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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모임> 20131027
본문: 삼상 22:1~23
제목: 내 탓이로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내 탓이오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안 되고 인생이 억울해서 못한다. 억울함 때문에 도저히 용서가 안되고 네 탓이지 어떻게 내 탓이냐고 한다. 그래서 내 탓이라고 생각만 해봐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린다. 다윗,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억울하고 가슴이 꽉 막혔을 것이다. 원인 모를 미움을 받으며 쫓겨나고 계속 이상한 행동을 했던 다윗이 오늘 내 탓이라고 한다. 사울 탓이라고 안 하고 내 탓이라고 한다. 어떻게 내 탓이라고 할 수 있는 지 살펴보자. 내 탓, 네 탓은 공동체의 영향이 크다. 좋은 공동체, 나쁜 공동체를 살펴보자.
1-1) 다윗은 좋은 공동체를 만났다. 건강한 공동체였다. 다윗 공동체였다. 아둘람 공동체다. 1절, 그러므로, 다윗이 침을 흘리며 미친 척 하고 도망가서 아둘람 굴로 왔다.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왔다. 다윗을 예뻐하지도 않는 가족이 다윗 때문에 위험해져 모였다. 아둘람 굴, 너무나 마음이 가난해서 왔다. 갈 데 올 데 없어서 왔다. 너무 마음이 가난해서 갈 데 없어서 숨을 곳이 없어서 왔다. 자기 나라, 이방 땅, 미갈, 요나단, 아무도 도움이 안되었다. 숨을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인맥을 동원해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갔는데 도리어 아히멜렉의 모든 식구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국의 왕, 아기스 왕에게 갔다가 미친 척 하고 돌아왔다. 도무지 되는 일이 없고 믿는 사람에 대한 회의가 있었을 것이다. 자기를 그다지도 괴롭히는 사울이 믿는 사람의 우두머리였기에 믿는 게 싫다, 싫다 했을 것이다. 원수 나라로 갈 수 밖에 없어서 갔는데 가서 더 비참한 일을 했다. 거기서 심히 두려워했다. 가드를 떠나고 보니 다윗은 자신이 너무 비참하게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만만이라 다윗의 힘을 빼기로 하셨다. 만만이던 다윗이 비참한 인생을 살고 있다. 진짜 광야로 내동댕이 쳐졌는데 골리앗을 물리칠 때와 모습이 다르다. 골리앗 물리칠 때는 열등감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사울에게 너무나 오랜 시간 미움을 받아 다윗은 사울이 상처가 되었다. 사울로 인한 상처로 두려움이 생겼다. 돌아버리고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할 곳이 아둘람 굴이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구나, 아무리 찾아봐도 도울 사람이 없어서 사람을 내려놓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다. 도와줄 사람이 없고 내려놓을 수 밖에 없어서 사람을 내려놓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2절,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 곳에 모든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모여들었다. 그 사람들은 내적인, 물질적인, 외적인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다 왔다. 모집한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다윗에게 가면 살 길이 있을 것을 보고 왔다. 다윗의 돈과 권력을 보고 온 사람이 아니다. 다윗에게는 도리어 부담될 만한 사람들이 왔다. 4백 명은 아이와 부인까지 합치면 천 명이 넘는 숫자가 아둘람 굴에 왔다. 무엇을 보고 왔을까? 다윗에게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다윗에게 있었던 것은 그들과 같은 환난이 있었다. 다윗의 고난을 보고 듣기만 해도 공감되는 것이 있었다. 다윗 또한 그들이 체휼 되었다. 그 당시 환란 당한 자들은 사울의 학정 아래 같이 살았고 다윗을 좋아한다고 해도 사울이 미워하고 사울이 마음대로 권세를 휘둘러 집을 강탈해 노예가 된 사람도 있었다. 너무 심한 원통함이 있었다. 새끼 곰을 빼앗긴 어미 곰처럼 원통함이 있었다. 다윗도 사울 밑에서 억울함을 겪었다. 다윗이 그 모습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다윗이 그 이야기만 들어도 그 사람들이 공감이 된다. 공감은 상대에게 큰 힘이 된다. 주님은 아무 죄 없이 상상할 수 없는 고난과 유혹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들추지 않으신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주님도 죄가 없으시며 연약함을 당하시고 아들이셔서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 공감만 해줘도 힘이 된다. 그 까짓게 고난이냐고 하지 말라, 아니다. 절대치의 고난이 있다. 그들에게 다윗의 경험은 최고의 약재료가 되었다. 하지만 경험만 가지고 안 된다. 이상한 세계가 펼쳐진다. 밤으로 낮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말씀 밖에 없었다. 다윗은 말씀을 보고 또 보고 하며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물었다. 다윗은 일류로 살기 위해 왕궁을 기웃거렸는데 하나님께서 다 막으시고 힘든 사람들과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주셨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아둘람 굴, 유다 땅, 사울의 통치가 아닌 블레셋 통치가 미치는 곳이었다. 깜깜한 동굴에서 무엇 하고 있나 생각하다가 오히려 그 사람들을 살리며 드디어 일평생의 다윗의 사명이 보이게 된다. 다윗은 고난이 보석이라고, 질서에 순종,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입에서 단 내가 날 정도로 그들을 도왔다. 날마다 알려줘야 하고 내일은 또 무너지니 그들을 위해서 다윗이 말씀이 깨달아져야 했기에 말씀을 묵상하고 그들과 자기 고난을 위해 묵상하다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말씀의 깊은 보석을 캐내게 되었다.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다이아몬드 보다 더 귀한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캤다. 어느 날 말씀이 꿰지는 것이고 고난과 비교가 안 되는 더 좋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둘람 굴에 아무도 안 왔으면 다윗이 사울에게 당한 것으로 인해 계속 곱씹다가 병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다윗 같으면 죽어버렸을 것이다. 목사님도 은혜 받으려고 성경 읽은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살려고 성경을 읽었다. 그 날 죽을 일이 생기면 말씀을 캐고 캤고 하니까 깨달아졌고 십자가 복음이 깨달아져서 살려주셨다. 다윗이 생명의 견각에 매달려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다윗이 너무 열심히 말씀 보다 보니까 힘든 공동체가 다윗을 살리고 힘든 공동체도 다윗 때문에 살아났다. 말씀의 보석을 캐니까 말씀에서 내 인생이 해석 되었다. 중요한 것은 온전히는 아니여도 부러운 게 많이 사라졌다. 사실 속상한 것은 부러운 게 많고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며 사느라 인생이 힘들다. 내가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창조조 하나님과 연애하는 게 있는 데 부러운 게 뭐가 있을까? 목사님께서도 힘든 사람을 위해서 대신 묵상하게 되셨다. 대화해야 한다. 한 가찍 순종할 #46468; 마다 한 가지씩 보여주셨다. 결국 그들이 다윗에게 온 것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있어서 다윗에게 있고 그 말씀이 살려주기 때문에 온 것이다. 그래서 정말 다윗은 말씀의 사람이다. 주옥 같은 시편을 남겼다. 다윗 하면 말씀이다. 아둘람 굴 같은 체육관 예배, 어떻게 보면 교회가 동굴 같아 더 오기가 쉬웠을 지도 모른다. 거칠고 상처 받고 오합지졸이 모였지만 인생이 다 죄인이라 이래도 저래도 다 말씀으로 달라졌다. 이 사람들이 다 양육되어 다윗 왕국의 각료가 다 나왔다. 환란 당하기 빚지고 원통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말씀의 공동체에서 말씀을 보고 내 죄를 보고 내 탓이오 하며 서로 때를 밀어주는 중요하다. 말씀이 좋은 공동체에 있으면 서로 내 탓이오 하니 그곳이 천국이 된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내 탓이오 하게 된다. 말씀이 왕 노릇하니까 서로 내 탓이오 한다. 교회를 다니지만 네 탓이오 하는 것은 나쁜 공동체에 있어서다. 지금은 배부르고 등이 따숩지만 위기가 왔을 때 말씀이 있는 사람은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지만 악인은 하나님을 잊은 자다. 혼자서 교양 있게 이겨보려 하지만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아둘람 공동체가 있을까? 우리들 교회가 그렇다. 개척하실 때, 10월 20일 준비기도회를 집에서 하시며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만 오라고 쓰셨다. 우리들 교회의 주제다. 이런 배경이 있다. 아무 것도 없고 아픈 분들이 모였다.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배 때마다 말씀으로, 불 같은 성령으로 살아나게 하셨다. 계속 힘든 분들이 모였다. 살아나서 또 다른 성도들을 도왔고 지금도 돕고 있다. 힘든 사람이 오면 살아나는 교회다.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사회 불만 세력이 될 수도 있었고, 삼상 30장,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했던 사람들 이었는데 이들이 달라졌고 다윗 왕국의 엄청난 요직을 차지했다. 다윗이 압살롬 반란 때 맨발로 도망갔을 때 모두가 등을 돌렸지만 400명은 끝까지 다윗의 편에 섰다. 거칠었고 원한을 갖고 왔지만 원한 갚지 않고 이 세상 환란 당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불의를 행했다는 기록을 찾아 볼 수 가 없다. 내가 정말 힘든 사람을 돕고자 했을 때 부흥은 따라온 부산물이었다. 상처 많은 자들은 하나로 묶기가 힘들지만 묶으니까 진짜 지체가 되고 자원함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들 교회가 힘든 사람이 찾아와 살아나는 교회가 되었다. 우리들 교회 슬로건이고 핵심 가치인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공동체의 밑바닥에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을 초청한 것이 저변에 깔려 있다. 계속되어 져야 할 핵심 가치다. 최고로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는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모이는 공동체다.
1-2) 좋은 공동체에 있는 사람은 부모에게 효를 한다. 3절, 다윗이 부모에 대한 상처가 많다. 아버지 이새
는 다윗을 무시했고 엘리압을 무서워했다. 예쁘지 않은 부모와 형제에 대해 책임감이 생겼다. 좋은 공동체
에 있으면 나쁜 부모, 좋은 부모 상관없이 효도하게 된다. 이것이 좋은 공동체의 특징이다. 다윗이 구속사
를 잘 알기 때문에 모압 왕에게 부모를 맡기러 갔다. 모압은 외증조모의 고향, 룻의 고향이었다. 결론적
으로 나오미는 오래 전에 다윗을 위해서 피한 간 것이었다. 롬 8:28, 내가 지금 이렇게 한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
1-3) 좋은 공동체에 있는 사람은 주의 종에게 순종을 잘한다. 5절,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왔다. 다윗이 가장 좋은 길을 생각하고 생각해서 유다 땅을 떠났는데 다시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죽음의 길이다. 선지자 갓이 말했다. 다윗은 주의 종에게 절대 순종했다. 그런데 사울은 세계적인 선지자 사무엘이 기름 붓고 평생 옆에서 이야기 해 주었지만 예배 중독자이면서 평생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다윗은 평생 선지자와 관계가 좋다. 사무엘의 말도 잘 듣고 갓 선지자의 말도 잘 듣고 나단 선지자의 말도 잘 들었다. 이렇게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고 이런 공동체에 있어야 내 탓이로다 가 잘 된다. 기가 막힌 남편, 모진 남편의 매, 시어머니의 모진 욕설과 매질 상사의 무시가 기다리고 있다고 할 지라도 죽으면 죽으리라고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튼튼한 요새가 아닌 허름한 헤렛 수풀, 내가 돌아가야 될 허름한 유다 땅 헤렛 땅 수풀이 어디인가? 다윗이 그 때도 적용하고 떠났고 미친 척하고 별 비참한 일을 다 당하다가 다윗을 살린 건 아둘람 공동체다. 힘든 사람들과 같이 있다가 말씀을 깨달으니 유다 땅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말씀의 비밀이 대단하다. 목사님도 기도원에 10일 있으셨다. 안 살려고 가셨다. 하지만 주님을 만났기에 사랑 받는 아내와 며느리가 되기 위해 다시 돌아오셨다. 목사님도 내 탓이오 하고 돌아오셨다. 금새 왔다 갔다 해도 말씀에 의한 순종은 값진 것이다. 오늘 오라고 내일 가라고 해도 그 때마다 순종하는 것은 값진 것이다.
2. 나쁜 공동체의 특징은 무엇인가? 교회도 가정도 해당될 수 있다. 1) 권위적인 지도자가 있다. 6절, 사울은 기브아 높은 곳에서 협박 하는 단창을 들고 에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부하들이 도열해 있었다. 다윗 공동체는 다윗이 힘든 사람들과 같이 가고 자원해서 몰려들었다. 14장 52절, 사울은 힘 있고 용감한 자를 보면 자기 세력을 만들기 위해 다 끌어들였다. 가문과 문벌과 돈 있는 자들을 모두 끌어들였다. 환난 당한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헤렛 수풀에 있었고 힘든 때라도 다윗에게는 그들이 피난처였다. 하지만 사울은 환란 당한 자들을 죽이려 한다. 모든 공동체에서는 힘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떨거지들라 생각하고 사울처럼 무시하다 못해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한다. 그래서 다들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한다.
2) 지역감정까지 부추긴다. 7절, 자신이 없는 사울은 베냐민 출신, 베냐민, 악을 많이 행했고 피해의식이 있었다. 점점 베냐민 사람들에게만 요직을 주었다. 자기 편을 만든다. 편가르기를 한다. 베냐민 족속들엑 다윗이 왕이 되면 자리 하나 없을 거라고 했다.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어리석을 사람은 거기 휩쓸려 간다.
3) 피해 의식이 지나친 지도자가 있다. 8절, 사울 공동체는 자기 부하, 아들도 못 믿는 공동체다. 다 공모해서 대적한다고 생각한다. 고발, 선동, 매복이 이런 단어가 난무하는 곳이다. 사울은 입만 열면 자기를 왕따시킨다고 한다. 왕따 시키지 않는데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다. 왕따 시킨다고 하며 단창을 들고 있으니 제대로 말해줄 수가 없다. 바른 말을 해줄 수 가 없다.
4) 간신배가 득세를 한다. 정확하게 이야기 안 했다. 아히멜렉에게 다윗이 거짓말한 것을 빼고 사울이 좋아할 만한 것만 이야기 했다. 사울의 부하들도 다 다윗을 좋아하지만 베냐민 지파지만 사울이 해도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녹을 먹고 있기에 아무도 밀고를 안 한다. 누가 단창 들고 서 있는 사울에게 바른 말을 하겠는가? 진짜 환란 당한 자들은 다 다윗에게 갔고 신하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가만히 있는다. 내가 다른 사람이 내 탓이다라고 할 때 왜 내 탓이냐 라고 하면 두 번 다시 말 못한다. 말만 하면 화를 내어 바른 말을 못해주고 그런 사람은 인간 관계에서 대단한 손해를 본다. 바른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만 하면 사울 처럼 화를 내서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
5) 이런 나쁜 공동체에서 순교자가 나온다. 11절~13절, 왕이 사람을 보내 아히멜렉과 대제사장을 소환했다. 13절, 애매한 소리를 한다. 14, 15절, 다윗을 엄청나게 변호한다. 아히멜렉은 다윗의 거짓말을 알았지만 말하지 않고 다윗을 변호하고 정확하게 평가했다. 이것은 엘리의 후손이 멸망해 가는 과정 중에 있다. 엘리의 후손이 멸망한다고 하셨다. 왜 엘리 집안을 엄하게 다스리시나 할 수 있지만 주의 말씀을 주신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엄하게 다스리심을 알려주신다. 16절, 아히멜렉에게 죽을 것이라고 했다. 17절, 호위병들에게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다 죽이라고 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라고 했는데 사울의 신하들이 싫어하고 베냐민 지파도 싫어했다. 심복조차 말을 듣지 않았다. 사실은 이들은 단창 들고 서 있는 사울 앞에 소극적인 순교자다. 베냐민 지파까지 다 죽이면 자기 편이 하나도 없다. 차마 죽이지 못하고 18절, 에돔 사람 도엑에게 네가 죽이라고 했다. 도엑이 85명을 죽였다. 믿음의 믿자도 모르는 도엑(사이코패스)이 85명의 제사장을 자기 유익을 위해서 죽였다. 이 악인은 더할 나위 없는 완전한 악인이라고 칼빈은 평가했다. 악인 한 사람의 증거로 놉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사울이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북한도 똑같은 상황이다. 그쪽에서 순교자가 훨씬 많이 나온다. 우리는 굉장히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위한 죽음은 그 자체가 복된 것이다. 악인에게는 삶 자체가 형벌이다.
3. 내 탓이오 는 아둘람 공동체, 좋은 공동체의 결론이다. 20절~23절, 비극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듣자 마자 도엑이, 사울이~~ 이러지 않고 딱 내 탓이라고 했다. 다윗이 내 탓이라고 한 것은 아둘람 공동체 말씀의 힘이다. 항상 회개하는 심령이 모든 두려움에 건져 주시는 비결이다. 이스라엘, 구하지 않아야 할 왕을 구해서 사울에게 처절하게 겪어야 할 힘든 일을 겪었다. 그것은 안 겪으면 계속 세상 왕을 구할 것이다. 불신 동업, 불신 결혼, 너무 좋아 보여서 한다. 본인이 하고 나서 겪어야 한다. 여기서 어떻게 내 탓이라 할 수 있는가? 진짜 하나님의 뜻을 살피니까 내 탓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최고의 깨달음이다. 아비아달을 거두어 주는 책임이 수반되는 깨달음이다. 이것이야말로 천국을 사는 비결이다. 다윗이 한 계단 업그레이드 되었다. 내 탓이로다 하려면 좋은 공동체 필요하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가장 좋은 공동체다. 말씀의 다이아몬드를 캐는 곳이고 부모에게 책임을 다하게 하는 곳이고 주의 종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공동체다. 네 탓이로다 하는 공동체는 지도자가 높은 곳에서 단창 들고 에셀 나무 아래서 혼자 누리는 공동체다.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간신배가 있고 너무 힘들어서 순교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공동체다. 다 내 탓이로다 를 부르짖고 모든 사람들의 피난처 되는 우리들 교회가 되길 바란다.
한 주에 한 번 만났던 우리 목장 식구들, 이번 주는 토요일에도 모였답니다. 바로, 요한수양유진 커플의 결혼식을 위해서!! ㅎㅎ 너와 내가 하나되어!!, 한량없는 은혜~~ 멋진 워쉽과 아름다운 축가로 축복했던 우리 목장 식구들 보며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우리들 교회 결혼식 설교를 들은 것이 처음, 왜 우리 교회 결혼식이 은혜로운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신 교제 열망이 강해질줄 알았는데ㅋㅋ 오히려 결혼식이 전도축제가 되도록 준비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유진이가 준비한 복음팔찌로 그 은혜는 두배!!(유진아, 고마워ㅋㄷ) 아름다운 결혼식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준 요한수유진 부부, 박주원 목장 식구들, 이승희 목장 식구들, 우리 목장 식구들 모두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이번 주 목장 모임은 자연스럽게 결혼식 후기와 한 주간 나눔으로 시작했습니다~~
소망: 우리들 교회 결혼 예배 처음 드렸다. 주례를 들었는데 목사님께서 명확하게 신랑 신부에게 말씀하셨다. 듣기 싫을 수도 있는 내용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셨다. 오늘 설교 주제는 내 탓이오, 좋은 공동체는 내 탓이라고 하는 지도자가 있는 공동체다. 난 말을 생각 없이 하는 부분이 있다. 다윗은 환난 당한 자를 품어주는 사람인데 난 정죄하고 판단하고 밀어냈던 것 같다. 율법주의적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판단이 심했다. 힘든 사람을 안아 주기보다 저 사람이 저래서 그랬다고 느꼈다. 그런데 우리들 교회 와서 다듬어졌다. 이번이 세번째 목장인데 아직 말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 환란을 당하는 사람을 귀찮아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사역할 때, 힘든 아이들을 보면 결손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결손 가정 아이들은 꼭 문제가 있다. 예배 중 산만하고 말 안 들으며 먹을 것 사달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품으라고 보내주셨는데 되게 귀찮게 여겼구나 느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버림 받아서 눈치를 많이 보고 사람을 이용할 줄 안다. 사역할 때, 성경 학교를 했는데 부모님 이혼하시고 외할머니 밑에서 홀로 자란 아이,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즐기려고 나가셨고 그 아이는 어머니 집에 갔을 때, 게임만 하다 온다. 그 아이가 수련회비를 안 내려고 했다. 서울랜드를 갔을때 돈 없다고 했는데 구슬 아이스크림 먹고 있었다. 그걸 보고 화가 났다. 말을 막 던져도 유도리 있게 말하는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 관계 생각하다 귀찮아 하는 스타일이다. 전화할까 말까 하다가도 귀찮아 하며 넘어간다. 나 혼자 있고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 탓이오 라는 말 앞에 빠져나가기 좋아한다. 우리들 교회 오면서 특징이 내 죄를 보라고 했는데 가끔 상대방의 죄를 보려고 한다. 아버지한테도 아버지 죄를 보라고 했다. 아버지를 보면 내가 주도권 뺏기기 싫어한다.
경호: 진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답답하면 이야기 해야 한다. 난 베프인 친구가 있다. 전화기 들었을 때 귀찮아 하는 것, 대화 유도 안 해도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소망: 학교 다닐 때 친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결혼하면 그런 게 힘들다.
경호: 소망이를 처음 봤을 때,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관계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끝까지 남아 있는 모습이 좋고 더 마음이 간다.
경훈: 소망이 형은 상황 파악과 분위기 파악이 빠르다. 필요한 말을 한다. 보이는 게 많아서 캐치가 빠르다. 아이니까 할 수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그게 어렵고 구슬 아이스크림 보니 화가 날 수 있다.
상천: 우리들 교회 결혼식을 자주 봤다. 대강당, 연수홀에서 하는 결혼식을 다 봤다. 목사님은 항상설교 말씀으로 하신다. 요즘 예배를 드릴 때나 목장 모임에서 때려 주시는 게 있다. 사실 사람들 을 만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은 가족 같이 느껴져서 누굴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잘 안 드는 스타일인데 목장 식구들을 2주 안 보니까 보고 싶었다. 난 결혼하고 지금 목장에 남아 있고 싶었는데 계속 남아있게 되었다. 오늘 나쁜 공동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내가 속한 공동체가 어떤가 생각했다. 난 독재자 스타일이고 추진력이 강하다. 결혼 준비도 추진력 있게 준비해 왔다. 오늘 설교를 들으며 나쁜 공동체의 주역이 나구나 생각했다. 추진하고 선택과 집중하는 스타일, 독재자적인 행위가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말씀 묵상 안 해서 주일마다 크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 같다. 난 직설적이고 독재자 성향이 있어 이것마저 내려놓으면 안 된다는 게 있다.
경호: 목사님께서 순종 하나 하면 하나 열어주신다고 하셨다. 성숙을 위해서 끊임없이 같은 문제가 온다. 사건이 온다.
상천: 회사에서 점장, 부점장하고 싸웠던 일이 있었는데 오히려 감사팀에서 좋게 봤다. 비리와 결탁 안 하고 대쪽같이 한다.
경호: 부모나 어렸을 때 겪은 일이 캐릭터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상천이가 주일 예배와 목장 모임을 통해 말씀이 조금씩 들리고 깨달아 지는 것 같아 감사하다. 종찬이는 어떻게 지냈어??
종찬: 지금 행복하다. 결혼식 축가하면서 추억도 만들었다. 이번 주에 나태해졌다. 회사에 지각했었다. 오늘 2시에 기초 양육반에 갔다. 기초 양육반은 좋아서 온다. 행복해지니까 나태해진다. 나태해지지 말아야겠다. 11월에 일이 많아 해달라고 했는데 못한다고 했다. 급하면 소장님 부탁하실 것 같다. 하지만 주일날 목장 모임은 올 수 있다.
호진: 요한수유진 커플의 결혼식을 보면서 참 좋았다. 짐승(?)이라 신교제 열망이 더욱 강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결혼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랑, 신부가 아니라 하객 중, 특별히 가정 고난이 있는 분들이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결혼식을 통해서 한 가정이라도 주님께 돌아온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결혼식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객들에게 나눠줬던 복음 팔찌를 보며 언제, 누구와 올릴 지 모르는(?)ㅋ 결혼식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축제가 되도록 준비 해야겠다고 생각해야겠다. 적용은 자매 생기면(?)ㅎㅎ 할까 한다^^
이번 주 토요일 저녁 or 주일 저녁, 드디어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진로 결정(대학원 진학)에 대한 것인데 오늘 예배 드리기 전까지 어떻게 말씀 드릴까 고민했다. 그런데 오늘 설교 주제, 내 탓이로다를 생각하며 대략적인 outline을 생각해 봤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전제로 내가 그 동안 진로 고민, 방황으로 수 없이 아버지를 힘들게 해 드렸던 것을 나누며 용서를 빌려고 한다. 좋은 대학에 갔지만 다니기 싫다고 군대 일찍 간 것, 군 제대 후, 복학 안 하고 놀았던 것, 졸업 후 뚜렷한 진로 결정 없이 놀았던 것, 직장 생활하면서도 진로 고민했던 것 등등 참 많은 시간을 걱정 끼쳐드렸다. 그런데 내 문제고 내 탓인 것을 모르고 문제에만 사로잡혀 그게 내 탓이라는 생각 전혀 안 하고 왜 날 안 붙잡았냐고 투덜대고, 이제 하고 싶은 것 하려는데 왜 막으려고 하시냐고 화냈었다. 그 때마다 난 어찌 보면 나보다 더 힘들어하셨을 아버지를 전혀 생각 치 않았던 것 같다. 예수님 없이 최고의 스펙을 쌓으며 가는 형을 보며 형은 만만이고 나는 천천이다 라고 질투하며 미워한 것도 고백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제가 가야 할 길(상담 사역)을 알았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씀 드리려고 한다. 1년 전 이야기 했을 때도 내가 끈기 없음을 아셔서 완전 반대가 아니고 네가 꾸준히 감당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 때 인정하겠다고 하셨던 것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꾸준히 감당하겠다고 말씀 드리려고 한다. 사실 그 동안, 아버지와 대화 시간의 목적을 진로 상담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를 많이 두려워하는 내가 용서를 구하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번 한 주 동안, 잘 안 하던 큐티를 꾸준히 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잘 듣고 기도로 준비하려고 한다. 목장 식구들, D-DAY, 토요일 저녁입니다. 기도 부탁드려요^^
29일(화) 큐티를 하며 모세가 르우벤, 유다, 레위, 베냐민, 요셉을 축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생각하며 무엇을 축복기도 해야 할 지 알고 있는 모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람직한 리더쉽의 모습이라 생각하며 동시에 저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핑계로 중보기도 하지 않는 제 모습을요… 한 사람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그 사람을 위한 끊임없는 중보기도인 것을 머리로만 알고 실제 행하지 않는 저의 죄가 보였습니다. 착함 병이 있어 사람들과 있을 때는 잘하려고 하지만 정작 혼자 있을 때 중보 기도는 커녕 제 문제에만 사로잡혀 있는 부족한 모습이네요. 그래서 오늘 큐티 적용을 목원들 중보 기도로 정했는데 오늘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 드려요~~ 하나님께서 부목자라는 타이틀을 주신 것은 섬기라고 주신 것인데 그것을 망각한 제 모습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목장 식구들, 추워지는 날씨, 감기 조심하고 파이팅하고 만나실께요!!^^**
기도제목)
상천: 1. 결혼 준비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2. 가족들이 건강하도록
영수: 1. 큐티와 기도가 기쁨이 될 수 있도록
2. 회사 업무 지혜롭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제때에 할 수 있도록
3. 교회에서 섬길 곳을 인도함 받도록
경훈: 1. 주님이 1순위가 되도록
2. 공부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3. 짜증 내지 않고 좋은 기운 풍기는 사람이 되도록
소망: 1. 말씀을 더 잘 알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2. 앞으로의 진로가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함 가운데 가도록
호진: 1. 날마다 큐티 하며 하나님께 잘 묻고 내 죄를 직면하며 삶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2.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사이가 더욱 좋아지시고 깊이 있게 대화하실 수 있도록
3. 아버지께서 더욱 건강해지시고 아버지와 형이 구원받으시고 교회 나오시도록
4. 상담 사역의 비전과 확신을 하나님께 잘 묻고 결정한 것을 11월 2일(토) 저녁에 부모님께 잘 말씀 드리고 이해하실 수 있도록
5. 상담 사역의 비전과 소망을 나눌 수 있는 자매를 만나 신 교제하고 신 결혼할 수 있도록
종찬: 1. 부모님께서 건강하시고 나도 건강하도록
2. 저와 하나님의 사이가 가까워 지도록
3. 사람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도록
4. 목표(1% 모르고 99% 아는 사람)가 흔들리지 않도록
창민: 1. 체력을 주시도록(공부하는데 지혜와 체력을 주시도록)
2. 숙면 취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