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2일
사무엘하 24:16~25
"재앙이 그치니라"
2013년 2월부터 시작한 사무엘상하 설교가 오늘로 끝이 난다. 다윗과 여행하며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런 아픔과 고통 속에서 다윗이 별 인생이 된 것은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 오늘은 다윗의 긴 여정 속에서 재앙이 그쳤더라의 말씀이다. 우리의 재앙도 이와 같이 끝나기를 바란다. 어떻게 재앙이 그쳤을까?
1. 여호와께서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다윗의 진정한 회개를 보시고 재앙 내리심을 그치셨다.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시는 하나님이시길 기도하라.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부도냈으면 감옥 가야 하고 혼외자식 낳았으면 키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쓸어버리실 만큼 우리는 악하다. 하나님께서 나의 악을 드러내시면 그 죄를 홍수로 쓸어버리시기 때문에 드러나야 한다.
심판은 1.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2. 죽으라고 주시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 할 때까지 주신다.) 3. 그런데 심판이 긴 것 같지만 긴 것이 아니다. 150일 동안 방주 안에 있을 때, 이것이 정말 길구나 하면 그것이 지옥이고 150일이 정말 짧다 하면 천국이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옥과 천국이 된다. 4. 완전히 심판이 끝날 때까지 잘 받아야 한다. (방주에 있는 기간은 물이 다 마를 때까지이다.)
(적용) 재앙 심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방주의 원칙을 지키나?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가자는 말이 이해가 되는가?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것은 사람처럼 하나님이 잘못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은총을 베푸셔서 이제 재앙을 거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때이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끝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적용) 여호와께서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시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2. 성도의 죄를 목자의 죄라고 회개할 때이다.
(17절) 우리의 재앙이 그치기 위해서 자기 죄를 봐야 한다. 아무리 백성이 잘못해도 내 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목자인 다윗의 마음을 잘 아시기 때문에 반역했던 백성을 미워하지 말라고 미리 백성을 치셨다. 7만 명이 죽어가니까 내 새끼인데 다 잊어버리고 무조건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목자의 태도이다. 선한 목자는 모든 것에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다. 다윗은 내 죄라고 한다. 항상 결론은 내 죄이다. 나 때문이라고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목장을 위해서 기도하던지, 살리던지 해야 한다. 목장이 은혜가 안 되면 다 떠날 생각을 한다.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모아주셨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목자 탓 하고 있지는 않나? 다윗의 회개로 공동체가 회복된다. 한 사람의 회개로 공동체가 회복된다. 회개 없는 목자와 목원이 모이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함이다. 서울대학에 나와서 예수를 못 믿으면 백수가 되어 다 쓸어가 버린다. 다 쓸어가 버리셨으니 하나님이 다시 시작도 해주시니까 거룩함을 이뤄가는 것이다.
(적용) 목원의 아픔의 내 죄라고 할 수 있나?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라고 할 수 있나?
3. 재앙이 그치려면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죄인이 화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경고를 준 갓 선지자가 해결책도 주었다. 경고도 주고 권고도 주고 위로도 주는 것이 선지자이다. 이렇게 항상 다윗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다. 단은 십자가를 의미한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이것이 예배의 회복이다. 왜 여부스 사람의 타작마당일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솔로몬 성전도 후에 이곳에 세워졌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이제 막 예루살렘에 재앙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장소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이 사건이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 왕국 이룰 때 가장 난공불낙의 성이 이 여부스였는데 이 가장 힘들었던 곳에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으라고 한다. 이곳에 형편없고 무시 받는 이방인 아라우나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예배자, 그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 앞에 형편없다고 아라우나처럼 부르짖으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우리를 찾아올 것으로 믿는다. 아리우나가 모든 것을 다윗에게 주었다. 나의 땅과 도구 모든 것을 쓰라는 것은 예배를 대신 드려주겠다는 말이다.
(적용) 나는 너무나 사랑해서 누구의 예배를 대신 드려주고 있는가? 시험을 앞두고 있는 자녀인가, 회사에 바쁜 남편인가, 세상에 빠져있는 아내인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대신 드려주면 안 된다. 항상 분별을 해야 한다.
4. 값을 치러야 한다.
(24절) 다윗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50세겔로는 타작마당과 소를 샀고 금 600세겔로는 모리아 산 전체를 산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값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최고의 값은 십자가이다. 예배는 내가 직접 드려야 하는 것이다. 값을 치르고 드려야 우리의 재앙이 그친다. 예배는 교회 올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니다. 집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복종과 사랑의 언어를 쓰고자 할 때, 십자가를 져야 할 때가 많다. 그것이 값을 치르는 것이 되어 내 것이 되는 예배가 된다. 복종할 수 없는 것을 복종하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여 이 자리에 오면 예배가 내 것이 된다. 그것이 값을 치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나의 희생과 죽음과 손해 보지 않는 회개는 값을 치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배가 내 것이 안 된다. 재앙이 그칠 수가 없다. 어디에서든 내가 회개하고 나면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신다. 나를 태워서 번제를 드려야 한다. 가장 힘든 전쟁을 승리하면 그것이 성지가 되는 것이다.
내가 남편 때문에 예배가 내 것이었다. 날마다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설레고 기쁨이 있었다. 복종하고 예배를 드리러 오니까 예배가 기뻤다. 모든 것은 인간은 너무 연약하고 죄 투성이기 때문에 그 때마다 죄를 깨닫고 십자가에 단을 쌓고 피 흘리신 것이 깨달아졌다. 남편과의 일이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성지의 사건이 되었다. (나도 트윗사건이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성지의 사건이 되기를) 지금 십자가를 지고 있는 사람은 말씀이 좋고, 지금 편한 사람은 아이고 어렵네가 된다. 그만큼 여부스 성을 탈환하기가 힘들었다. 다윗도 그 성을 마지막에 차지했다.
25절)그곳에서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불태워서 드리는 헌신의 제사이다. 나를 온몸을 태워서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면은 공동체가 화목해진다. 다윗이 드린 예배는 이런 예배였다. 전염병이 멈췄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까지 그쳤다. 재앙은 그치라고 있고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신 것이지 고통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죄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와 가족과 이 나라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오늘 우리들 교회에 재앙이 그치는 그 유명한 오픈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자 한다. 우리들 교회는 삶의 밑바닥까지 갔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오픈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랑이 아니라 망하고 수치와 죄를 겪은 오픈하는 것이다. 이 죄의 오픈을 통해 여러 사람이 살아나고 있다. 우리의 회개가 있는 진정한 오픈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의 오픈이 번제와 화목제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오픈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우리도 저렇게 하고 싶다며 바로 따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오픈을 위한 오픈은 안 된다. 진정한 오픈이란 말씀으로 고통을 이겨낸 나눔이다. 오픈은 목회를 잘 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목회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오픈 전에 말씀 묵상이 있어야 한다. 말씀 묵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이 화목제인 것이다. 오픈에 대해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 말씀으로 자기 나눔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믿음의 수준에 따라 오픈의 수준이 다를 수 있다.때와 장소에 따라 오픈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오픈의 때를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목회도 잘하시던 목사님이 모든 것을 진솔하게 해주셨지만 말씀에 의거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고 말씀하셨다. 말씀을 넣어서 적용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정말 몰랐다고 하셨다.
부목사님은 담임 목사님의 말씀의 해석과 깊이에 정말 놀랐고 무조건 내 고난만 뻥뻥 터트리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난이 해석되고 문제가 해결되면 뭔가 심심해하고 내 신앙생활이 다운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고난을 오픈하는 것이 어떤 믿음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소한 것에 대해서 자기를 바라보고 말씀 묵상을 통해 자기 죄를 깨달아 가다보면 정말 태산같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도 똑같이 말씀 묵상을 통해 자기 죄를 볼 수 있게 된다. 말씀을 통해 큐티하면서 사소한 것부터 집에서 병원에서 그때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내 죄를 보고 나누고 했기 때문에 그 태산같은 남편의 죽음 사건을 큐티를 통해 해석할 수 있었고 내 죄를 보고 나누고 자유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은 큐티다."(아멘) 말씀으로 자기를 보고 자기 죄를 나누는 것이 생활화 되어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 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나누고 싶다.
‘재앙이 그쳤더라‘는 영원히 기억될 말씀이다. 나와 우리 집을 치셔서 여러분의 재앙이 그쳤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유진
1.말씀과 기도 회복 할 수 있도록
2.내 죄를 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유정
1.항상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을 수 있도록
2.오픈 할 수 있는, 나눠줄 것(고난)이 있는 인생되게 해주신 것에 감사로 나아갈 수 있도록
3.중간고사 시험문제 아이디어 주시길
4.불신소개팅 분별하도록
5.요즘 공동체, 지체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많은데 애통함을 더욱 부어 주시길
주은
1.나태함 회복되도록
2.연봉협상 잘 되도록
3.신교제, 신결혼
태경
1.앨범내는 것 재정 해결되길
2.앨범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길
3.생활예배 회복
4.회사에서 지혜롭게 일할 수 있도록
5.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