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제목 : 입맞춤 [사무엘하 14 : 1 - 33]
[설교 요약]
사자와 소가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처음 허니문 기간 동안에는 서로가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자와 소는 자신에게 있어 맛있는 음식 살코기와 싱싱한 풀을 정성스레 준비하여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가 싫어함에도 맛있다며 기쁘게 받아 주었습니다. 결국 서로가 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병들어 갑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서로가 지치고 싸우면서 결국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헤어졌습니다. 서로가 “나는 최선을 다해서 먹을 것을 준비해 주었고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서로에게 잘해준다고 하면서도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하면 100% 이기심이 발동하여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고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욕심을 드러내며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싸움을 일으킵니다.
교회를 다니면 다 화평해야 된다는 병이 있습니다. 복음 없이 화평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모두 하나님 편이 아닙니다. 아직 때가 아닌데 관계가 나쁜 사람들을 중재하려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 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압살롬과 입을 맞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에 결정적인 중재를 한 사람이 요압입니다. 압살롬과 그 아버지 다윗 왕이 입을 맞추도록 도운 요압. 진정한 화평을 위해 도왔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거룩한 입맞춤이란 아가서의 말씀처럼 사랑이란 말도 되고, 로마서 16장처럼 문안도 되고 화해도 됩니다. 본문을 보면 사랑도 아닌 회개도 아닌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은 유다의 입맞춤은 겉만 그럴싸한 입맞춤 이였습니다.
첫 번째 본능적인 사랑으로 입맞춤을 했습니다.
압살롬이 도망 간지 삼년이 지나자,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했습니다.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부성애가 있습니다. 부성애가 있었지만 죄에 대해서 징계하는 사랑은 없어서 그것이 화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판단을 하지 못하면 이것이 비극입니다.
아버지로서 부성애에 이끌리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여 답답합니다. 암논의 죽음도,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범죄자로 만든 것도 모두 다윗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다윗은 밧새바 사건부터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가 있는데 문제는 그 아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부모님이나 자식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부부는 언급이 없는데, 부부는 혈육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만큼 핏줄에 연연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구약시대에 자식을 우상의 제물로 바친 힘논의 골짜기가 지옥과 같은 어원입니다.
자식에게 집착하고 성공만 부추기다가 결국 부모도 자식도 지옥을 사는 것입니다. 문제 부모만 있고 문제아는 없습니다. 모든 결혼 문제의 배후에 문제부모의 욕심이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다툼이 있었습니까? 일시적인 화평을 지키려고 주일을 어기는 배우자나 자녀를 못본척 하셨습니까? 이러다가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원수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백 마디 듣기 좋은 말보다 한마디 복음이 더 진정한 사랑의 표현의 말입니다.
2절~20절 다윗의 간절함을 눈치 챈 요압은 압살롬의 복귀를 은밀히 추진합니다. 드고아에 살던 한 여인을 사주하여 다윗을 설득하기 위한 임무를 줍니다. 충성스러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된 중재를 하게 됩니다. 드고아의 여인은 상복을 입고 두 아들의 이야기를 꾸며냅니다. 두 아들이 다투다가 한 아들이 죽었는데 이웃이 남은 아들을 죽이려 한다고 하며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다윗의 마음에 호소합니다.
다윗은 남은 아들을 죽이는 것은 더 큰 죄라 이야기 합니다.
밧세바 때 나단 선지자가 말한 것처럼 정답을 이야기 하는 다윗입니다.
남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금하게 하겠다고 약속한 다윗에게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의 두 아들 이야기를 적용시켜 “살인자를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라고 탄원 했습니다.
드고아의 말을 들은 다윗은 앞뒤가 맞지 않은 여인의 말임에도 성급한 결론을 내립니다.
[2절~24절] 요압이 갖은 꾀를 내서 다윗을 설득 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등장시켜서 설득합니다. 다윗의 합리화 시키고 싶은 마음에 도장을 찍어 줬습니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다윗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밧새바 이전과 이후의 다윗은 그냥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애의 심벌 자식, 20년 동안 성공했으나, 20년 동안 눈물 흘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고백, 이때부터 다윗의 은혜 시대가 시작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것을 믿고 힘주셔서 여기까지 온줄 알았는데 다윗은 졸지에 간통, 살인의 범법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동원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압살롬을 거절한 것은 다윗의 세 번째 범죄가 되었습니다. 본능적인 사랑을 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놓치고 있었기 때문에 후에 때늦은 입맞춤은 후폭풍을 몰고 오게 됩니다.
화해가 늦어도 빨라도 안 되는 것은 구원에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20절에서 요압의 계략인 것을 눈치 챘습니다. 다윗에게는 나쁜 일에는 요압을 앞세우는 연약함인지 악함인지 나쁜 마음이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책임 이라기보다는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 시켜 주었고, 평소의 다윗이라면 이 여인의 말의 모순도 알았을 것이고, 요압의 계략도 나쁜 것임을 알았을 텐데 공평성을 잃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식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다윗 이였습니다. 결국 여인의 이야기는 아버지로서의 다윗을 설득시켜 압살롬을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이 여인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반역으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압의 계책인 여인의 이야기는 다윗에게 고통을 주고 이스라엘에 분란만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나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 합니다.
[24절] 압살롬을 데리고 왔는데 회개하지 않은 압살롬이 백성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보고 싶어 하면서도 참는 어정쩡한 태도의 다윗. 엄격할 때와 관대할 때를 구별하지 못하는 다윗의 모습과 백성들의 이목을 계속 의식하는 모습, 왕이자 아버지로서의 다윗의 모습,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압살롬이 그 정도로 하면 훈련 받고 회개할 줄 알았습니다. 저도 사람을 믿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나눔 1. 본능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객관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두 번째 회개하지 않은 입맞춤 이였습니다.
흠이 없는 압살롬의 외모에 반한 백성들이였습니다. 압살롬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를 자꾸 피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입니다. 모든 사람이 압살롬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독을 품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압살롬을 사랑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독을 품고 있는 자는 얼굴이 추해지는데, 이는 사단이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도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외모로 살인이 정당하다는 데까지 합리화가 됩니다. 사울의 외모 #46468;문에 이스라엘이 망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압살롬의 외모 때문에 다윗을 배신하려는 조짐이 보입니다.
뛰어난 외모와 머리털은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선천적인 장점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나를 가장 쉽게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항상 겸손해야 할 것을 말해 줍니다. 나의 장점은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써야 합니다.
준수한 외모, 양가 모두 왕족 집안에 부자이고, 동생들도 아름답고, 압살롬은 교만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다 가졌습니다. 본문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헛되고 헛된 것임을 다 보여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1등이 압살롬입니다. 제일 큰 중독이 인정 중독입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잘 보이려고...계속 그러는데 압살롬의 결론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르노라.”
이제 압살롬이 아버지를 너무 보고 싶어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나, 자신의 죄를 회개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내가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는 게 낫다.“라고 말하는 압살롬 이였습니다. 자신은 ”공의를 행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라고 말합니다. 암논을 죽이는 것은 옳지 못한데 압살롬은 자기가 의롭다 여기면서 7년 동안 ”나는 죄 없다.“만 부르짖고 있습니다. 압살롬을 데리고 왔는데도 만나지 않는 다윗을 보면서 자신도 압살롬을 만나지 않는 요압 이였습니다.
다윗은 3년 동안 도망갔던 아들을 데려 왔으면 훈계하고 눈물로 책망했어야 하는데, 죄사함 받은 자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용서 받았는데...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사랑이 인격적인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보고 싶어 하면서도 피하는 다윗입니다. 용서 한 것 같지만 비인격적인 용서였습니다. 압살롬도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는데 다윗은 먹을 것만 줍니다. 압살롬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하지 못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잘못하고, 압살롬도 잘못하고 압살롬을 거부하는 다윗의 모습은 역사적인 세 번째 죄로 자리매김 합니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고 압살롬을 데리고 왔는데, 다윗이 만나지 않으니 요압도 관계를 끊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도, 요압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고, 그때서야 요압의 이야기를 듣고 압살롬을 불러 때 늦은 입맞춤을 합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입맞춤을 한 것 이것이 15장의 반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죄의 문제를 돕지 않았습니다. 요압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죄의 문제는 비켜 가면서 거짓 화평을 위해 중재를 했습니다.
나눔 2. 회개하지 않고 겉으로만 화해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가?
세 번째 순수하지 못한 충성으로 입맞춤을 시켰습니다.
이 일을 주도한 요압은 연구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요압은 잘한다고 화평케 하는 자는 부르짖으면서 압살롬과 다윗을 중재를 하였습니다. 항상 화기애애 하는 것이 믿음이고 성도의 인생이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상황을 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압이 잘한다고 열심을 내지만 구속사를 모르니까 늘 이렇게 일을 저지릅니다. 요압은 충성스런 사람입니다. 전쟁에 나가서 자기가 다 이겨 놓고도 왕에게 영광은 돌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가 있는 겁니다. 아브넬은 살리라 했는데 왕의 뜻을 거역하고 죽인 요압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요압은 참 훌륭한 사람이다. 인간왕 다윗에게 충성을 하는 사람이다. 다윗 왕이 원하지 않아도 자기 동생의 죽인 자에게 원수를 갚은 것은 자신의 정의감으로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압은 본인 자신은 아주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넬과 싸울 때는 나라를 위해 아브넬을 죽여야 되고 다윗 왕을 위해서 우리야를 죽여야 되고 압살롬의 일에도 끼어들어 암논을 죽인 것도 정당하게 생각 하고 있다. 사람 앞에서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데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런 요압은 집집마다 나라마다 공동체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얼마나 대세면 천하의 다윗이 요압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겠는가? 구속사를 알고 있는 다윗이 의롭게 보이지만 세속사를 꿰뚫고 있는 요압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로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압살롬이 믿음으로 그랬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요압은 압살롬이 차기 왕의 계승권자 이기 때문에 아브넬을 죽인 사건으로 다윗과의 관계가 껄끄러우니까 이 때 다윗을 도와주어서 다윗에게도 점수를 얻고 압살롬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고 결국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돕고자 하였다. 무엇인가를 할 때 항상 보면은 거기에 욕심이 숨어 있는 것을 우리는 늘 보게 됩니다. 불행히도 요압의 계획이 성공을 했고, 그래가지고 이제 반역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은 성공 안했어야 되는데 성공이 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런 일을 막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요압이 대세인거예요. 요압이 모든 걸 다 이루는 것 같이 보이고 다윗은 꼭 바보 같아 보입니다.
성경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어느 편에 서야하나 끊임없이 갈등해야 되고, 성경은 어느 편에 서야하는지 그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윗인가? 압살롬인가? 요압인가? 오늘 다 생각을 해봐야 한다. 성경은 이 세상에 한 사람 밖에 없는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요.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에스겔이고 다윗이고 다 똑같은 사람 이야기를 성경에서 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악한 세상에서 살아야하는데, 이 악한 세상에서 요압처럼 처세술이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성도로서 살아야 하나를 끊임없이 갈등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도 이 세상에서 10년 후를 내다보고 하는 결정은 성공하는 결정일 때가 많다.
잘생겨서 좋아하고 돈이 많아서 좋아하고, 뭣 때문에...그러면 이제 안된다.
요압은 다윗 옆에 딱 붙어 있어가지고, 다윗은 요압의 형제들이 나올 때가 되면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할 정도로...요압은 데리고 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람인데 너무나 충성스런 부하이고 다윗에게 아주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요압은 뭘 잘못했는가? 요압은 말은 그럴 듯한데 하나님의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입으로만 거론하고 다윗의 입장에서 인간의 지혜로 결정하는 것이 탁월한 사람 이였습니다. 우리는 좋지 않은 관계를 못 견뎌 한다. 그래서 인본주의로 화해하게 되면 중재를 잘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좋지 않은 관계보다 힘든 것이 어디 있겠어요?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못 견디는 것이 이 긴장이다. 텐션이 싫어서 다 회피한다. 이것을 견디는 것이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상황을 변화시켜보려고 우리는 너무나 애를 쓴다. 20절에,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일의 형편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요압이 압살롬을 데리고 온 것이다. 24절에 요압이 압살롬을 데리고 왔는데 다윗이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 합니다. 왜 그랬을까? 다윗에게는 적어도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더 기다리면 얘가 회개 하지 않을까? 아직 회개 했다는 소문이 안들리는 거예요. 성령이 회개케 하면 알려 주시는데, 그래도 자식인데 기다리면 구원의 소식이 들리지 않을까? 압살롬을 기다리면 회개하지 않을까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다윗이 해결되지 않앗고 압살론도 회개 하지 않았는데 이때 요압은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수를 다 쓰고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합니다. 복음이 전해져야 끝이 오는 것인데 끝을 내 마음대로 자꾸 만들려고 하니까 환경을 자꾸 바꾸려고 하는 거예요.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분쟁이 없는 평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어로 샬롬 헬라어로 에이레네라고 하는 화평은 전쟁의 종식을 뜻하지만 보상과 회복이라는 의미도 있다. 빚진 상태를 청산하고 긴장관계가 풀어진 상태를 뜻한다.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 화해한다고 선물을 주고받아도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평안이 없습니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누릴 수가 있습니다. 화평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내가 술을 안 마셔서 직장에서의 화평이 깨어졌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술을 마시면 모두가 화평 합니까? 그건 합리화일 뿐이다. 술을 마시건 안마시건 직장에서 내 역할을 다 하고 있다면 나 때문에 화평이 깨질 일은 없습니다. 지금 교회에서 내 일을 다하는 것은 졸지 않고 듣는 것이다. 내 역할을 안하기 때문에 화평이 깨지는 것이다. 욕을 먹고 따돌림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 때문에 내속에 평강이 있다면 이런 일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싸움이 없는 것이 화평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 화평입니다.
직장에서 술 문제로 고민하던 형제들이 정말 믿음으로 술을 끊었을 때 도리어 회사 사람들에게 신임을 얻는 것을 많이 보았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화평만이 진정한 화평입니다.
나눔3. 화평케 하는 자가 중재자인데 진정한 중재를 하고 있는가?
14장 전체의 적용은 때가 아닌데 나서가지고 인간적으로 무엇인가 중재를 하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눠보라.
참으로 입맞춤은 본능적인 사랑으로 입맞춤을 하면 안 됩니다.
회개하지 않은 입맞춤도 안 됩니다.
순수하지 못한 충성의 입맞춤도 안 됩니다.
[목장 나눔]
목자님의 해외 출장으로, 부목자 (이영수, 이철훈) 인도로 목장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석자 : 이영수, 이철훈, 강성식, 이종찬, 정유상
A 형제
말씀 들으면서 찔림이 있었다. 사울의 외모를 보고 반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압살롬의 나이스한 모습을 백성들이 좋아한 것처럼...나 또한 외모를 많이 취하는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주위의 챙김을 잘 못 받는 신입사원이 있었는데 간식도 챙겨주고, 일도 도와주고, 챙겨주던 여사원이 “나를 귀엽다고 했다.”는 주의 직원들의 이야기와 주위에서 잘해보라고 권유가 있었을 때, 외모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어서 개인적인 연락이 부담이 되었고 방어막을 치고, 거리를 두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정말 외모를 많이 취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여사원에게 주위의 “좋은 남자를 소개 시켜주겠다.”며 나이스 한척 하려 했었고,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 남성이 “여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도망가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많이 찔렸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용기가 없어서 나서질 못했었고, 대면할 자신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조만간 식구들에게 가족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인데 집안이 시끄러워질 것 같다.
[공동체 처방]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얼마나 하는가? 기도로써 준비해야 된다.
정작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하지 않고, 신교제 만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일단 데쉬 하고 후회 하지 않겠다.” 라는 말은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
특히나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가족구원에 대한 애통함이 있고, 가족구원에 대해서 노력하고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준비 없이 진행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어느 집사님의 가족구원 간증 나눔] - 기도로 준비하면서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B 형제
한 달에 두 번 정도 주일 당직이 있어서... 예배 참석이 어려울 때가 있다.
낮과 밤이 바뀌는 교대근무로 인해 몸이 많이 힘들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선과 악을 왕께서 구별하신다.”라는 말씀이 있었는데...
사람이 사건에 대해서 과연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옳다고 끝까지 주장만 할 수 있는 것인가?
답을 얻지 못했지만... 내 생각이 객관적으로 옳더라도 ‘겸손하게 생활해야 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동체 처방]
교대근무가 정말 힘든 것 같다.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 써야 될 것 같다.
목장 식구들 모두가 그렇다. 크리스찬은 욕도 하면 안되고, 봉사도 많이 해야 되고, 모든일에 솔선수범에서 착한일을 많이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안목의 정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함이 많았었다.
하지만 나또한 죄를 지을 수 있는 환경에 노출이 되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100% 죄인임을 인정하고, 날마다 QT를 통해서 말씀 안에서 분별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C 형제
나는 가족에 대한 편애가 심하다. 우리 가족들을 객관적인 시선에서 보지 못한다.
남이 그랬으면 잘못인데, 우리 가족이 그러면 잘못이 아닌 것이다의 식의 가족에 대한 본능적인 사랑이 있다.
아직도 나의 가족과 남의 가족에 대한 구분을 짓는 모습이 있고, 누군가가 우리 가족에 대해서 좋지 않은 모습을 이야기하면, 인정을 하면서도 속에서 분노가 있다.
또한 여자 친구에 대해서 본능적인 사랑이 있다. 하지만 그 본능적인 사랑도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축복이라 생각하고 감사한다.
적용으로 인한 섬김의 봉사를 위해 부서 탐방을 다녀왔는데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D 형제
주일이 정말 육체적으로 힘든데, 예배와 말씀으로 인해 정말 기분이 좋다.
본능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 가족은 기본적으로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인간적인 사랑을 원한다. 니편, 내편 가르고, 만약 내편이 지고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편을 위함이 있다. 잘 못된 것인줄 알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지난 아웃리치를 가면서 신교제에 대해 목사님과 나눔을 하면서 처방 받은 내용이 있는데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함이고, 내욕심 때문에 내려진 처방인줄 알면서도 생색이 많이 난다. 하루라도 빨리 목사님의 처방을 실행해서 신교제를 하고 싶다.
섬기는 부서의 학생 어머님의 상담 전화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학생과 어머님의 다툼으로 인한 상담전화 였는데...우리 어머님도 나 때문에 이렇게 많이 힘들어 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의 경험담을 학생들과 나누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었다.
[공동체 처방]
목사님께 받은 처방이 문자적인 해석으로만 이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사님께서 내린 처방을 실행하면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신교제의 만남의 축복도 허락해 주실 것이다.
단지 목사님께서 말씀 하신 내용은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내 죄를 보고, 진정한 회개와 함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 같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여전한 방식으로 QT와 예배 생활에 집중 했으면 좋겠다.
E 형제
완악한 나의 마음을 보았던 한 주를 보냈다. 내가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나를 보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자리 밑에서 두툼한 지갑을 하나 주었었는데, 순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
누가 보지는 않았을까? 혹시나 다른 사람이 볼까 발로 지갑을 가려서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였고, 지갑을 얼른 취해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까? 등 많은 나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내리고 나서야 지갑을 주었었는데, 현금과 외식 상품권 등이 나를 현혹 시켰다. 정말 내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많이 싸웠던 것 같다. 결국 근처 경찰서를 찾아가 주인을 찾아주길 바란다며 전해주었는데, 간단한 연락처를 남기고 가라는 말에 “제 연락처를 꼭 남기고 가야 되나요?” 라고 말하자 두분의 경찰들이 다른 말씀을 하셨다. 한 분은 “원하시지 않으시면 안 남기셔도 됩니다.“ 다른 한 분은 ”그래도 주인 분께서 고맙다는 연락이라도 드릴 수 있게 남겨 주세요.“ 라고 말씀 했는데 그럼 ”그냥 가겠다.“고 돌아서서 나오는 순간에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평안한 마음을 가졌었던 것 같다. 정말 처음에는 좋은 못한 생각을 가졌었는데 결론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주인이 몰라도 하나님께서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감사기도를 드렸었는데, 너무나 죄 앞에 연약한 나의 모습을 일주일 동안 곱씹었던 한 주를 보냈었다.
[공동체 나눔]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지갑 들고 내렸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야 하고 가졌을 텐데...”
“현금만 주었으면 내가 가졌을 텐데, 왜 하필 지갑에 들어 있어서...” 등
진솔한 나눔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완악함을 인정하는 좋은 시간 이였습니다.
[기도 제목]
김철주 78
1. 성급한 화평이 아닌 구원을 위한 적용하도록 (직장 술, 사람 관계 등)
2. 목장식구들과 소년부 아이들을 위해 더욱 기도하도록
3. 출장 업무 잘 마치고 건강하게 돌아가도록
이영수 80
1.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2. 양육교사 잘 받을 수 있도록
3. 수치와 굴욕을 잘 당하는 사람이 되도록
4.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한 기도하기
5. 차량구매 현명하게 할 수 있도록
6. 신교제, 신결혼
강성식 81
1. 교회에 잘 붙어 있을 수 있도록
2. 대화할 때 말 조심 할 수 있도록
3.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잘 할 수 있도록
이종찬 83
1. 부모님의 구원
2. 하나님을 잘 붙들며 갈 수 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
정유상 83
1. 결혼준비 잘 할 수 있도록
2. 주택자금 대출 #8211;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3. 눈으로만의 큐티 생활이 아니라, 적으면서 잘 할 수 있도록
이철훈 80
1. 생활 예배의 회복
2.사업진행과 관련하여 큰 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잘 될 수 있도록
3.간구함에 있어서 좀더 절실한 기도생활 할 수 있도록
4.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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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82
1. 계획과 생각한대로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