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8 주일 위한나 목장 보고서>
하늘로 올라가니(계시록 11:12-13)
본문 : 요한계시록 11장 12-13절
설교 : 김양재 목사님
# 어머님의 기도로 아들이 죽음 앞에서 영접한 사건
오래전에 노 권사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식구들이 불편해하니 식구들이 없을 때 오셔서 아들의 병상에서 예배를 드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받자마자 갔는데 마침 아무도 없어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다 와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드님께서는 혼수상태라 전혀 얘기를 듣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식구들 앞에서 그 식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환자분에게 복음계시하고 영접하기를 권했는데, 혼수상태였던 그 분께서 제가 정말 놀랄 정도로 주님을 영접합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놀라고 전율이 올라왔습니다. 제가 낮에 갔었는데 그분께서 그날 저녁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저는 정말 잊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기적이라고 생각할 그 일을 부인께서는 남편이 영접한 것에 대해서 하나도 기쁨이 없고 돌아가신 것에만 슬퍼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예배를 드리러 가면 방에서 나오시지도 않았습니다. 온 가족은 이런데 아들은 어떻게 영접을 하셨을까? 권사님의 기도가 있어서 이런 일(아들의 영접)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그 착한 아들이 세상적으로 잘 나갔는데, 마지막에 갑자기 모든 예배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자부도 거절을 했습니다. 점점 더 아파 가는데 예배를 거절하니깐, 할머니가 안타까운 나머지 자신의 쌈짓돈을 모아서 교회로 땀을 흘리며 걸어가 헌금함에 넣고 뭘 해야 될지 모르셨던 것입니다. 아침에 저에게 전화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저에게 전화를 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분이 정말 위치가 높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나 낮에 영접하고 저녁에 돌아가셨어요. 이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집안에 한 사람 중심잡고 있으면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할머니 권사님이 잘나가는 식구들과 소통이 안 되는 슬픔이 있으셨습니다. 잘 나가는 것이 축복인 것인지, 예수 얘기가 안 통하는 것이 뭔지, 그렇지만 그 분이 나중에 생각하셨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저도 똑같은 일을 당했잖아요. 저도 그 일로 주인공으로 우뚝 서서 사명을 감당하는데, 그 똑같은 분은 남편의 죽음 앞에서 구원에 동참을 못하고 구경꾼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마어마한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동참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구경꾼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두 증인에게 하늘로 올라오라고 감격적인 초대를 하셨는데,
첫째로 하늘로 올라가니 원수가 두 증인의 승천을 구경한다고 하십니다. (12절)
(12절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두 증인 사흘 반 만에 살아나서 하늘로부터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하늘로 올라오라하는 감격적인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 그동안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고 조롱을 당하고 자기 발로 일어섰는데 하늘로부터 올라오라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 따라 작은 예수들이 잘 따라 죽으면 부활하고 승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반드시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의 부활은 다만 자신들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가 가는 것입니다. 내 공로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원수가 구경을 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구경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구원에 동참하지 못하는 구경꾼 모습 1 : 다른 이의 구원 사건 앞에서 동참하지 못하는 모습.
(왕하 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불수레, 불말이 뭘까? 우리가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경우 불수레 아닙니까? 후쿠시마 원전이라던가 이런 것들이 불수레, 불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불수레-용광로와 같은 내 사건 속에서 불말들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갑자기 데려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두 사람이 행하다가 한 사람을 딱 데려갔는데 이 사건 속에서 성경은 엘리야가 승천했다고 합니다. 승천했으니 우리는 기뻐해야 되겠습니까? 슬퍼해야 되겠습니까? 기뻐해야 하지만 12절 보니 엘리사도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 병고와 마병이요. 하면서 옷을 찢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면 일단 슬픕니다. 데려가면 슬퍼요. 그러나 후에 해석을 잘해야 되잖아요. 원수들은 구경을 하는데 주인공은 승천을 합니다.
저도 남편 세상 떠난 것이 무엇이 기뻤겠습니까? 저는 남편 간증을 집회에서 간증하고 나서 어떤 분이 저에게 상담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간증의 은혜스러움 끝에 상담을 하는데 그 분이 어디에도 빠질 것이 없는 저희 아들이 아버지 없는 가정의 딸과 결혼하려고 해서 제가 지금 반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제 간증을 듣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모르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이 얘기를 하니깐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서 교회를 떠나는 가를 모릅니다. 이제 이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확 나쁘잖아요. 제가 남편이 천국 가서 기쁘다고 간증하고 있는데 내가 믿음 없으면 남편 떠난 것이 뭐가 기뻐서 방방곡곡 간증을 하고 다니겠습니까? 하나님의 해석을 들어서 제가 구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죽음에서도 구름타고 올라가는 간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 이 세상은 원수처럼 여깁니다. 광신이라 하고, 원수가 복음을 전하는 나를 조롱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꼴좋다, 과부가 되었구나 이럴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과부를 무시합니다. 어떤 분은 남편이 죽어서 재혼을 했는데 그 남편이 또 죽었대요. 양쪽에 딸이 있는데 딸들이 엄마가 교회 가는 것을 비밀로 하고 사는 것이에요. 무슨 큰 죄 지은 것처럼 비밀로 했답니다. 우리는 창피한 것이 많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이처럼 구경꾼이 되어서 실체를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 문자적으로 구름을 타고 천국에 갔고 나또한 이 세상에서 과부가 되었다고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간증을 하니, 원수가 간담이 서늘해져서 구경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 보고 과부가 어쩌구저쩌구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과부는 과부지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 것 때문에 상처 받지 맙시다. 과부라고 해서 교회 나가는 것이 무엇이에요. 기분이 나빠 돌아가시는 분이 있는데 자기를 잘 인식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자유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천국 가는 얘기를 하니깐 원수들이 다 구경을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는 말이 있지만 저는 사망에 쏘이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인데, 죽음을 겪어 보는 것이 얼마나 사명을 감당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구름타고 올라가는 간증을 하면 원수가 구경을 한다고 했습니다. 구경꾼으로 있으면 평생 올라가지 못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사도행전 1:9-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자세히 예수님이 승천하심을 바라보고 있는데, 구름 속에 가리어져 버렸습니다. 구름 속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니 천사들이 어찌하여 쳐다보고 있느냐고 했으니 이것은 칭찬입니까? 욕하는 것입니까? 너희들 이렇게 쳐다보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셨습니다. 가셨으니 제자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동안의 삶은 생각지도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증인이 되어라 하고 명령을 하시고 승천을 하셨는데, 너희가 앞으로 누릴 영광은 승천의 영광과 재림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허다한 증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그 재림의 영광을 보일 것인데, 너희는 어찌 천국 지점의 영광을 맛보았지만 이제는 본점의 영광을 맛 볼 것이다. 왜 구경을 하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이 되지 않아서 육적인 것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가 간증을 하는데 간증의 주체인 하나님을 보지 않고 현상만 보는 것입니다. 내가 서울대학교가서 붙었어, 병이 나았어하니깐 눈이 똥그레져서 쳐다보는 것입니다. 내가 저렇게 붙으면 병이 낫겠구나하고 쳐다보니깐 주님께서 뭘 봐 이러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을 봐야하는 것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 예배 잘 드리고 본질이신 말씀과 믿음에 착념(着念)을 해야하는데 제 간증을 들어도 애비 없는 딸과 결혼을 시켜도 되겠냐며 제 앞에서 얘기했잖아요. 저를 아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얘기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상처를 안 받아야겠습니다. 보이는 현상에 매달리는 것이 많습니다. 너무 열심히 살아도 이런 사람은 구경꾼 밖에 되지 않습니다.
# 구원에 동참하지 못하는 구경꾼 모습 2 : 내 안의 원수가 가장 무서운 것인데 내안의 원수를 구경만 하는 모습.
불수레 불마 속에서 구름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부로 내려가는 사람이 있고 내려가기 전에 구경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는 올라가는 증인인지 구경꾼인지 생각을 해볼 적에, 딴 사람이 구경꾼이라 나 믿는 것에 조롱을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남에게 조롱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할 때에 화가 나잖아요. 내가 조롱받고 무시당할 때에 무서운 것은 내 속에 원수가 구경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보고 믿음이 좋다고 하지만, 나도 조절이 안 될 때 냉소적으로 구경을 할 때가 있습니다. 쿨한 척하면서 냉소적으로 구경하는 부분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하늘로 내 속이 다 올라갔으면 좋겠지만, 아직도 살아있어서 올라가지 못해 구경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수라구요. 하나님과 온전히 합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시죠? 모든 사람들이 화를 내면 늘 얘기하지만, 그 사람 안보면 됩니다. 그런데 내 속에 화가 나는 것은 내가 안 볼 수가 없잖아요. 남편이 뭐라고 아내가 뭐라고 해도 내가 화가 나지 않아야 하는데 화가 나는 그런 부분이 하나님과 합해지지 않으니 구경꾼이 되어서 해결하지 않는 것입니다. 됐어!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화를 내도 돼라고 하면서 구경꾼이 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내가 핍박받고 그럴 땐 불쌍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것을 깨달았으니깐 이런 설교를 하게 됩니다. 내 속에 원수가 제일 무섭습니다. 내가 승리하는 부분이 있는데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내속에 구경꾼이 제일 무서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처럼 구경만 하게 되면,
두 번째, 구경꾼 중에 심판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13절)
(13절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구경꾼 중에 공의의 심판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참교회를 능멸하던 큰 성과 그 안에 사람들이 하나님 진노로 심판을 당하는 첫 십분의 일이 무너졌습니다. 구경하다가는 이렇게 무너집니다. 십분의 일은 십일조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다 죄로 죽어야 하는 인생이지만 애굽의 장자만 죽인 것처럼 그래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십의 일만 죽이신 것입니다. 십일조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지만 우리의 십의 일만 드리는 것은 이것은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십의 하나를 떼어 신앙 고백하는 것이지 교회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신앙 고백으로서 전 세계에 기독교가 전파되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자원함으로 전 세계 기독교가 전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십일조 개념으로 이 구경꾼들이 십일조를 잘 하겠습니까? 십의 일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아직 일곱 대접 재앙이 남아있기 때문에 완전히 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의 얘기로 이것도 들어야 합니다. 잘나가던 성에 거하던 소돔 고모라성 예수 믿는 사람을 조롱하던 세상적으로 잘나가던 구경꾼이 왜 무너지고 죽게 되나요? 제가 몇 년 전에도 했는데, 다시 한 번 해보고자 합니다. 1937년 하버드 대학 2학년 학생 268명을 대상으로 72년 간 인생 사례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가. 하버드 대학생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가를 연구했다고 합니다. 아주 우수한 학생들만 뽑았는데 그 가운데 존 넵 케네디, 벤 베들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의사, 어머니 예술가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머리도 좋고 이큐도 좋고 다 좋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갑자기 31살에 부모와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마약을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죽었습니다. 신문 부고란에는 전쟁영웅이고 평화운동가라고 부흥기사가 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잘 모릅니다. 또 한 사람은 세 아이를 낳고 이혼하고 동성애 인권 운동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에 남은 것이 없어 술에 빠져 살다가 64살에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바드에 그 268여명 중에 3분의 2가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에서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것입니다. 연구 결과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가장 안정적인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늙어 가는데 필요한 요소는 일곱 가지로 추려지는데
☆1)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
2) 교육
3) 안정적 결혼
4) 금연
5) 금주
6) 운동
7) 적당한 체중( 살빼시기 바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려서부터 평범한 인간관계를 잘 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잘 하기 위해서 어려부서부터 끼리끼리 놀아야 되겠습니까? 하바드 수제들 끼리끼리 놀아야 되겠습니까? 어려서부터 목장에 가서 사랑을 주고받는 것, 이 법을 배워야 하는데 교회에서도 끼리끼리 모입니다... 평범한 사람들끼리 차별없이 모이는 것이 제일인데, 어려서부터 십자가 사랑을 배워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교회라고 해서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니깐 교회에서도 끼리끼리여서 상처받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도 그런데, 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이 판치고 신천지만 요새 무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교회라고 하나님 어머니라고 부르는 단체는 신천지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단을 연구하던 탁명환 목사님은 피살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탁지훈 소장님이라는 그 아들이 현대종교가 하나님교회에 패소를 했습니다. 명예 훼손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현대종교를 경영하고있는 탁재훈 소장님 기도를 많이 하고 도와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와 끼리끼리 노는지 알지 못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어떤 한 아이가 저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멀쩡한 20대 아이를 목사님께서 너는 공부를 중단하고 주의 길을 가거라고 했고 그의 여자 친구에게는 주일을 하는 장로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목사님 예언해주니 사귀는 것에 죄책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귀다가 인격적 문제가 있어서 헤어지는 상식적인 교제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 메일에도 적혀있듯이 목사님께 직통계시 밖에 없어서 말씀으로 인도함 부분이 하나도 없다고 썼습니다. 그러니깐 건강한 공동체에서 건강한 사고방식을 주고받아야 되겠는데 율법주의 기복주의 문자주의와 같은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건강한 공동체 찾는 것이 중요하고 건강한 교회에서 인간관계를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공동체를 와도 구경꾼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장에 왜 가야 하는 것이냐? 목장에 가서 말도 안 되는 인간관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주일학교부터 목장에 가는 것은고통에 대하는 법을 최고로 배워가는 것입니다. 일류학교 좋아하다가 롯처럼 망하는 인생을 사는데도 그 일류를 좋아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가 롯입니다. 하바드, 서울대 그 이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오늘 행복하게 늙어가는 데 필요한 요소 가운데 고통에서 대하는 자세를 첫 번째로 쳤지만 두 번째로 교육을 쳤습니다. 교육은 왜 중요한가냐면? 공부를 하려면 어느 정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소정의 과정을 거치려면 인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깐 그래서 교육을 치는 것입니다. 학력이 학벌이 아니라 학력인 것입니다. 학력(學力) 말 그대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기독교학교 아카데미를 참여하고 왔습니다. 우리들교회 사역자와 집사님들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학교보다 학원을 더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학원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학원에서 날마다 서울대학교 가지 않으면 학교로 치질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자꾸 듣다보니 다른 학교가도 자존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학교 아닌 학원을 하자는 얘기가...ㅎ 방과후 스쿨로? 학원을 해야하는가 그런 비젼이 생겼습니다. 선생들도 우리들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학생들도 훈련을 받아야 되겠는 것입니다. 반드시 공부를 해야합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해야 되는 것인데 하지말라가 아니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류 지상주의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입각하여 일류 선생님들이 지원을 하시고 학생도 내고 페이도 받아 학원을 하는 것이 어떤가. 학교를 새로 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면서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7천명이 죽었습니다.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7천명이 죽었습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많은 수천을 곱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엘리야 시대 무릎을 꿇지 않았던 7천명은 남았다고 했는데 계시록 11장에는 7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어느 시대가 무서운 것입니까? 구약/계시록 중 어디가 무섭습니까? 소수와 다수가 바뀌었습니다. 계시록이 재앙얘기 하는 것 같지만, 십분의 일 7천명이 죽었고 구원될 사람이 셀 수 없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사랑의 책인 것입니다. 구약은 무섭습니다. 앞으로 십 분의 9가 남은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가 심판당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로 올라가니깐 구경하는 사람도 있고 구경하다가 심판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회개하여
세 번째, 회개하여 남은 자가 있다고 하십니다. (13절)
최고의 증거로 회개를 했습니다.
(13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두 증인의 기사를 읽으면서 느낀 것인데,역시 하나님은 실패하시지 않으시고 증인들의 죽음을 통해서 열매를 거두십니다. 하늘에 미리 떨어져 썩으면, 엄청난 열매가 맺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대단한 회심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는 해도 그 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하나님께 꿇어 엎드러져서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때가 머지않아 성취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은 언젠가는 나의 원수들도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기다리고 인내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수를 보게 될 날이 올 것을 알고 이 땅에서 나는 복수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수는 하나님만 해주십니다. 원수는 언젠가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날을 꼭 맞게 되어있습니다. 하바드 학생들이 그렇게 잘나갔는데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자살하고 계단에서 떨어지고 마약하고 이랬잖아요. 누가 뭐라 하기 이전에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이렇습니다. 그들의 심판을 앞당겨 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내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특징이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퓨전 음식점에서 종업원과 임산부의 싸움을 보면서 누가 거기서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종업원 자리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자기 위치를 지켜야 되는데, 임산부의 자리에서는 태아를 위해 끝까지 인내를 해야 되잖아요. 부드러운 말로 뭐가 잘 못 됐다고 말할 수 있는데, 너죽고 나죽자며 한이 맺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잘 싸우는 사람이 없답니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흘반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디에서든 반드시 인내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내가 저런 악한 사람에게 인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악한 사람이 어디까지 가야 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 모르셔서 그렇지, 악의 화신이에요. 이런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습니까? 그렇게까지 물으신다면 저는 그 옆 사람을 쳐다볼 수 없습니다. 악의 화신이니깐. 눈동자를 돌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말 가장 악한 사람일까요?
몇 년 전에 장애아 아이를 내어버린 비정한 30대 부모가 4년 만에 잡혔다고 합니다. 다운 증후군 아이를 버렸다고 합니다. 그 아이를 키울 수 없어서 형편이 없어서 버렸다고 하면 동정을 받겠는데, 이 아들이 수치스러웠던 것입니다. 4-5살에 장애인 시설에 아이와 함께 정말 죄송합니다. 몇 년 몇 일 생을 적은 쪽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이 부부가 그런데 알고 보니 엘리트 부부고 정부 최고 기관에서 근무하는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부부에게 다운증후군 아들은 혹과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태어난 아들이 너무나 준수한 얼굴에 공부를 잘하니 둘째 아들만 없으면 인생이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요것만 떼어버리고 싶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둘째가 수치스러웠던 것입니다. 허위로 가출 신고까지 하면서 아이가 나가버린 것으로 했다고 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지구를 떠나버려라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세상에 버림당한 아이, 버리는 부모가 있습니다. 이러니 이혼도 맘대로 합니다. 내 생각엔 버림당한 아이가 불쌍합니까? 버리는 부모가 불쌍합니까? 아무 죄 없이 버림당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지켜주시고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 손 좀 봐주셔야 되겠습니다. 아무쪼록 불쌍한 사람은 버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사건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직업과 사회적 안정, 똑똑한 자녀를 가지고 있어도 장애아 자녀 한 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이 최고의 엘리트로 키워졌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고통을 어떻게 성숙하게 반응하느냐가 최고의 행복인데, 근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최고로 자랐기 때문에 최고의 그룹에서 최고로 자라게 되면 이렇게 하는 것이 부부가 똑같아서 그랬던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끼리 만납니다. 똑같으니 둘이 사는 것입니다. 그녀가 나에요. 내가 그 남이에요. 우리는 똑같아요. 정말 이 사람들이야 말로 지진에 죽을 사람이고 또 무너질 사람입니다. 가장 큰 심판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아직 살고 착한 사람이 죽는 불공평한 상황이라고 날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부르짖는데, 버린 자도 버림당한 자도 하나님은 긍휼의 그릇으로 택하시고 그들을 부르시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하나님 부르심에 응한다면 하나님의 남은 자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경꾼이 되어 이런 말이 안 들립니다. 버린 자도 안 들리고 버림당한 자들도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똑같이 남은 자가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복음적인 교회를 출석하고 모태신앙으로 경건하게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인하며 남은 자가 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남 은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남은 자가 될 수 있을까?
# 남은 자가 되기 위하여
9장 20절에서도 황충의 재앙에서도 남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자는 절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계시록9:20-21)20이 재앙에서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고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은·동과 목석의 우성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9장에서는 그 재앙에도 회개치 아니하고 11장에서는 두 증인의 죽음으로 하늘의 영광보고 회개를 했습니다. 9장과 11장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재앙으로 안 변합니다. 작은 책의 권세로만 변하고 복음으로만 회개합니다. 두 증인이 증거하고 죽었더니 회개한 것입니다. 계시록 회개는 여기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재앙으로는 안변하고 말씀으로만, 두 증인의 복음 증거로 전도의 미련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두 증인의 목적은 이 세상이 주께로 돌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삶을 증인에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남은 자들 가운데 구원 받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가장 아프게 하는 자들입니다.
오서왈드 참벌스가 얘기했는데
날마다 죄를 얘기했지만 기독교를 문어다리처럼 휘감고 있는 무서운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세계를 죄악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옷을 입어도 죄고 무슨 말을 해도 죄고 모든 물리적인 세계를 죄를 보는 것. 보이는 부분을 다 죄로 보는 것입니다. 저기는 화려해서 안 되고 쾌락적이어서 안 되고. 그런데 죄는 사람에게 심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죄는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계획하실 적에 원래 속성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뽑아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질병으로 보지 아니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대항하는 피 뭍은 반란으로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의 근본정신은 나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나에게 명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이 안 들리는 사람은 그래서 부인이 한 마디 말만 해도 명령하는 것처럼 여기고 딱 질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어느 사람은 안전벨트를 안 맨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 타기 전에 안전벨트를 매려고 하는데 부인이 메라고 하니깐 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이렇습니다. 죄의 속성입니다. 누가 얘기하는 것을 딱 듣기 싫어합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피 뭍은 반란과 하나님이 안 믿어지는 것이 죄입니다.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이든지 아니든지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죄는 도덕적이냐 비도덕적이냐, 이런 것을 얘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 대한 권리에 대한 주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온 마음과 온 뜻을 다하여 강력히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할 수 있어 내가 무슨 도움을 받아! 이런 사람이 예수 믿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장애아 부모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외치다가 가장 하나님을 아프게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내 자녀가 일류를 살아서 미워할 것이 아니라 너무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내 자녀가 잘났는데 그 아들 버렸다고 욕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이 사람을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습니다. 들키니깐 그렇지 나도 같이 버리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입니다. 그죠? 내 자녀도 어디 갔다 버렸으면 좋겠어? 할 것입니다. 저 혹만 없으면 살 거 같은데 이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저 행함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그게 나 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야합니다.
탈북자 북송시키는 일은 죽음으로 내버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중국이 내보내고 있다는 것은 그 안보리 국가인 중국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 세계가 하나님을 대항하는 피 뭍은 반란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다 보고 계실 것입니다. 안보리 국가의 최대 국가인 미국이 가만히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행해지는 로마의 일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일성, 김성일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북한은 핵하나 들고 죽여봐, 터트린다. 이러고 있고 온 세계가 꿈쩍도 못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따로 없습니다. 이것을 맞대고 의논을 해야 하는데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의거해서 의논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미국은 안보리 국가로 세계의 평화에 앞장서서 일을 해야겠는데 자국의 이익 때문에 일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북한에서 나온 사람을 다시 들여보내고 있습니다. 보내지는 말아야하는데, 이처럼 세상이 하나님께 피 뭍은 반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회개를 통해 우리 가정이 살아난다면, 이제는 사회 구원에 초점을 맞춰 기도를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가정이 너무 힘들어서 거기까지는 갈 겨를이 못 된다고 하지만, 이제 갈 겨를 있으신 분은 사회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항상 원수가 두 증인(성도)이 승리를 하니 원수가 두려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잖아요. 성도의 승리가 원수의 두려움과 재앙이 되는 것을 보겠는데 북한보다 무서운 것이 내속에 원수라는 것입니다. 택한 자는 택해져서 하늘로 올라가니깐, 한쪽에서는 승리하는 것이 있는데 한쪽에서는 너무나 두려워서 구경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잖아요. 어려워하는 부분이 승리하는 부분을 보고 두려워서 자꾸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어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은, 그러니깐 남들이 뭐라고 그래도 남들을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잖아요. 저것이 못됐으니깐, 남들이 욕해주니깐, 그땐 남들에게 욕을 돌리면 돼요. 그런데 두 증인처럼 사명을 감당하며 살면, 상대방을 욕하고 난리를 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에 대해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나는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한 쪽에서는 내가 무시 받고 조롱받은 부분이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 위치에서 해결이 안 될 수 있냐구요. 내 속에서 해결이 안되는 것이 내 속의 구경꾼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구경꾼이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은 구경하다가 심판 당할 수도 있겠지만은 나는 자꾸 승리를 하니 한 쪽에서는 그것을 보고 두려워 하니 달라져 가더라구요. 이것을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간증할 때 도전을 받고 달라져 하늘에 영광을 돌리잖아요. 더 나아가 나도 간증을 하면서 두려움에 떠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간증하고 살아서 되겠어? 이런 마음이 들어가니 성도의 승리로 원수가 두려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이처럼 항상 문제는 나한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한테 초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우 부모를 욕할 수 없는 것이 일류로 자라서 고통을 직면한 적이 없기 때문에 또 말씀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전도해서 주님께 인도하지 못한 내가 회개해야 되지. 그 집안이 그들에게 예수와 복음을 안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했구나 내가 회개해합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가 있다고 했는데 어떤 것도 내가 예수를 안 가르치고 말씀을 넣어주지 못한 내가 회개해야합니다. 그런 죄를 심하게 지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뭔가 당한 사람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그렇지만 당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낮은 마음이 되기 때문에 주님께 돌아오기 쉽습니다. 금은동 목석에 절하는 사람들 큰 그릇을 갖춰진 사람들은 뚫고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큰 그릇 사람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니깐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빌립보서의 구원을 이루어 가라는 말이 맞습니다. 택한 사람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 맞습니다. 내가 하나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오늘 구경꾼에 대해서 얘기 했습니다. 구경꾼은 성도가 천국을 가도 구경만 하고 구경만하다가 심판을 당하고 그 중에서도 회개하여 남은 자가 있다고 합니다. 내 속에 이 구경꾼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 하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똑같은 얘기입니다. 내가 세상에 버림받은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남은 자가 되어 구원의 부요함을 누려야 하는데 하늘로 올라가니 원수가 두 증인의 승천을 구경해요. 구경하다가 심판을 당합니다. 회개하여 남은 자가 있습니다. 참으로 구경꾼에서 주인공이 되게 해달라고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말씀 후 찬양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기도제목 우리는 하늘로 올라가는 두 증인을 보고 구경꾼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증인인지, 구경꾼인지. 구경하다가 우리는 심판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십분의 일만 심판 7천명만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여 남은 자가 됩시다.
한나 목장, 그 여덟 번째 #다솔이의 귀한 나눔#
일시 : 18. 1. 28 4-6
장소 : 6층 소년부실
참석 : 위한나, 최민정, 김다솔, 이은영
말씀 : 하늘로 올라가니 (요한계시록 11:12-13)
적용 :
1) 조롱 받고 무시 받았을때가 있었는지? 원수때문에 화가 났었는지?
2) 구경꾼 중에 심판당하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3) 내 속에 원수는 무엇인지?
가족, 직장, 학교 생활 가운데 인간관계, 소통이 안되는 점등에 대해서 공감하고 체휼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눔 가운데 다솔이의 수련회 은혜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캔버라에서 워홀 중인 다솔이는 한 달간 한국에 있으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저희 목장에서 함께 목장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솔이는 청소년부 수련회에서 스텝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수련회 2주 전에 프로그램 부팀장을 맡게 되면서 혈기와 생색이 났지만 무사히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수련회 이후 링거를 맞았을 정도로 체력적으로 힘든 섬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련회 가운데 기이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배 일정을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왔는데 새벽 3시, 자신보다 어린 친구들이 나눔을 제안 했다고 합니다. 너무 늦은 시각이고 그다음날 또 일정이 있었지만 친구들의 간절함으로 6시까지 나눔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나눔 자리에서 처음으로 다솔이는 나눔이 귀하다, 은혜스럽다를 몸소 느꼈다고 합니다. 기도 시간에 저절로 친구들의 기도가 나왔고 그 가운데 성령이 임하셔서 방언으로 기도를 하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믿음있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나오게 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믿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다른 친구들을위해 기도를 하고 또 수련회 이후 친구들을 만나 섬기게 되는 등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글로다 표현 못하는 다솔이의 나눔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유아부에서 다솔이 어머님(유아부 부장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 청년의 어머니께서 유아부 식사 섬김을 위해 챙겨주신 모습을 보시고 믿음이 좋으신 어머니께서는 자식이 섬김을 하면 모든 챙겨주고 싶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솔이의 수련회 간증을 듣고 다솔이 어머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 여행을 위해 다솔이가 한 주 출국 일정을 미뤘다고 합니다.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길 소망합니다.
다음 주 마지막 목장을 하고 캔버라로 향하는 다솔이에게 하나님 늘 동행하시고 어디에 있든 경건하게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다솔이가 되길 한나 목장이 중보합니다.
금주 기도제목
위한나
1. 말 조심할 수 있도록,
2. 큐티 나눔 솔직하고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목장 식구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3. 직장을 위해서 상사님 잘 만날 수 있도록
4. 시간관리 잘 할 수 있도록 일에 얽매이지 않고 큐티, 운동, 공부시간 가질수 있도록
최민정
1. 하나님께서 주신 면접 기회,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인도 해주실 것 믿고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은영
1. 주일 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예배에 대한 눌림 느끼지 않도록
2. 교수님과의 관계 직면해야 함. 교수님과의 만남에서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할 수 있또록
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