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사무엘상 9장 1-27절
<도입>
공부 잘 하는 아이가, 과외를 갈까 교회를 갈까 하다가 쪽집게 과외를 했다. 서울대를 딱 붙어버렸다. 그 이후 세상에서 승승장구 하다 보니 불혹이 넘어도 교회를 안 나온다. 교회에 대한 비판자가 됨. 하나님께 잊혀졌는가? 서울대 붙은 것이 기도의 응답인가? 아니면 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인가? -세상의 왕이기에 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이다
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은?
1. 분노함으로 주신 응답
1-2절)
1.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2.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서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은 분노함으로 주신 응답이다. 세상의 왕을 달라고 (사울)의 응답이다. 사울의 뜻은 ‘큰 자’, ‘요구하여 얻은 자’. 8장 7절에서 이스라엘이 왕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미스바에서 회개하고 한 마음이 된 것 같았는데, 지나고 나니 재미가 없고, 세상에서 잘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세상 사람들이 놀러 가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따라서 사무엘 선지자도 좋지만 세상도 좋다면서 사울을 구했다. 우리는 사울이 '나쁜 왕'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고정관념이 있으면 묵상하기가 어렵다.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왜 세상의 왕을 구했는데 분노함으로 주었는가? 분노함으로 왕을 주셨다는 뜻은 무엇인가? 1절) 베냐민 지파로 시작한다. 사무엘상 전에 12지파로 갈린 것이 보인다. 베냐민은 회개를 하지 않는다. 베냐민이 600명 빼고 전멸했다. 당시 베냐민이 가해자인데도 회개 할 줄 모르고 계속 싸운다. 이스라엘 전체의 왕을 이 베냐민 지파에서 골랐다. 이것이 분노함의 결과이다. 사울 = 베냐민의 전통을 물려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21절) =완전히 사울이 자기를 겸손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베냐민과의 충돌 과정을 얘기하면서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되냐면서 이야기 한 것이다. 이루기 전 까지는 더 겸손한 것이다. 이것이 사울이었다. 백성들도 지금은 베냐민을 암시하지만, 뽑히고 나서 불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놀랍게도 가장 반감을 많이 사고 있는 베냐민 성읍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 사울은 '큰자’, 요구한 자' '너희들이 요구한 왕이 바로 여기있다'라고 하신 것이다.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떼부리는 기도를 하는 백성에게 복수를 가하는 선택.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 사울의 비극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비극을 말한다. 그리고 사울의 실패가 아닌 이스라엘의 실패. 우리는 교회를 나온다. 그런데, 망해도 좋아 망해도 한번 받아보고 망하자. 이런 생각을 한다. 부부, 형제, 간에 나만, 내 자식만 잘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떼부리는 기도이다. 집안에 해결하지 않은 갈등이 있으면 내 아들이 나중에 사울이 된 후에 나라가 망하고, 망해야 알게 된 다. 서울대학 간 것이 분노 함으로 주신 것인 것을 미리 알고, 하나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면 안될까?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하자.
-목장 나눔)
남편바람 필 때, 눈만 뜨면 그 여자와 어디 갔을까? 라는 생각. 남편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같이 있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실직하고 같이 있게 되었다. 지긋지긋해짐. 의심을 할게 없었다. 의심을 안 하니, 하나님 뜻대로 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그러니 회복시켜주셔서 취직이 되었다. 목에 찰 때까지 간절함이 생기게 되니 이런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됐다.
이스라엘도 지금 잘 사니까 그런 떼부리는 기도. 베냐민도 해결되지 못한 것이 있다. 둘 다 결론 적으로 세상 왕만 구하니 결과를 주신다. 로미오와 줄리엣 해결을 못하니 원수끼리 만나게 한 것이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음악 미술 정신과 모두 예수님을 알아야 함
2. 그들이 원하는 온 갖 준수함으로 다 주셨다.
-외모와 키, 모두 다 주셨다. 사울은 사울대로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선택이고 시작하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셔서 최선의 사람을 뽑으신 것이다.
2절)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서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지파에서 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단번에 혹할 수 있는 사람을 세웠다. 키가 크고 외모가 잘생겼다. 왕으로써 완벽한 사람이 사울 이었다. 나중에 다윗을 세울 때 얼마나 사울에게 혼이 나서 외모야 용모를 보지 않는다. 키 보지 말아라. 하나님은 키 큰 사람보다 중심을 보신다. 사람들은 먹고 살만하면 외모를 본다. 판교의 화면 LED가 돼서 너무 잘 보인다. 예배보다 부수적인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판교가 걱정이 된다. 예배만 집중할 수 있는 휘문이 좋다. 사울을 보면 외모만 잘생긴 것이 아니라 내면도 잘생겼다
3절)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암나귀를 찾아오라니 바로 가서 찾으려고 했다.
4절)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그 곳에는 없었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녀 보았으나 찾지 못하니라
40km이상을 계속 찾으려고 긴 여행을 했다. 사울의 효심이 좋다는 것을 알려줌.
5절)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하니
아버지가 너무 걱정하시겠다고, 아버지에 대한 배려. 책임감 짱에 배려심도 있다. 됨됨이가 됐다. 됨됨이는 외모나 소유, 학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 부모에 대한 효성으로 나온다
6절)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하나님의 사람에게 인도할 수 있는 영적인 사환도 갖추고 있다
7절)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부모에게 대한 효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도 있고 예의까지 갖추고 있다. 사울은 준수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도 알아볼 수 있다.
11절)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비탈길을 올라간다.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려면 비탈길을 올라야 하는데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천도 하고, 예의도, 외모도, 배려도 있다. 사무엘과 사울, 둘이 만난 것은 하나님의 섭리.
8절)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쳐 달라 하겠나이다 하더라
사환과도 너무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9절)
(옛적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선견자-주관적
선지자-객관적인 활동의 선포 사역에 중점
선지자의 시대가 왔다.
10절)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성읍으로 가니라
11절)
그들이 성읍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하니
여자를 사람으로 취급 안 하던 때에 선견자가 있냐고 물었다. 내면의 됨됨이가 준수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사소한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왕으로 뽑혔다. 사소한 일을 잘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 사울=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내가 오늘 만나는 사소한 일이 왕이 될 수도 있다. 사울=책임감, 예의, 아랫사람 존중, 인격적, 여자들도 인격적으로 대하고, 완벽한 사람으로 보인다. 이렇게 완벽한 사람을 왕으로 세웠다.
21절)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
겸손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사울이 왕이 되어서 맨 처음 취한 행동이 어머니의 가문, 어머니의 한을 풀었다. 혈통과 왕으로서 행한 최초의 행동에서 앞으로의 비극이 예견. 베냐민이 끝까지 회개를 하지 않았다. 한이 많은 사람들은 이루기까지 겸손하다.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어떻게 우리가 분별하겠는가? -*사울은 믿음보다 성품이 아니었나? 성품이 이렇게 완벽하지만 성품은 환경에 완전히 무너진다* 하나님은 하도 원수처럼 지내니 왕을 세웠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았기에 성품과 믿음이 대결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을 차례대로 읽어나가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는 진짜 회개한 신앙인가 아닌가를 보아야 한다. 진짜 회개가 아니면 환경에 따라서 한을 갚는다. 따라서 믿음이 최고인 것이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천년 후에 베냐민 지파에서 사도 바울이 나오게 한다. 손가락질을 받게 하니 세계적인 바울이 나온 것이다.
하나님은 떼부리는 기도 응답하시면서도,
3. 끝까지 사랑하신다.
12절)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서 갔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읍에 들어오셨나이다
얼마전에 사무엘보고 나가라고 했는데 사무엘은 계속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런 사무엘이 있기에 하나님이 끝까지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람이니 끝까지 사랑하고 세운다.
13절)
당신들이 성읍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니이다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곧 그를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백성들은 사무엘을 여전히 존경하면서도, 존경하지만 그래도 왕은 구해야되겠어. 라는 생각이었다. 사무엘을 존경하니 사무엘의 축사 전까지 예배 음식을 먹지 않았다.
14절)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사울이 이런 사무엘을 만나는 것이, 떼를 부리고 이런 스승이 있기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사울의 역할이 있다. 분노함으로 응답한 것도 사실이지만, 최선으로 선택한 것도 사실. 그러나 더 나아가 끊임없이 회개를 해야 된다. 회개를 해야 구속사가 보인다. 머리로 사랑해도 가슴으로 사랑하는 것이 안 된다. 예수를 믿는 데 어떻게 비판이 앞서게 되는가?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한다. 성경지식 문제가 아니라 회개가 문제다. 사울이 너무 준수하니, 모든 것 갖추고 나서 때가 되니 원한을 갚는데, 이때 사무엘이 옆에 있다. 사무엘이 끝까지 마무리 하고 있다. 사무엘 역할하는 우리가 되자. 한 사람이 중심잡고 해석을 할 사람이 필요 하다.
-우리들교회 부자의 나눔)
매일 하나님만 찾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남에게 모범이 되는 것보다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실천해서 본을 보이는 것이 맞다. 매일 회개를 하라고 하는데, 회개가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 세상생활이 재미있다. 나쁜 짓하지 않는다. 내 주위에는 피해 입히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교회에 오면 나눔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것이 많다. 돈이 있어도 표현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큐티 보다는 중국어. 목표가 있어야 한다. 아내와 믿음적인 면에서 다르다. 회사를 경영해야 하기에 하나님께 올인 할 시간이 없다.
-목사님 말씀)
이런것이 세상왕을 구하는 것이다. 30년을 교회에 나오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 하면 너무 준수한 세상 왕이 계속 승승장구 하기에 진짜 왕을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울에게 사무엘이 있었다. 그 분에게 목사님이 사무엘이다.
<맺으면서>
떼부리는 기도의 응답은 분노함으로 주신다. 온갖 준수함으로 응답주심.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셔서 사무엘 선지자로 구원해가신다. 한 사람이 중요. 말씀으로 인도함 받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
떼부리는 기도를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기 원한다. 집집마다 해결되지 않는 비극이 있는가? 그런 문제 나두고 나만 잘 되겠다고 한다면 왕이 되어서도 사울처럼 이렇게 된다. 내 뜻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