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주일설교<오순절 성령강림> - 사도행전 2:1-13
사도행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일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 특별한 경우에 임했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오순절의 복음의 메세지를 땅끝까지 정하도록 초자연적인 성령의 권능을 주신다.
1.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기위해 다같이 한 곳에 모여야 한다. (1)오순절은 유월절을 기리기 7주가 되는날로 77주, 오십일째라서 오순절이라고 한다. 오순절 날이 가득 채워졌을 때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 잡히셨고 돌아가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고 40일동안 제자들을 양육하셨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성령강림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속사의 과정에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깨끗케하시는 주님의 죽어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회개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회개, 성령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채워가야 한다. 문자적으로는 이루어졌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기에 우리가 겸손히 걸어가야 한다. 오순절이 이르매 다같이 한 곳에 모였다고 한다. 한 곳에 모였을 때의 시간은 3시인데 우리 시간으로 9시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침부터 모였겠는가? 이날부터 주일로 섬겨 모였기에 모일 수 있었다. 예배드릴 때, 찬송할 때 아니고 앉았을 때 임했다고 했다. 우리가 같은 장소에서 말씀듣고 한 마음 될 때까지 기다리신다. 최소한 공식적인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 만큼은 시간지켜서 모이길 바란다.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하길 원한다면 날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있던 성령도 없어지고 흩어지기도 한다. 다같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중요한 조건이다. *어떤 모임에 어떤 목적으로 다녀왔는가?*같이 모이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듣는 것이 충만한 성령강림의 조건임을 믿는가?*공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예배 순서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가?
2.오순절 성령강림은 확실한 체험이 있다. (2-3)있지만 보이지 않고 도처에 느낄 수 있는것, 성령과 바람이 비슷한 것 같다. 태풍과 같은 사건이 몰아쳤다고 낙심하고 있는가? 3절: 혀는 말과 복음 전파를 상징하고 불은 정결케 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태워버리는지 모른다. 불속에 들어가면 너무 뜨거워 아플 수 있지만 불의 혀처럼 성령이 임하면 내 죄를 태우고 정결케 되므로 남을 밝혀주고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불의 혀같이 오는 것은 성령 충만의 비결이 되는 것이다. 임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임한다. 오래 교회에 붙어있다 해도 성령이 임하지 않을수 있다. 성령이 임하지 않은 사람은 미성숙하기에 날마다 좋은 이야기만 듣고 싶어한다. 성령이 임하는 사람은 바르게 함과 책망 등을 잘 들을 수 있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성령을 받아야 한다. 가족같이 하나된 공동체는 성령받는 비결이 된다. 불의 혀같은 사건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길 바란다.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지 못한 언어를 시작했다. 방언의 본질은 주관적이지만 온 집안에 가득했다고 했다. 들리고 보이고 객관적이기도 하다. 주관적인 것이 충만하게 임해서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보이는 체험을 해야 한다. 성령세례와 충만은 다르다.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따로 일어날 수도 있다. 성령세례는 죄사함을 받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물세례는 구원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성령세례를 먼저 받고 물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다. 성령은 새로운 삶을 주시는 권능이다. 성령은 평생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시작하신다. 우리가 물컵에 물이 있는 것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흘러넘쳐서 남에게 주는 것이 성령 충만이다. 기한과 때는 우리는 모르는 것이다. 결혼을 하려면 식을 해야 하니 서로 사랑하는 본질의 기쁨이 있어야 하며 유지되어야 한다. 주님과의 만남도 결혼식과 같은 것이다.성령은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것이기에 우리 생각대로 차례차례 역사하지는 않으신다. 본질적인 사랑은 결혼 전에도 후에도 올 수 있다. 성령은 창세전부터 계시며 지금도 계시고 장차후에도 계신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시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자이지만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판 것이다.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은 이미 드러나지 않은 교회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은 특별한 성령충만, 이 성령충만으로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세례받아서 메시아가 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례받으실 때 사람들에게 알려지셨다. 오순절에 이루어진 표적은 역사상 한 번의 표적인데 똑같은 불과 바람을 지금도 나에게 보여달라고 외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다른 종류와 장르로 우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며 믿음이다. 성령 충만과 아님의 차이는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느냐 아니냐에 따른 것 같다. 성령 충만을 받고 무엇을 하게 되는가? 성령충만은 여러가지 은사로 시작될 수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충만이기에 말하기로 시작한다. 4절: 모두의 입이 열렸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신다고 한다. 성령충만은 말씀 충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충만하다면서 입이 열리지 않는다면 아직 성령충만하지 않은 것이다. 찬송, 기도, 설교 모두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성경은 다른 언어를 방언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방언하면 랄라라 밖에 모르기에 성령충만해서 방언하자가 주제가 된다. 왜 방언을 받는지가 중요하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신 것을 깨닫지 못하면 성경을 내게 주신 음성으로 받지 못하기에 방언의 의미도 알 수 없다. 방언의 은사도 있지만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미성숙한 것이다.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불의 언어, 따뜻함의 언어, 죄사함의 언어로 온다. 주관적인 체험이 객관적인 은혜로 나타나야 한다.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성령체험이 있는가?*주관적인 나의 간증이 객관적으로 보여지며 주변 사람에게 그렇게 은혜를 끼치고 있는가?
3.오순절 성령강림은 난 곳 방언으로 차별없이 임했다. (5)나의 예루살렘, 예수 믿었다고 하지만 나의 통곡의 사건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더니 때가 왔다. 나의 힘든 예루살렘에 순종한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도의 기회가 된다.6절: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유대인의 3대절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때면 예루살렘에 모였다. 유대인으로서 자기 민족에 대한 프라이드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 천하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모였다고 했는데 갈릴리 제자들이 그것을 알아들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어떤 일을 의미할까? 집순이, 평신도 아냐? 어떻게 저렇게~ 기이히 여김을 당했다. 성실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하루만에 갔는데 남편이 구원 된 것 때문에 할렐루야 하면서 간증을 하니 놀라지 않겠는가. 오순절은 홀연히 온 남편의 죽음 사건이었다. 이정표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사건 가운데서 주관적인 체험같지만 객관적인 말씀으로 증거하는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이다. 그러나 막상 자기사건이 왔을 때 말씀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언어가 각각 자기 방언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각각의 사람의 인격을 설명시킬 수 있는 언어였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얘기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사랑의 언어밖에는 없다. *돈없고 학벌없고 직분없어서 나의 간증과 전도가 기이히 여김을 받은적이 있는가?*하나님 때문에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믿음의 보편적인 언어가 있는가?어떤 관계이든지 막힌 관계가 뚫리는 것이다.
4.성령강림은 흩어진 언어가 한 언어가 되는 것이다.(7)축복을 주다보니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바벨탑을 쌓았고 그를 흩기 위해 다른 언어를 주셨다. 얼마나 저주인줄 모르고 여전히 학벌로 정욕으로 높아지기 위해 스펙을 쌓고 결혼을 한다. 돈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집으로 시집가게 하셨지만 언어가 안통하는 고통이 어떤 고난인지 알게 하셨다. 다시 하나의 언어가 되게 하신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밖에는 우리에게 언어 충만을 주실 분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 땅에 육하되서 오셨기에 우리도 삶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복음 전파가 되는 것이다.*육적으로 최고의 만족을 주는 인간관계일지라도 믿음의 말이 통하지 않아 애통한 것이 있는가?*우리의 언어는 흩어졌는가? 하나가 되었는가?8절: 오늘 나의 인격을 설득시키는 메세지가 나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들린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을 만져주신 것이다. 각 사람에게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된다는 것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내 얘기로 듣는 것이다. 성령충만의 결과는 각자의 환경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우리의 방언은 각자의 처지에 맞게 내 간증이 쓰임받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 간증을 들을 때 내게 임하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있는가?*설교자나 간증자나 내 흉을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잘난척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쁜가?9-11절: 얼마나 지경이 넓어졌는가. 로마로 온 나그네도 있고 경건한 사람에게까지 나의 지경이 넓어졌다. 내가 확신이 있어서 성령이 임함을 다른사람에게 전할 때 말씀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수치를 당하고 훈련 받은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이 뭐라고 할때 계속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하나님이 원하신 성령 충만은 내가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할 사람을 어느 날부터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너무 미운 사람이 있다면 성령충만 받지 못했다. 싫고 좋은 것이 너무 분명하고 용납하지 못할 것이 많다면 성령충만 하지 못한 것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온 인류가 하나님 안에서 회복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환경이 다르고 출신이 다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상처 때문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12-13절: 우리가 천하 인간의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했는데 너무나 만인이 알아듣는 쉬운 진리를 못알아듣는다. 못 알아듣기에 엄청난 고난을 허락하셔서 세상에게 충격을 주는 존재를 허락하셨다. 사랑할 때 사랑하고 미워할 때 미워하는 것은 누가 못하겠는가. 독같은 상황에서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표정을 짓는가에 따라 로마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지닐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언어를 쓰는 것이 성령 충만한 언어인 것이다. 성령 강림으로 대단한 것을 주셨는데 계속 기복에 머물러 있기에 무시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현세의 복을 구하며 거기에 안주하니 방언 같은 것만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은사를 통해 성령 충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보여지는 것은 막힌 관계가 뚫리고 흩어진 언어가 하나되는 것이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성령 충만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인정하면서도 사람들이 조롱한다. 때와 장소를 가려야 쓸데없는 조롱을 안받는다. 성령 안받는 사람은 성령 받은 것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세상을 놀라게 하고 충격을 줄 믿음의 적용이 있는가?*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적용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가?*그 모든 부활신앙을 믿는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 것을 꺼내줘야 하는 것이다.
<기도제목>
재경: 힘든 사건이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안타깝고 교회에 데리고 오고 싶다. 그 친구를 위해 중보할 수 있길
지헌: 개천절날 양육 1주차 하는데 양육하는 시간에 늦지 않고 가서 양육 잘 받고 올 수 있길
예지: 한주동안 큐티 잘 할 수 있길
양육숙제 잘 할 수 있길
영어학원 잘 다니고 알바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도록
해리: 큐티와 기도생활 소홀하지 않고 잘 할 수 있길
수업 같이드는 사람들에게 눌리지 않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갈 수 있도록
몸이 아픈 친구에게 사랑의 언어를 잘 쓰며 잘 공감해줄 수 있길
나영언니: 양교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시간관리 잘 하고 내 모습 잘 보면서 끝까지 잘 할 수 있길
수요예배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아빠가 목장에 나가실 수 있길
회사에서 믿는 자로써 잘 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