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울이 죽은 후에 (사무엘하 1:1 - 16)
1. 나의 사울이 죽어야 나의 다윗이 시작된다.
사울은 나의 훈련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처리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1절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 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사무엘상 31절까지 쫓겨 다니더니, 1장 5절에서야 다윗이 사울이 죽은 것을 듣게 된다. 다윗은 23년의 고통의 세월을 보냈지만 그 고통이 별이 되어서 온 인류를 살리는 보석이 되었다. 내 고난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보석이 될 수 있다. 15개의 광야 세월을 거치고 사울이 죽었다. 다윗이 광야를 거치고 왕이 되었을 때 광야를 거친 것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굴 속에 숨어 봤기 때문에 전쟁마다 승리한다. 사울은 암나귀 찾다가 편안하게 왕이 되었기 때문에 고난이 오면 감당이 안 된다. 자기보다 잘난 부하도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다윗이 나타나니까 자살한다. 다윗과 사울의 차이는 다윗이 15개의 광야를 지났다는 것이다. 고난이 축복이다. 하나님께서 때를 가지고 계신다. 사무엘상에서 다윗은 원수 나라인 블레셋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사울이 블레셋으로 쳐들어왔다. 다윗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데 블레셋 편을 든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블레셋이 다윗을 의심하게 하셔서 전쟁에 나갈 수 없게 된다. 시글락으로 돌아오니 처자가 잡혀가고 약#53455; 당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빚지고 원통하면서도 왔는데 지금까지 비교도 안되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돌로 다윗을 쳐죽이려 한다. 다윗이 울 기력이 없도록 땅을 치고 통곡하고 울었다. 여호와를 힘입어서 용기를 가지고 아말렉을 칠 것인지 물었다. 하나님이 치라고 하셔서 이기고 전리품을 다 나누어주고 돌아오자 사울이 죽었다. 영적으로 내가 죽어야 새시대가 도래한다. 죽은 줄 알았지만 다윗 속에 사울이 죽지 못했다. 사울 때문에 이스라엘이 고생했지만 때가 되면 사울이 죽게 해 주신다. 사울 때문에 죽을 것 같으면 내 속에 사울이 죽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에 대해서 산 자로 선포되어야 한다. 나는 산자의 어미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송장이 되어서 아무리 찔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다윗은 우리의 모범이고 도전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명자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평안하다. 내 인생의 어느 때에 사울의 죽음이 선포되는가? 내게서 죽어질 사울의 모습이 있는가? 큰 사단인 사울은 하나님이 처리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2. 물리쳐야 할 사단이 있다.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은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이 생겼다. 큰 사단인 사울은 하나님이 처리해 주시지만 작은 사단 아말렉은 부지런히 쳐내는 능력이 생겨야 한다.
아말렉 청년이 찾아오자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2절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을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절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사울이 죽자 새시대의 일꾼으로 써달라고 아말렉 청년이 찾아 온다. 그러나 다윗은 그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사울이 죽는 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자식 때문에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다가 하나님이 내 놓으라고 하시자 내어 놓는다. 이것이 부활 신앙이다. 내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없어도 병이 나아도 안 나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이기 때문에 물을 수 있다. 나는 믿는 자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아말렉 청년을 분별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믿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사람을 분별하는 것은 다윗처럼 울 기력이 없도록 울어본 사람이 할 수 있다.
4절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어떻게 되었느냐는 말은 믿는 사람이면 간증해보라는 이야기이다. 그 질문에 사울과 요나단도 같이 죽었다고 한다.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윗이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고 이야기한다. 믿음이 깊지 않다. 다윗이 어떻게 하면 기뻐할까를 생각한다. 다윗과 사울의 관계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5절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어떻게 아느냐
사건이 있을 때 감정 절제 할 줄 알아야 한다. 질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의미이다. 아말렉 청년이 인간적인 공을 세울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을 분별하는 질문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말씀을 통해 질문해야 한다.
6절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절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나를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하나님이 살피시는 사람에게는 우연이 없는데 우연히 보았다고 한다. 단어 하나에도 표가 난다. 병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야망으로 했는지 사명으로 했는지 분별이 된다,
8절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믿는 사람인 척 하지만 결국 스스로 자기를 드러낸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 모순이 많다. 아멜렉은 사울과 철천지 원수관계였다.
9절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사울은 다윗과 비교하면 모범생이었다. 지금으로 보면 예배 열심히 드리고 늘 전도하러 다니고 율법적인 사람이었다. 사울이 아말렉 사람에게 자기를 죽여달라는 거짓말을 한다 다윗을 다윗되게 하기 위해 사울이 얼마나 수고했는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랐다고 하는 것은 병사가 아닌 좀도둑이었다는 말이다 .사울이 죽고 나서도 아직 다윗 쪽에 오지 않은 백성을 생각하면 아말렉은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윗은 아말렉 청년이 자기 말로 자기를 증거하도록 끊임없이 질문한다. 자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장했던 적은 없는가? 다윗 왕국의 처음 시작이 사람 분별이다. 이것이 너무 중요하다.
10절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잇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이 주관하는 것은 안 된다. 불치병이 오래 되었다고 해서 죽는 것이 옳은가? 마지막까지 그것이 어떤 구원의 일을 행할지 모른다. 성경전체를 봐도 하나님은 불임 여성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다. 우리는 조금만 힘들어도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아말렉 청년은 길보아 산에서 자신의 기회를 봤다. 15절을 보면 다윗이 분별해서 아말렉 청년을 죽였다. 기회주의자는 처음은 좋아도 나중이 좋지 않다. 속인 자보다 속은 자가 더 나쁘다. 사울의 면류관이 탐이 나서 속아 넘어간 것이고 그만큼 믿음이 없다. 교회에서 교제하고 봉사하면서 얼마나 생색내고 있는가? 결혼 전에는 분별해야 한다. 분별하기 위해 사울이 수고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말렉을 끌고 가다 보면 큰 사단 때문에 큰일 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새끼 사단은 날마다 물리치고 큰 사단은 때를 기다려야 한다.
목장 기도제목>
은시 : 관계에 대한 분별을 잘해서 아닌 것은 끊을 수 있도록
다운 : 관계에 대한 분별 잘하기, 회사 생활 하면서 양육숙제와 생활 예배 잘 할 수 있도록, 엄마한테 성질 안 부리도록
현지 : 회사에서 말씀 잘 적용할 수 있도록(밝게 지내기), 체력 때문에 양육교사 교육 포기하지 않도록
윤미 : 다시 십일조 잘 하도록, 관계에서 이해하는 마음과 섬기는 마음으로 지내기, 집에서 짜증내거나 혈기 부리지 않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