 말고 어제 것이 궁금해 합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 와글와글. 저는 거룩하지 못하다고 교회에서 왜 이렇게 떠드냐는 소리 하지 않습니다. 너무 인생이 당일치기도 아니고 당초치기를 하며 사니깐 공감이 됩니다.
#이관희 집사님이 목장에서 이런 나눔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요즘 어떤 생각이 드냐하면, 한 주 목장에 와서 공동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많이 느끼게 돼요. 아직 목장예배가 많이 남아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나에게 목장예배가 몇 번 밖에 없다라고 하면 오늘 목장예배가 너무 소중한거에요. 기가 막힌 것은 일대일이 3개월 검진 받기 전 일주일 전에 끝나더라구요. 이번주는 과제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3개월 동안 건강한 상태에서 온전히 마치는 것이 삶의 미션이 되었습니다.
이분이 항암을 28번 하면서 일대일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 양육하신 분이 이 집사가 너무 성실하고 모범생이여서 양육 숙제를 너무 열심히 하는 것이어서 건강이 우선이라고 숙제를 쉬엄쉬엄하라고 그것이 적용이라고 말했답니다. 이 집사는 띵크 양육 받으면서 목자도 하고 싶고 너무 사명도 여기서 찾고 싶다고. 우리는 너무 바빠서 너무 건강해서 못합니다.
적용해보세요. 여러분은 목장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세요? 마지막에 가야겠어요? 멀쩡할 때 가면 안될까요?
소명 받으려면,
다섯 번째는 자기가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5)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1-4절까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과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성령이 온 땅에 충만한 그때에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을 보고 첫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 이유가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 해야 할 말들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다. 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보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사야는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 기존 가치관이 산산조각 나도록 부서지는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신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들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 죽어지는 경험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선 사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왜 유독 입술이 부정하다고 하는 걸까요? 선지자는 더욱 말씀으로 사역을 해야 되는데 입술은 말씀을 전하는데 가장 필요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가장 죄를 쉽게 지을 수 있는 기관입니다. 내가 던져지고 오픈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름 받은 인생인 것을 증거 해야하는데 말로하다 보니깐 이 소명을 말로 전하다보니깐 말을 잘하면 그냥 이단 삼단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하지 않는 말은 화로다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나의 죄성을 보고 가지 않으면 말씀 전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서 전하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열광을 하면 웃시야처럼 하나님 자리에서 자기의 입술의 부정한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정말 화로다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 입술이 실수였다는 이유가 대부분 차지합니다. 딱히 욕을 해서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너무 세상적이라 그 사람을 위해 믿음으로 애통한다고 하면 욕하는 것으로 듣고 그 사람이 어때서 너만 믿음 좋냐? 이것도 입술이 부정한 것이고. 큐티도 잘하고 자기 죄도 잘보니깐 큐티만 잘하면 뭐해, 살림을 잘해야지. 이 것도 다 부정한 것입니다. 핀트 안 맞는 꾸중, 칭찬은 이 모두 부정한 입술입니다. 소명을 받으려면 입술이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목사님들께서도 다들 목원으로 시작하십니다. 목원이신 목사님 보고 목자가 아내를 사랑하냐고 했더니 대답을 금세 못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아내가 예쁘냐고 했더니 대답을 못하고 마음씨가 예쁩니다. 솔직하다 생각하고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음에 든 적이 없다고 했답니다. 아내가 상처를 받는 게 당연한데 아내가 목장에서 이런 나눔을 받아내니깐 우리들 교회에서 이런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다들 이런 얘기를 안 하니깐 병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 목장보고서를 읽고 어떻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그런 나눔을 하냐고 했더니 내가 아내 팔아 설교해서 성공 좀 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부정한 입술이여. 했더니 하나님은 목사님 다리에 핀 숯을 대가지고 다리를 분지르셨습니다.
적용해보세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부정한 입술인 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생각도 하기 싫으면 칭찬만 합니다. 쪼끔 알면 비판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생각하기 싫으면 칭찬만 합니다. 쪼끔만 알면 비판합니다. 어디에 속해있습니까?
제가 설교를 안 하고 이런 식으로 큐티 소그룹 모임을 교회 개척하기 전 20년 했는데 사람들의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보니 제가 체휼이 되어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설교 한게 아니고 잘 들어주었습니다. 누구도 나에게 설교 들으러 오는 사람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말씀이 없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말씀에 의거해서. 그때는 제목 정하지 않고 한 절, 한 절. 1절 다음에 2절. 2절 다음에 3절 이렇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싶은데 여러분이 실력이 없어 할 수 없이 제목을 드립니다. 한 절 한절 읽으면 잘 못 알아먹습니다. 한 절, 한 절 말씀으로 내 얘기를 하면 상대도 자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설교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니깐 한 사람 한 사람 데려오니깐 이렇게 모였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목회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말씀 읽는 것이 좋아서 깨닫고 나누고 기도하고. 이사야의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자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시대를 품고 가야 합니다.
여섯 번째는 핀 숯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합니다. (6-7)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이사야가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그 입술을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으로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먼저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핀 숯을 갖다 댔다고 하니 얼마나 아픕니까? 입술이 가장 예민하고 얇은 부분인데 숯도 아니고 핀 숯을 갖다 대야 그제서야 말조심이 되는 것입니다. 소명은 자나깨나 말조심. 꺼진 불이 아닌 꺼진 말도 다시보자. 그 정도로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소명의 절대적인 적용은 말조심인 것입니다. 이것이 죄 용서함을 받은 경험을 갖지 않고서는 말조심 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날마다 입술이 부정하다고 하면 굉장히 아픕니다. 울음을 터트려 수술해야 하니 너무 부끄럽고 수치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면 수술이 되어서 새살이 돋는 것입니다. 제단에서 나온 숯이니 말씀의 불로 처방하고 처방 받는 것이 너무나 아픕니다. 네 죄가 사하여졌다는 말씀에 드디어 처방을 잘 받으니 하나님이 처방으로 핀 숯으로 입에 가져다 댔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맞습니다고 하니 이사야에게 생기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죄 선언을 들어야 합니다. 정죄의 마음이 아니라 회개의 마음은 인간의 최고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미움도 슬픔도 아름다움도 아니고 회개가 최고의 감정이기 때문에 제가 눈물을 흘리지만 얼마나 많이 누리는지 모릅니다.
적용해보세요. 말조심을 하라고 입술에 댄 핀 숯이 있습니까? 쉽게 적용하면 지금 목장에서 처방을 받으면 감사합니까? 기분이 나쁩니까?
믿음의 분량이 하나 되지 않으면 너무나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인간은 지옥불에서 올라온 자존적 교만이 있기 때문에 나보고 틀렸다고 하면 너무나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핀 숯이니 얼마나 아프겠어요? 너무 아픈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 목자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사람 분량으로 땅의 언어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거지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얘기해줬지만 설명을 못해주는 것입니다. 살인자가 전도연에게 설명을 잘 못해주는 것입니다. 나 혼자 용서 받았다며 상대방 염장을 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언어, 땅의 언어를 그 사람의 분량에 맞게 잘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일곱 번째는 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8)
이것은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가 죄를 고백하고 사죄 받은 다음에야 소명을 주십니다. 순서가 바뀌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치 혼잣말로 탄식하듯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자마자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한 이사야가 주님의 목소리를 예민하게 들어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딱 알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의 반응이 달라진 것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 받고 처음엔 안 가겠다고 주저앉고 거절한 것에 비해 이사야는 사역을 이미 시작했지만 회개의 은총을 경험함으로 선지자 사역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그때.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해야지 처음부터 나는 아닙니다., 내가 가겠습니다. 내가 잘 될 줄 믿습니다. 중 누가 믿음이 좋아 보입니까? 금세 열심인 사람이 좋아 보이겠죠. 그러나 주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이 주님이 쓰시는 사명자가 되는 길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소명을 받기 위해서 웃시야가 죽어야 하고, 높이 들린 주님의 보좌를 봐야 하며, 입술에 핀 숯을 대야하며,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고 주의 목소리가 들려야 소명을 받습니다. 나는 어떤 순서에 있습니까? 우리 모두 제대로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인내하며 주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부르심입니까? 자원함입니까?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입니까?
이사야는 이미 소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진짜 주의 목소리를 듣고 누가 갈꼬 하는 소리를 듣고 반응을 했다고 했습니다.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 이게 제일 좋은 것입니다.
# 이관희 집사가 목장에서 또 이런 나눔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고쳐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짠하고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예레미야 묵상을 하면서 한 순간 무엇이 되기보다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길고도 멀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고쳐주시고 공동체 안에서 말씀 안에서 영육이 회복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교회 와서 내 죄를 보라고 계속 하시는데 내가 어떤 죄를 졌는지 알고 있으니 회개할 수 있었지만 이번 주 한 주동안 통증을 동반한 피를 쏟을 때 내 죄 때문에 찢어 질 듯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깊은 잠을 자다가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힘들었는데 지난 날의 회한이기도 하지만 참회의 기도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이 힘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허락하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이 너무 힘들었지만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산이나 다른 것으로 치실 수도 있었는데 어찌할 수 없는 생명으로 치시니 하나님 앞에 급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서 하나님이 제 교만을 다루시는 것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맨 끝에는 소식 이관희 집사님의 통증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항암치료가 큰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두 간절히 기도 부탁드립니다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항암을 12번 28번 하면서도 일대일 받고 목장 오는 게 이 세상의 기쁨으로 그 것 때문에 투병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도 몰핀을 안 맞은 것은 맑은 정신으로 성경을 보기 위함이고 설교를 듣기 위함이라고. 여러분 너무 건강한데 설교 들으세요? 그래서 저는 마지막까지 자기 모든 것들을 나눠주고 가고 일대일도 받고 불꽃 같이 살다가.
기독교 영화는 두 주 이상 상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 중에 제 설교를 들은 모든 분들은 이 교회 오빠를 꼭 보셨으면 좋겠는 것이 반드시 삶의 문제에서 모든 것이 해석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좋은 얘기를 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에 이상한 기분이 생기는 영화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고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이상한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하게 해주는 영화라고. 베너를 능가하는 영화라고. 종교와 상관없이 큰 눌림을 주는 영화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보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없다면 목장예배를 대신해도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환경에서 소명을 찾고 암이면 암에서 직장이면 직장에서 부부간이면 부부관계에서 여전하게 하루하루 잘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큰 소명인지 모릅니다. 마지막까지 우리 이관희 집사도 양육을 받았고
오늘 하루가 주어진다면, 거룩을 이루기 위해 좀 더 온전하게 살고 싶다
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삶은 끝났지만 어마어마한 소명의 삶이 펼쳐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명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가정, 내 직장, 나의 모든 환경이 소명의 장소입니다. 부르심의 장소입니다.
말씀을 맺어요. 소명은 위기의 때가 기회입니다. 드러나기 보다는 가리우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 화답하는 공동체를 경험해봐야 합니다. 자기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핀 숯으로 죄 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합니다. 주의 목소리를 듣고 이제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으로 반응해야합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주께서 높은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도다
천사들이 모여서 서로 창화하여 외치니
그 소리는 성전에 가득하도다
거룩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시도다
기도제목
소명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웃시야처럼 하나님과의 예배를 방해하고 나의 별궁인 돈과 권세, 건강에 술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알면서도 무서워서 전도도 못하고 의지하는 웃시야를 전도하게 해달라고. 드러나기 보다는 가리우게 해달라고. 거룩한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서 쓰도록. 공동체를 위해서 특별히 내 입술에 핀 숯을 대게 해달라고 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이제 우리가 부르심으로 인한 자원함으로 주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소명 잘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목세를 위해서 모두가 큐티 목회 소명을 가지도록, 정착이 되도록, 말씀이 뚫고 지나가도록. 다같이 주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부강한 웃시야처럼 술의 별궁에 갇혀 말씀이 안 들리는 남편을 위해서 제가 생명을 내놓았어도 남편 뒤에 숨어서 이렇게 주의 일을 하겠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숨어있어도 드러나기를 원하면서도 또 그런 것들이 드러나지 않길 원하는 모습은 가장 저에게 많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언어도 땅의 언어도 쓸 줄 몰랐습니다. 나 혼자 착하니 내 입술이 부정하다는 것도 모르고 그러니 하나님 이렇게 쓰시려고 얼마나 많이 핀 숯을 갖다 댔는지 모르고.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말로 설교를 하기 때문에 주님이 속지 않으시고 계속 핀 숯을 갖다 대셔서 제가 정말 아픕니다. 주님 제가 어느 때까지 입니까? 하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이 정말 가야 될 길이지만 그래도 아픕니다. 주의 목소리를 듣고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어디든 언제나 보내소서.가 되게 하여주소서. 낼부터 목회자 세미나입니다. 수많은 사단의 공격을 물리쳐 주시고 소명 받고 큐티 목회가 정착되도록 말씀이 뚫고 들어갈 수 있도록 역사해주시옵시고. 섬기시는 모든 교회도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9. 5. 19 목장 예배>
지상욱 목장과 함께 한
한수진 목장 보고서(23)
일시 19. 5. 19 4-6시 넘짓.
장소 카페 스태리
참석 지상욱, 한수진, 홍현의, 이성규, 강상덕, 장문석, 이지민, 우지현, 조수빈, 조예진, 이은영 (11)
나눔 오늘은 지상욱 목장과 나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플롯, 기계, 정치외교, 경제학, 상담심리, 유아교육, 역사, 실용음악, 법률 전공에 마케팅부, 웹디자이너, 취준생, 대학원생, 원장님 등 서로 다른 전공과 직업군의 우리,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적절히 사용해가며 나눔을 했습니다.
#1. 시작 기도 (지상욱 목자)
#2. 아이스 브레이킹 '나를 맞춰봐'
이성의 또래, 직업 또는 학과, 취미 등에 대해서 예측해보고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그 중에 결혼하면 배우자에게 ( )을 해줄 것이라는 질문에
: 맛 집 데려가기, 경제권 양보, 대화, 기도, 파스타(지금부터 배워서), 사랑, 아침 밥(자매의 답변), 네일아트(형제의 답변), 집안 일, 모든 지 다함께 요리면 요리, 청소면 청소(형제의 답변, So sweet)라는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아침 밥 해주는 목장, 네일아트 해주는 목장입니다. 쪼인에 적극적으로 관심과 연락주세요^^
#3. 나눔 손수 준비해 오신 질문 카드
질문과 답변 중에 하나를 나누면,
- 이런 면에서 우리 목자가 좋다. (한수진 목자^^)
1) 예쁘다.
2) 재밌다.
3) 먼저 망가져 준다.
4) 잘 들어준다.
5) 목장을 잘 이끈다.
+ 하늘의 언어를 땅의 언어로 잘 풀어준다
(우리 수준에 맞춰 설교요약 짱짱짱!!!)
+ 섬김(카풀)과 나눔(물티슈ㅇ)이 대단하다.
#4. 지상욱 & 한수진 목장 기도제목 나눔
조수빈
1. 이번 주 토요일 한국사 시험 꼭 딸 수 있도록
한수진
1. 건강관리 잘 할 수 있도록
2. 오빠의 불신결혼으로 큐티를 열심히 했는데 요즘 생활예배가 무너져있다. 다시 깨어서 회복될 수 있도록
장문석
1. 감기 낫고 건강한 한 주 보낼 수 있도록.
이지민
1. 요즘 게으른데 알찬 한 주 보낼 수 있도록
홍현의
1. 3살인 조카가 감기에 걸려 많이 아픈데 감기 빨리 나을 수 있도록.
2. 나의 기침도 나을 수 있도록.
이성규
1. 항상 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실하게 진실하게 거룩하게 감사한 한 주 보낼 수 있도록
강상덕
1. 나의 그루터기에서 영적 새싹이 날수 있도록.
이은영
1. 이번 주 수요일 아버지 암 진료 보는데 암 전이가 심각하지 않도록.
2. 아버지 암 사건이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도록.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상욱
1. 신교제, 신결혼
우지현
1. 내일 어머니 정기검진 받는데 결과를 위해서
조예진
1. 친언니 입덧이 심한데, 입덧이 나아질 수 있도록
2. 홀로 계신 어머니 건강 주님께서 보호해주시길
3. 미래 확신 생길 수 있도록 길 열어 주시길
#5. 마지막 기도 (한수진 목자)
로 목장을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