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4.
*새 가족을 환영합니다!*
94 이정우
청주 비행장 공군 부사관으로 지금은 헬기를 고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경력을 쌓고자 공군 부사관을 하게 되었고요.
교회에 오게 된 이유는 죄패를 알아서는 아니고 부모님 따라서 오다 보니 목장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목장
88 김진영
91 유지원
93 이현철
94 이정우
95 안준혁
96 안동현
97 정충화
말씀요약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뉜 시기에 남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에 관한 본문이었습니다.
A를 심었을 때 B가 나오는 것
: 나는 A를 심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B를 심은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15년의 수명이 연장되어 낳은 자식이 므낫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므낫세가 남유다의 멸망을 초래합니다.
믿을만해서 믿는 것 = 아는 것
히스기야의 15년은 믿음의 후계자를 양성하라는 의미였는데
존재의 공공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문제만을 생각하고 15년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해서
므낫세와 같은 왕을 낳았음
사람이 하나님을 통해 큰 경험을 하고 나면 내가 그 은혜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낍니다.
사람들이 해주는 인정을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 목자님
: 목원 답변
88 김진영
매년 아웃리치도 가고 수련회도 꼬박꼬박 가고 일주일 중 5일을 교회에 갔었는데 또 그럼에도 학교 성적이 A+을 받아서 부모님을 놀라게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난이 오고 힘든 가운데 있으니까 나는 죽어도 하나님께는 가지 않겠다고 외치며 반항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 들어와서 사건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있었던 고난에서는 다시 원망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제 같이 인턴 하던 친구가 저의 고민을 듣고 회복기인 지금을 생각하고 상황을 잘 해석해서 붙어가라는 말을 듣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상황에 대한 원망이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니까 이제 원망을 하기보다 저의 죄를 보게 됩니다.
91 유지원
벽보고 등 돌린다는 말을 듣고 저도 제가 생각할 때 원하는 길로 가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기적인 것과 개인주의적인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깨달았습니다.
? 최근 하나님께 불평이 되는 것은 있는지?
최근에 하나님께 불평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결정의 순간마다 중요한 때에 저의 생각이 중요해지고 그 때마다 틀린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할 때에 제가 등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진짜 이유는 나만 알고 사람들에게는 가짜 이유를 대는 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배울 일이 만만치 않아서 1년 정도를 배워야하는 일인데 저는 제가 모르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당연히 물어보고 해야하는 일까지 저 혼자 끙끙 하려고 하니까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95 안준혁
하나님 이용법 : 저의 기준은 하나님이 아닌 저에게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의 목표가 확고하고 하나님은 그저 서브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공공성에 대한 말을 하셨는데,
교인이면 어디를 가서도 교인이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교인임을 알면서도 사회에서는 술도 마시고 그러니까 주변사람들에게 크리스천으로서의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최근 하나님께 불평이 되는 것은 있는지?
어려서 아버지께서 외국에서 사업을 하셨습니다. 외국으로 갈 준비를 하다가 말고 취소가 되었습니다. 제가 또 미대를 다니니까 어려서부터 잘 사는 친구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 가운데에서 위축되는 일이 있습니다. 잘 사는 친구들 때문에 위축되고는 합니다.
97 정충화
저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에는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깁니다. ‘내 알바야?’하는 생각이 듭니다.
? 최근 하나님께 불평이 되는 것은 있는지?
최근에는 불평할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알바할 때 저보다 30살은 더 먹은 아주머니께서 저한테 아저씨라고 했습니다.
96 안동현
히스기야의 공공성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을 만인 제사장으로 세우셨다고 하셨는데,
히스기야는 15년의 연장된 수명을 받았으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셔도 왕 같은 제사장의 주변 사람을 위해 벌을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지금 고난이 주변 어떤 사람을 위한 고난을 주신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면접가서 간증을 했습니다.
제가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음에도 하나님은 그저 복 주시는 존재로 알았고 원하는 걸 이뤄주신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1년간 성경공부를 하면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 몰랐고 제가 얼마나 할 말 없는 죄인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면접을 보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하고 싶다
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면접관님 중 한 분께서 김성우 목사님을 아시는 분이었고 안부를 물으셨습니다.
또 이런 나눔을 안할까봐 새 가족을 불러준 것 같습니다.
? 제가 말씨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예전에 제가 동현이한테 뿌린 말씨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순간 두렵기도 했고 동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목장에 잘 나오는 동현이를 보면 제가 동현이의 수준을 잘 못 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93 이현철
히스기야 : 삐쳐서 벽을 보고 나를 인정해주소서
내가 한 것에 대한 생색, 내가 드린 것에 대한 보상심리
하나님 말씀에서 내가 납득하기 위한 증거를 찾는 모습
내가 말하는 믿음 : 믿을만해서 믿는 것 = 아는 것
‘온전히 옳다’ 어려움
94 이정우
돈, 친구들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에 많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우리들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 처음 목장에 와본 경험이 어떤가요?
좋았습니다.
기도제목
96 안동현
기복적으로 대학발표 기다리지 않기를
매일 큐티 하기를
양육 잘 마칠 수 있기를
아버지께서 우리들 교회에 오기로 하셨습니다. 마음 바뀌지 않고 잘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93 이현철
큐티 잘 하기를
시험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떼쓰지 않기를
지금 공부에 쏟는 노력이 보상심리로 다가오지 않기를
여자친구가 이사하고 많이 힘들어하는데 나아지기를
97 정충화
(미소)
미소 넘치는 한 주 되기를
아버지께서 노래방 사업을 잘 접으셨으면 좋겠습니다.
95 안준혁
삼촌이 기독교인을 너무 싫어하십니다. 가족 모두 전도를 하고 싶어 하는데 제가 전도를 할 용기가 잘 나지 않습니다. 싸우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하나님을 알기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91 유지원
큐티를 잘 하기를
일하는 것을 제 수준 이상으로 하지 않는 적용을 하기를
88 김진영
새로 처방받은 약 잘 먹기를
회사에서 잘 일하기를
아버지께서 양육 받으시는데 양육 잘 받으시기를
94 이정우
이번 한 주도 웃으면서 여유 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인연이 생긴 것 같아서 좋습니다.
주일설교
봄날은 어떻게 오는가? - 정갑신 목사님
역대하 36:21
왕하 20:1-6
그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예수향남교회 정갑신 목사님
목욕탕 세미나 참석하셨고 목욕탕 스피릿을 함께 나누는 교회
1절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나는 A를 심은 게 분명한데 왜 B가 나올까?’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한 결과대로 나오지 않아 불평이었던 경우
대표적으로 자녀에게 드는 생각. ‘왜 이런 게 나왔지?’
그런 생각이 드는 전제는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으로부터 피하고자 하는 회피.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해도 다음 세대를 잃고 있습니다.
미전도 종족이 우리 자녀 세대에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5년 동안은 믿음의 정도가 심각하게 떨어질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열심히 기도했는데, 전도했는데 왜 지금 세대는 전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A안에 B가 나올만한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해야합니다.
우리가 성실히 살았음에도 불가항력적 상황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서 명백한 결과들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면
나의 어떤 면에서 그런 일을 발생 시켰나 고민해볼만 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 믿음의 왕, 다윗에 견줄 몇 안 되는 왕 중 한 명
우리의 무능함을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다고 기도드린 결과
앗수르의 군대를 멸하시므로 하나님 영광을 보이는 사건을 이끌었습니다.
히스기야는 병에 걸렸고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15년의 수명연장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 후에 히스기야는 아들을 낳았고 므낫세를 낳습니다.
북이스라엘, 남유다를 통틀어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됩니다.
아버지 히스기야를 짓밟고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히스기야라고 하는 대단한 사람, 그리고 나라를 말아먹은 그의 아들 므낫세.
아이러니합니다.
히스기야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므낫세가 그런 방식으로 자랄만한 충분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죽음의 문제.
히스기야가 병에 걸렸을 때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십니다.
이사야가 말합니다. 당신은 살 수 없고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경우 “아멘”
목사님의 첫 번째 반응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는 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이것이 나를 통과하여 나를 어떤 상황에 빠트리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습니다.’ 하고 생각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붙어 있을 때 (치과에서의 경험)
누가 앞에서 ‘다 아파야 낫는거 아닙니까?’라고 했다면 칼을 들었을 것입니다.
고통이란 쉽게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상적인 상태를 우리는 기대합니다.
그런데 김양재 목사님께서 진실로 그런 반응을 보이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사야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말씀을 전했을 때
히스기야가 삐집니다.
: 1,2,3절
낯을 벽으로 향하고 고하되 제가 한 일을 기억하옵소서, 심히 통곡합니다.
히스기야는 무슨 일이 있으면 성전을 찾았던 사람이지만 그가 벽을 향하여 통곡합니다.
통곡 1. 예수님의 통곡 : 하나님의 뜻이 뭔지 알고 계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함을 알고 있지만 본인이 가기 싫을 때의 통곡. 아버지와의 분리, 이별 앞에서의 고통의 깊이는 무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가기 위한 통곡이었습니다.
통곡 2.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 같지 않아서 떼 쓰며 하는 통곡.
히스기야의 통곡은 두 번째 통곡입니다.
마음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3절.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 내가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
“하나님 나는 이 정도의 대가를 받으려고 산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믿음으로 살았는데요. 저는 이것보다 좋은 대접을 받아야하지 않습니까? 왜 내게 이런 결과가 있어야합니까?”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도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기도가 참 무서운 기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종교화되어간다면 이런 기도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안에 있다면 이런 기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의 종교화’
내가 여기서 행한 열심, 수고의 정도가 신에게서 어떤 보상을 바라는 척도가 되는 것
지난 주 레위기를 묵상했는데 ‘이 세상은 어디에나 제사가 있습니다.’
멕시코의 피라미드 : 제단
아즈텍 문명 안에 있는 것
가장 잘 싸우는 사람을 산 채로 심장을 꺼내어 바치는 것
: 심장이 꺼내어 바쳐지는 순간 신이 된다고 믿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 또한 하나님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내가 더 하나님다워지려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내가 수고한 정도가 나에 대한 신의 보상 정도를 올리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행위.
믿음의 종교화
하지만 제사란, 받았기 때문에 드리는 제사
하나님의 아들을 받은 우리의 만족감, 감사함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복음의 삶
하지만 우리도 모르게 종교화 되어갑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우상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드려야하는 기도 :
“하나님 말씀은 온전히 옳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길로 가기 싫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십시오. 그럼 제가 그대로 행하겠습니다.”
종교는 힘이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도 모르게 그 길로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잃고 있는 이유는 우리도 모르게 이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들 마인드’
고등학생 : 떨어지면 감사하고 붙으면 회개하자
하지만 이 땅의 적지 않은 문화에서 잘 못 되는 건 저주고 벌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사용법을 잘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크면서 하나님을 맘대로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와중에 돈, 친구, 공부를 쓰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잘 사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하나님의 필요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교회가 값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용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쓰임의 대상이라는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관계 속에 살아가야합니다.
5, 6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긍휼히 여겨서 이사야를 보내고 15년의 생명연장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치료행위를 하시고 다 나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 말씀이 곧 나을 것이라는 것.
하나님 말씀이 현실이기 때문.
그런데 히스기야는 곧바로 그 말씀이 진짜인 증거를 달라고 합니다.
‘징표가 있나이까?’
하나님께서 나을 것이라고 하셨음에도 그것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도 내가 이해할 만한 객관적 증거가 더 믿음직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나의 생각을 믿는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은 선악과입니다.
불필요하고 모순어린 것이 선악과입니다.
선악과의 계명을 지키려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불가해하다. 설득되지 않는다. 부당하다. 그러나! 모순 어려보인 현실보다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이 더 크시다!’라고 말하는 방법 뿐
내가 이해되지 않고 설득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나는 믿는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히스기야의 마음의 축이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에게로 옮겨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특이한 응답으로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응답한 것이 아니라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응답하신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자신 개인의 기도를 올린 것이지만 하나님은 개인이 아닌 히스기야를 필요로 하는 백성 때문에 고쳐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공공성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존재의 공공성)
공공성이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은 나로 연결된 여러 공공적 단체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공공성이 사라지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6.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으로부터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이때, 히스기야가 질문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 왜 15년이죠?’
하지만 히스기야는 묻지 않습니다. 우리도 묻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나를 위한 응답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공공성을 생각해야합니다.
특히나 왕이라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왕적인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자식들에게 올 죄의 결과 앞에서 히스기야는 말합니다.
‘이게 주님의 뜻이라면 선합니다.’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만 별 문제가 없다면’
15년 동안 아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한 히스기야
: 마음의 축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애가 집 나가면 시원한 것 같지만 하루 이틀 안 들어오면 부모로서 죽음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들어온 상황에서는 찰나이지만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 소중함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는데 우리는 사랑하고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딸에게 사과를 하려고 가는 길에도 저는 분이 일어났습니다.
‘잘못은 저년이 다 했는데 왜 제가 사과를 합니까?’
또, 딸이 진지하게 사과를 받지 않으니까 사과를 포기할 뻔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려 애를 쓰니까 자연스레 딸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가 왔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아빠야’
히스기야에게 이런 오류가 생긴 이유는 히스기야가 큰 역사를 경험하면 자신이 그 역사의 주인공인 양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진리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이 곧 진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진리는 빛입니다. 진리에 가까이 갈수록 확신이 생깁니다. 그러나 진리는 빛이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마음속에 어둠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계속 진리에 다가가는 힘은 매우 겸손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