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4. 8 위한나 목장 보고서 (18)>
추수 때가 이르러
일시 : 18. 4. 8 주일
말씀 : 요한계시록 14:13-20
설교 : 김양재 목사님
영원한 복음을 만나기 위해서 진노를 깊이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복음에 주인공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실은요, 영생과 영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실이 지옥이면 지옥을 살다가 지옥에 가는 것이고, 현실이 천국이면, 천국을 살다가 천국에 갈 것입니다. 이제는 때가 차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알곡과 가라지를 추려 내신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부터 14장까지는 계시록의 요약이고 구속사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낳은 아이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가 광야로 가서 양육 받은 후에 교회가 탄생하고 사단은 삼위일체처럼 교회를 공격하고 결국 영원한 복음이 사단에게는 심판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심판인 예리안나의 추수와 뒤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과 백보좌 심판은 똑같은 이야기지만, 반복된 진행으로 심판이 점점 심층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원의 추수를 당할지 심판의 추수를 당할지 모르겠으나, 오늘 본문은 추수 할 때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요한이 밧모에서 본 환상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 끝에 이루어질 알곡과 가라지의 추수 장면이었습니다. 요한이 뚱딴지 같이 새로운 것을 본 것이 아니고 다 있었던 것을 다시 보여주는 환상입니다. 오늘 추수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구원의 추수가 있습니다. 즉, 알곡의 추수입니다.(14-16)
(14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다니엘서 7장 13절, 똑같은 얘기를 또 했습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항상 성경은 똑같은 이야기 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환상 보는 사람들 쫓아 다니면 안됩니다. 이제 마지막 추수를 하는 사람, 아들, 인자는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인자는 예수님의 인성을 표현합니다. 흰 구름 위에앉아 있음은 신성을 나타냅니다. 그 머리 위에 금면류관을 쓰고 있으신 것은 왕 같은 통치자를 의미합니다. 예리한 낫을 가지고 심판하시려면 그 전에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을 반드시 보여주셔야 했습니다. 어떤 지도자도 가시 면류관의 희생이 먼저 수반되지 않고는 금 면류관의 리더쉽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즉, 진노를 깊이 만나지 않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정확한 분별을 하기 어렵습니다.
낫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여러 모양으로 표현되기에 오늘은 낫으로 표현됩니다. 왜냐하면 낫이 추수를 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15절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휘둘러는 보내서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을 의미할까요? 알곡 외에 것들이 다 시들고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을에 추수할 때 보면 압니다. 다 누렇게 시들었는데 쌀알만 살아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5장 16절에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아니함이라)
처럼마지막 심판은 이 땅에 죄가 온 땅에 가득하게 될 때, 그 때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가 너무 극에 달해서 잔인해지고 무감각해지고, 문란해질 때, 이 때 가인의 가치관을 갖은 자들과 거꾸로 살아야 되니깐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 힘든 세상에 진노의 심판을 통해 영원한 복음이 뚫고 들어간 구원자의 수가 다 차기까지 기다리십니다. 이때 예수님보고 낫을 휘둘러 거두라하시면서 이제 거둘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예리한 말씀의 낫을 보내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낸다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천사에게 성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집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이런 장면이 등장할까요? 예수님께서 친히 최후의 심판의 때는 아버지만 아시지 나도 모르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억하시죠?
마태복음 24장 36절에 심판얘기를 하시면서,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목사로 저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알아야 신령한 목사같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몇월 몇일 몇시에 남편이 또는 아이가 돌아온다. 암이 낫는다.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도 자기가 췌장암을 고쳐주겠다고 이 교회를 지어주면 췌장암을 고쳐주겠다고 헌금했다가 사기를 당해서 우리들 교회에 오신 분이 계십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얼마나 신령한 것 같고 굉장히 신접해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모르는 때에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 안다고 생각해보세요, 바람을 피거나 구원의 영적으로도 그 남편은 언제 돌아 올 거라고, 그 여자는 다리 몽둥이가 부러질거라고 이러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남편은 몇 월 몇 일 몇 시에 구원 받을 거라고 그 여자는 떨어져 나갈 거라고 한다면, 제가 그 집사님 붙들고 같이 기도하고 눈물 흘리고 체휼하면서 아파하겠습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 보고 당신 몇 살이면 죽어 이렇게 하면, 우리 죽는 거 다 알잖아요? 언젠가는 다 죽어요. 그런데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것 알려주는 곳 따라가면 안 됩니다. 구원에 대한 것은 다 알려주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채 남겨두셔야 합니다. 주님도 모르시는 것을 알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니 이단의 교주가 이것을 다 안다고 하면서 무섭게 하면서 꼬입니다. 우리는 다 안다고 하면 다 넘어갑니다. 집사님께서 얼마나 그 개척 교회에 헌금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안다고 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단이 이것입니다. 다 똑같은데 안다고 하면 이단인 것입니다. 때가 되면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을 받은 어린양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양만 따라다니면 안심입니다. 내 남편이 몇 월 며칠에 구원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늘 어린양의 말씀을 붙들고 있었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알게 해주시고 구원 받게 해주셨습니다. 바로 그거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구원의 때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어린양과 친하게 지내면 천국 생활입니다. 이 땅에서 천국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면, 나중에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천국 적응 훈련이 필요합니다. 역대 상에 족보를 보니, 구속사의 족보와 세상의 족보가 같이 나옵니다. 그런데 세상족보를 뽑아내시지 않으시고 세상 신자들을 훈련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서 먼저 창성한 모습, 악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직 어린양만 따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득하면서 천국생활을 적응시키시는 것입니다. 때는 안 알려주시고 결국은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어린양이 금면류관 쓰시고 이제 나서신다는 것입니다.
적용해보세요) 내가 힘든 이 때에 알고 싶은 그 날과그 시는 무엇입니까?
16절입니다.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이제 구원의 추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가 휘두르면, 아까 휘두른다는 보낸다는 것이라 했는데 여기는 똑같은 의미지만 더 강렬하게 던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말씀을 던질 때, 받아들이면 알곡이고 구원입니다. 지난번 전도축제에 어떻게 무서운 말씀을 하실수가 있어요? 심판의 복음이라고 하시니 왔다가 도로 가게 생겼잖아요? 그런데 난생 처음 오신 불교 신자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너무 미안해서 말씀이 어려우셨죠? 하였는데 그분께서 아효~ 그렇게 쉽게 설명하는데 어떻게 이해 못하겠어요. 어려운 것이야 있긴 있죠. 어머 교회를 오래 다니셨나봐요? 어디서 오셨어요? 했는데, 저는 오늘 교회에 처음 옵니다. 저는 불교 신자에요. 이러시는데 제가 정말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들 어렵다고 하는 거 다 겉소리겉소리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 듣지도 않으려구요. 정말 제가 말씀을 던졌습니다. 강력한 말씀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완전 초신자가 이해되었다고 하는거에요. 오늘도 제가 새신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려우셨어요? 그랬더니, 아니 그렇게 쉽게 설명해주시는데. 오늘도 그랬습니다. 들을지어다. 말씀을 던지면 힘듭니다. 이건 고름 짜는 것과 같습니다. 고름도 꽉 차서 짜면 하나도 안 아픕니다. 도리어 시원합니다. 그런데 고름을 제때 짜줘야 아프다고 안하는데 안 짜줘도 된다고, 괜찮다고 키우면 이게 내장속에 있으면 복막염이 되잖아요? 병만 중해지는 것입니다. 진노를 깊이 만난 성도는 이제 이미 알곡이 되어있기 때문에 낫을 아무리 휘둘러도 거두어 집니다. 말씀을 던지면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구원 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곡이 되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마태복음 13장 26-30절을 보면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책보셨죠? 마태복음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요한이 본 이 최후의 심판 추수 환상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좋은 씨를 받았지만, 잠깐 쉴 때 원수가 더뿌리고 간 가라지 때문에 인생이 지금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뽑아낼까요? 했는데 주님이 가만두어라 그래서 순종했더니 그 가라지 때문에 깨어있어 알곡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영적 내공이 생겨서 아무리 휘둘러도 떨어지지 않고 구원의 추수에서 뽑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네가 잠깐 잤기 때문에 원수가 가라지 뿌린 것을 모른 것이다. 네가 이것을 인정해야 된다. 네가 영적으로 잠을 잤기 때문에 분별이 안 되어서 가인의 가치관을 가지고 고르고 고른 그 사람 때문에 내 자녀들이 태어났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상대방을 미워하면 안됩니다. 나 옆에 가라지 때문에 힘들어서 죽고 싶다면, 아직도 진노 옆에 영원한 복음이 뚫고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내속에 가라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아직도 해석이 되지 않아 별난 인생이 있는 줄 알고 허상에서 못 벗어나 가라지를 뽑게 해달라고 하니 가만 두어라~! 가만두어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속지 않으시고 예리한 낫을 가지시고 가리지를 베러 오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휘둘러도 가라지만 베어질 뿐 곡식은 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건이 와도 내 욕심이 가지가 쳐지는 것이지 내 본질은 점점 더 성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것이 추수때에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이미 천국에 입성한 자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 어떤 부인이 남편이 너무 힘들게 하니 다른 남자를 만났습니다. 다른 세상이 있는 것입니다. 네가 미쳤지, 이렇게 힘들게 하는 사람하고 사나. 이혼하고 그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택자가 되어서 그런가 알곡과라서 그런가, 이 불륜이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건 서로 신뢰를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끝없는 자식문제가 생기고 가라지가 새끼에 새끼를 치니깐, 드디어 처음 가라지가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My Baby Your Baby Our Baby가 생기면서 바람 잦을 날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그 한 가라지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가라지가 날로날로 새끼를 쳐서 정신을 못차리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폭력을 행사하고 바람을 피기 때문에 엄마는 도박을 한다는 합리화를 시키기 위해서 이혼하면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짧기 때문입니다.
#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 중에는 무섭다 못해서 끔찍한 부모들이 적지 않습니다. 18명의 유명한 이들의 부모들 중에서는 폭군, 마마보이, 이기적인 부모 모두 있었다고 합니다. 천재 부모를 네가지 유형으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자녀를 매질로 다스리는 폭군형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자녀를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연습벌레로 키운 교관형이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 부모는 그를 골프 선수로 키우기 위해 돌되기 전부터 맞추지 않으면 우유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무섭게 키워 성중독이 되어 이혼하면서도 어떤 사람도 안 무서웠는데 엄마가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이혼하는 것도 엄마가 무섭고 성중독 하는 것도 엄마가 무섭고 그래서 그 엄마 아부지가 지금 잘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셋째는 자기 욕구를 해결하려는 대리인으로서 자식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부모가 있고 넷째는 너무나 자녀를 사랑해서 완전히 집착에 사로잡혔던 부모입니다. 사실감 넘치는 묘사를 통해 세계사 속 드러난 부모들의 악행은 흥미진진하다 못해 끔찍하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한국 부모들의 자화상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육열로 어린 자녀들을 일찍부터 교육시장에 내몰고 있습니다. 스스로 못 이룬 꿈을 자녀를 통해 획득하려는 이기주의자 부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책에 원제에도 드러나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괴물 부모들의 변명은 똑같습니다. 뭔지 아세요? 뭘까요? 다~ 너 잘되라고 그런거야~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죠? 내가 몫의 십자가는 가장 훈장이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뽑아놓으실 때까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끝까지 안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혼했다면, 선택할 권리가 없는 인생입니다.
적용해보세요) 가만 두어야 할 가라지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입니다. 심판의 추수입니다. 즉, 가라지의 추수입니다. (17-20)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을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주님의 성도들은 주님께서 직접 심판하시지만, 불신자 악인의 심판 추수는 천사가 집행한다고 하네요. 심판권은 예수님께 있지만, 성부하나님의 명령으로 두 천사를 사용하셔서 하신대요. 이 두 천사도 예리한 낫을 가지고 제단으로부터 나온 것은 성도들의 기도로 인하여 이것이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로 심판이 앞당겨지기도 하고 연기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중보기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 히스기야는 참 성군입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18만 군대가 쳐들어 온것이니 어마어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올라가서 편지를 올려 놓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했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고, 네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어요. 주님이 그 기도를 들으셔서 하루 아침에 원수 18만 5천명을 다 심판해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차면 밖의 원수 내 속의 원수를 다 심판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주님이 인정하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슬퍼서 울고 악에 바쳐서 울고 미워서 울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심판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내 속에 심판, 내 속에 가라지도 많습니다. 똑같이 운다고 눈물의 기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포도송이는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포도송이도 익었다고 하잖아요? 땅의 곡식이 익었다고 했을 때에는 주변에 것들은 다 시들었다고 했잖아요. 볼품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알곡이 나왔잖아요? 포도송이는 포도송이 자체가 너무나 탐스럽게 익어서 열매 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옆에 시들은 것 자체가 안 보입니다. 최고의 극상품이기 때문에 가라지도 곪을 때로 곪았지만, 너무 외모가 좋고 명예가 좋고 돈도 많고 권력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저 가라지의 악이 찼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그렇고.
19절에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낫을 휘두르니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워 보여도 이 휘두르는 말씀의 낫에 살아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밟히는 포도주 틀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대단한 포도송이 같은 악인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가 하나님 자리에 있었는데 겉모습이 좋으면 로마황제보다 좋은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로마고 짐승의 가치관이고 이 세상에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교만하게 살았던 사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사건이 오면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휘청거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보다 화려한 곳이 또 있는 줄 알고 도도하게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세벨처럼 무섭게 화장해 죽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두렵다는 표시입니다. 그렇게 죽었지만, 포도원에 와서 개들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죽음을 경험하면 지옥 정말 가기 싫을 텐데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먹고 잘살다보면 지옥을 우숩게 봅니다.
로뎅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광경을 읽고 고민하는 사람을 조각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후회하고 고민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지옥문에 조각상일부가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후회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가라지라는 뜻입니다. 불에 살라지게 힘듭니다. 내 존재가 없잖아요?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운다는 것은 감정적 고통이고 이를 간다는 것은 육체적 고통입니다. 그것이 지옥고통입니다. 이 땅에서 감정과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 자는 도리어 복인 것입니다. 나중에 당할 고통을 지금 당해봄으로 지옥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받은 것과 같습니다. 남을 괴롭히고 아프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불법을 행하고도 이 땅에서 울며불며 고통당해보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가장 비참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는 자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지금도 이 하나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에서 하나는 구원이고 하나는 심판입니다. 천국 적응 훈련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진노의 포도주 틀에 던져지니 문자 그대로 당하고 그대로 끝났습니다. 왜냐하면 진노에서 구원으로 옮겨올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교통사고 딱 났는데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미리 미리 내가 천국 적응 훈련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 추수 인 것입니다. 심판도 구원도 이 땅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1 스다디온은 185미터 이니 1600 스다디온이라는 곳까지 296키로미터 되는 팔레스타인 남북 거리만큼 피가 튀긴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주 팔레스타인 땅에 피가 흘린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말합니다. 말 굴레까지 1.5미터 길이와 높이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여기서 천 육백은 4X4X10X10입니다. 넷이라는 숫자는 네 천사 네 모퉁이 이런 구조를 지난 번 설명했습니다. 10은 한자로 찰만자입니다. 가득찼다는 글자입니다. 심판의 범위가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다는 것은 범우주적으로 전세계에 걸쳐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어나게 된 것을 상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 완전수인 4를 두번 곱한데다가 십을 두 번 곱하기는 이 세상 불신 세력에 대한 완전한 심판, 반드시 우리의 기도로 악인에 대한 심판이 행해지기에 예리한 낫, 말씀을 가지고 열매도 맺어지고 심판의 역사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말씀을 가지고 적용하면 이처럼 대단한 인생인 것을 알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하나님은 성도가 핍박과 환난 당할 때 괴롭히고 고통 준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심판을 참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단순합니다. 예수님을 믿는가? 영접하는가? 이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나가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어지는데 예수님은 안 믿어지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다. 복음서인 마태복음을 봐도 바리새인 대제사장들은 성경 지식이 출중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도 다들 내가 하나님이기에 교회를 나가도 목사가 되어도 겉모습은 포도송이처럼 그럴 듯한데 다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가 보면 내가 예수님을 내 인생에 구세주로 영접을 하면, 내 인생이 세상의 쾌락을 못 누릴까봐 두렵습니다. 그리고 부모들도 자녀들이 너무 은혜를 받아 딴 길로 갈까 두렵습니다. 여자친구도 너무 믿음 좋으면 싫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심판받아야 되는 것들입니다. 내 속에 가치관들이 심판 받아야 합니다.
# 정말 우리나라 최초 여류의사 김정동하고 박유선하고 결혼을 했는데 그때 15살만 넘어가면 무당이 되고 그랬기 때문에 누구하고 결혼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부인 박유선과 했습니다. 둘은 예수를 믿었습니다. 둘다 쳐다보지 않고 결혼을 했는데 둘 다 조건이 무엇이었나 보니 믿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도 열 몇 살 많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깐 너무 조건도 안 좋았습니다. 재벌 집 딸이 기사님과 결혼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윌리엄 호를 섬기고 있었던 유선도 똑똑한 여자하고 결혼하기 싫은 게 있었습니다. 글쎄 만나서 결혼했는데 딱 일 년이 지나고 나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믿음이 좋은 여자 싫다고 하는 남자가 그렇게 많더라. 별꼴입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를 귀하게 여기면 알곡이고 멸시하고 귀찮아하면 포도송이입니다.
# 포도송이 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자 슈바이쳐입니다. 이 분은 칸트로 학위를 받았습니다. 예수와 바울로 신학박사를 받고 신학교 정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회도 했습니다. 바하와 오르간에 굉장한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다섯 살 때부터 연주를 했습니다. 이런 스펙을 가지고 그가 왜 선교를 생각했을까?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 이 분이 자유주의 신앙으로 이 좋은 스펙을 가지고도 목회가 안된 것입니다. 교수와 목회는 다른 것입니다. 목회가 안되니 선교를 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선교회에서 파송을 두고 논쟁이 거듭나오니깐, 아프리카 가서도 선교도 하시지 말고 말씀도 전하지 말라고 이렇게 했답니다. 선교하러 가는데 설교하지 말라고 하니 이 사람이 선교하기 위해서 의대 들어가서 6년 동안 공부를 해서 의사면허를 딴 것입니다. 이 사람은 박사 학위를 빵틀에서 빵하나씩 탁탁해대듯이 몇 개의 학위가 생긴 것입니다. 아프리카를 떠났는데 당연한 가난하니 봉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온 몸을 불사르면서 일을 했는데 그는 아흔 살에 죽었습니다. 그는 목사입니다. 50년을 넘게 봉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개혁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이게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에겐 주의 사랑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인을 야만인이나 미개인으로 점점 폄하했다는 것은 당연히 아닌 것 같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흔 살 될 때까지 안 되는 사람은 이런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인간의 노력을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계시록에서 보면, 예수님과 가장 비슷한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될 수 없는 어린양 모습에 부드러운 모습을 한 거짓선지자가 아닐까? 휴머니즘 같은 666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내 노력으로 다 되고 존경까지 받기에 예수님을 평생 연구했는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왭니까? 죄가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슈바이처를 보면서 내가 예수 믿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라 생각이 안드십니까? 다 함께 외쳐보세요.
내.가. 예.수. 믿.는. 것.은. 기.적.이.다.
지금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은 슈바이쳐가 아닌가. 여러분들 이 분은 너무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100년 동안성자로 추앙을 받았지만, 100년이 지나서 다 나타나잖아요? 100년이 짧은 것 같지만, 진실은 다 나타납니다. 그 당시 파리 선교회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 파송하지 않았으니깐. 우리가 아무것도 못 알아주고 죽을지라도 구원 받는 것은 노벨평화상과 비교도 안됩니다. 아셨습니까? 내가 확신을 가지고 하니깐, 확신이 없는 사람 편에서 보면 내가 광신 같고 너무 싫겠죠? 제가 그래서 눈물이 계속 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정말 부족 한데 하나님만 부를 수밖에 없는 열약한 환경이니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왜 이렇게 되는 일 밖에 없나? 이러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때 너무 포도송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적용해보세요) 슈바이쳐가 끝까지 예수가 하나님이 신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 행위가 너무 대단해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까? 나에게 마지막 날은 알곡입니까? 포도송이입니까? 참으로 구원의 날입니까? 심판의 날입니까?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니깐 세 번째, 분별이 필요합니다.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심판에서 예리한 낫에 대해 생각해보면, 준비할 낫이 없으면, 휘둘러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휘둘림이 아니라면 그것은 거짓선지자 목자입니다. 막 그날과 때를 알려주면서 돈을 가져오라합니다. 자기를 교주처럼. 분별해야합니다. 참 선지자라면 거둘 때를 잘 알고 곡식이 다 익었음을 알고 말씀에 낫을 던져야 될 것입니다. 주님도 천사의 음성을 듣고 휘두르셨습니다. 익기 전에 결코 휘두르지 않는 주님처럼 우리는 알아도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추수도 극도로 분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잘못 낫을 들면 알곡까지 베어집니다. 제가 계속 원고를 고치는 것은 내가 이거하면서 쓸 데 없이 다른 사람 상처받을까봐 그래서 제가 구원 때문에 늘 예리한 낫이기에 잘못될 수도 있어 인간의 힘으로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분별하는 것만큼 영적인 일은 없습니다. 목회도 사업도 결혼도 사람을 분별해야 실수하지 않는 비결인 것입니다. 이 모든 스펙을 가지고 슈바이쳐가 목회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학벌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역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르치는 것입니다.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신 분은 금면류관을 쓰시고 예리한 낫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잘 지면 분별이 저절로 생깁니다. 황초원처럼 십자가를 잘 지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그 말씀이 먹혀들어가는 것입니다.
# 예리한 낫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예리한 낫은 옛날 나무를 아무리 쳐내도 이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대장장이가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그런데 요즘 낫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세밀한 감각과 정성을 따라오지 못해 낫을 밸 때 에는 큰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낫 벼리기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딘 낫을 날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낫을 날카롭게 만들기 위해서 불에 놓고 매질을 하는 것입니다. 불에 달구고 매질을 하고 물에 딱 식히고 이것을 거듭하면 색깔도 예쁜 호박색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불에 달궈서 매질을 한 다음에 칼날은 순간적으로 담그고 갈등은 천천히 담그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날은 강해지고 칼등은 물러져서 부드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무를 세게 내려쳐도 칼이 유연해서 칼등이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에 칼날과 칼등을 담금질을 하면 모든 부분이 강해져서 도리어 쉽게 부러진다는 것입니다. 불과 물에 담겨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예리한 낫이 되지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내도 뚝딱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명한 대장장이는 칼날 위에 물방울 굴리기는 한다고 합니다. 그 칼 날위에 물방울이 딱 서있다는 것입니다. 어찌나 예리한지. 물방울 굴리기를 하려고 칼 날에 물방울 굴리기를 하려고 얼마나 달구기와 담금질을 당해야 할까요? 추수할 때가 이르러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을 당하고 하기 위해서 이러한 과정이 수많은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불 가운데도 들어가고 물 가운데도 들어가고 그런 찬양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추수하심에 추수를 당하고 예리한 낫으로 내가 구원의 분별을 하고 다른 사람을 알곡으로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칼날 위에 물방울 같은 성도는 무엇입니까? 박사학위를 몇 개 따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칼날 위에 물방울 같은 성도는 죄인된 내 주제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 그것이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갖은 사건을 주시는 것입니다. 네 주제를 알라고. 내 죄인된 주제를 알면 입이 딱 다물어집니다. 내 주제를 분별하면 남을 분별하는 것이 쉬어집니다. 예리하게 쉬어집니다. 그러니깐 내가 분별이 잘 되면 구원의 숲속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면 담금질과 매질에 대가가 되어야 합니다. 불 속에도 들어가고 물 속에라도 들어가고 매질하면 맞고 주기철 목사님은 그때에 열매가 없었더라도 한국 교회가 그분의 영향 아래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오랜 된 것 같지만 천국에 가면 짧은 것입니다.
넷째는 주안에서 죽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13, 20)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3절은 왜냐하면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성도들은 자신들의 고난과 고통에서 해방됩니다. 안심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행한 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나중에 그들의 행위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도 슈바이쳐 박사도 나중에 드러납니다. 그분은 박사라고 하지 목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목사인거 몰랐죠? 바벨론에 집요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이제 하나님계명과 예수님의 증거를 지켜낸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주안에서 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안에서 죽으면 주와 함께 있게 되고 안식하게 됩니다. 또 이 세상에 가장 크게 행한 이가 따른다고 하였는데 우리가 행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주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주님 따라 순교 가장 큰 복 아닙니까? 주안에서 순교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주 밖에서 죽는 자들은 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성령이 그러하다고 맞장구 쳐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산 것이 죽은 정승보다 낫다고 하면서 그러는데 그러지 마세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자체가 복은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을 빨리 떠나야지하는 사람은 너무 살고 싶다는 뜻입니다.
20절 성 밖에서 진노의 틀에 밟힌다고 했습니다. 시온 성 안과 밖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시온성 밖은 구원 받지 못하고 시온성 안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는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어린양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며 어린양을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세상과 짝을 합니다. 세상과 등을 돌리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지켜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나마 갈 수 있었던 것이 목숨을 내놓고 남편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기 때문에 그거 진짜냐 물어보시려고 30년 동안 저를 살려주신 것 같습니다. 목숨 걸고 구원 지키려고 하니 목숨 걸고 예배드리고 목숨 걸고 뭐든지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건에서도 예리한 낫으로 보냄을 받고 휘둘러서 추수를 한다고 했으니 말씀으로 보냄 받고 말씀으로 던져질 때, 내가 각자 아내에게 던져지고 남편에게 던져지고 보냄받아서 내가 썩어지고 죽어지고 밀알이 되는 죽어지는 것이 있다면 내가 육신에 죽어지는 것이 왔을 때 이제는 쉬라고 하시네 할렐루야인 것입니다. 날마다 죽어야지 나중에 죽음이 왔을 때, 할렐루야 아멘하면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날마다 죽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죄가 없으니 죽음이 두려운 것입니다.
# 나눔을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세상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기에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에 분을 못 이겨 걸핏하면 부인을 엄청 두들겨 패는데 그냥 며칠 전에 맞아서 두 눈이 퉁퉁 부은 부인에게 내가 때리고 차느라 얼마나 수고한지 모르겠다면서 나도 아파서 치료받아야 되겠다며 부인을 앞세워서 병원에 가는 기가 막힌 남편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 팔다리가 아플 정도로 때렸으니 맞은 부인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인은 목장에 나오고도 술을 마셨는데 알고 보니 술을 마셔야 맞을 때 덜 아파서 술을 마신 거라고 그런데 이 남편이 (멀쩡하게) 목장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멀쩡한 얼굴로 자기의 비밀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고, 집에 가서는 부인을 끊임없이 학대를 하는데 여자 목장가서 이런 얘기를 하니 목자가 팔당댐에 가서 좀 밀어뜨리고 오고 싶으네라고 목자가 편을 들어주니 부인이 워낙 수영을 잘해서 빠트려도 헤엄쳐 나올 거에요.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인내로 견뎌야 하는 지체들이 많은데 목장은 불쌍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목원들을 붙들어 주면서 쓰러지지 않게 해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저께 솜을 탈탈 털어서 이불을 꼬매서 해놨는데 남편이 오늘 햇빛이 너무 좋은데 아깝다며 이불을 터서 좀 말리면 안될까라고 했답니다. 그냥도 아니고 실을 터서 이불하고 솜을 따로 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아니 어저께 했는데 이것을 또 말리라고 하느냐고 그만 말려도 되지 않냐고 하니, 남편은 밥을 먹다 말고 주먹으로 숟가락을 식탁에 내리치면서 짐승같은 괴성을 질러서 아내는 밥먹다가 놀래서 어머나 깜짝이야!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데 왜 그렇게 불 같이 화를 내는가. 저녁 안 먹고 분이 나서 한강에 갔다가 저혈당이 와서 쓰러질 뻔했다고 합니다. 다니엘 큐티할 때였는데 내가 느브가넷사를 옥토로 만들려고 하니 큰 소리 치는 빈 깡통이 내게 굴러온 것이야, 내가 깡통을 품어줘야지, 내가 옥토가 되려면 견뎌야해라며 기도하는 도중에 성령이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네가 불감증이라고. 주일 설교 왔더니 사이코패스라는 병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설명해주셨는데 네가 그 병이라고. 그 말씀이 맞았다고. 이 모든 것들에서 왜 불 같이 화를 내는지를 생각도 안 해보고 또 내 죄를 보지 못했다고 어디가 남편이 아픈지 무엇 때문에 화를 내는지 나는 하나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나는 쌓아두기만 하고 말씀 듣고 큐티하고 목장 예배로 쌓아두면서 남편에게는 하나도 나눠주지 않았다고, 내가 불감증, 싸이코패스 병에 걸린 것이라고 깨닫게 해주셨다고 나눠주셨습니다.. 30년 결혼생활하면서 늘 똑같은 생활에서 발작적으로 화를 내는데 남편의 더러운 성질이라고 내가 참으면 된다고 지나치고 살았다고 내가 알게되었다고, 내 병이 30년 지났으니 얼마나 깊을까? 이 병을 고치려면 앞으로 30년이 지나야 낫게구나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서 눈물만 나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울면서 회개하고 주님이 나의 주치의가 되어주셔서 나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감사한 것은 이 두 남편이 전부다 교회를 나오고 목장에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지 바로 이것이 가라지를 빼어내지 말고 같이 가니 서로가 윈윈되니 하늘 나라에 함께 거두어지는 구원의 추수가 되는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추수할 때가 이르렀다고 합니다. 1) 구원의 추수가 있고 알곡의 추수가 있다고 합니다. 2)심판의 추수가 있고 가라지의 추수가 있다고 합니다. 3)그런데 너무 분별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곡보다 포도송이가 너무 훌륭해 보입니다. 우리는 포도송이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4) 내가 날마다 죽어져야지 진짜 내가 죽음이 오면 복이 있다. 이제 너 수고를 그치고 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터인데... 여러분들 우리들 교회가 무서운 복음을 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무서운 복음입니까?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는 복음 아닙니까? 결국은 지금 이런 분들이 은혜받기 위해서 나오겠습니까? 죽지 않고 살려고 나오는 거 맞잖아요? 내가 살아나니깐, 그 다음에 다른 사람을 부흥회를 합니까? 특세를 합니까? 아무것도 안해도 내가 살아나니 데려오잖아요, 이것이 구원의 추수인 것입니다. 우리 다 십자가 있는데, 주님도 십자가를 지셨잖아요? 찬송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내 주의 지신 십자가
내 주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다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저 수정 같은 길에서 면류관 벗어서
주 예수 앞에 바치며 늘 찬송하겠네
저 천사 소리 높여서 늘 찬송할 때에
그 좋은 노래 곡조가 참 아름답도다
그 면류관도 귀하고 부활도 귀하다
저 천사 내려 보내사 날 영접하소서
기도제목
담금질과 달구기를 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여기서 예리한 분별력을 가지게 해달라고 내가 가만두어라하는 가라지를 뽑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정말 알곡이 되겠습니다. 주님 내가 이 가정을 지키겠습니다. 이 모든 환경을 기쁘게 받아내겠습니다. 내가 구원의 빈거가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기
아버지 하나님, 내가 주님의 좋은 씨로 옥토에 뿌려졌는데 내가 잠을 자서 원수가와서 가라지를 뿌렸는데 그 가라지가 너무 컸습니다. 날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그 가라지를 뽑아 내기 위해 온 심혈을 기울이게 미워하며 욕심을 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가라지를 정말 뽑아냈으면 하는 없어졌으면 하는 그 가라지를 주님께서 가만두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뽑아내다가 알곡인 너까지도 죽는다고 하십니다. 천국에 합당한 자로서 저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이 주신 가라지인데 감사가 잘 안됩니다. 주님 내가 이제 어떤 휘둘림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알곡이 될 때에 하나님의 곡간에 들어가게 될 터인데 아직도 가라지가 흔들 때마다 내가 흔들리는 모습이 있으며 그 가라지는 계속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 가라지는 내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부모 형제, 배우자는 내 사람의 결론인 것을 인정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나의 교만과 차별과 이기심 때문에 내가 고르고 고른 배우자를 참으로 내가 내 삶의 결론인 것을 날마다 뽑아내겠다고 죽겠다고 참으로 그럴 때마다 나의 악을 보고 이기심을 보며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이 그만두어라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잘 인내하고 기다리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인내를 지키고 구원의 추수에 뽑힐 수 있도록, 말씀을 되어서 던져지고 되어질 수 있는 말씀의 사역자가 되고 메신저, 빈거가 될 수 있는 우리 각자가 될 수 있도록 역사해주시옵소서. 그런 구원을 받는 내 가정이 목장이 교회가 한국이 세계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 어렵고 힘든 가정을 주님께서 찾아가 주셔서 안수해주시고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위한나 목장 보고서 (18)
#인내와 분별#
일시 : 18. 4. 8 4-6시
장소 : 6층 소년부실
참석 : 위한나, 윤현경, 이은영
나눔 : 나의 가라지에 대해서 나누어보았습니다.
한나언니는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나 많은 사건과 상처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공동체에 붙어있어 감사하다고 합니다.
언니가 앞으로 저희와 함께 말씀과 예배로 다시 회복되어 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언니를 저희에게 붙여주신 것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함께 잘 붙어가길 소망합니다.
현경이가 새로운 직장에 잘 정착할 수 있기를 소망하고, 가족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유해지길 소망합니다.
민정이의 가족 건강과 구원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하나님 말씀에 깨어있지 못해서 가라지 같은 환경, 사람, 사건에서 자꾸만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가만두라고 하셨는데말씀하신 대로적용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오직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붙여주신 가라지를 인내하고 분별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오늘 말씀도 나눈 것을 생각하며 꼭 기억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