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압살롬의 기념비 사무엘하 18:1~18
처첩의 자녀인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이를 갈다가,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본인이 죽는 장면이다. 죽는 그곳에는 압살롬 자신이 건립한 기념비가 있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그곳을 가면 저주하며 돌을 던진다고 한다. 이 기념비는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
1. 아버지의 사랑을 기념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지만 철저하게 전략을 짜는 다윗.
잇대에게 군장을 맡긴 것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다윗을 사랑하는 충성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도망 올 때 잇대에게 도로 가라고 했지만 다윗과 동행하길 간절히 원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나라의 일은 출신, 스펙보다 충성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떤 전쟁에서 다윗이 이렇게 치밀하게 계획을 짰겠는가?
아들을 이기려는 목적이 아니라 배후의 사단의 역사를 간파했기 때문에 싸우기로 했다.
사단은 티끌만큼의 동정심도 없다. 적당히를 모른다. 사람으로써는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다윗이 알게 되었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면 사단의 역사임을 알아야한다.
다윗이 나가겠다고 하니까 백성들이 다윗이 우리 만 명보다 나으시니 나가지 말라고 한다. 압살롬의 목적이 다윗이니 앞서서 보일 필요가 없다고 한다. 다윗은 사단의 정체를 알고 나가려 했지만, 백성들은 강하게 말렸다. 모양새가 좋다.
17절에 압살롬의 백성은 압살롬을 앞세웠다. 백성들이 다윗을 신뢰하는 정도가 압살롬과 비교가 안 된다. 다윗은 백성들의 권유을 받아들였다. 순간순간 내 열심과 공명을 항상 버려야한다. 고난과 온유함은 어근이 같다. 고난을 잘 받으면 온유해진다. 다윗은 출전하는 백성을 격려했다. 서로 솔선수범하고, 위하는 공동체는 어떤 도전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다윗이 이긴 것은 서로 사랑하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5절에서 다윗의 아버지 사랑이 나온다. 압살롬의 배후의 사단의 세력은 격파하겠지만, 압살롬은 너그러이 대우해달라고 부탁한다. 다윗은 11년 동안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후궁을 범한 것 까지 다 알고 있었고, 아들에게 쫓겨 울며 맨발로 기드론 시냇가를 건넜고, 지금도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 다윗이 사울을 끝까지 용서한 것처럼, 최후의 상황에서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달라고 사랑의 명령을 한다. 그 속의 사단은 무너져야하지만, 사단이 무너진 그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지면 밑바닥을 친 압살롬이 돌아올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압살롬의 기념비이다.
CS루이스는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그래서 뭐든지 사랑해보라고 했다. 사랑은 아픔이기에 아픔을 느낄 것이고, 그사랑 때문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 마음의 손상이 없고자 한다면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 무질서한 사랑이라도 사랑을 해봐야 한다. 압살롬은 끝까지 한량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지만 사단의 계략으로 이 사랑을 모르고 갔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 계속 사단의 도구로 끝까지 자리매김하고 갔다. 압살롬의 기념비는 이 사건을 만대에 전하고 있는 것. 다윗이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을 전한다. 아들도, 사단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
산술적으로 안 맞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어떤 죄라도 죄와 죄인을 분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성숙이다.
2. 상처가 별이 될 수 있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진짜 전쟁에서 싸우는 것보다 오가는 길에서 죽은 사람이 많은, 낭비가 많은 싸움이었다.
결국 다윗의 군사가 이겼다. 지도자를 누구를 따르느냐에 운명이 달라진다.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이기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분노, 무시, 혈기, 억울함의 전쟁에서 나는 이길 수 없는데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 다윗은 자기도 군대를 편성해서 가장 험한 에브라임수풀에 나갔다. 20년 동안 전쟁의 고수인 다윗이 백성들을 데리고 선전포고를 했다. 다윗의 전쟁방식은 힘든 광야에서 평생을 살았기에 먼저 힘든 광야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힘든데 먼저 자처해서 갔다. 압살롬의 군사들은 기회주의, 기복주의자들이 많아서 헌신과 사랑이 다윗의 부하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군사의 수가 많아도, 광야의 험한 산지를 모르기 때문에 질 수 밖에 없다.
옛날엔 우리가 냉방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전국이 냉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안하면 큰일 난줄 안다. 그런데 강남 한복판에 냉방이 안 되는 이곳에서 10년 이상 예배를 드렸다.
내 죄가 고난보다 세니까 이곳에 온다. 그래서 우리가 불편함을 잘 견딘다.
원칙과 정직함, 유연함, 솔선수범은 험한 꼴 많이 당하고, 맷집이 늘어야 생긴다.
다윗이나 장그래나 광야에서 고생을 많이 하니 전쟁이 보이고, 솔선수범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도 이런 믿음의 원리대로 하면 상처가 별이 될 수 있는 것을 믿는다.
열다섯 광야의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이 큰 능력이 된다. 자신의 기념비를 쌓는 것보다 고생하는 것이 상처가 별이 되어 더 기념비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여러분의 상처는 별이 되고 있는가?
3. 무너진 인생의 자랑을 기념하는 것이다.
압살롬은 우연히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이것은 압살롬의 심판이 코앞에 왔음을 알려준다. 압살롬은 머리털 때문에 백성들의 환심을 샀는데, 머리털 때문에 죽게 된다.
공중에 걸렸다는 것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필요 없는 자라는 것이다.
무엇을 자랑하는가? 인간적인 자랑거리는 교만을 가져오고, 수치와 패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났기에 머리털이 걸렸다. 왜 옆에 아무도 없었을까? 사람이 많았겠지만, 이해타산으로 모인 자들이기에 목숨 걸고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이것이 압살롬의 결론이다. 내 돈, 권세, 자리 때문에 모여 있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요압에게 압살롬의 나무에 걸렸다고 보고하니까 왜 죽이지 않았냐고 한다. 요압은 다윗의 명령 중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런데 다윗은 때마다 요압의 덕을 본다.
이런 요압에 대적해서 은 천개를 받는다 해도 안 죽이겠다고 하는 충신이 백성 중에 있다.
이름도 없는데 다윗의 명령에 충성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죽였다면 요압이 자신을 죽였을 것이라고 하며 요압의 간교함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 요압을 평생 끌고 간다.
-내가 평생 끌고 가는 악은 무엇인가?
철저히 다윗의 명령을 거역하고 압살롬을 죽이고, 확인사살까지 했다.
물론 하나님은 이것까지 공의로 쓰셨다. 그러나 악역은 항상 다른 사람이 준비하고 있는 줄로 알고, 내가 그 역할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옆의 열 사람이 요압의 편을 들었다.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어야할지 모르겠다. 다 된 것 같은데, 마지막에 악한 꾀로 일을 흐트러트리는 게 무엇이 있는가? 결혼, 입시 등등..
압살롬의 죽음은 반역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길을 계획해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한다.
압살롬은 죽을 때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힘들 때 날 도와줄 친구가 있는가?
사울과 마찬가지로 그의 생명을 구해줄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분명히 모두가 도망갔을 것이다. 잠시 압살롬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진정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른 것이 아니었기에 금새 도망가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아들이 죽이려고 해서 맨발 벗고 도망가는데, 거기에 아비새, 후새, 잇대와 같이 따라오는 사람이 있다. 진실 된 사랑으로 관계를 맺어야하는데, 그것은 죄의 고백이 있고, 겸손하게 나아가니까 따라가는 진정한 지체가 있는 것이다.
전쟁 종식 나팔이 불었다. 나는 누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나? 오직 하나님을 위해 싸워야 어떤 결론에서도 후회가 없는 것이다. 허무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결과가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싸우는 전쟁은 다윗을 위해 하는가? 압살롬을 위해 하는가?
결국 압살롬은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한다. 자기를 위해 비석을 세운다. 오직 초점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비석은 돌무더기로, 영광은 수치로 변했다. 공개적으로 수치를 당하고, 따르던 무리가 도망갔다. 압살롬의 기념비를 보면서 나의 헌신이 누구를 위한 헌신이었는가? 돌아봐야한다. 압살롬이 잠시 형통한 것은 다윗을 징계하기 위해서 그 역할을 잠시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의한 사람이 형통한 것을 부러워 말아야한다. 악인의 형통은 끝이 있다.
자신이 기념비를 세운다고 해도 결코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압살롬 한 사람 때문에, 자기가 죽을 때까지 가는 것이다.
나 한사람이 적용하면 아무도 안 죽을텐데..
다윗이 너그러이 대해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하고, 압살롬의 시체는 끝까지 모독을 당했다. 그곳은 압살롬의 기념비가 있던 곳이었다. 허영, 허무의 기념비. 나의 자랑이 나를 무너지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외에 별 인생이 없다. 요압의 불순종으로 압살롬을 죽여서 돌무더기를 쌓았지만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결정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한다.
압살롬은 자기 집안이 어떤 집안인 줄 모른다. 따로 논다. 감사가 없다. 아버지가 얼마나 믿음의 사람이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지 관심이 없다. 열등감은 한 마디로 비교에서 온다. 자기가 최고여야 하는 것이다. 다윗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들로서 아버지밖에 모르고,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윗의 아들로서도 압살롬처럼 열등감이 있을 수 있다.
자신감은 자신에 대한 감정이 건강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다 이 대단한 환경에서 자신에 대한 감정이 건강하지 못하다. 자존심으로 하늘을 찌르는데, 자존감이 없다. 감정이 다 왜곡되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 하나님께 붙들려 가는 삶이 최고의 기념비이다.
-나는 보기에 좋은 누구를 쫓다가 이렇게 돌무더기 쌓는 형벌을 받을까?
-내 인생의 자랑이 무너진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엇을 가장 기념하고 싶은가?
-나는 무엇으로 기념이 되기를 원하는가?
압살롬의 기념비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상처가 별이 된다는 것을 기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랑을 내려놓고 내 자랑을 무너진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압살롬이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죄와 죄인을 따로 생각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사랑은 다윗의 사랑보다 더 해서 내가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돌보신다.
<나눔>
오늘은 다들 여러 사정으로 (학교 과제폭탄으로, 판교에서 어머니와 예배를 드려서, 대전에 내려가서, 일이 있어서 예배 마치고 바로 가서) 목자, 부목자가 단 둘이 나눔을 했습니다.
한 주 동안 목회자 세미나 후속 프로그램과 제자훈련MT, 청소년부 회의, 설교준비로 바쁘게 보냈는데 제자훈련MT를 통해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오픈과 특히 남학생들이 울면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에 영적, 육적으로 충전이 되었다. 요즘 상담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고, 오늘 설교가 낮에 상담했던 청년의 응답이 되는 부분이 있어 너무 감사하고 놀라웠다.
저는 이번 주 화요일에 일단 졸업 후 가고 싶었던 주일에 쉬는 레스토랑에 세달 동안 수습기간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워커힐에서 배추 10톤을 김장하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온몸이 쑤신다. 오랜만에 주말에 푹 쉬었음. 어떤 죄라도 죄와 죄인을 분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전혀 분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얄미운 행동을 하는 동생을 미워하고, 김장 봉사를 하러 가서 핑계를 대면서 점심식사 후에 가게 된 동생에게 ‘잘 가~ 너 몫까지 우리가 힘들면 되지’ 라며 비꼬는 말을 했다. 악역은 나 아니어도 할 사람이 있기에, 내가 그 역할까지 안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학교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바로 요압이고, 압살롬을 확인 사살한 10명의 무기든 청년이다.
<기도제목>
찬형- 수련회 설교 준비 잘 하도록, 목회자세미나 잘 섬기도록
상연- 시험공부 잘 하도록, 죄와 죄인 잘 분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