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1 주일 위한나 목장 보고서>
최고의 증거(요한계시록 11:7-11)
일시 : 18. 1. 21
본문 : 요한계시록 11:7-11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나를 최고로 증거 하는 말은 어떤 말일까요? 여러분들은 넌 똑똑해, 겸손해, 착해! 이러면 너무 좋겠죠? 그렇지만저는 저를 증거 해주는 분이 이렇게 증거 해주셨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는 만큼만 증거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최고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제대로 알고 증거 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행복한 것입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인데, 주님도 주님을 제대로 증거 해줄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하시겠습니까? 예수님 늘 사역을 하시다가 마태복음 16장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은 얼마나 떨리셨겠어요? 제대로 잘 못할까봐... 베드로는 그 당시 믿음 없이 그리스도시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믿음 하나 없이 고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베드로는부족해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요. 이렇게라도 고백하니 하나님 책임지시고 베드로를 수제자 반열에 올리셨잖아요. 이런 고백도 우린 하기 싫습니다. 목수의 아들이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저 또한, 여자목사라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너무 흐믓 하셨어요. 저에게도 하나님 아시는 만큼만 나를 증거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만나면 좋은 친구입니다. 행복해 똑똑해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이 땅에 증거 하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인생이 되는 것이고, 최고의 인생을 위해서는 오늘 최고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최고의 증거는,
첫째로 죽기까지 증거 하는 것입니다. 순교(殉敎)라고 할 수 있는 거죠.
(7절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는 두 증인입니다. 두 증인은 교회, 성도,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로마가 알아먹을까봐 이렇게 썼습니다. 두 증인의 뜻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1. 둘이 짝을 이루어 전도를 하는 것을 의미하고 2.초림과 재림을 예수님을 의미하고 3.교회를 의미합니다. 두 증인이 증거를 마쳤는데, 갈대로 척량하고 베옷을 입고 말씀의 등불을 꺼트리지 아니하며 기적 같은 권세를 가지고 여섯 째 나팔 후에 일곱 째 나팔 전에 사람은 재앙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고 재앙 가운데 말씀, 복음으로만 변한다라고 해주셨습니다. 재앙 가운데 삽입된 본문입니다. 1260일 동안 열심히 증거를 했는데 증거를 마칠 때에 짐승이 올라와 전쟁을 일으켜 두 증인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는 생각하길, 교회는 죽었고 마귀가 이겼구나를 생각합니다. 성경은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처럼 복음 전파가 되지 않으면 두 증인은 죽지 않습니다.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완전히 마귀가 절대로 두 증인의 사역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명 끝나고 마침 교회가 부패했기 때문에 가장 악한 세력을 동원하여 교회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증거를 마칠 때 까지는 엘리야와 모세의 능력으로 교회를 보호하십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과 증거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전해 놓은 후에 이제 무저갱의 세력이 지옥에서 올라와 교회를 쓰러트리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전부터 사슬에 묶인 사자처럼 활동을 했습니다. 우리는 으르렁만해도 무섭잖아요? 그런데 잠시 놓일 때가 있었는데, 초림 예수님 못 박히실 적에 잠시 놓였어요. 그 때가 3일입니다. 마지막 최후 재림 예수 때, 잠시 풀릴 때가 있었습니다. 7년 환란이라고도 하는데,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이때가 언젠가.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죽일 때가 언젠가 이때를 계산하면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최후 심판 때 맞아 죽기 위해 사단이 잠깐 놓이지만, 그 짐승인 적그리스도는 지금 우리 시대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개인적 종말로 볼 때 시한부로 우리는 살고 있고,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시대가 또 나의 종말 시대이고 그래서 이때, 계시록 시대는 로마가 핍박(=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하고 있잖아요. 로마가 꼭 죽은 사람처럼 지하 카타콤부에서 활동을 못했으니깐, 로마 사람들을 의식하고 상징해서 썼지만 저는 알아들었습니다.
계시록이 어렵죠? 클릭수가 줄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시록 쪼끔쪼끔만 참아요. 아직 열장 남았어요. 어려운 얘기가 아닌데, 구원 받았으면 어렵지 않은데, 구원받지 못하면 아주 어렵습니다. 도덕적인 책이 아니니깐. 구속사가 아니면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풀리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화를 내지 말어, 죽은 다음에 유익하게 될 테니깐, 목사님 계시록 좋다할 거니깐. 그때 좋아하지 말고 지금 좋아하세요.
증인은 복음을 위해 순교한 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분 증거에는 충성된 증인이 따르는데, 증인을 뜻하는 헬라어 마루투스는 나중에 순교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순교야 말로 최고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창조주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 증거하는 것은 복된 인생이고, 증거 하다가 죽더라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깐, 내가 죽어도 영혼이 죽지 못하는 사람이 있죠? 육신 어딘가에 썩어져도 내가 죽어도 무소부지하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등 뒤에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이라도 버리는데...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옥에서도 구하시기도 하시지만,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어요. 순교가 보기에는 처절한 패배인 것 같지만, 결국 순교보다 훌륭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바울과 제자들의 순교로 온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오늘날에도 온 세상 전파된 큰 역할을 순교로 이루었기 때문에, 그러나 충성된 죄인은 바울과 같이 이 세상에서 바울과 같이 찍기와 같은 존재로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힘든 때,
계시록 2:10말씀처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면류관을 주신다고 합니다. 내가 고난에서 충성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지하 감옥에 갇혔는데 고난의 감옥에서 아무것도 못하겠는데, 무엇을 충성하겠습니까? 죽도록 충성하라면, 니가 열심을 내라고 하는데, 계시록의 충성은 열심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맨날 모든 거에 열심을 내라고 합니다. 그런데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계시록에서는 인내와 연결이 됩니다. 부부간에도 인내가 필요하고, 목자를 해도 인내가 필요하고 결혼생활해도 인내가 필요하고 자녀를 키우는데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은 죽도록 인내하라입니다. 그 당시 황제들의 우상이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도 있었습니다. 버가모교회에는 안디바가 사단의 해가 모인 보좌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충성된 나의 증인이라고 나의 증인이라는 표현을 두 번 쓰시면서 충성된 증인이라고 보여주셨어요. 죽었는데 사단이 역사하여 살아갈 수 없는 곳에서 안디바는 왕따를 당하고 사회에서 격리가 되면서까지 오직 주님을 죽기까지 증거 했기 때문에 그 충성된 증인인 것은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인내로 변치 않는 신실성을 강조했다는 것입니다.
(계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하는 섬에 있었더니
하나님 나라는 환난과 인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성도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충성은 인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저는 남편의 구원이 더디 이루어졌어도 그저 더디 이루어져 제가 예수 믿는 것으로 핍박을 받았잖아요.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 점점 주님의 인내를 알아가면서 저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고 구원에 대해서 포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편가기 일 년 전부터는 제 생명을 거두어 가셔서라도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연합되어 갈수록 구원받지 못한 가족에 대한 그치지 않는 고통이 생기고 그 사명으로 나를 구원해주셨구나! 하니 이 인내하는 일에서 넉넉히 이기게 해주셨음을 믿습니다. 인내를 배워갈수록 사람과 연합이 되고 은혜를 알아가게 되니 정말 넉넉히 하나님 사랑에서 끊을 것이 없어서 넉넉히 이기게 하셨어요.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 곁을 지켰던 맏아들은 동생이 집을 나가서도 관심이 없고 나가서도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쥐염나무 열매로 먹어도 관심이 없고 찾아올 생각도 안하고, 동생이 나중에 먹을 것이 없어서 돌아왔는데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기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내 여태껏 아버지를 섬겼어도 염소새끼 한 마리도 안주더니, 방탕한 동생에게는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잔치를 해주냐며, 가인처럼 화를 냈습니다. 이처럼 이것은 가족의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에게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형제 골육의 구원을 원한다고 해요. 바울의 골육은 안 믿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내 아들 하나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바울은 핍박이 심해다 못해 전 세계를 껴안고 기도를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나요? 적어도 내 식구의 구원을 위해서는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공부하고 나가면 되지. 지금은 잘 살다가 믿으면 되지 뭐~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이라도 내놓고자 했던 바울처럼 급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구원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AMEN)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줄 믿습니다. 최고의 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고백인 것을 믿습니다.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이것이 최고의 고백인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죽기까지 증거 하되, 악한 땅에서 십자가를 지는 증거를 해야 합니다.
(8절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힌 곳이니라)
(창세기 13장 13절)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서 죄인이었더라. 큰 죄인이었더라. 이것을 롯도 아는데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였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기억나십니까? 멸망하기 전에는 여호와 동산 같은 것입니다. 멸망 전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너무 멋있고 돈이 많고 그냥 애굽 땅에서 너무 멋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데리고 떠났을 때였는데 그 때 기근이 와서 애굽으로 피신을 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부인을 팔아 먹을까하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 식겁을 했습니다. 애굽이라는 나라는 가면 안되는구나! 그런데 롯은 자기 고난이 아니니 눈과 마음이 애굽에 다 돌아갔습니다. 너무 내 고향 갈데오 보다 세련된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주었습니다. 집착하기 시작하니 중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어렸을 때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보는가, 그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롯은 소돔을 못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싸워서 택하라고 할 때, 소돔을 택했던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을 따라서 그 화려함 속에서 썩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그를 사랑하셔서 연합군이 쳐들어와 사로잡혀 죽을 뻔 했는데, 그의 삼촌 아브라함이 313명을 가서 그를 돌아주웠습니다. 사라가 과부가 될 뻔 했습니다. 구해주고 재산도 돌려받게 해주었는데, 하나님께서 완전히 도와주었는데 롯은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구해주고 기도해주고 생명을 보존해주었어도 이제 조금 편해지니 여전히 내가 좋은 것은 소돔이었던 것입니다. 쾌락, 여자, 도박의 세계가 나를 불러요. 돈이 다시 생겼어요. 교회를 떠나고 좀 놀다와야겠다고 떠났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쉬운 교회 없냐며 떠나요. 인간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명품교회를 다니려고 갔는데 성경을 너무 몰라 성경을 배우려고 우리들교회에 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이 성경을 배우는 교회로 우리들교회를 지목한 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끼는 바입니다. 이처럼 믿는 수준에서도 또 소돔이 있습니다. 롯도 믿는 자라고 할 수 있는데 믿으면서도 레벨 업 된 세련된 문화가 너무 좋은 것이에요. 끼리끼리 노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기근은 생각도 하기 싫은 것이에요. 아브라함은 고난을 만났으니 잊었는데 롯은 애굽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나서 소돔 백성이 되려고 재산을 모으고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이기고 이겨보리라 하면서 소돔의 시민권을 쟁취했습니다. 나는 시민권을 완전히 산 것이에요. 아브라함이 소돔이 유황불로 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못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안 가야할 곳에 가고 떠나야할 곳에 떠나지 않고 이러더라구요. 왜죠? 소돔이 너무 좋아서. 롯과 그 가정을 보면, 부인은 못 떠나 소금 기둥이 되고 사위들도 다 죽고, 딸들과 겨우 빠져나와 근친상간을 한 것을 보면서 이집이 정말 콩가루 집안 아닙니까? 망할 집안 아니에요? 이것이 왜 그런거죠? 소돔에 또아리를 틀어서, 소돔에 살았기 때문에 그 지경이 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이를 중국이 대세라고 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를 화교학교에 보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까지도. 문제가 있죠. 언어를 배운다고 해서 중국을 합니까? 내가 영어를 못해도 설교를 합니다. 전부다 글로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는 만큼 사람들이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기고 이기려는 것에 망함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통해서 자신을 인식해야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이 가정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끼리 의사소통이 되는 곳이 가정인데, 가정에서 하나가 안 되는 것은 가정에서 가장 최고의 가정은 내가 죄인이라는 것,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정의 주인이라는 것. 이것이 선포되는 가정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자신만 최고래요. 그런데 가정에서 자기 인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우리는 다 죄인이라고 인식하는 가정은 저절로 생겨난 Rule이 있어요. 질서가 있고 남편이 아내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이고 그런 룰이 잘 지켜질 때 사회에 연결을 시키는 것이 가정의 역할입니다. 자기 가족끼리 잘 먹고 잘 살려고 가족으로 묶어준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라고 가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정이 튼튼해야 나라가 사회가 튼튼한데 가족에서부터 유학이나 화교학교에나 보내고 이기고 이기려는 아버지 롯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이런 소돔과 애굽의 가치관을 심어주기 때문에 이제 가족이 예수가 없으니 교회를 나가면서도 이기려고 하니깐, 기도만하면 너는 어디에 붙는데, 당신 어디 사장된대 라는 말만 합니다. 이것이 이기고 이기려는 가치관이잖아요.
우리가 정말 서로 죄인임을 안다면, 서로 부부간에도 역할과 질서가 있는데 이런 것을 하나도 안 지키면서 그냥 예수를 믿어도 무섭게 계시록을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맨날 그 연월일시를 계산하고 증인이 죽는다고 하니 그때가 몇 년 몇월 이라며 그때까지 당신 뭐 안 하면 우리집 망할 것이라 합니다. 이런 사람들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 이단 때문에 계시록 설교를 합니다. 세월이 수상해서 계시록이 판을 칩니다. 계시록은 우리에게 주시는 얘기입니다. 창세기나 누가복음이나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똑같습니다. 특별한 얘기가 없다구요. 다만 마지막 말씀이라 사랑을 절절 부어서 하는 얘기입니다.
이런 소돔과 애굽의 가치관에서 두 증인, 즉 성도는 이제 십자가를 적용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돔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소돔으로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을 부르짖는 것이 얼마나 십자가 적용 지는 것인지 말입니다. 니가 소돔을 좋아하면 구원 받지 못해. 우리 집은 예수 믿지 못하다간 구원 받지 못해. 이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 의인 50명만 있으면 구원해주세요.
하나님 : 알았다.
아브라함 : (5명 덜해서) 아니 45명이요.
하나님 : 알았다.
아브라함 : 아니아니 40명
하나님 : 알았다.
아브라함 : 아니아니 30명
하나님 : 알았다.
쭉쭉 내려오다가
아브라함 : 하나님 정말 미안한데, 10명.
그런데 이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은 망했습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심판을 예비하는 것이고 성경은 창세기~ 계시록까지 심판을 예비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미리 장차 받을 환란을 듣고 있으면 정말 심판이 와도 놀라지 않아요. 그런데 심판의 클라이맥스가 십자가라구요. 그러니깐 이 소돔과 애굽과 같은 곳에서 십자가 지는 것이 축복이라구요. 십자가 없이 부활은 없습니다. 이 십자가지는 것을 들으러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이 땅에 붙고 승진되려고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예고를 들으러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세상은 모두 긍정의 얘기만 하겠지만, 주님은 이 세상은 악하고 음란하대요. 망할 나라라고 하십니다. 소돔과 애굽과 같이 망할 나라라고 하십니다. 그것을 알려주려면 망한다고 입으로 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망할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 말고 나그네처럼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증인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성경의 골자입니다. 자꾸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 안전하다. 평안하다. 내가 못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며 이런 이야기만 자꾸 듣고 있습니다. 나에게 오라 오면 다주겠다. 이것이 진짜 까짜입니다. 진짜 소이 망할 사건이 오면 감당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잘 된다고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오나. 하나님이 계신대 왜 이런 일이 오나.하는 소리만 합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복음 전파로 우리에게 기근이오고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안 올 수 있겠습니까? 믿지도 않는 소돔 땅에서 어떻게 전쟁이 안 오고 기근이 안 오고 사랑이 식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의 불화는 이혼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우뚝 서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하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집안에 우뚝 서기위해서 우리가
(렘1:10)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나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1.뽑고 2. 파괴, 파멸하여 3.넘어뜨리는 일을 행하셔야 건설하고 심게 하신대요. (할렐루야!) 십자가로 먼저 내 자신을 뽑고 파괴한 다음에 저절로 심어지고 건설이 되는 것입니다. 난리와 지진은 나를 건설하고 심기위해 있어야 하는 일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소돔과 같은 이 세상에서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가면서 미움을 받습니다. 세상 가치관에서 골프를 치러 안가도 요즘 무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냥 회사에서도 너는 꼭 승진시켜주겠다고 하여 딱갈이를 따하고 몸종처럼 열심을 했는데 승진에서 누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기다려보라고 해서 또 몸종처럼 일했는데 승진 누락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수예배 까지 빠져가면서 일했는데 승진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밉잖아요. 그때 정말 독이 없는 얼굴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독이 올라오지만 독이 없는 얼굴을 보이는 것이 최고의 증거임을 믿습니다. 이 땅에는 별 인생이 없고 잘 먹고 잘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거룩이 목적인데, 하나님은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독을 뿜지 않는 이 얼굴을 기억하십니다. 아셔요? 부도나고 바람 폈다고 이혼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최고의 증거를 할 좋은 역할을 주셨는데, 내가 그냥 죽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구원의 표정과 신비한 표정을 하면서 독이 없어진 표정을 하면, 그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최고의 증거는 이처럼 기막힌 상황에서 십자가를 딱 져야 천국 복음이 전파가 됩니다. 정말 남편이 돈도 안주고 교회 아니면 집 밖에 못나 가게 해도 제가 인내를 잘해서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독을 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교회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억하시고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제가 죽어도 쥐도 새도 모르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쥐랑 새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세요. 교회가 부흥한 것에 대해서 이것뿐이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의 질서의 우선순위, 집에서 밖에도 못 나가가게 하는 남편에게 순종했는데, 성경도 보고 헌금도 하고 십일조도 다하고 할 것 다했습니다. 지혜롭게 인봉해가며 갈대로 척량해서 아이고 어렵다~ 이 어려운 것 조금만 참읍시다. 제가 정해드립니다. 10장이면 끝납니다. 열장만 기다리세요. 여러분의 고난이 꼭 계시록이 끝나듯이 기다리면 되겠습니다. 계시록은 끝날 때가 옵니다. 제가 정해드립니다. 대신에 우리가 참자구요. 이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러니깐 제가 아무리 얘기를 잘해도 최고의 증거를 하고 있어도
세 번째, 땅에 거하는 자들의 조롱을 받습니다.
(9절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십일 장이 참 해석이 난해하다고합니다. 그런데 저는 당한 것이 많아서 어렵지 않습니다. 여기도 또 내 얘기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렐루야! 그니깐 봐요. 제가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고 증거를 하는데도 백성, 족속, 방언, 나라 중에 이 많은 사람들이 조롱한다고 하잖아요. 그리스도인의 증인이 가는 길은 대접받고 환영받는 일이 아니고 쉬운 일이 아니고 증거를 마치고 장사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주십니다.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그 시체를 보고 즐거워하고 서로 예물을 보내면서 즐거워한다고 하잖아요. 내가 열심히 전하다가 죽으면 안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잖아요.
(왕상 18:16)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여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고 갔습니다. 한 마디로 엘리야가 아합 앞에 나타났는데 아합은 대뜸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라고 엘리야를 불렀습니다. 삼년 반 동안 기근이 전부 엘리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늘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니깐 고난만 오면 내가 괜히 와서 고난 받았나 이게 다 김양재 목사님 때문이야. 이혼 하지 말라고 했더니 내가 김양재 목사님 말 만 믿고 이혼을 안했더니 이 고생이야. 어떤 사람은 그때 이혼했더라면 내가 위자료라도 받았을 텐데. 끊임없이 무슨 일만 나면 김양재 목사 때문이라고 부르는 저는 그런 김양재입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엘리야를 보고 딱 부르는 것이에요. 우리는 누구의 탓을 돌리면 덜 억울할 것 같은 마음이 늘 있습니다. 남자들도 사업이 안 되면 부인한테 너가 우리들교회 가자고 했어서 사업이 이 모양이잖아라며 억울한 것을 탓을 돌립니다.
(왕상 18:18)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은 세상을 좋아해서 세상과 번영을 좇았기 때문에 너와 너 자신을 괴롭힌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내 문제는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알아야합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사단을 좇은 자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두 증인을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이 너무 괴로운 것이에요. 회개할 수 없는 자들에게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도 죄를 지적하는 교회는 싫어합니다. 된다, 된다, 잘된다고 해야 되겠는데 편협함 때문이 아니라 아합과 엘리야가 싸울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세상에서 거부당할 수 없는 성도의 존재는 세상에 유익을 끼치지 못합니다. 세상이 나를 너무 좋아해 거부를 하나도 안 당해봤어 하는 사람은 집에도 사회도 쓸모없는 존재입니다. 진짜가 아닌 사람이 누구를 고치겠습니다. 내가 욕을 먹어도 약간 진짜니 고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욕을 먹어도 진짜여야 내 옆 사람이 변화되어 가겠는데 맨날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맨날 그렇게 사니 살았으나 죽은 자인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로 사명을 받은 자라면 그냥 세상 사람이 싫어하는 회개의 말씀을 증거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증거 때문에 죽음을 당해도 사흘 반이라고 하잖아요. 올바른 십자가에 서있다면 쓰러지기를 학수고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빛 옆에 있으면 죄가 자꾸 드러나잖아요. 너무나도 싫은 것입니다. 축복을 얘기하면 교회가 드글드글하고 고난을 얘기하면 교회가 반으로 줄었다가 죄를 얘기하면 교회가 씨가 마른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나는 오직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만 보이리라. 미가서에 그 얘기가 있는데. 나도 이렇게 얘기하다보니깐 조롱 받을 일이 많았습니다. 나 자신도 빛 가운데 거하게 되면 내 죄가 자꾸 드러나니깐 내가 내 죄 때문에 애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면 더러운 것이 자꾸 보입니다. 내가 완전해서 선포한 것이 아니라. 선포한 데로 살아야 되기 때문에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고 선포할 때마다 갈등 충만한 삶을 살지만, 하나님 100프로 옳으시기에 가장 악한 세상, 권력 아래 나를 두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훈련시킬 만한 세력 밑에 두어서 악한 세력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직 세상이 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내 한 사람이 아직 말씀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내 집안이 아직 안 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셨어요? 나 한 사람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나라도 안 망하고 집도 안 망하고 아직도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시키고자 기다리는 역할을 나에게 주신 줄 믿습니다. 이혼하라고 이럴려고 하나님 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지고 가면서 미움을 받아도 독을 안 뿜는 최고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마구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버리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번데기를 딱 잘라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그 목사님은 이혼을 막냐, 이혼한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일원론이기 때문에 이혼한 사람일수록 여기에 더 와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이혼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얘기입니다. 지금 못 들었으니 이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지금부터라도 이혼하지 않도록 전하면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 있으면 건강한 사회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최고의 증거는 죽기까지, 악한 이 땅에서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면서 인제 세상에서 조롱을 받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네 번째, 반드시 부활이 있습니다.
(11절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생기가 사흘 반 만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루화르, 성령과 생기가 들어가면, 정말 완전히 조롱 받고 있는데 생기가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자기 발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자기 발로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증인이고 최고의 증거임을 믿습니다. 최고의 증거는 상대방이 자기 발로 일어나게 해주는 것. 자기 발로 자립 신앙을 가지게 해주는 것. 이것이 정말로 어려와도 참 교회라면 3일 반 만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3일 반이라고 하였을까? 사흘 반 삼년 반, 한 때 두 때 반 때, 42달, 1260일 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교회시대를 가리키는 것이고 좁혀서 보면 우리 각자 일생을 가리킵니다. (시간 연구는 이단입니다.) 로마가 못 알아듣도록 한 것입니다. 다 다르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른 표현이지만, 성도가 고난을 받는 시간을 표현할 때는 가장 짧게 느껴지는 사흘 반을 쓰신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1260일인데 우리가 베옷을 입고 왕 같은 제사장과 같은 권세를 입고 예언 할 때는 권세는 많아서 1260일인 것입니다. 로마사람은 못 알아듣습니다. 고난 받은 우리는 알아먹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어떻게 이렇게 고난을 잘 설명해주실 수 있는가! 우리를 정말 위로하십니다. 고난은 정말 짧단다. 수치는 짧고 영광은 길어.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사흘반과 1260일이야. 짧은 고생을 하면 영원한 영생이 기다리고 있어. (수치는) 사흘 반이고 영광은 1260일인 것이야. 그러니깐 결국은 이 땅에서 부활이 반드시 있습니다.
어제 신문사 칼럼에 상처를 별로 만드는 교회 이런 제목이 있어서 가서 들어가 봤는데 우리들 교회 얘기를 합디다. 정신질환 앓는 국민이 십년 새 70프로 이상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일 년 사이에 130만 명이 우울증을 앓고 245만 명이 불안 장애를 경험하게 되는데 내년부터 건강검진에 정신 검진도 다 넣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마음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상처의 형태와 깊이만 다를 뿐인데 누군가는 악한 세상이니 세상은 상처주기 전쟁터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내적 상처는 단순이 개인의 불행에만 그치지 않고 방치하면 사회 전체가 시한폭탄을 안게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이미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병증들을 목도하고 있는데 요즘 성행하는 다양한 내적 치유법들이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담, 미술, 영화, 독서, 음식, 패션, 향기, 음식 치유 등의 수많은 치유법에 텔레비젼에서는 힐링캠프까지 그래서 상담 치유 목회은 교회 성장에 핵심 포인트가 되었는데 그렇지만 한계가 분명하다고 그랬습니다. 치유들은 궁극적으로 영혼과 마음, 육신을 아울러야 되는 것인데 의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관점 뿐만 아니라 신학적 관점까지 포괄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말씀을 전하고 코인론이 하는 것만으로는 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내적 상처를 입은 사람을 도울 없다는 것입니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와 아픔에서 쓴 뿌리를 해결하지 못한 성도들은 신앙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적 치유에 보다 큰 관심을 키울 필요가 있는데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가 다루지 못하는 영적 부분을 성경적 방식으로만 터치가 가능하다. 이렇게 상처는 잘 치유하고 잘 반응하면 상처 때문에 아름다운 생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상처가 별이 되는 경우다. scars into stars이보다 더 아름다운 반전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만이 이러한 반전이 가능한 성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처 있고 깨어진 영혼들이 들어오면 반드시 회복될 수 있다는 확신을 세상에 줘야 이 문제가 해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라고 하였는데 그러니깐 숨기면서 내적 치유를 받아 봐도 상처가 별이 되어야 되겠는데, 교회에서 진짜 이 상처가 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들 교회)는 상처를 별로 여기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우리들 교회에서 맥을 못 추립니다. 늘 간증함으로 건강해지고 나를 돕고 가정을 돕고 교회를 돕고 사회를 돕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최고의 증거는 상처가 별이 되어 증거 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삼일절 손양호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진짜 이분은 문자적으로 순교하셨습니다. 두 아들이 좌익청년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지금과도 비슷합니다. 좌익이라고 하면, 완전히 죽여도 누가 무엇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이 친구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버지가 믿으니깐, 그때는 믿으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죽인 친구였던 안재선이 붙잡혔는데 손양호 목사님이 그를 양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신학까지 시키고. 그런데 목사님도 공산주의 총탄으로 순교를 하셨습니다. 손양호 목사님은 예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을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면 효과 있다고 하여서 입으로 빨아냈습니다. 조직도 열세고 연약한 남한의 힘으로는 도저히 공산주의를 막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를 막아낸 것은 최고의 증거인 순교로 사랑의 원자탄으로 계속 죽임당하면서, 아들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죽였던 아이를 양자로 받아들임으로,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성자로 추앙을 받아야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죽기까지 최고의 사랑을 증거한 그 사랑으로 우리에게 복음화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죽는다는 것은 이것입니다. 최고의 증거로 해서 우리나라를 공산주의에서 건진 분이 손양호 목사님이십니다. 우리나라는 그 때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그 사랑으로 지켜주셨다고 믿습니다.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돼요. 손양호 목사님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순교란 무엇인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에 올라온 글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남편이 바람이 나서 가출을 했는데, 세상에 이 남편은 전처에서 나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바람이 났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은 부인에게 바람의 대상인 첩의 식당에 가서 그 일을 도와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첩을 무엇이라 표현했냐면, 그분이 하는 일을 도와주라고 했답니다. 돌아버릴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마다 너무 죽고 싶고 혈기가 납니다. 너무 조롱받고 수치스럽고 입을 깨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 양육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집사님 피 터지는 갈등 끝에 십자가 지는 순종으로 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갔습니다. 도와주러 가셨습니다. 도리어 당황한 것이 첩님이었습니다. 도움을 거절했습니다. 도리어 이 일이 전환점이 되어 어떻게 저런 부인를 두고 당신은 나와 바람을 필 수 있냐며, (첩님이) 남편을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왔고 예수씨가 발아해서 지금은 목장에서 은혜 끼치는 집사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의 먹이로 던져질 수 있는 씨앗 하나를 이렇게 눈물로 돌보면 생명이 싹트고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싹트게 하는 생명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정말 적용 못해 이럴 때 이 식당을 찾아간 집사님의 적용을 떠올리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칼럼을 썼습니다. 남자 집사님, 여자집사님도 마찬가지겠지만, 남편 속에 있는 이 생명의 씨앗을 싹틔우려고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찍어보면 속에 혈기하고 식충이만 들어있는 것 아시지요? 그런데 진짜 별 볼일 없는 씨 하나인데 그 깊은 곳에 심겨진 예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하면 싹트려면 이렇게 죽는 적용을 해야 합니다. 적용이 딴 것이 아니고 때마다 일어나는 혈기를 하나님 앞에서 인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교아닙니까? 말세의 순교는 혈기를 안 부리는 것입니다. 어렵게 생각하시지 말고 사소하게 이렇게 순교하시는, 온 집안 목장에서 최고의 증거를 해서 날마다 이곳에 와서 세계를 살리고 최고의 증거를 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최고의 증거는 1)죽기까지 증거 하는 순교라고 합니다.2)악한 이 세상에서 십자가 지는 증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3)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이 최고의 증거라고 합니다. 내가 그러면 무소부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4) 죽으면 사흘 반 만에 반드시 부활 하시는 것을 믿으십시다. 내가 독을 뿜지 않는 얼굴로 최고의 증거 하기를 바라요. 상처를 별로 만드는 교회가 되어서 최고의 증거 하시길 바랍니다. 삼일절이 되어서 어떻게 우리나라 독립을 맞이했는지 생각해보고 정말 내 힘으로 우리나라 같이 형편없는 나라가 손양호 목사님과 같이 최고의 증거로 공산화 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기억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두 손 들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공산화가 될 수밖에 없던, 아무것도 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손양호 목사님의 사랑의 원자탄입니다. 자식을 죽음으로 내려놓고 공산주의를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자식을 죽인 공산주의 청년을 아들로 삼았습니다. 나병 환자들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잖아요.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 최고의 증거를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왜 날마다 싸우는 것입니까? 정말 씨를 열어보면 별 볼일이 없습니다. 정말 혈기와 식충 밖에 안 되는. 그런 한 사람이 있어서 우리나라를 살렸는데, 나 한 사람이 우리 집안이 살고 정말로 가정, 목장을 살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 후 찬양,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기도제목죽기까지 최고의 사랑을 증거한 사랑으로 이제 우리도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서 정말 하나님 우리 집에서 순교하게 도와주시고 목장에서도 순교하게 도와주시고 최고의 증거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써주시옵소서. 조롱을 받고 이 땅에서 무시를 받는다고 해도, 반드시 사흘 반 만에 다시 일어날 것을 믿으며, 그 하나님을 등에 업고 순종하길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기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나라에서 손양호 목사님의 그 한분의 공산주의를 향한 최고의 증거는 사랑하는 것이라 보여주셨습니다. 참으로 나병환자들의 고름을 빨아내시며 그를 양자삼고 본인까지 총탄에 순교하셨습니다. 최고의 증거를 해주심으로 우리나라가 사셨습니다. 우리가 살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는 손양호 목사님까지 가지 않아도 말씀은 들어도 위대한 얘기는 위대한 분에게 맡겨놓고 우리는 너무나도 살기 어렵고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최고의 증거는 이제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는 것인데, 주님은 왜 날마다 우리는 이럴 수가 있는가. 어떻게 내가 증거했는데 나를 죽일 수 있는가. 나를 무시할 수 있는가. 조롱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누리는 것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롯처럼 어떤 말도 듣지 않습니다. 그 집이 무너져서 이제 망할 직전에는 말씀이 안 들립니다. 주님 가정에서 제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모실 때에 가장이 튼튼해질 텐데 주님 날마다 이렇게 이기고 이기려는 어머니 아버지가 만나셔서 그 가치관을 자녀들에게 주기 때문에 우리 가정밖에 모르기 때문에 롯 가정처럼 망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안 가고 예수도 우리 자녀만 믿었으면 좋겠다는 이타적인 삶이 너무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애통합니다. 손양호 목사님 사랑이 너무나 멀리 보이는 것 같아 애통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말세의 순교는 오늘 사소한 곳에서 혈기를 안 부리는 것이라고 주님을 말씀하여 주시오니, 주님 내가 화를 낼 수밖에 없고 독을 내 뿜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독을 뿜지 않는 얼굴로 최고의 증거로 하는 부부간이 되고, 가정, 목장, 직장이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최고의 증거로써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조롱을 무시를 잘 받기 원합니다. 반드시 사흘 반 만에 부활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은 결코 실패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승리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경배하기 원합니다. 최고의 증거를 하는 사랑이 되길 원합니다. 썩어지고 죽어지고 밀알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나이다.
AMEN
**말씀 적용
1. 최고의 사랑으로 순교(/인내)해야 할 곳은?
2. 현재 조롱받고 무시 받는 곳은 어디인지?
저에게 최고의 사랑으로 순교 할 곳은 집입니다. 현재 조롱받고 있는 곳은, 제가 있는 대학원입니다. 교회에 와서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나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 저보다 믿음이 신실한 배필을 만나 집에서 복음을 전하기로 하고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미루었습니다. 사실 롯과 같이 부모님을 떠나 살았던 곳(대학교-대학원)과 시간(8년)이 제게는 소돔에서의 생활과 같았습니다. 누가 보면 무슨 공부만 하는 대학교 대학원이 좋은 환경이냐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그저 일만 하시는 부모님이 무시가 되었기에 뚜렷한 목적없이집을 떠나 나 혼자 잘살아 보겠다고 집을 나왔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전혀 계보에도 예수씨를 찾아보기 힘든 저희 가정에게 복음을 주시려고 가족을 떠나 방황하는 저를 끊임없이 인도하시고 훈련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탕자처럼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지금처럼 교회에 잘 나가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저에게서 혈기를 보았기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동생의 혈기, 그것을 다 받아주시고 계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답답하여 자라나기 시작한 혈기로 더이상 가족과함께 살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아버지는 전과 달리 왜 주말인데 오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의 존재만으로도 족하신 것 같습니다. 많이 연약해지신 아버지를 느낍니다.이번 수련회에서 하나님과의 오해가 풀리면서 가족에 대한 오해도 저의 죄를 보고 또 그들의 상처를 보았기 때문에 이해가 되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수련회 끝나고 판교 갔다가 남양주 집 가는 적용도 했습니다.
대학원에 와서도 관계의 고난을 겪고 마찬가지로 내게 미운 사람들을 회피하였습니다. 대학원에서 겪은 사건들이 제게는 정말 충격과도 같은 사건이었기에 헤어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공동체를 만나 하나님과의 관계도 직면하게 해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되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이제는 해석이 되어서 정말이지 전과 달리 그들에 대한 미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립신앙의 힘이 저에게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저를 지켜봐주시는 분들이 처음과 달리 생기가 있다고 얼굴이 달라졌다고 말해줍니다. 양육과 훈련을 받고 그 변화를 옆에서 증거 해주는 공동체가 있어 더욱 힘이 나기도 합니다. 현재 조롱받고 무시 받는 곳이지만, 또 사건으로 인해 제게 가장 힘든 곳이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조롱과 무시가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이 나에게 생기니 최고의 사랑으로 인내할 곳으로 저희 집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롱받고 무시 받는 곳에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과 인내를 배워감에 감사합니다. 돕는 배필이 정말 되고 싶은데 먼저 가족에 대한 구원 사명을 잘 감당하면 주시지 않을까? 인내하고 순종하며 기다리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목장 기도제목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도 교회를 떠나지 않고 붙어있는 위한나 목장 사랑합니다. 오는 주일에도 여전한 방식으로 풍성한 나눔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