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말 :::::
=삼하 23:1-7=
★ 주일 설교
‘가족끼리 왜 이래’ 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주인공 아버지가 3개월의 시한부를 선고 받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자녀들은 일생을 두부 팔아서 가르치고 마련한 집을 증여해달라고 지분을 주장하니 너무 속이 상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불효소송을 청구합니다. 스무 살 이후에 등록금과 생활비 내역을 청구합니다. 의사가 된 큰 아들에게는 2억2천, 대기업 비서실장이 된 딸에게는 1억 8천, 사고뭉치 막내아들에게는 1억 3천 정도를 요구한 내용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집 한 칸이라도 있으면 돌아가시고 나서 원수가 안 되는 집이 없다고 합니다. 큰아들의 장모는 오직 자네 편은 처가 밖에 없다고 부축입니다. 우리의 마지막에 이렇게 집을 내놓으라는 아비규한의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드라마는 주인공 아버지를 이시대의 아버지상으로 휴머니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해서 평생을 살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쳤기에 죽음을 앞에 두고도 “우리가족 왜 이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겨야할 최고의 유언은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일 것입니다. 제가 유아세례 때 늘 하는 기도는 “자녀들을 위해 먼저 예배하고 부부간에 사랑하라”입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라가 최고의 유언일까요? 다윗의 전 생애를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때 마다 전능하신 삼위 하나님의 역사로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그 하나님이 너희들도 도우실 것이기에 이 하나님을 믿고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마지막 말로 남기고 있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말의 내용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을 말을 합니다.
1.성자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다윗의 직계조상이기 때문에 성자 하나님의 사역을 위주로 삼위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1절 22장이 구원의 노래였다면 23장은 두 번째 시인 메시아 대망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의 한나의 노래와 구조가 비슷하고, 의로운 통치와 사역한 통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말은 일생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다윗의 일생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이 마지막 말이 신빙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하나도 모른다면 제가 마지막 말을 할 때 신빙성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저의 삶을 알기 때문에 제가 마지막 말을 할 때 들어야 할 말인지를 입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전능하신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는 유언을 열왕기상 2장에서 합니다. 자신도 완전하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아 살인 후에 다윗은 회개를 했고 나단 선지자부터 주어진 다윗언약을 하나님은 신실하게 지켜주셨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세바의 반란에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이 큰 두 가지 반역은 다윗왕조의 큰 일이였습니다. 다윗왕조도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다윗왕국이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시로서 찬양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삼위 하나님의 역할을 주지시키면서 성도로서 살아야 될 지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은 스스로를 낮추는 말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비난하고 세바가 다윗을 배반할 때 ‘이새의 아들’이라고 비하의 목적으로 쓰인 말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을 극도로 낮추면서 그들이 한 말로 자신을 속이면서 마지막 말을 합니다. 왕으로서 유언을 한 것이 아니라 지금 까지 자신은 비천한 존재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이라고 쓰기도 송구스러워서 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속이는 자’ 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긴 자’ 라는 뜻입니다. 자신도 야곱처럼 여자 좋아하고 속이는 자에 불과하지만 사무엘에게 기름부음 받은 것을 야곱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관용어처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보다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천한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신 하나님이 미천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변화 시켰다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이 다윗에게서 나타나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점처럼 낮아져서 오신 촌부의 여덟아들 중에서 가장 별 볼일 없는 막내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다윗이 노래 잘하는 자가 되어서 지금 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비천한 이새의 아들이었지만 높이 세워지고,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총애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서 보면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날에 이 땅의 관계와 질서 속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정체성이 확립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감추어진 성부 하나님의 경륜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눈만 뜨면 보이는 세계를 보고 절망을 합니다. 천억개 곱하기 천억개의 별을 보고, 그 찬란한 은하계의 별을 보고 점 하나에 불과한 창백하고 푸르스름한 그런 지구 같은 나를 보면 세상에서 저절로 주눅이 드는 것입니다.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세상과 역사 속에 나타나실 때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혹은 관계와 질서 속에서 같은 하나님의 뜻으로 성자하나님이 디자인 하시면서 나타내십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와 공감하기 위하여
빌립보서 2장 6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높고 높은 하나님이 낮고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성자 하나님의 메시아적 정체성인 것입니다. 남편, 자녀가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점처럼 오신 예수님을 떠올려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입니다. 공감이란 책을 쓴 김현욱 교수는 공감이라는 것은 ‘네 말이 옳다.’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침묵을 해도 진심으로 “힘들었겠다.”“화났겠다.”“너무 어려웠겠다.” 그냥 이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처한 상황이 환경에 따라서 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입장에 못 섭니다. 자녀가 부모의 입장에 못 섭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 문제가 많지만 여러분들은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을 못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고 부모들은 “나는 너를 사랑했다.” 라고 말합니다. 진짜 당해보지 않으면 그 입장에 서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상대와 공감하려면 모든 판단을 버려야 하고 내 입장을 버려야 하고 시비를 가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냥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내뱉습니다. 그래서 “과부 주제에! 가난한 주제에! 못생긴 주제에! 못 배운 주제에!”이런 이야기를 상대방의 기분에 전혀 상관없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럴 때 성자예수님이 내 죄 위해 죽어주신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예수님도 점처럼 왔으니 “맞다! 나는 과부다. 나는 못 생겼다. 나는 못 배웠다. 나는 무식하다. 못 배웠다.”라고 금새 인정을 합니다. 이것이 성자 하나님이 나에게 들어온 가장 확실한 정체성입니다. 나의 잘남과 못남은 주님께서 선하신 뜻대로 쓰시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 때문에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보석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부부목장 수련회 #8211; 가방끈 예화]
성자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은 내 죄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적 정체성 그것이 예수님, 성자 하나님, 메시아적 정체성인 것입니다.
목장에서 여자마음을 잘 얻는 것에 대해 나누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칭찬, 둘째는 공감, 세 번째는 지속적인 관리에 들어가서 연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남자가 여자에게 하지 말고 목장에서 관계와 질서 속에서 적용을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생은 성자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독특한 작품입니다. 그러므로 나로 인해 나타나는 성자 하나님의 디자인에 무조건 감사하고 하나님의 나를 위한 계획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을 열다섯 광야를 거치고 수많은 고난을 겪도록 디자인 하셨지만 그로 인해 후대에 까지 남긴 시편은 인류를 구원하는 시가 되었습니다. 3000년 동안 다윗의 시편만큼 고난당하는 자를 위로하는 시가 어디 있겠습니까?
Q. 여러분의 고난이 성자 하나님의 디자인 이라는 것을 인정 하십니까? 인류 최대의 디자이너는 예수님 이십니다. 여러분들의 각자 인생은 주님의 작품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지막 말은 무엇이라고 하고 싶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지막 말을 잘 듣고 순종 할 것 같습니까?
2.성령 하나님이 말씀과 통치로 도와주십니다.
2-1) 성령 하나님이 말씀으로 도와주십니다.
2절 ‘비천한 나’ 이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주시는 분이 진리의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를 통하여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그대로 대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1500년에 걸쳐서 전혀 다른 환경, 다양한 직업, 각양의 신분을 가진 40명의 저자가 기록한 것입니다. 왕도 있고 평민도 있고 목자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동일한 하나님의 주제와 체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호 모순이 없이 다른 시대를 살았는데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원 저자가 성령님이시고 시공을 초월하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스스로를 연약한 인간의 수준만큼 낮추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하면 살아날 인간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예를 들면 태어난 아기에게 미적분을 풀라고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초등학교 1학년에게 1+1=2 라는 것만 알면 된다고 하는 것처럼 성경은 이상하게 믿음의 분량만큼만 그것이 읽혀집니다. 믿음의 분량만큼 interpreting(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기묘묘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읽은 성경과 다른 것입니다. 다른 것들이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한 인간의 수준만큼 낮추셨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시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약속에 순종을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불순종하면 저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진리의 성령님이 알려 주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효과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장래를 알려 주십니다. 내가 예수 믿었다고 이 세상이 착해집니까? 내가 예수 믿고 가도 이 세상의 속고속이는 악한 자들은 여전히 똑같이 악한 자로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를 믿었어도 불확실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4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라고 거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되니 큐티모임이나 오랫동안 머무니깐 확실히 속이는 일에 드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진리의 성령님이 우리를 가르쳐 가시기 때문에 세상모임이라면 10년 넘게 모였다면 문제가 많았을 것입니다. 돈 사고도 나고 애정사고도 나고 시끄러웠을 것인데 생각해 보면 문제가 비교적 적었다고 봅니다. 성령이 스승이 되어서 가르쳐 주시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배우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의 기능은 우리를 위로한다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는 4가지 책망의 역할이 나오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가 막힌 성경을 어려서부터 알고 읽었는데도 문제가 하나님의 감동이 없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안 되니깐 성경을 읽었는데도 바라보는 것이 세상 스펙과 명예와 재물입니다.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을 받기가 쉽겠습니까? 교회에 와도 우리는 잘 된다는 소리와 위로만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위로가 없습니다. 정말 이것이 잘 되는 길입니다. 이것만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을 받기만 잘 하게 되면 여러분은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2-2) 성령하나님의 통치로 도와주십니다.
3절 하나님 나라는 영토, 주권, 백성이 3요소 인데 그런데 거기에 통치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에 총리요셉이 등장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이 통치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통치의 개념은 공평과 정의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완전히 구현한 왕은 아마도 없습니다.
이사야 9장 7절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래서 인간의 왕은 이것을 이룰 수 없지만 이일을 여호와의 열심히 이루신다고 합니다. 다윗이 원한 것은 완전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 까지 이일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4절 그래서 우리의 어두운 시대의 돋는 해의 아침빛이 되어서 떠오른 광명한 태양 이십니다. 모든 소망에 관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 세바의 반란을 겪은 뒤 이렇게 시를 쓰고도 이후에 말년에 인구조사를 해서 큰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정사로 다스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원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대망했던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소망가운데 완전케 하실 통치자 이십니다. 어떤 나라의 지도자도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지도자는 없습니다.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는 자가 되면 완전히 다스리는 자로 인해 소망하는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길은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새 차와 새 집이라고 해도 금세 유행에 뒤집니다.
전도서 1장 9절-10절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부어주시는 은혜들은 하늘의 심령 한 것이기에 항상 새롭고 아름답습니다. 새 언약, 새 땅, 새 성령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완전한 새것이며 결코 낡아짐이나 헤어지는 것이 없는 영원한 새 것입니다. 은혜는 항상 새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고 성경 보는 것이 지루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모든 공부는 억지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했지만 다 지루 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공부는 싫었던 적이 없던 것 같고 우리들 공동체는 모이면 항상 매번 비슷한 나눔을 해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인생은 지나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은혜가 임하지 않으면 또 실패하게 됩니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아야 됩니다. 똑같은 말씀이어도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신 주님의 성실과 인자를 경험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의 통치를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이 도와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목보- 모태신앙 의사 집사님의 간증]
이런 이야기를 쓸데없이 입으로 내지 않고 하지 않지만 내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로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Q. 나의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 입니까? 내 열심 입니까?
여러분은 인생이 항상 새롭습니까? 지루합니까?
3.성부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해야 한다.
5절 나의 모든 구원은 영원한 다윗언약과 관계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다윗을 버리지 않고 그와 동행하심으로 그의 지방과 나라를 든든히 하실 것을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언약은 다윗의 실수에 의해서 파기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신실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지속될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만사에 구비하지 못합니다. 견고하지도 못합니다. 나의 구원과 모든 구원과 소원을 이룰 수가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내가 피아노를 좀 치고 학교를 들어갔다고 해서 잘난 척을 속으로 해도 하나님이 속지 않으시고 정반대로 하나님이 훈련을 해주시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이라고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연약한 자식은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나만 사랑하는 사람 찾아 삼만리인데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정말 그곳에 안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요즘 묵상하는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은 1차전도 여행 후에 너무도 훌륭한 인격자인 바나바와 나중에 마가복음을 쓴 똑똑한 일꾼인 마가와 이별을 하고 고른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무시했던 헬라인 아버지를 두었고 나이도 어린 이방인입니다. 모계로서 믿음이 내려옵니다. 나이도 어리고 유약하고 위장병까지 있는 디모데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디모데 전서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헌정한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아볼로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지만 성령님은 이 글을 아볼로서라고 지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에게 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디모데를 택하고서 선교여행을 떠나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그가 연약하지만 보고 싶다고 눈물이 있고 거짓없는 믿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바울과 디모데는 긴장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달려드는 사랑하는 관계였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꼭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라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친히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똑똑하기 때문에, 내가 사랑이 많아서, 성경을 많이 알아서, 교회를 세웠다, 자녀를 잘 키웠다.’이런 사람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늘에서 보면 모두 도토리 키 재기인 것입니다. 항상 약한자를 들어 쓰시는 주님이십니다. 다윗언약은 그런 맥락에서 주어 졌습니다. 주님은 무조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로 달려드는 그런 자를 사랑하십니다. 진짜 얼마나 사랑했는지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 겨울이 가기 전에 디모데야 빨리 오너라 외투와 성경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유언도 디모데 에게 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부족해도 약속을 주시고 키워 가시는 이런 것이 성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대나무처럼 천천히 그러나 항상 일관되게 주님이 관심을 가지시고 궁극적인 구원과 소원을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실 것을 의미 합니다. 이것이 메시아 대망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만사에 모든 것을 구비해 주십니다. 사울가의 수없는 시간을 쫓기며 비참한 도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넉넉히 극복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와의 관계가 그러하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잘나서 똑똑해서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엄마를 파고 들 듯이 그때 도와주십니다. 성부 하나님의 감추어진 경륜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시고 나를 위해 언약을 세우시고 지켜 가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아무도 고난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악이 들끓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당할 때 주님은 와서 구원 해 주십니다. 이 세상을 이기려면 성부하나님의 이 언약을 붙잡게 하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이 다윗의 이 마지막 말이 되겠습니다.
6절-7절 그러나 삼위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는 불살라진다는 것입니다. 사악한 자는 원어로 벨리알의 아들이라고 하늘이 두려운 줄 모르는 사단을 뜻합니다. 사단이 뿔달린 형상으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은 유언을 해도 듣지 않고 성령의 감동도 없고 말씀도 들리지 않는 이런 구조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건이 오면 말씀이 없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6-7절에 내어 버려지고 불살라질 가시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아주 불쏘시개에 불과하고 가시나무 같고 말라있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똑같은 아들이어도 왕위로 나가는 솔로몬 같은 아들이 있고 반역을 해서 심판당하는 아들이 다윗의 아들 중에도 있습니다. 심판당하는 아들인 압살롬, 아도냐의 특징을 보면 너무도 잘생겼고, 너무도 훌륭하고, 성품까지도 좋고, 관계도 좋아서 모든 이스라엘의 백성의 마음을 훔쳤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최고로 갖추었는데 하나님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사단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못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고 잘나고 모든 것을 갖춘 사람들이 삼위 하나님의 말씀도 안 들리고 말씀대로 살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사단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교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성부의 하나님의 언약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교회를 10년 넘게 와도 저에게 주례를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최고의 스펙을 가진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갖추니 이런 것이 지질해 보일 수 있지만 정말 그분에게 유언하고 싶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정말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고.
Q.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주인공이라 것을 믿습니까?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합니까?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악한 자를 분별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결혼과 사업에 모두가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다가오니깐 다 속아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의 하나님은 쓰러져 가는 그 누구라도 붙잡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자를 붙잡으시는 것입니다.
[큐티인 묵상간증 - S대 출신 알코올 중독 집사님]
한 사람이라도 변화 되면 그 교회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집사님이 반드시 변해서 간증 할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분은 목장에 가십니다. 술을 먹고 그래도 애통하고 곤고하니 화를 내도 교회에 와서 내고 목장에서 내고 있으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중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스펙, 재물, 건강도 중요하지만 천국에 가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삼위 하나님의 결론이 무엇이겠습니까? 얼마나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을 알아서 얼마나 이 땅에서 사랑 했는가? 이것을 셀 것이십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나병 환자들을 위한 애양원을 위한 기도문]
오 !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고 하오나 인간의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애양원을 그러나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로부터 나온 나의 사랑이 옵고
또한 주를 위하여 사랑하게 되는 것 이온데 내 어찌 주보다 더 사랑케 되오리까
그러나 나의 일심과 부모와 처자 보다는 애양원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를 사랑하는 그 다음은 이 애양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에 뭍은 상급으로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불쌍한 영육들만 위하는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해 일는지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마음을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으로 인하여 중심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이 애양원을 사랑케하여 주시옵소서
손양원 목사님도 힘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44세에 천국에 가셨는데 마지막 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기도가 저의 마지막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우리들 교회를 주님 다음으로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싶습니다.
다윗의 이 마지막 이 성자 하나님의 말로 우리를 도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남이 불러주는 것이 나입니다. 우리자신이 누구인지는 남이 불러 줍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하나님이 불러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는 아들이요 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고 가치라는 것을 여러분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간증하시는 분은 어렵고 힘들고 깨지고 그런데 눈물로 나와서 간증을 하는 것이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고 그 연약한 우리를 가장 기뻐하신다고 생각이 듭니다.
성령과 성자 하나님이 말씀과 통치로 도와 주셨다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으로 도우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삼위 하나님이 도우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하나님을 거절하면 불살라진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12월 29일까지 목장에 열심히 참석하시다가 마지막 임종 때 구원이 최고라고 하고 마지막 말을 하고 가신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 집사님의 외아들 주현이의 우리들교회의 출석과 신결혼이 기도제목 이셨는데 마지막 소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1부때 이 설교 후에 주현이가 교회에 왔고 앞으로 잘 살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마지막 말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목장풍경
- 참석자: 노성혜, 윤정원, 김슬기, 윤경주
- 장소: 까페 쉐누
설날을 무사히 지내고 다들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 중앙아시아 우루무치로 아웃리치를 다녀온 성혜목자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교사님 집에서 목숨을 걸고 기도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들의 꽉 쥔 두손을 보면서 너무 놀랍고 그 은혜의 장면을 함께 하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 였습니다. 나눠 줄 것이 많다는 성혜의 아웃리치 이야기는 다음주에 2부로 이어서 더 듣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설 명절을 지내면서 각자의 가정과 환경에서 어려움과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리를 도우신 삼위 하나님을 경험 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이 최고라는 마지막 말을 유언 할 수 없는 부족한 자들 이긴 하지만 비천한 우리들도 하나님이 높여 주십니다.
직장에서의 어려움에도 주일성수 하는 귀한 슬기☆
어머니의 연약함과 가족의 구원 앞에서 애통해 하는 정원이☆
남자친구가 주님을 영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은혜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가족구원 앞에서 자신이 없는 경주☆
아웃리치의 뜨거운 감동으로 조금씩 성화되어 가는 은혜의 때에 있는 성혜목자님☆
그리고 함께 한 자리에 있진 않았지만
늘 기억하고 기도 하고 있는 우리 주연이☆ 지은이☆
우리 모두 한 목장으로 묶어 주시고 서로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나눔 시간 이었습니다. 단 한사람의 변화도 귀하다고 하셨는데 조금씩 변해가는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이 시간이 모두 반짝이는 별이 되길 소망합니다......☆
★ 기도제목
노성혜 목자(82)
1.내가 부족한 점을 잘 인정하기 원합니다.
2.말 한마디를 너무 쉽게 내뱉는 습관이 고쳐지길 원합니다.
3.내 기준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한 주 되게 인도해 주세요.
4.부족한 목자인 나로 인하여 상처받고 고민하는 지체가 있다면 찾아가 위로하시고 제가 사과할 기회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정원(83)
1.날마다 새로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매일 큐티 생활화 하기
2.상대를 먼저 미워하기 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기
3.화가 날땐 15초만 기다리는 적용 할 수 있길
4.사람이 아닌 말씀으로 위로받고 하나님을 먼저 찾을 수 있길
5.속으로만 생각하는데 건강하게 겉으로 표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김슬기(83)
1.직장 내에서 혈기 부리지 않을 수 있도록
2.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붙어 있을 수 있도록
3.교육과 견학으로 바쁜 한 주 무사히 잘 보낼 수 있도록
윤경주(82)
1.지체들과 대화 할 때 공감, 경청, 체휼 할 수 있도록
2.남을 정죄, 판단 하지 않도록
3.양육교사훈련 받을 수 있도록
4.엄마수술을 기도와 건강으로 준비 할 수 있도록
5.엄마에게 복음 전할 수 있도록
6.내게 연결된 지체들에게 믿음의 본보기가 되도록
이지은 자매와 박주연 자매의 예배와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