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2. 25 주일 위한나 목장보고서>
즐거워하라(요한계시록12:12-16)
일시 : 18. 2. 25 주일
말씀 : 요한계시록12:12-16
설교 : 김양재 목사님
어떤 사람이 즐거움의 순서를 1)관계를 잘 하는 것, 2)밥 먹을 때, 3)잠 잘 때, 4)사랑을 할 때, 5)성공했을 때라고 했답니다. 다 맞는 얘기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어떻게 관계를 잘 하고 어떻게 잠을 잘 자는지가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이 강건해야 되겠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즐거움에 참여해보시길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2장 큰 이적이 하늘의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전쟁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나님은 본문에서와 같이 즐거워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전쟁은 즐겁게 해야 된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왜 즐거워하라고 하셨는지.
첫째, 마귀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즐거워하라 하신 것입니다. (12)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리라)
하늘에 거하는 자는 교회, 하나님의 백성이고, 땅에 거하는 자들은 사단과 짐승을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크게 분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다고 합니다. 마귀가 하늘에 있을 곳을 알지 못하고 부활 승천 이후에 결정적으로 패하여 땅으로 내려갔는데 바로 너희에게 내려갔다고 합니다. 왜 크게 분노했냐면, 마귀의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했잖습니까? 어느 때를 말하냐면, 예수님 초림이후 재림을 말하는데 하나님에게는 이천 년은 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초림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반드시 재림도 일어납니다. 그 시간이 너무 짧은데 계속해서 사단은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0장 10절을 보면
(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마귀도 불과 유황이 있는 둘 째 사막 우리가 말하는 지옥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지옥의 모든 인류들을 끌고 가기위해서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백성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사단의 전공인데, 이렇게 사단이 분을 내어 너희에게,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어나는 전쟁가운데서 사단이 우리에게 왔대요. 그렇다면 무서워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성도는 이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승천 사건 이후 사단과 하나님 나라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이미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단이 온 천하만국을 주겠다. 절하면 주겠다고 하였는데 안 받으시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보여줍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 나라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이미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임했는데
12장 29절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강한 자는 사단이고 강한 자의 집은 사단의 왕국이고, 세간은 사단이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 그 중에서 강한 사단과 싸우셔서 이기시고 사단의 왕국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제일 강한 사단을 결박하셨기 때문에 너희는 이미 이기는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죠. 그러니 사단의 원수인 것입니다. 내 원수는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에 사단이 아무리 크게 분을 내어도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를 하십니다. 늘 때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아~ 저거는 사단이 지금 화를 내는 거구나 예수님이 강한 자를 결박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즐거워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
주님이 명령하셨어요. 그럼 이것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자는 즐거워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 백성으로 도장을 꽝꽝 찍어주신 것입니다. 적용을 해보면, 내 주위 사람들이 크게 분을 내고 있을 때에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우리 어머니 어떻게, 당신이 사람이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배후세력인 사단을 분별하면서 아니 그 사람 속에 사단이 쫓겨나려고 하니깐 저렇게 크게 분을 내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성경을 잘 읽은 사람의 태도인 것입니다. 아무리 사단이 나를 물어뜯고 난리를 친다 해도 이미 이것은 이긴 싸움인 것입니다. 사람은 사단이 아닙니다. 그 속에 사단의 정체가 들어간 것입니다. 사단의 정체를 분별해내면 아무리 화를 내고 난리를 쳐도 그 사람 자체가 밉지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 사람 속에 사단이 쫓겨나려고 하니 이렇게 발악을 하는구나~ 이처럼 하늘에 속한 사람은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의 특징은 참소하고 분을 내고 이런 것이잖습니까? 하나님은 이러시지 않습니다. 누가 화내고 분내고 참소한다면 목사래도 그 말을 들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사단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화를 극심하게 내는 때일수록 사단의 때가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러니깐 객관적으로 분별이 되면 그 사람 자체를 보지 않고 그 뒤에 배후세력인 사단이 쫓겨날 것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그 사람을 보고 절망하지 말고 그 사단이 쫓겨나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면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냐하면 누가복음 8장 35절
(35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사단이 쫓겨나면 귀신 나간 사람이 의복을 정제하고 의의 예복을 입고 구원의 예복을 입고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귀신이 나가면 구원이 들어오게 되어있으니 우리는 난리를 치고 화를 내고 더 망해 갈수록 이제 구원이 이루어지게 생겼구나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할렐루야~ 하늘의 상이 큼이라
사람은 사단이 없어요. 그 속에 사단의 세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단과의 전쟁을 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은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즐거워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아니야, 남편이 아니야. 저 속에 사단의 세력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해야합니다. 사단의 세력이 쪼금 있으면 하나님이 물러가게 하시니 거기에 구원의 세력이 입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깐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놓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해 가면서 가는 것이 믿음이죠? 몰라요? 그렇죠? 어떤 일이 와도 놀라지 말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여러분 속에 사단이 역사하고 이것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유아세례 때문에 억지로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 온 것은 우연이 아닐 줄 믿습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은 내 속에 말씀을 막는 사단의 세력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도 사단이 아닙니다. 사단의 세력이 있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사단세력과 하나님 나라가 늘 싸웁니다. 죽을 때까지 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물리치고 나가야 다른 사람의 사단의 세력도 물리쳐줄 수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합니다. 잘 기다리고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핍박도 양육의 시간이기 때문에 즐거워해야 합니다.(13-14)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이것도 저것도 안 되니, 남자를 낳은 여자, 교회를 핍박한다고 합니다. 지금 땅에 사는 자들에게 큰 분노를 쏟아 부음으로 땅에 사는 자들은 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마귀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데 아직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0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덕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으로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고하셨는데, 마귀의 특징은 자기에 속한 자들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착취하며 괴롭히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저번에 계시록 본 것처럼 참소하고 꾀고 분노하고 하나님 속성과 전혀 다른 속성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핍박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좇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돈을 좇고, 여자를 좇고 명예를 좇고 학벌을 좇고 술을 좇으면 예수를 낳은 여자는 꼴도 보기 싫은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여자는 사단과 하나님 나라는 반대이기 때문에 세상 성공으로 갈수록 꼴도 보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사단이) 자기가 설 땅이 없어지니깐 예수가 강해지면 사람은 열등감이 있기에 여자는 신경질을 내고 남자는 주먹질을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안 되고 망하면 예수 믿는 사람부터 핍박을 합니다. 시험을 못 보고 망해도 너 때문이야 교회 탓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니가 시험을 못보고 나한테 그래? 얘가 시험을 못 봤는데 여보는 왜 나한테 그래요? 여러분 이런 말을 듣는다면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만 보고 그랬어.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하늘 나라에서 상이 큰 줄 믿습니다. 아이를 핍박하는 것은 어머니를 핍박하는 것이고, 어머니를 핍박하는 것은 아이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은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주님은 그것이 자기에게 핍박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1절을 보면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 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 오려 함이라)
사울은 열심이 대단합니다. 히브리어에 능통하고 율법에 능통하고 베냐민 지파 소속이고 대단한 성경지식을 자랑하는데, 성경의 본질인 진짜 주의 제자들에 대해서 위협과 살기가 등등합니다. 뭔가 많이 알지만 진짜를 모르니 열등감이 없어 평강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대단한 열심이라도 이런 하나님보다 앞선 열심히 사람을 죽일 수가 있구나! 자기도 성경 박사인데 이 열심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구나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죽이려고 가는데
(4절 땅에 엎드려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시거늘)
사울의 생각으로는 자기는 지금 너무나 옳은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나를 왜 핍박하느냐~ 이러십니다.
5절에서 7절에 대답하여 말하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데 사울아 사울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아무개야 아무개야~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 소리를 듣기를 바랍니다.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이 소리가 나팔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사울이 핍박하는 것을 무의식중에 건드렸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무의식중에 천사의 얼굴로 순교한 스데반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어마어마한 구속사적인 설교를 구약 성경을 꾀어 딱 한 장으로 예수님과 성전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너무나 너무나 주옥같이 꾀어 놓은 평신도 집사 스데반의 설교를 들으니 성경박사인 사울이 아리까리한 것입니다. 천사같이 죽고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영접하신다는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죄책감이 생긴 것입니다. 자책감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속에서 불안감과 죄의식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을 참소합니다. 화를 냅니다. 얼굴이 붉으락 붉으락 해집니다. 위협과 살기가 등등합니다. 편안한 사람은 이렇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이 해결해줄 것을 믿습니다. 위협, 살기 등등의 표정과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옳은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사람은 엑스표인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아닌 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이 괴로워하고 있는데 인격적으로 찾아와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던 예수라. 이 한마디말로 사울의 영적 도덕적 괴로움이 한방에 날라 갔습니다. 사울의 마음을 터치해주셨습니다. 너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다, 할 일이 있다며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다른 얘기 안하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옆에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울만 보고 들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오셔서 그 동안에도 이 번주 내 문제가 해결이 되었어요. 라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어요. 7년이 와도 이야기가 안 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직도 예수님을 핍박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묻겠습니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모르겠는데요? 이러셔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핍박한대요.
폴란드에 정신분석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성숙한 사람의 특징은 대의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겸손한 사람은 대의를 위해 겸손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사울이 자기의 엄청난 대의를 위하여서 살기등등해서 죽기를 바라면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사울의 이러한 태도가 절대 즐거워할 수 없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 이상한 사명을 가지고 즐거워할 수 있겠습니까? 똑같은 설교현장에서 살기등등 이러한 사람들을 전도하겠다하면 전도가 되겠습니까? 이 사람이 어떤 사명을 가졌기에 사람을 죽이러가면서 주의 일을 한다고 하겠습니까? 이 세상에는 겸손 없이는 즐거워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개가 없습니다. 이처럼 핍박이 양육으로 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서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용의 핍박을 받아 죽음의 위기를 맞은 이 때에 여자가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서 자기 광야로 날아가서 양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똑같은 얘기를 날마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기, 출애굽기 모세의 이야기로 풀어볼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32장 10-11절에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어미 독수리는 몇 번이고 새끼를 설득하여 둥지에서 공중으로 새끼를 날게 해보려 하지만 소용이 없어서 딱 떨어트립니다. 떨어트리는데 눈 딱 감고 있다가 잽싸게 내려와 날개로 받아댑니다. 그래서 나는 연습을 시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렇게 말씀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떨어트려서 날개 안에 보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 19:4-5절은
(4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독수리인데요. 그 노예 신분인 히브리 백성, 나를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르게 하셔서 정말 너무나 생각할수록 무섭고 떨리는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계가 내게 속했다고 하십니다. 두렵고 무서운 애굽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애굽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흥하게도 망하게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너희 로마에서 식민지 노릇하니 힘드니? 로마도 다 똑같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유가 있어서 너희가 로마 지하 감옥 313년을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 험한 세상에서 기적적으로 양육을 해 가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경우 바로의 궁에도 두시고 양을 치시기도 하시고 다윗의 경우도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피난지들이 있었고 바울의 경우 강도 바다도 감옥도 있었습니다. 사도요한은 밤모섬에 있고 세례요한은 빈들에 있었고 엘리야 하는 광야였고 요나의 경우 물고기 뱃속에, 다 양육의 장소인 것입니다.
#적용
그런데 광야는 이 세상인 것입니다. 지고지순한 하늘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나 주님의 등에 업혀서 양육을 받게 하셨습니다. 로마황제들이 기독교를 박해할 때 지하 감옥이 광야교회가 되어서 위기를 당할 때마다 주님이 허락하신 피난 장소가 바로 우리의 각자 광야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친히 양육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게 아무도 없을 때, 주님께서 친히 양육해주셔서 주님이 업고 데리고 가는 광야에서 말할 수 없는 기적이 쏟아지는 은혜의 광야가 된 줄 믿습니다. 사람은 외로워봐야 합니다. 주님께 1:1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는 전대미문의 북한은 언제나 풀릴 것인가? 로마가 313년인데 북한은 벌써 60년입니다. 60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것입니다. 그 시대에 비하면 너무나 긴 것입니다. 313년 만에 그 사단의 역할을 했던 로마가 복음화 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북한을 통하여서 선교의 장이 열려질 줄 믿습니다. 전대미문의 핍박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것을 쓰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남북이 통일이 되면, 훨씬 아름다운 교회는 북한에 훨씬 많습니다. 지금도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북한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 15절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 예수그리스도는 사단의 머리를 쳤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치명적으로 이겼습니다. 그러나 사단도 우리의 발꿈치를 문다고 하였으니, 재림 때까지 아플 일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치명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양육을 위하여 긴장관계를 위해 발꿈치는 아파해야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의 양육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적 전쟁은 유한하고 하나님의 작정하시고 개입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 잘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어머어마한 계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쓸 데 없이 이렇게 핍박을 하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북한은 나름대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거기는 조선왕조를 거쳐 일제를 식민지 36년을 지나 곧장 공산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좋은 세상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전혀 부럽지 않습니다. 배가고파서 그렇지. 전쟁을 하면 우리가 이길 것이다라고 전혀 장담을 못합니다. 하나로 뭉치는데 따라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뭉치지 못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셔야 됩니다.
남편의 반대로 아이를 교회에 보내지 못했던 집사님께서 학생 큐티 모임에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시험기간만 아니면 계속 보내시겠다고 말씀 하시더라구요. 남편이 무서워 교회를 못 보내더니 이제는 시험이 무서워 큐티 모임을 못 보내는데, 세상이 하나님께 속해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무서운 것이 많습니다. 출애굽 말씀에도 나와 있듯이 내 말과 언약을 잘 지키면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조건인 것입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남은 시간에 교회를 간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잘 못된 것입니다. 아직도 시어머니, 남편, 자식, 돈이 무서워서 여러분의 광야에서 양육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종으로 사단의 종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즐거워하라.
세 번째는, 어떤 조류에도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기 때문에 즐거워하라입니다.(15-16)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이사야 43장 2절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하나님은 우리를 물과 불을 지나게 하시면서 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광야로 가서 양육을 잘 받고 핍박과 참소를 넘어서게 하시는데 사단이 그런 것 가지고는 안 되니깐 떠내려 갈 정도의 물을 강같이 토해냅니다. 흘러 떠내려가게 하는 것이 또 사단의 수법입니다. 때리는 것 힘든 것보다 진짜 예수 못 믿게 하는 것은 너무나 편안함과 안일함과 쾌락주의, 자본주의, 무신론, 우상숭배, 세속적인 유혹들입니다. 박해, 휴머니즘, 과학주의, 이단, 세상 풍조의 정말 떠내려가게 하는 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막시즘, 휴머니즘, 이즘이즘 등... 로마시대 구약 성경을 보면, 애굽, 앗수르, 헬라, 로마가 계속해서 대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신약 시대 이후는 강력한 대적의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이때까지는 조류입니다. 문학, 경제 사조, 조류입니다. 강 같은 조류가 계속해서 떠내려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교회와 나를 괴롭히고 가치관을 공격합니다. 나의 성경적인 가치관을 강같이 떠내려가도록 공격을 합니다.
#적용
이런 것들이 무엇입니까? 종이 신문의 경우 어떻게 해서든 기사를 쓰고 정제를 하고 검열을 받고 나오는데, 이상하면 아침에 또 교정을 하여 나옵니다. 그런데 인터넷은 그냥 누가 글을 쓰는 그 즉시 정보가 됩니다. 그것이 다 맞는 것 같고 지성인이 말하면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조류에 그냥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 정말 무서운 사단의 세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를 지켜줄 자가 없습니다. 이단도 정말 무서운 이즘입니다. 이것은 영계 세계이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이단에 속한 자는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같이 떠내려가니깐, 제일 무서운 것은 이단입니다. 강같이 떠내려가는 데 거기에는 박사도 있고 지성인도 있습니다. 똑같이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어떻게 분별해낼 수 있습니까? 이처럼 사단의 이즘으로 강 같은 조류로 휩쓸려 내려가는 것입니다. 거기 사람 많이 모인다고 하니 내가 잘 먹고 잘 사는데 거기에서 사업을 하면 되겠다고 이럽니다. 다 이래서 우리가 모두 떠내려갈 뻔했는데,
16절에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이 악의 홍수 같은 곳에 내가 떠내려갈 수밖에 없는데 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과거 홍해바다 사건 앞에서는 아무도 안 도와주웠는데 지금은 우리가 교회니깐, 예수님이 승천하고 남겨 놓은 교회니깐 땅이 우리를 도와 강물을 삼키는 것입니다. 세상세력이 어떤 때는 나를 도울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죽을 번했는데 믿지 않는 바로 왕을 통해서 실패를 할 수 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돌아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처럼 땅의 세력을 도와서 구원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훈련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돕는 세력이 많아지면 죽도 밥도 안 될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믿지 않는데 돈을 많이 주시고 나에게 자유를 많이 주시면 나의 믿음이 죽도 밥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핍박과 유혹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기의 자녀를 얼마나 때마다 시마다 도우시는지 모릅니다.
고라당이 모세를 대적할 적에 땅을 쫙~ 벌려 악인들을 삼키셨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갑자기 굴레셋 군대가 일어나 전쟁이 더 이상 다윗을 못 좇게 했습니다. 사울이 기독교인을 다 잡아 죽이려고 했을 때도 갑자기 사울아, 사울아 나타나셔서 기독교인들이 살아났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정말 위기일발에서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8월 17일에 기독교 모든 지도자들을 잡아 죽이라는 지령이 조선총독부에 하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 죽이기로 작전을 치밀하게 하였는데 딱 그냥 2~3일 전에 원자 폭탄으로 일본을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815광복을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자를 도와주게 하신 것은 그 이후에도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저도 이단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들었어도 안 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강 같은 조류, 저는 장로교 집안에 학교는 여학교는 감리교, 오순절도 가보고 구원파도 가서 들어보고 그럴 때 구원에 대한 풀이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처음 믿으면 그것이 단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저것 다 경험하게 해보시고 이렇게 저를 말씀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저곳 안 다니시는데 우리가 비교적 건강하고 성숙하다고 할 수 있죠? 진짜 말씀을 인격적으로 읽으니, 말씀을 보고 내가 기도가 부족한가? 말씀이 부족한가? 찬양이 부족한가? 선교가 부족한가? 어떤 것에 치우치지 않는 밸런스 라이프를 살기 위해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은 저의 모든 인생 저의 조상들의 일까지 모두 쓰임을 받는 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들은 게 많습니다. 인터넷을 켜면 그저 포르노가 판을 치고 남자들의 목장에서도 말하였듯이 야동을 취미 삼아 본다고 했습니다. 그런 적용을 하며 죄를 고백하는데, 교회에 와서 죄라고 생각하여 고백해서 나누는데 다른 사람들은 죄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정욕에서 해방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철장에서 만국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내 안의 의지를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는 사람인데 내 정욕도 다스리지 못하면 안 됩니다. 조류처럼 흘러가는 이 이즘에도 여러분들도 떠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즐거워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있으십니다. 이런 자신이 있는 하나님을 믿고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한다고 아이들을 때리면서 큐티 시키시고 돈 주면서 교회를 보내는 율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자녀가 진짜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엄마에게 상담을 못합니다. 나는 세상 성공이 목적이다라는 것을 자녀에게 온몸으로 보였는데 크면 다 압니다. 구원을 위해서인지 성공 때문에 나를 교회가라고 했는지 다 압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구원때문에 아파서 애써 부르짖으면 누군가를 통해서 자녀를 업어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는 모르고 둘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예배를 사모하고 업어서 데려다 놔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눈동자 아래 날개 아래에서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어떤 물속에서 여러분은 떠내려가고 있습니까? 자기의 편안함과 안일함과의 싸움이 가장 무서운 전쟁입니다. 사단과 하나님 나라의 싸움은 계속해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에게 속한 자는 이렇게 즐거워하라고 명령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 서서평 선교사님 이야기
이렇게 하늘의 전쟁을 즐거워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이분의 본명은 엘리제쉐핑인데 서서평 선교사이십니다. 독일출신의 미국 간호사입니다. 32살 독신여성으로서 우리나라에 온 간호선교사입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바라본 조선은 1913년 전남 광주에 왔는데 45만 가구 220만 인구 가운데 굶주리는 인구가 88만 명이고 걸인이 11만 명에 이르렀는데 한 번 순회 진료를 나서면 한 달 이상 말타고 가다가 말이 쓰러지면 말을 이고 지고 가는데 그러면 500명쯤 만나게 되는데 사람들마다 굶주리고 쫓겨나고 나병을 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500명중에 이름 있는 사람은 10명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여자의 이름은 돼지 할멈, 큰년, 작은 년, 개똥어멈, 이게 여자들의 100년 전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미워집니다. 정말 여러분들은 예수 때문에 출세를 한 것입니다. 올해가 서서평 여사의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큰 년 작은 년이고 개똥할멈, 돼지할멈인 것입니다. 서서평 선교사는 돼지할멈, 큰년, 작은년이라고 불린 사람들을 만나서 이름을 지어주고 성경을 가르치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가장 큰 기쁨 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그녀가 쓴 편지 中).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최초의 여성학교인 이일학교를 세워서 여성을 가르치고 여성 학교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서평이 1929년에 처음 49세가 되어 안식년으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한 살 때 자기를 버리고 떠난 어머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그동안 가난으로 몸에 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 네 몰골이 너무나 더럽다고 썩 꺼지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가지고 쫓겨나 다시 한국으로 와서 평생 어머님의 사랑을 굶주렸음에도 불구하고 수양딸 13명과 태어나서부터 나병환자로 아버지께서 개천에 버리려고 했던 아들 요셉을 데리고 와서 너무나도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과부 38명을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운 것도 서서평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를 모아 서울로 행진을 벌였는데 그 이유는 일제 총독부가 나병환자 정관수술을 하라고 했기때문에 그것을 반대를 하기 위해서 서울까지 데모를 했던 것입니다. 나병환자 530명이 동참을 했답니다. 그것이 마침내는 페기되고 소록도에 갱생원을 지어준 것입니다. 자료가 남아 그 사진을 보았는데 조그마한 아이들의 얼굴에 나병 덩어리가 붙어있는 것입니다. 서서평 선교자는 애를 들쳐 업고 있었습니다. 같이 된장 찌개 먹고 고무신을 신고 정말 가난한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한 일간지에 그가 풍토병으로 소천을 했는데 남은 것이 담요 반장, 옥수수 반토막? 남은 재산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간지에 다시 태어난 예수 서양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침대 맡에 걸려 있던 좌우명은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다(Not success, but service 이런 글이 쓰여 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글이 어떻게 나왔냐면, 서서평의 평전을 쓴 양국주씨가 서서평이 설립한 이일학교를 나온 어머니께 이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료가 이렇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대 행복 한가요 / 양국주 / 서빙더피플)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 학교, 병원, 고아원을 세워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다시 그들은 미국으로 가서 좋은 삶을 영위했는데 조선인과 똑같이 고무신을 신고 된장국을 먹으며 같이 자고 사는 서서평과 같은 인물은 없었다고 합니다. 언더후드 목사님께서는 쓰러져가는 초가집 가운데 호화스러운 집을 짓고 살았고 동대문 부근에는 별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진벨 선교사님은 승마를 위해 말 네 필을 가지고 있었고 의사 선교사 윌슨은 사냥을 즐겨 사슴 24마리 잡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특별히 남장로 선교사는 조선인 남자들에게 등짐을 시켜 별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굶주린 조선인들에게 어떻게 보였는가?
반면 동아일보 서서평에 대한 사설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있었다는 것입니다. 백만장자의 위치에 올라 편히 앉아서 조선인 남자들을 부리는 선교사들의 귀에 서서평의 삶은 어떤 음성을 가지고 울리 울까? 이런 글이 일간지 사설에 실렸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옳고 그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씻지 않고 이도 많고 선교사들이 같이 있다가는 풍토병에 걸려 다 같이 죽을 수도 있으니 따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있으려면 학교도 짓고 다하려면. 그 분들의 헌신도 너무 귀합니다. 의학박사고 신학박산데 이 땅에 들어와 헌신을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집 지어준다고 해도 살겠습니까? 김해영씨는 보츠와나를 갔지만 보츠와나보다 더 빈민국이 우리나라 1900년대입니다. 그렇게 와준 것만도 너무나 감사하고 귀하다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서서평의 선교사에게 너무나 머리가 숙여져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다 똑같은 달란트를 주셨는데 이것은 누가복음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다 같이 함문하라고 똑같이 준 은사라고 하셨습니다. 엄마도 버린 서서평 선교사이니깐 그들과 달리 선교가 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마음이니깐 하나님 이렇게 엄청나게 쓰셨습니다. 테레사 수녀보다 먼저 태어난 서서평 선교사가 사실은 너무도 더 대단하고 나병환자를 껴안고 나병환자 독립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습니다. 신학교도 세웠습니다. 어마어마한 일을 하였는데 백년 만에 우리가 처음 들었잖아요. 그러니깐 너무나도 천국은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정받는다고 해도 진짜 모르겠습니다. 숨겨져 있는 사람이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진짜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우리는 이렇게 못 살아 가슴을 쥐어뜯을 것입니다. 이렇게 못 살아도 도전이 되고 그러므로 한국이 선교사를 해외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 아닙니까? 받은 바 은혜를 그래도 베풀어야 되겠는데 이 서서평과 같은 선교사가 되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집에서 잘 하세요.
이 모든 전쟁을 즐거워하라, 자녀를 키워도, 부부간에도 즐거워하라, 직장에서도 즐거워 하라,이 즐거워하라가 모든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는 비결이 될 줄 믿습니다.
# 말씀을 맺겠습니다.
큰이적은 전쟁이고 하늘의 전쟁으로 바꾸어서 그 전쟁을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왜냐면 마귀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이 물러남을 바라보면서 이긴 싸움을 싸우기 때문에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핍박이 양육으로 변하기 때문에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조류에도 떠나가게 하시지 않는 하나님, 그런데 이런 조류에 떠내려가는 자녀들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앞으로 어떻게 될줄 모릅니다. 그러니깐 서서평 선교사가 세상적으로 보면 즐거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조선 여인들, 그것도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이 나병 걸린 아이들을 만져주고 가장 크게 기뻐했다고 자기 글로 편지로 남겼습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한 것은 하늘나라 기쁨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은 우리를 강물에 떠내려가게 하지만 강물에 휩쓸리게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즐거워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떤 곳과 시간에도 즐거워하시길 바랍니다.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후 찬양 : 주께 가오니
기도제목 :여러분은 어디서 즐거워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 속에 다 사단의 배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사단은 물러날 때가 다가왔다고 구원의 때가 왔다는 것을 믿고 즐거워하겠다고 기도하겠습니다.
위한나 목장 보고서
#열두번째, 즐거워하리이다#
일시 : 18. 2. 25 주일
장소 : 6층 소년부실
참석 : 위한나, 윤현경, 최민정, 이은영
나눔 : 저번주 명절 쉬고 처음으로 넷이함께한 모임이었습니다. 오늘은 즐거워하라(요한계시록 12장 12-16절)는 말씀을 가지고 나눔을 하였습니다. 각자가 처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즐거워하기를 소망합니다.
1) 마귀의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나 어떻게 우리는 즐거워 할 수 있을까?마지막 때가 왔다고 하시는데 즐거워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사건은 무엇인지?
A : 근래에 나를 참소하던 사람 때문에 힘들었는데,무의식 중에 내가 피해의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나를 참소하였던 이에게 말을 건냈는데 두려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담대함이 생겼다. 그리고 기도를 드렸는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관계를 정리해주셨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심을 경험하였다.
B: 회사 이직 문제가 있었는데 결국 기존에 다닌 회사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남아있기로 결정을 하였는데 이것저것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 낙심되는 부분이 있다. 또 집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것도 참 걱정이 많다.
C: 남자친구와의 관계로 인해 즐겁지 못한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직장을 옮겨야할지 남아야 될지 고민이 많다.
(목자: 현재 친구의 상태는 고갈된 상태인데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된다. 감당할 수 있으면 가면 좋겠다. 나의 경우는 직장상사와 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결정한다. 친구가 직장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어떨지? 그리고 친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직장 생활을 마무리 진것은 너무나 잘한 것으로 칭찬해주고 싶다)
D: 동기의 졸업식을 다녀왔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그당시 친구들에게서 느꼈던 소외감은 말로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처음 만났던 그때를 회상하면서 친구들에게 진심을 담아 꽃과 편지를 전했다. 그 마음이 잘 전달이 되었다. (친구들이 진심으로 나에게 고맙다는 답장을 전해왔다.)사실 6개월 전에 아웃리치때 적용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제서야 하게되었다.마지막이라 이때 아니면 적용하지 못할 것 같아 용기내었다. 정말 끝이 흐지브지 될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의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요한계시록 말씀 관계에 대한 말씀을 깊이 묵상한 것이 이렇게 작용하여 적용까지 이끌어 낼 수있었던 것이 아닌가!! 말씀의 힘~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2)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당하게 하시면서광야에서 양육시키시는데 핍박이 무서워 양육받지 못하고 사단의 종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지?
A: 앞으로 무서운게 너무 많다. 3월 개학과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교만은 열등감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렸을 땐, 열심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에너지 부족으로 무력감이 많다.
요즘 죄책감으로 참소하는 나의 모습이 있는데 시편 말씀을 보고 들으며 감사와 기도를 하면서 가고 있다.
무력감이 있고 힘이 예전보다 생기지 않지만 핍박가운데서 기도 용서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져 좋다.
요즘드는 생각 : 공동체 사람이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 있어 공동체 사람과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
B : 말씀으로 변할 수 있을까?
-> 하나님께 엎드려지는 것이 한번에 잘 되진 않는다.
3) 우리 목장 어떤 조류에도 떠내려 가지 않기를,
금주 기도 제목
한나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사람과의 관계에서 담대해질 수 있도록.
현경 화를 건강하게 풀수 있도록.
물질 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은영 시간관리를 위해 새벽큐티할 수 있도록(적용 : 새벽예배)
양육교사 훈련 받을 수 있게 시간을 열어주시도록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