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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
#65279;삼하 24:10-15
김양재 목사님
다윗이 인구조사 하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인데 하나님이 그것을 막아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막아주시기 전에는 어떤일도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여호와의 손에 빠지기를 기도해여 합니다.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먼저 자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0절 다윗이 자책을 했다고 하는데 자책은 손이나 무기로 사람을 쳐내거나 다치게 하여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다윗의 마음이 그를 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 간음과 살인의 죄를 범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다윗이 스스로 가책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명을 두 번이나 어기는 죄를 지었지만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이 일로 인해 점점 교만해 지고 완악해 져서 결국은 죄악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자책을 죄책감으로 쓸때도 있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여기서의 자책은 하나님께로 회개로 이어지는 것이고 죄책감은 책임감을 사람에게 느끼지만 회개가 아닌 후회로 인간적인 것입니다.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 큰 은혜인데 다윗이 어떻게 한 줄만에 인구조사한 것이 큰 죄라고 인정 할 수 있었을 까요? 택자이기에 자신의 목적이 야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인구조사가 왕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 하고 싶어도 인구계수의 목적이 불순화하다는 것을 다윗이 깨달은 것입니다. 택자이니 깨달았는데, 여러분은 택자로서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반문 하실 것입니다. 신실한 다윗도 9개월 20일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내 남편은 30년이 지나도 자신의 죄를 못 깨달았는데, 내 남편이 택자가 아니면 어쩌나? 내가 참고 사는 것이 다 소용없는 것이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합니다. 죄가 안보이는 것이 택자가 아니라는 것인가? 나를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나? 등등의 끊임없는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택자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입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선택에 반응하는 것도 택자라고 합니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도 있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도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성숙의 과정에 있는 것이 택자입니다. 옳고 그름은 아닙니다. 어떤경우에도 누가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이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같이 울고 아파해 주면 되는데, 나는 옳고 너는 왜 못깨닫니? 나는 애통한데 너는 왜 애통하지 못하냐? 라고 이야기 합니다.
Q. 여러분은 택자라고 생각합니까? 자책합니까? 죄책합니까?
요압을 재촉해서 조사하라고 해놓고 이런 것을 나는 상관 하지 않겠다 라고 다윗이 말하는 것입니다. 밧세바와의 간음, 압살롬의 반역을 처리해 준 또다시 태도를 바꾼 다윗을 보고서 요압이 속으로 수없이 비난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마음속에 신하로서의 충성이 아니라 차라리 왕보다 내가 백번 낫다는 무시가 깔려 있고 부하들도 요압편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구속사가 안 깨달아지면 서로 같이 있는 것이 고욕일 것입니다. 구속사가 깨달아지지지 않으면 수없이 말을 바꿉니다. 다윗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입니다. 구원 때문에 이 일이 좋다고 생각하면 수없이 결정을 바꾸는 저입니다. 조직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상사가 수없이 결정을 번복하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옵니다. 정치인들도 그것을 강조하지만 백성을 위한 것이라면 바꿀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밑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이 어디서 온 원칙인지 불분명 합니다. 다윗은 인구조사를 진행하던 중에 자신이 여호와에게 큰 죄를 범했다고 태도를 바꿉니다. 그렇게 구원의 일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미련해 보입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자신의 길로 돌아 옵니다. 이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해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구조사는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 왕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윗의 깨달음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눈에 보이기에 큰 죄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다윗이 죄를 깨달았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죄를 깨달았다는 것이 믿음이 성숙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절친인 자신의 죄를 보게되고 스스로가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깊은 슬픔이 들었을 것입니다. 서울대학을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가겠다고 해두고 정작 자신을 자랑하는데 쓰게 되는 격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가장 큰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문제는 다른사람들이 알 수 없는 좁은 길입니다. 자신의 부분에서 적용해야 하는 것이 끊임 없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절대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구조사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모르고 그 이전의 상황을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어떤 전도사님이 준비없이 양육을 했다고 외워서 했다고 회개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일주일 내내 준비해 놓고도 강의를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의를 잘했느냐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각자의 적용이 다르고 하나님이 쓰임받는 은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너무도 다릅니다. 보통사람은 나하고 친한사이가 아니라면 그사람이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 할 수 있지만 나하고친한 사람이 조금의 배신을 하면 절대용서 할 수 없습니다. 다윗과 하나님이 정말 친밀한 관계라고 생각하신 하나님은 “너 정말 끝까지 이럴꺼냐? 평생 나와 함께 있음에도 마치 네가 잘 한 것처럼 전국에 너의 기념비를 세우려고 그러냐?” 그런 마음이 하나님에게 든 것입니다. 이렇게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다른사람은 아무도 몰라도 다윗과 하나님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도 죄에 대해서 민감해진 것입니다. 이것을 다윗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님 신문 인터뷰 예화]
마지막까지도 이생의 정욕, 안목의 자랑에 걸려서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라고 바로 왕에게 거짓말로 해서 은금과 헌금을 풍부하게 얻어서 나왔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재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계수를 했습니다. 로또 되면 헌금하겠다고 로또에 목을 매는 사람, 넓은집에서 목장예배 드리겠다고 집평수에 연연해 하는 사람, 아이들이 성적이 잘 나와야 양육도 받고 섬기겠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불안해 하십니다. 지금부터 잘 붙여 주셔야 잘한다고 하면 하나님이 불안해서 붙여 주실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나라가 수에 있는 것이 아닌데 수에 연연하고 교회훈련 하나도 받지 않고 학교 공부 열심히 해서 자랑할 숫자가 있어도 그곳에 예수가 없다면 미련한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상대방의 보이는 모습을 넘어서 그 사람의 구속사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구속사의 어떤 부분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셔서 마지막까지 다윗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나게 하신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도 아니고 자신과의 싸움인 유혹의 전쟁이었습니다.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유혹에 넘어가는 일은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끊임 없이 당하고도 여유가 있으니깐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그 자리에서 또 회개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기쁨이 없습니다. 내가 기쁨이 없는 것은 무엇인가 회개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쁜일을 해야 하는데, 기쁜일에는 반드시 고난과 수고가 동반됩니다. 고난과 수고를 겪고 나면 내일을 기쁘게 하는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일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은사가 발견되기 어렵습니다. 사단이 노리는 것이 목표를 위해 격동시키고 목표를 이루면 기쁨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가져도 기쁨이 없습니다. 내적인 성전이 지어지질 않습니다. 제럴드 싯처는 “이 땅에서는 결코 완전한 행복을 경험 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자신의 소명에서 아무리 기쁨을 누린다고 해도 우리는 일에 치이고 직장동료들에게 짜증이 나고 권태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일을 복잡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구조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힘들다는 것과 비참하다는 것은 다릅니다. 자신의 일이 언제나 재미 있는 것은 없지만 우리는 기쁘게 일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내가 나의 본질에 부합되며 하나님 나라의 열매 맺는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 될 때에 찾아 옵니다.
Q. 심히 미련하게 자랑하고자 하는 세상의 기념비가 무엇입니까? 있다면 무엇입니까?
2. 징벌을 잘 받겠다는 것입니다.
11절 긴밤을 자책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역대상에는 없는 아침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밤잠을 설쳤어도 아침이 되면 자신의 자리로 복귀 해야 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 백성으로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속한 가정, 사회, 교회를 구하는 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충고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습니다. 다윗곁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줄 선지자가 죽을 때 까지 있습니다. 그에겐 선견자의 말씀이 들리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때마다 사무엘이 있고, 나단이 있고 인구 조사때는 갓이 있습니다. 밧세바 사건때는 나단 선지자가 오고 나서 회개를 했지만 인구조사때는 갓이 오기 전에 회개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달라진 점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슨 문제가 생길 때 올바르게 이야기 해줄 목자가 있고, 목사가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지도자가 올바른 이야기를 하니깐 듣기가 너무 싫습니다. 우리는 널뛰기를 하면서 nursing을 해주어야 합니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됨이 아니라 항상 충성됨 이고, 정직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십자가 이고 십자가는 타이밍 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 지혜의 말씀은 타이밍이 맞게 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진리여도 맞지 않게 전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즉시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시 인정하는 사람이 리더의 첫 번째 자질을 갖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잘 들으면 때마다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어떤 음성을 들었습니까?
12절 회개를 하니깐 죄를 사하여 주어야 할 것 같은데 징벌을 주시고 그것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이전에 주어진 압살롬의 반란과 삼년기근에는 하나님이 무엇을 주지 않으시고 택하라고 하신 것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재앙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수많은 미래를 두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에게 다윗에게는 전부타 택할 수 없는 재앙을 세가지를 주시고 그 중에서 택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의 응답이 이렇게 끔찍한 일로 왔습니다. 형벌도 회개가 있은 후에는 축복인 줄 알지만 회개가 있기 전에는 재앙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매를 맞아서 죄가 사하여 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온몸이 아플 때 어떻게 해서든지 낳을 수 있겠지만 죄는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로 쌓여 있게 됩니다. 이땅에서 매맞고 천국간다면 부도가 나고 망해도 감사한 것입니다.
13절 칠년 기근, 삼년동안 원수에게 쫓김, 전염병의 재앙중에 택하라고 하십니다. 인구조사가 가진 것을 자랑하기로서니 이것은 너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너무 하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세속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1절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백성을 치시려 했다고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 때문에만 이런 형벌을 주신다면 너무 무서운 징벌인데,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백성을 치셨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압살롬을 쫓아갈 때, 사울왕을 세웠을 때, 다 죽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치시고자 하였기 때문에 전염병으로 죽으나 기근으로 죽으나 어떤 것으로 치시려고 했으니 이것은 경중을 따질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시기로 했다가 중요합니다.
14절 드디어 다윗이 정신을 차렸습니다. 세가지 징벌중에 택하라고 하시는 것은 내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려 하는 것은 왜냐하면 그의 긍휼이 크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람에게 구원요청으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다윗이 어떤 권위와 관계를 가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왕위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서도 기복을 버리지 못합니다. 늘 하나님은 너무하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하고 있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기근은 주변 나라로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원수나라가 쫓기는 것은 화친조약을 맺은 나라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염병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세가지를 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벗어날 길만 찾습니다. 고난 없이 십자가 없이 영광을 얻게 해달라고 합니다. 기복으로 기도하고 기복으로 응답받습니다.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크시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어떤 것을 주셔도 잘 당하겠다는 순종의 결단입니다. 전염병으로 3일만에 7만명이 죽습니다. 다윗이 그런 결과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말 다윗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긍휼은 창자가 끊어지는 그런 아픔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겠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매를 맞아도 하나님이 때려 주시라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니 전염병이 옵니다.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내 죄의 대가를 잘 감당하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부도가 났으면 감옥에 잘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도 죽을 수 있지만 이 징벌을 달게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결과적으로 제일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죄 짓고 하나님께 등 돌리는 자는 많지만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복이있는 것입니다. 회개 할 줄 아는 자는 생명에 이르지만 회개 할 줄 모르는 자는 필경 멸망에 이릅니다. 다윗으로 인해 전염병이 오고 다윗의 회개로 재앙이 끝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 합니다.
Q. 여러분은 재앙이 찾아오면 학연, 지연, 인연을 찾아서 사람의 길을 찾습니까? 잠잠히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을 기다리시겠습니까?
15절 이에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렸다고 하는데 ‘이에’ 는 다윗의 회개로 전염병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했더니 전염병이 와서 칠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습니다. 윌리암 캐리가 배운 것이 없으니 아무도 영국선교에 파송해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40개국으로 성경을 번역하고 큰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얼마나 죽었는지 모릅니다. 부인도 계속 윌리암 캐리를 괴롭혔습니다. 우리가 자녀 때문에 힘들면 주님을 위해 일하면 자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내 자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제럴드 시처 교수는 섬기기 위해 이사를 갔는데 온 가족3명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택했는데 이런 구조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응답받는 구조 속에 있는 사람은 칠만 명이 죽어도 그것이 회개가 됩니다. 전염병은 다른 두가지 징벌에 비해서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 맞다고 보여 집니다. 그럼 하나님이 다윗이 전염병을 택해서 징벌을 내렸나요? 다윗이 아무것도 택하지 않았다면 징벌을 안 내리셨을까요? 하나님은 내가 기도한다고, 내가 미워서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기대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내가 떡을 원하는데 돌을 주실 분이 절대 아닙니다. 주님이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결국 3일 만에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 결정적인 원인은 다윗의 인구조사 범죄라고 합니다. 다윗이 전염병을 택했기 때문에 우리가 다 죽었다고 원망할 백성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남겠습니까? 다윗이 이렇게 태평할 때 저지른 인구조사의 죄를 너무 엄하게 다스리십니다. 기도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가능합니다.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빠져서 기도해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남편이 떠나간 사건도 해석이 되어서 30년을 섬기고 있는 저의 모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치게 하시기 위해서 바로왕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것이 다윗의 격동하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단이 다윗을 격동하게 하신 것을 잠시 허용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다윗도 나도 죄를 누군가를 통해서 회개하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결국 이사건으로 다윗의 회개를 받아 내십니다. 다윗의 회개는 성전건축을 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사건마다 하나님이 쓰십니다.
Q. 기도로 재앙이 올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이단은 단 한번으로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단번에 이루어진 구원이지만 내가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있고, 그렇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도 노아도 실수 투성입니다. 실수투성인 엉망인 인생인데 어떻게 예수 믿었다고 잘되고 완벽한 이야기만 할 수 있습니까? 나도 너도 별볼일 없는데 내속의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별 볼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별볼일의 원천은 하나님 뿐이 십니다. 하나님이 집중적인 징벌로 이스라엘의 죄와 다윗의 죄가 큰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백성이 다윗을 배반했고 하나님이 그것을 건져 주셧습니다. 하지만 그 백성은 사랑해야 될 백성입니다. 나를 배반해도 미워하면 안 됩니다. 백성이 다윗의 거룩을 위해 수고 했기 때문에 미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려고 다윗의 죄로 그것을 심판하고 그것을 통해 아무말도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머리가 좋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보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매일 큐티를 하면 인도함을 주십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도 아니고 미움의 대상도 아닙니다. 끝까지 사랑의 대상입니다. 내 죄와 연약함을 볼 때 그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의지가 굳세지 못해 늘 생각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하기도 합니다. 또 예민하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 속에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죄송해서 말씀을 보며 회개의 내용과 사랑의 내용이 점점 달라지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는 성공으로 부르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재앙을 선택함으로 여러 가지 좌절에 부딪힐 때 원망없이 그것을 감당해 낼 마음이 생긴다면 바로 그것은 어떤 일이라도 하나님의 일 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원망없이 내가 이일을 감당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남편, 아내, 자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자책이 선행되어야 하고 세상의 기념비를 내려놔야 합니다. 여호와의 징벌을 잘 받겠다는 것입니다.
★ 기도제목
★노성혜 목자(82)
+ 생리전 불쾌감 상담과 약물 복용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 사직서가 무효화 되게하심에 감사합니다.
+ 결혼준비 스드메 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혈기가 아닌 감사함으로 준비하게 해주세요.
+ 전도축제에 초청할 그 한사람이 생각나기 원합니다.
+ 방청소 1주일에 3번은 하기 원합니다.
★윤정원(83)
+ 부모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잘지고 있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해주시라 믿고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또 다시 알고 기도할 수 있게
+ 사람이 미움의 대상도 의지의 대상도 아니고 사랑의 대상임을 알고 기도하기
+ 하나님 오늘은 믿음과 은혜가 충만한것 같지만 내일은 모르겠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수 있게
+ 이 모든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맡길때 하나님의 전쟁이 되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할수 있길
★윤경주(82)
+ 지친 영육이 회복 될 수 있도록
+ 남자친구의 직장 훈련의 장 열릴 수 있도록
+ 어머니가 수술하지 않게 된 것에 감사
+ 주변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 알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