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내용 #8211; 우리들교회에 주신 말씀 (에스겔 43:1~12)
에스겔 43장은 우리들교회의 창립예배의 말씀이다. 그때마다 누군가 한명씩 돌아가실 때마다 지경이 넓어지면서 죽음과 생명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2013년 6월 15일 우리들교회 창립예배일에 주신 말씀이고 지금 에스겔 말씀은 앞으로 9년 후에 나올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들교회에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때 이후 우리들교회가 말씀으로 얼마나 변화되었는 지를 다시 한번 들어보아야 한다.
첫째 동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교회이다. (1절) 40장부터 42장까지 새로운 예루살렘 성전 척량하면서 다문과 창문, 모든 형상들을 척량할 때마다 내가 거룩으로 가기 위한 인도함을 받아야 할 치수와 규례 등 이런 이야기를 다하시면서 이 모든 척량이 끝나면서 43장 그 후의 동향한 문에 이르게 하셨다. 8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우상으로 가득한지를 보여주시고 10장, 11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곳도 바로 동향한 문이였다. 그리고 40장에 성전을 척량하게 시작한 것도 동향한 문이였다. 그러면 에스겔 선지자는 19년 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형상을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나 우상숭배를 하고 부패를 하고 악을 행하면서 죄를 지으는 가운데 있었어도 하나님이 함께한다고 굳게 믿으며 회개는 하지 않고 성전에서 여전히 예배를 드렸다. 성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였다. 예레미야 5장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의로운 사람 한사람만 찾아도 내가 명하지 않게다고 한다. 이사야 1장 13절은 제발 유대백성들이 성전 출입을 삼가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은 바벨론이 침략을 해서 파괴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나는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포로로 가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잡혀간 상태에서 하나님이 없는 비참함과 수모와 고초를 당하고 이젠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리라는 비전 조차도 가물가물해질 이때에 (2절)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 온다는 환상을 보여주신다. 바벨론의 심판을 경험한 후에 회복을 보여주신다. 항상 우리 가운데 심판은 영광을 회복시키신다는 메시지를 주시는 거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동향한 문. 그 똑같은 동향한 문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 온다고 했다. 창립예배를 드리는 날 에스겔 43장을 보는데 휘문성전에서 우리들교회가 식당을 사용할 때에 후문이 동문이라는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전이 너무나도 귀가 막히고 40장 41장을 볼 때 대단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않으면 건물일 뿐이고 유령성전이다. 유럽의 성전이 너무나도 화려하지만 유령성전이 되어 건축물로만 보이게 되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때에는 머묵머묵거리시면서 떠나셨다. 에스겔 10장 11장을 보면 맨먼저 성전 문지방을 떠났고 너무나도 말을 안들어서 그릇들에서 머무시다가 동문에 옴기셔 머무시고 성읍 가운데로 가신후 최종적으로 동편 성 감람산으로 옴겨가셨다. 떠날 때는 아쉬워서 돌아오시기를 바라시며 안 떠나셨는데 오늘 돌아오실 때는 한번에 단번에 돌아오셨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어 그러기 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내 옆에 계신다. 동편에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돌아온다는 것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어야 할까? 평생 같은 부분에서 넘어지고 또 그 부분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각자의 동편이다. 각자 끊지 못하는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 다 있는 것이다. 맨날 무너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각자의 동편이 있는 거다. 예수를 믿으면서 너무 좋은 육신의 것들이 많아서 끊지 못하는 동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 외에 것들들을 포기 한다는 의미가 있다. 말씀을 들어도 내가 집중만 잘하면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는 거다. 즉 한 두절 말씀으로 적용을 할 수 있는 거다. 큐티를 하면서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으로 들어오는 사건인 줄 믿어야 한다.
둘째 말씀의 권세가 영광으로 빛나는 교회가 있다. (2절 하반절) 하나님이 주시는 우리들교회의 사명과 정체성, 7대 강령이다. 하나님의 음성은 폭포수처럼 권위가 있어 이 땅의 흑암의 세력에 빛이 비친다고 한다. 음성이 물소리고 말씀이다. 창립예배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문자 그대로 많은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에 비가 그치고 해가 내려찌는데 비를 알맞게 먹은 정문 콘크리트 땅에 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많은 물소리 말씀의 본에 앞도 당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오는 것이다. 물소리만 듣는 다면 고문이 따로 없다. 이 많은 물소리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들리지 않으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미치는 것 고문이 따로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할 때 이 땅의 누구라도 그 영광으로 빛나게 된다는 뜻이다. 돈이 생기고 아이가 수능 시험을 잘 본다고 영광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할 때에 갑자기 내가 빛나는 영광의 인생이 될 것을 믿어야 한다.
셋째 동일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이다. 어제도 오늘도 동일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이다. (3절)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을 행하여 하나님이 멸망 시킬려고 왔을 때에 그 영광과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던 그발강가에서의 영광이 오늘 동편 땅에서 들어오는 영광이 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우리들교회는 배부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애통하며 권고를 하고 망하고 나서도 그발강가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도 똑같은 영광으로 찾아 와서 위로를 하고 회복할 때도 똑같은 영광으로 다같이 기뻐하는 차별없는 교회가 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 영광이 모두 같아서 사람은 동일 하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전하고 일관되게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없어 배부른 사람에게 가면 우리는 차별을 한다. 배부른 사람에게 가면 주눅이 들고 망한 사람한데 가서는 야단치고 회복한 사람한테 가서는 배가 아프다. 다 동일한 영광으로 우리가 가서 애통하고 권고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발 강가에서 보던거나 멸하러 할 때나 같은 이상이라고 말한다. 오늘 그 모양이 1절 2절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의 모양이 솔로몬이 성전이 망할 때 영광과 구발강가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영광과 지금 돌아올 때 영광이 하나님은 언제나 즉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찾아오시는 줄 믿어야 한다. 그러니깐 우리들교회는 차별이 없이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똑같은 복음의 영광으로 찾아가는 교회가 되라고 한다. 사람에게 제일 좋은 칭찬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한결 같다는 소리를 듣는 자가 최고인 줄 믿어야 한다. (4절, 5절) 창립하던날 에스겔이 특별한 감동을 받고 감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 것이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들어 데리고 안틀에 들어가셨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다. 우리들교회는 있어야만 하는 교회이고 해야만하는 교회이고 네가 하기만하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임재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신줄 믿어야 한다. 내가 들어가기만 한다면 여호와의 영광을 보여주겠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에 우리를 성신이 들어 안틀로 데리고 가시는 교회인 줄 믿어야 한다.
넷째 거룩하라. 음란과 세상의 죽음 왕들의 시체를 멀리 제하라고 하신다. (6절) 우리들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한다. 듣는 교회가 우리들교회이다. (7절) 주신은 우리 성전 가운데 영원히 거한다고 하신다.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내가 얼마나 이 세상의 왕이 좋으면 죽어도 그 왕의 시체를 성전에 두고 숭배를 하며 죽었는데도 교회를 가서도 세상의 죽은 왕을 숭배를 하면서 세상의 성공과 자랑을 위해 기도를 한다. 우리들교회가 가야할 길은 죽은 왕들을 버려야 하는 길이다. 바벨론 포로를 하다가 하나님께서 회복을 시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할 자격이 있으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이 우상숭배하는 성전을 성전 바로 옆에서 세웠기에 그 한담이 바로 세상과 성전과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 화려한 솔로몬 성전이 망했다는 것이다. 에스겔 성전은 담이 생겼다. 세상과 우리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나는 같은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님 만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한담 차이로 너무나 화려한 성전이 왕궁과 같이 있었기에 나도 속고 남도 속는 분별이 안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출발을 한 것같은데 다 똑같이 이야기하는데 한담이 다르다. 그러면 다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단에 가지 말라고 하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들어가 보니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어” 99%가 같아도 한담이 다르면 다르다. 우리는 전문과같이 성경을 읽지도 아니하고 내가 들어보니깐 틀린것이 하나도 없어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교만이다. 한국교단이 이단이라고 말한 것을 믿고 따르는 것이 겸손한 태도이다. “다들 고난 가운데 예수믿었다.” 하면 예수 잘 믿는 것같아도 가감하지 말라는 것에 가감하는 사람이 많은지 모른다. 겨우 한담차이로 하나님을 곁에 두고 내가 행하는 가증함은 무엇인가? 우리가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겨우 한담 차이이기 때문이다. 죄인인지 아닌지도 분별을 못하고 나도 속도 남도 속이는 우리 믿음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들 교회는 음란과 세상과 구별이 되는 이 죽은 왕들의 시체를 멀리하는 교회가 되라고 하신다. 이것도 사명으로 주신 것이다.
다섯째 죄악을 부끄러워하게 하는 교회가 되라. (10절)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야한다. 불신자에게도 보여야 하지만 이스라엘의 화려한 성전, 대단한 성전,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온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이다. 우리들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많다. 그러니깐 이스라엘 족속, 믿는 족속에게 보였다. 불신자도 많이 오지만 교회를 다녀도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가 많으니깐 자살도하고 이혼도하고 부도가 나는 일에 대해서 한담차이로 있기 때문에 분별이 안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죄악으로 부끄러워하게 될 우리들교회가 되라고 하신다. 그러면 남들이 나를 보고 자기의 죄악을 부끄럽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20절)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회개의 마음이 가장 최고의 감정이다. 회개하는 심령과 마음은 어떤 마음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마음이다. 남녀간의 사랑, 부모님과의 사랑, 지체간의 사랑 그런 감정과 정말 내 죄악으로 부끄러워하는 이 회개의 감정은 비교가 안되는 감정이다. 내 죄악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평생토록 부부가 하나가 되지 못한다. 공동체도 하나가 되지 못한다. 내 죄악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부모와 자녀의 만남은 평생토록 하나가 되지 못한다. 나한테 잘해주고 챙겨주고 좋은 곳을 데려간다고 해도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은 평생토록 힘든 것이다.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다면 천국백성이 아닌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정말 천국백성이 아닌 사람이 있는 것이다.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들교회가 되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너가 그것만 하면 내가 함께 하겠다. 우리들교회가 대단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왕들의 시체를 내놓고 동편땅을 간단한 것을 보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여섯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해라. 말씀 묵상을 하게 하라. 이 사명을 우리게 주셨다. (11절)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자들만 말씀이 의미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회개한 자들이 성경이 재미있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회개를 모르는 자들은 지겹기 짝이 없다. 그렇게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에게 시경과 율례를 알게하라 법도를 알게하여 규례를 지켜 행하라는 것이다. 특별히 써서 지켜 행하게 하라는 것. 오늘 내가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서 보여야 할 하나님의 제도와 시경과 율례는 어떤 것인가?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직접 써서 지켜 행하게 하는 것 어떨까? 즉, 큐티를 쓰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자녀들에게 물려 줄 시경이다. 내가 회개를 해야 하나님의 시경과 형상과 규례를 알게 된다. 그러고 나서 9년 후에 우리들교회는 계속 쓰는 것으로 천국갈 것같다. 이 써서 하는 것이 우리들교회를 성숙하게 했는 지 모른다. 주의 영광이 가득 찬 성전이 된 줄 믿어라. 성경 읽기에는 반드시 남이 편집한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 나 혼자 읽으면 에스겔은 평생 안 읽는다. 맨날 창세기 조금 읽다 나가면 출애굽기까지 읽는다. 그러고 민수기 신명기 다 건너 띠고 열왕기에서 왕들의 역사를 재밌게 읽다가 그 뒤에 에스겔 예레미야는 절대로 안 읽는다. 우리들교회는 큐티교재로 위해서 다 읽어 가면서 우리가 다 성숙한 줄 믿는다.
일곱째 산꼭대기까지 거룩하게 하라. (12절) 예루살렘 성전이 산 꼭대기에 있는 거다. 산 꼭대기에 가면 전 세계를 빛 출수 있다. 그런데 산 꼭대기까지 가는 것이 어렵다. 좁고 협착하다. 너무 힘이든다.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을 다 찾아가라는 것이다. 우리들교회가 힘들고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하자들만 와라. 그렇게 힘든 곳만 가다 보니깐 전세계 어떤 환경인 곳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보이는 교회가 된 줄 믿는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이렇게 죄악을 부끄러워하는 간증을 하게되고 하다보니깐 전세계에 퍼져서 어쩔수 없이 산꼭대기까지 거룩하게 하는 사명을 주신줄 믿는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말씀의 사명이 순종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목장나눔
이현우 목자 - 단기 선교를 가지 못 갈 것같다. 이유는 휴가 기단이 짧아서 그렇다. 최경주선수의 책을 받은 후 읽고 훈련이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려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 책을 보면서 내 사명이 성공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청년부를 하면서 사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수능기간이 되면서 나도 골프시험을 볼 때가 생각났다.
심기성 - 합리화 할 사건이 없는 것 같다. 삶에서 합리화 시킨 것이 있다면 상대방 때문에 이별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더 잘 못을 많이 했는데 타인의 탓을 한 것 같다. 내가 하기 남름대로 인간관계가 되는 것같다.
김동우 - 상견례하는 동안에도 부모님의 전도가 있었다. 예식장소를 잡고 있지만 예산이 부족하다. 결혼 문제에 있어 큰 문제가 종교인 것같다. 교회에서 한는 양육프로그램을 받으면 할 것 다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도 있다.
김성순 - 공부를 하러 갈려고 가는 중 놀다가 공부한 것에 대해 그래도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시험 준비하는 기간에 준비가 잘 안되었는데 된 것 같이 가다 잘 안된 것이 있다는 것을 후에 알았다.
이지형 - 학교를 다니면서 병원에서 어머니 간병(폐렴)을 했다. 가게 일손이 부족한 가운데 어머니 간병도 해야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간병인을 붙여야 하지만 이용에 문제가 있어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졸업작품 준비로 실험을 해야하는데 하기가 싫다. 만약 이 실험을 안하면 졸업을 안시키겠다는 말에 좀 그랬다. 또 실험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단체로 같이 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어쩌면 이 전공이 나와 안 맞아 그런 것같다.
김민지 - 아직 대학 2년생이고 골프를 전공하고 있다. 교회 나온지 2주되었고 여자친구를 통해 등반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친구 소개로 만났다. 교회를 오는데 1시간 반정도 걸린다. 아직 말씀이 잘 안들리기도 하지만 귀에 들어온 말씀이 있어도 기억에 남지는 않는 것같다. 골프 훈련을 하면서 목표를 잡아 하지만 내가 괜찮으면 그냥 목표를 다 한것처럼 합리화시킨다.
이상헌 - 삶자체가 합리화이고 정당화 되어 있어서 감각이 사라는 지는 것같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윤리적관점과 내 의가 너무 강해서 모든일이 정당화되어야 하고 힘이 들어간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해야 할 것을 다하며 제공을 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한것에 인정하지 못하고 늘 자책하며 이것이 문제였던 것같다. 하며있는 것을 느낀다. 또 손님들의 표정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억압을 받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때로는 이것에 대해서 타협을 보는 경우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과 서비스를 제공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불특정다수에게 신경이 쓰이면 나사하나 빠진 사람처럼 다르게 할 때도 있다. 어쩌면 이런한 행동에 대해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면 의선이 앞서는 자만의 모습이 있다. 늘 일관성 없는 삶의 모습이 가볍게 할 수 있는 일 조차도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도제목
이현우 목자(82) - 1. 운동 잘 할 수 있게 2. 감기 나을 수 있게
심기성(82) - 1. 여자친구를 잘 만나게
김동우(83) - 1. 결혼준비 잘 할 수 있게 2. 큐티 잘 할 수 있게
김성순(86) - 1. 취업 잘 할 수 되게
이지형(89) - 1. 마지막 학기 잘 준비하고 졸업작품(실험) 잘 할 수 있게 2. 큐티 적용 할 수 있게
김민지(92) - 1. 여자 친구와 트러블이 잘 해결되게
이상헌(83) - 1. 일대일양육교사 잘 하면서 내 속의 죄를 잘 볼 수있게. 2. 아버지의 구원을 내 힘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맞기기