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드리는 헌신>
나에게 익숙한 방법대로 하고는 잊지 않는가. 하나님의 방법을 생각지 아니하고 내 맘대로 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방법을 알아야 모든 소통이 가능해진다. 내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1. 주님께서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 헌신을 원하신다.
2. 주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헌신을 원하신다.
3. 주님께서는 생명을 드리는 헌신을 받으시고 놀라운 축복을 주신다.
<경배>
세상에는 200개 이상의 나라가 있다. 대통령도 있고 수상도 있고 각각 지도자가 많이 있다. 하지만 가고 오는 세대에서 진짜 훌륭한 왕을 찾을 수가 없다. 이번 대선에서 51.8%를 훌륭하고 48%를 받으면 훌륭하지 못 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모두 죄인이다. 정말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면 전심전력하여서 그의 복종에서 그의 보호를 행복하게 살 텐데 그런 왕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왕들은 국민에게 큰 혜택은 못 주면서 막대한 부담을 준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왕인데 어찌하여 인간의 왕을 구할 수 있는가 만약 사람을 왕으로 세우면 어떤 폐단이 있는지 말씀해주셨다. “너희의 왕은 너의 아들들을 위하여 병고의 말을 부르게 할 것이며 너희 아들들을 징집해 천 부장,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의 밭을 갈게 하고 자기의 병과 병고의 제고를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너의 딸들을 위하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 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의 양 떼의 십 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만일 사람을 왕으로 세우면 이렇게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른다. 정말 자기 백성을 위해서 희생하며 백성들을 의로운 길로 행복한 삶으로 인도할 지도자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경배할 왕을 우리에게 주셨다. 성탄의 의미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경배 받으시기에 우리의 왕으로 오셨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Christ와 축제 festival의 뜻을 가진 mas의 복합어로 그리스도의 축제를 의미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리스도와 상관 없는 축제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 본문을 중심으로 경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성탄을 맞는 바른 태도를 살펴보자.
1. 고난의 때에 경배할 왕이신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왕 때에 찬송의 떡집이라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헤롯은 너무나 폭군이었다. 전통 유대인이 아닌 에서의 후손으로 이두메 출신인데 로마에 뇌물을 주고 왕위를 얻었기 때문에 늘 열등감이 있다. 자기 왕위를 찬탈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대인 출신 아내와 아들들도 죽인 인물이기 때문에 포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근친상간으로 열명의 아내를 두었고 권력욕에 빠져서 왕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자식들도 서슴지 않고 살해하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헤롯이 정치를 잘 하였다. 성전도 유대인들을 위해서 어마어마하게 지어주었다. 정치를 잘 한다고 좋은 왕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뽑을 때는 저 사람이 우리나라를 잘 살게 해주기 때문에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예수씨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정치를 잘한 왕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든 아기를 죽였다. 예수님 한 사람 죽이려고 모든 아기를 죽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헤롯은 자손들까지 저주를 받았다. 사단은 모든 권세와 권력과 모든 것을 가졌지만 헤롯 같은 것이다. 영원토록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헤롯 폭군이 가장 우리를 무섭게 핍박하던 그 시절에 예수님이 탄생이 되어서 로마가 압제하고 있던 시절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인류의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위험한 장소에 오셔서 영원구원사역을 이루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헤롯 같은 남편, 아버지, 자식들이 없으면 얼마나 예수를 잘 믿을까 싶다. 하지만 그런 헤롯을 두셔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어 낸 것이다. 편안할 때 보다는 전무후무한 환란의 때에 예수님이 들어오신다. 내 인생도 편안할 때는 예수가 들어가지 않는다. 환경을 원망하지 말라. 힘들수록 왕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다. 그렇게 힘들 때만이 내가 예수님의 보호에 들어가서 정말 내가 그 안에 들어가야겠다 내가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난의 때에 경배할 왕이신 예수님이 내 인생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2. 경배는 헌신이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온 이유는 그의 별을 보고 예수를 메시아로 알고 유대인의 진정한 왕인 예수를 경배하러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왔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지금 메시아가 난걸 모르지만 이방에서 온 박사들만이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선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아기가 메시아인줄 알겠는가? 전문가들은 조금만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크게 쓰신다. 하지만 조금 겸손한 것을 못 한다. 지식 있는 자들에게 지혜가 필요한데 지혜가 바로 겸손이다.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로 인도를 받았다. 하나님은 일반 은총을 귀하게 여긴다.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보인다. 별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께 경배가 목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연구도 직업도 고난도 축복도 경배가 목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별의 인도를 환경의 인도로 보면 된다. 인도함을 이상한 곳에서 구하려고 하지 말고 말씀으로 생활예배 잘 드리면 인도함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당시의 교통수단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와야 하는 험난한 길이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다. 너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여행이었다. 참된 경배란 생명 바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성탄 축하의 중심이요 목적이 되야 한다. 영원한 진노에서 건지신 그 분께 경배하고 헌신하는 것이 참된 성탄이다.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이 우리에게 있다. 동방 박사들처럼 평안의 길이 아닌 고난의 길이 놓여 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다. 경배는 헌신을 수반한다. 목장과 목자는 은사가 아니다. 경배는 정말 헌신이 필요하다. 몸이 가고 발이 가서 섬기는 것이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헌신이다. 왕을 찾아 나서는 저들의 헌신된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 고난도 감수하고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롯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왕궁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잘 먹고 잘 살면 예수님이 지겹다.
3. 세상은 경배의 대상을 모른다
기뻐할 소식을 듣고 괴롭고 번민하고 불안하다는 뜻이다. 죄란 무엇인가? 아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이다. 죄에서 구원할 자 아기 예수를 경배해야 하는데 아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것이 죄다. 죄를 모르니까 어디에서 소동을 해야 하는지 안 해야 하는 지 모른다. 헤롯과 지도자들은 ‘예수’ 하면 자기 자리를 위협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서기관, 제사장들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날 거라고 성경에 정확하게 써 있었고 알고 있었다.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예수님이 나오시기 때문에 작지 아니하다 라고 표현 했다. 내가 가장 작은 사람이지만 예수님께서 나에게 임하시면 나는 가장 작은 사람이 안 되는 것이다. 이론으로는 알지만 이론으로 하는 지식에는 감동이 없다. 경배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 설교를 입으로는 잘 하지만 삶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성탄절을 지키면서 성탄의 의미는 하나도 없고 본질도 하나도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환경의 인도로 잘 오다가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전문가로 보여서 물어보고 왕궁에도 가면서 인도를 놓쳐버렸다. 겸손하게 별의 인도를 받다가 왕족 만나고 대단한 이름의 목사를 만나면 소용돌이 속에 있게 되면서 인도를 놓치고 그 사람을 따라가게 된다. 쓸데없이 왕궁에서 대단한 지도자들과 교제하면서 정작 예수님께 경배는 커녕 화를 미칠 수가 있다.
4. 경배가 목적인 인생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신다
오직 경배가 목적인 인생은 한번 인도를 놓쳤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순수함을 알기 때문에 지켜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예수 믿는데 다 분별을 하겠는가. 그래서 여기서 묻고 저기서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경배가 목적인 인생은 헤롯의 사주를 받아도 정확하게 가게 하신다. 이 사람들이 일부러 죄를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곧장 갈 수 있는 길을 왜 헤롯의 인도로 가게 하시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인생은 너무 돌아서 왔다. 곧장 믿어도 되는데 세상의 권세를 경험하게 하고 세상의 지식을 알게 하고 그것이 쓸데 없다는 것을 진짜 왕하고 가짜 왕을 비교하라고 이것저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이 길이 비록 헤롯에게 알려져 핍박 받아야 하지만 진짜 왕이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여야 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실수일지라도 하나님은 택한 자에게 결코 손해가 오는 일이 없게 하신다. 그러나 알고 짓는 죄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신다. 알고 짓는 죄 아주 중요하다. 내가 인도한 사람이 진짜 예수님 만나면 정말 기쁘다. 내가 만나는 예수님의 별은 무엇일까. 우리가 별 따라 여기까지 왔다. 내 옆의 식구 아픔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 그게 별이다. 별은 환경이다. 내 별 따라 아픔 따라 내 식구 따라 왔는데 드디어 그 별이 머물러 선 것이다. 방황을 끝내고 아기 예수 있는 곳에 선 것이다. 드디어 이 초라한 곳에 와서 방황이 끝났다. 초라해 보이지만 예수님을 알아본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알아본 것은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지 않고 본질로 평가하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의 성탄 방문 목적은 왕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것이 성탄의 목적이요 본진 인 것이다. 아무 기적도 보여준 것이 없는데 그 초라한 아기에게 경배를 하였다. 황금은 왕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로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행위고 유향은 제사장이 성전에서 향기를 내기 위해서 피우는 향으로 대제사장으로 인정하는 예물, 몰약은 죽은 사람의 시체에 바르는 약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나타냄으로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증거한다. 진정한 경배는 헌신이 담긴 정성이 담긴 예물이 있었다. 우리에게 성탄의 감격과 기쁨이 없는 것은 이렇게 주님께 드릴 진정한 예물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수님의 왕권과 신성과 인성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많이 드리냐 적게 드리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예물에 내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예물에 헌신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마지못해 드리는 예물은 주님에 대한 경배를 퇴색시킨다. 동방박사들은 아무 것도 못 봤는데 예물을 이렇게 드렸다. 그러나 우리는 기적만 베풀면 내가 무엇을 드리겠다고 한다. 내가 드리는 주님께 대한 경배로서 예물을 드려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십일조를 못 하고 그러면 안 된다. 주께 대한 경배가 안 되기 때문에 많고 적은 게 문제가 아니지만 정말 적선하듯이 하면 안 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다 하지만 경배가 없다. 인생의 목적이 예수님 경배가 아닌 것이다.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나신 것은 특권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낮고, 천하고, 환란 당하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다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내가 경배가 목적인 인생은 끝까지 지키신다. 예수님의 인생을 묵상해보면 이 땅에 너무나 핍박이 심할 때에 오셔서 너무나 핍박이 심할 때 가셨다. 우리가 겉으로 바라다 보이는 예수님은 이 땅에서 누린 것이 없는 것이다.
5.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생활의 변화가 있어야 하고 유턴해야 되고 길이 달라져야 한다. 옛사람의 길이 아닌 새 사람의 길로 가야하고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가야 한다. 내 마음대로 가는 길이 아니다.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가야 되는 길인 것이다. 헤롯이 명한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인생의 목적이 중요하다. 목적을 정한 인생은 시시하지가 않다. 목적을 놓치면 언제나 머물고 싶어진다. 오늘 성탄의 의미는 ‘다른 길로 가라’다. 인생의 목적이 정욕이 아닌 거룩일 때 쉬워진다. 예수님을 만났는데 다른 길이 있는데 자꾸 헤롯에게 기웃거리면 그 집에 예수가 오는 길이 막히는 것이다. 내가 황금, 유황, 몰약 예물 드렸으면 기웃거리지 말고 떠나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나고 기뻐하고 이거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목자가 돼서 사람이 아프고 힘들다고 하는데 관심이 하나도 없으면서 다른 모임 열심히 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이 목장이다. 사람 이야기 들어주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가르치는 것은 나 혼자 애기하는 것이다. 목장은 계속 들어줘야 한다. 목장을 하게 되니까 없던 사랑이 생기고 지겨워서 생기고 지겨워서 내 악을 보게 되고 힘들면 또 떠나기도 하고 그래도 목장 공동체인 것이다. 힘든 사람은 들어주지 않으면 살아날 사람이 없다. 내가 힘들어 봤기 때문에 들어주는 것이다. 목장을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나 믿음 없음 하고 똑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