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8 주일설교]
설교 : 타코마 제일침례교회 최성은 목사
제목 : 내 인생의 최악의 강풍을 만났을 때
본문 : 사도행전 27장 9절 ~ 26절
사도 바울은 예수님 이후 가장 뛰어난 복음 사역자이며 열 세번째 사도라고 불리었습니다.
사도행전의 후반부는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해 나와 있습니다. 교회를 그렇게 핍박하던 사람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에게도 이제까지와 다른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스페인으로 복음을 전파하려다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의해 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10여년 정도를 살게 됩니다.
대중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신나는 목회사역이 아닌 죄수의 신분으로 제한된 여건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배로 이송 중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에는 276명이 승선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배는 맞바람을 맞아 미항이라는 곳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10절에 죄수의 신분이며 항해의 분야에 전문가도 아닌 바울은 위험한 항해가 될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백부장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항해를 합니다.
누구도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에는 무시를 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당시 풍랑과 험한 날씨로 밤에 별조차 볼 수 없었기에 항해를 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릅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찾아옵니다. 이 때의 고난은 평생 항해를 하는 사람조차 살 소망이 없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때 바울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나는 잘하고 있는데 불순종하는 가족들, 친구들, 주위 사람들 때문에 내가 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하나님이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풍랑속에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를 알아보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비젼을 주셨는데 고난을 통해 알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사명을 다시 확인하고 붙들라고 하십니다.
붙들긴 붙들어야 하는데 사명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모든 것에 불만을 표현할 요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고집 쎄고 불순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2절 말씀을 보면 요나처럼 불평을 쏟아 붙이기 보다는 너희는 안심하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23절, 24절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전합니다. 고난의 순간에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기도 가운데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위기 속에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풍랑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바울에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명이 먼저인가 생명이 먼저인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한 국가도 국가조례에 국민은 사명을 띄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들은 당연히 사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상황도 변하지 않고 고난이 계속인 가운데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고난으로 죽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에 고난이 오면 다시 한번 자신의 인생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평상시는 잘 모르지만 인생에 최악의 상황을 만나면 정체성을 의심합니다. 내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는지 깊이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풍랑이 없으면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사람은 인생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면서 하나님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인생의 배는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빠지게 됩니다. 그것이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은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능력으로 환경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파도는 잠잠할 때도 의지해야 합니다. 누가 나를 부르시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일을 주시고 우리가 순종할 때 누가 주셨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대단한 선지자로 보았기에 던질 수 있는 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고난이 닥쳤을 때 이건만은 간섭하지 말고 터치하지 말라고 하나님께 외칩니다. 그것은 내가 필요할 때만 꺼내 보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광풍을 만나면 우리는 사명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2. 주변을 돌아 보며 사역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사역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삶에서 갑작스런 풍랑을 만났을 때 주변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난이 올 때 믿음 있는 사람은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지금 죄인의 신분이지만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중에 죄인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25절에 그런 고백이 있음에도 풍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안심하라고 하였지만 풍랑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풍랑이 금방 끝이 나지도 않고 10일 뒤 겨우 뭍에 닿았습니다. 선원들은 도망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33절, 34절에 바울은 사람들을 권면하고 위로를 하면서 리더가 되어 갔습니다. 이 상황에서 사도 바울의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 목사님의 아들이 땅콩 알러지로 죽을 뻔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상황에 설교를 해야 했다고 합니다. 첫째를 유산하였고, 둘째도 유산 할 뻔 한 아이였기에 애처러웠다고 합니다. 아이는 푸드 알러지와 아토피로 항상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다고 합니다. 아내도 나병과 같은 피부병을 앓았었다고 합니다. 이런 고통이 있기에 주위에 비슷한 고통이 있는 사람을 보면 누가 가라고 하지 않아도 가게 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아픔이 내 아픔으로 생각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난을 통해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으로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것이 직영이 넓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고 합니다.
3.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을 축복하라고 하십니다.
바다에서 광풍 속에 계속 있을 때 영적 선장은 사도 바울 이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이런 날은 옵니다. 광풍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워 합니다. 무언가를 붙들고 싶지만 붙드는 것을 너무 두려워 합니다.
풍랑 속에서 리더가 되는 사람은 오직 말씀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으로 치유되는 사람은 하나님 사람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누가 희망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며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만 이야기 할 것이 아니고 밖에서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곳에 있는 선원들에게 생명을 붙여 준 것에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떤 기적보다 멋진 기적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고난의 상황에서도 감사를 하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6절을 보면 그 상황에서도 감사를 하고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상처가 있는데 어떤 이정표를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지를 다른 이들은 주시를 합니다. 우리가 이 때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죽을 것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통해 바울은 풍랑을 만났을 때 없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닌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는 알아야 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십니까? 항상 선하십니까? 어떤 일 가운데도 선하십니까? 항상 옳으십니까? 말씀이 있으면서 무엇이 걱정이 되십니까? 왜 외로워 하십니까?
내 삶에 갑작스럽게 닥치는 최악의 광풍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내게 중요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던져질 만한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그것조차도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메시아의 도래를 보면 어느 인생보다도 저주받은 인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극한 인간의 고통을 겪고,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고, 요단강에서 수장침례를 받고, 인간에게 비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수도 없이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수많은 간증을 하지만 최고의 간증을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최악의 인간 경험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말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이런 최악의 상황을 목적을 가지고 준비하셨습니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자기 아들 예수님을 이런 이유로 이 땅에 메시아로 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최악의 상황을 만나도 고백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몸에 소망이 무언가’ 라는 찬송은 모든 세상이 무너질 때도 그리스도는 우리가 설 수 있는 반석이 되어주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밟고 서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밟고 설 수가 있습니까! 그가 채찍을 맞고 십자가에 메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예수님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실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이 있으면 물론 아픕니다. 하지만 너무 놀라지 말고 지금의 사명을 감당하고 또한 주변을 둘러보면서 감사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축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석자
이재웅, 정율, 김성필, 정의현
장소
궁내동으로 이사온 집들이겸 해서 저희 집에서 했습니다.
저희 집이 좁은 관계로 간단한 나눔을 하고, 두담이라는 맛집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나눔과 맛있는 식사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