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도 제목
예수님 이후에 가장 뛰어난 복음 사역자, 가장 능력을 지닌 선지자, 가장 교회를 많이 세운 최초의 사도가 있다면 바로 사도 바울일 것이다. 우리가 보는 사도행전의 후반부는 다 이 사도 바울의 사역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2차,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교회들을 다시 돌아본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를 통해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왔다. 예수님 이후에 엄청난 사역을 감당한 인물이다. 사도바울은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교회를 앞장서서 핍박했던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13번째 사도가 되어서 3차례에 걸친(사실 로마까지 4차) 전도 여행을 통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인생이 대 역전되었다. 그런데 이런 바울에게도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다. 물론 그동안 복음 사역을 하면서 여러 환란과 죽을 위험들을 수없이 겪어왔지만 이제부터 겪는 고난은 레벨(차원)이 다르다.
바울에게 당시 세계 심장부인 로마와 땅 끝으로 알려진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계획이 있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신념 하에 의도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체포 된다. 그래서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재판을 받으러 가기 위해 이송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서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기까지 죄수의 신분으로 겪은 시간이 무려 10년 정도가 된다고 학자들은 이야기한다. 전에는 핍박이 있어도 대중들 앞에서 마음껏 설교를 하고, 신나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러는 가운데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힘들어도 뭔가 열매가 있는- 활발하게 사역을 했다면 이제는 제한적인 죄수의 신분으로 계속 재판을 받으면서 간다는 것이다. 고난의 레벨이 다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복음을 변호하고, 변증하며 지낸다. 고난의 레벨이 다른 것이다. 다른 레벨의 고난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군인의 호위를 받으면서 로마로 향해서 가고 있다.
그들은 유대 가이사랴에서 아드라뭇데노라는 배를 타고 지중해를 가로질러서 긴 여행을 시작을 한다. 성경에는 그 배에 율리오라는 백부장이 타고 있었고 276명이 승선한 큰 규모의 배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배가 맞바람을 맞아서 항해를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미항이라는 곳에 정박했는데 바울이 그들에게 10절 말씀으로 조언을 한다.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바울이 말한 ‘이 때’가 9-10월경인데 지중해 항해는 이때쯤에는 보통 겨울로 접어들어서 항해를 잘 하지 않는다. 바울은 백부장에게 이번 항해가 매우 위험할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나 바울은 전문 항해사가 아니고 심지어 죄수의 신분이었다. 백부장이 바울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항해를 계속하지는 선장의 말을 들었다.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지만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때라도 처음에는 모든 게 잘 진행될 수 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면 갑자기 무슨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그러나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어닥쳤다.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
이튿날은 풍랑이 너무 심해서 배가 가라앉을까봐 배에 있는 많은 짐들을 바다에 버렸다. 사흘째 되는 날은 중요하게 쓰이는 배의 기구들도 버렸다.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짙은 구름과 비와 풍랑 때문에 밤에도 별을 볼 수 없었다. 당시에는 별을 보며 방향을 관찰을 했는데 방향도 모르고 헤매게 된 것이다. 본문에 보니까 사람들은 구원의 소망도 없어졌다고 한다. 계속되는 풍랑 때문에 사람들은 배 멀미를 하고 먹지 못하고 있었다. 바울 역시 육신적으로 똑같은 상황 가운데 있었다.
여기서 바울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사람들은 다 죽게 되었다. 평생을 항해했던 뱃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이지만 살 소망이 없어질 정도로 풍랑이 멈추지 않았다. 이때 바울은 리더들에게 왜 자기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 이런 어려움을 당하느냐고 이야기한다. 답답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로마로 가야하는데 여기서 죽으면 모든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끝나버린다. 바울의 사역도 끝이 난다.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꿈, 땅 끝이라고 알려진 스페인에 가는 것도 지중해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일이 다 바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결과이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우리가 사역을 한다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슨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주변에 불순종하고 고집 센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계획을 변경하시는 것인가? 내가 망하는 것인가?
바울도 배에 타고 있는 바울도 이 불순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역이 멈추고 지중해에 가라앉고 마는 것인가?
왜 하나님은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3일도 아니고, 완전 숫자인 7일, 12일 이런 것도 아니고 13일도 아니고 14일의 긴 시간동안 풍랑을 멈추지 않게 하시는가? 바울을 정말 살리려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셔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맞이한 풍랑 속에서 과연 어떤 뜻을 갖고 계신가? 모든 것을 다 순종한 바울에게 이런 시간을 주시는 이유가 뭔가?
우리의 인생에 갑자기 바다 한 가운데서 최악의 광풍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울이 어떻게 극복을 하는가? 3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사명을 다시 확인하고 붙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상황에 있을 때는 우리는 무엇이든지 붙들기를 원하는데 말씀 가운데‘사명’을 붙들길 바란다. 바울은 불만을 터뜨릴 수 있는 상황 가운데 있었다. 우리는 책임 전가 할 희생 제물들을 찾는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 안에서 불평할 거리를 찾는다.
바울은 ‘드디어 내가 여기서 죽나보다. 로마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스페인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나는 잘 했지만 주변의 불순종하는 사람들 때문에 계획이 변경된 것인가? 왜 이렇게 주변에 고집 센 사람들과 나를 한 배에 타게 하셨는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하는 바울이 그런 불평 대신에 이렇게 이야기 한다.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이 상황에서 놀랍게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요나처럼 불평을 쏟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바울의 말에 불순종한 그들을 안심시킨다. 똑같은 고난, 풍랑에 있는 바울이 이 사람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바울은 분명히 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풍랑이 이는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주신 것이다.
‘바울아, 네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므로 너는 죽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게 큐티이고, 묵상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명이 먼저인가? 생명이 먼저인가?
여러분이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가져가시지 않는 데는 무엇인가 이유가 존재한다.
사도행전 23장을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바울을 죽이려는 40명의 특공대가 식음을 전폐하고 쫓아다녔다. 그 때도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와 똑같은 말씀을 주셨다.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삶 가운데 죽을 것 같은 최악의 인생의 광풍이 닥치면 여러분의 사명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또 다시 확인할 기회인 것을 기억해야한다. 저희 교회에는 군인 출신들이 많은데 군인들은 계속 체크하는 훈련을 받는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만났을 때 본능적으로 훈련된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상시에는 잘 모르지만 인생의 최악의 상황을 만나면 자신의 정체성을 깊이 고민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내가 온 길이 맞나? 내일은 어디로 가야하나?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한다. 그게 인생의 최악의 상황을 만났을 때이다.
그런데 인생의 그런 풍랑이 없으면 사실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
인생에서 만나는 풍랑과 파도는 감사하게도 인생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준다.
인생이 계속 순항을 하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그러면 인생은 자신이 하나님인 줄 착각하고 큰 교만에 빠진다. 그리고 슬며시 인생이라는 배의 항해실로 들어가서 예수님을 끌어내 바다에 던져버리고 그 항해의 배 키를 자기 자신이 잡고 운전한다. 그렇게 계속 간다면 쾌속 질주는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그 인생의 배는 끝이 없는 낭떠러지를 향해서 계속 날개 없는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이 맞다면 그 일을 감당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자신의 경험과 능력과 잣대로 환경을 판단하면 안 된다.
사명자는 광풍이 일어날 때, 그 파도를 일으키시는 분도 그 파도도 잠잠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부르셨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실수가 없으신 것을 믿는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길 바란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내신 데는 실수가 없으시다.
누가 나를 부르셨는지 생각해봐라.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 확실하다면 그 일에 순종할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시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여러분이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나. 평생 내 생각과 이성의 잣대로 상황을 파악하는 사람은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다. 좋을 때는 괜찮다. 문제는 상황이 악화될 때, 그때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해요. 예배합니다. 헌신합니다’ 하면서 종교적인 활동은 하지만 실제로 삶에서는 숨겨둔 게 있다. 인생에 문제가 왔을 때나 우선순위의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 이건(돈, 시간, 자녀, 회사만큼은) 건들이지 마세요. 이것만큼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건 간섭하지 마세요.’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전에만 가둬두고 내가 필요할 때만 꺼내보는 요술램프처럼 생각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 교만하고 미성숙한 신앙을 깨뜨리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광풍을 종종 허락하신다. 그게 내 죄 때문에 일어난 일이든 아니면 욥처럼 의롭지만 하나님이 뭔가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보내시듯 광풍을 허용하신다. 광풍을 만나면 여러분의 사명(정체성)을 회복하고 다시 붙들고 일어나시기를 축언한다.
독수리는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 그 때 정체성–내가 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는 것이다.
둘째, 주변을 돌아보아 사역의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환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망각하면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환란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때문에 은혜가 흐르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는 최악의 상황(광풍)을 만나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은혜이다. 내 삶의 갑작스런 광풍을 만날 때,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면 깨닫는 바가 평상시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은 삶에 광풍을 만나면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었던 것에서 벗어나서 주변을 바라보게 된다. 바울은 은혜가 삶 가운데 깊숙이 흐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유대 종교 모독죄로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는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는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고백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지 않은 사람은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 죄가 깨달아지지 않는다. 내가 어떤 신분과 어떤 상황에 있든지 내가 죄인이라는 죄가 보이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돌보며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믿노라’고 얘기했을 때, 그 때와 시간과 방법과 장소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풍랑이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바울이 리더십을 발휘하는데도 폭풍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 생각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한다고 해도 중요한 숫자들의 날짜가 지나는데도 안 끝난다. 14일 째 되는 날 드디어 지중해 어느 섬에 도착하게 된다.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그런데 그 사공들이 이 풍랑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뭍에 닿자마자 도망가려고 한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아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이를 눈치 채고 백부장에게 알려줘서 사공들을 잡고 지혜롭게 위기를 모면한다. 어느덧 백부장도, 선원도, 선장도 아닌 죄수인 바울이 이 배에서 리더가 되어 간다. 이 최악의 상황 때문에 죄수인 바울이 리더가 되어 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바울이 또 사람들을 격려하고 권면한다.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이게 진실이 아닐지라도 누군가 힘을 내어서 똑같은 힘든 풍랑 가운데 있는데 ‘너희 중에 누구하나라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다’고 하면 이 위기 상황 가운데서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나. 우리가 만난 인생의 광풍들 때문에 똑같은 최악의 상황을 만난 사람들을 돕는 사역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광풍을 통하여 우리 기도와 사역의 지경을 넓혀주신 줄 믿는다.
셋째,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웃을 축복하십시오.
바울을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호송 중이다. 배에는 군사적 임무를 가지고 죄인들을 호송하는 백부장과 군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평생을 항해한 선장과 선원들이 있다. 그러나 광풍이 열흘 넘게 계속 되면서 그 배의 영적 선장은 백부장도 아니고 선주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사도 바울이었다. 그 배에 276명이 타고 있었다고 성경은 자세히 언급한다. 죄수인 바울이 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도하며 음식을 먹인다. 사람들은 광풍 앞에서 다 두려워하고 소망을 잃는다. 그 심령에 진리가 없으면 앞을 내다볼 수가 없고, 상황파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최악의 풍랑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 누가 리더를 해야하겠나? 정치가, 법률가가, 군인, 사업가가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 아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처럼 광풍을 만났던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환란 가운데 다시 일어난, 사명을 붙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여러분들이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만 아웅다웅하지 말고 인생의 배가 파선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가서 여러분이 체험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어떤 상황에서드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증거하시기 바란다.
이 환경 가운데 어떻게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지 그 진리를 알기 원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이 276명의 생명을 그에게 붙여주신 것을 감사하며, 계속되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사도행전의 어떤 기적보다 멋있고, 놀라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광풍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모두가 살 소망을 잃어버리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먹으라고 권한다.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하는데 기도해준다는데 싫다고 하는 사람 없다. 그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그 죽음의 고비에서도 기도하고, 축사하고 떡을 나눈다. 너무나도 감격적인 장면이다. 안수해서 죽은 다비다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풍랑이 멈춘 것도 아니고, 성전 미문의 걸인이 걷게 된 것도 아니고, 기도해서 홍해가 갈라진 것도 아니다. 아무런 기적도 없다. 그런데 기적은 삶에서 있을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풍랑을 만날 때,‘말씀이신 생명 되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감사하는가’하는 존재의 문제이다. 가장 본질적, 기본적인 질문을 우리는 최악의 광풍을 만나지 않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최악의 광풍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항상 선하신가? 이 일을 믿으시는가? 그러면 왜 걱정하는가?
하나님은 항상 어떤 일 가운데도 전능하신가? 그러면 왜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은 항상 어떤 환경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가? 그러면 왜 왕따 당한다고 외로워하는가?
존재, 실존의 문제이다. 진짜 믿고 있는가?
이런 기본적인 질문들을 최악의 광풍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생은 이런 질문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광풍은 은혜이다. 죽기 전에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은혜이다.
환란, 어려움이 없다면 교만의 극치를 달린다. 근본적으로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인생의 광풍이 닥칠 때, 내 인생의 중요한 것을 다 바다에 버려야 한다.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충분한 이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다시 해가 난다. 구원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실 때의 상황은 말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장 최악의 상황 가운데서 태어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땅의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는데 메시야의 도래가 너무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다. 불편하다. 젊은 세대들은 편함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불편하다. 동정녀의 몸에 오셔야 했다. 오해가 다분하다.
오성급 호텔이 아니라 마구간으로 가셔야 했다. 지저분하다. 최고급 병원의 vip실이 아니라 말구유에 태어나셔야 했다 수치스럽다. 정부각료들의 축하가 아니라 양치는 목동의 축하를 받았다 초라하다. 각 나라 왕들이 선물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동방박사의 선물을 받았다 명분이 서지 않는다. 태어나시자마자 헤롯의 살인 계획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가야했다. 저주받은 인생인 것 같다. 이걸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40일간 완전 금식을 하셨다. 극한 인간의 고통을 하나님의 아들이 체험하셨다. 그리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요단강에서 인간에게 수장침례를 받으셨다. 겸손하다 못해 비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에게 머리를 숙이고 침례를 받으셨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셔야 하는데 제자들에게 배반 당하셨다. 가는 곳마다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의 모함이 있었다. 결코 축복되지 않은 인생이었다. 결국 유대인들의 메시야가 유대인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셨다.‘하나님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으셨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누가보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 태어나셔서 최악의 인간관계를 경험하셨고, 최악의 배반을 당하셨고다. 최악의 사역의 열매를 거두셨고,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외면 당하셨다. 목회적으로 보면 실패했고 최악의 삶을 살았던 분이시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 하나님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그의 아들을 위해서(예수님이 아닌 그의 다른 아들들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준비하신 것이다. 사고로 이 땅에 태어나서 겪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 환경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져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이다.
이 땅의 최악의 상황을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전지전능하신 분이 그러한 초라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겠는가. 그런 예수님을 만난 우리가 최악의 상황을 겪더라도 고백해야 되는 찬양을 한다.
“모든 세상이 무너질 때에도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 위에 설 수 있는 반석이 되어 주신다.” 「에드워드 모트」
우리가 예수님을 밟고 그 위에 내가 서게끔 주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렇게 보내신 것이다. 그것 외에는 복음의 진리가 없다. 무엇을 밟고 다시 최악의 상황에서 여러분 일어나실 것인가. 상황도 사람도 신뢰할 수 없다. 우리가 밟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굳건한 반석이신-우리의 모든 최악의 상황들을 경험하고 돌아가셨다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보란 듯이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신뢰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언한다. 그 분이 굳건한 반석이시기 때문이다. 그게 복음이다. 그것만이 여러분을 살릴 수 있다.
이사야의 말씀이 그런 것이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최악의 상황은 최고의 예수님을 우리 삶 가운데 모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인생의 광풍이 여기저기서, 보름씩, 1년씩, 10년씩 올 때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신뢰하시기 때문에 감당할만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주신 것이다.
사명을 다시 확인하고, 붙들어라. 존재를 확인해라 나는 날 수 있는 독수리이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오히려 이웃을 도와줘라. 그리고 감사하고 그들을 주님의 이름 축복하시기 바란다.
오히려 도울 수 있는 사명자가 되기 바란다. 나를 밟고 살아나라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기 바란다.
2. 기도 제목
장원영
1. 많은 광풍이 지나고 6월 1일부터 매장이 새로 시작입니다. 메시아의 동네가 되라고 축복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뤄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영육이 준비되어 지도록 기도해주세요
2.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 주시길 기도해주세요
3. 매장 직원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지혜와 기회 주시길 기도해주세요~
4. 신교제, 신결혼
류지민
1. 직장에 과거 계속된 시험 낙방으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 결혼 또는 사회생활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회복되어 공립학교의 복음화를 위해 함께 할 수 있길. 그리고 힘겹게 공부하고 있는 예비 크리스챤 교사들에게 힘 주셔서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길.
2. 내 몸이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임을 기억하고 운동, 음식, 스트레스 조절 등 절제함으로 감당할 수 있길.
3. 부모님과 동생이 하나님 믿어 구원 받을 수 있길.
4. 공부를 하면 몸이 망가진다는 무의식적인 트라우마가 있는데 주님께서 고쳐주시길. 주님께서 주신 큰 사명을 잊지 않고 통일을 준비하고 또 통일 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길.
5. 신교제, 신결혼
민선애
1.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길
2. 말씀을 계명으로 여기고 내 옳고 그름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더 깊이 용서하고 동생을 용서할 수 있도록 더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3.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부모님을 이해하고 손과 발이 가는 적용으로 섬길 수 있도록
4. 신교제, 신결혼
이화진
1. 매일 나에게 어떤 하나님인지 세밀하게 귀 기울이며 발견하길
2. 매일 해야 하는 일들을 미루지 말고 잘 지켜보길
3. 회사에서의 관계, 일 등 모든 것에 지혜를 구하길
4.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