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나 사무엘하13:1~19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신학 교육을 받고목사가 된 분이 혼외정사가 발각되어 사역지와 가정을 모두 잃었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도 사랑했고부인도 사랑했을 것이고 불륜 대상도 사랑했을 것이다. 이 분의 사랑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하기 어렵다. 이 같은 일이 암논에게도벌어져서 자기 동생인 다말을 사랑했다. 암논의 사랑은
1. 죄의 삯은 사랑이다.
암논이 이복 누이인 다말을 짝사랑하다상사병에 이르게 된다. 이를 본 간교한 친구 요나답의 계책을 듣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여동생을 소유하려하다 결국 강간하고 쫓아냈다. 암논은 왜 이런 사랑을 했을까.
다윗은 권세가 있어서 밧세바를 가졌지만 암논에겐 권세가 없었기에 다말을 바라만 보다가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근데 다윗이 전쟁 중에도 계속 여자를 바꾸니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들이 관능의 쾌락에 쉽게 몸을 맡기는 것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암논에게 절세미인이 나타나자 동생임에도 욕정을 불태우다 기회를 엿봐 강간하고 버린 것이다.
범죄는 처음과 끝만 있을 뿐 중간은 없다고 한다. 범죄인의 가족은 범죄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런 죄는 아버지 다윗으로부터왔다. 다윗이 미갈, 아비가일, 밧세바 등 굵직한 사랑을 하며 자식들을 돌보지 않으니 아들들이 다윗을 보고 똑같이 가는 것이다. 성경은 죄의 영향력이 3,4대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다윗이 회개했다고 하여도 암논도 간음을 하였고, 솔로몬은 1000명의 아내를 두었다.
나의 잘못된 죄를 보지 못하면 죄를 뿌리뽑기 힘들다. 나의 반복화된 죄의 습관을 끊기가 힘들다.
죄는 동기, 형태 등 외적인 타락만 아닌 성격형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술, 주식, 여자 못 끊는 자신과 역사를 정직하게 대면할 때 나를 알고 바로 사랑할 수 있다. 회개는 우리의 죄를 분명히 보고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암논의 아버지는 부재중이고, 무관심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앞에 말한 패트릭 목사는 남자중의 남자같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그에게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자신이 목사가 되고도 30년이 넘게 인정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받는 상처는 무관심, 학대, 부재중으로 인함인데 아버지들 가운데는 그런 상처의 감정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자도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무엇을 물려주었는가? 아버지의 상처로 인해 감정적으로 연약한 여자에게 관심이 끌리나아버지가 준 상처의 빈자리를 여자가 채우지 못한다. 하늘아버지를 알 때 상처가 치유될 것이고, 그 상처가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지 않을 것이다. 좋은 것은 본을 보여도 따르게 하기 힘들지만, 악한 것은 조금만보여도 금방 따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문제아는 없고,문제 부모만 있다.
> 나의 사랑은 죄의 삯인가?
2. 끝을 보는 사랑이다. (자신의 책임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셋째 아들이고, 암논은 첫째 아들이다. 그런데 다윗은 압살롬만 편애했다. 거기에 아름다운 외모의 누이가 있으니 외모에 유혹된 아비의 죄를 아들이 똑같이 반복한다. 암논을 간교한 친구 요나답이 꼬드긴다. 열등감이 많고 충동적인 사람에게제대로 된 친구가 있을 수 없다. 무조건적인 충동을 채워주는 것이 도와 주는 것이 아닌데, 완전히 잘못된 조언을 주고 받고 있다.
동침한 이유가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셌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나은 게 힘이 센 것 밖에 없다. 욕심의정욕을 이루려고 다말 하나 얻기 위해서 암논은 끝을 보려고 한다. 끝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열심이 하늘을찔러서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부모의 죄가 대물림 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의죄도 반드시 있다. 억제할 줄 모르는 불의한 정욕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탐욕에 이끌려 강제로 범하였다. 그러나암논은 범하고 나서 다말을 심히 미워했다. 누이에서 계집으로 이름도 바뀌었다.
악하고 음란한 우리들도 마찬가지 행동을 한다. 탐욕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가지고 싶어하고구하는 마음이다. 탐욕적 성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중독이다. 중독의 대상에 빠지면 그것을 사랑으로 생각하고 어떠한 희생도 감수한다. 암논도일종의 여자, 성 중독에 빠졌다고 할 수 잇다. 암논은혼전 관계를 한 정도가 아니라 강간을 하였다. 결혼 전 성관계는 관계를 완전히 파괴한다. 그러나 결혼 후 관계는 관계를 아름답게 해준다. 결혼 전에 성관계를하게 되면 그 순간 영혼은 떠나 버리고 동물적인 것만 남게 된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흥미를 느끼지못하기 때문이다. 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알아보려는 욕구가 사라진다. 육적으로마지막을 지켜주는 것, 끝을 남겨 주는 것이 상대방을 존귀하게 해주고 진짜 사랑하는 것이다. 성욕을 참는 것은 형극의 길이고 십자가 길이다. 고난이다. 그것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참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사람이야말로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부모들도 자녀를다 도와주면 안 된다. 다 도와주면 감사해 하지 않는다, 끝까지다 보여주면 안 된다. 회사에서도 부하들에게 할 일을 남겨 주어야 한다.
인격은 사람과의관계에서,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노출되는 성품이다 어디까지 참아내는가가 인격이고 영성이다. 이것은 성관계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나의 사랑은 끝을 보는 사랑인가? 끝을 남겨놓는 사랑인가? 성관계를 가지며 끝을 보려고 하는가?
3. 회초리를 맞는 사랑이다.
불신결혼을 안 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일단 하고 나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는 누구도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말은 암논에게 구속사적으로 정확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재를 머리에 쓰고 손을 머리에얹으며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인격과 명예가 더럽혀졌음을 나타낸 것이다. 자신의 전적 무능을 고백하고 기도하면서 길거리를 지나갔다. 성폭행을당했어도 스스로 회개하는 다말이지만, 암논은 회개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회개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이다. 어떻게그럴 수가 있냐 하지 말고 내가 회개를 하면 된다.
다말은 다윗을 징벌하기 위해 회초리를 때리시는 통로로 쓰였다.다말이 너무나 억울한 것 같아도 하나님은 내가 당한 것 다 아신다. 성폭행을 당한 청년들의아픔을 하나님께선 다 아시고 후대하실 것이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축복이다.
# 기도 나눔
성진: 직장서업무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업무가 과중한데 조정될 수 있게, 큐티할수있도록
찬우: 양육 숙제와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상욱: 큐티와 직장 구할 수 있도록
경환: 업무 일정이 조정될 수 있도록, 생활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창재: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민귀: 신교제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