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말씀
“오순절 성령강림” (행2:1~13)
1.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기 위해 다 같이 한 곳에 모여야 합니다.
오순절은 유월절을 지낸 지 7주가 되는 날로,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50일째라고 오순절입니다. 이미 이름에는 원어로 ‘그리고 가득 채워졌을 때’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속사의 과정에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기 위한 주님의 죽어지는 헌신이었습니다. 성령강림을 위해 주님의 십자가 사건처럼 내 자아에 죽어짐과 말씀으로 양육되어짐, 개인의 회개 뿐만 아니라 공동체로 이어지는 회개, 기도로 힘쓰며 성령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채워가야 할 것입니다. 오순절이 이르매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다고 합니다. 주일에 성도들이 모이는 것은 성령이 강림하시기에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예배드릴 때, 앉았을 때, 말씀 설교할 때, 강론 할 때, 약속의 말씀이 임할 것을 기다리면서 다 같이 한 곳에 한 곳에 모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개인으로 구원받았지만은 주님은 교회로 일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같은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한 마음 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한 번 모인 것이 아니라 유월절에서 7주지나 50일째 되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최소한 공식적인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만큼은 시간 지켜 꼭 모여주시기를 바랍니다.
Q. 지난 주 여러분은 어떤 모임에 어떤 목적으로 다녀오셨습니까? 사람들에게 치이기도 싫고 내 시간 뺏기는 것도 싫다고 혼자 말씀보고 기도하며 성숙도 열매도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같이 모이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 듣는 것이 충만한 성령강림의 조건인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공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예배 순서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참여하고 있습니까?
2. 오순절 성령강림은 확실한 체험이 있습니다.
바람과 성령은 단어와 발음과 철자가 비슷합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이 홀연히 왔습니다. 들리게 왔습니다. 혀는 말과 복음전파를 상징하고, 불은 정결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는 말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불의 혀처럼 성령이 임하면 신속하게 나의 죄를 태우고 정결케 됨으로 남을 비쳐주고 뜨거움의 열정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함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의 혀같은 사건이 오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입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했다고 합니다. 임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임합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의 특징은 누구에게 무슨 말을 듣든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는데, 사람이 미성숙하면 날마다 하나님에게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만 들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각각 개별적으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 다 공동체적으로도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온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가족같이 하나된 공동체는 성령을 받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성령충만한 예배와 목장예배에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나 개인에게 임하는 성령을 체험하고 불의 혀같은 사건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충만받고 예수님과 진리로 충만해서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하지 못한 언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관적인 것이 나에게 충만으로 임해서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이런 확실한 체험을 해야 합니다. 성령세례와 충만은 다릅니다.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고 또 따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죄사함을 받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죄를 회개한다는 표시로 받는 물세례는 구원과는 직접 연관성은 없습니다. 물세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새로운 삶을 주시는 권능입니다. 또한 성령은 평생에 걸친 변화의 과정을 이제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물컵에 물이 있는 것이 성령세례를 받았다면 흘러 넘쳐 남에게 주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다락방의 120명의 성도들은 이미 드러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은 교회 형성을 위한 특별한 성령충만이었습니다. 이 성령충만으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오순절에 이루어진 표적은 역사상 한 번 있었던 표적인데 똑같은 불과 바람을 지금도 나에게 보여달라고 외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은 이미 오셨습니다. 다른 종류와 장르로 우리에게 이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고 믿음입니다. 어떤 불같은 체험이 성숙한 믿음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성령충만은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한 충만이기에 말하기로 충만합니다. 모두가 다 입이 열렸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십니다.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큰 일을 말했습니다. 성경을 내게 주신 음성으로 듣고 베드로가 정말 하기 힘든 유다 이야기를 하고 사도수를 채워 넣은 것처럼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불의 언어, 따뜻하게 하는 언어, 죄를 사해주는 언어로 시작합니다. 성령은 바람같이, 불의 혀처럼 주관적으로 내게 임했지만 온 집에 가득하고 저희에게 보이고 다른 언어 방언으로 나타난 것처럼 객관적인 은혜로 나타나야 합니다. 주관적인 체험이 객관적인 은혜로 나타나야 합니다.
Q. 여러분은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확실한 성령의 체험이 있습니까? 주관적인 나의 간증이 다른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성경말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를 끼치고 있습니까?
3. 오순절 성령강림은 난 곳 방언으로 차별없이 임했습니다.
나의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라 해서 기다렸더니 때가 왔습니다.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 때 흩어졌던 나그네들인데 유대인의 3대 절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때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으로서 자기 민족에 대한 프라이드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비록 식민지로 갔어도 헬라어 히브리어도 잘하고 흩어져 간 그 나라의 말도 유창하게 잘했습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 천하각국에서 모여들었는데, 무식한 어부 갈릴리의 제자들이 천하 각국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기가 찬 것입니다. 놀랐고 인정하지 않을래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언어가 각각 자기 방언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각 그 사람의 인격을 설득시키는 언어를 쓰게 됐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는 사랑의 언어밖에 없습니다.
Q. 돈없고 학벌없고 직분이 없어서 나의 간증과 전도가 기이히여김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나의 인간적인 것때문에 기이히여김을 당하지만, 하나님때문에 누구와도 통할 수 있는 믿음의 언어, 보편적인 언어가 있습니까?
4. 오순절 성령강림은 흩어진 언어가 한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세상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축복을 주다보니 인간들이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언어를 흩으셨다고 했습니다. 부부간에 언어가 안통하고 가족간에 언어가 안통하는 것이 얼마나 저주인지 모릅니다. 죄과 교만의 징표로 언어가 흩어졌는데, 얼마나 저주인지 모르고 여전히 학벌로 정욕으로 더 높아지기 위해서 스펙을 쌓고 또 결혼을 하고 그럽니다. 다시 하나의 언어가 되게 하신 사건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입니다. 이 얘기는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우리에게 언어충만을 주실 분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Q. 육적으로는 최고의 만족을 주는 인간관계일지라도 믿음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때문에 애통한 것이 있습니까? 오직 성령이 임해야지만 막힌 관계가 뚫리는 것을 믿고 간구하십니까? 여러분의 언어는 흩어졌습니까? 하나가 되고 있습니까?
오늘 나의 인격을 설득시키는 메시지가 들린다면, 나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들린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격을 만져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는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하는데, 듣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로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시적인 방언도 할 수 있지만 성령충만의 결과는 여러분의 각자의 환경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듣는 것입니다. 이게 성령충만, 말씀충만입니다. 우리의 방언은 각자의 처지에 맞게 내 간증이 쓰임받는 것입니다.
Q. 말씀을 들을 때 간증을 들을 때 내게 임하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있습니까? 설교자나 간증하는 사람이 내 흉을 보는 것 같아서, 잘난척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십니까?
내가 확신이 있어서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을 전할 때 다른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뜨거움과 충만으로 나아가려면 베드로처럼 죽었다가 살아나고 수치를 당하고 훈련받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뭐라고 할 때 계속 열심히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령충만은 내가 용서할 수 없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을 어느 날부터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사람, 미운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로 성령충만을 가늠할 수 있는 겁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온 인류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회복됨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Q. 환경이 다르고 출신이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고받은 상처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너무나 못알아듣기 때문에 나에게 엄청난 고난을 주셔서 세상에게 충격을 주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남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그 때에 내가 사랑의 언어를 쓰고 당신을 용서한다고 하면, 세상이 너무 놀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여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에 충격을 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막힌 관계가 뚫리고 흩어진 언어가 하나가 되는 겁니다. 내가 굉장한 고난 속에서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Q. 세상을 놀라게 하고 세상에 충격을 줄 믿음의 적용이 있습니까?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그런 적용을 해도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 모든 걸 감당할 부활신앙이 내게 있습니까?
▶ 목장나눔
이번 주 목장은 희정 목자언니와 은실이 윤정이 그리고 저 이렇게 함께 했습니다.
A: 직장에서 갈등을 겪고 술자리를 가졌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 이야기가 나오는 게 싫어서 혼자 신앙생활을 원했었다. 요즘은 주일예배뿐이지만 충만함으로 드리고 있다.
B: 모임이 없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으나 혼자서는 안된다는 것을 체험신앙으로 받게 되었다. 공예배를 충만함으로 드리고 있다.
C: 지난 주는 유독 모임이 많았다. 지인의 생일파티도 있었고 결혼식도 있었고 별로 만나지 않았어도 되는 사람과 만나는 일도 있었다. 원래 혼자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넘어져도 일으켜 줄 자가 없는게 화라는 말씀에 공동체를 찾게 되었다. 공예배에 다 참석하려고 하는데, 수요예배가 특히 좋다. 솔직히 요즘엔 주일예배 전에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하다와서 그런지 집중이 잘 안되는 부분이 있다.
D: 부모님 모시고 공연보고 외식했었다. 요즘은 집에 일찍들어가고 혼자 시간 보내는 게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나도 수요예배에 좀더 집중이 잘 되는 편이긴 한데, 예전에 사람들과 인사하느라고 바빴었는데 요즘은 교회에서도 사람을 만나는 목적이 변화된 것 같다.
A: 내 의로 내 생각대로 살은 것, 내 생각들이 그냥 나의 생각일 뿐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체험으로 알게 되면서 할 말이 생겼다. 그리고 체휼해주는 게 은혜를 끼치게 되는 것 같다.
B: 확실한 체험이 있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은혜로 되는 것 같다.
C: 가족에 대해서는 쉽지가 않다. 여전히. 예전엔 머리로 이해한 것들이 체휼하게 되어서 은혜를 끼치게 되는 것 같다.
D: 은혜는 못 끼치고 있는데, 용서할 수 없었던 아빠를 용서하게 되었다.
A: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열매를 많이 주셨던 것 같다. 하나님과는 대화하듯 말한다.
B: 예전에 교통사고 보험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기이히여김을 당할 일을 했었다.
C: 교회 다니는 것 자체를 기이히 여긴다. 주일에 쉴 때 기이히 여기는 게 있다.
D: 나도 주일에 쉰 것을 기이히 여긴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직원들이 그러면 안된다고 했었다.
Q. 육적으로는 최고의 만족을 주는 인간관계일지라도 믿음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것때문에 애통한 것이 있습니까? 오직 성령이 임해야지만 막힌 관계가 뚫리는 것을 믿고 간구하십니까?
여러분의 언어는 흩어졌습니까? 하나가 되고 있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 간증을 들을 때 내게 임하는 말씀으로 알아듣고 있습니까? 설교자나 간증하는 사람이 내 흉을 보는 것 같아서, 잘난척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십니까? 세상을 놀라게 하고 세상에 충격을 줄 믿음의 적용이 있습니까?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그런 적용을 해도 이해받지 못하고 조롱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 모든 걸 감당할 부활신앙이 내게 있습니까?
A: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이 있는 데 그런 관계라고 생각된다. 내 말씀으로 들리는 데 가끔 누가 들었으면 하고 콕 짚어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요즘은 가족 간에 이해가 안되고 미운 사람이 있는데 아직 관계회복을 기도하고 있진 못한다. 최근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나도 놀랄만한 적용을 하고 있는데, 조롱받으나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기도하며 말씀보고 간다.
B: 육적으로 최고의 인간관계가 없다. 누구누가 들어야지 하는 게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긴있다.
C: 친한친구인데 그 친구는 가족의 평화가 중요하다. 내게 들리는 말씀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때로는 누가 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나도 가족 중에도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환경이 안 되어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놀랄만한 적용은 주일에 쉬는 것.
D: 세상의 인간관계가 다 끊어져서.......그런데 간혹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나면 재미가 없을 때가 있다. 나도 내 말씀으로 들리는 데 어쩔 때는 누가 꼭 들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주일에 쉰 것이 가만 생각하니 놀랄만한 믿음의 적용이었던 듯. 그 땐 예배드리는 게 훨씬 좋았었다.
▶ 기도제목
김희정E
1. 우울하고 짜증나는 저의 인생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따뜻한 마음되어 사랑의 언어를 쓰는 자가 되길.
김은실
1. 구원자로서 빠져나가지 말고 타이밍 잘 보고 전해야 할 때 잘 전할 수 있도록 상황을 열어주시길.
김혜진
1. 기도와 말씀묵상
2. 흩어진 마음 중심 잘 잡기
3. 성령충만을 구합니다.
"모두모두 내일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