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
사무엘하 14:1~33
■ 설교 요약
사자가 소를 생각해서 살코기를 갖다 주고 소가 사자를 위해서 정성껏 풀을 뜯어 먹으라 줬지만 둘 다 서로가 주는 음식을 먹지 못하여 지치고 결국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다 헤어졌듯 화평을 이룬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잘해준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은 도리어 불행의 원인이 된다. 자기의 죄를 모르는 사람은 백프로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욕심을 들이대며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싸우게 된다. 복음 없이 화평하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아직 때가 아닌데 관계 나쁜 사람들을 중재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일 수 있다. 요압은 압살롬과 다윗 사이의 결정적인 중재자였는데 그가 진정한 화평을 도운 것일까? 사랑도 회개도 아닌 입맞춤, 예수를 잡은 유다의 입맞춤처럼 겉만 그럴싸한 것이다.
1. 본능적인 사랑으로 입맞춤을 했다.
1절. 압살롬이 도망간 지 3년이 되자 그를 다윗이 그리워했다. 자식이 아무리 죄를 지었어도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부성애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성애는 있었으나 죄를 징계하는 사랑은 없었기에 이는 화를 불렀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비극이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고 도망을 갔지만 다윗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자신 때문에 암논이 죽었고, 그를 죽인 범인이 압살롬이고. 밧세바 사건부터 이 빠진 호랑이가 된 다윗이다. 압살롬이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 도망갔는데 다윗은 그 아들을 사랑했다. 핏줄에 연연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부부는 헤어져서 안 봐도 자식은 그럴 수 없다. 자식에게 집착하고 성공만 부추기면 부모 자식 모두 지옥을 살게 된다. 모든 결혼 문제의 배후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 복음을 전하다가 다툼이 일어났는가? 일시적인 화평을 지키려고 주일을 어기는 배우자나 자녀를 못 본체 하는가? 그러다가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백 마디 듣기 좋은 말보다 한 마디 복음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인 것을 알고 있는가?
2절~20절.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여인을 찾은 요압. 다윗의 간절함을 눈치 챈 요압이 압살롬의 복귀를 은밀히 추진한다. 드고아의 여인에게 다윗을 설득하는 임무를 맡겼다. 충성스러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중재를 하게 된다.
여인이 다윗에게 두 아들이 다투다가 한 아들이 죽었는데 이웃이 남은 아들을 죽이려 한다고 하니 다윗이 그 아들을 죽이는 것은 더 큰 죄라 했다. 여인은 그 두 아들 이야기를 다윗의 두 아들에 적용하며 탄원했다. 살인자를 데려오지 않는 것이 죄라 하며 비논리적으로 다윗을 설득했다. 그런데도 그 말을 듣고 다윗은 성급한 결정을 내린다. 요압이 갖은 꾀를 내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다윗을 불쌍한 사람의 예를 들어 설득한 것이다. 밧세바 이후의 다윗은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울의 핍박은 자신만 참으면 되는 일이어서 박수까지 받을 정도로 믿음을 인정 받았지만 졸지에 간통과 살인의 범법자가 되어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압살롬을 거절한 것은 다윗의 세 번째 큰 범죄라 할 수 있다. 본능적인 사랑은 했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놓치고 있었기에 때 후의 늦은 입맞춤은 후폭풍을 몰고 오게 된다. 화해가 늦어도 빨라도 안 되는 것은 구원에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인의 말을 듣다가 이것이 요압의 계략임을 눈치챈 다윗. 다윗의 연약함인지 악함인지 나쁜 일에는 늘 요압을 앞세웠던 다윗. 다윗은 ‘나는 전쟁터에 나가서 자식을 안 돌보고 고생시켰다’ 라는 연민 때문에 자식 문제가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반역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여인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되는데 결국 다윗은 압살롬을 데려오게 했다. 나단의 말은 회개를 일으켰지만 여인의 말은 분란만 일으킨다. 그래서 원칙을 언제나 지켜야 한다.
24절. 그리도 보고 싶었으면서 압살롬을 데리고 오고는 보지 않는 다윗. 압살롬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본을 보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할 때와 관대하게 할 때가 확실해야 하는데 백성들의 이목을 의식은 했으나 왕이면서 아버지이기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다윗.
Q. 본능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가? 객관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가?
2. 회개하지 않는 입맞춤
25~26절. 다윗이 이렇게 헤매고 있는데 압살롬의 외모가 뛰어나니까 백성이 이에 반했다. 압살롬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윗이 그를 자꾸 피하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모든 사람이 압살롬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를 죽이려 하는데 모든 사람이 독을 품은 압살롬을 사랑한다는 것이 놀랍다. 압살롬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살인이 정당화 되었다. 사울의 외모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압살롬의 외모 때문에 다윗을 배반할 조짐이 보인다. 이렇게 우리가 외모를 좋아한다. 선천적인 장점이 자랑거리가 될 수 있지만 나를 가장 쉽게 넘어뜨릴 수 있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나의 장점은 오로지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27절. 흠이 없는 외모, 외가, 친가가 모두 왕족 집안, 동생들도 아름다움. 교만할 수 밖에 없었던 압살롬의 환경. 아름다움이 모두 헛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본문이다. 가장 큰 중독이 인정중독이다. 압살롬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은 일등이었으나 하나님께는 외면 당했다.
28절~32절. 압살롬이 아버지를 보고 싶어했지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공의를 행했기 때문에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암논이 죽을 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압살롬은 자신을 의롭다 여기고 있다. 요압에게는 다윗과 압살롬을 화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다윗은 ‘나는 용서 받았는데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압살롬을 데려온 것은 비인격적인 용서였다. 압살롬은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는데 아버지는 먹을 것만 주고 있다. 밧세바의 문제 때문에 정의가 땅에 떨어진 것 같으니 압살롬을 사랑해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요압은 다윗의 의중을 알아 압살롬을 데려왔는데 다윗이 안 보니까 요압도 압살롬을 안 봤다. 그 누구도 압살롬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압살롬이 요압의 밭에 불을 지르니 그 때서야 다윗에게 얘기하고 다윗이 압살롬을 불러 입맞춤을 했다. 죄의 문제 해결도 없이. 이것이 후폭풍을 몰고 온다.
Q. 회개하지 않고 겉으로만 화해하려고 하는 것이 있는가?
3. 순수하지 못한 충성으로 입맞춤을 시켰다.
33절. 이 사건을 구속사적으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요압은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전쟁에서 다 이겨도 왕에게 영광을 돌렸다. 사람 앞에서 충성하는 것도 필요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압이 나라마다 가정마다 시대마다 대세를 이루고 있다. 구속사를 알고 있는 다윗이 의롭게 보이지만 세속사적인 요압에게 계속 끌려 다니고 있다. 결국 자기의 유익을 따라 화해를 중재한 요압이다. 요압의 계획이 성공했고 이는 반역을 꾀한다. 하나님이 이런 요압의 계획을 막지 않는 것을 본다. 이러니 계속 요압이 대세를 이룬다. 내가 압살롬인가 다윗인가 요압인가 생각해보자. 요압처럼 처세술이 좋아서 살면 안되고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결정해야 한다. 요압이 잘못한 것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 결정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입으로만 거론하고 다윗의 입장에서 인간의 지혜로 결정하는 것이 아주 탁월했다. 좋지 않은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인본적인 화해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견디지 못하고 상황을 변화 시키기 위해 너무 애쓴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요압이 자꾸 환경을 바꾸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고 있다. 화평은 전쟁의 종식을 뜻하지만 회복의 의미도 있다.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가 해결되어야 누릴 수 있다. 화평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다. 직장에서 내가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내 역할을 다하면 화평을 깨지 않을 수 있다. 싸움이 없는 것이 화평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 화평이다.
Q. 진정한 중재를 하고 있는가? 때가 아닌데 인간적으로 나서서 중재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적용 나눔 (@매드포갈릭 ^^)
1. 설교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가? 나는 요압인가, 다윗인가, 압살롬인가?
서현영(93)
청년부에 올라와서 한동안 예배 때마다 눈물 흘렸고 은혜 받았다. 그런데 그게 언제적 이야기인지, 마지막으로 예배 드리며 눈물 흘린 적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오늘 예배 내내 울었다. 다윗, 요압, 압살롬의 이야기가 우리 가족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동생은 압살롬, 요압은 나, 압살롬은 동생. 같은 사건은 아니지만, 아빠도 여자 사건을 겪으셔서인지 잘못한 일에 대해 동생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 두잔 마시는 것도 이제 나는 불안한데 아빠는 그것에 대해 괜찮다고 하신다. 아빠도 동생도 예배를 잘 드리고 있지 않아서 내가 중간에서 바로 서 있어야 하는데 동생의 구원 보다는 동생의 입시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하나님과 우리 셋이 다 떨어져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아들을 챙기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던 다윗처럼 아빠에게는 동생을 덜 챙겨줬다는 미안함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아빠와 나는 건드리셨어도 동생을 건드리시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남아 있는 동생까지도 건드리신 것 같아 솔직히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하나님께 많이 화가 났었다. 재판도 제대로 끝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존재도 의심하려 했었는데 오늘 말씀을 들으며 은혜가 되었다.
이혜영(92)
난 요압인 것 같다. 우리 가족들을 다 우리들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임무처럼 느껴진다. 부모님은 다른 교회를 다니시는데 그냥 왔다 갔다 하시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내가 중재자의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항상 예배를 드릴 때는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집에 가면 "우리들교회 같이 가자"라고 몇 마디 할 뿐 똑같이 생활한다. 요압처럼 제대로 된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셨는데도 "남자를 교회에서 찾으려고만 하면 안돼. 다른 조건도 다 봐야 한다." 라는 말씀을 하신다. 어린시절부터 교회에 다니셨는데도 어떻게 그러실까? 우리들교회에 오면 올수록 그런 엄마의 모습이 더 눈에 보이기 때문에 안타깝다. 교회 옮기려 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이 오늘은 다른 교회에 다녀오셨다. 우리들교회에 같이 올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운데 다음에는 꼭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예진(89)
항상 부모님이 다윗이었고 내가 압살롬이었다.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에 엄마는 "결혼은 사랑이나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이신 엄마와 군인이신 아빠는 날 매우 똑똑하게 여기셨고 바른 길로 가지 않아도 야단치시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다. 모태신앙으로 늘 교회는 다녔으나 한번도 기쁘게 다닌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교회에 와서는 많은 것이 변화 되었다. 부모님은 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신 것 같은데 이제는 압살롬 같은 나의 모습이 인정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엄마와 갈등이 생겨 다투면 몇 시간 동안 서로 말을 안했었는데 이제는 다퉈도 몇 분만 있으면 금방 풀리는데 그것도 신기하다. 부모님이 바로 회개해주셔서 그런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나래(89)
압살롬의 외모를 좋아했던 백성들처럼 외모를 내려놓지 못하겠다. 요즘 배우자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외모를 내려 놓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잘생겨야 한다기 보다 내가 원하는 느낌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게 포기가 될까? 정말 하나님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싶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중재하려 했던 요압이 요즘의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동기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하루종일 메신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나님의 지혜로 조언을 하는 대신 내 열심으로 얘기하다 보니 진심으로 느껴질 것 같지도 않고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 친구의 상황을 들으면 들을수록 교회에 데리고 와야만 할 것 같은데 인간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굳이 그 동기의 구원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 기도 제목
이혜영(92)
- 가족의 신앙을 위해
- 중심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기를
서현영(93)
- 학교 성실하게 다닐 수 있도록 에너지 주시기를
- 동생의 사건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판단으로 해결되기를
- 자존감이 높아지기를
- 학원 준비 잘하기를
박예진(89)
- 일대일 양육 잘 받기를
- 하나님께 여쭈며 진로 계획하기를
- 동생의 신앙을 위해
이나래(89)
- 말씀의 흉년이 들지 않는 한 주가 되기를
- 옳소이다 인정하며 회사 생활 하기를
- 세상적인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배우자를 찾기를
장연주(87)
- 내 힘이 아닌 하나님께 물으며 이직 준비하기를 (진로문제)
- 바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중심이 되기를
- 스트레스 건강하게 풀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