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2019 0421 예수께서 살아나셨다 마가복음 16:1-18
알파고가 아무리 이겨도 기뻐하지 않는다는 책 제목을 봤다. 아이를 놓자마자 예수가 안믿어져서 목자도 내려놓았다는 성도도있었다. 믿음은 정말 선물이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성숙이랄까. 그러나 우리는 철 들지 않아 성숙하게 살고싶지가 않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모르면 불가능 하다.
- 부활의 스타 막달라마리아가 있다.
마태복음에 보면 다른 인칭이 보인다. 막달라마리아가 주인공이란 뜻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여자들이 끝까지 따라갔다고 조명해줬다. 이는 제자들과 대조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막달라마리아는 부활의 스타다. 막달라마리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A. 근심하며 갔다.
요셉은 인본까지만 하고 떠났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예수님를 집중했고 아침일찍부터 찾아갔다. 시체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갔다. 살아계실때 발에 향유를 바른 여자가 있었다. 나사로의 누이 베다니 마리아다. 그러나 오늘은 막달라마리아였다. 일곱귀신이 들린 창기 막달라마리아다. 둘은 차이가 있다.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누이라고 했다. 마태, 마가복음에는 베다니 시몬집에 거하는 마리아라도 한다. 거기에는 그냥 마리아라고 나온다. 사람들은 향유부은 사람이 전부 마리아라고 그렇게 보지만, 나사로 누이가 베다니마리아다. 베다니마리아는 찬란히 복음전하라고 세 복음서에 써있다.
장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장사를 준비하기위해 향유를 이미 발랐기에 다시 할 필요가없다. 부활을 표면그대로 믿은 사람은 베다니 마리아밖에 없다. 야곱의 어머니 마리아 막달라마리아 등등은 찾아갔다. 베다니 마리아는 왜 안왔을지 유추할 수 있다. 말씀을 예수님 발아래서 듣는 실력이 최고인 듯 하다. 주님은 이미 나사로 사건을 통해 마리아와 마르다를 양육해주셨다. 그래서 시 공을 초월했기에 그렇게 안 나타나도 된다.
믿기에 부활의 현장에 안오는 모델도 필요하다. 중요한것은 믿느냐 안 믿느냐다.
막달라와 여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누가 이 돌을 굴려줄까 하며 근심으로 갔다. 아무리 큰돌도 옮겨주신다. 복음을 전할때 거절감에대해, 영접 하지 않을까봐 걱정한적이 많았지만 그 돌이 이미 치워져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못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다. 염려함에도 일단 가는 게 이 여인들이다. 제자들은 한 명도 안 갔다. 두려움이 많았지만 구원의 두려움으로 바뀌니 이미 차워져있다.
적용) 예수님을 증거하고자 할 때 하나님과 나 사이 막는 돌은? 두려움? 심각하지 않음? 차차 되겠지 하는 마음?
B. 시체를 찾는 것.
십자가 못박히신 예수님을 찾으러 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 그녀들은 죽은 예수님을 찾으려고 했다. 염려하고 슬펐고 시신을 보고 위안을 얻으려고 했다. 세월호 시신때문에, 몇년동안 위로를 얻으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보여지는 것에 위로를 얻으려고 한다.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무덤에서 허비하는 것도 예수님을 무시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
하루만에 간 남편의 사건은 놀라운 일이었으나 구원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죽은 예수님을 찾았기때문에 남편의 구원보다 남편의 사건이 처음에는 더 앞설정도로 놀랐지만, 다 해석되는 은혜도 허락하셨다.
천사가 이 여인들에게 얘기해주셨다. 그날 에스겔 말씀으로 하루만에 살아나게 하셨다. 무덤에 계신 분이 아니라 죽음을 정복하신 예수님을 믿도록 하자.
6절에서,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한다. 천사가 그렇게 얘기했다. 남편의 죽음을 통해 말씀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한다. 시신이 삼일동안 집에서 장례를 치뤘으니, 얼마나 큰 일인가. 남편이 회개하고 갔기때문에 무섭지 않았다.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무섭지 않았다. 방이 안방이 큰방이었는데, 여전한 방식으로 각자 방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다. 남편생각나서 못살아 하지 않았다.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은 절대 무서운 사건이 아니다. 이런 구절으로도 말씀으로 해석받으라고 시신이 있던 전에 똑같이 30년간 사역했다. 사대 성인은 전부 무덤이 있다. 빈 무덤이야 말로 세상과 가른 확실한 증표다. 말씀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신 분이다. 누우실 필요 없으심에도 어두운 무덤에 누우신 것을 보면서, 남편의 구원을 위해 누워야 할 일이 있었다. 육시부터 구시까지 암흑속에 누워야 휘장이 찢어지고 마침내 간증의 날이 오게된다. 나에게 무서운 무덤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무서운게 없는 게 아니다.
적용) 사건 속에서 죽은 예수를 찾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님을 찾습니까?
이 사건 속에서 시체나 찾고 있으면 안된다. 세월호 시체때문에 몇년이나 보냈어도 그런 얘기 할 수도 없다.
예수님이 앞에 있어도 마리아는 선생님이여 이런다. 시체보려하니까 예수님을 못 본다. 마지막 시신 찾으려고 돈을 돈을 들였으나 나오지도 않았다.
C. 마리아에게 사명을 주신다.
7절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에서라도 사명을 주신다. 베드로에게 가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라고 했다. 수제자 베드로의 회복을 위해서 마리아를 쓰신다.
말씀하신대로. 그러므로 말씀을 먼저 듣는게 중요하다. 큐티하는게 너무 중요하다. 갈릴리는 처음 예수님을 만난 장소이며 배신하여 망한 장소이기도 하다. 갈릴리는 가불땅이다.
그들의 고향 갈릴리에가서 만나주신다. 너무 낙심했던 베드로. 너도나도 물고기 잡으러 생업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은 다시 돌아오라고 하신다. 갈릴리에서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시쳇말로 갈릴리는 주 안에서 강남 땅이 지금 되었다. 가기도 싫고 생각도 싫은 갈릴리였으나, 베드로는 갈릴리 당이라고 할 정도로 무시했었다. 예수님을 믿는 다면 나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은혜를 받는다. 첫 사랑을 회복한다. 다시 자기 식구들로 돌아가야한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먼저 가겠다고 예수님이 하신다.
내 자리에 예수님만 먼저 오시면 가장 최고의 자리가 된다.
적용) 내 삶이 자리는 천합니까? 일류입니까? 일류=오직 사명의 자리.
다들 일류다. 부활의 주님을 우리는 다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광채가 난다고 한다. 우리는 뭐 그정도냐하겠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다. 부활의 광채가 환하니 우리들교회만 오면 아름답다.
D. 주님은 양육해주신다.
마태복음엔 천사가 와서 양육하니 예수님의 말이 기억나서 사도들에게 외쳤다고 했지만, 마가복음은 놀라여만 써서 불신앙적으로 써놨다. 하루만에 남편이 죽었는데, 하루만에 구원되었다.
마가가 왜 여인들의 기쁨의 감정을 배제했냐면, 두려움도 사실이기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말씀을 기억하여 해석해냈다.
9절에서,
부활의 주님을 누구에게 가장 보고싶을까 생각해봤다. 이것을 외칠자는 십자가를 떠올릴 것이고, 가장 십자가아니면 가장 비참한 사람들일 것이다. 예수님이 미친 삶의 영향은 너무 컸다.
예수님 무덤에는 정말 아무도 안왔다. 이른 새벽에 아무도 안갔는 때에 혼자갔다. 아리마대사람 요셉도 떠낫다. 주님이 먼저 보내셨으나 막달라 마리아가 가있다. 인간이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같이 이루어간다.
남편이 세상을 떠날때 무서웠으나 그날 말씀으로 바로 살아났고 큰 기쁨이 왔다. 너무 살았고 생동력이 있어서, 에스겔에 그대로 내 얘기를 하고계시니 살아난 사람은 교양있게 못 산다.
교양있게 살다가도 결정적일때는 마리아가 무덤에 가듯 교양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베다니 마리아는 복음서에 계속 기념하라고 몇번이고 써있다.
내 사건에 살아남았다면 위로받는 정도가 아니라 증거해야한다.
적용) 내 살아난 부활의 증거를 누가 가장 먼저 들어줬으면 좋겠나? 막달라 마리아같은 자인가? 부자인가?
너무 비천하게 내려가면 주님을 만날 수 있으나, 못 내려가는 사람은 못 만난다. 진짜 비천하다 여기고 주님을 만나면 비굴해지지 않는다. 그랬기에 고려호텔에서 설교할 수 있었다.
- 믿지 아니하는 제자들이 있다.
10-11,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마리아의 말을 들었어도 믿지 못했다. 창기고 귀신들린자였기때문에.
남편의 얘기가 하루만에 데려갔고 돌이켜 사는 것을 왜 기뻐하지 않겠느냐, 니가 왜 죽고자 하겠느냐? 에스겔 말씀으로 남편 구원받았다 하니까, 내 옆의 여자들은 같이 기뻐했으나, 평신도인 나의 말에 사역자들은 못 믿었다. 시누이 엄마 등등 여자들만 몇 시간씩 간증했다.
곧장 사명으로 나간 목사님. 목사님들께 에스겔 간증을 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성경 어디를 봐도 내 얘기 같았다.
우리들교회부흥은 정말 말씀 그것 뿐이다. 하나님도 기특해하신 것 같다. 성경은 말씀만 본다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다.
남자들은 예수님께 직접 교육 받았어도 믿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납득 안되면 이상한 얘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12절)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남은 제자들에게 알렸으나, 역시 믿지 아니하리라 가 세번이나 나온다.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음식 먹을때 나타나서 믿음 없는 것과 완악함을 꾸짖으신다. 예수님은 부활체라서 안 먹어도 되는데 같은 입장이 되고자 밥상에 다시 낮아지신다. 하기싫은 일이라면 누군가의 수준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할때 쓰는 단어 완악. 제자들이 완악하단다. 제자들을 꾸짖으실때 한번도 쓰지 않은 말이었으나 지금도 그러니 꾸짖고 강력하게 완악하다 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살아난 얘기를 통해서 우리는 너무 위로가 된다. 제자들도 못 믿는데 우리도 당연하지 하는 마음.. 먹지말자.
제자들도 제자의 길을 걷고싶으나 믿음이 없다.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마지막까지 꾸짖으시는 예수님.
적용) 여러분이 믿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 예수님이 살아나셨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14-15 사이에 믿지도 않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라 하시는 명령을 어떻게 하실까? 완악하기 짝이없는데도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온 천하에 우리가 어떻게 다닐까? 참된 양육 구조속에 있으니 양육, 목장을 통해 저절로 복음을 통해 간증이 퍼지고 해서 온 천하에 퍼지는 것을 봅니까?
믿음이 없는 제자들보고 전파하란 듯이 우리들교회도 그렇다. 믿어지지 않아도 복음을 전파 하는 것 부터가 하나님 양육 방법이다. 믿지 않는자도 믿는 자도 부흥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구원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자리에서 정죄를 받는다고 한다. 구원얻어 천국간다.
17-18에서, 믿으면 표적이 따른다고 한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했어도 기복적인 설교를 한 적 없는데, 귀신아 물러가라 방언을 말하기를 구하노라 하며 믿는 자가 이런 표적을 따르리라 한다.
천국의 언어를 쓰는게 새 방언이다. 네 아니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잘 쓰는게 새 방언이다. 진짜 방언뿐만아니라 미안하다 사랑한다 계속 섬기는 언어가 진정 방언이다.
적용) 집안에서 직장에서 천국의 언어를 씁니까? 주님을 믿고 따른다면서 여전히 지옥의 언어를 내뱉습니까?
믿는 사람에게 표적이 따른다.
[기도제목]
조민우
- 시험잘 치고 올 수 있도록
- 좋은 사람 만날 수 있도록
유병우
- 수요예배 여전하게 올 수 있도록
- 십일조를 온전히 드릴 수 있도록
안식
- 한 주를 잘 제자리 붙어있을 수 있도록
- 돈 문제를 가지고 얘기할 수 있도록
- 형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김효진
- 다음주에 회식 잘 버틸 수 있도록.
구준호
- 큐티 한 주간 잘 해볼 수 있도록
길태수
- 출장 일정 잘 묻고 일이 잘 풀릴 수 있도록.
- 아직도 내 계획이 안 내려놔 지는데 우선순위가 바르게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