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 : 박세웅87 목자, 양주영88 부목자, 최인혁88, 남궁태현91, 이강후94
이렇게 5명이서 식당에 앉아 나눔을 하였습니다!
잘 들리지 않고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다른얘기로 넘어가 있는 식당의 무서움이 있기에, 서로의 나눔을 듣기위해 얼굴을 모아 집중 나눔을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
<사울이 죽은 후에>
사무엘하 1:1-16
사무엘하는 다윗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다윗의 일은 구약에서 800번, 신약에서는 60번이 나온다. 다윗은 천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에 오신후로 다윗의 조상으로 이름이 찬란히 언급한다. 다윗을 통해서 역경 속에서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 사울이 죽은 후에는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자.
1. 나의 사울이 죽어야 나의 다윗이 시작된다.
큰 사단인 나의 사울은 나의 훈련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처리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1절) ‘사울이 죽은 후에’로 시작하고 있다. 31장에서 사울이 죽었는데 1장 5절에서야 다윗이 듣게 된다. 다윗이 새 시대를 열게 된다. 31장까지 쫓겨 다니더니, 1장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왕이 되려면 사무엘하 5장부터. 되었다 함이 없다. 세월이 23년 정도 되는데 우리의 인생이 의미 없이 평생을 갈 수 있는데, 다윗은 23년의 시간을 고통으로 보냈는데 온 인류를 살리는데 보탬이 되었다. 나의 고통 하나가 보석이 되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15개의 광야생활을 거치고 사울이 죽었다. 얼마나 15개의 광야생활이 지난 것이 유익이 됐을까. 다윗은 주로 굴속을 숨었다. 비밀 아지트를 너무 잘 안다. 그러니 전쟁마다 승리한다. 모르는 게 없다. 내가 남편고난, 재정고난을 다 아니 모두 유익하게 쓰인다. 사울은 하지만, 암나귀 하나 찾다가 왕이 되었다. 그 사람은 고난이 오면 감당이 안된다. 왕의 자격이 없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도 다룰 줄 아는 것도 왕의 덕목인데, 다윗을 평생 미워하다가 자살하게 된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뭘까? 다윗이 15개의 광야를 지났다. 어떤 것도 사명과 연결되지 않는 고난은 없다. ‘당하는 것, 고난이 축복이다. 고난이 보석이다! 이것저것 많이 겪어 보는 것은 축복이다’ 라고 생각이 든다. 빨리 끝나고 쓰임 받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때가 사울이 죽은 후이다. 하나님께서 때를 딱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사울이 죽은 후라. 사무엘상 마지막에는 다윗이 마지막으로 도망간 곳은 블레셋이다. 블레셋으로 도망갔는데 블레셋은 사울도 이스라엘에도 원수이다. 다윗에게도 원수지만 너무 괴롭혀서 원수 나라로 갔다. 사울이 그 때 블레셋을 쳐들어 왔다. 다윗은 그때 어디 편을 들어야 할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자기 조국을 치기로 결정하고 블레셋 편을 듬. 적극적인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 블레셋이 다윗을 의심하기로 말미암아 동족과의 전쟁을 하나님이 피하게 해주셨다. 시글락 땅으로 돌아오자, 처자들이 모두 사로잡혀있고 모두 약탈 되어있다. 다윗은 ‘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빚지고 환란 당한 자를 모아 이 자리에 왔는데, 지금까지의 15개의 광야하고도 비교 할 수 없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언제 좋다고 하더니, 돌로 쳐 죽이자고 한다.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울었다고 했다. 너무 다급하니 여호와께 힘입어 아말렉을 칠까말까 물었다. 하나님말씀을 그제서야 듣고 아말렉을 도륙했다. 군대의 전쟁에 나가지 않는 사람도 다 배려해서, 전리품을 다 나눠줬다. 돌아왔더니 사울이 이때 딱 죽었다. 이정도 돼야 나의 사울이 죽는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야 여호수아가 시작된다. 죽어야 끝이 난다. 사람이 꼭 죽는 것으로 적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안줘도, 화를 내도 제가 죽어지니 평강이 있다. 영적으로 내가 죽어야 새 시대가 오는 것이다. 내안에 사울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새 시대가 열리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지만 성경을 보니 사울이 아직 다윗 안에선 죽지 않았다. 그래서 사울이 죽었노라 라고 사무엘하는 시작되었다. 훨씬 좋은 남편, 훨씬 좋은 학벌을 가지고 살고 싶어도, 주를 위해서 살기로 결단을 해야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모두 한 지도자에 의해 좌우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사울을 처리 하신다. 아직까지 사울 때문에 죽겠으면 우리 마음속에 사울이 죽지 않아서이다. 이 세상에서 산자인 사울과 이 세상에서 죽은 자인 다윗과의 대결이라면 사울은 죽게 돼있다. 그것은 엄연한 결과이다. 세상세력이 죽는다. 나는 산자의 어미로 선포 되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가 오실 산자의 어미이다. 아무리 찔러도 송장은 반응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힘들어서 사무엘하가 다윗이 정권을 잡게 되었지만, 앞으로 당할 일은 기가 막힌 일이 더 남아 있다. 조금 더 잘산다고 우월한마음 갖지 말고, 조금 불편하다고 열등감 갖지 마라! 모든 상황에서 사명을 잡길!
-내 인생은 어느 때에 사울의 죽음이 선포 되는가? 내게서 사라져야 할 사울이 있는가? 그것 때문에 사울이 나를 위해 수고한다. 큰 사단인 사울이 처리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함을 믿는가?
2. 분별해야 할 사단이 있다.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사람에 대한 분별의 능력이 생겼다. 다윗의 행전이 시작 되었다는 뜻이다. 큰 사단을 처리해 주시지만, 작은 사단인 아말렉은 부지런히 분별해서 처음에는 능력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15개의 광야를 거쳐 큰 사단, 작은 사단, 쳐 내야 될 사단, 기다려야 될 사단을 분별하게 되었다. 아말렉 청년이 찾아왔다. ‘너 어디서 왔냐?’라고 소속을 묻는다. 2,3절) 사울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궁금해 한다. 사울의 진영에서 사울의 면류관을 들고 왔다. 속으로는 ‘내 평생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졌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이 죽었다고 ‘너 기도가 응답 받았다’고 ‘새 시대를 위해서 쓰임 받아져 달라’고 왔는데, 다윗은 ‘어디서 왔냐?’ 라고 묻는다. 다윗처럼 고난을 겪지 않았다면 사건을 분별 할 수 없다. 내가 ‘심봤다!’라고 할 수 있지만, 누가 돈이 고난인 나에게 돈을 들고 나타났을 때 ‘그 돈 어디서 났냐?’ 라고 묻는 것이다. 이 돈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돈인가? 자식이 대학에 갔는데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 이다. 사울이 죽은 것이 나의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돈이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자식이 목적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내놓으라 하니 ‘아멘’했다. 아무리 좋은 소식이어도 소속을 물어야 한다. ‘너는 왜 이 대학을 붙여 주셨냐?’ 하고 물어야 한다. ‘배우자를 데리고 왔는데 어디서 왔느냐?’ 라고 물어야 한다. 이것이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이니 이것을 묻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산자라면 이것을 묻지 않고 ‘심봤다!’ 라고 생각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믿는 자이다.’ 라고 한다. 다윗은 차분하게 아말렉 청년에 대한 분별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난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다윗이 분별이 되는 것이다. 사랑을 믿어야지, 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난을 통해 나타내 주신 것이 있기 때문에 10절까지 한 절, 한 절 물으며 아말렉 청년을 분별해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소속이 어디인가?’ 4절)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라고 물은 것은 ‘간증해봐!’ 라는 것인데, 인간적으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말, 즉 다윗이 들으면 가장 좋아할 말들을 했다. 믿음이 있다 했지만 믿음은 없고 전혀 다른 삼천포로 빠졌다. 다윗과 사울은 영적인 싸움이 아니라면 이 소식을 듣고 좋아 했을 것이다. 그 청년은 다윗이 사울 때문에 예수님 만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3. ‘죽은 줄을 어찌 아느냐?’ 라고 물었다.
큐티하는 사람은 질문을 하나 하더라도 의미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사울도 요나단도 죽었다. 사람들은 요나단 때문에 슬퍼하지만 사울 때문엔 너무나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어찌 아느냐? 라고 묻는 것은 그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라는 뜻이다. 저 사람이 인간적으로 왔는지, 나를 사랑해서 왔는지 분별하여 살아야 한다. 항상 질문에 그런 분별할 수 있는 질문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답이 나오는 분별만 있으면 안된다. 질문을 만들어 보라! 말씀을 통해서 질문을 만들어 볼 때 , '그것을 어찌 아느냐?' 성령님의 의도를 무시하지 않고 물어 볼때, 허점이 없어지고 빈틈이 없어지는 것이다. 5,6,7절)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우연이 없다. 근데 아말렉 청년이 우연히 길보앗 산에 올랐다고 했다. 단어에서 벌써 표가 난다. 조금만 말을 해도 모순이 금방 나타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는 것은 이사야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같은 말이더라도 야망인지 사명인지, 어떤 타이밍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토씨 하나에도 뜻이 있다.
4. 자기 입으로 자기 말을 증거 했다.
안믿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모순이 많은지 모른다. 9절) 사울은 다윗과 비교할 때 얼마나 모범생인지 모른다.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번제도 열심히 드린다. 예언도하고, 이방인 블레셋들과 싸웠다. 늘 전도 하러 다닌 사람이 사울이다. 참으로 율법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청년은 사울이 자신에게 죽여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것을 분별을 했다. 사울이 다윗을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지 모른다. 다윗이 좋아할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그 얘기를 했다. 아말렉 청년이 전형적인 세상 가치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연히 길브앗 산에 올랐다는 말은 지나가는 아말렉 사람이 아닌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윗에게 새 시대가 도래할 것 같다 하고 붙잡기 위해, 붙으려고 온 것이다. 사울이 죽고 나서도 다윗에게 아직 오지 않은 백성들을 봤을 땐, 이 청년이 믿음이 있어 보일 수도 있다. 사울이 죽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면 칭찬 해줄 수도 있는데, ‘니가 어디서 왔느냐, 일이 어떻게 됐느냐, 그걸 어떻게 아느냐?’ 라고 자기 입으로 자기 말을 증거 하도록 했다.
-우리는 아말렉 청년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빙자하여 이렇게 가장했던 적은 없었는지?
10절까지 다윗이 아말렉 청년을 한 절, 한 절 분별해 가는 것이다. 다윗의 처음 시작은 사람을 분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분별이 중요하다. 사울은 스스로 자살했다. 그것도 거짓말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이 주관하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른다. 불치병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얼마든지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마지막까지 그것을 가족들을 통해서 어떤 구원의 사건이 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병들면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드니 그 모습을 보면서 은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이 끝까지 있을 때까지 하나님이 쓰실 일이 있다는 것이다.
다윗이 반평생을 사울과 지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아말렉 사람은 기회주이자이다. 15절) 다윗은 청년을 처 죽였다 라고 나온다. 기회주의자는 처음에는 좋은줄 알아도 나중은 아니다. 분별해야 한다. 속은자는 속인자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아말렉이 속여도 믿는 내가 더 나쁘다. 성경에 분별하는 법이 나와있는데 속았다면, 내가 그만큼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다윗의 시작은 이렇게 분별로 시작한다. 이것을 분별하기 위해 사울이 수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울이 너무 감사한 것이다. 큰 사단을 물리치기 위해선 아말렉을 물리쳐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새끼사단은 말마다 물리치고 큰 사단은 기다려야 한다.
-목장나눔
1)우리에게 아말렉 같은 청년이 다가왔던 적이 있는가?
2)아말렉 청년처럼 하나님을 가장했던 적이 있는가?
-일주일 적용하기
박세웅 : 6시 반에 일어나 책상에 앉아 큐티하기.
최인혁 : 정욕 참기.
양주영 : 상쾌한 새벽을 위해 일찍 자기(12시), 운동하기.
남궁태현 : 퇴근 후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운동하기
-기도제목
*양주영 : 공모전 준비하면서 많이 묻기, 팀원 간의 의사소통 잘되길, 양육교사 잘 받길.
*최인혁 : 일러스트 공모전 당선, 운전연습 잘 받길, 취업을 위해, 컴퓨터로 그림 잘 그릴 수 있게,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남궁태현 : 게을러지지 않기, 크루원들과 관계회복 위해.
*박세웅 : 매일 아침 6시30분 일어나서 큐티하기, 목원들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내게 주신 것들 많은데 감사하는 마음 되 찾을 수 있도록. 내 사람들 잘 챙기도록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