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모임>20171105
본문: 계 6:7~17
제목: 어린 양의 진노
어린 양은 온유한 분이고 죽임 당하신 양으로 이 땅에서 자기의 능력을 쓰지 않으신다. 그런데 그 어린양이 오늘 진노하셨다고 한다.
어린 양이 어떻게 진노하셨는가 본문으로 살펴보겠다.
1. 음부의 죽음으로 진노하셨다. 7~8절, 지난번에 세 번째 인까지 이기고 또 이기려는 흰말, 화평을 제하는 붉은 말, 검은말의 기근이 나왔다.
네 번째 인이 떼어질 때 독수리 같은 생물이 오라 하니까 청황색 말을 탄자가 사망의 이름으로 나와서 핏기 없는 창백한 색으로 질병과 시체와 죽음의 색으로 등장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면 화평이 제해지고 이로 인한 기근은 다 사망의 초청을 받고 싶다. 청황색 말이 초청할 때 다 가고 싶다. 한 마디로 죽고 싶다.
사망이라는 이름은 음부가 뒤따른다고 했다. 죽음같고 지옥같은 고통이 따라온다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사이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고 있는 현실이 있다면 반드시 죽음도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길은 어린 양께 나오는 길인데 이게 들리지가 않으니까 아무 준비없이 있다가
전쟁 통에 죽고 흉년에 걸려서 죽고 문자적으로 사망으로 죽고 땅의 짐승으로 전염병에 걸려서 죽을 이유는 도처에 깔려있다.
육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외로움으로 인해서 청황색 말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싶다. 더 이상 구원의 기회가 없는 심판의 죽음으로 다들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고 싶다는 것이다.
이 땅은 거대한 공동묘지라 수많은 사람을 삼키고도 아직도 입을 쩍 벌리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면 끔직해서 안 갈텐데 여러분들은 그것이 안 보인다고 음부의 권세를 평가절하하고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진노하시는가 하면 이 땅에서 음부의 모습을 겪어보라고 음부의 모습을 겪어보는 것은 축복중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지옥의 모습은 내가 이기고 또 이기려가 화평이 제해져서 기근을 겪으면 그게 딱 지옥이다. 이것을 겪어보면 영원토록 겪으면 큰일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잠시가 아니고 영원히 겪어야할 그곳에 내가 스스로 가는 것이 어린 양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고 심판을 이겨야 하는데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고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진정한 자존감은 무엇인가?
자존감은 정말 내가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어주신 구원해주신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존감이 회복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죽고 구속하신 주님이 내 속에 사니까 나는 함부로 살 수 없는 인생이 됐다는 것이다. 나의 신분을 깨닫게 되니까 어떻게 죽을수가 있겠는가?
이기고 이기려고 하니까 다 죽고 싶지만 어린 양께만 모든 존귀와 능력과 영광이 있기 때문에 나는 간 곳이 없어지는 것이 그게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구원의 기본적인 근거는 우리의 행위와 의가 아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자기의 행위로 이기려고 하니까 자기 수준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 있어가지고
윤리적 도덕적도 마찬가지인데 자기 윤리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화평이 제해져서 기근을 겪다가 다 죽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높은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어도 사망이 초청하면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내 행위로 내가 잘났기 때문에 이 세상에 뿌리를 굳게 박고 있기 때문에 겔 8:3, 주님이 머리를 올리시려고 하실 때에 딱 따라가야지 천지를 보여주시고
성전의 더러운 것들을 다 보여주실텐데 , 하나님이 붙잡고 올라가실 때에 자존감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죄인이고 내가 너무 더럽다는 것,
하나님이 에스겔을 끌고 올라가서 보여주신 것이 얼마나 성전에 곤충과 짐승과 더러운 것이 많은가를 보여주셨는데,
나를 머리털 한 오라기를 끌고 가는데 그게 너무나 따라 올라갈 준비가 되어있으니 머리털 한 올에 따라 올라간다. 그랬더니 내 죄가 보이고 내가 성전인데
내 죄가 가득한 것이 보이는 것이 자존감이다.
그런데 내 행위로 내가 잘나서 이 세상에 너무 뿌리를 굳게 박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자존심을 세우며 안 따라가니까 머리털이 다 뽑히는 것이다.
주님 위해서 살아야 자존감이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 사는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욕심이 잉태한즉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인생은 죄인이고 악하고 음란한데 수치를 겪으며 죗값을 치루고 자존감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된다. 내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거기에 조금만 못 미치면 죽고 싶은 것이다. 내 행복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칭찬과 비판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다.
악하고 음란한 인간의 한마디에 울고 웃고가 되는 것은 자존감이 0점인 것이다.
목사님 이야기) 남편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내가 어머니하고 구출이 됐다. 어머니의 기도로 자존감이 빨리 회복되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도 어린 양, 예수님을 만나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 환경아 바뀌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2. 영생의 죽음으로 어린 양의 진노를 표출하신다.
9~11절,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재앙과 심판의 책이 아니고 주님의 우리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위로가 듬뿍 담겨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계시록을 읽어야만 한다.
이런 재앙이 오는데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는 본문 말씀에서 순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계속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박해와 죽임의 상황을 당해야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재앙을 당하는데 믿는 사람도 이렇게 죽어야하기에 재앙에 넣은 것이다. 믿는 사람들도 이 재앙의 시대에 영적인 전투를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은 재앙이 안 와서가 아니라 고난을 겪으면서 고난 속에서 패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불 속에 안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고
불 속에 들어가서 임마누엘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이것으로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이다. 똑같은 죽음이지만 음부의 죽음이 있고 영생의 죽음이 있다.
똑같은 사건을 만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은 천국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8절까지가 고통의 세상이라면 9절은 고난의 세상이다. C.S Lewis는 순교라는 것은 기독교 정신의 최고의 정신이고 덕이지만 순교자만 구원받는가?
우리가 보기에 평탄한 인생을 산 사람도 은혜로 살았다고 하는 것을 나는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것이 평범한 자기 부정가운데 정말 구원받는 사람도 있고 끔찍한 순교 속에서 구원받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역할을 어떤 사람에게 주는가 모르겠다. 모든 사람들은 경건하고 겸손한 신앙인이 왜 고난을 겪는가가 아니라
왜 어떤 사람은 고난을 겪지 않느냐에 궁금해 한다고 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날마다 불평한다는 것이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다.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라고 하는데 왜 떨어지면 감사하라고 하는가?
떨어지면 사모하게 돼서 하나님을 부르게 되니까 네가 믿음의 분량이 되니까 떨어져서 감사하라는 것이고 붙으면 오죽이나 감당 못했으면 붙었겠냐
믿음이 오죽이나 없어서 붙었겠냐고 회개하라고 하는 것이다 . 순교의 삶도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다리면서 로마에게 보복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 드라마, 세종이 자기 아들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호시탐탐 세종을 죽이려고 하는 똘복에게
아비의 유서가 발견되었다 . 자기 주인인 심혼 대감을 구하려고 편지를 가져갔다가 편지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내 원수를 갚아달라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글자를 몰라 이런 일이 일어났다, 너는 글자를 배워 주인을 잘 섬기라고 써있었다.
육의 부활을 의미하는 흰 두루마기를 주신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하나님의 어린 양은 이 세상을 더 구원하시려고 기다리신다.
그렇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기다리는 것이 안식이다. 때가 차기까지 어린 양은 심판을 연기하고 계신다.
3. 우주적 죽음을 내리신다. 12~17절,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우주적 재앙앞에 직면했다.
누가 능히 서리요, 누가 이 재앙에서 서리요, 별들이 충돌하지 않는 것은 주님이 그들을 끈으로 묶어놓으셨기 때문이고 이것이 중력이다.
지진으로 산도 움직이고 섬도 움직인다. 우리가 여기서 말을 딛고 살아가는 곳이 얼마나 불안한 곳인지 모른다. 여섯 번째 인의 재앙에 대하는 인간들의 반응이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임금, 왕족, 부자들이 돌과 산 바위틈에 숨어있다. 오바댜, 에돔의 수도 페트라, 천연의 요새라 중심에 교만이 있다.
나도 속고 남도 속는 교만, 오래된 포도주는 너무 맑다. 자기도 자기가 맑은 사람인줄 안다. 와서 조금만 흔들면 찌꺼기가 올라온다.
바위틈에 거하는 최고의 교만은 공부 잘하는 아들 가진 사람이다. 에돔처럼 천연 요새에 거하는데 완전히 우주적인 재앙이 오기전엔 안 된다.
목사님 이야기)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공산주의가 내려와서 땅이 다 압수되었다. 얼마나 공부를 시켰는지 학벌이 대단했다.
땅많고 돈많고 가문이 내려오고 중심에 교만이 가득했을까? 오바댜, 4절, 하나님이 끌어 내리셨다. 5절, 진짜 남편과의 결혼이 우주적인 재앙이었다.
여러분들의 삶은 조상의 결론이다. 어린 양의 진노로써 내가 심판을 구원으로 바꿔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하나님앞에서 간절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본심은 무엇일까?
4. 하나님의 본심은 아직도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끝이다 하고 여기 왔는데 아직도 3/4이 남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세상이 회개를 하기 원하신다.
지금이라도 어린 양과 하나된 우리를 통해 세상 앞에 어린 양의 진노를 나타내야 한다. 어린 양의 진노를 나타내려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 적용을 길로 놔야 하는데 어린 양의 우주적 재앙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전해야 한다. 나중에 된 다음에 전하겠다고 하면 그런 사람 안 쓰신다.
내 아이 끼고 돌다가 인생 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경에는 진짜 과부가 많다. 여제사장 드보라의 남편 이름은 번개라는 뜻이다.
어린 양의 진노에서 내가 왜 이 진노를 주셨는지 살펴보고 조상의 선행은 남들에게 돌리고 죄는 내가 받겠다고 해야 한다.
나를 정금같이 만드는 것이 어린 양의 본심이다. 여러분들 재앙 당하는 것 누가 기뻐하겠는가? 버가모 교회는 너무나 화려한 교회지만 욕심만 채우는 교회다.
누가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되겠는가? 죽으면 죽으리라, 땅에서 죽고 천국에서 사는 복을 누리게 될 줄 믿는다.
하늘의 복을 바라면 세상의 복도 따라오게 되어 있다.
목장모임)
목사님께서 다른 사람의 칭찬과 비판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고 악하고 음란한 인간의 한마디에 울고 웃고가 되는 것은
자존감이 0점인 것이라고 하실 때, 전 다른 사람의 칭찬과 비판에 목을 매고 거기서 자존감의 근거를 찾아왔다고 느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무너진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 또한 가져봅니다.
자존감은 정말 내가 할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어주신 구원해주신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존감이 회복된 사람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큐티하며 나의 죄인된 모습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
목장 식구들 모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고 주일에 만나요, 샬롬!!^^**
기도제목)
영준: 1. 어머니 아버지께서 서로 사랑으로 함께 배려하고 행복한 사이가 되시길
2. 내가 앞으로 남자에서 남편으로써 자격을 갖출 수 있기를
3. 우리 청년부 모두 남자에서 남편으로써 아내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기영: 1. 교회 예배 시간 잘 지키기
2. 신앙이 회복되기를
태헌: 1. 교만하지 말 것
2. 어떤 일이든지 기도로 준비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게
3.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을 지켜갈 수 있도록
동현: 1. 큐티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2. 가정과 직장에서 맡겨진 내 역할에 충성할 수 있도록
3. 삯꾼을 쫓지말고 예수님을 쫓도록
준선: 1. 매일 기도하고 버틸 수 있도록
2. 가족의 건강
3.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해석하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4. 직업훈련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성관: 1. 큐티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길
2. 내게 주신 선물을 선물로 깨닫고 인정할 수 있길
3. 내게 주신 은사를 때와 장소에 맞게 사용하는 분별 있길
4. 가족의 진정한 구원과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위해
5. 목장 식구들의 기도 응답
준현: 1. 목사님 상한 부분 회복시켜 주시길
2. 신교제에서 인내로 신결혼의 거룩까지
3. 고난이 멈추지 않아 편안한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길
4. 목장에서 부목자 직분 잘 감당토록, 성관취업
5. 양육교사 꼭 수료할 수 있도록 : 치유와 회복의 나눔과 교제로 채워지길
6. 대학원 수업, 중간고사, 영어회화 학생의 위치 잘 감당하도록
7. 특강 때 학생들 위로하며, 복음 지혜롭게 잘 전할 수 있도록
8. 퇴사가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 찬양하며 공동체에 잘 나누어 위로와 구원의 사건이 되도록
9. 교만치 않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 수 있도록
10. 분주한 시간 중에 주님 뜻 물으며 하루, 하루 기도를 쌓아 새노래 부르는 삶이 되도록
영훈: 1. 하나님 처음 사랑했던 사랑 회복할 수 있게
2.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게(내 죄보면서 편안한 사람이 되고 잘 망가질 수 있도록)
3.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 좀 찾을 수 있게
4. 믿지 않는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5. 친밀감 공감이 어려운데 목장에서 회사에서 부서에서 잘 훈련받을 수 있도록
6. 유치부 교사직분 잘 감당할 수 있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할 수 있게
7.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먼저 연락할 수 있게
8. 상대방이 편해서 마치 다 받아줄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길 상대방을 배려해 가면서 말할 때 한번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되길
9. 표현을 잘 할 수 있도록
호진: 1. 한 주 한번이라도 큐티하는 남자 되도록
2. 학업, 수련 등에 최선을 다하고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3. 아버지의 건강과 구원, 어머니의 건강, 형의 건강과 구원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