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율 목장이 두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새 멤버들이 왔네요. 참석한 형제들은 박종율(77), 김수연(78), 김경환(81), 황상훈(80), 조종희(83), 한동우(80), 양원호(81)입니다. 종율형, 저, 원호는 저번 주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다른 형제들 나눔을 올리겠습니다^^
김경환
모태 신앙이었다. 어려움 없이 잘 지내다, 고3때 아버지의 발령으로 미국에 가서 대학 다니고, 금융 쪽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잘되지 않았다. 우리들 교회는 2007년도부터 다녔다. 부모님이 서로 위기를 겪으면서, 여기서도 안 되면 이혼하자는 생각으로 오셨는데, 변하신 것 같다. 성근 형 목장 가서 정착하고, 다시 미국 갔다 방학 할 때 다시 왔다. 2009년도에 한국에 와서 교회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목자에 대한 사명감이 있었다. 일대일 양육도 제대로 받았고, 시키는 대로 다 한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명에 대한 것보다 목원들에게 밥 사주고, 진정한 애통함 보다 다 큰 성인이니 잘 코치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 다니니까, 야근하면서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었다. 삶이 지치게 되었지만, 일(삼성에서 상품 기획)은 재미있는 편이다.
한동우
결혼 때문에 오게 되었다. 여자 친구, 어머니가 우리들 교회에 다닌다. 여기 교회를 다녀야 허락을 한다고 했다. 전에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 21살 때까지 초등부 교사까지 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하고, 방송 일을 하면서 교회와 멀어졌다. 그러다 다시 다니게 되었다. 여자친구 쪽은 우선순위가 일보다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교회에 대해 스트레스가 쌓였다. 전도에 대해서도 다닐 사람은 다닐 거라고 생각했다. 2003년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횟수로 11년째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삐딱하게 나갔다. 친구들을 잘 못 만났다. 가방도 안가지고 가고... 전공은 사진이다. 재수하다 예대를 가서, 흘러흘러 이렇게 왔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조종희
교회에서 청년들이 간증할 때 이질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오픈은 못하겠고, 오픈을 해도 심하면 나도 그랬어하고,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 같다. 그러다가 2009년도에 취업을 했는데, 딱 한군데 되었다.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 열심히 다녔는데, 첫 발령지가 부산이었다. 그게 나름의 고난이었다. 주일 성수를 지키지 못했다. 열심히 살았는데, 평안이 없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하셨다. 일어나서 울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며, 크면서 우리 몸은 거룩한 성전이라는 가치관이 심어진 것 같다. 세상 친구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나눔을 하는 친구들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상훈
강화도 옆에 있는 섬에서 컸다. 친구도 없었다. 살기는 좋다. 혼자 낚시하고, 재밌기는 한데, 혼자 하니까 쓸쓸했다. 그렇게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아픔이 많았다. 발전되지 않은 오지였다. 남자와 여자 따로 다른 밥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 환경이었다. 많이 쓸쓸했다. 하지만 낭만도 있었다. 그러다 부모님이 더 이상 농사는 안 되겠다 해서, 서울에 왔다. 서울에 올라오니까, 예전에는 방도 여러 개 있고, 옛날 미국 집처럼 창고도 있고, 그런 집에 살았는데 왜 왔지? 라고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최루탄 던지고 그런 기억도 있다. 그때는 그게 멋있어 보였다. 나꼼수 주진우 기자를 좋아했다. 뉴스타파도 좋아하고. 사회복지 다니면서 공부하고 싶었던 게 심리학이었다. 심리학, 철학에 관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