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과 나중>
- 노록수 선교사님 -
94년도를 떠나 선교지로 갔다. 20년이 조금 넘은거 같은데 하나님께서 벌교에서 자라게 하셔서 목사님처럼 표준말을 정확하게 구사를 하지 못할 때도 있다. 책을 통해서 가정아 살아나라, 여호수아 강해서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감탄을 많이 하였다. 실제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이 축복이고 감사하다. 함께 예배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고 은혜이다.
욥기서를 펼치면 너무 깊고 어렵지만 특별히 더 어렵다. 욥기서에 대해서 책으로 은혜를 많이 받고 있는데 우리들교회 와서 지난 1월부터 욥기서 8장7절을 가지고 나누고 싶다 했는데 올해 표어가 욥기 8장7절인 것이다. 성령님께서 교회 표어도 모르고 왔는데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 나누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딱 이런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신 것 같다. 오늘 1,2,3부를 통해서 4가지의 테마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1. 욥의 친구들의 옳은 말들(사실은 욥에게는 맞지 않았던 말)
2. 고난 앞에서 침묵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모두 잘될 줄 알고 예수를 사정없이 믿었더니 그렇게 성경에서는 기도하면 된다고 하시는데 들어주시지 않는다. 기도를 하는데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신앙안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난 안에서 가만히 계시는 것 같은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3. 욥이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와 착각.
잘못된 말들. 욥기서를 읽으면서 순진하고 신앙이 최고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욥기서 38장~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서 격렬하게 화를 내신다. 그것도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나타나시고 어지간하면 폭풍우를 대동하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마지막 심판때에나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꼐서 나타나시겠지만 굳이 폭풍우를 대동하고 나타나실 필요가 없는데 마음이 편치 않고 화가 나셔서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 욥에게 나타나셔서 질풍노도 같은 질문을 하시면서 대답하라고 촉구하신다. 심기가 불편하셨던 것이다.
4. 기독교에 있어서 처음와 나중의 구속사적인면을 나누려고 한다.
욥기서의 대부분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욥의 친구들의 말과 욥의 말 하나님의 말씀이 섞여 있는데 욥의 친구들 말이 한결같이 옳다. 네가 정직하고 청결하고 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 처음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도다. 빌닷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8장이 끝나고 9장에서 빌랏의 말을 듣고 네 말이 옳다고 욥이 인정한다. 욥이 친구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닌데 옳은 말이 때로는 사람들을 굉장히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할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뼈 아픈 교훈을 예수 믿는 우리가 가졌으면 좋겠다. 이걸 붙잡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교회 공동체 가운데 살면서 목장, 교회, 부서에서 욥의 친구들같이 지혜 없는 옳은 말을 하게 도와달라고 하자. 내가 생각해서는 이게 맞는거 같지만 내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이 다 옳은 것도 아닌데 예수 믿는 우리들은 진리와 관련되어 있기에 이 말이 맞으면 얼마나 강조하는지 모른다. 상처를 받는 것을 놓치고 가는 것이다.
내 말이 다 맞는게 아니라는 유명 목사님의 말이 평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지혜로운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생각이지 다 맞다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이런 여운을 줘야 하지 않을까. 선교지에서 20년 넘게 있지만 얼마 전에 선교지에서 설교하러 가다가 큰 차사고가 났었다. 죽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셨다. 병원에 실려가나보다 하면서 의식이 돌아왔을 떄 가장 먼저 입에서 나온 말이 주여 내 영혼을 주님께 부탁드린다는 기도 밖에 안 나왔다. 진짜 신앙이 무서운 것이 죽음의 순간에 주님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주님 내 영혼을 주님의 손에 부탁드립니다 하는 기도 밖에 없었다. 가다가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나님께서 3번의 걸친 수술을 통하여 기적적으로 살려주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병원의 환경에서 많은 흑인 목사님과 선교사님들이 문안을 많이 오셨다. 감사하게 옆에 앉아서 성경, 이야기, 찬송을 많이 해주셨다. 그 중에 나는 예수 믿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 건강을 지켜주시는지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간증을 하시는데 하나님이 감기 한번 안 들게 해주셨다는데 자기 은혜에 자기가 도취해서 하는데 속으로 목사님은 좋겠다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격려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섭섭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간증이 나를 가슴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신앙생활 하면서 옳고 내가 은혜 받은 것을 과시하는 것 보다 지혜로운 것이 중요한지 아닌가 생각한다. 지혜는 생명 나무와 와 같은 것이고, 잠언의 전체 주제인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혜로우면 좋겠다. 신앙 생활하면서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가까운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복이 되고 그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자체가 은혜스러워서 듣는 사람이 시험 받는다면 그것은 혼자 간증해야 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강해더라도 약한 사람에게는 나의 강함이 시험이 되는 것이다. 힘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훈 목사님이 이런 글을 쓰셨다. ‘옳은 말을 절제하라, 사람을 코너에 몰지마라.’ 욥의 친구들은 욥을 코너에 계속 몰아 넣는다. 네가 고백하지 않은 죄 때문에 코너에 몰아붙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옳은 말을 함부러 하지 마십시오. 옳은 말은 멍청한 말 보다 사람을 더 찌른다. 온유한 사람은 못됬다는 말을 들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못된 사람에게 진짜 못 됐다는 말을 하면 폭발하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믿음이 좋다고 다 지혜롭지는 않는다. 할말이 없기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교만한 사람에게 잘난척한다고 하면 성질을 낸다. 같이 반격이 오고 전혀 변화되지 않고 원수가 된다. 사람을 코너에 몰지 말라. 누구도 감당치 못 한다. 부부싸움에서 상대를 공격하지 말고 자신의 부족한 면만 나열하라. 정 화를 내고 싶으면 상대를 포용하지 못 하고 나의 온종한 작은 마음과 믿음을 용서해달라고 자기의 옹절함에 분노를 해야지 그 상대의 연약함을 가지고 화를 내니 싸움이 되는 것이다. 바르고 정확한 말은 사람을 죽일 때가 있다.
옳은 사람이 사람의 영혼을 효과적으로 죽일 때가 있다. 짧은 몇 마디의 말로 병들게 한다. 사람은 모두가 약하다. 공격하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다. 삭개오를 받아들이고 삭개오와 식사를 하시고 사람들이 전부 손가락질 하는 창녀가 주님의 발을 붙 잡고 그 머리로 주님의 발을 씻을 때에 직업을 아시지만 주님은 가만히 계셨다. 약한 자의 친구가 되셨고 허물과 죄 많은 죄인의 친구가 되셨던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시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날카롭고 옳은 척 하고 잘난 척하고, 만약에 그런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의 힘이 되겠는가? 사람의 허물을 사랑의 눈으로 보지 못 하고 자신을 아파하며 주님께 사랑의 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욥의 친구들은 신앙적으로 말씀을 잘 알고 너무 옳아서 친구를 코너에 몰아 넣고 가슴 아프게 했다. 하나님의 진노까지 사게 한 것이 친구들이었다. 연약한 사람들은 옳은 말이 아니라 위로, 격려하는 말이 친구들, 자녀, 부부간에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해야할 제목이 욥기서가 어렵기는 하지만 욥의 친구들 같은 신앙생활 하지 않게 해달라고, 옳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게 해달라고 물론, 나라, 역사, 사회 정의 앞에서는 옳은 것을 주장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 가정,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사람의 힘이 되는 말, 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된다. 내가 은혜 받은 것 자랑하다가 다른 사람 힘 빼게 하지 말라고 기도해야 한다
두 번째 교훈은 고난 앞에서 기독교인에게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알아보자
기독교 서점에 가면 수 많은 책들이 기도 응답의 비결이 무엇인가 있다. 응답받고 축복받는 비결이 무엇이냐. 아예 미래 완료형으로 기도하면 된다고 한다. 나중에는 성경이 심리학 적극적 사고 방식으로 간다. 기도 응답의 비결만 추구하다 보면 기독교가 성경에서 이상한 데로 간다. 말씀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골고루 섭취하면 괜찮은데 보고 싶은 것만 보다면 기독교가 성경에서 말하는 다른 것이 나온다. 신천지, 이단 악한 이단들도 자기들만 좋아하는 이상한 논리를 뽑아서 완전히 좋은 말씀이라고 사정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말씀 전체를 꾸준히 묵상하지 않으니 말씀을 잘 모르니 이단에 넘어가는 것이다. 성경에는 모든 것에 응답과 기적이 아니고 욥기서를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그 아픔과 고통을 바라보면서 침묵을 하시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욥의 신앙을 너무 높게 평가하셔서 하늘에서 자랑하시다가 사탄이 욥이 질투가 나서 복 받아서 잘 믿죠 하니 아니다 세상적인 복을 안 받아도 내 종 욥은 나를 신실하게 믿는다고 하나님께서 욥을 굳게 믿었기에 욥이 그런 아픔을 당한 것 아닌가. 그 아픔 당하는 욥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편하실리가 있는가. 욥이 눈물 흘를 때에 하나님도 눈물 흘리셨다. 미국의 신학자가 많은 신학생들에게 간증을 하면서 유명한 학자가 가정사를 이야기하였다. 아내가 정신 분열증이 있어서 30년동안 지옥같은 생활을 했다고. 우리 아들 아담과 분노가 폭발할 떄 나를 죽이려고 하고 칼을 들고 나타나고 많이 찔렸다고 한다. 교수님이 하는 말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어떤 사치스러운 기도도 할 수 없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단발과 같은 외침은 하나님 나를 살려달라고, 죽겠다고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이 기도의 전부인 것으로 아내의 정신분열이 너무 심해서 그랬다고 한다. 그 고통의 세월을 지내고 교수님이 하시는 말이 왜 이렇게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기게 하셔서 숨을 못 쉬게 하시냐고 고난 앞에서 하늘에서는 전혀 응답없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처럼 다른 사람들은 간증을 통해서 대단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막혀 있는가 고통 속에서 30년만에 꺠달은 것은 조금씩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를 원하는구나, 은혜로운 설교를 하지 않지만 집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교수님의 이야기를 하면 잘 들어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이 것이 왜 우리들의 아픈 고난 앞에서 때로는 오랫동안 침묵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다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그 응답을 응답 안 하는 것으로 응답하셔서 내 인격이 변화되고 존재와 성격이 달라지고 누군가 소수를 위해서 쓰임 받는데 쓰시고 싶어서 나를 만들고 계시다면 빨리 응답하시면 내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빨리 응답하시지 않는다. 고난이 그런 면에서 유익하다. 하나님만이 그 일을 아시는 데 이런 인생의 신비함을 우리 인간은 모르는데 하나님은 큰 섭리를 가지시고 허락하신 것이다. 신앙생활 하면서 의문문을 가졌던 것중에 하나가 하나님은 나를 왜 이렇게 외롭게 하실까 이것이 늘 의문이였다. 지금의 선교를 하는데에 너무나 도움이 되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쓰시려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라고 외로움 속에서 자라게 하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2008년 10월9일에 설교하러 가는데 왕복 1000km거리 였다. 가난한 흑인 교회에서 고생하는 흑인 목사님을 보면 어디든지 요청을 하면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싶다. 영어를 잘 못하는데 힘들어도 선교사가 지어야할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아들과 번갈아가면서 운전하고 있었는데, 결혼 기념일에 사고가 나기 직전에 나눈 이야기가 요즘 시험들려고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근에 북쪽 아프리카에서 선교사 자제님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고 너하고 나이도 비슷하고 의대를 졸업하고 선교사로 섬기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그랬을 수가 있겠는가. 꽃 다운 아들을 어떻게 사고날 비행기에 타게 하셨겠는가. 진짜로 하나님이 살아계신지 시험받았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또 한가지 비보를 들은 것이 선교지를 방문하겠다는 장로님이 있었다. 근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못 오게 되었다고 이유가 슬픈 목소리로 제 아들이 한 달전에 결혼을 했는데 많은 목사님이 오셔서 아들이 신혼여행을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아들의 시체를 찾으러 비행기를 타고 가는 장로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가. 세상을 살면서 남아공에서 비행장에서 두 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군대를 갔다와서 예수 전도단 훈련 받으려고 남아공까지 왔는데 바다가 아름다워 팀들 일행이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휩쓸려서 실종된 아들 시체도 찾지 못 하고 부모가 공항에 도착한다는데 부모를 기다리는 내가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차에 태워서 다른 선교사님들과 그 장소를 가는데 아무 말도 다들 없었다. 부모님들이 의외로 태연하셨다. 멀리 바다만 보다가 시체를 찾지 못 했다. 아버님 어머님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시냐고 물었더니 놀라운 간증을 하시는데 목사님 너무 슬퍼서 처음에 기절을 했고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마음을 붙잡아 주셨다고 그날이 고난주간이었는데 그날 아들이 교회를 왔다고 성찬을 준비하던 수 장로님이 보셨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신다. 예배 마치고 부모님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온 적이 없다고 그리고 나서 남아공에서 그 전화를 받으신 것이다. 너무 꿈 같아서 쓰러졌지만 마지막 아버지 밑에 가기 전에 교회에 왔다 갔구나 우리가 논리로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매일 기도를 하시는 할머니께서 손자가 물에 고통을 당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나중에 보니 하나님께서 간섭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죽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하겠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선교사님이 아들과 이런 것을 이야기하였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성경에는 기도만 하면 다 해주신다고 하시면서 죽을 사람은 이렇게 다 죽는 것이 이해가 되냐고 아들에게 말해서 이런 하나님이 은혜가 되냐고 물었다. 우리가 단순히 성경에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것만 강조하면 문제는 욥과 같이 물음표가 신앙에 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겠는가? 아들이 하는 말이 아버지 욥이라는 사람이 자녀 10명이 다 죽었다고 하는데 그 선교사님은 다른 자녀가 있지는 않냐고 장로님은 다른 자녀가 있지 않냐고 모든 걸 다 잃었어도 욥은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지 않았냐고. 그러니 그래야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고 있다가 자동차가 큰 사고가 났다. 사모님이 하나님이 남편을 데려가도 결혼기념일에 데려가냐고 하는데 말씀을 마음에 주시는데 너의 미래를 위해서 평안을 예비했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 하시니 마음을 붙 잡고 현장에 찾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병원 가는 길에 의식이 돌아와서 도착하니 10개가 뼈가 부러지고 생명에는 지장 없다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내 영혼을 주의 손에 붙잡아 주시옵소서 하는데 아들이 선교사님 손을 잡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손을 잡고 아들이 간증을 하는데 평생 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뭐라고 하셨는지 물었더니 아버지에 대한 말은 안 하고 나에 대한 책망을 하셨다고 아버지가 절대 죽을 것이라고 생각 못 했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인생의 먹구름이 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했는데 그 때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책망을 하시더라. 그 동안 살면서 아버지를 믿고 살았는지 나를 믿고 살았는지 물었다고. 아들이 선명해서 대답을 한국말로 하나님 믿고 살았다고 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언제가는 하나님처럼 항상 너와 함께 같이 있지는 않는다고. 하나님은 항상 살아계셔서 네 인생의 임마누엘과 함께 계시는데 왜 이리 낙심하고 걱정하냐고 너무 강력하게 도전이 되어서 현장에서 알겠습니다 아버지 죽어도 하나님 믿고 살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죽어도 다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시는구나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욥기서 8장은 욥의 고백인가 친구의 고백인가? 친구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샀다. 빌닷이 하는 말을 가지고 식당에 걸어나야 하는지, 의지해야 하는지, 우리가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욥의 상황에는 맞지 않았지만 맞는 말이다. 반응을 하는 말이 참으로 그것이 진리이다 라고 한다. 욥도 친구의 말도 인정하지만 내 상황하고는 맞지 않는다고. 바리세인들이 하는 말은 들어도 행동을 닮지는 말라고. 이 말씀이 평생 심령에 잘 박힌 것처럼 못처럼 남을 것이라고 믿는데 기독교는 구조가 처음에는 약하고 나중에는 창대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는 모른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렇다. 기독교의 근본인 예수님이 세상에 처음에 오셨을 때 미약하였다. 아무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다고. 얼마나 미약한지 하나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셨는데도 예수님은 마굿간에 오셔서 알아주는 사람은 소수의 목자들과 천사들과는 없고 몰랐다. 그 미약하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떄 얼마나 고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셨는지. 우리는 구원하러 오셨지만 마귀는 멸하러 오셨다. 마귀 입장에서 긴장이 되었을 것이다. 붙어보자고 마귀하고 예수님하고 마주쳤는데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했는데 마귀가 겉모습에 엄청 실망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굉장한 영광으러 설 줄 알았는데 너무나 평범하고 한 사내를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가 그래가지고 처음으로 묻는 것이 너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증명해보라고 하였다. 이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고 보여 줘야지 내가 안다고 한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지 않으셨다. 사람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내 능력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지 영광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다. 이제 모두 끝이라고 더 이상 그를 기대할 수 없다고 자칭 메시아를 죽이라고 자기 자신도 못 구원한 사람이 어떻게 메시아냐고 증오와 멸시 사이에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미약하게 돌아가셨다. 기독교는 이렇게 시작이 미약하였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이 끝났다고 기독교가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끝내기시 전 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3일만에 부활하셨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지구 전체로 이어져서 여러분과 제가 예수의 이름을 알게되고 지금도 계속 번져가고 있다. 겨자씨 같이 작은 것이지만 계속 자라고 있고 많은 새가 깃들 정도로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안식하고 구원을 얻고 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기독교는 어느 정도 창대하게 될 것인가? 모든 민족과 모든 방언과 모든 인간들이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모든 우상들이 주 앞에 무릎을 꿇고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떄 시작은 미약하였는데 심히 창대하구나 느낄 것이다.
하나님은 욥만 시험당하는 걸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도 시험 받는 자리에 이끌었다는. 오직 예수님만 사탄의 시험을 이겼다.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확신하고 사랑하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탄의 타겟이 되는 것 같다. 마귀가 계속 시험을 하는 것이다. 끝까지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내 신앙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으셔서.
욥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내가 저주하고 자살하자고 했지만 결코 아내의 말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날 때 빈 손으로 왔는데 좋은 것을 다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을 누린 것만 해도 다 감사하지 못 하는데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마귀는 그 고백을 듣고 부끄러워한다. 내가 실패하고 욥처럼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전근같이 나오리라. 창대케 하시리라 믿음의 고백을 고백하지 못 할 상황에서 고백할 때에 하나님게서는 그 영광을 받으신다. 욥에 대한 환상을 깨시고 하나님이 화가나게 욥이 말하는 것을 다시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욥의 잘못 가운데 욥기 19장 6절에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싼줄 알지라. 이렇게 망하신 하나님은 너무 나를 억울하게 하신다고. 하나님 섬기면서 잘 된 사람은 할렐루야 하지만 억울한 사람은 하나님께 섭섭한 기분이 든다.
결코 사람을 억울하게 하시는 분이 오직 하나님이시다. 고백해야 한다. 욥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이 억울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섭섭해 하셨다. 요셉이 형들에게 시기를 당해서 구더기에서 죽을 지경에 얼마나 하나님을 찾았겠는가? 그러고 에굽에서 다른 신앙을 지키려고 죄 안 지으려고 여성이 유혹하면서 동침하자고 했을 때 지켰다면 더 잘되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감옥에 보내셨다. 억울하겠지 요셉의 모습에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요셉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 그렇게 믿는 요셉은 고난 속에서도 형통하게 하신다. 욥의 말중에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원수로 나를 여기시나이까. 하나님의 가슴에 못을 박는 너무나 주님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하였다. 고통당하니까 이유없이 실패하고 망가지니 나의 얼굴을 가리신다고 원수로 여긴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결코 그의 얼굴을 백성에서 돌리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내가 고통중에 있다고 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나를 위한 뜻이 있어서 이러신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믿음의 고백이 나올 때 하나님게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시겠는가? 주님이 까닭없이 이유없이 백성을 괴롭힌 적이 없다. 욥에게 어마어마한 계획을 가지시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고난 받을 것을 욥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고 계시는 것이다. 나의 구속사자 살아있으니 그가 땅 위에 설 것이라.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이라고.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하듯이 가죽을 벗어서 큰 복을 볼 것이라고. 욥의 깊은 고난을 통해서 이 땅에 오셔서 아들을 보내셔서 부활하실 것이라고 위대하게 쓰임 받은 것이다. 의도적으로 허락하신 것이다. 영적인 교만이 깨질 수 밖에 없다.
나도 모르게 교만하고 있는 습관이 된 것이다. 내가 뭔가를 잘 하는 분야가 있으면 타락한인간이 타락할 수 밖에 없다. 교만 중에 영적인 교만이 가장 안 좋은 것이다. 죄가 공개적으로 들어나도 공개적으로 회개를 하는가? 안 한다. 이렇게 회개가 없는 지도자가 신앙이 무슨 신앙이겠는가? 나도 모르는 영적인 교만이 있는 것이다. 죄를 들어내도 태도가 그런데 안 드러내면 영적인 교만이 어떻겠는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영적인 교만 인 것이다. 내 영적인 교만이 깨질때가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 중 허락하신 깊은 섭리가 있는 것이다. 욥이 처녀를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나의 밥을 안 먹은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의 음행, 음란의 죄를 짓지 않았다면 내 신앙이 좋은 것인가 하나님이 붙잡아 주신 것인가? 붙잡아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 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안 해 이러면 교만하다는 나의 고백일 뿐이다. 청년들은 어른들의 말을 잘 안 들으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이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수백명이 왔다 가는데 95%가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는 준비도 하지 않는다. 선교지까지 와서도 선교사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다. 뭔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은혜가 있어도 겸손한 신앙보다 대단한 신앙은 없다. 청년들은 왜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할까.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영적인 교만이다. 욥의 그런 면이 있었기에 하나님게서 한풀 져 주신 것이지 욥은 겸손한 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욥이 믿을 수 없는 말을 한다. 내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은 것이 무슨 유익이냐.고 한다. 욥의 말을 듣지 마시고 이 악한 시대에 젊은이들 가운데 세례를 본 받지 아니하고. 신앙 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어떻게 경건한 생활이 무익하냐고 할 수 있는가? 욥과의 반대의 말을 하고 싶다. 경건한 것 보다는 이 시대에 좋은 것이 없는 것이다. 작은 경건 생활 하려고 날마다 큐티하고 몸부림 치는 것이 정말 보배롭고 귀한 것이다. 근데 욥보다 경건한 삶보다 무슨 유익이냐 하니 얼마나 하나님께서 섭섭하셨겠는가.
그래서 욥의 친구가 반발을 한다. 욥은 자기를 의롭게 생각하면서 불 공평한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렸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 만들게 할테니 조급하게 여기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아들이 전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엄청난 고난이 캄캄하게 있는데 하나님이 인도해주시면 가고 그리 안해주실지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산다면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바란다는 기도를 하기를 바란다.
<기도 제목>
이주홍
1. 결혼준비에 순조로움 주시기를
2. 건강에 무리 없도록
3. 매사에 감사함 느끼기
김경배
1. 결혼 준비에 순조로움 주시기를
2. 여자친구 건강에 무리 없도록
3. 욕심 내려놓을 수 있도록
신천섭
1. 말씀 잘보고 살도록
2. 친동생 결혼 준비 잘 되도록
3. 공동체에 잘 묻고가도록
심재경
1. 목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2. 좋은 배우자 만날수 있게..
3. 신앙심이 더 깊어질수있도록
김진우
1. 건강 잘 지킬 수 있도록
2. 수영 꾸준히나갈수있도록
홍주형
1. 양육교사
2. 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