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
삼하 14:1~33, 김양재 목사님
사자와 소가 만나 결혼. 처음 허니문 기간 동안에는 서로가 좋아서 문제가 없었다. 사자는 소를 생각해서 맛있는 살코기를가져다 주니까 소는 싫어도 맛있다며 기쁘게 받아주고, 소도 사자를 위해서 정성껏 풀을 뜯어 먹으라고 주니좋아하며 받아준다. 그러나 서로가 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병들어 간다. 허니문기간이 끝나면 받아주다 지치고 서로 싸울 일밖에 없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다가 결국헤어진다. 그러고선 나는 최선을 다해서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고, 나는더 이상 어찌 할 수 없다고 한다.
화평을 이룬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잘해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은 되려 불행의원인이 된다. 자기죄를 보지 못하면 100% 이기심이 발동해서 자기중심적이기때문에 자기밖에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욕심을 들이대며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싸움을 일으키게되는 것이다.
교회다니면 다 화평해야된다는 병이 있다. 복음 없이 화평하면 문제가 더 커진다. 교회다닌다고 모두 하나님 편이아니다. 아직 때가 아닌데 관계 나쁜 사람들을 중재하려고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일 수 있다.오늘 말씀은 다윗이 압살롬과 입을 맞춘 이야기이고 이 일에 결정적인 중재를 한 사람이 요압이다. 압살롬과 그 아버지 왕이 입을 맞추도록 도운 요압. 진정한 화평을 위해 도왔나?
거룩한 입맞춤이란 아가서에서처럼 사랑이란 이야기도 되고, 로마서 16장 처럼 문안도 되고화해도 된다. 본문을 보면 사랑도 아닌 회개도 아닌 입맞춤을 하고 있다. 예수님을 잡은 유다의 입맞춤은 겉만 그럴싸한 것이다.
1) 본능적인 사랑으로입맞춤을 했다.
1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삼하 13:38에서보면,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산 지가 3년이다.압살롬을 그리워한 다윗. 13장 39절에 다윗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부성애로 입맞춤한 다윗. 부성애는 있었지만 죄에 대해서 징계하는 사랑은 없었고 그것이 화를 불렀다.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이것이 비극이다. 아버지로서의부성애에 치우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윗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여 답답하다.암논의 죽음은 바로 다윗의 책임. 암논을 죽인 압살롬도 범인을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인것이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 부터 이빨빠진 호랑이가 됐다.
압살롬이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가 있는데 문제는 압살롬을 사랑한다는 것. 마태복음 10장37절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아니하며; 예수님보다 사랑하는 대상으로 부모나 자녀를 말씀하시는 하나님. 부부는 언급이 없는데, 부부는 혈육이 아니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핏줄에 연연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구약시대에 자식을 우상의 제물로 바친 힘논의 골짜기가 지옥과 같은 어원이다. 자식에게 집착하고 성공만 부추기다가 부모도 자식도 다 지옥을 사는 것이다.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 모든 결혼 문제의 배후에 문제 부모(부모의 욕심)가 있다. 가족모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다툼이일어났는가? 일시적인 화평을 지키려고 주일을 어기는 배우자나 자녀를 못본 척 하는가? 이러다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원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백마디듣기 좋은 말보다 한마디 복음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알고 있는가?
2절~20절: 다윗의 간절함을 눈치 챈 요압은 압살롬의 복귀를 은밀히 추진한다. 드고아에 살던 한 여인을불러내어 다윗왕을 설득하는 임무를 마꼈다. 충성스러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충성을하게 된다. 여인은 두 아들의 이야기를 꾸몄다. 상복을 입고 두아들 이야기를 하며 다윗의 압살롬을 그리워 하는마음에 호소를 했다. ‘내가 과부다’라고 할 때는 구원을 위한 얘기를 하는 때여야만 하며, 이익을 위해서는 하지 말라. 밧세바때 나단 선지자가 말했 듯 정답을 얘기하는 다윗.
남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금하게 하겠다고 약속한 다윗에게 여인은 다윗의 두 아들 이야기로 적용을 시켜서탄원을 했다(13절). 앞뒤가 맞지 않는 여인의 말; 살인자인데, 압살롬을 집으로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왜 죄인가? 2~24절을 할애하여 다윗을 설득하고 있다. 불쌍한 사람을 등장시켜서 다윗의 합리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도장을 찍어 준 요압. 아무 것도할 수 없는 다윗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밧세바 이전의 다윗은 은혜 아니면 설 수가 없었고 사윗의 핍박은자신만 참으면 되는 것이었다. 자기애의 symbol은 ‘자식’. 20년 동안 성공했으나 20년 동안 눈물흘리게 하셨다. 예수님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고백.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지마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로 믿고힘주셔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는데 다윗은 졸지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된 후에 가는 데마다 이겼는데, 간통/살인/범법자가 되어서 아무리 힘을 동원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압살롬을 거절한 것은 다윗의세 번째 큰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본능적인 사랑을 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놓치고 있었기에 때늦은 입맞춤은너무 큰 폭풍을 가져오게 된다. 화해가 늦어도 빨라도 안되는 것은 구원에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0절에서 요압의 계략인 것을 눈치 챈 다윗. 나쁜 일에는 항상 요압을 앞세우는 연약함인지 악함인지가 다윗에게 있다. 평소의 지혜라면 이여인의 말의 모순도 알았을 것이고 요압의 계책도 나쁜 것임을 알았을텐데 공평성을 잃고 연민에 빠져 자식 문제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다윗.여인의 이야기는 아버지로서의 다윗을 자극해서 압살롬을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다윗은 이 여인의 말에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다. 결국 반역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요압이 꾸민 여인의 이야기는 다윗에게 고통을 주고 이스라엘에 분란만 일으키게 된다. 이렇기때문에 원칙을 지키며 가야 한다. 날마다 말씀 묵상을 하며 가야한다.
24절에서, 데리고 왔는데 회개하지않은 압살롬이 백성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보고싶으면서도 참는 어정쩡한 태도의 다윗. 엄격하게 해야할 때와 관대하게 해야 될 때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다윗. 백성들의 이목을 계속 의식. 왕이자 아버지인 다윗, 무엇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는가? 다윗은 압살롬이 기다리면 회개할 줄로 알았다. 사람을 믿고 싶은 마음.
적용) 본능적인 사랑을하고 있는가? 객관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가?
2) 회개하지 않는입맞춤이다.
흠이 없는 압살롬의 외모에 반 한 백성들. 이러는 가운데 압살롬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있으며 다윗이 계속해서 그를 피하는 것과 상반된다. 모든 사람이 압살롬을 사랑하는 듯. 독을 품고 있는데,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독을 품는 자는 얼굴이 추해지는데…이는, 사단이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압살롬의 살인은 정당하다는 데까지 합리화가 된다. 사울의 외모 때문에 망한 지 얼마안 된 이스라엘인데 압살롬의 외모 때문에 다윗을 배반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선천적인 장점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나랑 가장 쉽게 넘어뜨릴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다. 항상 겸손해야 하며 나의 장점은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한다.
압살롬의 아들들의 이름은 생략이 된 것을 보면 어려서 죽었다는 것. 압살롬의 가계는 이미 끝난. 딸의이름도 다말의 이름을 빌어 지었다. 외갓집도 왕가인데 이방인. 자신도왕의 아들. 양가가 가문이 대단하고 아름답고 부자고…압살롬은 교만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다 가졌다. 너무 아름다워서 여동생은 성폭행을 당하고 자신은 배신을 당하고 아들들은다 죽었다. 아름답고 고운 것은 다 헛된 것이란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고쳤다가(e.g., 성형), 하나님께 잘못 보이면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중독 중 가장 큰 것이 인정중독이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1등이 압살롬인데, 그 결론은?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모르노라’.
아버지를 보고싶어 하는 압살롬. 문제는 아버지를 만나기 원하지마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는 것. ‘만일 내가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는 게 낫다’라고 하는 압살롬. 내가 죄가 있으면 나를 죽여라라고 말하며, 자신은 공의를 행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는 것.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데, 압살롬은 자기가 의로운 것.7년 동안 파괴된 마음으로 ‘나는 죄없다’만 부르짖고 있다. 데려왔는데 다윗이 압살롬을 안만나주니까 자기도 압살롬을 만나지 않은 요압. 다윗은3년 동안 피신했던 아들을 데려왔으면 훈계하고 눈물로 책망했어야 하는데, 죄사함받은 자의 실수를 했다. “나는 용서 받았는데, 내가 압살롬을 어떻게 벌하나?”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애정이 인격적인 만남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리워하면서 피하고 있는 다윗. 데려온 것은 용서 같았지만 비인격적인 용서였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는데 아버지는먹을 것만 주고 있다. 다윗은 밧세바의 문제로 정의가 땅에 떨어진 것 같으니 압살롬을 사랑하지만 어찌하지못하고 있다. 압살롬을 거절한 이 죄는 다윗의 역사적인 3번째 죄로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요압은 다윗의 의중을 알아서 데려왔는데, 그럼에도 안만나니까 요압도 관계를 끊었다. 압살롬은 아버지를 그토록 원하는데아무도 반응이 없다. 불을 질러서야 데려와 입맞춤을 했지만 때가 너무 늦었다. 죄를 회개하지 않았을 때 입맞춤을 하는 것, 이것이 15장의 반역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윗의 압살롬의 죄의 문제를 돕지 않았다. 요압도 마찬가지. 서로 죄 문제는 다 피해가면서 거짓 화평을 위해서 중재를 했다.
적용) 회개하지 않고겉으로만 화해를 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 좋은 게 좋은거니까…시끄러우니까…그냥 화해?
3) 순수하지 못한충성으로 입맞춤을 시켰다.
화평케 하는 복이 있나니를 부르짖으며 압살롬과 다윗을 중재한 요압. 구속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상황을 보는 자가 본문에 한 명도 없다.구속사를 모르니까 늘 이렇게 일을 저지르는 요압. 왕에게 충성과 영광은 돌리지만왕의 뜻을 거역하는 요압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본인 자신은 아주 정의로운 사람이라 여기는 요압.나라를 위해 아브넬을 죽이고 다윗을 위해서 우리야를 죽이고 압살롬의 일에도 끼어들며 그의 암논 살인을 정당화시키고 있는요압.
요압은 집집마다 나라마다 공동체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얼마나 대세면 천하의 다윗이 요압 앞에서 맥을 못추리고 있겠는가?구속사를 아는 다윗이 겉으로는 의로워 보이지만 세속사를 꿰뚫고 있는 요압에게 끌려다니고 있다. 아브넬을 죽인 사건으로 다윗과의 관계가 껄끄러우니까 이 때에 끼어들어 다윗과도 관계를 회복하고 압살롬에게 잘보여 결국엔 자기 유익을위하였다. 불행히도 요압의 계획이 성공을 했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계략을 막지 않으셨다. 요압이 모든 걸 다 이루는 것 같이 보이고 다윗은 바보같아 보이는.
성경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도는 세상에서 어느 편에 서야하나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고, 성경은 어느편에 서야하는지 계속해서 얘기하고 있다. 내가 다윗인가, 요압인가,압살롬인가를 계속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에스겔이고 다윗이고 다 똑같은 사람 이야기를 성경에서 하고 있다. 예수 믿고 악한 세상에서 살아야하는데 요압의 처세술로 사는 것이 아닌,어떻게 성도로서 살아야 하나를 끊임없이 갈등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도 이세상에서 10년을 내다보고 하는 결정은 성공적인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데리고 갈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요압은 너무나 충성스럽고 다윗에게 아주 필요한 사람. 요압이 뭘 잘못했는가?말은 그럴 듯한데 하나님의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님을 입으로만 거론하고다윗의 입장에서 인간의 지혜로 결정하는 것이 탁월한 사람. 좋지 않은 관계를 못견뎌하는 우리…그래서 인본주의로 화해하게되면 중재를 잘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못견디는 것이 ‘긴장’이기에 다 회피한다. 이것을 견디는 것이 힘들기에 그 상황을 변화시켜보려고 우리는 너무나 애를쓴다. 20절에,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변화시키기위해 노력했다.
성령이 회개케하면 알려 주시는데, 압살롬을 기다리면 회개하지 않을까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이 때 요압은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갖은 수를 다 쓰고 있다.그러나 마태복음 24장에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한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누릴 수가 있다. 화평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술을 마시건 안마시건 직장에서 내 역할을 다 하고 있다면 나 때문에 화평이 깨질 일은 없다. 지금 교회에서 내 일을 다하는 것은 졸지 않고 말씀을 듣는 것이다. 내 역할을 안하기 때문에화평이 깨지는 것이다. 싸움이 없는 것이 화평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 화평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된다.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화평만이 진정한 화평이다.
어떤 일도, 믿음으로 그리고 회개로 하지 않으면 위장된 입맞춤이다.
적용) 화평케하는 자가중재자인데 진정한 중재를 하고 있는가? 14장 전체의 적용은 때가 아닌데 나서서 인간적으로 무언가 중재를하려고 애쓰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눠보라.
[기도제목]
시간이 지날수록 나눔이 더 편안해지고 깊어지고 있는 것이 마치 가을 햇살과 바람에 잎이 물들어 낙엽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공감과 권면이 어우러진 나눔에 위로와 은혜 받고, 한편 털어놓았다는 시원한 해소감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예수께로 오라하심이 공동체로 오라는 인도하심이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더욱 더 깊어지고 말씀으로 풍성해질 우리 목장의 나눔과 교제를 기대하여요. 한주간 꼭 중보할게요 언니들! :)
권내리(75) 목자
- 하나님으로 인한 화평과 관계 누릴 수 있기를
- 생활예배와 큐티 잘하도록
- 아버지와 남동생 구원 위해 잠잠히 기도할 수 있도록
정미화(76)
- 삶에서 예배가 회복되고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기를
- 직장에서 내 힘 내려놓을 수 있도록
- 가족 구원
조미나(79) 부목자
- 진정한 회개 가운데 화평을 누릴 수 있도록
- 하루하루 감사하며 허락하신 모든 것을 기쁨으로 누리도록
- 시간과 건강관리에 지혜를 주시도록
- 영혼구원을 위한 사명을 우선적으로 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안무옥(82) 부목자
- 양육교사훈련 사람이 아닌 하나님 바라보며 완주할 수 있기를
- 생활예배와 양육 과제가 우선순위가 되도록 지혜롭게 시간과 에너지 안배할 수 있기를
- 직장에서 관계의 질서와 주어진 역할에 순종하며 생색내지 않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