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3부 김지헌 목장 보고서
날짜 : 2014년 9월 14일
본문 : 사무엘하 12:13~31
제목: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참석자 : 김지헌 목자(80) 박소연(81) 이혜림(81) 이슬기(83) 윤경주(82)
#9873;주일설교요약
사람들은 자신이 다 회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도 평생 회개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밧세바 이전과 이후의 회개가 다릅니다. 다윗이 가장 진실 되게 회개 한 것이 밧세바 사건입니다. 무엇이 진실 된 것일까요? 나단이 일년 동안 죄를 은폐했던 다윗에게 찾아 갔습니다. 나단은 비유로 아주 지혜롭게 책망을 했습니다. 나단의 책망에 다윗은 즉각적으로 회개를 했습니다. 오늘은 진실 된 회개에 대해서 생각 해 보려고 합니다.
1. 죄 고백이 있다.#65279;
‘나는 죄인입니다’ ‘옳소이다’의 고백이 다윗에게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회하는 영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결코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13절] 너무 싱겁거나 짧게 느껴지고 바로 고백하고 바로 죄사함이 나왔을까요? 혹시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하니깐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고백은 아닐까요? 라고 대부분의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이 그렇습니다. 건강한 신앙은 죄를 저지르고 실수할 수 있음을 인정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이 죄고백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을 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죄에는 음란, 간음, 도적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창세기 3장 5절에 네 눈이 밝아서 하나님 같이 될 것 이다. 졸지에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 자기 사랑에 취했습니다. 다윗의 ‘자기애’ 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자기도 모르게 가 있었습니다. 참 지식의 시작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밧세바 이전과 이후의 회개가 무엇이 다른가? 다윗이 사울과 싸울 때는 죄를 지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힘들어서 기도만 하면 응답을 다 해주셨습니다. 핍박을 당할 때는 생존이 우선이니깐 내면의 죄까지 심각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자리에 있고자 하는 것 중에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모두 모두 응답해 주셔서 다윗이 인정받는 자리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죄를 지었습니다. 욕심으로 성벽을 짓고 시험이 오고 바람이 부니깐 그 성벽이 와르르르 무너졌습니다. 인정받는 자리에 가니깐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나의 일을 모두가 다 해주니깐 권세가 다 생겼으니깐 죄 지으라고 우리는 윗자리에 갔습니다. 권세가 생기면 누구도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는 고백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이라는 책의 저자인 고든맥도날드는 세계적인 BEST 10 영성의 대가입니다. 이분은 대단한 사모님이 계시는데도 여자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든은 정점에서 이 문제가 터졌습니다. 고든은 모든 것을 다 내려 놓고 은둔하며 징벌의 기간을 보냈습니다.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에서 고든은 “나는 세계가 무너진 사람을 가장 지독하게 비난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습니다. 왜 비난하냐? 너는 스스로 날마다 죄인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증명 되었는데 왜 그래? 그런데도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고 다 떠나갈 것만 같고 그래서 용서받는 자의 삶을 살기가 너무 어려웠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회개 안에서 산다는 것은 내가 늘 잘못된 방향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그리고 계속 자기 자리를 자기 주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삶이 회개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항상 죄 지은 일만 찾아서 헤메어 우리를 좌절시키는 병적 근성이 아니라 우리 내면은 항상 창조주에 대한 반역과 불순종으로 흐리기 쉽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삶이 회개 안에서 산다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만 회개 하고 나는 회개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다 평생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자기 죄를 위해 한 시간을 진실로 울부짖는 사람은 온 세상을 가르치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있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나의 약함을 부족함을 아는 것이 얼마나 지식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 하겠지만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받고 한 줄로 회개 한 것 같지만 즉각적인 회개, 변명이 없는 회개, 겸손한 회개를 했습니다. 고든도 죄를 어떻게 지었는지 없고 무조건 자기 죄 만을 썼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했기에 여기서는 한 줄로 나왔지만 시편 32편, 51편을 보면 처절한 회개를 했습니다. 송인규 교수는 회개의 3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적으로 자기의 죄를 깨달아야 하고 정적으로 하나님께 통회해야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의지적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얻고자 하는 결단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그랬습니다. 지정의가 어떻게 나타나야 될까요?
회개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지 생각하면 여섯 가지로
1) 자신이 의롭다는 교만에서 무너져야 합니다
2)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퍼하면서 애통해야 합니다
3)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쓰라린 애통함은 모든 죄를 미워하고 혐오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형태라는 것입니다
4) 미워하고 혐오하던 죄가 자신 안에 깊이 있음을 탄식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 안에서 백일하에 드러나는 자신의 죄가와 약함에 대해서 감추려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6)죄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회개를 회개되게 위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이고 정죄감이 아닙니다. 회개는 평생 계속 되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다윗은 앞으로도 계속 회개 할 일이 있습니다. 일회성이 아닙니다. 다만 밧세바 사건의 회개는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는 분수령적인 회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은 음란과 간음과 살인죄를 범하고 있는 중에 나단이 와서 책망할 때 쓴 시입니다. [4~5절]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으로 지은 죄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다윗이 모든 것을 잘하다가 이제 도적적으로 잘 살다가 어쩌다 한 번 죄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윗이 깨달은 것은 스스로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를 물처럼 먹고 마실 수 밖에 없는 아주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출생했다’ ‘자기는 죄인이다.’ ‘죄밖에 지을 것이 없는 인생이다’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셨기 때문에 엄청나게 약속의 자손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네 나라를 영원하게 하리라’ 그랬는데 인생막대기와 사람채찍으로 죄를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인 것입니다.
노아도 120년 동안 수치와 조롱을 받았지만 방주 안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곳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다는 것을 알면(도덕적 윤리적 죄가 아니라) 어디서도 못살 곳이 없습니다. 방주 안에서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이상한 부부생활에서도 자녀와도 살아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알면 어디서도 살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니깐 어떻게 저 인간이 저럴 수가 있을까? 하니깐 못 살아 내는 것입니다. 다윗이 끊임 없이 여자를 취했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후반부 인생은 자기와의 싸움이고 말이 없어지고 인내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6편 6절] 다윗이 계속 우는 이야기. [시편32편 3~4절] 내 죄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을 때 종일 신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든도 다윗도 얼마나 죄 짓고 나서 눌렸겠습니까? 그들이 최고의 정점에서 죄를 지었는데 이것이 무의식 적으로 눌렸다고 생각이 됩니다. 결국은 전세계 적으로 글을 써서 진정한 회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51편7절] 우슬초는 문둥병자를 씻어주는 치료하는 풀입니다. 문둥병자는 자기 죄를 모릅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문둥병자보다 더 못하게 여겨서 우슬초(제일 형편없는 풀)로 나를 씻어 달라고 하며 다윗이 낮아짐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진짜 자신의 죄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문둥병자 보다 못하고 나를 우슬초로 씻어 달라고 다윗이 진짜로 회개 한 것 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로 죄사함을 받는데 회개가 바로 이런 것 입니다. [16~17절] 상한 심령의 제사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제사 드렸다고 하는 이런 것은 사실 너무나 보잘것없는 자기의 의로 보이고자 하는 것 때문에 구제하고 헌금하면서 자기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보겠습니까? 상하고 상한 심령의 제사를 누가 보겠습니까? 가인의 후손이 보겠습니까? 한계 상황에 봉착한 에노스와 노아가 보는 것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이 세우시기 위해서 처절한 길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진정한 참회는 과거를 뉘우치는 것만이 아닌 동일한 죄를 미래에서 되풀이 안 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도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인에게 나도 너에게 정죄하지 않으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범치 말라. 그리고 다윗의 죄 고백을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서 사해 주신 것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후반부에 눈물의 인생을 살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평강합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낮아짐을 경험하면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남자분들은 권세에 대한 욕망이 많습니다. 정점에 올라 갔을 때 곤두박질을 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은 뭘 그렇게 매일 회개하느냐고 묻는데 저 같은 삶을 남자분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저도 정점에 있으면 정점에 있었는데 너무나 밑바닥 인생을 오래 내려가며 살면서 내가 겪지 않아야 될 감정을 참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지금 매일 회개 할 것들이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누구도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승장구 하다가 올라가면 반드시 이런 일을 겪지 않나 생각 됩니다. 다윗이 이 죄를 오픈 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 입니다. 다윗이 부유할 때는 인간에 대해서 참 모릅니다.
인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은 죄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사람에 대한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깐 결국 언젠간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 보다는 관계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잘나서 사랑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불완전함을 가진 우리자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에서 가장 커다란 초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건강 할수록 더욱 자신을 소중하게 느끼게 됩니다. 다윗은 회개 하였습니다. 성숙이라는 것은 더 나은 행동이 아니고 나쁜 행동을 식별하고 인정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이 분별입니다. 구별 된 것입니다. 작던 크던 나의 연약함을 나의 현실이라고 인정하고 또 인정하는 것이 회개하는 생활방식 입니다. 가능 할 때 마다 나의 잘못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시인하는 것이 회개의 생활 방식인 것입니다. [자녀의 왕따 사건에서 자신의 죄를 보는 집사님의 간증] 우리가 듣기만 하여도 이분이 저절로 상한 마음에 제사를 드린다고 느껴 지지 않으십니까?
[적용] 나는 모든 죄에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 ‘옳소이다’가 되고 있습니까? 나의 회개는 밧세바 이전 입니까? 이후 입니까? 이게 나를 위한 고백입니까? 남을 위한 고백입니까?
2. 죄는 반드시 징벌 하신다.
[14절] 우리가 죄를 쉽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죄는 그 값을 치뤄야 한다는 생각 보다는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 주신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함 받은 죄라도 죄는 미워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십니다.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이 책임을 묻는 것이 두렵다면 죄사함의 은총을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다윗의 넘어짐은 원수들에게 득세 할 기회를 주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윗이 제대로 넘어지도록 방치 하셨습니다. 사실 다윗에게는 폭력성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자기 딸과 결혼 할 때 양피 100개를 가져 오라고 하니깐 넘치도록 200개를 가져다 바치면서 무고한 백성 200명을 죽여서 자기 결혼하기 위해 바쳤습니다. 도덕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이미 죄인입니다. 게다가 원치 않았겠지만은 그렇게 간음과 살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가임 기간을 피해서 치밀하게 했는데도 임신이 된 것은 마귀의 기적 아니겠습니까? 우리아에게도 두번 동침하라고 했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방치 하셨습니다. 게다가 우리아가 너무 쉽게 죽어버렸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 흘러가리라고는 다윗이 생각도 못한 일이 권세를 가지고 저절로 흘러갔습니다. 어쨌든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였지만 하나님이 두고 보셨습니다. 하는 일 마다 꼬이게 된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도 사람이 위기를 당할 때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기장의 실수 예화- 다윗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크게 채찍을 드셨습니다. 당신이 나은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이제 징벌을 예고했습니다. 다윗은 후에 깨달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원수가 하나님을 이길 수도 있구나.’ ‘하나님의 구속사가 끊어질 뻔 했구나.’ 하나님에게 중요하게 쓰임 받는 사람일수록 다윗에 대한 책망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귀는 늘 구원 받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구속사를 공격합니다. [15절] 예고된 고난은 아무 준비 없이 당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 있고 하나님이 치시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택한 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는데 무서워하지 말고 경고할 것은 경고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나단은 목숨을 내 놓고 간 것인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우연히 있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에게는 죄지을 때에 우리아가 있었고 회개 할 때 나단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때마다 이렇게 믿음의 동역자가 있을 수 있는지? 너무 부러운 것입니다.
[적용] 징벌에 따른 죄의 대가를 치룬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신뢰하는 믿음의 동역자가 있다고 생각 합니까?
3. 징벌에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다윗이 진정한 회개를 했다는 것은 징벌에 순종하는 모습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에 순종했는가?를 세가지로 알아보면
3-1) 현실을 수용한다.
[16~17절] 형벌이니깐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형벌의 태도가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기도하고 금식하고 엎드려서 간구할 자격이 없는 것을 깨닫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습니다. 모두가 다윗이 뭐 그리 회개할 것이 있냐고 경험 많은 신실한 신하들이 말렸겠지 만은 지도자는 누구 말을 듣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이 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먹지도 않고 엎드려 기도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이는 심히 아프게 됩니다. 이미 들었지만은 포기하지 않고 자비를 간구 했습니다. [18절] 그렇게 기도 했어도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옆에 사람들은 그렇게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부르짖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19절] 신하들이 다들 수군거렸습니다.
3-2) 하나님을 신뢰한다.
징벌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수용하게 되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20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다윗은 응답으로 생각하기에 이제 아기가 죽으니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경배했습니다. [21~23절] 다윗의 회개 후의 확신의 모습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내가 이제 저에게로 가려니와 아이는 천국 갔다고 확신 했습니다. 영아의 구원의 확신의 근거구절이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죽음으로 다윗이 더 절망 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윗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아이가 천국 간 것을 신뢰한 것처럼 저도 현실을 수용하면서 남편이 갔어도 남편이 천국 간 것을 신뢰함으로 일어나서 사명을 향해 지금까지 걸어 온 줄 믿습니다.
3-3)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24~25절] 11장 3절은 우리아의 아내라고 했는데 다윗이 회개하고 나니깐 밧세바로 불러 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밧세바가 임신하였을 때는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과 간통의 죄를 지은 결과로 생긴 아이였으니깐 어쩌면 이것은 죄악의 씨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의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이를 치셨습니다. 징계하셨습니다. 죄는 용서하여 주셨지만은 그 죄의 값은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 아이가 죽고 밧세바를 위로 했습니다. 이 세상에 밧세바처럼 정죄감이 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로 인해 훌륭한 남편이 죽고 아이가 죽고 그리고 남편을 살해 한 자와 같이 살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다윗밖에 위로해 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갈은 죽는 날 까지 아이가 없었다는 것은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렇게 죄를 범한 밧세바와는 위로하고 동침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진정한 회개를 한 다윗이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다윗의 여자는 미갈, 아비가일, 밧세바가 있는데 여자 스토리의 주인공이 밧세바 이 후 다른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다윗이 밧세바에게 정착한 것 같습니다. 비록 자기의 이름은 아니지만 마태복음 1장에 우리아의 아내로 그 찬란한 구속사의 명단에 들어간 것을 보면 다윗과 서로 믿음으로 사랑을 했다고 봅니다. 땅끝까지 내려간 다윗이기 때문에 다윗이 책임을 진것이고 밧세바도 구속사를 통열히 깨닫고 다윗의 아내가 그렇게 많은데도 가장 비참한 환경가운데 있었던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이라는 영적 후사를 주신 것입니다. 부부간에 아가페적인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자중독자인 다윗이 알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아픔과 수치를 극복한 다윗에게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아라고 하시니 ‘여호와의 사랑을 받은자’ 다윗은 ‘사랑하는 자’ 라는 뜻인데 일맥상통하는 이름을 이렇게 나단이 지어주셨습니다. 현실을 수용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되니 영적 후사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여러분은 징벌에 순종 합니까? 현실을 수용합니까? 하나님을 신뢰합니까?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까?
4. 회개의 결론은 거룩이다.
[26~31절] 솔로몬을 낳기 전의 사건입니다. 다윗이 회개했기 때문에 암몬과의 싸움을 이긴 것이 아니고 이렇게 죄를 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암몬과의 싸움은 이기게 해주신 것입니다. 게다가 요압(간신)은 다 이겨놓은 상태에서 다윗에게 나라를 바치겠다고 하며 다윗에게 보석이 박힌 왕관을 쓰도록 합니다. 요압같은 자에게도 속으면 안됩니다. 죄를 모르니깐 요압같은 자에게 속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일생 끌려다니면서 전전긍긍 했습니다. 범죄 기간중에 아무리 이렇게 싸움을 잘 할 지라도 12장 전체는 죄와 수치에 관해 말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의 순종과 성결 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 아무리 외적인 열매가 많아도 내적인 거룩이 없으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암몬과의 전쟁에서는 이겼지만은 실질적 싸움에서는 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버트 머리 멕체인 목사님은 “목회자로서 나의 교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나의 개인적인 성결(거룩)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무서운 실패는 사무엘상하의 기자에게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모든 인물들이 흠이 있었고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도 마땅히 죽을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 나라가 존속하려면 은혜가 아니면 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사무엘상하는 예수님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죄를 이겨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예배를 나오는 것이 저절로 죄를 막는 길입니다. 저절로 자기 수준에서 늘 하나님을 생각해 보니깐 하나님이 그만큼 채워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완벽한 행위를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9873;목장풍경
추석명절이 있던 긴 한 주를 보내고 목장 예배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약속했던 밥을 함께 먹으며 나눔을 진행했습니다. 맛있는 파스타와 샐러드를 먹으며 분위기 좋은 곳에서 감사함을 느끼며 목장식구들 전원이 참석하여 나눔을 진행했습니다.
#9873;목장나눔
각자의 처소에서 훈련을 시간을 보내고 온 우리 목장 식구들은 주일 말씀을 분류된 번호 순서로 돌아가며 자신이 설교 내용 들은 것을 나누고 적용질문을 되새기면서 한 주 동안의 일들과 처방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9873;기도제목
김지헌 목자
-훈련의 때에 기본에 충실하며 포로생활 잘 할 수 있도록
-생활 예배와 가족구원
-하나님을 신뢰하며 진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믿음의 신교제
박소연(81)
-예배와 큐티가 우선순위가 될 수 있도록
-자기애, 교만이 허물어지고 욕심을 빼고 담대함으로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신결혼 준비과정에서 꼭 준비해야 할 것을 분별하여 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 기쁘게 하도록
이혜림(81)
-직장가운데서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여러 관계 가운데 내 죄만 볼 수 있도록
-무기력을 떨쳐 낼 수 있도록
-한 영혼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주시도록
이슬기(83)
-생활예배 충실히 드리는 가운데
-포로생활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도록
-일주일에 3번이상 운동하기!!
-손 놓고 있던 영어공부 다시하기
-문을 닫는 적용하기
윤경주(82)
-일대일 양육 받을 수 있도록
-매일 큐티하고 적용하며 매 순간 내 죄보며 참 회개 하는 삶 살 수 있도록
-가족들과 남자친구에게 거룩한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직장업무 집중하여 수행 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여 매일 기도시간 가질 수 있도록
-신교제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