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마태복음 26:69-75
<말씀> 심히 통곡 하니라
<내용>
목회자 세미나 첫째 날, 예수님의 거짓증거를 찾는다고 했다. 두 번째 날,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을 부인했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미행하면 우리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음.
셋째 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가 자살한다. 무시무시한 큐티본문이 목회자세미나 중에 있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유다는 돈 좋아서 예수님 팔고, 자살을 했다.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신 목사님들이 참여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후회가 죽고 회개의 역사가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날은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날.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 죽기를 작정하시고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심. 이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죽는 죄목이 된다. 이 질문 외에 다른 질문에는 일절 대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셨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우리들교회에게 너무나 당당하고 확신 있게 말하기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분별하며 가라고 이 본문을 주셨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 본질의 말 외에는 한 마디라도 말조심하라고 하신다. 항상 이럴 때 힘든 본문을 주시면,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고, 아파하시는 것을 느끼게 됨.
구속사적으로 볼 때, 내 속에도 전통적인 엘리의 시대가 가고, 말씀의 사무엘 시대가 오는가보다. 나에게 전혀 내려놓지 못하는 죽어져야 될 것이 있겠구나 생각됨.
세미나 기간에 본문이 수상하니, 갈 길이 쉽지 않겠고 여전히 되었다함이 없기에 심히 통곡하며 가야하지 않을까? 해서 오늘 본문으로 목회자세미나를 기념하면서 우리들교회가 갈 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눈물의 바다를 건너온 사람만이 진정 웃을 수 있다.
자기 확신이 많았던 베드로의 심히 통곡 하니라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되었다함이 없이 여전한 방식으로 회개하며 가기를 원한다. 베드로의 통곡과 주님의 통곡은 다르다. 처음엔 슬퍼서, 억울해서 울 수 있는 사람은 가능성이 있다. 나 때문에 울어봐야 남의 눈물이 보인다. 그래서 눈물은 성경적이다. 예수님은 웃었다는 말은 없는데, 울었다는 말은 많이 나온다. 눈물의 영성은 많은 사람을 치유하고, 돌이킨다.
베드로는 왜 심히 통곡했을까?
1.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기에 심히 통곡했다. (69,70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다가 바깥뜰에 앉았는데, 한 여종이 ‘너도 갈릴리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고 했다. 당시 갈릴리가 무시 받는 동네였기에, 무시하며 이야기했는데 부인했다.
안뜰로 앉아야 하는데, 바깥뜰에 앉았기 때문에 대제사장에게 당할 수치를 한 여종에게 당하는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베드로에겐 복음이 아직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세상 성공의 복음이기 때문에 여종을 무시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밝혔지만, 기도 안하고, 졸던 베드로는 여종 앞에서 초라하게 부인한다. 좀 전까지만 해도, 죽을지언정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이다. 멀찍이 따라가니까 바깥뜰에 있고 부인한다. 이것은 목장모임을 나가지 않고, 바깥으로 돌게 되는 것이고, 이러다보면 예수님을 부인하게됨.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정신, 영, 육적으로 자기 좋은 것만 하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부인한다는 것은 ‘나 잘났다’ 이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자기 삶에서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높아지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나의 무능과 부족을 인정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합니까?
-멀찍이 바깥뜰에 있다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은 무엇인가?
2.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다. (71,72절)
베드로가 주께 피하지 않고, 세상으로 피하니까 이쪽저쪽에서 더 무시를 당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더 비천하게 부르자, 베드로도 ‘그 사람’을 모른다고 무시했다.
베드로가 떠나지도 못하고, 예수님께 돌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들에게 돌아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배회하고 있다.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다. 나사렛이란 이름에는 나실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실인은 새싹, 구별되었다는 뜻이 있다.
남들이 무시해도 예수 믿는 나는, 생명을 가진 새싹이고, 하나님께 거룩한 예물로 드려지는 구별된 인생이다. 이것이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 피하지 않고, 세상길로 피해 더 힘든 일에 빠져있지 않은가?
-남들이 비천하게 여길 때, 베드로처럼 펄펄 뛰는가? 나의 약함을 인정하는가?
-나는 세 번이 아니라 수천 번도 부인할 수 있는 죄인임을 인정합니까?
3. 저주하고 맹세하면서 부인했다. (73,74절)
베드로가 내가 그 사람을 안다면, 내가 나를 저주한다며 맹세했다. 자신도 저주하고, 예수님도 저주했다. 사투리 때문에 갈릴리 사람인 것을 금방 들통 나는데, 저주까지 하며 부인한다.
배반을 늘 생각하고, 우리가 가장 무엇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 같은 날 본문을 보면서 항상 깨어있게 됨. 내가 두 주인을 섬기면 세상에서도, 예수님에게도 무시를 당한다.
인간은 교만해서 내가 망했다,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빨리 인정하면 중간이라도 갈텐데..
-잘못이 있으면 빨리 시인하라. 바깥뜰에 있다가 앞문으로 가서 더 무시당하지 말고, 당장 시인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누구에게나 자존적인 교만. 체면, 외식이 깔려있는데, 이것이 굉장히 큰 일이다.
4. 생각나는 말씀이 있어야한다. (75절)
베드로가 부인하고, 맹세하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부인한다고 해도, 주님이 십자가지고 가시다가 얼굴을 돌이켜서 베드로를 보셨다. 쳐다봐 주셨다. 주님의 이 시선이 평생 베드로를 통곡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한다.
이 장면의 주제는 예수님이 끌려가심이 아니라 베드로의 기가 막힌 배반과 실수에도, 돌아보시는 주님이십니다.
베드로가 교활하게 속이려 했다면 안 들켰을 것이고, 또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갔다면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주님을 멀찍이 따라가서 이렇게 당하는 것일까? 베드로 나름대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 주님의 사랑 때문에 통곡했다. 여러분이 죽으면 자녀들이 심히 통곡하겠는가? 내 말은 생각나는데, 사랑이 생각나지 않으면 부모라도 통곡하지 않는다. 내가 죽었을 때 나의 말과 사랑이 생각나서 자녀들이 통곡하는 인생을 지금 살고 계시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오늘 죽었을 때 무엇이 생각나겠는가? 여러분은 지금 누가 죽으면 그렇게 통곡이 될 것 같은가?
비참하게 일그러진 상황에서 주의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 최고의 복된 인생이다.
여종에게 당해 낮아지고, 평생 울고 또 울었을 베드로는 이 장면 이유로 3천명, 5천명이 돌아와도 울었을 것이다. 전혀 잘난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교만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주님의 제자양육은 실패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자기보다도 주님이 슬픈 눈으로 쳐다보시는 것 때문에 일생이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당하는 고통보다 나의 악으로 주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것이 너무나 고통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겸손을 유지시키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멀찍이서 주님을 따라간 베드로를 욕할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멀찍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우리자신을 돌아봐야한다. 베드로가 실수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하신 것이 너무나 많다. 고난당하고, 욕먹는 것을 예수님처럼 잘 견디려 애쓰는 것이 교만이다. 예수님 때문에 무시받기로 작정을 해도 누가 욕먹고, 무시 받고 싶겠는가? 우리는 당할 때마다 힘든 것이다. 날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으면 넘어진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모든 것에서 우리는 주님을 부인한다. 우리는 나 잘났다고 하면서 늘 주님을 부인한다.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으로 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만 알고 있어도 안 되고, 이렇게 나에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야 한다. 그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했다고 한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돌아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느껴야한다. 그래서 내 죄로 인해 심히 통곡하고, 또 다른 사람의 눈물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는 눈물의 영성을 소유하길 바란다.
-지은 죄를 인정하기 싫어서 세상 속으로 더 들어가지는 않는가?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나를 돌아보며 쳐다보시는 주님의 시선에 어떻게 응답하겠는가?
-내 죄로 심히 통곡하고, 다른 사람의 눈물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주는가?
여러분은 어떤 일로 눈물 흘리며 통곡하는가? 영성이 있는 눈물은 억울하고,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내 죄와 연약함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와 남을 살리는 영성의 눈물이다.
우리가 주님을 부인하고, 맹세하며 부인하고, 저주하면서 부인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멀찍이 따르던 베드로가 여종에게 수치를 당하고 주님과 멀어져 바깥뜰로 나갔을 때 무시와 유혹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여종을 무시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처럼 성공복음에 사로잡혀 사람을 무시하고, 내가 잘났다고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을 회개해야한다.
무시받기 싫으면 예수님을 더 낮춰서 맹세하며 부인한다. 내 욕심과 자존심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부인한 것을 회개해야한다. 아무리 나사렛이 비천하게 여겨지는 곳이었어도, 그곳은 구별된 곳이고, 새싹이라고 하신다. 내가 예수 믿기 시작하면 새싹이고, 구별되었다고 한다. 무시하는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구별된 자라고, 새싹인 것을 알고 누리라. 엉거주춤 베드로를 곁에 섰던 사람들이 고발한다. 이제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한다. 한 주인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두 주인을 섬길 때 여기저기서 무시당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라. 나를 아시고 돌아보시는 주님의 시선을 느끼고 나의 이 모든 죄에도 주님이 죽으러 가시는 중에도 발걸음을 돌이켜서 나를 쳐다보셨다는 이 일로 인해 통곡의 역사가 일어나야한다.
<나눔>
찬형
목회자세미나를 하며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냈지만 좋은 경험이 된 듯. 목사님들이 돌아가실 때 터미널까지 모셔다드리며 대화를 했는데,내 간증이 있다는 것이 큰 은혜임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금, 토는 혼자 하나님과의 시간을 가지며 기도했다.
작은할아버지 산소를 이장하게 될 것 같은데, 온 가족이 모였을 때, 간증하고, 복음이 전해지길.
베드로 말씀과 설교 뒷부분에 간증하신 목사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다.
내 죄를 보지 못하고, 보기도 힘들고, 속으로 죄를 짓고, 감사함보다 생색이 나는 내가 바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 같다.
베드로가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큐티, 목장, 예배, 기도를 멀리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예수님을 부인하게 된다는 말씀을 들으며 나는 금요일 전까지 개인적인 기도생활을 멀찍이 했던 것이 떠올랐고, 멀찍이 있다보면 부인하기 쉽다는 것이 무서웠다.
승우
시험이 끝났고, 잘 본 것 같다. 학비 문제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며 공부에 집중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학비를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 너무 부담된다.
나는 내 잘못을 인정은 하는데 회개가 안 된다.
설교 후에 했던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을 부르는데 과거에 정말 열심히, 뜨겁게 믿었던 때가 떠올랐다.
늘 예배 전 30분에 교회에 가서 기도와 말씀으로 예배를 준비했는데, 지금은 너무 식은 것 같은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영재
지난 주일에 독감예방접종을 했는데, 독감에 걸려서 하루종일 집에서 누워있느라 교회를 못옴.
지금은 회복 되었고, 회사에 바쁜 일이 다 끝나고 한가해 졌다. 성과급 받아서 동기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회사에서는 내 죄를 쉽게 시인하지만, 부모님이나 여자친구에게는 핑계를 자주 대는 것 같다.
정필
직업학교 면접이 통과되어 11월 3일부터 교육을 받게 되었다. 나는 고졸에 컴퓨터도 공부하다가 중간에 안해서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고, 다른 합격자들은 대학교 졸업한 사람들도 있고, 내가 제일 부족해보여서 두렵다.
어제 술을 많이 먹어서 오늘 교회에 늦었다. [면접 합격해서 축하 주(?)]
설교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나는 내 죄를 시인하지 않는 것 같다.
담배를 끊는 적용을 하려고 함.
상연
시험을 잘 못봐서 마음이 힘들었는데, 수요예배를 통해서 내가 시험을 못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어 마음이 회복되었다. 1학기 때는 시험공부 한 것을 동기들에게 나누며 1등이 아닌 구원을 목적으로 열심히 했더니 1등을 했는데, 2학기가 되자 구원이 아닌 1등이 목적이 되어 공부한 것을 나누지 않았고, 공부한 자료로 만족을 했기에 열심히 하지 않게 되었기에 시험을 못 볼 수 밖에 없었고, 1등해서 좋은 곳에 취업을 하고 싶은 세상적인 욕심이 내 안에 있었다.
지난 주 비가 왔는데, 아랫집이 비가 새는 사건을 통해서 작은아버지께서 나에게 옥상방수를 부탁하시며 30만원을 주셨는데, 나는 자재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내가 더 큰 이익을 보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자재를 살 때 영수증을 끊어서 작은아버지께 얼마가 들었는지 알려드리는 적용을 해야겠다.
양교를 받는데 지지난주에 과제를 너무 구체적으로 하지 못해서 지적을 받아 제대로 해보겠다며 열심히 준비했는데, 하나도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으셨고, 갑자기 앞사람의 과제발표에 무슨 말을 해주고 싶냐는 목사님의 질문에 제대로 듣지 않고 있어서 '잘 듣지 못해서, 모르겠다'고 말하는 창피를 당했다. 여전히 어디서나 인정받고 싶어하는 내게 주님은 인정대신 무안함을 주시며 나를 더 낮아지게 하시는 것 같다.
설교를 들으며 학교에서 1학기 때는 착하고, 말씀 적용을 잘 하면서 동기들에게 모범을 보였었는데, 그때는 정말 내 죄가 보이지 않고, 동기들의 죄만 보며 정죄하는 마음이 가득했는데, 2학기에는 동기들이 편해지자 내 죄가 동기들에게 전부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죄인임을 고백하며 되었다함이 없음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학교에서 동기들에게 중등부교사를 한다고 하니, '형이??? 오빠가???' 라는 말을 들으며, 그래서 요즘 중학생 수준이 되는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과거에 선하고, 바르지만 생색과 정죄, 교만한 나보다, 악하고, 약해서, 내 죄를 보며 애통한 내가 더 은혜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기도제목
찬형
청큐집필 기간내에 잘 마감할 수 있길, VIP캠프 은혜롭게 잘 마칠 수 있길.
승우
수요예배 참석
영재
누나의 취업과 신교제
정필
금연, 누나의 취업
상연
말 줄이기, 월요일에 교사 기도회 참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