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8 윤정원목장 목장보고서
본문: 계시록 14장 13-20절
제목: 추수할 때가 이르러
설교자: 김양재 담임목사
내용요약
영원한 복음을 만나기 위해 진노를 깊이 경험해야 한다. 영원한 복음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제는 때가 차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알곡과 가라지를 추려 내신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2장부터 14장까지는 계시록의 요약이고 구속사의 진수이다. 오늘 본문은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고 한다. 추수에 대해 생각해보자.
1. 구원의 추수가 있다. 즉, 알곡의 추수다.
14절) 다니엘서 7장 13절에도 같은 얘기를 한다. 이제 마지막 추수를 하시는 사람의 아들 인자는 예수그리스도시다.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표현하고, 흰 구름위에 앉아 있음은 신성을 나타낸다. 그머리에 금면류관 쓰고 있음은 왕 같은 통치자를 의미한다.
예리한 낫을 가지고 심판하시려면 그 전에 가시 면류관 쓰신 것을 반드시 보여주셔야만 했다.
어떤 지도자도 가시면류관의 섬김과 희생 없이는 금면류관의 리더십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진노를 깊이 만나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확한 분별을 하기 어렵다. 낫은 70인역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말씀은 여러 모양으로 표현되기에 오늘은 낫으로 표현하고 있다. 왜냐하면 낫이 추수를 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15절) 휘둘러는 보내서 라는 뜻이 있다. 땅의 곡식이 다 익었다는 것은 알곡 이외의 것들이 다 시들고 부패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5장 16절에 ...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이 땅에 가득차지 않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마지막 심판은 죄악이 이 땅에 가득하게 될 때 그 때 일어나게 된다.
예리한 말씀의 낫을 보내서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낸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천사에게 성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왜 그런가? 예수님께서 친히 최후의 심판의 때는 아버지만 아시지 나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고 말씀하셨다.
구원에 대한 것은 다 알려주셨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로 남겨 두어야 한다. 주님이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면 안 된다.
때가 차면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을 받은 어린양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양만 따라다니면 안심이다. 하나님은 누구의 구원의 때도 다 알고 계신다.
역대상에서 보면 구속사의 족보와 세상의 족보가 함께 있다. 세상의 족보를 뽑아내지 않고 신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창성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적용) 내가 힘든 이 때에 알고 싶은 그 날과 그 시는 무엇인가?
16절) 구원의 추수가 시작되고 있다. 구름위에 앉으신 인자가 휘두르매에서 휘두르매는 여기서 한글로는 같아보이나 더 강한 의미로 던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력한 말씀을 던질 때, 받아들이면 알곡이고 구원이다.
말씀을 던지면 힘들어보이나 이것은 고름짜는 일이다. 고름도 꽉 차면 짜도 안아프다. 제 때 짜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키우면 큰 병이 된다.
진노를 깊이 만난 성도는 이미 알곡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낫을 아무리 휘둘러도 거둬진다.
그러면 어떻게 알곡이 되는가? 마태복음 13장 26-30절까지를 보면,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나온다. 마태복음에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요한이 본 최후의 심판, 추수환상과도 똑같다.
내 속에 가라지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가만 두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란다.
아무리 휘둘러도 가라지만 베어지지 곡식은 상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 와도 내 욕심이 가지쳐지고, 내 본질은 점점 성화되어감을 의미한다. 바로 이것이 추수때에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이미 천국에 입성한 자의 모습이 아닌가한다.
*천재 부모 4가지 유형
amp#9312 폭군형-자녀를 매질로 다스림
amp#9313 교관형-자녀를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연습벌레를 시킴.(타이거우즈 부모)
amp#9314 이기적인 부모-자기 욕구를 해결한 대리인으로서 자식을 이용함.
amp#9315 집착형-너무나 자녀를 사랑해서 집착에 사로잡혔던 부모들이 있음.
내 몫에 뗀 십자가는 가장 훈장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뽑아내실 때까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끝까지 안변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결혼했다면 선택할 권리가 없는 인생이다.
적용) 가만 두어야 할 가라지는 무엇인가?
2. 심판의 추수, 즉, 가라지의 추수이다.
17,18절) 주님의 성도들은 주님께서 심판하시지만 불신자, 악인의 심판 추수는 천사가 집행한다. 제단으로부터 나온 성도들의 기도로 심판이 행해진다. 성도들의 기도로 심판이 앞당겨지기도 하고 연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보기도는 참 중요하다.
히스기야가 성군인데 앗수르가 쳐들어왔을 때 성전에 올라가서 랍사게의 편지를 놓고 기도를 했다. 그 때 주님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기도가 차면 내 안팎의 원수를 다 심판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들으실 기도를 해야하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눈물을 흘려야한다.
여기서 포도송이는 불신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포도송이도 익었다고 말씀한다. 포도송이 자체가 너무 탐스럽게 익어서 그 열매 하나 밖에 볼 것이 없다. 그래서 옆에 시든 것이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 극상품이기 때문에 너무 외모, 권력이 좋고 돈이 많기 때문에 누구도 가라지 악이 가득찼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19절) 낫을 휘두르니까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워 보여도 말씀을 보내는 말씀의 낫에 살아남지 못하고, 밟히는 포도주틀에 던져지는 것이다. 대단한 포도송이 같은 악인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다. 그 당시 로마 황제가 하나님 자리에 있었다. 로마고 짐승의 가치관이고 이세상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교만하게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사건만 오면 진노의 포도주틀에서 휘청거린다.
잘먹고 잘 살다보면은 지옥을 우습게 생각한다. 후회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가라지라는 뜻이다. 불에 살라지니까 힘이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처럼 무서운 게 없다. 운다는 게 감정적인 고통이고, 이를 간다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그것이 지옥고통이다. 이땅에서 감정과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 자는 도리어 복인 것이다. 나중에 당할 고통을 지금 당해봄으로 지옥을 피할 시간을 허락받은 것과 같다.
남을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불법을 행하고도 이땅에서 울며 고통당해보지 않고 이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그러므로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자는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지금도 임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똑같은 사건에서 하 사람은 구원이고 한 사람은 심판이다. 천국 적응훈련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진노의 포도주틀에 던져지니까 문자 그대로 진노를 당하고 그대로 끝난다. 진노에서 구원으로 옮겨올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미리 미리 천국적응훈련을 하셔야 한다. 이것이 심판의 추수다. 심판도 구원도 다 이 땅에서 결정된다.
20절) 1스다디온은 185m 이니까, 1,600스다디온 296km 되는 팔레스타인 남-북 거리인 약 300km에 달하는 거리에 피가 튀었다. 팔레스타인 땅 전체가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1,600=4x4x10x10이다. 4라는 숫자는 네 바람, 네 천사, 네 모퉁이 이런 구절을 전에 말씀드렸다. 10이라는 숫자는 한자로 찰 만 자로 가득차다는 의미이다. 1,600스다디온에 퍼졌다는 것은 범우주적, 전세계에 걸쳐 철저하고 완전하게 됨을 상징한다. 이세상의 완전수인 4를 두 번곱한 것에다 10을 두 번곱한것은 이세상 불신세력에 대한 완전한 심판, 반드시 우리의 기도로 악인에 대한 심판이 행해지기에 예리한 말씀을 가지고 열매도 맺어지고 심판의 역사도 일어난다. 내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지고 적용하면 대단한 인생인 것을 알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하시기 바란다. 특히 하나님은 성도가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 괴롭히고 고통준 것을 결코 잊지않으시고 심판을 참혹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쉽지 않다. 교회는 나가는데 예수 안믿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님은 안 믿어지는 사람도 많다. 바리새인 대제사장도 성경지식이 출중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되지 못했다. 믿지 않았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자신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교회를 나가도 목사가 되어도 겉모습은 포도송이처럼 그럴 듯한데 다 예수님을 안 믿는다.
예수님을 내 인생의 구세주로 영접을 하면 이세상의 쾌락을 누리지 못할까봐 우리는 두려운 게 있다. 내 속의 가치관들이 다 심판 받아야 된다.
김점동 의사와 마부인 박유산 부부이야기.
고난 당하는 성도를 귀하게 여기면 알곡이고 멸시하고 귀찮아하면 포도송이다. 포도송이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다. 예수님에 대해 평생 연구했는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못했다. 왜인가? 죄가 보이지 않아서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는 생각이 안드는가?
아무도 못알아주고 죽는다고 하여도 구원받는다는 것은 노벨평화상과도 비교가 안 된다.
적용) 슈바이처가 끝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 행위가 너무 대단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 나에게 마지막 날은 알곡인가, 포도송이인가? 구원의 날인가, 심판의 날인가?
3. 분별이 필요하다.
심판하기 위한 예리한 낫에 대해 생각해보면, 준비된 낫이 없으면 거두기가 어렵다. 그런데 또 올바른 휘두름이 아니라면 그것은 거짓선지자이다. 분별해야한다. 참 선지자라면 거둘 때를 잘 알고 곡식이 익었음을 알고 말씀의 낫을 던져야 한다. 주님도 천사의 음성을 듣고 휘두르셨다. 익기 전에 결코 휘두르지 않는 주님처럼 우리는 알아도 기다려야 될 때가 있다. 추수는 극도로 분별이 필요하다. 잘못 베면 알곡까지 벤다. 인간의 힘으로는 못한다. 사람을 분별하는 것처럼 영적인 일은 없다. 목회도 사업도 결혼도 사람을 분별해야 실수가 없다.
내가 오늘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잘 지면, 분별이 저절로 생긴다. 예리한 낫에 대해 살펴보자. 낫벼리기 라는 말이 있다. 무뎌진 날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낫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 불에 넣고 달구고 매질하고 물에 식히는 과정을 거듭하면 색도 예쁜 호박색이 된다. 칼날을 순간적으로 달구고 칼등은 천천히 담그는 것이다. 칼날을 강해지고 칼등은 물러져서 부드러워진다. 그래야 나무를 세게 내리쳐도 칼등이 부러지지 않는다. 그런데 칼날과 칼등을 한번에 담금질을 하면 모든 부분이 강해져서 도리어 쉽게 부러진다고 한다. 그렇게 불과 물에 달궈지는 수 많은 과정을 거쳐야 예리한 낫이 된다. 그냥 뚝딱뚝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 인내도 그렇다.
유명한 대장장이는 칼날 위에 물방울 굴리기를 한다. 그 칼 위에 물방울이 서 있다. 칼날 위에 물방울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달구기와 담금질을 당해야 할까. 추수할 때가 이르렀을 때, 알곡과 가라지의 분별을 당하기 위해 이런 수없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알곡으로 구원의 분별을 하고 다른 사람을 주님께인도할 수 있다.
칼날 위에 물방울 같은 성도는 사건이 왔을 때 죄인된 내 주제를 아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갖은 사건을 주신다. 내 주제를 분별하면 다른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쉬워진다. 내가 분별이 잘되면 구원의 추수속에 들어가고 사람들을 구원의 추수속에 이끌 수가 있다.
다른 사람 인도하려면 달구기와 담금질의 대가가 되어야 한다.
4. 주 안에서 죽는 복을 허락하신다.
13절) 왜냐하면 이러한 접속사로 시작한다. 성도들은 자신의 고통과 고난에서 해방되어 안식하는 것은 그들의 행위들이 그들과 함께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위가 마지막에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 바벨론의 집요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믿음을 지키기 위해 인내한 자들에게 기쁨을 주신다. 주안에서 죽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주 안에서 죽으면 주와 함께 있게 되고 안식하고 이세상에 가장 큰 복이 있다고 한다. 성령께서 그러하다도 맞장구를 쳐주신다.
중요한 것은 죽음 자체가 복은 아니다.
20절에 성 밖에서 진노의 틀에 밟힌다고 말씀한다. 시온 성 안과 밖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시온 성 밖은 구원받지 못하고 시온 성 안의 성도는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 어린 양은 십자가 지고 죽으셨다.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면서 어린 양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늘 세상과 짝한다. 세상과 등을 돌리지 않고는 그 길을 따라갈 수가 없다. 목숨을 내놓고 가야만 한다.
무엇이든지 허투루 할 수가 없다. 목숨을 내 놓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내가 날마다 죽노라 고 하였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지켜낼 수가 없다. 어떤 사건에서도 예리한 낫으로 보냄을 받고 휘둘러서 추수를 한다고 하였으니 말씀으로 보냄받고 말씀으로 던져질 때, 내가 죽어지고 썪어지고 밀알이 된다. 내가 죽어지는 것이 있다면, 육신의 죽음이 내게 왔을 때 이 수고를 그치고 쉬라고 하시는 것이다. 날마다 죽어야지 나중에 죽음이 왔을 때 할렐루야 아멘 하고 가게 된다. 날마다 죽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려운 것이다. 죄가 없으니까 죽음이 두렵다.
기도제목
윤정원 목자
1. 직장에서 분별된 말과 행동할수 있도록
2.내눈에 보기 좋은 포도송이만 바라보지 않을수 있도록
3. 내안의 가라지 인정하고 알곡이 되도록 매일 큐티하고 말씀묵상으로 내자신을 되돌아 볼수 있길
4.목장 식구들을 더 배려하고 믿음으로 분별하여 바라보고 더많이 기도하기를
5. 사람의 눈치와 기분을 살피는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더 구하는 내가 되기를
5.부모님이 우리들교회에 같이 나올수 있기를
6.그리스 아웃리치 신청 결과 어떻게 나오든 주님의 뜻으로 잘 받아드릴수 있길
7. 남자친구가 예배시간 늦지않고 잘 지켜서 예배에 참석할수 있게 그 친구의 마음 이끌어 주시길
오승하
1. 생활패턴 너무 무리 가지 않게, 잘 조정해서 일 할 수 있도록
2. 온라인 사이트 이제 거의 다 완성돼가는데 내 욕심대로 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묻고 가도록
3. 말씀, 기도 생활로 깨어있도록, 예배 사수하도록
최영심
1. 주님과 친밀해지고 알곡이 되도록
2. 몸과 마음건강위해 운동 꾸준히 하고 상담통해 내 안에트라우마 잘발견되고 치료되길
3. 직장과 주변 관계가운데 지혜롭게 행하도록
4. 9월전에 거취 재정감당할만한 안전한곳으로 인도해주시길
5. 한쪽눈실명한 친오빠(성은)가 하나님찾고 믿길
6. 남은 형제들구원, 서로용서하고 가족들과 주안에서 친밀해지길
김소연
1. 규칙적인 생활로 몸과 맘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도록
2. 대학원 상담심리교육학과 전형이 떴는데 학업계획서에 지혜와 능력 더해주시길
3. 자신감갖을 수 있게
이은화
1. 포도송이 같은 겉모습에 속지 않고 내 안에 가라지가 뽑히울 때까지 잘 보며 가도록
2.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건들 통해서 죄인된 내 주제를 잘 알고 가는 칼날 위에 물방울 같은 성도가 될 수 있게
3. 일대일 양육 5주차인데 함께하는 은정,인애, 슬기와 끝까지 말씀으로 양육받고 성장하는 시간 되길.
4. 건강 회복하여 주심 감사,계속해서 체력 잘 기를 수 있도록
5. 적절한 때에 순조롭게 잘 옮겨가도록
6. 싱글의 시기,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잘 서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