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사무엘하 19:40-20:13 제목: 반란
내용:
다윗 왕이 귀환 한다고 대로가 뚫린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윗에게는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가 있었지만 똑같은 일을 다 아는 우리에게 롤 모델이 되어주기에 문제 많은 다윗은 인류 최대의 빛이 되었다. 지금 문제가 많은가? 그러면 그 상처가 별이 된다.
문제 많은 다윗이 나에게 너무 큰 위로가 된다.
우리의 환난은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환경은 변화가 없는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없는 것이 환난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은 환난에 대해서 해석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반란이 왜 왔나 생각해 보자.
1.지역감정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0~43절)
유다 백성은 다윗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절반만 지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언제는 다윗을 배척하더니, 지금은 왕을 도둑질해갔다고 한다.
압살롬의 반역은 사울의 잔당들에게 권력을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다. 왜냐하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유다지파인데, 표면적으로 모두 유다지파가 문제를 일으켰기에 베냐민 지파가 희망을 갖는다. 열두지파는 생긴 이래 한 번도 편안하게 지낸 적이 없다. 사사기 시대부터 분열을 거듭해서 정치적으로 통합한 왕이 사울이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의 긍지는 굉장하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이기고, 유다의 왕이 되고도 7년 6개월을 기다려야만 통일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다.
다윗이 다시 왕으로 귀환을 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다윗이 내 편이라고 서로 우긴다. 모두가 예배드릴 때는 하나님 사랑한다고 하면서, 끝나고 나가서는 서로 분열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행하는 문제로 몇 십 년 째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서로 정통 장자권을 주장한다. 낮아지셔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드려야할 영광을 혼자서 차지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함께하는 것이 안 된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함께 기뻐해야 한다.
모든 것이 돈 때문에 싸운다. 돈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
이스라엘 열두지파는 망해서 돈이 하나도 없어질 때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다. 그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싸우다가 갈라졌는데,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생활 열심히 하다가 돌아오니까 하나가 된다고 이사야 11장에 있다. 둘이 하나가 되어 진짜 적과 싸우니까 대로를 만들고, 가라 하시는 것을 본다고 한다. 집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될 사람이 하나가 안 되니까 대로가 안 열린다. 하나가 되어야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신다. 내 인생의 주어인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내가 속해야할 진정한 공동체를 찾지 못한다. 진짜 같이 슬퍼하고, 기뻐할 사람을 찾지 못한다. 서로 공부 잘하고 교회 잘나오는데 우리가 될 수 없다. 망해야 하나가 된다. 폭풍이 와야 말씀이 들린다. 온 집안이 돈 때문에 싸운다.
-아무리 예배에서 은혜를 받아도 은혜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무엇을 하는가? 무엇이 우상인가? 그러면 하나님이 대로를 보이지 않으신다. 속지 않으신다. 학연 지연 혈연 중에 어디에 끌려 다니는가? 나의 연말 계획은 누구와 계획되어 있는가?
다윗이 왕의 귀환을 하고 있는데, 다들 환영 보다는 누가 주도권을 차지하느냐에 관심이 있다. 인생이 너무 외롭다. 이럴 때 바르실래가 다윗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정말 순수한 사람도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은 이제 압살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자기를 저주한 사람까지 용서하면서 요단강을 건넜는데, 반란이 벌어지니 머리가 하얘지면서 진도를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20장 1절 #8211; 마침은 하나님의 시간이다.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니까 너무도 쉽게 지도자감이 아닌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다. 서로가 마음이 상해 있으면 불을 붙여줄 반역자가 등장한다. 세바의 반란의 변은 이스라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사람들은 자기 유익에 대해 예민하기 때문에 돈을 조금 못 벌면 생색이 난다.
2절-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쳤다.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인데, 세바를 따라간다. 얼마나 세바가 맞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른다. 그래도 잇대의 유다사람들이 계속 다윗 편을 들며 돌아오고 있다. 소수여도 다윗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지킨다. 이 사람들은 몇 만 명과 비교가 안 되는 용사들이다.
-나의 열심과 요구가 내가 속한 공동체에 분쟁요소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합니까?
직분 때문에 교만하지도, 속상해하지도 마시길 바란다.
2.반란에 대한 다윗의 작전입니다.
두 가지가 나오는데, 후궁을 가두고 반대편 적장 아마사를 고용한 것이다.
2-1 모두가 수치를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다윗은 유다 백성들과 반쪽자리 환궁을 했다. 그러나 처음 한 것이 후궁을 가두었다. 그런데 후궁에 대해서 세 번이나 언급한다. 다윗이 도망갈 때 열 명의 후궁을 두고 떠났었다. 이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아들 압살롬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후궁들과 동침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겪으며 인생무상을 경험했다. 그래서 세 번이나 후궁이 나와서 중요한 것을 이야기 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나라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다윗이다. 전쟁에서 이겨도, 져도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는데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후궁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왕으로서 아들과 동침한 후궁들과 함께 할 순 없는 일이다. 그 당시 후궁이 다른 사람에 의해 더럽혀 졌다면 죽이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다윗은 죽이지 않는다. 어떻게 죽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의 옆에 두고 늘 자신의 연약함과 범죄를 기억하게 하는 방책을 택했다. 정말 다윗은 자기 죄를 처절하게 보며 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압살롬이 범한 자기 후궁을 평생 옆에 두고 모두가 보게 하고, 알게 했다. 인간적인 사람들은 후궁들을 자기가 생각나지 않게 죽였을 것이다. 그만큼 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수치만 덮기 위해 급급한 사람들은 그러므로 그렇게 잊고 다시 반복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바로 초대왕 사울은 예배는 열심히 드렸지만 늘 선지자의 말을 경홀히 여기고 자기가 당하는 수치만 부끄러워서 아들을 죽이려 하고, 다윗을 죽이려 했다.
다윗은 모든 수치를 안다 해도 부끄러워하면서 가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큐티는 주님 앞에 내 부끄러운 이야기를 내어놓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며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면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둠에 있어도 이미 햇빛을 보고 있는 것과 같으며, 새벽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사건이 있을 때, 주님으로 인해 부수고, 주님으로 세우면 다음에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잠시의 부끄러움 때문에 숨기고 다시 잘 세우지 않으면 작은 사건에도 영원히 무너질 수 있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에 내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능력이다. 다윗이 이렇게 적용을 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 후궁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을 주었다는 것은 그녀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다시는 다윗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일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세상 나라의 왕처럼 살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나는 징계 받은 왕이다. 압살롬의 고통으로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예전의 다윗 왕이 아니라고 공표한 것이다.
그러나 후궁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슬프다 남편이 죽은 과부도 아니고 생과부라고 한다. 여성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그 후로 마음껏 기도하며 순결하게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수녀 공동체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모르겠고, 성적으로 이용하는 게 끝이라는 말이다. 다윗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백성들이 뭐라고 하든 다윗은 적용을 했다. 큐티는 왜 그랬을까? 지금 전쟁해야하는데 이 이야기가 왜 들어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다윗의 큰 약점은 여자문제였다. 다윗은 이런 자신 때문에 압살롬이 살인과 반역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쟁에 앞서 여자 끊는 적용을 일차적으로 행했다고 본다. 여자 좋아하는 다윗이 열 명의 후궁을 앉혀놓고 눈길 한 번 안주었다는 것이 드디어 다윗의 여성 편력이 끝났음을 암시합니다. 이 여자들을 생과부로 만들었지만 다른 여자도 관계한 내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여자들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것이 다윗의 최선이었다. 인간은 늘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전쟁 전에 악하고 음란한 것을 먼저 회개하고, 세상적인 욕망을 끊어내야 한다.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전쟁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적용을 기뻐하셔서 결국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다고 본다. 이것은 거룩의 적용을 했기 때문이다. 거룩은 사단의 세력이 다 물러간다. 그래서 이길 수 없는 다윗이 이기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자신의 힘으로 죄와 욕망과 중독을 끊을 수 없다. 중독은 행위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반응하는 것이 모두 중독이다. 누가 틀렸다고 해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으면 끊임없이 염려와 비판이 생긴다. 기업, 입사, 입시 전쟁 등 수많은 전쟁에서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은 거룩의 적용이다. 기도만 하면 들어주시겠는가? 한 가지라도 회개하고 적용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고,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응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여야 할 수치는 무엇인가? 끊어야 할 중독은 무엇인가?
2-2 반대편 적장을 기용했습니다.
이것이 별로 올바른 것은 아니다. 실패한 선택이었다.
이제 전쟁을 해야 하니까 아마사보고 사람들을 소집하라고 했는데, 삼일 내에 오지 않았다.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이 어제까지 원수였기 때문에 모으기가 어려웠다. 그런 역량이 못되는 아마사에게 유다 사람을 모으라고 명령했다.
다윗은 아마사를 임명해서 돌아오는데, 세바의 난이 일어났다. 다윗은 전체적으로는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았어도, 불량배 같은 세바를 물리치는데, 아마사는 두고, 요압을 보냈어야 한다. 지난 주일엔 적용을 잘했지만, 이번 주일엔 적용을 잘 못했다.
유다를 통솔할 수 있는 요압을 보냈어야 하는데, 요압이 밉기 때문에 아마사를 보냈다. 그래서 요압은 억한심정을 갖게 된다. 그래서 다윗이 아마사를 보냈기 때문에 아마사가 죽었다.
다윗이라고 늘 좋은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이 결정을 잘 못하는 것을 보고 너무 위로를 받았다. 다윗도 압살롬을 죽인 요압에게 감정이 있는 것이다.
날마다 인생은 결정, 선택이다. 구원 때문에 결정해야 한다.
스카펙은 결정에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를 가진 사람이 가장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하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믿음이 없으면 욕심 많은 사람이 제일 결정을 못 내린다. 그리고 믿음이 없으면 미련한 사람이 제일 결정을 잘 내린다. 믿음으로가 아니면 뭐가 옳은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아마사를 군장 삼은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야지 유다의 왕으로 귀환을 하는 결정적인 포인트였다.
상대편의 적장을 군장삼은 것이 오늘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이다.
갈라졌는데, 상대편 적장을 다윗 편으로 세우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좋아서 반이나 따라왔다. 그러나 아직 반이 남아 있다. 그런데 세바가 난을 일으킨 상황에서 거기에 아마사를 넣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우리 편이었는데, 거기에 칼질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다윗은 그 때 그것이 너무 힘들어서 안 보였나보다.
다윗이 이 싸움이 지파간의 싸움이고,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기를 따르던 600명의 용사들을 급파했다. 근데 이때 요압이 일을 저지른다.
돈이 있으면 이렇게 이종사촌도 살해하게 된다. 예수 안에서 최고의 다윗 계열의 사람들이 평안하냐면서 예수를 죽이는 유다처럼 입을 맞추려는 참에 죽인다.
주님은 사단을 가리켜 처음부터 살인하는 자,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한결같이 달콤하고 선량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사단이 작정을 하면 살아남을 자가 없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사단이 한 번 먹이 감으로 정하면 그 유혹에 살아남을 자가 없다. 요압의 감추어진 칼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곳곳에서 나는 의에 일꾼이라고 한다. 요압을 이미 기용하지 않았는데도, 요압을 따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죽였기 때문에. 그래서 아마사도 압살롬을 따랐던 자이기에 형벌을 받아야하지만 요압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축복 중의 축복이다. 천국에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마사의 시체가 큰 길에서 굴러다녔다. 이것은 지는 전쟁이다. 다윗이 하고자 하던 요압 견제도 실패를 했고, 베냐민 지파의 환심을 사고자 시바를 다 용서했는데, 그것도 도리어 베냐민 지파에서 반역이 일어났다. 아마사를 군장으로 임명한 것도 실패했다. 전체 군장으로 임명한 것은 좋았지만, 세바의 반역에서는 요압을 보냈어야 한다. 이렇게 실수의 연속이다. 다윗과 밧세바와의 범죄는 끝도 없이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나 결국 왕권을 회복한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을 지켜주셨다. 바보 같은 다윗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을 보시고, 후궁을 끊어내고, 아마사를 데려오는 적용을 보시고, 서로 가야하는데 동으로 가는 나를, 어느 순간 다시 서로 가있게 하셨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오는 사단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는가?
반란이 뭐냐 각자의 수준에서 인생이 날마다 반란한다. 그래서 주님을 만난다.
<목장모임>
마지막 모임으로 함께 피자헛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정말 아쉬움을 잊고 피자를 흡입했고, 나눔보다 먹방을 찍었습니다. 10조각을 먹고도 아직 더 먹을 수 있다던 정필이가 기억에 남네요. 피자헛에서 1시간 20분 동안 먹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목장은 너무 짧아 모두가 아쉬워 했습니다. 저도 찬형이형 덕분에 부서도 섬기는 축복(고난)도 누리게 되고, 좋은 친구인 승우와 영재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