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14 ~ 19
하나님 나라
증인들의 사역을 통해 구원받아야 할 자들이 구원받고 하나님은 지체 없이 7번째 재앙을 쏟아 부으셔야 하는데
또다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보여주시고자 하심. 마지막 재앙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함.
우리의 인생은 7번째 나팔인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
심판 당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1.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7번째 나팔은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줌.
이 세상은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바라보는데 이는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님.
이세상 나라가 사단의 왕국이고 사단은 이 천하만국을 절하면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했음.
궁극적으로 세상 나라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됨. 주님이 모든 것을 평정하시면서 그리스도의 나라가 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어지는 순종을 하셨기 때문임.
그리스도가 왕노릇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임.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가 들어갈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며 이 땅에서부터 구속된 자들임.
지금의 가난, 외로움, 질병 등 현재의 고난도 그리스도가 왕노릇 하고 있는 것임.
귀신이 나간 후에 그 빈자리를 눈물로 회개하며 말씀으로 채워나가야 하는데,
기쁜 이후로는 장식적으로 예배하고 헌금하니까 일곱 귀신이 도로 들어오고,
내가 열심히 믿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고 반문하는 상황이 됨.
18년간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인을 예수님이 고쳐주심.
18년간 꼬부라져 있으니 온집안 식구가 예배를 사모하고 데려오는 간절함이 있었음.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에 온 식구가 믿음의 가정이 됨.
그리스도의 가치관이 아니고서는 세상의 논리로는 해석할 수 없는 문제임.
구속의 말씀이 깨달아지면 귀신들린 식구들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됨. 이러한 가치관이야말로 예수님이 왕노릇하며 통치하는 것임.
예수님이 왕노릇 하는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이 세상을 기쁘게 살 수 있음.
현재 고난을 통하여 용서/인내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음.
고난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정해주신 고난임.
2. '감사하옵나니'의 나라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고통을 알고 계신다면 그 끝도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것을 알아야 감사가 나옴.
내가 쓰임받기 합당하지 않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임.사명을 찾고 사람을 살리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주심.
내모든 사건에서 원망하지 않아야 하며 고난 당하더라도 80년임.
이는 정해진 시간이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으며 지금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임.
이해 안되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있는 것임. 입에서 감사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모르는 것임.
맏아들은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탈선하지 않음.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에게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라고 말하는데 이는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말임.
열심히 살면서 십일조 하고 주일성수 하고 목장 섬겼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셨는가?가 우리의 주제가임.
염소새끼 하나 안준다고 감사가 없음. 이는 맏아들의 주제가 돈이기 때문이며, 자기 모습을 못보는 맏아들 탕자가 무서운 장자임.
그리스도가 왕노릇 하지 않으면 감사고백이 나오지 못함.
18년동안 집에 꼬부라진 사람 하나 있으면 감사가 나옴. 그 마음을 주님께서 보심.
상대방이 예배 드리도록 하기 위해 내 삶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 18년 이렇게 살면 믿음의 집이 되고 겸손한 가정이 됨.
고쳐주면 기복신앙으로 딴청 부리니까 18년 머물게 해서라도 훈련받게 하심. 하나님은 이 딸을 믿음의 딸이라 하심.
18년 꼬부라진 딸을 믿음의 딸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임.
이것도 저것도 감사하며 더 부해지는 삶을 누릴 수 있음.인생 얼마 안남았음. 감사해야 함.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이러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음.
3. 최후의 심판이 있어야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최후의 심판, 즉 한계 상황이 오지 않고는 오지 않는 나라임.
큰상을 받는 자가 있는 반면, 주의 진노가 임해서 멸망 당하는 자가 있음.
최후의 심판이 있음으로 세상 나라가 종결되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됨.
벌 : 지옥, 상 : 구원, 생명의 면류관
악한 사람도 심판 받기 위해 육체가 부활하여 결코 꺼지지 않는 곳에서 영원을 고통을 당함.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 목록 중에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항목은 없음.
성경이 주시는 상급과 우리가 바라는 상급이 다름. 성경만 읽고 나가면 하나님이 나를 쓰시는 것에 대해 옳소이다가 나옴.
4. 언약궤가 보이는 나라,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악인에게 번뇌와 뇌성의 심판이 임하는 반면, 믿는 자에게 언약궤가 보이는 사건임.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주심.
위로 받으러 나온 40세 이혼남이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과정에서 배우자를 하나님보다 사랑해서 있어야 할 사건이고
아내도 나를 훈련시키시기 위해 붙여주신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고 세상에서 나를 최고의 남편으로 포장하려는 욕심을 보게 됨.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기적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사실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여러 차례 강조하셨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을 뿐임.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의 죄성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도 죽어있던 영성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부활의 사건임.
그것을 통해 삶이 재해석되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그것은 더더욱 놀라운 부활의 사건임.
[나눔 요약]
박수동 : 오늘 말씀을 들으며, 나도 18년 귀신들린 사람처럼 세상의 물질과 즐거움 쫓아 살다가 공동체 정착하여 귀신이 떠났는데,
귀신이 떠난 자리에 말씀으로 채워나가지 못하여 세상의 좋은 것을 쫓는 귀신이 되돌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누님이 이사하는 과정에서 좋은 가전 제품을 사려는 욕심이 올라왔고, 이사할 집에 놓을 가전제품 고르던 시기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TV 제품부터 알아보고 있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사할 집에 수납장을 셋팅한 것이 주문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이를 수정하고 그날 저녁에 가전제품 구매를 확정하러 대리점에 갔는데
정해진 예산으로 사려고 본래 계획보다 세탁기 사양은 높이고 TV 사양은 낮췄으나 전시장에 더 좋은 제품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서 힘들었다.
구정 연휴 중 토요일을 누님 가족들과 같이 보내고 주일날 휘문 채플에 쉽게 갈 수 있게끔 삼성동에 호텔을 알아봤는데
기존에 알아봐 두었던 곳보다 더 좋은 호텔이 눈에 들어와서 예약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더 좋은 것을 찾고 과시욕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구원받은 사람으로 구속사의 삶을 살지 못하고
안목의 정욕으로 세상 나라를 위해 사는 모습인 것 같다.
정동준 : 나도 돈이 있으면 쓰게 되고 욕심이 없는게 아니다. 원하는 소득에 도달하면 가지려고 마음에 품은 차도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세상적으로 더 좋은 것을 찾아가려는 마음도 있다.
18 년된 꼬부라진 딸이 있으면 그 딸 때문에 육의 것을 내려놓고 영을 쫓아가지만 해결이 되면 금새 육을 쫓아가듯이,
안되는 환경이 있어야 억지로라도 내가 가진 욕심대로 못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을 쫓아가는 것 같고
조금만 괜찮아지려고 하면 욕심이 올라와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오늘 말씀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이, 18년 꼬부라진 딸을 가진 그 집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한 집안이고 저주받은 집안인데,
예수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아브라함의 딸이고 믿음의 딸이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최근 일하는 환경에서 가치관이나 시선이 세상적으로 된 것 같다. 그 기준으로 나 스스로를 보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서 기쁨이 없었는데
하나님 더 잘 믿게 해주시는 환경이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최근 바쁜 일이 없는 시기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시간이 될 때 말씀을 좀 더 잘 보면서 갔으면 좋겠는데 당장 적용은 힘들었던 것 같다.
연구실을 같이 쓰는 박사님이 있는데 연구실적이 저조하고 이것 때문에 본인이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연구실에서 나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본인이 처한 현실을 내 모습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피해의식으로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다.
본인에게 주어진 일조차 왜 내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라는 불평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에는 안된 마음으로 받아주곤 했는데 최근에는 나도 지친 상태이며 그 분의 모습이 무시될 때가 있다.
그분이 완벽주의 성격이어서 주어진 일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하는 모습이 답답해 보였고
현실적인 업무 범위를 잘 설명해 주면 발끈하면서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고집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일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힘들어 한다. 그 분의 그런 모습을 보면 내가 힘들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내가 옆에서 잘 지켜봐 주고 조언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분도 교회 다니시는 분이셔서 가끔 말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좋아하신다.
그래서 그분 힘드실 때 이런 이야기 해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었고 이것이 요즘 기도제목이다.
전훈 : 오늘 말씀 중에 탕자 이야기가 있었는데, 집안의 탕자와 돌아온 탕자 말씀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유년시절부터 들어온 말씀이라 익히 알고 있지만, 작은 아들은 분깃을 이미 받아서 다 탕진하고 왔는데 그 아들에게 가락지를 끼워주고
염소를 잡는 모습이 착실하게 살아온 맏아들 입장에서는 그런 불평소리 나올만 하겠다라고 느껴지게 된다.
큰아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거 다 참아가면서 아버지가 시키는거 성실하게 해왔고, 작은 아들은 본인 하고 싶은 거 실컷 다 해보고 돌아와서는
다시 예전의 삶을 누리고 있는데, 큰아들은 오히려 집안의 탕자이고 작은 아들은 회개의 모범으로더 큰 자가 되어 있다.
그동생을 바라보면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을 큰아들의 심정에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데 말씀 중에 큰아들이 그렇게 된 것은 돈/염소를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이라는 부분에 찔림이 있었다.
나도 탈선한 적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궁극적으로 사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세상 성공을 위해서
탈선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것이다. 야곱과 에서의 말씀에서도 자꾸 에서의 억울한 입장에 동질감을 느껴 불편함이 있었다.
혼자서 집안 식구 먹여 살린다고 험한 산길 다니면서 힘들게 사냥하고 왔는데 동생 야곱은 부엌에 앉아 죽을 끓이면서
엄마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 생색이 났을거 같고, 그 죽과 담소의 결과가 나중에 자신을 속인사기극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에서의 심정에 자꾸 연민을 느낀다. 그런데 에서도 결국 당장 육신의 배고픔 때문에 장자권을 팔았고, 육을 쫓아서 사는 내 모습이다.
막판에 목사님 말씀 중에 염소새끼와 돈이 주제가이고 자신의 모습을못보는맏아들이 무서운 탕자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내가 닮은 모습이라고 인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