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최악의 풍랑을 만났을 때
(사도행전 27:9-26)
예수님 이후에 가장 뛰어난 복음 사역자, 가장 능력을 지닌 선지자 가장 교회를 많이 세운 최초의 사도가 있다면 바로 사도바울입니다.
우리가 보는 사도행전의 후반부는 다 이 사도바울의 사역입니다.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고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교회를 다시 돌아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영혼이 주님께로 엄청나게 돌아왔습니다.
예수님 이후에 엄청난 사역을 감당한 두번째 인물입니다.
교회를 핍박했던 사도바울이 오히려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을 만나고 13번째 사도가 되어서 세차례에 걸친 로마까지 가면서 누구 보다도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인생이 완전히 역전된 거죠.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 왔습니다.
이제까지 전도여행을 하면서 환란과 죽을 위험들이 수없이 왔지만 이제부터 겪는 고난들을 레벨이 다릅니다.
바울이 당시 세계의 심장부인 로마와 땅끝으로 알려진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계획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념하에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체포가 됩니다.
그래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이송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죄수의 신분으로 겪은 시간이 학자들은 10년정도를 이야기합니다.
전에는 핍박이 있어도 대중들 앞에서 마음껏 설교를 하고 복음을 증거하고 그러는 가운데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고 힘들어도 열매가 있는 그런 사역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죄수의 신분입니다.
굉장히 제한되어 있고 제판을 받지 않습니까?
그리고 로마로 이송되고 있어요.
고난의 레벨이 다른거죠.
오늘 본분에 바울이 재판을 받기 위해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군인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배는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타고 있었고 탑승한 인원은 276명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런데 배가 맞바람을 맞아 항해를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합니다.
그들이 미항이라는 곳에 정박을 했는데 바울이 그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10절)
바울이 말한 지금 이 때가 9-10월경인데 지중해 항해는 보통 9월말 정도가 되면 겨울로 접어 들어서 항해를 잘 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번 항해가 위험할 것이라고 백부장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전문 항해사가 아니고 죄수잖아요.
백부장이 바울의 말에 무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항해를 계속하자는 선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어 모든 것이 순조로운듯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불순종 할 때라도 처음에는 모든게 잘 진행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는 거죠.
유라굴로라는 폭풍 혹은 광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이튿날은 풍랑이 너무 심해서 배가 가라앉을까봐 배에 있는 많은 짐들을 바닷가에 버렸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중요하게 쓰이는 기구들도 버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날 동안 짙은 구름과 비와 풍랑때문에 밤에도 별을 볼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구원의 소망을 포기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계속된 풍랑때문에 사람들은 배멀미를 하고 먹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 역시 육신적으로 같은 배에 타고 있었으니 같은 상황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마음가운데 체휼하셨으면 좋겠어요.
여기서 바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람들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평생을 항해하는 뱃사람이 타고 있는 배이지만 살 소망이 없을 정도로 풍랑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때 바울이 리더들에게 왜 자신의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합니다. 답답한 거죠.
그런데 바울의 상황은 로마로 가야 하는데 여기서 죽으면 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끝나 버리는 거에요.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꿈 땅끝이라고 알려진 스페인에 가는 것도 지중해에 묻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이 다 바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결과에요.
우리가 사역을 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슨 일을 진행하다가 주변에 불순종하고 고집 센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계획을 변경하는 것인가?
바울도 배에 타고 있는데 이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인생때문에 지중해에 묻히고 마는 것인가?
왜 하나님은 하루도 아닌 14일의 긴 시간동안 풍랑을 멈추지 않게 하시는 것인가?
바울을 살리려면 하나님이 정말 이렇게 하셔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맞이한 풍랑 속에서 과연 어떤 뜻을 갖고 계신가?
우리의 인생이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서 최악의 풍랑이 일어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말씀을 가지고 세가지로 나눠 보길 원합니다.
1. 우리 인생에 최악의 풍랑이 불어 닥칠 때 사명을 다시 확인하고 붙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상황 가운데서 모든 불만을 터뜨릴 만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희생제물들을 찾죠
다른 사람 안에서 환경 안에서 불평할 거리들을 찾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드디어 내가 여기서 삶이 끝나는 구나 로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는 잘 했지만 주변에 불순종하는 사람들때문에 계획이 변경된 것인가?
왜 이렇게 고집 센 사람들과 나를 한 배에 타게 하셨는가?
그런데 바울은 불평 대신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5절)
이 상황에서 놀랍게도 바울이 요나처럼 불평을 쏟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바울의 말에 불순종한 그들을 안심시킵니다.
바울이 분명히 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풍랑이 일고 여러날이 지난 어느 날 밤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명이 먼저입니까? 생명이 먼저 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아직 살아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사도행전 23장에서 예루살렘에 돌아 왔을 때 자객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다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하나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23장11절)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자신의 목숨이 끝나지 아니할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죽을 것같은 최악의 광풍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났을 때는 사명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은 평상시에는 잘 모르지만 인생의 고난과 최악의 상황들을 만나면 정체성을 고민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내가 왜 이자리에 있는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내가 온 길이 맞나 나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합니다.
그런데 인생에 그런 풍랑이 없으면 사실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만나는 풍랑과 파도는 감사하게도 브레이크 역할을 해줍니다.
인생에 계속 순항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인생은 자신이 하나님인 줄 착각하고 교만함 속에 빠집니다.
그리고 살며시 배 항해실로 들어가서 예수님을 끌어 내고 예수님을 바다 속에 던져 버리고 그 항해 배를 키고 자기 자신이 운전합니다.
그렇게 계속 간다면 쾌속질주는 할지 모르겠지만 그의 인생의 배는 끝이 없는 낭떨어지를 향해서 계속 날개없는 추락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이 맞다면 그 일을 감당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과 잣대로 환경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명자는 광풍이 일어날 때 그 파도를 일으키시며 잠잠케 하시는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한사람 한사람 한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는 실수가 없으십니다.
누가 나를 부르셨는지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확실하다면 그 일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시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평생 내 생각과 이성의 잣대로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은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실제로는 하나님을 안 믿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황이 악화될 때 그때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평생을 어부로 지냈습니다.
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한 그들에게 육지에서 나고 자란 목수로 지내신 분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아직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몰랐지만
소문을 듣고그를 위대한 선지자로 보지 않았다면 그물을 다시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활동을 하지만 실제로 삶에 있어서는 숨겨 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돈만큼은 만지지 마세요.
하나님 이 시간만큼은 안 됩니다.
이것만큼은 간섭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라는 것은 그저 성전 안에만 하나님을 가두고 내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는 요술쟁이 하나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교만하고 미성숙한 신앙을 깨뜨리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의 광풍을 종종 사용하십니다.
그게 내 죄때문에 일어난 일이든 욥처럼 의롭지만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보내시든 광풍을 허용하십니다.
광풍을 만나면 여려분의 사명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시길 축언합니다.
2. 주변을 돌아보아 사역의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환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망각하면 개나 돼지 보다도 못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 환란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때문에 은혜가 흐르지 않았던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는 최악의 상황을 만나면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그런데 내 삶에 갑작스런 광풍을 만날 때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면 깨닫는 바가 평상시 보다 훨씬 더 큽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삶에 광풍을 만나면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췄던 것에서 벗어나서 주변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울은 은혜가 삶가운데 깊숙히 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유대종교 모독죄로 로마로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는 스스로 죄인중의 괴수라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고백을 했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자신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돌보며 리더쉽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25절)
그런데 믿노라 고 얘기 했을 때 그 때와 시간과 방법과 장소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풍랑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됩니다.
14일째 되는 날 드디어 어느 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공들이 이 풍랑때문에 얼머나 시달렸는지 물에 닿자마자 도망을 가려고 합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바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아는 거에요.
그런데 바울이 이것을 눈치채고 백부장에게 알려 주어서 지혜롭게 위기를 모면합니다.
어느덧 바울이 백부장도 아니고 선원도 아니고 선장도 아닌데 이 배에서 리더가 되어 갑니다.
이 최악의 상황때문에 죄수인 바울이 리더가 되어 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바울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권면합니다..(33-34절)
이 상황 가운데서 이게 진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힘을 내어서 똑같은 풍랑 가운데 있는데 너희 중에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이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3.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을 축복하십시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중입니다.
배는 군사적 임무를 띄고 죄인들을 호송하는 백부장과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항해하는 선장과 선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광풍이 계속 되면서 그 배의 영적인 선장은 백부장도 아니고 선주도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사도바울입니다.
그 배에 276명이 타고 있었다고 성경은 자세히 기록합니다.
죄수인 바울이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도하며 음식을 먹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때에는 이런 날이 옵니다.
270명을 다 데리고 축도하고 음식을 먹습니다.
여러분 광풍앞에서 사람들은 다 두려워 합니다.
소망을 잃어요.
태극기를 들던 촛불을 들던 어떤게 옳다 그르다 교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심령에 진리가 없으면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두렵습니다.
그 때 누가 리드를 해야 할까요?
여러분 사업에 부도가 나고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들에게 엄청난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정치가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군인이 해결할 수 있어요? 탱크로 해결할 수 있습니까? 법률자문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항해사도 아닙니다. 사업가도 아니에요. 돈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망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원통함에 처했던 사람들 억눌림에 처했던 사람들 아둘람굴에 있었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 밖엔 없어요.
인생의 생노병사 희노애락 인생의 환란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맞이한 풍랑 속에서 누가 일어나 소망을 주고 희망을 줄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환란 가운데 다시 일어난 사명을 붙든 여러분들 입니다.
저는 276명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붙여주신 것을 감사하고 계속되는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야말로 사도행전 28장 가운데
가장 멋있고 놀라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살 소망을 잃어 버리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면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35-36절)
그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죽음의 고비에서도 기도하고 축사하고 떡을 나눕니다.
참 감격적인 장면이에요.
안수해서 죽은 다비다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풍랑이 멈춘 것도 아니고 성전미문에 걸인이 걷게 된 것도 아니고 기도해서 홍해가 갈라진 것도 아니에요.
아무런 기적도 없습니다.
그런 기적은 삶에서 있을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풍랑을 만날 때 그 말씀이신 생명되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감사하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본질적인 질문이 최악의 광풍을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신가? 여러분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항상 어떤 일 가운데도 전능하십니까? 그러면 왜 두려워 하세요?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나와 함께 하십니까? 그러면 왜 외로워하세요?
정말 신앙을 간단합니다.
우리가 사람이죠.
이런 기독교인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과 거기에 대한 답변들이내 삶에 갑작스럽게 닥친 이런 최악의 광풍들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각조차 안 합니다.
그러니까 광풍은 은혜에요.
죽기 전에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니 인생에 광풍이 닥치고 배에 물이 올라차서 내가 귀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을 바닷가에 집어 던지고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는 그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충분한 이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인간으로 보내실 때 상황은 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가장 최악의 상황 가운데 태어나신 분이 예수님이에요.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메시아잖아요.
하나님 아들의 신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메시아의 도래가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어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불편합니다.
동정녀의 몸에 오셔야 했습니다. 오해가 다분해요.
오성급 호텔이 아니라 마굿간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지저분합니다.
최고급 병원의 vip실이 아니라 말구유에 태어나셔야 했어요. 수치스럽습니다.
양치는 목동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초라합니다.
각 나라의 왕들의 선물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동방박사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명분이 안 서요.
태어나시자마자 헤롯의 살인계획때문에 피해서 이집트로 도망하셨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인 것 같아요.
이것을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겠습니까?
40일간 완전 금식을 하셨습니다.
극한 인간의 고통을 하나님의 아들이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 같아요.
또 하나 요단강에서 인간에게 수장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겸손한 것보다 비굴한 것 같아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고 세례를 받으시다니...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받으셔야 하는데 제자들에게 배반당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민족인 유대인들의 모함이 있었습니다.
결코 축복되지 않은 인생이에요.
결국 유대인들의 메시아가 유대인들에 의해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엘리엘리나마사막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누가 보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 태어나셔서 최악의 인간관계를 경험하셨고 최악의 배반을 당하셨고 최악의 사역의 열매를 거두셨고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외면 당하셨습니다.
목회자의 삶으로 보면 실패한 겁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 하나님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준비하셨다는 거에요.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그 이유는 이 땅에 살아가는 최악의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그런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졌겠습니까?
그런 예수님을 만난 우리가 최악의 상황을 겪더라도 고백해야 되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539장)
에드워드모트라는 사람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모든 세상이 무너져 내릴 때에도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 위에 설 수 있는 반석이 되어 주신다.
이 말이 참 고상하죠?
십자가가 그토록 저주받은 건데 우리가 볼 때는 고상합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그대로 말한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밟고 그 위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복음의 진리가 없습니다.
무엇을 밟고 최악의 상황에서 일어나실 겁니까?
사람도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상황도 신뢰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밟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니 굳건한 반석이신 예수님만을 신뢰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언합니다.
목장풍경>>
이번주에는 목장식구들과 함께 뚝섬유원지에 다녀 왔습니다.
시끄러운 트롯트 소리와 비둘기떼들, 눈 둘곳없이 애정행각을 나누는 커플들 사이에서 꿋꿋이 닭을 뜯어가며 나눔을 했습니다.(닭쏘신 가영언니 음료수 사준 꼬윰부목자님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갇힌 환경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말씀으로 적용하길 힘쓰는 우리 목장식구들 선하시고 전능하시고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밟고(ㅠㅠ) 일어나서 그 분만 신뢰하는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

뚝섬 다녀온 기념으로 예쁜목장식구들 사진 올립니다.
우리 모두 신교제 신결혼도 화이띵띵!!
기도제목>>
고유미
1. 생활예배
2. 내 잘못된 언행에 대한 묵상
3. 목사님 면담 기도로 준비
서리다
1.집에서 사명기꺼이 잘감당하길.
김화용
1. 큐티와 적용
2. 가족구원
3. 부모님을 정죄, 판단하는 마음 다스리고 순종, 용서하는 마음 주시길
4. 내가 살아가는 이유 사명에 대해 생각하며 사는 인생이 되길
5. 불투명한 미래, 삶 모두 주님께 맡기기
6 .양교숙제 마무리 잘 할 수 있길
박가영
1. 광풍뒤에 사명을 붙들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이번 아웃리치 기간의 허락으로 내가만난 하나님 잘전하고 오는 시간될수 있기를 (일정에 무리없도록)
2. 어느때에도 선하시고, 전능하시고, 나와 함께계시는 하나님이 믿어지는 우리목장되도록. 걸리는 부분들에서 과거상처들 계속내어놓고 기도할수있도록 마음만져주시길
3. 회사내 대리와 사원, 동료팀장과 대리와의 갈등 으로 불안함이 큰데, 중간역할로 지혜주시고 말보다 기도로 먼저대할수 있도록
4. 장기출장 및 업무일정, 아웃리치 준비기간들 내때아닌 하나님때로 순조롭게 조율될수 있도록
5.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됐음을 기억하고, 프랑스 선교사님과 교회중보, 만나게될 베트남 선교사님과 그곳영혼들 위해 기도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