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20131110 김성연 목장 보고서★
목장 참석 : 김성연(83), 노나라(84), 김지영(85), 김진실(85)
<< 말씀 요약 >>
말씀 : 사무엘상 23장 1 - 29절
제목 : 돌보시는 하나님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간 놉 땅에서 에돔사람 도엑의 밀고로 제사장 85명이 학살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울이 죽이려고 하고 도엑이 밀고를 했으니 그놈들이 죽일 놈들인데 다윗이 ‘내 탓이로다’라고 고백했다. ‘내 탓이다’고 고백하는 것이 신앙의 최고봉이다. 이 고백 후에 하나님이 어떻게 다윗을 돌보시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길 바란다.
1. 자신도 힘든 상황에서 남을 돌보고자 할 때 하나님이 친히 돌보신다.
1절.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하나님은 나의 위기 때에 다른 사람의 위기를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기뻐하신다. 다윗 자신도 너무 어려운데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다. 그일라 사람들은 사울의 관할 밑에 있는 사람들인데 다윗에게 살려달라고 요청한다. 이처럼 내가 죽을 일이 쌓여 있을 때에는 실력자를 찾게 된다. 골리앗을 때려잡은 다윗에게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다윗은 쫓기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골리앗을 잡았을 때보다 진짜 실력이 생겼다. 베드로후서 1장 말씀에서는,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과 주 예수를 알고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경험적인 앎으로 하나님을 알게되니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부부관계의 앎이다. 벌거벗고 만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 남편이 되시는 것이다. 그러니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행하시면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생명은 쓰레기통에 버려도 쓰레기를 거름삼아 꽃을 피운다. 쓰레기통을 욕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콩가루같은 집안에 들어가도 모두를 자양분 삼아 변할 줄 믿는다. 자신의 힘으로는 세상의 정욕을 피할 수 없기에 신의 성품에 참예해야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것이 ‘내 탓이오’가 되는 사람이다. 다윗은 신기한 능력으로 이제는 남을 도울 수 있게 됐지만, 과거에 자신의 능력으로 수치를 당한 적이 있음을 기억했다. 그랬기에 ‘내 탓이오’를 불러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다윗은 그일라 형제를 돌볼 수 밖에 없었다. 저절로 생명에 속한 능력을 쓰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일 하시고 돌보시는 것이다.
2절.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자신의 힘을 다 빼고 하나님의 배에 발을 올려두었다. 그냥 힘을 빼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그러니 그일라가 도와달라고 할 때에도 먼저 하나님께 물어본다. 이것이 묻자와 가로되의 인생이다. 하나님은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신다. 블레셋은 다윗이 져본 적이 없는 만만한 족속이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물어본다. 사람이 윗 질서를 지키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다. 힘이 들어가 있는 사람은 물어보지 않는다.
6절까지 보면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블레셋을 물리친다. 그리고 사울의 미움을 더 받게된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기에 다윗은 하나님의 유익만 구했다. 힘들 때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신기한 능력이 생겨야한다. 다윗처럼 위기의 때에 다른 사람의 위기를 도와주는 것, 내가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의 힘든 소식이 들리는 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도울 수 있어야 한다.
3절.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복병이 생겼다. 환난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아둘람 공동체가 다윗과 한마음인 줄 알았더니 다윗이 기도응답 받고 가서 치자는 것을 두려워한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 기가막힌 공동체도 견해가 다르다. 교회에서도 처방이 다를 수가 있다.
4절.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처방이 다르게 나오니 다윗이 다시 하나님께 물어본다. 공동체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다고 억압적으로, 권위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물었다. 시시때때로 물어보는 것이다. 때마다 물어보는 것이 축복이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공동체에게도 말씀 하신다.
두 번째 물어보니 하나님은 또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물어보았을 때에 무시하지 않고 또 물어봐야한다. 다윗은 블레셋 물리치기도 힘든데 같은 편도 설득하면서 가야한다. 다윗은 구속사의 모델이다. 우리도 이 길로 걸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러 가는 힘겨운 순간에도 자기 편인 베드로를 양육해야했고, 말고의 귀도 붙여 주셔야했다. 예수님은 다 돌보고 가셔야했다, 니편 내편이 없었다. 다윗은 지도자라서 외롭다. 모두가 하지 말라는 일도 해야 할 때가 있고, 해야 할 일을 안해야할 때도 있다. 신본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백성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다수결이 훌륭해 보이지만 백성의 다수가 예수님을 죽였다. 항상 다수가 옳은 것이 아니다. 정말 하기 싫은 일도 구원과 연결되어있는 사명이라면 해야한다. 민주주의로 다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은 배가 거꾸로 갈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5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견해가 달랐지만 하나님께 물어보니 감동을 주셔 결국 함께 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묻고 가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 만약에 여기서 ‘사울 때문에 죽어가는 마당에 무슨 그일라냐’라고 하면서 가만히 있다면 사단이 와서 덮치는 것이다. 다윗의 형제 구원함이 다윗 자체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나. 내가 힘들어도 힘든 사람들은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살 길이다. 내 문제에 시선이 고정되면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내가 오늘 구원시켜야 하는 그일라는 누구일까? 나의 약재료를 가지고 나가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제목, 사울을 하나님이 처리해 주실 줄 믿는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하는 것이 큐티이고 말씀 묵상이다.
2. 도와준 사람이 배신할 것이라고 알려주신다.
6절.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7절.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절.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절.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절.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절.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절.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절.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다윗이 살려줬는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전혀 고마워하지 않고 다윗은 죽이려고만 한다. 교회에서 힘든 사람 찾아가서 전도해주었더니 그 사람이 목사님에게 가서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하나님이 처리해 줄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렇게 배은망덕한 사람도 있다. 배신을 경험하는 것은 지도자의 큰 덕목이다.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님을 아는 것이 지도자에게 얼마나 큰 덕목이 되는지 모른다.
7절에서 사울은 하나님이 다윗을 자기 손에 넘기셨다고 한다. 사울은 하나님을 너무도 찾는다. 그런데 입으로만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 뜻을 부르짖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해석한다. 다윗처럼 날마다 묻자와 가로되 하는 삶이다.
다윗에게 인생 최대의 시련이 찾아온다. 다윗이 도와준 그일라마저도 너를 배반할 것이라고 한다. 6절에서 아비아달이 에봇을 가져왔다는 말씀이 나오고 9절에 또 다시 에봇을 가져오라고 한다. 다윗이 두 번이나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이다. 에봇은 제사장이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에 입는 옷이다. 에봇을 가져왔다함은 분별해야하는 큰 일이 있다는 뜻이다. 다윗이 실전을 하나씩 치를 때마다 하나님의 분멸을 하게 되었다. 에봇이 온 것은 힘든 시험이 왔다는 것이고, 판결의 형태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전하실 뜻이 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남편이 승진했는데 바람을 피고, 자식이 대학을 잘 갔는데 게임에 빠질 때가 있다. 내가 너무도 공을 드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분별이 필요하다. 이때에 에봇이 필요한 것이다.
10절에서 다윗은 ‘사울이 나 때문에 쳐들어온다’고 고백한다. 다윗의 ‘내 탓이오’는 계속되고 있다. 생명을 내놓고 구해준 그일라에게 기대하지 말라고 하신다(11절).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전혀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것을 깨닫겠는가. 다윗의 거짓말로 인해 제사장 85명이 죽었다. 그런 사울의 학살이 자신이라고 왜 무섭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일라 사람인들 그 사울이 무섭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리더십은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배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있어봐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를 배반한 사람 앞에서 평강을 누리게 된다. 인간의 악에는 한계가 없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 하는게 저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의 때에 배반을 경험함은 영양가 있는 공부이다. 그리고 배반당할 때 말씀으로 해석해감이 성숙해지는 비결이다.
다윗이 왜 이렇게 배반을 당할까? 현재 사울이 왕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한다. 그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더욱더 하나님께 의지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아둘람 공동체에서는 50%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400명이었던 공동체가 600명이 되었다. 하나님밖에 바랄 것이 없을 때가 축복이다.
3.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서 영원한 요나단으로 돌보고 계신다.
14절.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에스겔 16장 6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으라고 하신다. 나는 잘 모르지만 주님은 늘 내 곁에 계셔 나를 돌보아주셨다. 다윗은 편한 곳에 익숙해지지 아니하고 계속 이동을 했다. 반면 사울은 편한 곳에 길들여지니 쫓아가다 그치고 그친다. 그래서 편한 것에 길들여지면 안된다. 세상이 생각지도 못한 적용을 하면 사단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간다. 다윗은 쫓기고 쫓기지만 하나님은 절대 사울의 손에 다윗을 넘겨주지 않으신다. 담대하게 나가길 바란다.
15절.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16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절.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절.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너무도 힘든 십광야 수풀에 요나단이 생명을 무릅쓰고 잠깐 왔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너무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니 큰 힘이 된다. 예수님의 형상인 요나단을 보여주신다. 피투성이라도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능력이 미치지 못하시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요나단의 사랑을 맛 본 다윗이 힘이 났을 것이다.
다윗이 예수님을 앎으로 신기한 능력이 생겼다. 그러나 사울은 일류병에 걸려 그를 인정하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더 인정하지 못한다. 이게 사울병이다.
19절.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절.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21절.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절.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절.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24절.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25절.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절.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더라 27절.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절.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절.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십사람들은 유다지파이다. 다윗과 같은 지파이다. 자기 고향 사람을 밀고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구원해준 사람도 배반당했고 고향 사람에게도 배반당했다.
이렇게 다윗이 추격 당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블레셋이 쳐들어와 사울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다윗을 잡지 못한다. 쫓다가 늘 그친다. 다윗은 예수님의 표상이다. 11절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윗의 하나님이다. 인간들은 악과 음란으로 풀어내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유일한 중보자이기에 다윗 역시 그 역할을 감당해야했다. 사건마다 완벽한 구원의 모델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다윗을 위한 보호가 아니라 다윗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속성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한 계획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완성되어진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나도 힘든데 남을 돕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도운 사람이 나를 배신하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직간접적으로 우리 곁에 영원한 요나단으로 돌보시고 계신다. 하나님과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에 갈급하고 순종하게 되고,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어려운 일을 보는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 기도 제목 >>
★ 김성연(83) ★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데 아프지 않고 얼른 회복되기를
한주동안 말씀 한 절이라도 제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시간 갖기를
주변에 붙여주신 사람들을 돌아보고 기도하며 갈 수 있기를
신교제와 신결혼 위해
★ 노나라(84) ★
일과 경제적인 것들, 신교제, 모두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내 주변의 그일라 친구들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기를
★ 김지영(85) ★
엄마 검사 결과 깨끗하게 잘 나오기를
쉬고 있는데 흔들리는 마음 잘 잡고 기도하며 진로 고민하길
★ 김진실(85) ★
일주일동안 결혼 준비 잘 하고, 결혼식 당일에 별일 없이 잘 진행되기를
새로운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할 수 있길
엄마에게 일주일동안 잘 순종하고 관계 회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