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업 하면 회사, 재벌을 생각하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영적인 의미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룻은 보아스가 약속한 결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결혼은 기업을 무르기 위한 것이다. 결혼이 목적이 아니고 기업 무르기가 목적이다. 기업 무르다의 고엘은 구속하다 되찾다 회복하다의 뜻이 있다. 기업 무를 자는 구속하는 자 회복하는 자 라는 뜻이다. 기업 무르기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스라엘의 땅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였다. 지파 별로 가족 별로 하나님께서 제비 뽑아서 나눠주셨다. 땅을 사고 팔지라도 50년마다 찾아오는 희년에는 원래의 주인에게 땅을 돌려줘야 했다. 땅을 다시 사주는 사람이 기업 무르는 사람이다. 보아스는 기업 무르는 사람인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소유한 사람이다. 은혜로 기업을 주신 것이다. 받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의 헤세드의 자비와 인내와 긍휼로 영원한 기업을 선물로 주셨다는 뜻이다. 바로 이 영원한 기업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이 땅의 토지가 아니고 영원한 기업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이 세상의 종착역이 바로 이 영원한 기업인 것이다.
1.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결혼을 한다
예배가 회복된 사람은 말씀을 잘 듣게 된다. 말씀을 잘 들으면 적용거리가 나온다. 적용을 하게 되면 말씀이 깨닫게 된다. 적용을 하게 되면 자유 함과 기쁨이 생긴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적용을 하고 나면 하나님의 평강이 생긴다. 구별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것이 있다. 믿음은 빈 마음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빈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기업 무르는 자가 되는 비결이다.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지만 일을 차질 없이 치밀하게 최선을 다해서 진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여도 기업 무르기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한다. 그렇지만 이 지극히 선한 일은 이 세상에서 절차를 지켜야 한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를 차별하여도 내가 믿음이 있으면 차별의 문제를 넘을 수 있다.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차별하지 않는다. 사명을 위해서 산다고 하면서 질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혼의 목적은 기업 무르기이다. 구원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결혼을 하기 위해서 기업을 무르는가 기업을 무르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가’ 물어보자. 결혼을 믿음으로 했는지 정욕으로 했는지 생각해보자.
2. 기업 무르기는 축복의 기회이다
보아스가 ‘아무여’라고 부른 자는 엘리멜렉의 친족이다. 이름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룻과 보아스는 예수님의 계보에 찬란하게 올랐다. 아무여의 후손은 이때 기업을 무르지 않아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지 못한 수치의 족보가 될 것을 믿음의 사람은 알아보았다. 기업 무를 자인 보아스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느라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하찮은 이방여인 오르바도 이름이 올라갔는데 엘리멜렉의 후손이며 유대인으로서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믿음의 일과 사람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아무여는 단순히 법적 의무를 회피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기업을 무르겠다고 대답을 한다. 이때 룻하고 결혼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축복인데 믿음의 눈이 보이질 않아서 사실 건성으로 대답은 한다. 그러나 믿음의 장소와 믿음의 사람을 보고 있어도 건성으로 대답하는 사람이 믿는 사람도 많다. 교회에 나오고 목장에 가고 이런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기업 무르기는 구원이고 예배이다. 예배를 통해서 구원을 알게 되는데 이렇게 믿음의 사람이 있고 믿음의 사건이 날마다 퍼지는 우리들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3. 희생이 따른다
기업 무르기는 이타적인 것인데 부부, 공동체에서 나 밖에 모르면 문제가 생긴다. 똑같은 기회가 주어졌는데 한 사람에게는 축복의 기회가 되었고 다른 사람은 저주의 기회가 되었다. 기업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으니까 나의 영원하신 기업이 천국에나 있는 것으로 아니까 보이는 것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고 보아스는 믿음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였기 때문에 엘리멜렉의 기업을 선택한 것이다. 보아스는 룻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아무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보아스가 희생을 한 것이 헛수고가 아니다. 보아스는 감추인 보화를 산 것 같은 믿음의 적용을 한 것이다. 보아스에게 찾아온 축복의 기회이다. 천국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그 밭을 산 것이다. 우린 힘들어서 예수 믿는 것도 축복이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믿는 것 힘든 것이다. 보아스와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올라갔다. 축복의 기회는 순간인데 아무여는 축복의 기회를 저버렸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내가 믿음으로 신 결혼을 하는 것 이것이 기업 무르기이다.
4. 기업 무르기는 증인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인 앞에서 모압여인 룻을 언급하였다. 너희가 천하게 여기는 이방여인이고 과부인 룻과 결혼할 것이라고 수군거리지 말라고 하면서 정면돌파를 한다. 모든 사람은 수치를 감추고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모압여인과 결혼 하는 일에 너희가 증인이라고 이것이 기업 무르는 자의 태도이다. 내가 오늘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수천 대가 축복을 받고 이름 없는 한 사람 때문에 자손들이 대대손손 저주를 받았다. 우리가 수치스러운 일을 오픈 하는 일이 증인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과 기업 무르기는 목장에서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을 오픈 하는 것이라고 증인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 믿지 않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가슴 아프게 하면 후손에게 아무 것도 남겨줄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룻처럼 우리들 교회 식의 오픈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면서 기업을 무르는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기도 제목>
장원: 자기 죄를 보는 사람 되기를
정신 차리고 삶의 작은 순간마다 적용하며 규모있게 살아갔으면
기현: 계절학기 기말고사 있는데 수요예배 오는 적용 잘 지켰으면
영진: 회사 결정 잘 하도록
주형: 넘어지지 않고 꾸준히 잘 하도록
하나님 신뢰하면서 나아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