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4 19 소명
골로새서1:1-2
어떤 고통이나 어려옴이 예상되면안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역은 역사적입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해서 사역을 회피하면 교회는
그 자체로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교회는 병이 들어서 성장을 멈춘 식물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사무엘의 결론을 들었습니다 결국 다윗 때문에 우리모두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역에서 섬세함이란 아주 단순하게 말해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대해 마음의 결을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눈물을 먹는다는 것은,
눈물을 직접 흘리는 사람에게는 물론 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에게도 유익합니다
이 사역은 예배공동체인 교회에서 끝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들 교회가 성도의 수도 많아지고 규모도 커졌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사역의 섬세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무엘 상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길 원하실까 묵상을 해봤습니다
제가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가 개척교회 초기에 처음 전했던 골로새서를 다시 펴보았습니다
오히려 그때가 더 뜨겁지 안았을까 싶었지만 감사하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굳이 찾아본다면 사역의 지경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는 것이
초기와 달라진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무너진 한 사람, 한 사람을독특한 방식으로
개별적으로 부르시고 세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들 교회 전체에 공동체적 사명을 주시고
이에 응답하는지 아니면 내 자신, 내 가족, 내교회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우리들끼리만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계시다고 생각이 듭니다
지난 주 설교 때 저의 고백처럼 여기까지 온 것은 제 자신으로서는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개인적으로는 늘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하다 생각이 되는데 사무엘이 끝나니
할일 다했다 충분하다 몸이 아프고, 나이도 많이 들고 이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의 부르심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을 알기에 내가 쉬고 싶다고 쉬고, 여기까지라고 제한 짖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기다리셨던 아버지의 부르심처럼
생애 마지막까지 구원의 복음이 미처 전해지지 못하고 그곳에 먼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 교회를 부르신 소명에 응답하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로새서 설교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같이 교회에 대하여 다룬 쌍둥이 서신입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조금하게 모인 교회였는데
금욕주의, 천사 숭배 등 우상주의적 요소와 거짓가르침 이단사상 등이 침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는 우리도 흔들리는데 더욱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초대 기독교에는 굉장히 이단 때문에 전체의 서신서가 이단을 주의하라 입니다
종교적 혼합주의에 물들게 되었습니다 개척자 에바브라는 옥중에 갇혀있는 바울에게 보고했고
바울은 감옥에서도 옥중서신을 보냅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환경에서도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이
소명 받은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날에도 수많은 사설들이 난무하지만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완전함과 탁월하심이 있습니다 고난이 해결되어서 아니면 고난이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신앙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까?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부르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 하고, 교회 밖 세상에 예수를 전해야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골로새서 1장 1절~2절까지를 살펴보며
나와 우리들 교회에 주신 공동체적 소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디모데를 봅니다그 뜻이 있으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소명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한 개인에대한 의도와 계획을 말합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이 소명입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명령하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명령하는 것,
소명은 부르심으로 번역됩니다 성경을 소명이라는 시각으로 본다면 그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붙인다는것이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만들거나 존재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이름표를 불러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창조적으로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행위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이셨고 그로 인해 자기 백성으로
재정하셨고 창조하셨습니다 소명이란 현재 우리의 모습, 행위와 다 관련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장차 우리의 될 모습과도 관련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그분의 백성이 된 것과 같이 신약에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때는 개별적인 소명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소명도 부여하십니다
개척초기에 어떤 집사님 가정이 우리들 교회를 놓고 기도하면서 보냄 받은 곳이 이곳인가 저곳인가
기도하면서 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섬기던 교회에서는 주일예배 시간에 축복하며 파송하여 주셨습니다
그때에 개척교회에 파송하여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줄 몰랐습니다
그런 분들이 우리들 교회에 처음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빚진 자 입니다 이렇게 개인도 소명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들 교회도 부르심 받은 곳이 어디인가 하나님의 소명이 있는 곳입니다
말씀묵상으로 가정을 살려내는 소명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 사사기 큐티를 했습니다 드보라가 사사가 되어 40년 통치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바락은 능력의 용사였지만 드보라 밑에서 본인의 영광을 제쳐두고 오직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2인자를 자청하면서 드보라를 의지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장군 시스라를 죽인 것은 드보라가 아니라 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히브리서 믿음 장을 보니까 드보라와 야엘이 아닌 시스라를 죽이지 못한
바락이 올라있었습니다 왜일까요? 그때나 이때나 여자가 리더십을 가지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전쟁 없는 태평시대가 지속되니 이스라엘 남자들이 약해지고 철 병거 구 백 대에 학대를 받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자 사사 드보라를 세우셨습니다 군대 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자이며
용사인 바락이 철저하게 드보라를 사사라 세우고 순종했기에 믿음 장에 올라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나라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6.25전쟁을 지나 지금은 태평시대가 이어지니 남자들은 약해져
음란으로 가정이 깨지고 여자들의 통곡소리가 진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시대가 이렇게 쓰임 받는 것 뿐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결국 남자들을 세우기 위해서 저를 쓰시는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도 여성 지도자는 극소수입니다
제가 목회를 한다고 여성들이 모두 나가서 목회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성들의 역할은 남편과 자녀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일차적으로 보입니다
그럼으로 저를 세워주시는 목사님들은 우리들 교회든 아니든 모두 믿음 장에 올라가실 줄 믿습니다
그만큼 여성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기에 바락이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교회 남성 여러분도 여성 리더십을 인정하셨기에 나중에 천국가면 저보다 상이 크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천국에 가기만 한다면 화장실 옆이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성이 힘든데 그때에는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여성은 수를 헤아리지도 않았고
버려도 물건도 안 되는 시절에 드보라를 세워준 바락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네가 큐티를 하면서 이런 것이 말씀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제 주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이 우리들 교회의 소명입니다 남자들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는 것,
시대적으로 하나님이 저를 잠시 사용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해서는 안되고
뜻이면 어떤일도 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이런 각자의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름 부으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힘들다면소명을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람입니다
소명하면 어려운 것 같지만,
하나님께 부르심 받고 소명의 자리로 가는 구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자리는 어디인가요?
2 소명에는 동역자가 있습니다
진정한 소명라면 형제라고 부를수 있는 동역자를 보내십니다
디모데는 배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어서
바울의 동역자가 되기에는 출신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제자가 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이런 디모데였지만 일차 전도 여행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한결 같이 믿음이 성장하여
바울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형제로 불림을 받습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가르칠 때 이런 믿음의 골무를 키워낼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내 힘으로 한다면 생색뿐이 낼 것이 업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목회하기 전까지
대학에 출강을 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피아노를 잘 가르쳤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제자를 키워냈는가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습니다 다 여자 제자들이어서 모르겠는데
그 많은 학생을 가르쳤어도 스승에 날에 연락하는 사람은 몇 명 없습니다
전적으로 제 삶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받고 가르쳤기 때문에 결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르치면서 돈을 받지 않아도 이렇게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을 하나도 안 받고 가르치는데 하루 종일 떠들어도 기뻤습니다이것이 소명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소명은 다릅니다 은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은사는 십자가를 통과하는 고통을 지나야
자기의 은사 소명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믿음으로 양육했던 학생들은
잊지 않고 찾아옵니다 어떤 때는 저를 보며 눈물을 흘리며 마치 엄마를 보는 듯 합니다
그래서 집회를 가보면 가난 때문에, 부모와 불화 때문에 말씀을 들으러 왔던 아이들은 저보다더
훌륭한 적용을 하면서 말씀으로 삶을 살아내는 아이들을 종종 만납니다
또 우리들 교회에 일꾼이 된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교회와 저의 목회를 섬기고 있는 제자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저와 함께 늙어가며 저의 동역자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이며
하나님의 동역자로 섬기고 있는 모습에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제 고난이 얼마나 쎄면 피아노 선생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요
돈이나 잘 받고 편히 살다가 갈 수 있었겠지요 이건 특별히 우리 부모님, 남편이 다 돌아가신뒤에
학교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교회도 알맞게 나가서 성가대 반주도 하면 알맞게 다들 칭송할 것이고
또 제가 소명을 찾기 전에 함께 놀던 부류는 절대로 디모데와 같은 부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에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은혜로 알았기 때문에 세상의 행복을 찾는 삶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쳐놓고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서 행복을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오산이라는 것이지요 인생은 살아봐야 그것을 알게 되는데
우리 자체가 불완전 하기 때문에 끝없이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줄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내가불완전 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불완전 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내가 가지지 않은 세상적 스펙을 가진 사람과 주의 일을 하고자 합니다
학벌이 있어야 하고, 믿음의 집안, 어느 정도의돈, 영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어야 효과적으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수준에까지 끌어올리셔서
그의 동역자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고 부르짖는 내 인생의
밑바닥 수준으로 내려오셔서 나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상대방의 가치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사랑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셨고
더 나아가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로 또 형제와 동역자로 인정해 주십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았듯이 저 또한 지나면서 보니까 가시적으로도
지금 인생의 하프타임을 넘어서는 이때에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거친 사역자들이 동역자가 된 것을 봅니다
결론은 이런 것이구나 바울에게는 디모데가 있듯이 이런 과정을 거쳤습니다
요즘에는 정말 앉으나 서나 교회를 생각하게 되니까 교회 얘기를 같이 기쁘게 나누고 슬퍼하는 것이
가장 즐겁습니다 바울은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했던 사람인데
그와 함께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짖은 사람은 내세울 것 없는 디모데였습니다
제 태생과 작은 지식 모든 것을 떠나서 같은 것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고, 울고 할 수 있는 지체가
생겼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모든 것을 갖추고 기뻐하고, 슬퍼하기에는 참 힘들다는것을
수많은 사역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저를 보면서 기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바울처럼 하나님의 뜻으로 소명을 받고 디모데 같은 동역자가 생기면 지경이 넓어지고 힘을 얻어서
2절 말씀처럼 골로새 같은 교회로 나아가게 됩니다
- 소명의 자리에 함께할 동역자, 형제가 있나요? 있다면 누구인가요?
3 소명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합니다
지진이 골로새 지방에 있었고 이주를 통해서 골로새교회는 삼류의 도시로 전락했습니다
보통 힘들어지면 신 이단들이 판을 칩니다 내 힘든 환경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대부분 기복이나
이단으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현실을 직면하기 싫어합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열심히 사는 것을
하기 싫어합니다 나의 명예를 잃기 싫어서 직면하기 싫어서 그래도 내가 누구인데 외치며
이 세상에서 회복되기를 바라며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정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단에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 욕심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골로새 교회는 갑자기 삼류 교회가 되었지만
힘들었기 때문에 학대가 많아 간절하게 하나님을 부르짖어서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어서
2천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성경에서 언급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명이 있다면
디모데 같은 사람 골로새 같은 교회에 찾아가서 차별 없이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당장 내 자녀부터 차별을 합니다 아들과 딸을 출가시킨 어떤 부인에게 이웃이 물었습니다
따님은 어떤 사람과 결혼했나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너무 좋은 사위를 얻었어요 우리사위는
딸이 늦게까지 자도 아무 소리 안하고, 혼자 밥 챙겨먹고 나가고, 딸이 외출도 자유롭게 한다지요
또 저녁마다 외식을 한대요 너무 좋은 사위를 얻었어요 그러니 이웃이 어떤 며느님을 얻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분을 내며 말도 마세요 생각만 해도 불쾌해요 며느리가 얼마나 게으른지 아침마다 늦잠 자고
밖에 안 나가는 일이 없고, 집에서 밥하기 귀찮다고 한 달에 한 번씩이나 외식을 한다지모예요
딸은 매일, 한 달에 한번, 그러면서 가정교육을그렇게 시킨 사돈들이 한심하지 모예요
이렇게 아들과 딸을 두고도 차별을 합니다 며느리, 사위도 내 자식인데 전혀 다른 입장에서차별합니다
이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자식들을 차별하며 교육을 시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사위를 징계했는데 제가 차별해서 징계했을까요?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자녀들 중에
제일 인재이고, 제일 건강한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하기에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고의적인 실수가 아니었기에 제가 자책이 되는 일주일이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자유인이나, 건강한 사람 불편한 사람,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사람 사이에 모든 인위적인 구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녹아져야합니다
교회는 자발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끈이
우리를 묶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아무래도 공동체는 가족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비로 화를 내기도 하고, 때려주기도 하고 욕설이 난무할 때도 있지만 가족이란 내가 가면
받아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소명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소명에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있고, 소명에는 힘든 대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찾아가야 할 대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 내가 찾아가야 할 영육간의 힘든 소명의 대상골로새 교회는 누구인가요?
4 소명에는 은혜와 평강이 따라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합니다
은혜와 평강이라는 단어를 바울사도가 잘 사용하는데
은혜는 카리스라는 헬라식의 인사이고, 평강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식의 인사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소수민족이어도 선민의식이 너무 강해서 절대로 히브리식 인사만 하고
히브리어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서신이 쓰여질 당시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시대로
성경도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영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과, 육적으로 최고의 교만한 사람이
불이 붙은 그런 시대에 바울 사도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이 두 분화를 다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서에는 항상 은혜와 평강이라는
헬라, 히브리식 인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문화를 인정해 줘야 합니다
우리들 교회에 성전이 지어지고 많은 성도들이 몰려오고 있는 와중에 정말 힘든 시절을 보냈던 분들이
새로운 분들에게 바로 처방을 해서 상처받았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옵니다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관계에서 직분은 가졌다는 이유로 바로 처방할 때
사랑이 없는 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 전쟁을 모르는 시대가 점점 오고 있습니다
또 예를 들자면 우리들 교회 청소년 부는 고난이 많은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담당 목사님이 이 아이들의 눈 높이에 맞추어 주시느라 때로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험한 말도 설교 중에 종종 하십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참 많이 살아납니다
또 우리들 교회에 와서 양육을 받고 자라며 모범생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무조건 고난만을 외치는 세대는 지난 것입니다 히브리식과 헬라식의 문화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고난이 없어서 그런다고
우리에게 맞추지 못하는 것을 일축하기도 합니다 옳고 그럼이 절대 아닙니다
비 본질은 포기하고 혹은 포용하면서 전해야 합니다 초대 기독교에서도 히브리파 과부와, 헬라파과부가
싸웠습니다 정말 서로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본질적이 아닌 것은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나, 복음을 전할 때 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를 빌어주며 나라의 문화, 가정의 문화, 개인의 문화를 인정하면서
지혜롭게 포용할 때에 구원의 소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제사를 지내거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절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치리에 대해서 궁금해 했습니다 교회에는 세례와, 성찬과 치리라는 구성의 요소가이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교회는 참 세례를 많이 베풉니다 성찬은 건물과 시간이 없지만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 없는 가장 특별한 것은 치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치리하면 교회를 떠나는 것이 요즘 형태인데 우리들 교회는 청년들도, 평신도들도, 사역자들도 차별 없이
치리를 해왔습니다 평신도는 돈과 여자문제 방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치리를 했습니다
여자문제를 늘 오픈하는 교회지만 리더십이 있는 상태에서 오픈할 때에는 치리를 했습니다
사역자들은 도덕적 문제, 윤리적 문제, 우리들교회에 예배와 복음에 위배된다고 생각될 때 치리를 했습니다
겉으로 들어나는 실수 보다는 진심으로 성도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없고 말 실수를 하는 경우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치리를 했습니다 공개적으로는 이목사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자기 열심이 많았다고 고백한 이목사님이 잘 감당하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길 바람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동안 치리받은 모든 분들이 거의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들 교회의 치리는 다른 교회의 치리와는 다른 수위라고 생각합니다
치리의 내용은 몇 가지 직임을 내려놓고, 감봉하고, 설교를쉬고 자숙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신뢰하기에 치리를 감사하게 받는 것 같습니다 골로새서의 교회론을 다시 읽으면서
10년동안 정말 본질을 회손하지 않으려 울며, 애통해하며 왔습니다
그래서 이단들이 들어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가는 줄로 믿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큐티인을 통해서 원칙을 치키려 무조건 노력하다 보니까 그것이 감사가게도 사랑으로 느껴지셔서
교회를 떠나시는 분이 없어 너무 감사합니다
- 본질 때문에 비 본질을 포기하나요 허용하나요?
- 비 본질 때문에 본질을 포기 하나요?
성령을 이루기 위해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하되 하나님과연관시켜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오늘의결론입니다 우리가 말을 해도 어디를 가도 하나님과 연관이 돼야 합니다
1절 2절을 다시 읽어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다고 했습니다
은혜와 평강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에게로 온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빼면 얘기가 안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광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는 어떤 사실을 평가할 때 다 자기 생각대로합니다
과학자는 과학적, 경재는 돈, 심리학자는 심리학적관점에서 평가를 합니다 다 자신의 세계, 가치관을
최고로 여기고 갑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분별을 잘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 교회가 엄마와 함께하는 어린이 큐티와 청소년 큐티가 장년 큐티인과 같은 본문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양육 받는 최고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양육을 통해서 한 사람의 소명을 받게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소명에 자리는 어디 있나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름 부으심이 있을 것입니다 소명의 자리에 함께할 동역자가, 형제가 있나요? 내가 찾아가야 할 골로새 교회는 누구인가요?
소명에는 은혜와 평강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하고 있나요?
- 나눔
오늘은 한 주간의 삶을 나누고소명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통적으로 관계에서 참 어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는데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람입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의 결을 맞춘다 라는 말은 참 아름다운 말인 것 같습니다
각자의 환경의 환란, 사건들 때문에 갇혀있는 것 같아도 말씀을 적용함으로 예수님의 삶의향기가
우리의 삶에 들어날 수 있다는 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처럼 벅차 오르는 감동인 것 같습니다
존재의 이유,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 소명은참 따뜻한 말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는 과정이라고 오늘 말씀해 주셨는데
그래서 그 과정의 고난과 사건의 과정이 축복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이 있고 쉬어갈 공동체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며 소명을 다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관계에 있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고 한 걸음 나아가 적용하길 바람입니다~
양아씨네 공통 기도제목
- 야동 절제, 혼전 순결, 혈기참고 순교, 무기력 탈출
- 기도제목
88 양주영
- 할아버지 임종을 앞둠, 구원을 위해서
- 내 상황에 순종하지 못하고 혈기가 난다 학교생활, 공부하면서 효율적인 시간할애 할 수있도록
- 모든 아이디어 프로젝트에 기름 부어 주시길
90 박성진
- 생활예배,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90 박현우
- 가정 구원을 위해 더욱낮아질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 진로, 하나님의 뜻 묻고 구할 수 있도록
- 영육간의 회복
92 이강민
- 인간관계에서 낮아질 수있도록
- 생활예배 회복될 수 있도록
95 박진현
- 학교생활과 관계, 친구들에게 낮아질 수 있도록
- 관계에 대한 사모함 가질 수 있도록
- 시험기간, 시간할애 잘 할 수 있도록
-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95 서준원
- 학원생활, 공부 잘할 수 있도록
- 시간할애,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 진로, 하나님의 뜻 묻고 구할 수 있도록
95 김은호
- 볼거리, 영육간의회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