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요약 : (삼하 14:1-33) 입맞춤
사자와 소가 결혼했다. 사자가 살코기를 뜯어다 가져다주니까 소가 기쁘게 받아준다. 소도 풀을 뜯어주니 좋다고 받아준다. 하지만 받아주다 지치고 허니문이 지나면 물고 뜯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다가 헤어진다. 그러다가 나는 최선을 다해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화평은 내 입장에서 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 된다.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에 자기밖에 몰라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교회 다니면 다 화평해야 한다는 병이 있다. 하지만 교회 다닌다고 모두 하나님 편이 아니다. 관계 나쁜 사람을 중재하려는 게 굉장히 근시안적 시각일 수 있다.
다윗에게 압살롬이 입맞춘 사건에 중재한 사람이 요압이다. 요압은 진정한 화평을 도왔는가? 문안도 화해도 되는 입맞춤을 사랑도 회개도 아닌 것으로 하고 있다. 유다의 입맞춤처럼 겉만 그럴싸하다.
1. 본능적 사랑으로 입맞춤했다.
1절, 삼하 13:38을 보면 압살롬이 도망해 그술에서 산지 3년이 지났다.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했다. 39절에 이어 오늘 1절에 요압이 다윗의 그런 마음을 알았다. 자녀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부성애가 있다. 하지만 죄에 대한 징계가 없어 화를 부른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판단 내리지 못하면 비극이다. 아버지 부성에 치우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가? 암논을 죽인 범인이 다윗 자신이다. 다말을 암논에게 들여보낸 게 자신이다. 압살롬을 범인으로 만든 게 자신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밧세바 사건부터 다윗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법에 자신부터 자녀까지 다 걸렸기에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마3:17)에서는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으로 부모와 자녀를 이야기한다. 핏줄에 연연한 게 사람이다. 부부는 안 보고 살 수 있지만 부모와 자녀는 다르다. 내 욕심으로 공부시키고, 결혼도 내 체면을 위해 시키기에 모든 결혼의 문제 위에 부모가 있다. 일시적 화평을 지키려고 주일을 어기는 부모와 자녀를 못 본 척하고 있는가?
2-20절,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알고 압살롬의 복귀를 은밀하게 추진한다. 충성스러워 보이지만, 잘못된 중재를 한다. 여인은 두 아들의 이야기를 꾸몄다. 계략에 불과하기에 이 이야기는 뛰어넘겠다. 과부가 되어 못된 짓을 한다. 내가 과부라고 말할 때 자기 이익을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할 짓이 못된다. 구원을 위해서 내가 과부라고 말해야 한다.
-> 여인이 다윗의 감성에 호소한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에 바로 도와주려고 했던 것처럼, 여인의 남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금하게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여인은 다윗의 두 아들의 경우로 적용시켜 탐문한다. 논리가 안 맞다. 압살롬은 살인자다. 살인자를 데려오지 않는 게 무슨 잘못인가? 그런데 드고아 여인의 말을 들은 다윗은 성급한 결정을 내린다. 이런 다윗을 누가 변화시키지 못하니까 요압이 꾀를 내어 어마어마한 장을 할애하여 이 부분을 설명한다. 다윗의 합리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도장을 찍어준 것이다. 밧세바 이후의 다윗은 은혜 아니면 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울의 핍박은 오히려 자신만 참으면 되었던 일이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졸지에 통일왕국의 왕이 된 뒤에 모든 것을 다 이겨 놓고 간통, 살인의 범법자가 되어 젖 먹던 힘을 다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본능적 사랑을 했지만 하나님 통치를 놓치고 있었기에 때늦은 입맞춤은 너무도 큰 폭풍을 가져온다. 화해는 늦어도 빨라도 안 되는데 구원에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시간을 놓치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은 여인의 말의 배후가 요압임을 알아차렸지만, 다윗에게는 악한 일에는 요압을 사용하는 연약함인지 악함인지가 있다. 이 여인의 모순됨과 요압의 계책, 악함을 알만한 다윗이 연민에 빠져 자식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윗에게 정의에 대한 책임이 아닌 아버지로서 마음이 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주고, 압살롬을 데려오게 한다. 나단의 이야기는 죄를 회개케 했지만, 요압의 이야기는 다윗을 고통에 빠지게 하고 이스라엘에 분란만 가져오게 된다.
24절,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압살롬이 회개하지 않았기에 다윗이 백성 앞에서 그를 보지 않는다. 엄격하게 해야 할 때와 관대하게 해야 할 때를 다윗이 나사가 풀려 백성의 이목을 의식하고 있다. 왕이자 아버지인데 다윗이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조금 가다리면 회개할 거라는 마음으로 그러고 있다.
적용 : 본능적 사랑을 하고 있는가? 객관적 사랑을 하고 있는가?
2. 회개하지 않는 입맞춤이다.
25절,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압살롬의 외모가 뛰어나니까 흠이 없는 외모에 백성이 반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에서 압살롬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그를 피하는 것과 상반된다.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압살롬을 사랑하는 듯하다. 독을 품고 있으면 얼굴이 추해지는데, 압살롬의 이 모습은 사단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압살롬의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압살롬의 살인은 정당하다는 데까지 간다. 사울의 외모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압살롬의 외모 때문에 다윗을 반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운 머리털 때문에 압살롬이 죽었다. 선천적으로 자랑거리가 되기도 하는 게 약점이 되기도 한다.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고 해서 자랑해서는 안 된다. 나의 장점은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
27절,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아들들 이름은 생략되었다. 어려서 죽었다고 하는데, 압살롬의 가계는 끊어졌다. 딸의 이름도 여동생 다말로 지었다. 외갓집도 왕이었고, 자신도 왕의 아들이다. 양쪽의 가문이 대단하고 다 같이 아름답고 부자다. 흠이 없는 외모를 가졌다. 교만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다 가졌다.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28-32절,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압살롬이 아버지를 너무 보고 싶어 하지만 압살롬이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2절을 보면 압살롬은 자신이 공의를 행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외치는 것이다. 암논이 죽을 죄 지은 건 맞다. 하지만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건 옳지 않다. 압살롬은 2년, 3년 동안 파괴된 마음으로 나는 죄 없다고 부르짖는다.
요압은 굉장히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까 왕이 압살롬을 안 보니 자신도 안 봤다. 그런데 자기 밭이 불살라지자 다윗에게 말을 해서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요압에게는 진정으로 화해시키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훈계하고 눈물로 책망했어야 하는데. 죄 범한 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는 ‘나는 용서 받았는데 압살롬은 용서 안 하면 어쩌나’하는 마음인데, 그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자식 문제 앞에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압살롬을 그리워하면서 피하고 있다. 비인격적 용서였기 때문이다. 압살롬은 살 곳이 없어서 온 게 아니다. 그런데 살 곳 마련해 주고 안 만나 준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는데 다윗은 먹을 것만 주고 있다. 다윗이 탕자의 비유를 들었다면 이 허랑방탕한 아들을 끌어안지 않았을까? 자신의 실책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잘못하고 저 애도 잘못하고’, 압살롬을 거절한 다윗의 죄는 다윗의 역사적인 세 번째 죄로 기억된다. 밧세바와의 간통은 순간적인 것이었고 우리아를 죽인 건 권세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압살롬을 죽인 것은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변명이 필요 없는 죄이다.
압살롬이 아버지를 간절히 원하는데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자 그제서야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도 이 문제가 처리 되지 않았고 압살롬도 회개가 안 되는데 입맞춤을 하니까 큰 폭풍을 가져온다. 그래서 반역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윗은 압살롬의 죄의 문제를 돕지 않았다. 요압도 마찬가지다. 서로 죄 문제는 빗겨가면서 거짓 화평을 가지고 중재했다.
적용 : 회개하지 않고 겉으로만 화해하고자 하는 게 있는가? 시끄럽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라고 여기고 있는가?
3. 순수하지 못한 충성으로 입맞춤을 시켰다.
이 일을 주도한 요압은 연구가 필요한 자이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며 요압은 압살롬과 다윗을 중재했다. 항상 화기애애하는 게 믿음이고 성도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요압이 잘한다고 열심을 내지만 구속사를 모르니까 늘 일을 저지른다. 요압은 충성스러운 자이다. 자기가 전쟁에서 다 이겨놓고 왕을 위해 영광을 남겨 놓는다. 그런데 왕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가 있다. 아브넬과 압살롬을 살리라고 했는데, 요압은 왕의 뜻을 거절하고 죽였다.
요압은 인간 왕 다윗에게 충성한 훌륭한 사람이다. 자기 동생을 죽인 자에게 원수를 갚은 것은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윗을 위해 우리아를 죽인 거처럼, 그래서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을 정당하게 생각한다.
사람 앞에서 정의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나라마다 시대마다 대세를 이룬다. 천하의 다윗이 요압 앞에서 맥을 못 춘다. 구속사를 알고 있는 다윗이 겉으로는 의롭게 보이지만 세속사를 꿰고 있는 요압에게 끌려가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의로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요압이 믿음으로 했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인가 할 때에는 욕심이 숨어 있다. 불행하게도 요압의 욕심이 성공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일을 막지 않으시는 것을 본다. 요압의 이 계획을 막지 않으시니 요압이 대세인 것이다. 그리고 다윗은 바보 같다.
성경에서는 끊임없이 사람 일을 다룬다. 성도는 끊임없이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끊임없이 갈등한다. 성경은 이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똑같이 반복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스겔, 다윗 모두 똑같은 사람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예수 믿고 악한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처세술이 좋아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성도처럼 살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그게 성공하는 선택이다.
요압의 형제들이 다윗 앞에 나올 때면,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정도인데도 요압은 너무나도 충성스러운 사람이라 다윗이 버리지 못하고 간다.
요압은 하나님을 입으로만 거론하면서, 다윗의 입장에 서서 인간의 지혜로 결정하는 게 아주 탁월한 사람이다. 좋지 않은 관계를 우리는 못 견뎌한다. 그런데 인본주의적으로 화해시키면 사람들이 긴장을 못 견뎌서 회피한다, 긴장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20절에 요압이 일의 형편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압살롬을 데려온 것이다. 그런데 왕이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고 한다. 데려오게 해놓고 왜 못 보게 했는가?
끝을 내가 만들고 환경을 내가 자꾸 바꾸려고 한다. 화평은 주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지 환경이 아니다. 화평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싸우지 않는 게 화평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 화평이다.
적용 : 진정한 중재를 하고 있는가?
목장 나눔
특이 사항 : 새 목원 등반으로 각자 소개를 하고, 말씀은 간단히 적용하였습니다.
이성은(82) : 가평에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가정 고난으로 우리들교회에 왔다. 고등학생 때가지 바람을 피우고 돈을 벌어다주지 않는 아버지로 인한 가정 문제로 눌리는 삶을 살았다. 반면, 친구들은 나와 같지 않고 밝아서 나도 그렇게 살려고 애썼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압살롬의 반역이 이해가 되었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바람이 싫었을 것 같다. 아버지가 언니 절친의 어머니와 바람을 피우셔서 집을 나가셨다. 나도 아버지가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버지가 나가시자 우리 집은 아무 문제없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도회장까지도 하셨던 엄마의 믿음이 술 마시고, 음주운전 하시고, 유부남을 만나시는 등, 바닥으로 내려가셨다. 나도 가평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상대방이 떠날까봐 불안과 염려가 많았고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직장 동료가 우리들교회를 소개했을 때, 나는 보수적인 장로교회에 다니던 중이라 이상한 교회가 아닌가 의심했는데, 막상 오니까 편했고, 그 교회를 정리하고 남자친구도 정리하면서 우리들교회에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다. 말씀이 들리면 인생이 평탄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내 죄를 끝까지 회개케 하시는 게 있었다. 아버지 일로 인해 나에게 실망하면서 자괴감에 빠졌고,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하셨는데도 1년 정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게 하나님과의 관계와도 연관이 있었다. 그러던 중 공동체에서 적용하라고 해서 아버지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해서 회개를 하게 되었다. 그 때는, 1년간 나로 인해 스트레스가 되었던 일들이 아버지에게 병이 된 것인가 싶기도 했고, 이게 과연 무슨 구원의 사건이 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1년 간 암 투병을 하셨는데, 아버지가 내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미워하고 그러면서 왜 난 아버지를 미워하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세 달 전에 내게 미안하다며,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내셨는데, 이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며 사과 받고 싶었던 내 마음과 하나님이 내게 ‘내 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녹았다. 나는 음란과 미움과 질투의 죄를 지으면서 있는데도 하나님께 용서받는 걸 당연히 여기면서, 내게 상처 주는 사람을 조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나를 알게 되어서 아버지에게 잘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간호하는 시간을 가졌고, 호스피스에서 함께 잠을 자기도 했다. 호스피스에서 2주 정도 있다가 가셨는데, 하나님께서 아버지와의 관계에 회복의 시간을 주셨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말씀을 주셨는데 나에게도 지라는 말씀이 싫었다. 이젠 나에게 화평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세상적 화평을 꿈꾸었다. 하지만 이제 화평은 남은 가족에 대한 구원인 것 같다.
박진희(84) : 엄마가 결혼하시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엄마를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부천으로 이사를 가며 쭈욱 한 교회를 다녔는데, 20살 때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있었다. 성령세례를 받는 것처럼 인격적으로 만나면서 청춘을 하얗게 불사르는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래서 이제 나는 다 된 줄 알고 복 받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해석이 되는 건, 내가 교만 했었고, 되었다함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고난이 시작된 건, 24살때부터 직장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소홀해지는 게 있었지만, 난 여전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사내 교제를 하게 되었는데, 불신교제였다. 불신결혼은 안 된다는 확실한 개념이 있었는데도 그냥 처음으로 연애를 하게 된 것도 있어서 마음이 불편한 상태로 교제하던 중이었다. 내 선택이었지만 그때부터 해석되지 않은 일이 시작되었다. 그 시기가 26살 때였는데, 27살에 병에 걸렸다. 죽는 병은 아닌데 고치기 힘든 병에 걸렸다. 고질병처럼 가지고 살아야 하는 병에 걸려서 그때부터 불신교제에 대해 벌 받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다. 교제를 1년 동안 더 이어가다 2년 만에 불신교제가 끝이 났다. 결혼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합의 하에 헤어지게 되었다. 사내 연예였기 때문에 6개월만에 회사를 나와 좀 쉬웠다. 내가 걸린 병이 평소 관리만 하면 되는데, 그 병 때문에 염증이 생겨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힘들고 우울해졌다. 그리고 서른이 되었는데, 오랫동안 백수생활을 할 수 없어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살아보려고 나름대로 애를 쓴 것이었는데, 폐인처럼 살 수 없어서, 관리하면서 살면 되니까……. 그런데 병이 3년, 4년되어가니까 ―회사 생활하면서 좀비처럼 살았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인생이 너무 살기 싫었고, 신앙생활도 길이 안 보이고, 불신교제는 끝이 났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 해석이 안 되었다. 지금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조금씩 해석이 되는데, 그 때는 해석이 안 되니까, 근본적인 죄에 대한 해석이 없으니까―그때 기분은 내가 회개를 해도 해도 안 되는 것, 하나님이 그것에 대해 어떤 형벌, 징계를 주신 것이니까, 영원히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라는 거구나 싶어 소망이 없고 하루하루 버티는 인생이 되었다. 그렇게 좀비처럼 지내던 와중에 6개월 이상 이 교회를 탐방하고 지금 나오고 있다. 나를 섬겨준 언니 덕분에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인터넷으로 듣게 되었는데, 나도 말씀을 많이 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서 들어보지 못한 말씀을 들었다는 생각에 이렇게 인생이 해석이 되는 구나…… 싶어 내 문제도 조금씩 해석이 되었고, 교회에 가야겠다 싶었다. 오래 다니던 교회를 옮기기 쉽지 않았지만, 그곳에선 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한번만 와보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왔다가 그래도 오게 되었고. 예배만 드리다 목장을 탐방하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몇 달 안 되었지만, 다니면서 그 전에 내 인생이 너무 해석되지 않고 억울하기만 했던 것들이, 말로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이해가 안 되서, 나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살았는데, 불가항력적으로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 억울한 마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억울함으로 막혀있었던 것 같다. 하나님은 나를 너무 엄격하게 대하시는 분으로, 내가 잘못하면 벌 주시는 분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신앙생활 자체가 나에게 짐이었다. 내가 지켜야 하는 그런 것으로. 나는 세상적인 사람이고, 말씀으로 살아가지 않는 것 같은데 ‘나는 믿음이 좋다’는 생각에 갇혀서 살았다. 하지만 이제 해석이 된다. 불신교제가 끝난 것에 대해 결혼이 깨졌다는 거절감이 내게 많이 남아있었다. 합의 하에 깨졌지만 내게 피해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복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불신결혼까지 가지 않게 붙드신 게 하나님의 사랑이고, 세상으로부터 거절감을 겪게 한 것은 거절의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한 때는 기도원에 가고 목사님 기도를 받으러 가기도 했는데, 여기 왔더니 신 접한 여인 이야기를 너무 하시는 거다. 내가 어떡하면 이 병이 고쳐질까 했는데 말이다. 지금도 병 때문에 힘들고 빨리 낫길 바라지만, 깨달은 게 있다면, 이 시간을 그냥 잘 보내는 것이다. 징계를 잘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냐는 그런 말씀을 계속 하시니까. 이게 그저 토스가 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내 죄에 대한 결과이고 내가 장계의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고 깨달았다.
아버지는 예수님을 안 믿으시는데 주사가 심하시다. 그것 때문에 엄마가 결혼생활이 힘들어 교회를 다니셔서 나도 믿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지만, 내가 그동안 아빠를 얼마나 미워했겠는가? 하지만 예전의 나는 신앙생활 활발하게 하면서 아버지의 일이 나중에 하나님께 복 받을 일이 될 거라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주사가 있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잘 자랐으며, 그게 하나님이 지켜주셨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오래 전부터 집안에 경제적으로 힘든 문제들이 계속 있었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내 앞가림 하는 게 목표였던 것 같다. 집안 상황이 뻔하기 때문에 크게 성공해서 부모님께 효도하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이, 내 앞가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개미처럼 살았다.
최근 일 이년 전에 아버지가 귀향을 하셨는데, 어머니도 곧 따라 가셨다. 나는 불신 교제와 질병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들교회에 와서 말씀으로 조금 해석이 되면서 내 문제에 집중하고 살고 있었는데, 약간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게 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주사와 폭력의 문제가 이제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우리 집도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착각이었다. 어제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요새 매일같이 주사와 폭력을 저지르신다는 것에 대해 옛 기억이 다 되살아나면서 내가 어렸을 때, 자다가도 깨면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들어야 했던 게 생각났다. 내가 어려서부터 보고 들었던 아버지가 여전히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엄마의 말을 듣고 놀라니까 단련이 되신 엄마가 왜 그렇게 놀라냐고 하셨다. 회개가 되었던 건, 화평이 왔다고, 이제 내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고 여기며, 내가 가정을 벗어나고 싶어 했고, 분리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과 결혼하려 했던 것도 가정을 외면하고 분리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분쟁이 없는 게 화평이 아니라는 오늘 말씀에 너무 회개가 되었다. 남동생도 우리들교회로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힘들었다면 내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딸인데, 아들 입장에서, 동생은 술을 절대 안 마시는데.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 싶고, 내 문제만 보며, 나만 피해자로 보며 살았던 것으로 인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내 문제를 벗어나 가족을 빨리 벗어나고만 싶어 했다.
아버지가 그런다는 것에 대해 다시 분노가 일고, 엄마도 아빠와 떨어져 살 기회가 왔는데도 따라 내려가시는 십자가 적용을 하셨던 걸 보면, 얼마든지 떨어져 살 수 있는 핑계를 댈 수 있는데…….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고 살고 계시는 것에 감사하고, 엄마가 아빠를 십자가로 생각하면서 가시는 게 고맙고 그렇게 매일 살고 계시는데 내가 모른 척 하면 안 되는 구나 싶다.
목자 : 영적 대제사장으로 진희를 세우시려고 우리들교회로 부르신 것 같다. 말씀으로 인생을 해석해 가다 보면 가족은 내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끄실 것이고, 믿음은 인내라고 하니까 잘 인내하고, 공동체에 잘 붙어 있으라. 우리는 늘 평탄하길 원하지만, 하나님의 화평이 다른 걸 깨달았으니까. 내가 약재료가 되어 쓰임 받고 내가 여기서 화평을 누리니까,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하나님이 아니다. 죄의 형벌은 있지만, 그 형벌 또한 하나님의 사랑이고 나를 보호하심이다. 조금씩 찬찬히 말씀으로 깨달아 가기 바란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아픈가?
진희 : 림프구종인데, 고칠 수 없고 원인도 없는 병이라는 말에 갈수록 우울증도 오고, 나도 외모 중독이 있는데, 치마도 못 입고, 압박 스타킹을 늘 신고 있어야 하고, 그래서 자존감도 떨어진다. 그러면서도 ‘옷 같은 게 스트레스가 되나?’ 내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 싶고. 좀 괜찮을 땐 다리만 멀쩡하면 살겠다 싶기도 하고. 나는 여행도 못가, 여름엔 아무 것도 못해, 여기에 꽂혀서 너무 우울하고 거기에 눌린다. 우울감으로 싸운다. 그리고 염증이 생길 수 있다는 강박이 있다. 압박스타킹을 여름에도 신고 있어야 하니까 조금만 열이 올라오는 것 같으면 혼자 응급실에 찾아가 혈액검사를 하며 염증이 있는지 검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예준(85) : 모태신앙으로 어려서 엄마 따라 동네 교회를 다녔고, 태국으로 유학을 가서 지내다가, 2011년에 우리들교회에 왔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못 먹는데 성격이 너무 이상하고 자기 성질이 나거나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고 폭력을 썼다. 나는 딸이라 괜찮았는데 오빠가 많이 맞았다. 그래서 머리고 몸이고 상처투성이고, 오빠가 많이 맞는 걸 보고 자랐다. 그래서 아빠가 없는 게 좋았다. 들어왔다 하면 집이 난리가 나니까.
난 여자라서 맞지는 않았는데, 아빠는 최고가 되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공부를 잘하니까 내가 최고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런데 나는 그땐 공부가 잘 되었던 거지 공부가 좋진 않았다. 근대 눈치는 빨라서 어려서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서울대 갈 거라고 말했다. 아빠 눈치를 보며. 학원도 다니는 게 너무 싫어서 빠져나와 놀았다. 노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고 집안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빠가 언제 화를 내실지 두렵고 떨렸다. 학교 선생님들도 내가 말썽을 피운다고 힘들어 했다. 그러던 중 나의 자유를 찾아서 연고가 닿은 태국에 가게 되었다. 근데 아버지는 내가 태국으로 가는 것에 대해 도피유학처럼 여기시며 원치 않으셨지만 어떻게 설득해서 갔고, 태국에 가서는 맨날 놀러 다녔다.
대학교도 한국 한동대에 갈 수 있었는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도 몰랐고, 그저 놀고만 싶어서 태국에서 미국대학 분교를 가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집안에 경제적으로 여러 문제가 있었고 학교에 갈 수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고, 기적적으로 아버지가 사장으로 새 직장에 들어가셔서 나도 학교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와 관계가 너무 안 좋았고 서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헤어졌다. 집안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생각도 안 하면서 노는 것만 집중했다. 친구들은 마약하고 마리화나 피우는 게 당연했다. 특히 내 친구들이 유난했다. ;) 그렇게 살면서도 나는 지저스라는 존재가 부정이 안 됐다.
그러던 중 병이 왔다. 완전 반쪽이 되었다. 내 인생에 말라본 적이 없는데 일 년 넘게 하혈을 하며 먹어도 먹어도 살이 쭉쭉 빠졌다. 간신히 졸업 2개월을 남겨두고, 미디어광고 쪽이 내 전공이었는데 재미도 있고 해서 어찌어찌 학업을 맞췄다.
그리고는 여전히 놀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한국을 나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 계속 태국 쪽을 지원했다. 그런데 회사에 다니게 도어도 못 견디고 나오고 또, 나오고 했다. 그러던 중 중국에 있는 회사에 되어서 갔다가 일주일 만에 쓰러져 돌아왔다가, 다시 태국에 2년 만에 갔다가 다시 아파서 삼십 분을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번 돈을 다 병원비로 쓰고 오게 되었다. 그때는 걸어다니면서도 토할 것 같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서 담배만 피우고 아파 죽을 것 같아 엄마가 오셔서 병간호를 해주셨고 우리들교회를 소개하셨다. 매일 말씀을 틀어놓고 살았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있다가 이대로 있다간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들교회 생각이 났고, 오게 되서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것,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 아버지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착했다. 그리고 나도 늘 공동체에 안 가면 안 된다는 말에 찔려 목장에 들어왔다. (대충 이 정도로 자기 이야기를 마치고 팔랑팔랑 친구 만나러 감.)
이윤희(83) : 바람 피우고, 월급도 가져다 주지 않는 아버지에, 딸만 줄줄이 나아 삶이 고난이었던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셔서 교회에 다니셨고, 나도 어려서부터 따라 다니게 되었다. 구원을 어떻게 받는지 궁금하셨던 어머니는 성경을 열심히 읽으셨고, 성경 말씀으로 자연스럽게 훈육 받으며, 성경을 읽는 게 교육의 전부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딸 다섯을 혼자 키우시는 상황 가운데 에스겔 말씀으로 아버지 죽음을 해석 받으셨고, 신앙생활을 잘 하셨다. 그런데 나는 말씀을 늘 명령으로만 받아서 바리새인과 같이 율법주의자로 신앙생활을 했고, 성경적이지 못한 교회의 모습에 늘 분노하며 중학교 때부터 늘 떠났다 돌아갔다를 반복했다. 하나님은 나에게 악한 세상과 반대되는 분이었고, 그래서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분이 없다면 세상에 정의도 공평함도 없었다. 그래서 정의와 공평함을 위해서라면 나는 만들어서라도 하나님을 믿었을 사람이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어서 10년을 방황했고, 25살에 어머니가 신천지에 빠지는 사건으로 인해 내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죄로 인해 어머니가 수고하셨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어머니가 김양재 목사님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 전부터 늘 책을 권하시고 설교를 틀어놓곤 하셨는데, 나는 듣지 않았는데, 그래도 들린 게 있어서 깨달아진 게 있었다. 그 뒤로 읽게 된 성경은 늘 내 죄를 거울로 비춰주는 말씀이어서 너무 기쁘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렇게 있다가 이직과 함께 서울로 올라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들교회에 왔다. 그전에 있던 교회에서는 대화가 되지 않아 신앙생활에 외로움이 있었고, 우리들교회에 오면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실망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랬던 건 예수님과의 첫사랑이 뜨거워서 전적으로 나의 죄를 덮어주었던 것인줄 몰라 내가 믿음이 있다고 교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총선 과정을 거치면서 목사님도 목장도 너무 거슬리고 싫었는데, 그게 지옥이었다. 그래서 회복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늘 목장에서 목자의 질문을 집에 와서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할 때마다 응답 받는 말씀이 있었고, 그렇게 지금은 많이 좋아진 상태에 있다.
하지만 엄마는 영적 상태가 너무 안 좋고, 혼자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있어서 내가 김양재 목사님이 5년 시집살이에 질려 반항한 것처럼, 엄마도 겨울 동안만 '교회 못 다니겠다'고 소리치고 잠시만이라도 우리들교회 다니며 목장에도 나가보라고 중재를 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내가 요압과 같이 중재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엄마를 우상시 하는 마음을 그동안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욕심으로 한 건 아니지만,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
목자 :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같이 기도해보자.
기도제목은 댓글로
이성은(82)
- 목장 아웃리치의 영혼들 나올 수 있도록
- 직장에서 순종의 언어 사용하고, 짜증안내도록
- 요새 과소비가 심한데 절약하도
이윤희(83)
- 몸이 안 좋은데, 한 주간 업무와 일상 생활 가운데 고난 받으신 주님 생각하며 이겨내길
- 엄마께 좀 더 부드러운 어투를 쓰고 책망하는 말 하지 않도록
- VIP 초청하기로 한 성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도록
박진희(84)
- 한주간 말씀 안에서 묵상, 적용잘하고 지낼수 있도록
- 부모님과 동생 위해서 기도하고 체휼하면서 지낼수 있도록
- 아웃리치에 동생과 지인들 초청할 수 있도록
이예준(85)
윤미영(85)
박수진(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